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밀리 어페어


샤워장으로 들어가 수염을 깎았다. 저것도 차츰 어머니를 닮아 가는군. 하고 나는 생각했다.

여자란 마치 연어와 같다. 뭐니 뭐니 해도 다들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마는 것이다. - 패밀리 어페어 중


하루키의 단편 ‘패밀리 어페어’는 어쩌면 하루키의 유일하게 기분 좋은 가족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하루키의 소설에는 가족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등장해도 그리 해피홈 분위기는 없다. 가족의 종적인 유대관계나 횡적인 인간관계를 나타낼 뿐이다. 그러나 이 소설 ‘패밀리 어페어’에서는 오빠와 여동생의 애증 관계를 다룬다. 이 소설은 읽고 있으면 입꼬리가 나도 모르게 위로 슬쩍 올라간다.


하루키의 소설인데 하루키의 소설 같지 않으면서 하루키의 소설이다. 그러니까 처음 보는 과자를 한 봉지 샀는데 먹어보니 맛있지는 않지만 맛이 없지도 않아서 이게 뭐지? 하다 보니 다 먹어버리는 것과 비슷하다. 오묘하지만 맛있다는 말이다.

 

이 소설은 오빠와 여동생의 이야기다. 성인이 되어버린 여동생과 오빠 사이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실제 오빠와 여동생 사이라면 읽으면서 맞아, 그래, 하게 된다. 하루키는 이 소설의 여동생을 계기로 후의 '노르웨이 숲'에서 세상에 하나뿐인 미도리를 그릴 수 있었다고 했다.


오빠 혼자 살고 있는 집에 여동생이 도쿄에 있는 대학에 진학을 하면서 같이 살게 되는 이야기다. 그저 어리게만 보였던 동생이 어느새 연애를 해서 약혼할 남자를 데리고 오고, 주인공은 썩 내키지 않는다.


동생과는 정반대의 성격으로 사사건건 부딪혀서 안 보였으면 하지만 또 막상 결혼을 생각해서 남자를 데리고 온다고 하니 상대 저 녀석이 내심 밉다. 게다가 재미라고는 눈을 씻고 뜨고 찾아봐도 하나도 없는 녀석이다.


동생은 나의 편협한 사고방식을 걸고넘어지고 나는 그것이 자유 함이라 말하고 싶다. 똑 부러지고 살림 잘하고 상냥하고 나긋한 여동생은 나와는 맞지 않지만 내심 그 녀석과는 잘 맞는다는 게 못마땅하다. 하지만 그 녀석은 여동생을 아끼며 사랑해 줄 거라는 걸 안다.


나는 딱 한 번 여동생이 눈물을 흘릴 때 손을 두 시간 정도 잡아준 일을 기억한다. 어린이로만 알았던 여동생의 손은 생각보다 조금 컸고 부드럽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속으로 두 사람의 행복을 빌어준다. 이런 이야기다.


그러면서 하루키씩 유머가 가득하다. 휴지는 좀 제대로 처리하라느니, 위 사진 속  책에 있는 농담이 가득하다. 늘 내 곁에 작은 아이로 존재했던 동생이 어느새 결혼 나이가 되어 버려 떠나가는 것을 바라보는 마음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잘 썼다는 게 흥미롭고 신기하다.


서울로 대학교를 간 나의 동생도 졸업 후 어느 날 남자를 데리고 와서 결혼할 거라고 했다. 이미 그때 임신 5개월이었다. 동생은 기자였는데 카메라맨과 연인사이가 되었다. 조카가 태어나고 밤낮 가리지 않고 취재하러 다니던 모든 생활을 청산하더니 조카를 키우는데 신경을 쏟았다. 엄마가 된 것이다.


이 소설을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여동생 애인 이름이 와타나베 노보루다. 하루키의 세계 속 고양이 이름이 와타나베 노보루인 경우도 있다. 태엽 감는 새에 나오는 아내의 오빠 이름도 비슷한 와타야 노보루다. 단편 코끼리의 소멸에 나오는 사육사 이름도 와나타베 노보루다. 정작 와나타베 노보루는 안자이 미즈마루 씨의 본명이니 하루키의 유쾌함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좋은 면만 보고 좋은 것만 생각하도록 하는 거야. 그렇게 하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쁜 일이 생기면 그때 다시 생각하면 되는 거야. - 패밀리 어페어 중



The Pozo Seco Singers https://youtu.be/0QvyoULGAnY?si=_EZ8gqUTTsDoXGLk


이 곡은 하루키가 무라카미라디오 19회에서 첫 곡으로 들려주는 곡이다. 

라이처스 부라더스의 노래인데 포조 세코 싱걸즈가 부르는 버전이다. 

이 그룹은 60년대 말 경에 그럭저럭 활동한 포크 그룹으로 이 노래는 무척 좋다며 

오리지널 레코드로 들려준다. 

이 노래는 탑건에서 톰 크루저가 부르니 한 번 보라고 하루키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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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키의 여러 에세이 중 80년대 미국을 이야기는 에세이 ‘더 스크랩’은 소확행 에세이와는 다른 재미가 가득하다.


    책의 내용 중에 ‘존과 메리’라는 챕터에는 하루키가 여행지에서 'JON&MEARY'라는 글씨가 인쇄된  티셔츠를 입고 있는 사람을 보고 생각을 한다.  하루키는 저 문구는  'JOHN&MARY'를 쓴 것일 텐데, 하며 이름이 JON이나 MEARY인 사람이 없을 텐데 음, 하며 저런 이름으로 인쇄를 하다니 어지간하군. 하며 여행지에서 돌아와서 집 근처를 걷다가 'JIMY&EMIRY'라는 티셔츠를 입은 아주머니와 스쳐 지나가면서 '지미 앤 에마이어리' 라니, 'JIMMY&EMILY' 일 거야. 참 어지간하군. 이런 식으로 셔츠를 찍어 내다니. 하루키 본인도 당황스럽지만 일본을 여행하는 현지인이 본다면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하루키는 말하고 있다.


    하루키의 이런 활자에 대한 집요함을 읽으며 큭큭 하다가 우리나라는? 같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도 식당이나 기차역, 터미널에 알 수 없는 영어문구가 많았다. 예전에 정부에서 한창 한식세계화를 알릴 때 추신수가 접시를 한 손에 들고 한 손으로는 젓가락으로 불고기 한 접을 집어서 들어 보이는 사진이 있고 그 옆에 영어로


    Hi. l'm choo shin-soo.

    l'm an outfielder for the texas rangers.

    spring's here and i'm ready to play!

    and do you know what got me through training? bulgogi.

    try some at your favorite korean restaurant.

    it's delicious!

    뭐 불고기를 홍보하는 내용이다. 내가 왜 이 고된 훈련을 받느냐 바로 불고기다. 한국 식당으로 와서 불고기를 먹어라. 맛있다. 뭐 이런 내용이다. 그런데 이 광고를 본 미국 국립공영라디오의 시니어 에디터 루이스 클레멘스가 여러 측면에서 이해하기 어려웠다며 쓴소리를 했다.


    그는 특정한 식품회사가 아닌 한국 음식인 불고기 자체를 홍보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비슷한 예를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예를 들자면 미국 팝스타,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영국 신문에 햄버거의 기막힌 맛을 선전하는 것과 같을 것, 이라며, 버거킹이나 맥도널드, 웬디스도 아닌 그냥 햄버거 말이다, 라며 광고의 의도가 불명확하다고 지적했다.


    요컨대 이탈리아의 스파게티를 광고하는 이탈리아 축구 선수나 이탈리아 가수는 없다. 하물며 농심제품 불고기를 광고하는 것도 아니며 한국의 음식을 저렇게 광고를 한다는 것이 나도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니까 음식은 문화다. 문화라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긴 시간과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언론은 광고카피에 쓰인 부자연스러운 영어표현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했다. 추신수 선수가 불고기를 권하는 사진 좌측에 위치한 짧은 네 문장의 광고 카피 중, 봄이 왔고 난 경기할 준비가 됐다!, spring's here and i'm ready to play!라는 표현은 원어민이 쓰지 않는 표현일뿐더러 느낌표 사용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홍보가 아니라 단단히 망신을 당한 것이다. 정부는 우리의 영웅 추신수를 왜 그런 곳에 남발하는지 모르겠다. 그 당시 자신의 광고와 미국 내 언론의 반응을 보고 추신수는 아 하며 한숨을 쉬었을지도 모른다. 동료들은 너 왜 저러고 있어?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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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안녕! 하면서 책장 저 밑 어둠의 구석에서 기어 나왔을 때 정말 기분이 좋았다. 이 에세이는 먼 북소리 다음에 쓴 해외 체류기 정도 된다. 먼 북소리가 인사 정도의 유럽 여행기라면 슬픈 외국어는 본격적인 미국 체류기, 미국 생활기 정도 될 듯하다.


     책갈피로 스벅 페이퍼를 사용했는 모양인데 연도가 2010년인걸 보니 그때쯤에 읽은 것 같다. 이 에세이에는 미국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 보스턴 마라톤이나 미국적 속물근성이나 미국 재즈와 프린스턴 대학에 관한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제일 재미있는 챕터는 하루키가 영화 [숏컷] 시사회를 보고 난 후의 이야기다. 영화 숏컷에 대한 이야기를 주절주절하는데 재미있다. 그 이유는 나도 숏컷을 재미있게 봤기 때문이다. 숏컷은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영화로 이 감독의 영화가 대체로 재미있다.


    영화 숏컷은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들을 엮어서 만든 영화다. 주 골자는 가장 유명한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소설이고 그 외 카버의 여러 소설들이 영화 속에서 에피소드 식으로 나온다. 엔디 맥도웰, 줄리안 무어, 메들린 스토우, 팀 로빈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등 명배우들의 초년병 시절의 파릇파릇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영화를 보면 20대 줄리안 무어의 깨알딱 벗은 모습이 가리는 거 없이 적나라하게 나와서 놀랐다.


    이 영화는 세 시간이 넘는다. 그런데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을 좋아하고 알트만의 영화를 좋아하면 하루키의 말대로 세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하루키는 시사회에서 숏컷을 봤는데 알트만이 직접 나와서 세 시간이 넘으니까 각오해라,라고 웃으며 말했다고. 밑의 사진에 있다.  


    이 영화는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소설 몇 편을 모자이크 식으로 구성해서 만든 것인데, 상당히 변형되어서 대체 몇 편이나 되는 카버의 단편이 삽입되었는지 쉽사리 알 수 없었다. 손가락을 꼽아 가며 보았는데,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따져 보니까, 전부 아홉 개였다.라고 하루키가 말했는데 이때에는 아직 영화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지 못했을 때였을 것이다. 시사회고 그러니까.


    그런데 정확히 숏컷은 카버의 소설 9편을 엮어서 만들었다. 하루키 사마 스고이네. 까도 까도 끝이 없는 하루키 이야기.

      

    에세이 속에는 알트만 감독과 레이먼드 카버의 티키타카도 있어서 재미있다. 레이먼드 카버는 '작가란 무엇인가'에서 그 큰 키의 몸을 굽혀 비엠다블유 차 안에서 쪼그려 글을 쓰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레이먼드 카버는 모두가 알겠지만 시를 쓰고 싶어서 단편 소설로 기초를 다졌다. 비엠다블유 차 안에서 몸을 구겨서 글을 쓰는 이유는 글을 써서 처음으로 산 비엠다블유차라서 굉장히 기뻐했다. 레이먼드 카버의 스승은 존 가드너로 알고 있는데 그의 소설 '그렌델'은 아주 좋은 소설이었다.

    이렇게 젊은 하루키의 얼굴이


    시사회를 본 후기 같은 에세이




    메들린 스토우와 팀 로빈슨


    넌 나중에 아이언 맨이 된다


    어떤 블로그에서 퍼 왔는데



    예고편 https://youtu.be/ePyhGz9_RCI?si=d3y1HGWrosZko8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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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자키 이야기는 3인칭이다. 하루키는 90년대 초반이전의 소설은 1인칭으로 감정의 노출을 과감하고 여과 없이 드러냈다. 다자키 이야기는 3인칭인데 그만 하루키가 자신이 개입이 되어 버린 부분들이 꽤 있다. 초반에 인물에 대한 묘사가 너무 좋아서 머릿속에 네 명의 다자키 친구들의 모습이 탁탁 탁탁 형상이 된다.


    그런데 다자키는 썩 박식하지도 않고 문화적인 교양이 있는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처음 핀란드에 가서 지나치는 나무를 보고 자작나무, 가문비나무, 단풍나무 따위를 다 알아버리고 소나무는 적송이라고 하는 것도 알아버린다.


    직장상사에게 핀란드로 간다고 말했을 때 핀란드에 뭐가 있지?라는 질문을 받고 바로, 시벨리우스, 아키 카오리즈마키, 노키아, 마리메코, 무민이라고 대답을 한다. 핀란드에 대해서 알아보고 대답했을 수도 있지만 다자키는 구글을 통해서 세세한 것을 검색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처음 사라가 다자키에게 친구들의 이름을 물어보는 장면을 상상해 보면 알 수 있다. 시벨리우스는 클래식, 아키는 영화감독, 노키아는 핸드폰, 마리메코는 유명한 핀란드 침구브랜드이고 무민은 만화캐릭터이다. 이 정도면 핀란드 한 나라를 다 안다는 것인데 하루키가 그만 1인칭으로 개입을 해버렸다.


    다자키 이야기는 시간과 공간, 숫자가 크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 현재에서 실체를 두고 과거로 가서 이야기를 하는 방식은 하루키가 늘 하는 방식이지만 우리는 어느새 하루키의 양을 둘러싼 모험이라든가 일각수의 꿈, 어둠의 저편, 해변의 카프카에서 이미 녹을 대로 녹아서 캐러멜이 되어있다.


    5명으로 완전한 공동체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다자키라는 자신이 추출되는 방식으로 인해 완전한 공동체가 와해가 된다. 완전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5인 체제라는 것이 먼저 있을 수 없는 환상 같은 것이다. 공동체에서 완전함을 이룰 수는 없지만 그들은 이루고 있었고 그것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암묵적인 평행을 이루는 관계의 지속이라는(이성관계가 없는) 것이다.


    이 깨져버린 5인 체제는 16년이 지난 후 핀란드의 구로를 만나러 가서는 다시 5인체제의 완벽한 모습으로 결속이 된다. 그것은 구로와 그녀의 남편, 그리고 두 딸. 그리고 일본에서 온 낯선 남자, 바로 다자키 자신의 모습이다.


    구로를 찾아가는 이야기가 아주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것이 다지키가 좋아하는 역의 모습과도 아주 흡사하다. 다자키가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는 역과 선로의 모습은 마지막에 신주쿠역의 복잡한 모습에 투영을 하고 있다. 그 복잡함이 바로 인생이며 사람이라는 것이다.


    다자키는 하이다를 만나면서 어쩌면 묘한 감정을 지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다자키의 마음속에는 알게 모르게 시로와 구로가 자리를 잡아버려 이미 사귀었던 몇몇의 여자들에게 마음을 두지 않았다. 오로지 사라를 만나서 자신의 마음을 열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 역시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꿈속에 시로와 구로가 나타나서 같이 섹스를 즐긴다. 그리고 하이다에게 정액을 쏟아낸다. 다자키는 어쩌면 자신도 모르는 새에 점점 동성에게 마음이 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정말 자신도 모르는 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속에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그리고 등에 새겨진 그 어떤 것에 의해서 점점.


    구로를 만나서 이제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 말아 달라고 말한다. 시로의 이름도 부르지 말아 달라고. 다자키는 그럼 자신의 이름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때 다자키는 그대로 다자키 쓰쿠루로 남는 게 좋다는 말에서는 조금 벅차올랐는데 그것은 색깔을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은 색채가 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원래부터 색채를 지니고 있지 않았던 다자키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자기만의 방식과 타인과의 타협을 배제하더라도 꿋꿋하게 남아있어 달라는 당부처럼 들렸다. 그 모습은 마치 하루키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았다. 모든 작가나 독자, 그리고 세상이 변해서 처음과 다른 이름으로 불리더라도 하루키 자신은 하루키라는 이름 그대로 영원히 사람들에게 불리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에 다자키는 사라에게 전화를 하고 끊어 버린다. 그리고 울리는 전화는 사라라는 것을 알고 있다. 점점 전화벨이 울릴수록 다자키는 움직이지 않고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이 부분은 마치 개츠비가 데이지를 기다리는 부분 같았다. 개츠비는 데이지가 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개츠비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데이지를 기다리고 있다.


    모순이 가져오는 극렬한 통감에 대해서 다자키도 느끼고 있었다. 전화를 받으면 사라가 할 말을 다자키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다자키는 그것이 두렵고 무서웠다. 정말 얼마나 무서웠을까. 시로와 구로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사라를 만났지만 사라에게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는 다자키 자신은 몸이 떨렸고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다자키는 구로의 말처럼 색채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다자키는 어쩌면 많은 색채를 지니고 있었다. 그 색채가 색 배합이 제대로 이루어있지 않고 있었던 아주 여린 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다자키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절대로 놓칠 수 없는 소중한 사람에게 다가가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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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키 에세이 – 낙지를 부드럽게 하는 방법


    낙지를 가끔 먹다 보니 낙지에 대해 쓴 작가들의 재미있는 글들이 있다. 행복한 세계 술맛 기행의 저자, 니시카와 오사무가 한국에서 낙지를 먹고 그 느낌을 자신의 책에 서술했다.


    [젓가락으로 집었더니 접시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중략) 씹을 때의 촉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쾌하다. 접시 위에서는 짧게 토막이 난 낙지의 다리가 한 마리 긴 애벌레처럼 여전히 꿈틀거린다. 블랙유머 같은 느낌이 든다. 가나자와에서는 그릇 안에서 헤엄치고 있는 투명한 방어를 산 채로 먹어본 적이 있지만 그보다 몇 배는 더 유머를 느끼게 하는 음식이다.]


    미식의 나라 일본에서도 산 낙지는 정말 블랙유머에 해당하는 모양이다. 올드 보이에서 산 낙지를 먹는 오대수의 그 장면은 훗날 콩: 스컬 아일랜드에서 콩, 킹콩이 거대한 문어를 씹어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오대수가 낙지를 뜯었던 그 시퀀스대로 오마주를 했다. 감독은 그 장면뿐 아니라 톰 히들스턴이 무기를 휘두르는 장면도 오대수를 오마주 했다. 초반 섬에서 청년 두 사람이 싸우는 장면은 영화 놈놈놈을 오마주 했고, 등장하는 스콜크롤러의 외형은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감독은 후에 이런 사실을 인터뷰에서 밝혔다.


    다시 산 낙지 이야기로 돌아와서, 하루키도 ‘일상의 여백’에서 하와이 사람들이 낙지를 부드럽게 하는 방법을 말하고 있는데 읽어보면 유머러스하다.


    [집에 갖고 가서 일단 세탁기에 집어넣어 세탁해 버린다. 그리스에서는 잡은 낙지를 콘크리트 바닥에 내동댕이쳐 부드럽게 만들지만 미국의 낙지잡이는 그런 야만스런 짓은 하지 않는다. 시어즈 전자동 세탁기의 헹굼이나 탈수 스위치를 눌러 덜그럭 덜그럭 하고 나서 그것으로 끝난다. 보고 있노라면 낙지가 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들지 않는다. 생각해 봐라. 기분 좋게 잠을 자고 있다가 끌려 나와 아니 이런, 하고 생각하고 있을 동안에 ‘탈수’ 당하면 정말 견딜 수 없는 일이다. 정말 그런 식으로는 죽고 싶지 않다.]


    하루키의 그렇지 않은 척 그런 유머스러운 글을 읽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낙지가 되어 양팔과 두 다리를 쭉 뻗고 탈수기에 들어가는 상상을 하게 된다.


    쓸데없이 문득 든 생각인데, 김신영이 예전에 살을 뺀다며 할머니한테 풀만 먹을 거야,라고 하니 할머니가 야야 코끼리도 풀만 먹는데 몇 톤이데이라고 한 말이 생각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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