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인류에게 남긴 업적을 보자면 에일리언이 그렇고, 이티가 있고, 뱀파이어가 그렇다. 공룡도 있지만 앞의 것들은 완전히 영화적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인류의 업적이다. 뱀파이어는 이전부터 내려오는 민담 같은 이야기 속 존재이지만. 그래서 뱀파이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뱀파이어는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이 리메이크되었고 여러 버전이 있고, 드라마로도 시리즈가 계속 나왔다. 뱀파이어는 인류가 탄생하지 않았다면 존재하지 않을 종족이다. 인간의 피가 없으면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뱀파이어는 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뱀파이어가 영화를 통해 나오게 되면 전 세계의 사람들은 주머니의 돈을 꺼내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극장으로 달려가서 숨을 죽이며 뱀파이어가 나오기를 두려워하면서도 기다렸다. 사람들이 뱀파이어를 기다린 이유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뱀파이어는 아름답고 잘생겼고 예쁘고 늘씬하고 탄탄한 신체와 미모 그리고 젊음을 가진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이 세대를 거쳐 이어지면서 어떤 인간들은 뱀파이어를 추종하기도 했다. 인간으로 삶에 허덕이며 처절하게 내몰리며 사느니 뱀파이어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뱀파이어가 되면 하얀 피부에 가장 아름다운 시기의 모습을 유지하며 불멸한다. 아름다운 몸과 얼굴로 이성에게 접근이 용이하며 인간의 최대 희열인 성적인 욕구 역시 서로 충족이 된다. 그러니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뱀파이어를 피하기보다 뱀파이어가 되고 싶어 했다. 뱀파이어 입장에서는 기분이 좋다기보다 인간이 뱀파이어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게 받아들여졌다. 뱀파이어가 주춤하는 사이 그 공간을 어느 날 좀비가 파고들어 왔다.


인류를 위협하는 좀비. 영화 28주 후와 28일 후에서 좀비들은 인간에게 달려들었다. 윌드 워 Z에서 좀비들은 격렬하며 빠르게 뭉쳐서 인간을 덮쳤다. 뱀파이어와는 전혀 달랐다. 썩어 문드러진 얼굴과 신체, 생각이 없고 뇌가 없어진 듯한 움직임으로 낮밤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인간을 물어뜯는다. 좀비들은 좁은 공간에서도 격렬하다. 부산행에서도 좀비들은 자신의 신체가 떨어져 나간다는 느낌, 생각, 의식이 없어서 마구 뭉쳐서 달려든다. 이렇게 어느 날 나타난 좀비는 인간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좀비가 세상에 도래하기 전에는 뱀파이어가 있었지만 뱀파이어는 이제, 지금 현재 좀비에게 영화적 업적을 다 물려주고 말았다. 명분도 없어졌고, 나와 봐야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는 존재가 되었다. 도대체 왜 좀비에게 그 자리를 내주었을까.


좀비는 뇌가 없다. 좀비가 가지고 있는 것은 오직 의지뿐이다. 하나의 목표가 생기면 의지만 가지고 달려든다. 먹이도, 잠도, 옷도 필요 없다. 멋지고 화려하고 예쁘게 옷을 입은 뱀파이어와는 너무 다르다. 좀비는 지저분하고 썩어 문드러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든다. 좀비가 되느니 사람들은 죽는 게 낫다고 생각을 했다. 뱀파이어가 사라진 이유 중에는 현재 인간의 피가 예전만큼 신선하지 않다. 산소포화도가 예전 같지 않아 진 것이다. 술과 담배, 마약 종류 - 각종 합성 약물로 인해 사람들의 피가 깨끗하지 않고 더러워진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 세계를 점령하던 뱀파이어들이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지더니 좀비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뱀파이어는 인간이 사육이 불가능하지만 좀비는 사육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 결정을 내린 곳이 군부[軍部]였다. 좀비를 군인으로 키운다면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게 된다. 좀비는 먹지도 않고, 잠도 자지 않고, 옷도 필요 없다. 그 말은 군인 1명을 1년 동안 훈련시키는데 들어가는 식비, 군복, 막사 비용을 완전히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맥스 브룩스의 '세계 대전 Z'를 보면 좀비의 앞에 구멍을 파고 그 안에 쥐를 넣으니 좀비는 그 쥐를 잡기 위해 구덩이에 머리를 박고 3일 동안 으르렁 거렸다고 나와 있다.


이 책은 좀비가 전 세계를 휩쓸고 간(내용을 담은 영화가 월드 워 Z) 후 몇 년이 지난 각 나라의 사정에 대해서 인터뷰 형식을 취한 일종의 보고서 같은 소설책이다. 이 책이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좀비라는 카테고리에 핵을 집어넣어도 세계 각 나라의 대체 방법에 대해서 알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소름 돋는 건 지금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고 간 현재 각 나라의 바이러스 대처법에 대해서 정치적으로 외교적으로 보이는 형태가 오래전에 나온 저 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로 이제 영화 역사에서 좀비가 언제까지일지는 모르나 업적을 계속 쌓아 갈 것이다. 좀비는 괴물이며 이는 사회의 여러 곳에 적용이 된다. 거대한 은행을 좀비에 비유하기도 하며, 조이스 캐럴 오츠의 좀비를 읽어 보면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속 현대사회에 좀비가 어떤 형태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끔찍하며 소름이 돋는다. 사람을 죽이는데 이유 없이 그저 죽이는 살인자들도 좀비에 속한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엄청난 일이며 대단한 심적 부담이 있으며 피가 역류하는 듯한 몸의 변화도 온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총기 사용이 금지되어 있어서 원거리에서 총을 쏴서 사람을 죽일 수 없으니 근거리에서 칼이나 가위 같은 날카로운 흉기로 사람을 죽이게 된다. 그렇게 되면 피가 낭자하는데 코피 정도밖에 경험이 없던 인간이 끈적하고 뚝뚝 떨어지는 피가 흥건한 곳에서 제정신 일리가 없다.


하지만 그런 것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이유 없이 사람을 그저 죽이는 살인자들이 있다. 98년에 전과 14 범인 황영동이 그렇다. 여자들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십만 원을 달라고 하고 없다고 하면 그저 죽이는 것이다. 또 그해 9월 23일 대전의 한 가정집에 들어가 부녀자에게 십만 원을 달라고 해서 십만 원을 받는다. 하지만 그냥 칼로 찔러 죽인다. 10월 1일에는 한 다방에 들어가 여주인에게 20만 원을 빼앗고 칼로 찔러 죽이고 만다. 그때 칼로 사람을 38번이나 찌른다. 10월 10일에 한 할머니도 그렇게 죽이고, 마지막 10월 16일에 한 식당에서 맥주와 고기를 실컷 먹고 6만 원이 나왔지만 음식 값을 내지 않겠다며 거부를 하다 여주인을 칼로 마구 찔러 죽이고 만다. 그 여주인은 34살로 임신 6개월이었다. 23일에 한 공중화장실에서 한 여성을 성폭행하려다 옆에서 공사 중이던 인부들이 달려와 격투 끝에 붙잡혔다. 이때 달려들었던 23살 대학생 아르바이트생은 칼에 찔려 병원에 입원을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어떤 누구라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렇게 성폭행범에게 달려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같은 인간인데 한 공간에는 이렇게 다른 인간이 살아가고 있다. 98년의 일이라지만 지금도 똑같다.


세상에는 좀비 같은 인간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많아졌다. 앞으로는 더 많아질 것이다. 좋은 차를 몰고 다니지만 차를 따라가지 못하는 주인을 우리는 많이 봤다. 좀비가 너무 많다. 인류 영화 역사적으로 가장 큰 업적은 좀비다.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좀비. 시체이나 살아 움직이는 존재. 살아있되 살아있지 않은 인간. 겉으로는 멀쩡하게 움직이나 생각할 수 있는 뇌가 없어서 몸이 먼저 반응하는 인간. 우리는 이들을 좀비라 부른다. 어느 날 이보다 더 멋진 뱀파이어가 나타나 다시 영화적 위협을 가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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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2-04-26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뱀파이어를 보고 싶다면 역시 <렛미인> 이죠.

교관 2022-04-27 11:53   좋아요 0 | URL
렛 미 인은 원작 소설도 너무 좋았고, 원작 영화도, 할리우드 리메이크 작도 아주 아름다워서 놀랬던 작품이었어요
 

피카소 오마주



말이 많다는 말은 비교적 듣기 좋은 말이 아닌 경우가 많다. 부장님은 참 말이 많아, 교장 선생님은 말이 많아, 부모님은, 너는, 그 사람은, 뒤에 말이 많다는 말이 나오면 잔소리와 비슷하게 들린다. 하지만 말이 많은데 듣기 싫지 않는 사람도 많다. 거래를 하거나 영업을 따 내야 하는 사람들은 당연하지만 말을 많이 해야 한다. 말을 적게 하면 조직과 개인 모두에게 폐를 끼치게 된다. 말이 많지만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말이 많다는 말을 잘하지 않는다.


소설가들도 말이 많다. 따지도 보면 소설가만큼, 글을 쓰는 작가들만큼 말이 많은 사람도 없다. 작가들은 글로써 자신을 표현하고 말한다지만 실제로는 강연을 통해 말을 더 많이 한다. 그러니까 말이 많다. 그래야 한다. 왜냐하면 세상에 태어난 순간 내가 적은 글이라도 그 글은 읽는 독자의 일부가 된다. 그래서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건 많은 말을 해서 궁금증을 풀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설가들, 작가들이 말이 많지만 그 많은 말이 듣기 좋은 작가가 있고, 또 아 진짜 말이 많군, 흥. 하는 작가도 있다.


많은 말인데 더 해줘요, 하는 작가의 경우 엄청난 말을 쏟아내지만 듣는 이들이 알아듣기 쉽고, 거북하지 않은 속도와 내용 그리고 어려운 말을 쓰지 않는다. 그래서 마치 심플한 클래식을 듣고 있는 착각이 드는 말 많은 작가가 있다. 그중 우리가 좋아하는 작가 김영하 소설가가 있다. 소설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김영하의 소설은 나오자마자 날름날름 다 읽었을 것이다. 김영하의 소설 역시 하루키처럼 소설에서 손이 뻗어 나와 나를 데리고 소설 속으로 가버린다. 김영하 소설가는 그동안 강의와 소설이 아닌 책을 출간하다가 근래에 소설이 나왔다. 유튜브에서, 티브이에서 공연장에서 김영하 소설가는 말이 많다. 하지만 더 듣고 싶고 더 많이 해줬음 하는 소설가다.


개인적으로 말을 무척 많이 하는데 역시 더 듣고 싶은 소설가는 원종우다. 원종우는 과학자(라고 해야 할까) 만큼 과학에 대해서 식견이 높으며, 음악가이자 작가인데 그가 펴낸 SF단편소설집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가 너무 재미있었다. 짤막한 단편 소설들로 채워져 있는데,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작품에 대한 과학적인 이야기와 자신의 의견을 첨부했다. 원종우 역시 방송이나 이런 데서 말이 많다. 하지만 귀에 쏙쏙 들어온다.


소설가만큼 말이 많은 게 시인이다. 시인은 말이 없을 것 같은데 아이러니하게도 말이 많다. 시는 짧지만 시의 세계는 깊고 풍부해서 시인의 입을 통해서 그 세계를 들어야 한다. 그렇기에 시인도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직업군이다.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박준 시인도 말이 많다. 라디오 방송도 하고 있어서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그의 말은 스며든다. 우리는 스펀지가 되어 박준 시인의 말을 흡수한다.


그러고 보면 책을 펴내는 인문학자, 책을 펴내는 자기 개발서 작가, 책을 펴내는 철학가, 책을 펴내는 사진가와 평론가 등 책을 내는 사람들은 다 말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 모두의 많은 말이 다 듣기에 괜찮지는 않다. 말 많은 소설가 중에서도 어쩐지 듣기 싫은 소설가도 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말속에 우쭐함이 묻어 있어서 나와 너는 다르며 나는 너보다 조금 위에 있다는 분위기를 가지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이 많은 말을 하면 듣기가 싫다.


또 반면에 배우들은 영상 속에서 끊임없이 말을 하는데 실제로는 입을 꾹 다물고 열지 않는 사람도 있다. 코미디언들 역시 말이 아주 많을 것 같은데 현실에서는 또 말이 별로 없는 사람도 있다. 세상은 아이러니해서 소설가는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글만 쓸 것 같은데 말을 더 많이 할 때도 있다. 시인 역시 그렇고 철학가들 역시 그렇다.


하루키도 말이 많다. 과묵하기만 할 줄 알았던 하루키 역시 말은 많다. 참 말이 많네, 가 아니다. 하루키도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또는 이전에 연설문을 통해 많은 말을 했다. 하루키는 분명 이 시대의 가장 영향력이 있고, 화제의 인물이며 이례적으로 펴낸 소설들이 엄청난 판매를 이루고 있다. 그럼에도 그가 하는 말속에 어려운 단어나 힘든 말은 없다. 그리고 애써 풀어서 말을 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일상을 이야기하듯이 말을 할 뿐이다. 그건 아무래도 자동차보다는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지방으로 여행을 가서 그곳의 현지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 시간을 보낸 탓일지도 모른다. 문학적인 문체가 있겠지만 말을 할 때에는 일상적인 언어를 통해서 사람들과 소통을 한다.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소설가, 작가의 특성상 대부분 일상적인 언어로 사람들과 소통을 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작가들도 많다. 그런 작가들은 안하무인격으로 일방도로 같은 면모를 보이다가 시간이 지나면 독자들과 언쟁을 높이고 싸우기까지 한다. 자신은 독자들보다 위에 있다는 것을 말을 통해서 알리려 든다.


유튜브에서 가끔 책 읽어주는 영상을 틀어 놓는 편인데 하루키의 에세이를 낭독하는 유튜버 중 그저 책만 읽어주면 되는데 낭독하는 이의 달리기 경험을 하루키의 조깅과 맞물려서 흡사하게 말을 한다. 하루키는 4 반세기를 매일 쉬지 않고 달렸다. 그런 사람과 고작 1년 정도, 그것도 일주일 내내 달린 것도 아닌데 마치 자신과 하루키가 동일선상에 있는 듯한 느낌으로 많은 말을 한다. 조깅은 – 운동을 통해 만들어진 멋진 몸이나 날씬한 몸은 신기루 같은 것이다. 조깅도 그렇다. 지나고 나면 그런 멋진 몸은 금방 사라진다. 그래서 매일 해줘야 유지가 된다. 조깅이 그런 것이다. 작년에 매일 달렸더라도 그걸 머릿속에서 없애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매몰되어 버려 지금도 내가 계속 조깅을 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기 때문이다. 전문 운동선수들을 보면 알 수 있다. 20년 넘게 하루에 8시간씩 운동을 했더라도 은퇴를 하고 1년만 운동을 끊고 잘 먹고 잘 쉬면 살이 쉽게 찐다. 인간은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서는 겸손해야 한다.


오래전 릴케도 말을 많이 했을지도 모른다. 21살의 릴케는 37살 루를 만나 사랑과 죽음 그 이외의 것은 생각지도 않았다. 오직 죽음 아니면 루에 대한 사랑을 말했던 릴케. 그리고 많은 말로도 모자라는 자신의 사랑은 시로 표현했다. 무명 시인이었던 릴케는 이미 명성이 자자한 루 살로메에게 매료되었다. 릴케의 구애가 장미와 편지를 통해 끝없이 이어졌다. 루 살로메는 당대 최고의 인물들을 매혹시켰다. 니체의 연인이기도 했고 프로이트의 연인이기도 했다. 루는 릴케의 애틋함을 1928년에 ‘릴케’를 펴내기도 했다. 릴케의 구애를 받아들여 두 사람은 뮌헨의 몽마르트 방갈로에서 한 달을 같이 보냈다. 그곳으로 달려간 전혜린은 두 사람이 머물렀던 곳을 [이 전나무 숲은 몇백 년 된 듯한 거대한 수목이 빽빽하게 서 있어서 낮에도 굴속같이 캄캄하고 보이는 것은 매끈하고 곧게 솟은 전나무의 줄기들뿐이었다. 어두운 때문인지 지면은 이끼로 덮여 있었고, 그 이끼도 몹시 두껍고 보드러웠으며, 검은 초록빛이었다. 어둠 속을 잘 보면 그 이끼 위에 오랑캐꽃이 피어 있는 것이 보였고 오랑캐꽃을 특별히 좋아하는 나는 미친 듯이 달려가서 꽃을 꺾어 꽃다발을 만들었다. 유난히 짙은 보랏빛이었고 꽃송이가 크고 꽃줄기가 굵고 길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라고 했다. 주위에는 백화 나무가 꽉 차게 서 있고, 그 풀밭 위로 릴케와 루는 맨발로 걸어 다녔다고 한다. 빵과 야채와 달걀만으로 살았다고 한다. 사랑은 그 모든 걸 가능케 했다. 릴케의 가장 찬란한 시가 루를 만났을 때 나왔다. ‘너는 위대한 여명’이나 ‘내 눈의 빛을 꺼다오’ 같은 시가 루와 함께 일 때 나왔다.


루 역시 릴케에게 [우리는 알고 있는 것이 없어. 한 그루의 무화과나무, 또 우리들 마당의 돌담의 이끼 낀 틈에서 피어 나오는 새파란 오랑캐꽃의 무리... 이런 것들이 가장 사실적인 것, 알아야 하는 것, 반드시 체험해야 하는 것이야....]라는 글을 써서 줬다. 장소가 주는 기묘함 때문인지 릴케는 그 속에서 사랑하는 루와 함께 하며 사랑과 죽음 그 외에는 전혀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너는 밤과 시간의 뒤에 우는 닭소리다. 너는 이슬이다. 아침 미사다. 소녀다. 낯 모르는 남자다. 어머니다. 죽음이다] 릴케는 루에게 이렇게 말했다. 릴케는 이곳에서 루에게 아주 많은 말을 쏟아냈을 것이다.


근래에는 나도 말을 많이 하게 되었다. 나의 불안에 대해서, 나의 불안함 때문에, 나의 불안한 형태에 대해서, 근원적인 불안, 나를 따라다니는 그림자 같은 불안에 대해서 자세하게 말은 못 했지만 불안에 대해서 많은 말을 들어주는 이에게 하게 되었다. 그건 나에게 있어 아주 기묘한 일이며 특별한 순간이기도 했다.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내 속의 불안에 대해서, 불안이 있다, 라며 말을 꺼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끄집어내게 되면 막혀 있는 속이 뚫리는 것처럼 조금은 시원해진다.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을 해본 적이 언제였을까. 인간은 대체로 솔직하게 말하거나 마음을 내보이지 않는다. 가족일수록 가족의 속 마음은 더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에 사춘기에 접어들면 부모님보다는 친구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등잔 밑이 어둡고 촛불의 가장 어두운 부분의 이야기가 괜한 말은 아니다.


불안은 직설적이고 구체적인 불안이 있고 그 위에 거대한 근원적인 불안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불안은 확대되고 확장할 뿐이지 축소되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 두려움이 몰려오고 불안해진다. 이 행복의 끝이 이미 두렵다. 행복은 늘 추상을 달고 온다. 짧고 얕고 찰나적이다. 그런 찰나를 계속 만들어서 이어 붙어야 하는데 그런 삶은 지치게 된다. 한 번 주저앉으면 쉽게 일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행복하기보다 덜 불행하기는 바라는 나에게 이 추상적이며 기이한 행복이라는 것이 근래에는 잦아졌다.


어제는 유튜브를 통해 100년 전의 한국어 육성을 원본으로 들었다. 일제강점기였다. 한국말을 못 쓰게 하는 일본의 만행이 이어지는 가운데 어린이들이 우리나라 말을 많이 하고 싶어서 한국말을 배우는 것을 들었다. 또박또박한 소리로, 소나무, 그 모자, 저 보자기, 아가 아가 우리 아가, 어서 이리 오너라, 나비 나비 오너라, 노자 노자 나하고. 그저 말을 하고 싶어서 한국어를 할 뿐인데 듣고 있으니 뭉클했다. 소설가들이 말이 많은 이유는 글로 다 못한 이야기를 보충하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말이 많다는 말을 들을지라도 말을 해야 한다면 가만히 있기보다 말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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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하고 외롭지 않고서는 글을 쓸 수 없다. 철저하게 외로워야 구석진 곳에서 웅크리고 몇 시간이라도 글을 쓸 수 있다. 고독하고 또 외로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글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가 없다. 고독해야만 하고 외로워야만 한다. 그래야 그 속에 웅크리고 있던 불순물 같은 미미한 그리움이 활자로 그려진다. 외로움을 밀어내기 위해 외로움을 견디기보다는 외로워야만 하기 때문에 외로움을 동반한다. 이런 내가 타인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그들과의 관계 역시 조금은 일그러져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어떤 면으로 말하자면 외로움에서 벗어나기보다 벗어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외로움이란 암 같아서 벗어났다 싶으면 거기에서 또 다른 외로움이 증식하여 삶을 갉아먹는다. 야금야금, 아주 천천히 배추벌레가 잎을 천천히 먹어 치우듯이. 판에 박힌 이야기지만 근원적으로 외롭게 태어나서 외롭게 죽는 것이 인간이다. 외롭지 않다면 사랑하는 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행복하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가끔 주위에서 그런 말을 나에게 하는 경우가 있다. 같이 있어도 외롭다고. 같이 있으면, 당연하지만 외로움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말을 듣는다. 그런 말은 나이 먹기 싫어하는 것과 비슷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피할 수 없다. 그것처럼 외로움 역시 벗어나려고 해 봐야 벗어나는 순간 또 다른 질의 외로움이 피부를 덮을지도 모른다. 외로움을 온몸으로 드러낸 나오코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던 미도리가 어쩌면 더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에 가서야 와타나베는 전화 수화기를 들고 그런 미도리의 마음을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이건 비단 노르웨이 숲에서만 일어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복잡하고 거미줄 같은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고독 사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리고 그 연령층은 더 어려졌다. 외로움을 견디기 힘든 것이다. 인파 속에서 고독함이 추위처럼 달려든다. 너무 추워서 몸이 떨리는데 따뜻하게 해 줄 사람 한 명도 없어서 얼어 죽는다. 나오코처럼 이 지독한 외로움을 견디기 힘든 것이다. 이 깜깜한 도시에서 어둠이 내미는 손을 잡는 것이 생생하고 또렷한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쓸쓸하게 죽고 나면 그 방에는 시취가 물처럼 찰랑찰랑 차오른다. 외롭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이 세상에는 있다. 그건 사랑이다. 잠이 드는 것도 외롭다. 한 침대에 부부가 같이 들어도 잠은 혼자서 들어야 한다. 시간을 맞춰서 같이 잠이 들 수는 없다. 잠은 외로워야 한다. 외롭게 잠들어 길이보다 깊이 있게 들었다가 일어나야 잠들어 있는 동안 못 보던 가족을 보며 인사를 할 수 있다. 사랑이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잠마저도 우리는 외롭게 들지 못한다. 의식 그 너머에 외로움이 싫어서 시끄럽고 불안한 의식의 방해가 많아서 리추얼이 되지 않아 괴로워하는 이들이 늘었다. 가장 외로워야 하는 건 아픔이다. 아픈 건 누군가 대신 아파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혼자서 외롭게 아픔을 견뎌야 한다. 아이가 아프다고 해서 부모가 대신해 줄 수 없다. 하지만 외로워도 아픔을 견딜 수 있는 건 사랑하는 사람들이 옆에서 간호를 해주기 때문이다. 사랑이다. 내가 외로워서, 외로워야만 해서 할 수밖에 없는 것들은 사랑을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세상에 완벽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절대적인 외로움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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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도록 세차게 비가 왔습니다. 애매한 계절에 이렇게 하늘이 뚫린 듯 비가 내리면 세상은 차갑게 몸을 웅크립니다. 저는 새벽까지 그런 빗소리를 들었습니다. 우리 이제 그만하자고 했을 때, 헤어지기 싫어 소리를 지르는 연인처럼 강하게 내렸습니다. 그리고 기운이 다 했는지 그 비는 지금 가늘어졌습니다. 힘이 없어 축 쳐진 새끼 고양이의 꼬리 같아졌습니다.


비가 내리면 세상은 전부 비에 젖습니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비에 젖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건 바다입니다. 바다만 비에 젖지 않고 얼굴을 비에 드러냅니다. 비는 규정적입니다. 비가 내리는 모든 곳이 비에 젖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비는 비 규칙적입니다. 강하게 내리는가 싶으면 어느 순간 가늘어졌다가, 또 어느 순간 바람을 대동해서 마구 내립니다. 밤에는 지구의 저편 기침을 심하게 하는 마른 숨결의 존재를 대동하여 거칠고 푸석한 비를 밤새 뿌렸습니다.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마치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내서는 안 되는 소리를 일부러 내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고양이 소리였습니다. 저에게 이름 모를 고양이는 전부 해시시라는 이름입니다. 그 고양이도 해시시라고 부르겠습니다. 비가 오는 밤에 비 맞은 해시시는 칼날 같은 소리를 냈습니다. 고요한 아파트 단지에 이렇게 찢어지게 큰 소리로 울다니요. 언젠가 책에서 고통을 참지 못해 해시시를 하루 종일 피우는 여자를 읽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해시시의 혈관이 검붉게 변한 여자의 얼굴이 겹칩니다.


저는 눈을 감았습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천장으로 기어 다녔고, 추악하고 싶은 장면은 흐릿해졌습니다. 천장은 늘 그렇듯 비열하고 추악한 것을 열거해 놓은 고대 상형문자가 무늬로 환생하여 저를 내려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눈을 감아 보지만 이미 한 번 눈을 감은 상태입니다. 그리하여 저의 눈앞에 뚜렷하게 무늬가 나타나고 맙니다. 그건 굉장한 악몽입니다. 무늬가 스스로 움직여 나에게 다가오니 말이죠. 세상에는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그러한 것들이 더러 있습니다.


목이 마르지만 일어나기가 싫습니다. 눈을 뜨면 눈앞에 조악한 기억이 푸른빛을 내고 요상한 소리를 지르며 얼굴에 달라붙을 것만 같습니다. 무섭습니다. 목이 마릅니다. 침을 삼켜 보지만 1%의 아밀라아제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목 안이 그야말로 아타카마가 된 것 같습니다. 물이 몽땅 빠져나간 나의 몸을 생각하다가 메마르게 잠이 듭니다.


눈을 떴을 때 더 이상 세차게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곧바로 물을 마셨습니다. 마치 뭔가를 밀어 내려는 듯. 물을 마시고 나니 목에서 물비린내가 났습니다. 비는 칼로 자르듯 사라지기 싫은지 잿빛의 하늘과 바람을 타고 하늘하늘 내리고 있습니다. 라디오에서 프리실라 안의 레인이 나옵니다. 레인을 들으며 밖으로 나오니 파도가 요동을 치고 있습니다. 파도는 꼭 크게 울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바람이 불어 좋은 날이 있습니다. 바람이 그대를 데리고 오는 날이 있습니다. 바람에 실려 그대의 냄새가 날 때면 저는 바람을 맞습니다. 형이상학적인 모습을 하고 어떤 물리적인 법칙을 무시한 채 그대를 맞이합니다. 가까운 바람 속에, 저 먼 해풍 속의 그대, 바로 당신이 있습니다.


그대와 연락이 되지 않을 때 저의 슬픔은 제대로 커지고 맙니다. 얼마나 깊고 큰지 저 자신조차 알지 못합니다. 휴대전화는 많은 일을 하게 해 줍니다. 많은 것을 측정할 수 있고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휴대전화로 슬픔을 측정할 수 있다면, 그리움을 측정할 수 있다면 참 졸을 텐데요. 휴대전화의 액정으로 간단하게 슬픔의 수치가 나타난다면 나는 그대에게 내 슬픔의 수치를 전송할 수 있을 텐데요. 그렇다면 시간 별로 나는 슬픔을 측정하여 캡처해 두었다가 그대에게 편지와 함께 보낼 텐데요.


닥터 Q를 찾아갑니다. 닥터 Q는 사람들의 기억을 수집하고 관리하는 일을 합니다. 한 달에 두서너 번 그를 찾아가서 내 기억을 관리받습니다. 기억에 손상이 갔습니다. 기억이 나약해졌으니 이건 따로 보관해 두겠습니다, 같은 말을 많이 듣습니다. 이미 제 기억의 9할이 보관이 된 상태입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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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석이 담배를 입에 물고 빨아 당기면 치이이익 하는 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가 너무 듣기 좋았다.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담배를 피우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나는 소리가 더더욱 아니었다. 오직 그 녀석만이 담배를 입에 물고 빨아 당기면 그 듣기 좋은 소리가 난다. 특히 겨울에 가로등 밑에 서서 치이이익 하는 소리를 내며 담배를 빨아 당긴 다음 후우 하고 연기를 내뱉으면 그 연기가 마치 안개처럼 뿜어져 나왔다.


막막한 세상에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양 연기가 기가 막히게 뿜어져 나와 허공에 그림을 그렸다. 그때 담배냄새는 그렇게 싫지 않았다. 싫어하는 담배냄새가 싫지 않을 때가 있다. 그건 어떤 사람이 피우느냐에 따른 것 같다. 요컨대 여자가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나와서 차가운 대기에 후 하며 뿜어내는 담배연기의 냄새는 나쁘지 않다. 담배연기가 머물다 사라진 자리에는 샴푸의 향도 남아 있다. 그 녀석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에 반해버린 나는 담배를 피워본 적이 있었다. 흡연은 나에게는 참 기묘한 행위로 다가오며 그 기묘함은 담배와 나는 전혀 가까워질 수 없도록 했다.


흡연자들은 식사 후 한 대가 아주 맛있다고들 한다. 대부분이 밥을 맛있게 먹고 난 후 담배를 피우며 아주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밥을 먹은 후에 담배를 피우니 먹은 밥과 반찬이 그대로 밖으로 나왔다. 밥알이 소화도 되지 않은 채 오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술을 마시고 만취가 되어서 오바이트를 하는 건 괴롭지만 참을만하다. 정신이 없으니까. 하지만 밥을 먹고 오바이트를 하면 거의 초주검에 가깝다.


일행이 피우는 담배 냄새도 싫어하지 않는데 나는 왜 담배가 맞지 않을까, 내 몸은 왜 담배를 받지 못할까. 그 생각은 오래전에 들어 지금까지 가끔씩 한다. 도대체 담배 정도도 못 피우다니. 누군가는 건강에도 좋지 않은 담배 몸에서 받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입니까.라고 할지 모르지만 건강에 안 좋은 건 흡연 이외에도 세상에 널렸다. 온통 스트레스뿐인 생활에 한 대의 담배는 오히려 활력을 줄지도 모른다. 한 번의 끽연으로 직장상사에게 받은 고통을 잊을 수 있다면 흡연이란 정신건강에 청신호이지 않을까.  


가끔 꿈을 꾸면 담배를 피우는 꿈을 꾼다. 하지만 꿈속에서 피우는 담배는 악몽이다. 담배를 물고 치이익 거리며 빨아 당기는 건 실제와 똑같지만 빨아 당긴 연기가 입으로 빠져나오지 않는다. 아무리 후 하고 불어도 연기가 나온 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또 담배를 한 모금 빨아 당긴다. 후. 하지만 연기는 몸에서 나올 생각을 않는다. 그러다가 점점 연기가 눈으로 차오른다. 눈동자 밑에서 연기가 마치 고인 물처럼 찰랑찰랑 위로 조금씩 올라온다. 앞에 점점 뿌옇게 보이더니 이내 눈동자는 연기로 하얗게 변해버리고 나는 아악 하며 악몽에서 깨어난다. 흡연하는 꿈을 꾸면 나는 악몽으로 두려워하다 일어난다. 그리고 꿈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어째서 이런 꿈을 꾸는 것일까.


나는 담배를 못 피우지만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들을 요즘 보면 딱하다. 건물에서 일을 하다가 한 대 피울까 해도 예전처럼 건물 안에서는 흡연을 할 수가 없다. 화장실에서도 못 피우고, 계단에서 피우려고 해도 언젠가부터 카메라가 달려 있어서 담배를 피우면 이잉이잉 하며 흡연 금지하고 방송이 나온다. 옥상에서 피우려고 해도 더러워진다며 옥상의 문을 잠갔다. 흡연하는 여성들은 더욱 힘들어졌다. 부장 새끼를 씹으며 한 대 피워야 하는데 그것마저 여의치 않다. 추운 겨울에 담배 한 대 피우기 위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서 건물 밖에 마련해둔 흡연장소에 가서 한 대 피운다. 외투를 안 가지고 와서 영하의 날씨에 오들오들 거리며 불쌍하게 피워야 한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참 흡연자들의 끽연 고군분투기가 안타깝다. 흡연은 해로운 것으로 지정이 되어서 흡연자들은 마치 죄인 같은 기분으로 담배를 피우는 분위기가 꽃처럼 번졌다.


어쨌든 그 녀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그 녀석은 유독 담배를 맛있게 피웠다. 담배를 손가락 끝까지 당겨서 말아 잡은 다음 치이익 하며 담배를 빨아 당길 때 담배를 움켜쥔 검지가 좀 더 말린다. 그리고 입으로 뱉어내기 전에 코로 연기가 흘러내리는데 그 양이 실로 많다. 시원하게 틀어놓은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처럼 연기가 코로 빠져나왔다. 그런 모습이 가로등 불빛을 받으면 멋있게 보이는 것이다. 그 녀석은 꼭 이현세의 떠돌이 까치의 까치처럼 생겼다. 머리가 직모에 그런 눈빛을 하고 있어서 겨울에 가로등 밑에서 담배를 피우면 그저 멋있게 보이는 것이다. 게다가 말도 몇 마디 하지 않는다.


안개를 뱉어내는 남자라고 해서 그 녀석은 우리 사이에서 '안뱉남'으로 불렸다. 후우 하면 입에서 안개가 가득 흘러나왔다. 그 녀석 군대 가기 전에 포경수술을 했는데 수술 한 그날 술을 마시자고 해서 술을 왕창 마시고 실밥이 터져 또다시 병원에 가기도 했다. 지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 녀석도 지금은 흡연 때문에 고생이다. 그럼에도 나는 가끔 담배를 멋있게 피우는 생각을 한다. 담배를 멋있게 말아 쥐고 멋있게 안개처럼 후우 연기를 뱉어내고. 멋있는 모습이라고는 잘 없어서 그런지 이런 것으로 멋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나는 담배를 못 피운다. 오늘 같은 날 한 대 정도는 괜찮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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