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차장님의 몸을 감쌌고 직원들의 몸을 하나씩 감쌌습니다. 본래 있던 어둠이 축축하게 몸을 덮쳐왔다면 이번 어둠은 서서히 그리고 완벽하게 감싼다고 하는 게 제가 느낀 바였습니다. 직원들은 어둠이 자신의 몸을 감싼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들은 몸을 떨며 출구를 찾았지만 이미 출구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질적인 어둠은 나의 몸에 와서 달라붙었습니다. 그 냄새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이 세계에서 맡을 수 없는 압도적인 어둠의 냄새. 곰팡이의 몇 배에 달하는 퀴퀴하고 푸석하고 어두운 냄새. 이질적인 어둠이 우리의 몸을 전부 감싼 후 우리는 몸에서 기가 몽땅 빠져나간 것처럼 전부 자리에 앉아 버렸습니다.” 마동은 숨을 헐떡거렸다. 의사의 눈빛은 천천히 이야기를 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시간이 많이 흐르면 우리를 찾아오리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원 중에 한 명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한 명은 몸을 떨었고 다른 한 명은 시선을 이리저리 분산시키며 제정신이 아닌 모습이었습니다. 차장님이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저 역시 무서워서 상황대처 능력은 현저히 저하되어 있었습니다. 한 시간, 또 한 시간이 흘러도 사람들은 우리를 찾으러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쪼그리고 앉아서 세 시간을 있었습니다. 완벽한 ‘고립’속에 우리들은 갇혀 버리게 된 것입니다. 고립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무게를 더해가고 어둠은 외부와의 단절을 더욱 단호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고립되어 죽어가는 것입니다. 차고 있던 손목시계도 모두 멎어버렸습니다. 어둠은 모든 게 싫었던 겁니다. 인공적인 플래시의 빛도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도 시끄럽게 말하는 인간도 자신의 공간에 침투한 외부세력이 싫었던 것이죠. 몇 시간이 흘렀을까요. 허기가 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둠의 냄새처럼 역시 압도적이라 할 수 있는 허기가 몰려왔습니다. 나만 그런가하고 생각했는데 모두 배를 움켜잡고 공복의 상태를 못 견뎌 했습니다. 허기가 마치 천재지변처럼 몰려왔습니다. 고립 속에 허기는 실로 고통스럽습니다. 그 공간 안에서 현실의 바람이라고는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죠. 이 모든 것이 어둠의 계략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헌데 주방의 어딘가에서 기적적으로 빵 굽는 냄새가 났습니다. 엄청난 허기가 불러들인 감각의 퇴화가 만들어낸 환각이 아닐까. 하지만 모두가 그 빵 냄새를 맡았고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떤 직원이 빵 굽는 냄새가 나는 쪽으로 갔습니다. 저는 그를 제제했지만 모두가 그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땀을 흘리며, 몸을 떨며 말이죠. 어두운 실내의 남향 쪽 싱크대 선반 안에 거짓말처럼 잘 구워진 빵이 있었습니다. 손보다 조금 더 큰 방이 우리 사람 수대로 접시위에 연기를 피워대며 놓여 있었죠. 전 그들을 말렸습니다. 말려야 했어요. 이건 어둠이 한 짓이다. 안 된다! 왜 그런지 빵을 집어 먹는다면 내부의 무엇인가가 망가져 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이 일었습니다. 이미 우리는 어둠에게 고립된 상태였고 이질적인 어둠은 이 방의 어딘가에서 우리의 모습을 낱낱이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어둠의 냄새가 강하게 나는 실내 안에서 빵 냄새라는 것은 허기진 배를 더욱 쥐어짜게 했습니다. 직원이 이미 빵이 담긴 접시를 집어 들었습니다. 빵은 먹어치워야 한다는 관념처럼 빵 냄새를 실내에 가득 풍겼습니다. 빵에서 올라오는 냄새는 나를 먹어라 빨리,라고 말했습니다. 도대체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요. 아마도 다섯 시간은 족히 흐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직원들은 빵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습니다. 저 역시 너무 허기가 져 빵을 먹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빵 하나 먹는다고 나아지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먹지 않겠다고 했더니 그들은 나의 빵을 나눠서 모두 먹어치웠습니다. 사실 그들은 빵 하나를 두고 싸워가면서 먹었어요. 똑같이 나눠 먹을 수 있는 정신이 아니었지만…….” 마동은 그때를 생각했다. 고립된 배고픔과 식량은 사람을 무섭게 만들었다. 마동은 숨을 크게 쉬었다. 의사는 성급하지 않게 마동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의사는 자세를 바꾸어 앉아서 마동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원장실과 공기도 마동의 이야기를 하다 중간에 멈추면 무거워졌다. 실내의 공기도 마동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가만히 듣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흉가 안에서 플래시 빛이라는 건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잘 설명을 못하겠지만, 그러니까 플래시의 빛은 일정하게 빛의 미립자가 산란하며 5미터 정도를 뻗어 나가는 게 맞습니다. 흉가 안으로 들어와서 복도에서 플래시 빛을 비추었을 때 복도 저 먼 곳까지 플래시 빛은 자신의 역할을 다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서서히 걸어가면서 어느 특정한 부분(벽면이나 구석진 부분)을 비추면 플래시의 빛이 그곳에 닿지 않았습니다. 그 특정한 부분은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2미터나 3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았는데 플래시의 빛이 닿지 않는 것이었죠. 플래시의 빛은 마치 건전지가 다 되어 점점 얇아지면서 일 미터도 비추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도를 비추면 다시 복도의 먼 곳까지 밝게 비치는 거죠. 어둠은 자신에게 비치는 플래시의 빛을 먹어 버렸습니다. 어둠은 우리에게 주의나 경고를 보내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분명하게 경고를 한 것입니다. 조원들은 처음에 플래시를 두드리고 여분으로 들고 간 건전지를 갈아 끼워 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우리 조는 일층에서 회수할 수 있는 우리조의 깃발을 모두 회수 한 다음 이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이층에 올라서니 또 한 꺼풀의 축축한 어둠이 몸을 뒤덮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플래시 빛은 더욱 옅어지고 작아졌습니다. 한 직원이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떠는 것이었어요. 긴장이 극도에 달하니 몸이 반응을 한 것입니다. 어둠이 직원의 체온을 심하게 떨어트리며 의식을 갉아 먹었어요. 회사 내에서 체격이 제일 좋고 운동을 잘하기로 소문이 난 직원입니다. 저회 회사에 입사하지 않았다면 형사가 되려고 했다는 직원이 몸을 떨기 시작했습니다. 이가 서로 부딪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이층복도에 울려 퍼질 정도였습니다. 나는 안 되겠다 싶어서 차장님에게 말해서 그만 돌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하고 말했습니다. 물론 저도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습니다. 산 밑에 있는 본부에 전화를 걸려고 했지만 우리가 들고 있는 모든 휴대전화기에 수신이 된다는 표시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몸을 떨던 직원이 복도의 천장을 무심코 플래시로 비쳤는데 음…….” 마동은 한참동안 다음에 올 말을 찾았다. 어떠한 단어를 집어넣어야 말이 이어질까 한참을 생각했다.

 

“음…… 공포로 인해서 죽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은 태어나는 방법은 정해져있지만 죽는 방식에서는 실로 다양한 방법이 있고 만약 여기서 죽게 된다면 우리는 그 어느 곳에서도 죽는 방법이 알려지지 않았던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냐고 한다면 직원이 무심코 플래시를 비쳤던 천장의 어둠 속에서 또 다른 어둠이 말이 새끼를 낳듯 부풀어 나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내 플래시의 빛을 먹어버렸습니다. 그 모습을 우리는 모두 보았고 몸을 떨던 직원이 그만 어딘가를 향해 막무가내로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말릴 겨를도 없었어요. 우리는 그 직원을 불렀습니다.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판단은 엉망진창으로 흩어지기 마련입니다. 달려가던 직원은 올라왔던 계단으로 가지 않고 반대쪽으로 뛰어가더니 복도에 붙어있던 문을 열려고 했습니다. 문은 전부 잠겨있거나 못질이 되어 있어서 열리지 않았는데 직원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있는 힘을 다해 문을 열려고 했습니다. 그 모습마저 흉물스럽고 무서웠습니다. 우리가 옆에서 말렸지만 이미 그 직원은 본인이 뿜어 낼 수 있는 자신의 힘의 몇 배를 발산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의 문이 열리고 그 직원이 블랙홀을 빠져나가듯 문 안으로 들어갔고 우리들 역시 빨려 들어갔습니다. 방은 요양소에서 식당으로 있던 자리인지 싱크대나 개수대 같은 것들이 죽 일렬로 붙어 있었습니다. 직원은 건물을 빠져나가려고 방의 이곳저곳을 개처럼 돌아 다녔습니다. 저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둠속에서 떨어져 나온 또 다른 어둠의 무리가 천장을 타고 슥 슥 옮겨 다니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어둠은 끈적끈적하고 징그러운 촉수를 지니고 있었어요. 촉수의 끝을 세우고 우리들에게 달려들어 체내의 수액을 다 빨아먹고 우리들은 미라 같은 형상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니 저 역시 공포에 몸이 심하게 떨렸습니다. 밑의 직원들도 말 할 것 없거니와 차장님의 얼굴은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혈압이 많이 오른 모양이었죠. 그런데 저의 착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천장에 달라붙어 자글자글 거리던 어둠이 벽을 타고 스믈스믈 내려오는 겁니다. 다른 직원들은 아마도 경황이 없어서 못 본 듯했지만 전 그 모습을 분명히 봤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과 확신이 성립하지 않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어둠은 천장에서 벽을 타고 이동을 했습니다. 흉가의 주방 실내의 어둠이 이미 우리의 온몸을 뒤덮고 있었음에도 기분 나쁘고 축축하고 이질적인 어둠은 서서히 벽을 타고 내려와서 우리에게 다가오려 했습니다. 아니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어둠이 상당히 끈적끈적했고 플래시의 빛이 제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는데도 이질적인 어둠이 움직이는 모습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무시무시한 어둠이 몸을 떨고 있던 직원의 몸을 감쌌고 옆으로 옮겨가서 다른 직원의 몸도 감쌌습니다. 사신처럼 내려오는 모습에서 나는 죽음과 마주한 느낌이 어떤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 짧은 순간 이런 흉가를 이용해서 돈을 벌려고 하는 이곳 지역 사람들이 미웠고 이런 이벤트를 주최한 회사도 미웠고 이런 상황에서 고작 미운 것들밖에 생각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가장 미웠습니다. 죽는 순간 미워하는 것들에 대해서 먼저 떠오르는 내 자신이 정말 미웠습니다.” 마동은 의자의 등받이에서 등을 뗀 후 자세를 잡고 다시 기댔다. 여자에게 호감을 불러들이는 얼굴을 한 의사는 침착하게 다음 말을 기다려 주었다.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예전에 회사에서 세미나를 간 적이 있었습니다. 꽤 큰 세미나여서 저희 회사에 적을 두고 있던 인도의 기업에서도 참석하고 저희 회사에서도 오너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대거 참석했습니다. 1박2일 코스인데 낮과 저녁에 모든 일정이 끝이 나고 밤이 깊었을 때 단합을 위해 흉가에서 조를 짜서 담력을 키우는 레크리에이션을 했습니다. 미니버스를 타고 약 10분정도 산속의 흉가가 있는 지역까지 가는 겁니다. 모두 처음 겪는 일이라 소풍을 가는 어린이처럼 들떠있었죠. 회사에서는 대략 30명이 세미나에 참석했고 한 조당 3명에서 5명 정도의 인원으로 나누어서 흉가에서 담력시험을 했습니다. 회사는 덩치가 커 버려서 이렇게 어딘가로 나와서 크게 단합대회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의사는 진지한 표정이었지만 분홍간호사와는 또 다른 의식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동은 손목시계를 보았다. 의사는 시간은 충분하니 계속 해보라고 했다. 역시 이상한 병원이다.라고 생각했을 때 의사는 대기실에 있는 환자분들은 약만 타면 된다고 했다. 정말 이상한 병원의 이상한 의사다.

 

“우리 조는 두 번째로 자정에 투입되었습니다. 저를 비롯해서 5명이 있었습니다. 전부 남자였고 저보다 나이가 위인 차장님이 한 분, 나머지는 저보다 밑의 직원이었죠. 모두 대학교를 졸업하고 면접과 테스트를 거쳐 입사한 인재들이었죠. 회사에서 일을 하려면 판단력이나 상황대처, 인성의 기분이 되어있고 무엇보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을 채용합니다. 그들은 체구도 건장하여 저는 그 속에 껴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조원들은 타 조에 비해서 여자가 없다며 투덜거렸죠. 아무래도 담력 시험을 가는데 여직원이 같이 있으면 이런저런 해프닝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후에 추억으로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말이죠. 자정에 투입된 우리 조는 흉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흉가는 오래전의 요양소건물이라서 높지는 않았지만 넓고 컸습니다. 어째서 이렇게 큰 건물이 산속에 방치된 채로 흉물스럽게 변해 가는지도 모르겠지만 이곳 주민들은 이 흉가로 몰려들어 담력시험을 거치는 업체들에게 일종의 입장료 같은 것을 받았으며 그 돈이 꽤 많은 수입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죠. 그래서 아직 건물의 처리에 관해서는 쉬쉬 하고 있던 모양입니다. 건물이란 사람의 손이 타지 않으면 퀴퀴하고 흉물스럽게 변합니다. 세상의 수많은 물품은 인간의 손이 닿으면 낡고 못쓰게 되는데 건물만은 예외입니다.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요양소건물은 말 그대로 흉물이었습니다. 흉측한 냄새가 압도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냄새를 맡지 못했어요. 어쨌든 우리들은 자정의 시간에 맞추어 흉가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산속의 밤은 지금처럼 여름이라도 너무 어둡습니다. 그런데 산 속의 어둠보다 요양소건물 속의 어둠이 더 짙고 깜깜했어요. 짙은 어둠이 등을 덮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동은 잠시 틈을 두었다. 여자들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얼굴을 가진 의사도 흥미롭게 듣고 있었다.

 

“건물은 4층까지 있었는데 엘리베이터는 없었습니다. 복도는 무척 길었죠. 150미터? 300미터? 잘 모르겠어요. 아무튼 그 정도 되는 것 같았습니다. 꽤 길었습니다. 기억자형의 큰 요양소건물인데 입구에 들어가면 우리들은 각각 지정해준 곳에서 우리조 번호가 쓰인 깃발을 찾아서 다시 돌아오면 됩니다. 재미만 생각하고 들어갔던 우리 조는 그 공포스러운 어둠의 침묵에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일층을 따라 복도를 걸어가는데 깨진 창문 밖에서 스산한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분위기에 겁이 났고 바람이 불어오면 그 소리가 귀곡성처럼 들렸죠. 전 어린 시절 동화책에서나 나올법한 산골에서 자라서 산속의 어둠은 대체로 무서워하지 않는 편입니다. 전혀 무섭지 않다고 느끼는 편인데 그때의 흉가 속에서 본 어둠은 질이 다른 어둠이었습니다. 한 조에 플래시 두 개가 지급이 되었는데 차장님이 하나, 직원 중에 한 명이 하나를 들었습니다. 어쩌면 플래시를 켜지 않고 그냥 어둠에 녹아든 채 이동을 해야 하는 게 맞았는지도 모릅니다. 뭐랄까 흉가 속에 있는 어둠은, 우리의 등을 엎어 버리는 이불 같은 어둠이었고 이불은 한 번 덮이면 다시는 걷히지 않을 종류의 무서움이었습니다. 어둠은 플래시의 빛 같은 불순물이 섞인 빛을 싫어했습니다.”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내가 입고 있는 옷처럼 친숙한 향이다.

 

하지만 복도를 따라 걸어 들어오면서 맡았던 간호사의 체취는 아니었다. 향수의 향도 아니었고 비누에서 나는 그런 향도 아니었다. 샴푸의 향도 아니고 옷에서 나는 섬유제의 냄새도 아니었다.

 

무엇일까. 낯익은 향이었다.

 

마동은 분홍간호사에게 어찌된 일인지 물어보려고 하다가 그만 두었다. 분홍간호사는 마동을 원장실로 안내하고 문을 닫고 나갔다. 마동은 원장을 마주하고 앉았다. 병원의 원장실에서만 나는 특유의 냄새가 있었다. 분홍간호사가 미소를 머금고 인사를 하고 원장실을 나가버리니 방안의 공기가 갑자기 냉정하게 돌변했다. 원장은 마동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 눈빛으로 마동을 한참 쳐다보았다.

 

“일단 정확한건 수일 내에 결과가 나와 봐야 알 수 있는 거지만.”

 

병원 안에서는 원장의 의식도 분홍간호사의 의식도 들리지 않았다. 원장은 마동의 피가 일반 사람들의 피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성분이며 혈류량이며 혈류속도 같은 것이 타인과는 다르군. 하고 의사의 눈은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원장과 마동은 검사에서 벗어난 일반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주식과 건물의 동향, 유행하는 영화와 슈트에 관한 이야기, 날시, 슈퍼 카의 가격과 크루즈에 승선할 수 있는 인원, 바퀴벌레의 종류와 지하 몇 미터까지 인간의 공간을 건설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마동과 의사 두 사람의 어깨는 한층 풀어졌으며 의자의 등받이에 편하게 기대게 되었다. 냉정한 방안의 공기가 조금은 안온하게 바뀌었다. 마동은 의사에게 분홍간호사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묻지 않았다.

 

“고마동 씨, 혹시 제일 잘하는 게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의사는 마동에게 시선을 고정 한 채 진지하게 물었다. 마동은 자신이 제일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고하게 알고 있어서 스스럼없이 대답을 했다.

 

“제가 딱히 내세워서 잘 하는 것은 없습니다. 잘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배고픔을 남들보다 잘 견딜 줄 안다는 겁니다. 기억은 흐릿하지만 아주 어린 시절부터 배고픈 것을 잘 참았습니다.”

 

의사는 마동의 터무니없을 법한 말도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인간이 배고픔을 다른 동물들에 비해서 잘 참고 있는 종족이지만 원초적인 생리적 욕구를 참기란 쉬운 일은 아니죠. 1835년 11월 캐나다의 바다에서 좌초한 배에서 18명이 구조를 기다리다 결국 한 명을 희생시켜 그 고기로 17명이 구조될 때가지 살아남습니다. 죽어서 고기를 내 준 사람은 15살의 수습 선원이었죠. 그리고 3일 후에 지나가던 다른 어선에 의해 구조가 됩니다. 3일만 더 버텼다면 어땠을까요. 그랬다면 15살의 어린 선원의 목숨은 살아남았겠죠.” 의사에 말에 마동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결이 되고 질서가 유지되는 이유가 자신을 희생하기 때문에 조직이라는 단체가 성립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단지 그 속에서 조직의 음모가 개임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고작 15살에 희생당한 선원의 실화에도 계략이 있었던 것이죠.”

 

“동물은 눈앞의 음식을 참아내는 능력이 없죠. 그래서 단결하기가 힘이 드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배고픔을 잘 참아 낸다는 것은 절제가 바탕이 되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마동은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오너 앞에서 했던 생각이었다. 마동이 한 생각을 지금 눈앞의 의사는 입으로 말하고 있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나 오너나 의사나 분홍간호사나 어딘가 전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대체로 이들이 내뱉는 말이 고리처럼 이어져 있었다. 의사가 말을 끝냈을 때 마동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했다.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검사실 안은 처음 보는 기계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내부는 보랏빛이 감도는 아담한 공간의 실내였고 한쪽 벽면은 마스모토 레이지의 야마토 내부를 보는 듯했다. 중간에 침대가 있었는데 침대만이 병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동에게 침대 위에 누우라고 한 뒤 분홍간호사는 야마토 내부처럼 보이는 벽면에 서서 여러 가지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침대위에 누우니 방안을 감도는 기분 좋은 보랏빛이 마동의 눈동자에 들어왔다.

 

몇 시쯤 되었을까.

 

시간을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퇴행하는 것 같았다. 시간의 흐름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잠이 쏟아질 것 같았다.

 

“오늘 무슨 검사를 합니까?” 마동은 분홍간호사의 뒷모습을 보면서 말했다. 뒷모습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풍만한 제복 입은 여자의 모습이었다. 영화 시작 후 10분만에 사라지는.

 

“일반적인 검사를 할 겁니다. 피검사, 심전도검사, 내시경등 말이에요.” 분홍간호사는 뒤를 돌아보며 마동을 향해 또 한 번 미소를 지었다.

 

“오늘 아무것도 먹지 않으셨죠?”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마동은 병원에 오기 전에 는개에게 받은 자양강장제를 한 병 마셨지만 함구했다. 마동의 말을 듣고 분홍간호사는 마동을 향해 또 미소를 지었다. 분홍간호사의 미소를 보는 순간 그간 밀려있던 졸음이 전조도 없이 들이닥쳤다. 분홍간호사가 벽면에서 이것저것 무엇인가 버튼을 누를 때 체내로 수면제가 투여되었나? 하는 생각을 하는 사이에 졸음은 몸과 머리를 지배해 버렸다. 마동은 정신을 차리려고 고개를 침대의 베개에서 떨어트려 머리를 흔들었지만 졸음은 그야말로 폭력적이었다. 분홍간호사는 마동의 머리를 아기처럼 베개위에 뉘이고 분홍간호사는 분홍의 간호사 복을 벗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며 마동은 잠이 들어 버렸다.

 

분홍 간호사가 옷을 벗는다. 옷을 벗는……. 옷을…….

 

눈을 뜨니 검사실 안에는 마동 혼자뿐이었다. 일어나서 침대위에 걸터앉았다. 시간을 보니 한 시간이나 잠이 들어 있었다. 아주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오랜만에 심해 같은 잠을 자고 일어나서인지 몸이 가벼웠다. 오른팔에 약간의 통증이 있는걸 보니 피검사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 검사가 이루어졌나 보다. 내시경도 잠이든 사이에 검사가 끝난 모양이었다. 목에 이물감이 느껴졌다. 검사실을 감도는 보랏빛도 사라졌고 벽면을 가득 메웠던 컴퓨터장비들도 보이지 않았다.

 

바지의 앞섶으로 눈길이 갔다. 페니스에 동통이 있었다. 하지만 바지는 벗겨진 흔적이 없었다. 입고 있는 두꺼운 블루진은 지퍼형식이 아니라 단추가 달린 청바지라 벗겼다가 다시 입혔으면 미묘하지만 알 수 있었다. 벗겼다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생각이 나지 않는 섹스는 어디에도 쓸모없는 나사와 같다.

 

검사를 위해서 분홍간호사가 옷을 벗은 것일까. 그럴 리는 없다. 그렇다면 내가 잘못 본 것인가. 그럴 리도 없다.

 

마동은 침대위에 걸터앉은 채 머리가 하얘진다는 걸 느끼고 있었고 순백색의 머릿속은 어떤 색의 크레파스로 칠을 해도 칠해지지 않았다. 유리에 색칠하는 것처럼 색이 겉돌고 있었다. 질척한 하얀색이 머릿속 세상을 전부 차지하고 있었다. 볼펜의 끝으로 그 하얀 색에 선을 그으면 말랑말랑 젤리처럼 다시 하얀색으로 메워졌다. 순백색의 공간은 여지를 두지 않았다.

 

그때, 분홍간호사가 문을 열고 미소를 띠며 들어왔고 의사가 기다린다면서 나오기를 권했다. 마동은 분홍간호사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봤지만 카운터에서 보이던 모습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았다. 분홍간호사는 마동이 문밖으로 나올 때까지 문을 열고 손잡이를 잡은 채 미소를 띠고 있었다. 마동은 분홍간호사를 지나치면서 그녀의 냄새를 맡았다.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