볶음밥이 귀여워!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 상이 먹는 양이 실로 많아 보이지만 그렇게 생각이 들지 않는다. 우리나라처럼 여러 반찬이 푸짐하게 나오는 게 아니라 대체로 중점적인 요리 하나 정도가 나온다. 그 양이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고로 상은 두 세 요리를 먹는데 가격적으로 보면 보통 3만 원은 넘게 나오는 것 같다. 실제로 밥 한 끼를 먹는데 3만 원 정도를 써야 한다면 현실적으로 큰 고민이다. 하루 꼬박 세 끼는 먹지 못 하더라도 두 끼를 먹는다면 6만 원이 홀라당 달아나 버린다. 천만번 양보해서 고로 상은 1인 기업 형식이며 돈도 잘 버는, 그 짝에서는 재능을 가진 유능한 사람으로 음식을 먹는 것이 삶의 낙이자 행복으로 여기는 독신이니까 가능하리라 본다. 하지만 고로 상의 먹성이 참지 못하고 터졌을 때는 부산에 와서 낙지볶음을 먹고 돌아간 후 (급작스레 부산으로 오게 되어서 그런지) 일본의 포장마차에서 라멘 한 그릇을 먹은 후 다시 한 그릇을 주문하면서 미친 듯이 튀김과 덴푸라를 이것저것 여러 개를 시켰다. 카메라가 멎는 마지막까지 주문을 멈추지 않았다. 아마 고로 상은 그 정도의 많은 양을 먹어야 만족에 가까워져 정말 잘 먹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고로 상이니까. 평소의 고독한 미식가에서의 고로 상은 정말 만족할 만큼 배를 채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고로 상은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순전히 픽션의 세계에서의 이야기다.


고독한 미식가 시즌 4에서 9화를 보면 재미있는 장면이 있다. 고로 상은 철판요리 집으로 들어가는데 거기에는 모택동 립이 있는 가게다. 모택동 립이라는 걸 손으로 들고 뜯어먹은 다음 검은 볶음밥을 먹는다. 철판요리라서 요리사가 그 위에서 요리를 하는데 우롱차로 볶음밥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모습을 유심히 보던 커플의 남자가 저건 우롱차로 만드는 볶음밥이라고 애인에게 말한다. 그러면 애인이 “헤에, 카와이”라고 한다. 그러자 옆에서 밥을 먹고 있던 고로 상이 속으로 ‘볶음밥이 귀엽다니, 흠’라고 한다. 정말 볶음밥이 귀엽다니, 고독한 미식가의 시나리오 작가는 대단히 재치가 넘치는 사람이거나 글에 대한 재주가 뛰어난 인물임에 틀림없다. 아니면 여러 명이 시나리오에 매달리고 있을지 모른다. 요컨대 세계의 인기작 미드 프렌즈의 작가는 50명이 넘었다. 여하튼 고독한 미식가를 볼 때마다 고로 상이 내뱉는 주옥같은 음식에 대한 찬양 멘트가 하늘을 날아다녔다. 이번에는 고로 상이 또 어떤 멘트로 음식을 가지고 놀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커플의 여성이 말한 것처럼 음식 중에서 볶음밥이 가장 귀여운 음식이 아닌가 싶다. 볶음밥을 해 놓고 보면 귀여워! 하는 느낌이 있다. 그건 뭐랄까 찌개를 보고 귀여워!라고 하는 느낌은 없다. 역시 고기를 굽거나 튀긴 생선을 보며 귀엽다는 느낌도 덜 받는다.


볶음밥이라는 걸 아이들과 함께 먹게 되면 더 귀엽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렇게 볶음밥을 다 조리 한 다음에 식힌다. 뜨겁지 않게 식힌 다음에 아이들에게 비닐장갑을 끼게 하고 별 모양이나 삼각형의 모양의 판에 꾹꾹 눌러서 예쁜 모양을 잡는다. 그 위에 김가루를 뿌리면 맛도 좋고 보기에도 역시 귀여운 볶음밥이 된다. 볶음밥 안에 채소를 왕창 넣어도 아이들은 이렇게 만들어 놓으면 야금야금 맛있게 잘 도 먹는다.


이 볶음밥이 ‘귀엽다’라는 말보다 일본의 ‘카와이’가 좀 더 어울리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일본의 학부형이 아이들의 도시락을 볶음밥으로 만들어 그 위에 귀엽게 데코레이션을 해서 더 그렇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일본의 가정집 도시락을 보면 짱구부터, 병아리까지 무척이나 귀엽게 도시락을 만들었다. 입으로 들어가면 다 똑같지! 뭘 그렇게까지!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인간은 음식을 먹기 이전에 보는 것으로 한 번 맛을 보기 때문에 프랑스 요리나 뉴욕의 식당가에서 접시 위의 공백을 중요시하며 데코에 신경을 쓴다. 입으로 들어가서 다 똑같은데 왜 과자의 모양은 끝없이 다르게 출시를 할까, 한 번 생각해보라.


기무타쿠 주연의 그랑 메종 도쿄에서도 미츠히로의 유치원생 딸의 도시락을 기무타쿠가 주연한 오바나가 매일 새벽에 좋은 재료로 예쁘게 만들어줘서 반 아이들에게 인기를 얻는다. 도시락 뚜껑을 여는 순간 여기저기서 반 아이들의 입에서 ‘초 카와이~’가 터져 나온다. 우리는 예쁜 도시락을 보고 ‘와 귀여워’보다는 ‘와 예쁘다’를 더 말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볶음밥을 보고 있으면 정말 꽤나 귀엽다. 각가지 재료가 한 곳에서 볶아져 아름다운 색감을 자아낸다. 컬러에서 중후함이나 노련함보다는 재잘재잘대는 귀여움이 가득하다. 물론 볶음밥은 맥주와 참 잘 어울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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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었다. 이토록 시원한 바람이 건물의 사이를 돌아 나의 볼을 건드렸다. 오월의 마지막 바람이었다. 길거리 곳곳에는 선거에 총력을 기울이는 소음이 흩날리고 있었고 소음은 바람을 타고 주위를 맴돌았다. 주차장까지 걸어가면서 읽던 책을 펼쳐 읽으며 걸었다. 아직 ‘고탄다’는 죽지 않았지만 이제 곧 자신의 마세라티를 몰고 바다에 빠져 죽을 거리는 걸 안다. 고탄다는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떠들썩하게 지내지만 그 속에서 몹시 외로웠다. 그 외로움이 고탄다 내면의 어떤 무엇을 건드려서 키키를 목졸라 죽였을지도 모른다. 고탄다 역시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는 걸 안다. 죽음이라는 건 그렇게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가까이 둘 수도 없는 것이다. 고탄다는 그걸 알게 되었다. 이 책을 벌써 여러 번 읽었다. 여러 번 읽어도 질리지 않는 소설이 있다. 나도 그런 소설을 쓰고 싶다. 5월의 마지막이라고 해서 딱히 극적이거나 슬프거나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아니다. 단지 매년 5월의 마지막이 되면 6월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는데 덜 되었다는 아쉬움이 있다. 준비라고 해봐야 딱히 벌게 있는 건 아니다. 일 년 중 6월부터는 여름의 시작이니까 나도 여름에 맞게 나의 몸과 마음을 준비를 하는 것뿐이다. 올해는 때 이른 5월의 더위 덕분에 해변에서 홀라당 벗고 잠시 책을 좀 읽었을 뿐인데 피부가 캐러멜 색으로 변했다. 6월부터는 세상이 소설처럼 바뀐다. 물론 실제로 그렇다는 건 아니고 내가 보는 세상이 그렇게 보인다. 그 절정이 7월에 다다랐다가 8월에 정점을 찍고 조금씩 하강하여 9월이 되면 서서히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뜨거운 여름의 세상이 소설화가 되는 건 몹시 흥분되는 일이다. 집 앞의 해변의 모래가 아주 보드랍고 부드러운 모래로 변하며 태양이 기분 나쁠 정도로 뜨겁고 밝아서 세상의 모든 축축함을 바짝 말려 버릴 것 같다. 이 여름의 소설화가 좋아서 여름만 지속되는 하와이 같은 곳에서 일 년 열두 달 내내 소설적으로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치 영화 ‘마지막 액션 히어로’에서 영화 속의 잭 슬레이터의 세계처럼 말이다. 영화 속에는 메가데스의 Angry Again이 흘러나온다. 멋지다. 뿐만 아니라 AC DC, 데프 레파드, 테슬라, 에어로스미스의 음악이 심장을 두드린다. 그야말로 소설적인 영화다. 비현실이며 초현실이고 비규정적인, 그런 날들이 6월부터 이어진다. 5월의 마지막이 되면 좀 더 마지막이고 싶다. 5월의 그린 향기, 짙어지기 전의 녹음과 오월의 바람, 그리고 5월 내내 간직했던 추억을 마지막까지 향유하고 싶다.

5월의 색감. 노랗고 노란 기분 좋은 노랑


노랑이다


평온하고 평화로운 5월


전혜린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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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린이 때 이맘때가 지나면 아버지가 퇴근하고 집에 오시면 마당에서 저녁을 먹는 일일 종종 있었다. 마당에는 평상이 있어 밥상을 들고 와서 평상에 앉아서 저녁밥을 먹었다. 특히 고기를 구워 먹을 때면 꼭 어딘가에 야영을 온 기분이 들어서 신났다. 고작 집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가며 저녁을 먹을 뿐인데 나도 신났고 동생도 신났고 마당의 깜순이도 신났다. 기껏해야 집 안에서 마당으로 저녁 식사를 옮겨왔을 뿐인데 준비를 많이 해야 했다.  


날이 점점 더워지면 마당에 있는 화단에서 벌레들이 일고 날파리들과 모기들이 출몰하기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마당의 불도 좀 더 환한 것으로 더 비춰야 했고 고기를 구워 먹는 불판도(전기로 구워 먹는)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전기선을 길게 연결해야 했다. 그러다 보면 고기를 굽는 냄새가 솔솔, 바람을 타고 옆집 뒷집으로 날아간다. 그러면 친하게 지내던 옆집 아줌마 아저씨가 아이들과 함께 온다. 마당이 시끌시끌해진다. 우리는 마당을 뛰어놀고 어른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한다. 낭만적인 풍경이다. 아직 본격적인 더위가 몰려오지 않았기에 밤은 좋은 온도와 좋은 분위기를 낼 수 있었다.  


또 어떤 날은 화덕에 고기를 구워 먹었다. 화덕에 숯을 넣고 불을 지피고 그 위에 불판을 올리고 직화로 고기를 구우면 그 향이 연기가 되어 집 주위의 모든 하늘에 머문다. 숯에 닿아 직화로 구워진 고기는 또 얼마나 맛있는지. 친하게 지내는 옆집들에서 호박이니, 쌈장이니, 상추니. 이런 반찬을 들고 와서 하하호호 어울린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즐겁고 어른들은 술잔이 오고 간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깊어진다. 별거 아닌 하찮은 것들이 행복으로 바뀌어 유월의 밤하늘을 수놓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그때 정말 그 시간이 좋았을까 싶다. 지금의 내가 그 당시의 아버지 자리였다면 나는 그 저녁 시간이 그렇게 반갑지 만은 않았을 것 같다. 여름이 오기 전 오뉴월의 저녁에는 종종 그렇게 저녁을 먹었으니까 평일에도 마당에서 저녁식사 시간을 가졌다. 아버지는 새벽에 눈 떠서 멀리 있는 회사까지 가야 했다. 버스를 타는 곳까지 열심히 걸어가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꾸벅꾸벅 졸면서 회사에 출근을 했다. 퇴근을 해서 올 때에도 마찬가지다.  


옆집 가족들과 어울려 저녁식사를 즐겁게 했지만 주로 어머니들끼리만 잘 아는 사이였다. 아버지들은 대체로 회사에서 일을 하는 시간이 많고 가끔 주말에 이발소에서 마주치면 어색하게 아는 척을 했다. 이발소에서 하나의 주제로 아버지들끼리 이야기를 하게 되면 너도나도 한 마디씩 하며 어울렸지 어머니들처럼 매일 나물을 다듬으며,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아이들의 문제로 이야기를 친근하게 하지는 않았다. 아버지들은 가족들끼리 어울리는 자리가 대체로 어색했다. 술이 한 잔 들어가면 말이 많은 사람이 있고, 또 그 말을 대체로 계속 듣는 사람이 있다. 그러다가 술자리가 무르익어 깊어지면 아내에게 끌려 집으로 가곤 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면 어제 너무 마신 탓에 아침에 출근이 힘들었다는 아줌마의 말을 듣는다.  


아버지는 속내를 거의 내보이는 스타일이 아니라 별로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러지 않았을까. 아버지는 눈을 감는 그날까지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고통도 얼굴을 조금 일그러트려가며 참을 뿐이고 말을 아꼈다. 왜 그렇게 말을 아꼈을까. 사람은 아닌 것 같지만 다 하나씩 숨기는 뭔가가 있다. 아무리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라도, 가장 가까이 있기 때문에 숨기는 것이 있을지도 모르는, 그래서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걱정거리를 안겨주지 않으려 애쓰는지도 모른다.


진실은 언제나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상처 입혀요.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을 위해서 늘 거짓말이 필요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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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자주, 늘 가던 곳의 멕시칸 치킨집이 그날 나오지 않았다. 이로써 벌써 두 번째 팽 당했다. 보통 집으로 들어갈 때 전화를 걸어 주문을 하고 포장을 받아서 간다. 10년이 넘게 그러고 있으니 후라이드 치킨은 언제나 우리 동네 멕시칸 치킨집이다. 나의 장점이라면 뭔가를 사러 가거나, 장을 볼 때 원하던 물품이 없을 시에는 항시 차선책을 강구해 놓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최선책이 실패했다고 해서 허망해하지 않는다. 그러나 멕시칸 후라이드 치킨에 대해서는 그게 무너졌다. 오래전이지만 우리 동네 멕시칸 치킨 집이 문이 닫혔을 때 다른 여러 곳의 후라이드를 사 먹어 봤지만 우리의 입맛에는 우리 동네 멕시칸 치킨집 만한 후라이드가 없었다. 그건 순전히 기호에 해당하는 것이며 기호 속에는 튀김가루의 맛이 크게 좌지우지할 것이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체인점마다 염지가 얼마나 잘 되어 있느냐에 따라 치킨의 맛도 다르다. 비슷한 양의 나트륨도 튀김가루에만 염지가 되어 있느냐, 치킨의 겉으로만 염지가 되어 있느냐, 아니면 치킨의 속살까지 염지가 되어 있느냐에 따라 튀김가루의 두께가 달라지고 또 맛도 다르다.


이번에도 팽 당하고 난 다음(보통은 팽 당하면 다음 날 사 먹었는데) 이 허망함을 달래 보려고 동네의 치킨 집을 찾아다녔다. 먹고 싶은 날 후라이드를 먹으리라, 하는 간절한 마음 때문에 다음 날로 미루지 못했다. 무릇 치킨이란 먹고 싶은 그날, 바로 먹어야 한다. 후라이드에는 그런 마력이 숨어 있다. 그래서 미친 척 동네의 치킨집을 검색해서 그 앞을 지나다녀봤다. 근방 400미터 안에 치킨 집이 열 군데가 있었다. 비에이치씨, 비비큐, 교촌, 굽네, 멕시칸, 가마치 통닭, 케이에프씨, 다가치 통닭, 처갓집, 페리카나가 있었다. 게다가 닭갈비 집까지. 실로 대단했다. 우리 동네는 선박회사가 바로 코 앞에 있어서 회사원들이 퇴근 후 우르르 흘러나오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치킨 집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깃집, 족발집, 선술집, 국밥부터 중국집, 칼국수를 파는 곳까지. 카페와 등등등. 확실하게 재보지는 않았지만 400미터도 아닌 것 같다. 양 사방으로 200미터 정도? 그래야 걸어서 들어가기 쉽기 때문이다. 400 미터면 너무 멀다. 회사원들이 퇴근하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400미터를 걸어서 가기란 너무 고된 일이다.

 

일단 치킨 집만 놓고 보면 매장에 제일 사람이 많은 곳은 비비큐였다. 그곳은 최근에 생긴 집으로 실내가 가장 카페에 가까웠다. 그래서 여자들도 많이 있고 노래도 흘러나왔다. 그 외 보통의 치킨 집은 배달 위주가 되고 매장 내 홀은 테이블이 두서너 개 정도 있을 뿐이었다. 일단 후라이드를 먹기로 했으니 한 마리 튀겨 가기로 했다. 후라이드는 삼계탕처럼 어디든 다 엇비슷하니 맛있다. 매장에 사람이 별로 없고 빨리 될 만한 곳을 찾다가 비에이치씨에서 후라이드를 튀겼다.

 

보통 일을 하고 들어오면서 전화를 동네 멕시칸 치킨 집에 전화를 한다. 한 30분쯤 걸리기 때문에 가서 픽업해서 집으로 들어가면 되는데, 전화를 건 날이 쉬는 날이면 일하는 근처의 멕시칸 치킨 집에서 후라이드를 해가는 날도 있다. 이게 이상하지만 동네의 멕시칸만큼 맛이 없다. 같은 멕시칸이라고 해도 기름의 상태나 뭐 튀김가루에 들어가는 미묘한 양의 조절이라든가, 그런 것에 따라 맛이 달라질 텐데 맛이 없다고 느꼈다. 그런 이유를 제외하고 생각해보면 일하는 근처의 멕시칸 치킨집은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있어서 인지 종류가 한 서른 가지가 넘게 있었다. 치킨에 관한 요리가 아주 많았다. 그리고 동네 멕시칸에 비해서 치즈볼도 주고 껍질 튀김도 주며, 무엇보다 포장을 하면 2천 원을 깎아준다. 그래서 한 마리를 만 오천 원에 먹을 수 있다. 그렇지만 동네의 멕시칸 보다 맛이 많이 떨어졌다. 동네의 멕시칸에는 치킨의 종류가 그렇게 많지 않다. 우리가 아는 후라이드, 양념, 반반, 마늘, 그 정도뿐이다. 아마도 치킨에만 집중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포장을 한 비에이치씨의 후라이드도 맛있었다. 그러나 튀김옷의 맛이 동네의 멕시칸(모든 멕시칸이 아닌) 후라이드를 따라오지 못했다. 맛은 있으나 더 맛있는 후라이드의 맛에 매료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동네 멕시칸 집에서는 사장님이 직접 만든 간장 양념을 주는데 이게 정말 맛있다. 분명 꿀을 넣은 것 같은데 후라이드와 너무 잘 어울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 양념을 추가하면 얼마냐고 하니까 사장님은 그런 것 없다며 하나 더 넣어주기도 한다. 그 맛을 보고 집에서 엇비슷하게 만들어서 두부를 푹 찍어 먹기도 했다. 하지만 그 맛은 나오지 않았다. 엇비슷하긴 하나 간장의 맛에 과하지 않은 달달한 맛이 섞인 양념은 따라 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다른 치킨집의 후라이드가 그런 것이다. 엇비슷하긴 하나 그 맛은 아닌 맛.

 

그나저나 동네에 이렇게 많은 치킨 집이 있었다니. 치킨을 싫어하는 한국 사람은 없고, 일인일 닭인 요즘 치킨 집을 하면 모두가 장사가 잘 될 것 같은데 내막은 또 그런 게 아니니, 모두가 다 잘살기보다 모두 못살지 않게 되는 그런 날은 오지 않는 것일까. 그나마 아직까지는 둘둘, 네네, 호식이, 60계는 보이지 않고 있다. 곧 들어오겠지.


밑의 사진에는 멕시칸과 비에이치씨가 있다. 어느 후라이드가 멕시칸일까. 그리고 간장을 따라 만들어서 두부를 푹 찍어 먹어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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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차를 타기 위해서 버스 정류장까지 미친 듯이 뛰었다. 이런 날이었다. 봄의 중간, 한창 대학의 시작을 알리는 꽃이 캠퍼스에 피고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대학의 정취에 취해갔다. 학교 앞 거리의 술집에는 학생들로 바글바글했다. 그러다가 막차가 올 시간이면 술집에서 마시던 학생들이 우르르 나와서 막차를 타기 위해 전투를 벌인다. 막차를 타지 못하면 버스를 타고 꼬박 1시간 넘게 가야 하는 거리를 걸어서 가거나 자취하는 친구 방에서 신세를 지거나 해야 한다. 그래서 술을 마시다가 막차가 다가올 시간이면 그 간극에서 갈등을 한다. 친구의 자취방에서 불편하게 잠을 자는 것을 선택하면 마음 놓고 계속 술을 마실 수 있지만 편안하게 집에서 잠이 들려면 지금 일어나서 가방을 들고 미친 듯이 달려야 한다. 하지만 친구 놈이 고향에 내려갔다는 걸 잊고 있었다. 일어나서 술집을 나와 버스정류장까지 뛰었다. 술 때문에, 가방 때문에 숨이 찼다. 비까지 내렸다. 비가 얼굴에 부딪히는 걸 느끼며 정류장에 도착했다. 이미 많은 아이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가 버스가 정차하니 왕창 몰려들어 아수라장이었다. 하지만 버스를 타지 못하면 그 뒷일은 생각도 하기 싫다. 악착같이 사람들 틈으로 파고들어 버스에 올랐다. 가방은 다 구겨지고 도면은 엉망이 되었다. 비를 맞아서 몸은 축축한데 계절이 춥지도 덥지도 않았지만 땀이 계속 흘렀다. 비 때문에 창문을 닫아놔서 비 비린내와 사람들의 숨 냄새가 뒤섞여 역겨웠다. 땀 때문에 비 맞은 몸이 계속 축축했고 내 몸에서 제일 더러운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땀이 등으로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얼굴의 옆으로 땀이 흘렀다. 앉아있는 사람들의 정수리에서 비 비린내와 머리 냄새가 올라왔다. 학생들은 막차를 탄 기쁨을 입을 벌려 언어로 표현했다. 마신 술과 피운 담배, 각종 안주의 냄새가 입을 벌릴 때마다 버스 안에 가득가득 쌓였다. 누군가 버스 창을 조금 열었는데 앉아 있는 사람이 비가 들어온다며 문을 닫았다. 역겨운 사람들의 숨 냄새가 대량살상 무기처럼 버스 안에 살포되었다. 나는 반도 오지 않았지만 중간에서 내리고 말았다. 버스 문이 열리고 버스에서 땅으로 한 발 디뎠을 때 상쾌함을 잊을 수 없다. 집에 걸어가려면 3시간은 걸어야 하지만 상관없었다. 자유로웠다. 기분이 무척 상쾌했다. 덥고 축축하던 등이 시원해지면서 발가벗고 물속으로 들어간 기분이었다.  사람들과 만남이 좋아서 막차가 끊기기 전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셨는데 버스 속에서 사람들이 이야기를 할 때 흘리는 숨 냄새가 싫어서 버스에서 내리고 말았다. 사람이 좋지만 사람이 싫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살 수는 없지만 사람이 드문 곳에서 살고 싶다. 인간은 어째서 이런 모순에서 늘 방황을 하는 것일까. 조금 걷다 보니 등에서 흐른 땀은 말랐고 가늘게 내리는 비는 시원했다. 택시도 없고 차비도 없지만 영혼은 단단하게 가지고 있었다. 밤하늘이 보였다. 밤하늘을 올려다본 적이 언제였을까. 하늘을 올려다본다는 건 고개를 뒤로 꺾어야 한다. 뒤로 고개를 꺾는 건 시원한 일이다. 목을 주무를 때 고개를 뒤로 꺾는다. 밤하늘을 올려다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시원하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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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2-05-30 2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41번 버스가 기억나 버렸네요.

교관 2022-05-31 11:14   좋아요 0 | URL
추억 속의 버스인가 봅니다

잉크냄새 2022-06-01 14:55   좋아요 0 | URL
대학 후문에서 집 근처까지 가던 버스였어요.
술에 취해 허둥지둥 막차로 올라타던 그 버스 풍경이 다들 비슷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