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깅 후 엘베샷


조깅만으로 살을 뺄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본다. 조깅을 거의 매일 10년 정도 하고 있으니 내가 내린 결론도 옳지 않은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깅을 시작한 지는 15년 정도 되었으나 처음 5년 동안은 달리는 것에 집중을 하지 않거나 달리고 싶을 때 달렸으니 5년은 빼고, 거의 매일(달린다고 하는 이유는 달리지 못하는 날을 제외하고 일 년에 350일 정도는 달리고 있다) 달린 지 10년 정도가 되었다. 나는 겸손과는 거리가 좀 먼 인간인데 조깅에 대해서 물으면 대체로 겸손해진다.


왜냐하면 운동을 매일 하는 사람은 알겠지만 자신이 하는 운동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다. 사람들은 보통 두 시간 운동을 했다고 하지만 두 시간 내내 운동을 하지는 않는다. 옷 갈아입고 벗고, 물 마시고, 허리에 손 올리고 주위 간섭하고, 휴대폰 보고, 앉아 있거나 샤워하는 시간이 운동 두 시간 중에 한 시간은 넘을 것이다. 그래서 하루 24시간 2시간 운동을 했다는 말은 거짓말이 된다. 그러니까 “나 이전에 3년이나 운동했는데?”라고 하는 사람의 말을 분리해보면 3년 내내 운동을 한 것이 아닌데 자신은 3년 내내 온동을 했다고 착각을 한다. 그런 점에서 매일 조깅을 하지만 하루에 한 시간 넘게 하는 거라 달리기에 대해서 물어보면 겸손해진다. 그저 조금씩 달리고 있어요,라고 말해 버린다.


요즘 조깅은 땀으로 옷이 홀딱



조깅으로 살을 빼려면 하루에 8시간씩 달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요즘 같은 날 조깅을 한 시간 정도 하고 나면 사진에서 처럼 온통 땀이다. 땀으로 옷을 쥐어짜도 될 정도다. 그러나 이건 전부 수분이다. 소금기라든가 몸 안에 찐 살이 빠져나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운동으로 살을 빼려면 조깅보다는 살이 찐 부위를 빼려는 고강도 근력 운동이 더 좋지 싶다.


그동안 주위에서 내가 매일 조깅을 하니까 따라붙었다가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 몇 있다. 그들은 40대 회사원들로 회사에서 대체로 한 자리까지 오른 사람들이다. 그 자리까지 오르기 위해 열심히 일을 했다. 가정도 돌봐야 했다. 주위 인간관계도 원만히 유지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몸을 돌보지 못했다. 회식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술로 달랜 후 그다음 날에는 꼭 짬뽕 같은 국물 음식으로 배를 채웠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살이 너무 찐 것이다. 그래서 조깅을 매일 하는 나 같은 경우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엇비슷한 체형과 체격을 유지하고 있어서 조깅을 할 때 따라붙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일단 달리는 것에서 문제가 생겼다. 무릎이 아파서 거의 걷는 수준으로 달려야 했고, 몇 주일 동안 어느 정도 달리기에 적응이 되면 운동이 끝나고 집으로 들어가서 고픈 배를 채우기에 바빴다. 공복 상태에서 조깅을 권했지만 그러다가는 쓰러진다며 배부르게 먹고 나와서 조깅으로 소화를 시키고 집에 가서 야식을 또 먹는다. 이렇게 해서 살이 빠지지는 않는다. 어떤 이는 먹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을 빼기는 싫다고 했다. 근데 잘 생각해보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현재 먹는 그 맛 좋은 음식을 고르는 것이 행복한 고민이 아니라 그게 스트레스일 수도 있다.


살은 식단을 조절해서 빼고 조깅은 달리는 것 자체를 좋아해서 달리면 아주 좋다. 분명 인간은 언젠가 달리지 못할 때가 온다. 요즘은 통통한 어린이도 많지만 아이들은 대체로 말랐다. 아이들은 주로 뛰어다닌다. 늘 뛰어다니고, 자꾸 뛰어다니고, 계속 뛰어다닌다. 자신의 에너지를 측정할 수 없으니까 고갈이 될 때까지 끝없이 뛰어다닌다. 그렇게 에너지를 소비하니까 살이 찔 틈이 없는 것이다. 어린이 때를 벗어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을 내서 달리지 않는 이상 그저 걸어 다니거나 붕어처럼 가만히 앉아만 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어 늙어 버리면 더 이상 달리고 싶어도 달리지 못하는 날이 온다. 그래서 그전까지 달릴 수 있을 때 실컷 달리는 것이다. 이런 폭염에 두 시간 걷는 건 너무 짜증이 나지만 한 시간 달리는 건 아주 상쾌하다. 숨이 끊어질듯한 그 데드 포인트까지 닿는 것도 아주 기묘한 경험이다. 이 시점을 넘기면 심장에 강한 무리를 주어 어떻게 될지 모르겠구나, 하는 정도까지 가는 경험도 한다.


눈으로 들어오는 광경을 뇌에 리플렉션 시킬 때 나만의 방법으로 새로운 세계로 입력한다. 그런 일들을 매일 조깅하면서 가질 수 있다. 조깅을 하는 동안에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지만 잠깐 쉴 때에는 많은 상상을 한다. 그리고 뇌의 7구간에 입력해놓은 상상을 조금씩 글로 풀어내 보기도 한다.


조깅이 끝나면 들어와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는다. 단, 적당하게 먹는다. 맥주는 한 캔, 치킨은 4조각 정도, 국물음식은 일주일이나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배부르지 않게 맛있게 먹는다면 좋아하는 음식을 매일이고 먹으며 뺀 살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말을 하는 나도 근래에 마요네즈의 미친 맛에 현혹되어서 지금까지 몇 통을 먹어 버렸다. 그랬더니 사진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겨드랑이와 그 밑으로 살이 쪘다. 살이 찌는 건 그렇다고 생각한다. 10년을 조깅을 하면서 비슷한 몸을 유지해도 며칠만 배부르게 먹게 되면 – 마요네즈를 왕창 곁들이면 이전에 했던 운동은 전혀 무용지물이 된다. 그냥 살이 쪄 버린다. 하루 많이 먹고 하루 많이 운동해야지, 한다고 찐 살이 빠지지는 않는다.


우리가 가지는 상식 중에서 잘 못된 상식이 아주 많은데 그중에서 ‘죽’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아플 때 죽을 먹거나 소화가 안 되면 죽을 먹는데 사실 죽을 계속 먹으면 위에 더 좋지 않다. 소화는 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물을 입 안에서 씹을 때 나오는 침 속에도 분해액이 있어서 거기서부터 소화를 하는 작용을 하는데 죽은 그런 과정이 없이 그대로 위로 꿀꺽 넘어간다. 그러다 보니 죽이 좋다고 계속 죽만 먹다가는 나폴레옹 꼴이 난다. 나폴레옹은 위장 장애가 있기로 유명했다. 그 병이 평생 자신을 괴롭혔다. 그래서 죽을 많이 먹었는데 그게 오히려 독이 되었다고 한다. 대식가에 음식을 아주 빨리 먹고 탄수화물 중독이었다. 심각한 비만이 되었는데 세인트 텔레나 섬에서의 말년을 묘사한 초상화에는 엄청난 지방으로 둘러싸인 펭귄의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조깅을 하면 살이 빠진다는 생각은 죽을 계속 먹으면 소화가 잘 될 거야, 하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단 기간에 살을 빼고 몸을 만들어서 바디 프로필을 찍는 건 좋으나 그 몸을 죽 끌고 유지해야 하는데 프로필 촬영만 끝나면 이전보다 더 살이 쪄 버리는 경우를 본다. 내가 일하는 곳에는 위에 거대한 헬스클럽이 있어서 그런 모습을 자주 본다. 운동 자체를 목적을 가지고 하는 건 어쩔 수 없으나 조깅 정도는 즐겨야 매일매일,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다. 그리고 해 보면 달리기만큼 원초적으로 즐길 수 있는 운동이 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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씹었을 때 후아 하며 뜨거운 김이 입 밖으로 나오며 바삭하며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튀김의 맛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튀김은 뜨거울 때 먹으면 정말 맛있다. 그래서 새 모이를 받아먹는 새끼 새처럼 앉아서 기름에서 바로 꺼냈을 때 젓가락을 휙휙 저어서 먹는 맛이 있다. 맛있는 튀김은 식어도 맛있지만 식은 튀김은 뜨거운 튀김보다 아무래도 그래. 후라이드도 식은 것도 맛있지만 뜨거울 때 후아 하며 먹는 그 맛이 있다.


튀김은 기름 맛으로 먹는다. 기름 맛으로 먹는 맛이 좋다는 걸 알았을 때가 초등학생 5학년인가, 그때쯤이었다. 내가 어릴 때에는 튀김을 그렇게 먹지 않았던 것 같다. 요즘처럼 에어프라이어가 집집마다 있던 것도 아니고. 현재 우리 집에는 아직도 에어프라이어가 없다. 편리하긴 하나 아무래도 있으면 자주 해 먹지 싶다. 음식이란 자고로 과하지 않게 먹는 게 좋다. 튀김도 분명 몸에 해롭지만 적당하게만 먹고 운동을 해준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본다.


커피머신과 비슷하다. 커피머신을 몇 해 전에 누군가가 선물로 나에게 주려고 했을 때 아이구 감사합니다만 정중하게 거절했다. 커피는 하루에 한 잔 마시는 게 나에게는 딱이다. 커피머신이 집에 있으면 아무래도 몇 잔씩 계속 만들어서 먹게 된다. 커피가 몸에 좋은 음식이라고는 하나 어떻든 음식은 과하면 별로다. 그게 나의 생각이다. 피망이 몸에 좋다고는 하나 과하면 별로다. 왜냐면 피망을 많이 먹었다고 치면 그 많은 피망이 위에서 다 소화가 되지 않는다. 그러면 다음 날 아침에 피망의 모양을 그대로 유지한 채 변기 속으로 빠져나온다.


어떻든 현재, 현대인들에게 음식은 생존보다는 그저 선택의 문제가 되었다. 손만 뻗으면 어떤 음식이든, 어느 시간이고 간에 먹을 수 있다. 자제와 절제가 필요하다.


내가 어릴 때에는 튀김을 그렇게 먹지 않았는데 나의 조카를 보면 현재, 조카도 튀김이나 튀긴 음식에 시큰둥하다. 그래서 조카는 빼빼 마르고 손가락에 살도 없다. 참 요즘 어린이 같지 않다. 그 이유를 보면 지 엄마가 집에 에어프라이어나 커피머신 같은 것들을 집에 두지 않으며 어릴 때부터 주로 할매(나의 모친)가 만든 멸치볶음 같은 것에 맛을 들이게 해 놨다. 그리고 초등학교를 대안학교에 보냈는데 거기는 아이들의 음식을 부모들이 돌아가면서 점심을 한다. 그래서 아이들 음식에 모두가 진심이다. 어른들이 우르르 아이들이 먹는 음식에 신경을 쓴다. 아무래도 어릴 때부터 먹는 것에 습관을 들여놓으면 튀김이나 치킨 같은 것에 달려들지 않는다. 조기교육이란 꼭 영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러다가 내가 5학년일 때 기름 맛에 확 빠졌던 적이 있었다. 튀김이라기보다 전에 가까운데, 친구의 누나가 깻잎으로 묽게 반죽한 밀가루 옷을 입혀 프라이팬에 기름을 잔뜩 부어서 촤르르 소리를 내가며 깻잎튀김 같은 깻잎전을 부쳐 주었다. 이게 전혀 맛이라고는 없어야 하는데, 그때 놀다가 허기가 져서 그랬는지 맛있는 것이다. 누나는 우리보다 고작 2살이 많았는데 엄마들이 하는 것을 용케도 잘 익혔는지 깻잎에 밀가루 옷도 입혀서 촤르르르 하며 튀김을 만들어 주었다. 친구의 부모님은 맞벌이 부부로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야 집으로 들어오셨다. 그래서 친구의 누나는 일찍부터 동생을 돌봐야 했고 덩달아 누나가 없었던 나까지 한데 엮어서 친동생 취급을 했다. 그때 깻잎전을 튀김이라 부르기는 민망하지만 워낙 얇아서 씹으면 바삭거렸다.

튀김도 이 집이나 저 집이나 엇비슷하니 다 맛있다. 그러나 맛에 차이가 있다. 튀김이 먹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자주 가는 튀김 집에서 튀김을 포장해온다. 그 집은 튀김이 유명해서 튀김 집이라고는 하지만 그 집에는 어묵이 정말 맛있다. 어묵 국물에 미역을 넣어서 끓이는데 그게 기가 막힌다. 국물을 떴을 때 미역이 들어있으면 호록 같이 먹게 된다. 참 맛있다. 국물만 따로 사 가는 사람도 있다. 집에 국수 삶아서 어묵 국물에 말아먹으려는 것이다. 김밥도 순대도 있는데 인기가 가장 많은 역시 튀김이다. 한, 몇 년 동안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반환점에 있는 이곳 튀김 집에 들러 매일 오뎅, 어묵을 한 두 개씩 먹었다. 겨울이면 어김없이 들러서 차가워진 몸을 따뜻하게 해 주고 다시 달리곤 했다.


이 튀김집의 특징이라면 그저 길거리에서 서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곳인데 일하는 직원이 최소 5명이나 된다. 시간별로 돌아가면서 음식을 만드는데 5명 중에 3명은 외국인이다. 베트남인지 태국인지 필리핀인지, 타국에서 온, 갓 스무 살을 넘긴 앳된 여성들이 일을 한다. 그녀들은 이른 나이에 한국 남자에게 시집을 왔다. 어쩌다가 이 튀김집을 소개받아 일을 하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계속 그런 여성들이 로테이션을 한다. 그녀들은 아직 한국말이 서툴러 손님과 응대하는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뒤돌아 서서 열심히 재료를 손질하거나 김밥을 말고 튀김옷을 입히거나 떡볶이 양념을 만든다.


집으로 포장해온 튀김을 맥주와 함께 먹으면 아주 맛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튀김은 김밥 튀김이다. 김밥을 튀기기만 했을 뿐인데 어찌 그리 맛있을까. 하나에 400원이다. 2,000원어치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가성비가 이만한 음식이 또 있을까. 그러나 김밥 튀김은 늘 금방 없어진다. 다른 튀김처럼 많이 만들어 놓으면 되는데 김밥 튀김은 꼭 만들어 놓은 게 다 나가면 다시 만들어 놓지 않는다. 왜 그럴까.


아무튼 바삭바삭 아사사삭 거리며 씹는 맛도 좋은 튀김을 먹는다. 오징어튀김도 맛있고 김말이가 역시 맛있다. 튀김을 된장 푹 찍어 한 입 먹어보자. 이 여름을 즐기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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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7-25 17: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에어프라이어는 없습나다. 커피 머신도.ㅋ
에어프라이어는 기름없이 튀길 수 있다는데 건강을 생각하시면
하나 장만해도 좋지 않을까요?
저희 집은 사면 이고 있어야할 형편이라서요.
거 친구의 누님 정말 기특하네요. 그래봐야 중학교1학년 아닙니까?

김밥튀김 맛있죠. 고추튀김도 맛있는데...ㅋ

교관 2022-07-26 11:28   좋아요 1 | URL
튀김은 그냥 기름에 튀겨 먹어야죠 ㅋㅋ 어쩌다 한 번 먹는데 기름없이 튀김을 먹기는 싫어요 ㅋㅋㅋㅋ
 


인간의 몸이라는 건 몹시 연약하다. 날카로운 것에 살짝만 베여도 살갗이 찢어지거나 벌어져 피가 난다. 심지어 종이의 날에도 손가락이나 손바닥이 베기도 한다. 휴대폰이 떨어져 운이 없으면 골절상을 입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잘못하여 넘어지기라도 하면 다쳐서 병원에 입원할지도 모른다. 어쩌다 모르는 이와 술집에서 난투극이라도 하고 나면 경찰서에 앉아있는 동안 서서히 얼굴에 난투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만큼 인간의 몸이란 아주 연약해 빠졌다.


내가 일하는 곳의 옆 가게에서도 며칠 전에 블라블라 해서 허리가 삐끗했는데 블라블라 병원에서 블라블라 물리치료 블라블라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인체라는 건 참 허무하다 할 정도로 약하디 약해 빠졌다. 약하디 약하다는 말은 꼭 쳇 베이커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런 것을 생각해보면 나는 다친 적이 거의 없다. 거의 없다는 말은 한 번 있었는데 그게 어린 시절이었다. 초3인가 그랬는데 아이들과 놀다가 넘어지면서 팔이 밖으로 꺾였다. 그때 깁스를 해서 학교를 다녔다. 깁스에 아이들이 낙서를 했고, 안이 가려워 젓가락 같은 것으로 쑤시기도 했다. 그때가 왜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가 하면, 운동장에 미끄럼틀이 있었다.


아이들이 미끄럼틀에서 놀았는데 양팔로 미끄럼틀의 양쪽을 잡고 공중으로 한 바퀴 돌아서 미끄럼을 탔다. 잘 설명을 못하겠지만 요지는 양팔을 다 사용해야만 하는, 양팔을 사용해서 공중으로 한 바퀴 돌아서 미끄럼을 탔는데 나는 그 밑에 앉아서 아이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나는 한쪽 팔을 깁스를 했기 때문에 당연히 아이들처럼 그렇게 미끄럼을 탈 수 없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요란하게 미끄럼틀을 타는 모습을 교장실의 창문으로 보던 교장에게 아이들은 잡혀갔다.


거기에 나도 끼게 되었다. 결국 혼이 심하게 났다. 이유는 양팔로 양쪽을 잡고 공중 돌기를 해서 발을 미끄럼틀에 디딜 때 쿵 하며 발이 닿는데 미끄럼틀이 빨리 망가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까지 사용을 못하게 되면 너희들이 물어야 한다, 라는 말을 교장의 입에서 들었다. 거기에 나도 끼어 있었다는 것이다. 저, 저는 한쪽 팔을 깁스했는데요, 같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할아버지 같은 교장실에 불려 가서 얼마나 겁이 났는데. 그때 교장실에 달려와서 우리를 구해준 건 담임이었다. 전혀 쓸모없는 담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그때만큼은 나의 편을 들어주었다. 깁스를 했는데 왜 이렇게 혼을 내냐고 교장에게 말했다. 내가 아마도 그 이후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교장이라든가, 교장실 더불어 교무실 같은 단어에 질색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때의 일을 잘 기억하고 있다. 깁스를 풀었을 때 당시에는 아주 무서웠다. 징 하며 그라인더로 깁스를 반으로 가르는데 꼭 나의 팔이 떨어져 나가는 상상으로 가득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어디가 부러지거나 골절이 되거나 심지어는 멍도 잘 들지 않았다. 10년이 넘게 조깅을 하고 있으니 조깅을 하는 동안에는 몸을 남의 몸처럼 마구 굴리는데도 다행히도 다치지 않고 지금까지 왔다. 코로나가 오기 전, 겨울에 조깅을 하다가 그루터기인지 돌부리에 걸려 심하게 넘어졌는데, 넘어질 때 땅바닥에 손바닥을 탁 대었는데 손에 아대 같은 장갑을 끼고 있어서 장갑만 좀 찢어졌다. 문득 생각해보면 부러지거나 골절상을 입어서 병원에 가본 적이 없어서 막상 그렇게 다치게 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정보가 현재로선 없다.


인간은, 인간의 몸은 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요즘은 약국에 화상으로 인해서 약을 구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여름이니까 선텐을 하다가 심하게 태워서 오는 사람도 있지만 남자들의 경우 요리를 하다가 손을 데거나 화상을 입어서 약을 구하러 많이 온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의 몸은 일상에서 대부분 다치거나 위험요소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을 보호하기 위해 고글을 늘 착용하고 다니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 오늘 크게 다친다는 의식을 하지 않고 편안하게 다닌다. 만약 그런 것을 매일 생각하며 다닌다면 피곤한 일이다. 그렇지만 병원의 응급실에는 신체가 손상되거나 훼손되어서 오는 환자들이 매일매일이다.


인간의 몸은 참으로 손상되기 쉬운 피부로 둘러싸여 있다. 이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피부가 딱딱한 뼈를 감싸고 있다. 반대였다면 인간의 활동이 좀 더 확대되었을까. 그런데 딱딱한 껍질 속에 들어가 있는 달팽이는 자신을 보호해주는 딱딱한 껍질이 한 번 깨지면 다시는 복구가 안 된다. 그에 비해 피부는 찢어져 피가 나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딱딱한 딱지를 생성한다. 연약하기만 한 인간의 몸은 강하기만 할 것 같은 인간의 뼈를 오히려 위로하고 보호하고 있다. 만약 내가 한없이 하찮고 연약한 인간이라 주위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이 든다면 분명 누군가는 연약한 그 사람에게 큰 위로를 받으며 지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늘은 붉은 양념으로 맛있는 두루치기를 해 먹자. 쓰으 쓰으 혀가 매워서 내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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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소리


이 무더운 여름날, 잘 보내고 있습니까.

오늘 진정으로 여름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세상이 멎은 듯한 고요함 속에서 여름을 알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매미들이 울부짖은 소리입니다.

매미소리는 여름에만 들을 수 있습니다.

여름에 보름 동안 세상에 잠깐 나와 신나게 울다가 가버리기 때문입니다.

매미소리가 소거된 여름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저는 매미소리가 없는 여름은 여름이 아니라 그저 혹독하게 뜨거운 날들의 연속이라 생각합니다.

매미들이 합창을 하고 나뭇잎이 흔들리는 바람이 부는 여름이 이상적인 여름입니다.

사람들은 매미소리가 시끄럽다고 하는데 들어 보세요.

시끄러운 소리가 아닙니다.

이만큼 여름에 듣기 좋은 소리가 있을까요.

여름의 영혼을 일깨우는 음률입니다.

매미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는 선 주위의 온갖 것들의 소음 때문입니다.

오토바이 소리, 자동차 소리, 초인종 소리, 전화 소리, 물건 끄는 소리, 에어컨 실외기 소리 같은 소음이 혼재하기에 우리 귀는 매미소리가 시끄럽다고 느낍니다.

소음은 대체로 인공적인 소리들입니다.

그런 생명력이 결여된 소리 대부분이 소음입니다.

몹시 듣기 싫고 신경을 긁습니다.

그에 비해 매미소리는 청아하고 맑고 기분이 좋습니다.

저는 어릴 때에도 매미소리가 가득한 여름이 좋아서 외가에 가면 작은 초등학교 벤치에 누워 매미소리를 듣곤 했습니다.

벤치에 누워 있다가 실눈을 뜨면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바삭바삭거렸습니다.

왜 이렇게 저는 매미소릴 좋아할까요.

매미 소리를 좋아하는 건 매미소리는 소년 시절의 나로 돌아가 버린 기분이 들어서 입니다.

기시감, 기분 좋은 데자뷔가 느껴집니다.

개울에 발등만 담그고 놀던 그 시원함이 듭니다.

매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당신은 즐거운가?

라는 질문을 받으면 당장은 확실하게 대답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과 같이 듣고 싶기 때문입니다.

혼자서 매미소리를 들을 때에는 어떤 것으로부터도 방해받고 싶지 않습니다.

진정 여름의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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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걸맞은 이야기 하나 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 살던 동네는 일명 달동네라고 불리는 동네였습니다. 지금은 재개발 구역이 되어서 아파트가 들어서려고 전부 확 밀어버린 상태입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사람들이 빠진 흉흉한 모습이지만 동네가 있었습니다. 골목이 있고 골목을 따라 단층짜리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그래서 옥상에서 옥상으로 뛰어넘어 이동이 가능한, 그런 동네입니다. 골목이 여기저기 미로처럼 뻗어 있어서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놀기 좋은 동네였습니다. 그러나 달동네라는 이름처럼 못 사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사는 마을이었습니다. 집은 작고 좁은 방들로 이루어졌습니다. 단칸방인 집들도 많아서 혼자서 마을에 들어와서 사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전부 가난하고 돈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골목 안쪽 골방에 있는 집에서 누군가 말도 없이 목숨을 끊어버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화장실이 마당에 딸려 있어서 겨울에는 아주 불편했습니다. 동네의 모습이 마치 홍상수 영화에 나오는 그런 골목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의 집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달동네 뒤에는 산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무덤가가 있어서 우리는 담력시험을 하며 놀았습니다. 마을에 새로운 집이 이사를 오면 그 집의 아이가 우리와 같이 끼어서 놀려고 하면 저녁에 어김없이 무덤가에서 담력시험을 했습니다.


담력시험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무덤가가 보이는 지점에 우리가 자리를 잡고 야구공을 무덤가에 있는 중간 무덤에 놓고 옵니다. 그러면 다음 사람이 가서 가져오고, 가져온 야구공을 다음 사람이 다시 가져다 놓는 것입니다. 무덤가에 들어가는 건 정말 소름 끼칠 정도로 겁이 납니다. 아마 모두가 무서운데 그걸 티 내지 않으려고 아이들은 이를 악 물고 야구공을 갖다 놓고, 들고 오곤 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무덤가 앞에 방송국이 들어온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달동네라지만 대부분 세 들어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중에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내심 방송국이 들어와 땅값이라든가 집값이라든가, 상승의 기대를 가졌습니다. 방송국이 들어서면서 우리가 늘 다니던 산속의 좁은 길을 밀어 버리고 도로 공사를 했습니다. 길이 아닌 길에 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서서히 겨울이 다가오고 겨울이 다가올 때쯤 도로에 아스콘은 아직 안 깔렸지만 산 위에 큰 도로가 드러났습니다. 이 도로가 끝나는 곳에 방송국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방송국 너머 옆에 무덤가가 있게 됩니다. 아직 방송국 공사는 시작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담력시험을 하러 산에 올라갔습니다. 이전과는 다르게 담력시험이 끝나면 그 도로를 나란히 서서 어깨동무를 하고 내려왔습니다. 왜냐하면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방송국도 들어오는데 이상하게 마을에서 죽은 사람이 또 발견되었습니다. 세상의 힘든 사람들이 다 이 동네로 와서 고요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 같았습니다. 동네에는 오래된 우물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서도 사고가 났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동네에 있는 오래된 우물에는 늘 그런 소문이 따라다닙니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물은 봉해졌습니다. 돌로 된 우물인데 쇠로 된 뚜껑을 올리고 쇠줄로 꽁꽁 묶어둔 우물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우물 안을 본 적이 없습니다. 오래전에 하얀 소복을 입고 뛰어들어 죽어버린 한 여자의 시체가 아직 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우물 주위는 온통 집들이라 낮에는 우물 근처에서 놀아도 사람들이 많이 왔다 갔다 했지만 해가 지고 어둑해지면 주택가 중간에 있어도 우물가에는 사람들이 얼씬거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방송국 공사가 시작되고 무덤가에 밤이 되면 우물에 빠진 그 소복의 여자가 나타난다는 이야기가 아이들 사이에서 떠돌고 있었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나 우물에 빠진 여자는 발견되지 못한 채 무덤에도 들어가지 못했는데 방송국이 산 위에 들어오는 대신 마을의 흉흉한 소문이 있는 우물을 드러내고 그 자리에 정화시설을 차려준다고 마을 통장과 이야기를 했다는 겁니다. 우물이 없어진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소복을 입은 여자는 귀신이 되어서 매일 밤 무덤가에 자정이 지나면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자정이 지나야 나타나니까 거기서 놀아도 그 전에만 내려오면 됩니다. 사실 자정이 아니라 해만 넘어가면 그곳은 무섭기 때문에 아예 거기에 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특별히 놀 것이 없었기 때문에 담력시험을 하며 놀다 보니 그것이 마치 하나의 의식처럼 되어서 한 학년이 올라가도, 어떤 아이가 생일을 맞아도 우리는 담력시험을 했습니다. 담력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그 녀석은 마을에서 냉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악을 쓰고 담력시험을 통과하려고 했고 너무 어린아이들 빼고는 대부분 담력시험을 해냈습니다. 그것으로 우리는 무척 뿌듯해했고 서로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점점 겨울이 다가왔고 산속의 밤은 빨리 찾아왔습니다. 동네에는 또 한 집이 이사를 왔고 그 집의 아이와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계기는 역시 담력시험이었습니다. 야구공을 무덤가에 있는 중간 무덤에 갖다 놓고 다음 사람이 가져오고. 늘 하던 대로 우리는 수순을 밟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사 온 집의 아이가 공을 가지러 갔습니다. 그리고 무사히 들고 왔습니다. 우리는 그 아이를 우리의 멤버로 환영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깨동무를 하고 도로를 내려왔습니다. 날이 어두워 산속은 바람 부는 소리에 더욱 무섭게 보였습니다. 그때 새새새색하는 소리가 나무 위에서 들렸습니다.


우리 중에 한 녀석이 저기 위에, 라며 가리키는 곳을 보니 나무 위에 하얀 소복을 입고 머리를 펄럭이며 입을 있는 대로 벌리고 우리를 내려보는 귀신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전부 그 귀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깨동무는 무너지고 누구랄 것도 없이 소리를 지르며 동네로 마구 달려서 내려왔습니다. 모두 겁을 집어 먹었습니다. 귀신이 나타나면 모두가 다 같이 볼 수 있어서 덜 무서울 줄 알았는데 그건 완전한 착각이었습니다. 귀신을 보고 놀라서 기겁을 하는 친구들의 모습에 더 겁을 먹게 됩니다. 그런데 그다음 날 알고 보니 그건 귀신이 아니라 냉장고를 덮는 큰 비닐이었습니다. 그 비닐이 바람에 날려 나뭇가지에 걸려 파르르르 하는 모습을 우리는 동시에 귀신으로 착각을 한 것입니다.


어째서 모두가 그 비닐을 귀신으로 봤을까요. 아마도 우물에 빠져 죽은 여자의 소문이 내내 머리에 남아있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고 맙니다. 우리들 중 그 헛것을 본 후 계속 식은땀을 흘리고 학교에서 조퇴를 하고 집에 일찍 오거나 계속 누워만 있게 된 녀석이 있었습니다. 녀석은 우리 중에서 가장 담력이 센 녀석이었습니다. 사실 이 담력시험도 그 녀석이 생각해낸 것이었습니다. 학교에서도 용감한 녀석이 그 녀석이었습니다. 학교에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밤만 되면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 녀석이 몇몇과 학교에 남아서 그 이순신의 이빨이 진짜인지 관찰했습니다. 이순신 동상은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 어둠이 깔렸습니다. 어둠이 깔리고 저녁 8시가 지나 밤 9시를 향했습니다. 학교의 교문은 닫히고 녀석은 아이들과 함께 가이즈까 향나무 뒤에 숨어서 9시가 넘어서 이순신 장군 앞으로 살금살금 갔습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 녀석보다 먼저 친구들이 그 앞으로 갔는데 그만 으악 이라는 비명과 함께 교문으로 도망을 가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이순신 동상이 이를 드러냈다. 라며 말이죠. 하지만 그 녀석은 살금살금, 손에 삽 같은 걸 들고 용케도 이순신 장군 동상 앞으로 갔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동상은 거의 2미터가 될 정도로 컸습니다. 그 녀석은 그 밑에서 단으로 올라서 이순신 장군의 얼굴을 살폈습니다. 그랬더니 자동차가 학교 밖에서 지나갈 때 빛이 이순신 얼굴에 닿으면 이순신 장군의 입에 낀 먼지가 하얗게 이빨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녀석은 때 아니게 옷소매로 그 먼지를 털어냈습니다. 그 뒤로 이순신 장군이 밤마다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는 소문은 사라졌습니다.


그런 녀석이었습니다. 그런 녀석이 이상하지만 산 위에서 헛것을 본 뒤로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습니다. 녀석은 점점 학교에 오지 못하더니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쇠약해졌습니다. 녀석의 부모님은 결국 마을을 떠나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리고 녀석은 병원에 다닌다는 소식까지만 들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된 사살이지만 그날, 헛것을 본 그날. 사실 마을에서는 동네 어른들이 우물가에 모여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날 누군가가 그랬는지 그동안 봉해져 있던 우물의 쇠붙이로 된 뚜껑이 반쯤 열려 있었다고 하더군요. 마을에서는 도대체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또 어떤 사람이기에 그 무겁고 단단한 쇠붙이 뚜껑을 열어 놓았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어른들 몇 명이 붙어서 뚜껑을 닫는 데만도 시간이 엄청 걸렸다고 하더군요.


아직도 그건 의문입니다. 우물의 뚜껑이 왜 열렸는지. 그리고 무덤가에서 본 헛것이 진짜 헛것인지. 그 헛것을 우리 모두가 귀신으로 봤다면 정말 그 여자의 귀신이 아닐까. 그리고 녀석은 왜 시름시름 앓았을까. 모든 것은 의문으로 남기고 시간이 그대로 흘렀습니다. 조깅을 하면서 예전의 동네를 지나쳐 오곤 했습니다. 그리고 우물이 있던 그 골목까지 깊게 들어가 봤습니다. 가면 그때의 일이 떠오릅니다. 그 녀석은 지금 어떻게 지낼까. 만약 귀신이 있다면 우물이나 마을 자체가 없어진 이 마당에 어디서 지낼까. 그런 생각들이 듭니다.


사실 귀신은 없다고 생각하는 축에 속하는 인간이 접니다. 그러나 가끔 이렇게 귀신이나 영적인 존재 같은 것들이 있다고 믿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작년에도 꿈을 꿨는데 죽었던 우리 집 강아지가 나타났습니다. 녀석은 정말 밖에 조깅을 하러 나가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제가 전력을 다해서 달리면 옆에서 같이 신나게 달렸습니다. 꿈에 나타나서 또 밖에 나가자고 하기에 나가서 신나게 달리고 오니 또 나가자고 해서 또 달렸습니다. 그렇게 세 번을 밖에서 달리고 들어오니 사람처럼 네 발을 사방으로 뻗어서 널브러졌습니다. 그 모습이 귀엽고 그랬습니다. 꿈에서요. 그다음 날 조깅하고 오는데 거짓말처럼 도로에 삼만 원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날름 주워서 잘 써버렸는데 묘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여름이 되면 공포영화가 하고 귀신을 본 괴담이 흘러나오는데 정말 귀신을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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