다자키 이야기는 3인칭이다. 하루키는 90년대 초반이전의 소설은 1인칭으로 감정의 노출을 과감하고 여과 없이 드러냈다. 다자키 이야기는 3인칭인데 그만 하루키가 자신이 개입이 되어 버린 부분들이 꽤 있다. 초반에 인물에 대한 묘사가 너무 좋아서 머릿속에 네 명의 다자키 친구들의 모습이 탁탁 탁탁 형상이 된다.
그런데 다자키는 썩 박식하지도 않고 문화적인 교양이 있는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처음 핀란드에 가서 지나치는 나무를 보고 자작나무, 가문비나무, 단풍나무 따위를 다 알아버리고 소나무는 적송이라고 하는 것도 알아버린다.
직장상사에게 핀란드로 간다고 말했을 때 핀란드에 뭐가 있지?라는 질문을 받고 바로, 시벨리우스, 아키 카오리즈마키, 노키아, 마리메코, 무민이라고 대답을 한다. 핀란드에 대해서 알아보고 대답했을 수도 있지만 다자키는 구글을 통해서 세세한 것을 검색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처음 사라가 다자키에게 친구들의 이름을 물어보는 장면을 상상해 보면 알 수 있다. 시벨리우스는 클래식, 아키는 영화감독, 노키아는 핸드폰, 마리메코는 유명한 핀란드 침구브랜드이고 무민은 만화캐릭터이다. 이 정도면 핀란드 한 나라를 다 안다는 것인데 하루키가 그만 1인칭으로 개입을 해버렸다.
다자키 이야기는 시간과 공간, 숫자가 크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 현재에서 실체를 두고 과거로 가서 이야기를 하는 방식은 하루키가 늘 하는 방식이지만 우리는 어느새 하루키의 양을 둘러싼 모험이라든가 일각수의 꿈, 어둠의 저편, 해변의 카프카에서 이미 녹을 대로 녹아서 캐러멜이 되어있다.
5명으로 완전한 공동체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다자키라는 자신이 추출되는 방식으로 인해 완전한 공동체가 와해가 된다. 완전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5인 체제라는 것이 먼저 있을 수 없는 환상 같은 것이다. 공동체에서 완전함을 이룰 수는 없지만 그들은 이루고 있었고 그것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암묵적인 평행을 이루는 관계의 지속이라는(이성관계가 없는) 것이다.
이 깨져버린 5인 체제는 16년이 지난 후 핀란드의 구로를 만나러 가서는 다시 5인체제의 완벽한 모습으로 결속이 된다. 그것은 구로와 그녀의 남편, 그리고 두 딸. 그리고 일본에서 온 낯선 남자, 바로 다자키 자신의 모습이다.
구로를 찾아가는 이야기가 아주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것이 다지키가 좋아하는 역의 모습과도 아주 흡사하다. 다자키가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는 역과 선로의 모습은 마지막에 신주쿠역의 복잡한 모습에 투영을 하고 있다. 그 복잡함이 바로 인생이며 사람이라는 것이다.
다자키는 하이다를 만나면서 어쩌면 묘한 감정을 지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다자키의 마음속에는 알게 모르게 시로와 구로가 자리를 잡아버려 이미 사귀었던 몇몇의 여자들에게 마음을 두지 않았다. 오로지 사라를 만나서 자신의 마음을 열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 역시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꿈속에 시로와 구로가 나타나서 같이 섹스를 즐긴다. 그리고 하이다에게 정액을 쏟아낸다. 다자키는 어쩌면 자신도 모르는 새에 점점 동성에게 마음이 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정말 자신도 모르는 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속에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그리고 등에 새겨진 그 어떤 것에 의해서 점점.
구로를 만나서 이제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 말아 달라고 말한다. 시로의 이름도 부르지 말아 달라고. 다자키는 그럼 자신의 이름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때 다자키는 그대로 다자키 쓰쿠루로 남는 게 좋다는 말에서는 조금 벅차올랐는데 그것은 색깔을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은 색채가 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원래부터 색채를 지니고 있지 않았던 다자키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자기만의 방식과 타인과의 타협을 배제하더라도 꿋꿋하게 남아있어 달라는 당부처럼 들렸다. 그 모습은 마치 하루키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았다. 모든 작가나 독자, 그리고 세상이 변해서 처음과 다른 이름으로 불리더라도 하루키 자신은 하루키라는 이름 그대로 영원히 사람들에게 불리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에 다자키는 사라에게 전화를 하고 끊어 버린다. 그리고 울리는 전화는 사라라는 것을 알고 있다. 점점 전화벨이 울릴수록 다자키는 움직이지 않고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이 부분은 마치 개츠비가 데이지를 기다리는 부분 같았다. 개츠비는 데이지가 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개츠비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데이지를 기다리고 있다.
모순이 가져오는 극렬한 통감에 대해서 다자키도 느끼고 있었다. 전화를 받으면 사라가 할 말을 다자키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다자키는 그것이 두렵고 무서웠다. 정말 얼마나 무서웠을까. 시로와 구로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사라를 만났지만 사라에게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는 다자키 자신은 몸이 떨렸고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다자키는 구로의 말처럼 색채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다자키는 어쩌면 많은 색채를 지니고 있었다. 그 색채가 색 배합이 제대로 이루어있지 않고 있었던 아주 여린 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다자키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절대로 놓칠 수 없는 소중한 사람에게 다가가려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