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입 안으로 맛보는 오월이다. 오월도 벌써 반이나 지나갔다. 오월 이전까지 붉은 음식을 먹었다면 – 요컨대 찌개나 라면이나 탕 같은 국물음식이 추워서 찾게 되었다면 오월이 되면 계절의 눈높이에 맞는 음식을 찾게 된다. 물김치는 먹으면 푸른 푸른 녹음이 입안으로 후루룩 들어와 시원하다. 한 여름의 에어컨 바람 같은 시원함과는 다른, 낮에는 햇빛 때문에 조금 더워 겉 옷을 벗어야만 하지만 아침은 선선하고 밤이 되면 서늘해서 겉옷이 필요한 날의 시원함이다. 이제 곧 히사이시 조의 썸머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질 것만 같은 초여름의 전초전 같은 시원함이다. 호로록하고 물김치의 국물을 마시면 봄나물의 향이 입안에 확 퍼진다.


봄나물로 물김치를 해서 봄나물을 씹으면 약간 쌉싸름한 맛이 난다. 물김치의 시원한 맛과 그 쌉싸름한 맛이 절묘하게 어울린다. 정말 이런 늦봄에 먹는 물김치의 상쾌한 맛은 우리나라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 아닐까.


이렇게 상큼한 물김치를 맛보는 계절이 오면 늘 어린 시절 손을 잡고 따라다녔던 외할머니가 생각난다. 먹기 싫은데 자꾸 숟가락으로 물김치를 떠 먹여 주었다. 나는 어린 시절 어떤 사정으로 집에서 떨어져 외할머니 손에서 몇 년을 살았다. 외가가 있는 곳은 온통 계곡과 산과 소똥뿐이었다. 그곳은 불영계곡이 있는 곳으로 외지에서 왔다고 동네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거나 둘러싸여 맞아서 울고 있으면 외할머니가 원더우먼처럼 날아와서 아이들을 혼내 주었다.


외할머니는 밖에서 놀다가 땀을 흘리고 들어온 나에게 시원한 물김치에 국수를 삶아서 말아 주었다. 라면 끓여 달라고 막 그랬는데 할머니는 이게 훨씬 맛있다며 나에게 떠 먹여 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매년 오월에 물김치를 먹게 되면 외할머니가 생각난다. 외할머니를 떠올리기 위해서라도 이 계절에는 물김치를 먹는다. 추억의 절반은 맛이라고 한 반찬일 요리사의 말처럼 물김치에 대한 나의 추억 속에는 외할머니가 오롯이 있다.


물김치와 더불어 이제부터 오이무침이나 오이물김치를 먹는다. 이렇게 먹으면 보통 여름이 끝날 때까지 오이를 대여섯 박스 정도를 먹는다. 여기서 말하는 박스는 라면박스가 아니라 보통 요만한 택배박스 정도의 박스다. 오이는 보통 그런 박스에 팔기 때문에 그런 박스로 대여섯 박스를 먹게 된다. 누군가 밖에서 무슨 음식 좋아해? 그거 사줄게,라고 해서 나는 오이를 좋아하니까 오이요리를 사줘,라고 하고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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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내내 먹었던 라면은 안성탕면이었다. 나는 오뚜기 라면이 좋았는데 아버지가 안성탕면을 늘 집에 사놓아서 아무래도 있던 라면을 끓여 먹게 되었다. 좀 우습지만 친구의 집에 가도 다른 라면에 비해 안성탕면이 선반에 월등하게 많았다. 그래서 안성탕면을 많이 먹었다. 그리고 학교 앞 강원 분식집에서 맛있게 먹었던 라면도 안성탕면이었다. 거기 이모는 늘 위에 고춧가루를 뿌려 주었는데 나는 고춧가루를 빼 달라고 해서 먹었다. 분식집의 라면은 집에서 끓여 먹는 라면보다 10배는 맛있었다.  


주말에 친구 집에 갔을 때 친구의 누나가 있으면 누나가 라면을 끓여 주었다. 얼굴이 꼭 강수지를 닮았던 누나는 라면에 파를 많이 썰어 넣어서 끓여 주었다. 라면만 끓여서 먹지 말고 파도 많이 넣어서 먹어야 해.라는 다정한 말을 하며 안성탕면을 끓여 주었다. 라면에 계란과 파가 많이 들어가면 나는 맛이 있는데 파에서 나오는 조금은 달달한 맛과 함께 5개 이상 라면을 끓이면, 끓여서 먹는다는 맛보다는 삶은 쪽에 가까운 맛이 그 라면의 맛이었다.  뭐 어쨌거나 친구들과 한 밥상에 둘러앉아 영화를 보며 먹는 라면 맛은 최고였다. 그때 우리는 어른들 몰래 야동을 보고 있었는데 친구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방문을 두드리면 재빠르게 다른 화면으로 전환하는 건 연습으로 인해 잘했다. 그러나 일어나서 인사를 해야 했는데 모두가 바지 앞섶 때문에 엉거주춤하게 일어나야 했다. 아마 어른들은 눈치 못 챘겠지. 그럴 거야. 아들의 친구들을 너무 좋아했던 친구 어머니는 방에서 빨리 나가지 않고 이것저것 질문이 많았고 라면 말고 먹고 싶은 걸 이야기하라고 했고, 친구 누나는 빨리 라면 먹여서 집 밖으로 내쫓아서 사춘기 냄새를 없애려 했다. 입으로는 라면을 먹고 뇌와 시선은 야동으로, 신체는 신체대로 반응을 하는 인간이란 참.


그렇게 안성탕면을 주로 끓여 먹었다. 라면을 끓일 때 안에 넣어봐야 계란 정도였다. 그러다가 군대를 제대하면서 안성탕면은 멀리하게 되었다. 라면의 종류가 많아졌고 골라 먹는 재미도 늘어났다. 라면에 식초를 넣어서 먹기도 했고, 된장을 풀어서 먹기도 했다. 아주 매운 라면에 토마토를 숭덩숭덩 잘라서 끓여서 먹기도 했다. 기가 막힌 맛이었다. 삼겹살을 구워 넣어서 먹기도 했고, 먹다 남은 후라이드를 넣어서 같이 끓여 먹기도 했다. 라면은 어떻게 먹든 맛있었다. 그러다 보니 안성탕면을 기본적으로 끓여 먹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라면을 끓여 먹을 때는 항상 옆에 간 마늘과 후추, 그리고 식초 내지는 촌에서 받아온 고춧가루가 있었다. 라면에 갈아 놓은 마늘을 넣으면 맛이 확 달라진다. 아주 풍성해진다. 마치 무슨 탕이나 찌개를 먹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부대찌개라면도 나오고 찌개 라면에 햄과 소시지를 넣어서 먹으니 역시 맛있는 것이다.


그렇게 10년이 넘게 안성탕면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이것저것, 다른 라면을 여러 방식으로 먹었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덮친 그 해 4월에 큰 이모의 상을 치르게 되었다. 처음 겪는 감염병 때문에 나라가 엉망진창이었다. 모두가 그러했겠지만 그 당시 포항은 난리도 아니었다. 큰 이모 장례식을 포항에서 했다. 그 장례식장에 두 사람의 장례식이 있었는데 그 당시 경조사로 인해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감염병 방역법으로 금지가 되었다. 그래서 두 장례식에는 가족들만 오롯이 장례식장을 지켰다. 오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음식을 준비하지도 않고 그렇게 가족들만 모여서 이야기를 하며 장례식을 치렀다. 그때는 아직 초기라 병원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있었는데 나는 라면을 주문했다. 그때 라면이 그냥 기본적으로 라면만 끓여서 나오는 거였다. 먹었는데 아, 하는 맛이었다. 라면의 맛이었다. 간 마늘이나 뭣도 들어가지 않고 라면이 가지고 있는 그냥 라면의 맛에 놀랐다.


근래에는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면 안성탕면을 끓여 먹게 되었다. 안성탕면보다 맛있는 라면이 많겠지만 이상하게도 안성탕면을 찾게 되는 건 아무래도 그리운 맛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 학창 시절에 그렇게 먹었던 그 맛. 안성탕면은 정말 그리운 맛이었다. 어느 순간 이제 안성탕면은 맛이 없어, 훨씬 맛있는 라면이 많은데 왜, 하면서 눈을 돌렸지만 결국에는 돌아와 버렸다.


맛있는 라면은 많다. 하지만 뭐랄까 맛있는 음식이 흘러넘치는 요즘, 맛있는 음식을 아무리 먹어도 그 맛이 기억나지 않는다. 다른 맛있는 음식들이 눈을 돌리면 도처에 널렸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기억하고 있던 안성탕면을 먹어보니 그립던 냄새, 그립던 촉감, 그립던 시간, 그립던 소리까지 다시 만나게 되었다. 고작 라면 하나 끓여 먹으면서 뭘 그런 거창하게,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는 대부분 고작 요만큼 작은 것에 마음이 기울고 작은 것에 싸우고 행복해지며 상처받고 눈물을 흘린다. 그 작은 행복이 계속 이어진다면 인간의 생이라는 게 거대한 구멍은 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안성탕면에 대해서 또 하나 기억나는 건 지금은 믿는 종교가 없지만 중학교 때 교회를 다녔다. 어쩌다가 믿음이 없는 내가 교회를 다니게 되었는지 기억은 없지만 중학교 때에는 매주 착실하게 교회에 나갔다. 그리고 교회에서 착실하지 않게 선생님 말도 잘 듣지 않고 기도가 내 차례가 되었을 때에는 도망을 갔다가 누나들을 괴롭히려고 교회의 어딘가에서 꿍꿍이를 하곤 했다. 중학교 때에는 장난이 심해서 어른들에게 혼나기를 여러 번이었다. 스테이플러의 스테플러심을 꼬아서 지뢰를 만들어 누나들이 앉는 의자에 뿌리기도 했다. 그러면 어김없이 이쪽저쪽에서 아야, 하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그리곤 혼이 났다.  


교회 앞에는 작은 분식집이 있어서 우리는 그 분식집에서 라면을 자주 사 먹었다. 그 집도 안성탕면으로 라면을 끓여 주었다. 라면을 먹으러 가면 중학생 주제에 연애를 하던 기범이가 진영이와 함께 나란히 앉아서 안성탕면 한 그릇을 놓고 꽁냥꽁냥 하던 꼴베기 싫던 모습이 떠오른다. 라면이 불어서 국물을 다 빨아먹었는데도 둘이 서로 얼굴을 보며 좋아 죽고 앉아있다. 중학생 주제에. 국물을 다 빨아먹어서 퉁퉁 불은 라면이 불쌍해 보였다. 그런데 일주일 뒤에 라면 먹으러 가면 옆에는 진영이가 아닌 혜정이와 앉아서 또 꼴베기 싫은 얼굴과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집에서는 단무지를 주었는데 이상하게 라면을 먹지 않고 불어 터지는데 단무지는 다 먹고 빈 접시만 보였다. 중학생 주제에. 아무튼 이상한 놈이었다. 언젠가 한 번 그 교회 앞을 조깅하면서 오다 보니 분식집은 없어졌고 지금은 어른들을 상대로 하는 동네 호프집으로 바뀌어 있었다.


안성탕면을 먹기 전에는 위에서도 말했지만 여러 식재료를 넣어서 먹었다. 그렇게 먹으면 역시 맛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근래에 안성탕면을 그냥 끓여 먹게 되면서 거의 아무것도 넣지 않고 있다. 삶은 계란이나 계란 프라이, 남은 미역국을 넣어서 먹기도 했지만 새로운 맛에 눈을 떠버린 기분이다.


주제에 맞게 오늘은 라면인건가 https://youtu.be/l4DXQFYjkgY <= 클릭 

이 노래의 배경그림은 2018년에 서울경인초등학교 6학년 3반 아이들이 노래 가사에 맞게 그림을 그렸는데 그걸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정말 음악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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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2-05-17 2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억의 왜곡인지 모르지만 비싸고 고급스러운 것보다 싸고 투박한 것들이 기억에 오래 갑니다.
전 대학교때 돈이 궁해 구내 식당에서 점심으로 사먹던 오백원 짜리 라면과 가끔 짬장이 뭔 좋은 일이 있는지 야간 근무 교대때 가끔 끓여주던 군대 라면이 기억에 남네요.

교관 2022-05-18 10:33   좋아요 0 | URL
정말 그러네요. 작고 소박한 것들이 기억에 많이 남네요. 불량식품 사먹었던 것까지ㅎㅎ
 


정말이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요즘에는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마요네즈라고 하겠다. 아니 도대체 이렇게 기가 막힌 맛의 마요네즈를 나는 왜 이제야 알았을까. 아니다 오히려 지금 알아서 다행일지도 모른다. 이 마요네즈를 라면에 넣어서 먹어봤는데, ‘세상에나'를 몇 번이나 속으로 외쳤는지 모른다.


당최 마요네즈란 무엇이란 말인가. 마요네즈는 어떤 음식에도 다 어울렸다. 김치에도, 고기에도, 땡초와 고추장에도, 소시지에도, 심지어는 그냥 맨밥에 뿌려 먹어도 맛있었다. 초간단에 이런 맛을 낼 수 있다니. 밥에 쓱싹쓱싹 비벼서 김치를 올려 먹을 뿐인데 굿이다. 마요네즈만 있다면 굳이 밥을 먹기 위해 반찬을 만들고, 찌개를 끓이고, 계란을 굽지 않아도 된다.


요즘에는 식빵에 많이 뿌려 먹는다. 옥수수 식빵에 치즈를 한 장 깔고, 계란 프라이를 올리고 그 위에 마요네즈를 뿌려서 먹으면 고소하니 아무튼 맛있다. 저세상 맛이다. 이렇게 맛있어도 될 일인가. 한 입 먹고 거기에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면 행복도 이런 행복이 없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근래에 마요네즈를 몇 통을 먹어 버렸다. 불변의 진리. 이렇게 자주, 많이 먹는다면 살이 찐다. 바뀔 수 없는 진리 중에 진리다. 나 같은 경우에는 마요네즈를 몇 통 먹고 났더니 겨드랑이 쪽의 살이 쪘다. 그리고 마요네즈를 많이 먹으면 몸에 나쁘다고 한다.


계란 역시 너무나 맛있는 음식이다. 계란이 프라이팬 위에서 기름옷을 입고 익어가는 냄새를 따라올 음식은 거의 없다. 계란 프라이가 밥과 만나면 어떤 반찬과도 궁합이 좋다. 밥솥에서 갓 지어낸 밥에 계란 프라이를 올리고 멸치볶음을 넣어서 비벼 먹었던 맛을 잊을 수 없다. 거기에 마요네즈가 있었다면. 아 하는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계란 역시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낙인찍힌 식품이다. 인간이 언제부터 달걀을 먹었는지 모른다고 한다. 박찬일 요리사의 말을 들어보면 달걀이 인간계로 들어옴으로써 요리의 신기원이 열렸다고 했다. 이런 달걀과 마요네즈가 만났으니 얼마나 맛이 있을까. 그러나 인간사 수많은 음식을 관통하는 대명제는 왜 몸에 나쁜 건 전부 맛이 좋다는 것이다. 왜 맛있는 건 전부 몸에 좋지 않을까. 브로콜리나 견과류를 먹고 살이 막 찌고 혈관이 막히고 발이 붓고, 마요네즈와 계란을 먹으면 복부 비만이 예방되고 먹을수록 피가 맑아지고 심장이 튼튼해지면 얼마나 좋을까.


마요네즈의 맛이 한 번 빠지면 좀체 벗어날 수가 없고, 벗어나기도 싫다. 이걸 어떻게 포기할 수 있을까. 게다가 마요네즈의 마법 같은 맛은 너무나 쉽게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쉽게, 간편하게, 간단하게 먹을 수 있다는 게 요즘에는 헤어 나올 수 없는 유혹이다. 이런 마법의 식품 마요네즈, 할아버지 입맛의 나까지 반해버린 마요네즈에 들어간 첨가물을 보니 난국이다. 그것도 총체적으로 난국이다.


대두유가 들어가는데 두유의 일종? 하면서 이게 뭔가 하고 찾아보니 대두, 그러니까 콩에서 채유되는 반 건성유다. 주로 미국이나 남미 쪽에서 들고 온다. 정제수가 들어가고, 해바라기유 15%가 들어간다. 해바라기유는 말 그대로 해바라기의 씨앗에서 추출한다. 주로 유럽이나 말레이시아 등에서 수입한다. 발효식초가 들어가고, 난황액이 들어간다. 난황액이라는 건 검색이 되지 않는다. 난황이라는 건 계란 같은 알의 노른자를 말하는 것이라 노른자에서 추출한 액을 말하는 것일 게다. 그리고 어떤 마요네즈에는 난황액 1이 들어가고, 또 난황액 2가 들어간다. 두 가지의 알에서 추출한 액을 넣는 건가? 아무튼 그렇다. 그리고 정제소금이 들어가고, 또 난백액이 들어간다. 난백액은 난황액의 반대?라고 해야 할까. 알의 흰자에 식염이나 당류 따위를 가한 물질이라고 한다. 그리고 애매하게 표기한 첨가물이 있다. 향신료 조제품, 기타 가공품, 복합 조미식품이 들어간다고 나와 있다. 애매한 표기로 인해 찾아봐도 무엇인지 잘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나처럼 이런저런 첨가물을 찾아본 사람이 있어서 복합 조미식품에 대해서 정리해 놓은 걸 보니, 복합 조미식품이라는 건 당류, 식염, 향신료, 단백 가수분해물, 효모 또는 그 추출물, 식품첨가물 등을 혼합하여 분말, 과립 또는 고형상으로 건조 등 가공한 것으로서 식품에 특유의 맛과 향을 부여하기 위해 사용되는 첨가물이라고 나와 있다. 한데 이 안에서도 단백 가수분해물이 뭔지는 일반인들은 또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복합 조미식품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라면 스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또, 이. 디. 티. 에이. 칼슘 나트륨으로 표기를 했는데 EDTA라고 영어로 표기해도 될 것을 한글로 저렇게 표기를 해놨다. 이건 산화방지제로 식품이 변질되는 것을 막는다고 한다. 진탄검이 들어가는데 이건 마요네즈의 끈적한 점성과 물성을 만든다. 그 외에 향미유, 포도당, 효소제제, 간장 믹스 등이 들어간다.


그저 간편하게 먹는 마요네즈 안에는 복잡하고 알 수 없는 첨가물이 잔뜩 들어가 있다. 이 엄청난 첨가물이 들어간 것을 알고는 마구 먹을 수 없기에, 그래서 사람들은 이 마요네즈의 맛에서 벗어나기를 싫고 또 이 맛있는 마요네즈를 곁에 두고두고 먹고 싶어서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기에 돌입했다. 상온에 둔 계란 1개와 식용유와 식초와 머스터드만 있으면 판매되는 마요네즈와 똑같은 맛을 낼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아직 해 먹어 본 적은 없고 영상만 내내 보는 편인데 이렇게 간단하게 만들 수 있기에 조만간 만들어서 먹어보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서 먹으면 살이 안 찐다고 하는데 뭐든 많이, 자주 먹으면 살은 찐다는 것을 염두에 두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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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옛날 핫도그를 먹었다. 음식이라는 게, 먹으면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 음식들이 있다. 핫도그도 꼭 그렇다. 요즘의 핫도그는 간식이라기보다 식사대용이라고 해도 될 만큼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하나를 먹고 나면 어쩐지 식사를 해버렸다는 느낌에 핫도그를 자주 사 먹게 되지 않는다. 핫도그를 너무 좋아해서 없으면 나 죽어! 하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이상하지만 핫도그를 좋아하는 사람도 자주 먹지는 않는다. 요즘에 나오는 핫도그는 모양이나 맛도 다양해져서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정말 이만한 크기에 감자튀김이 박힌 핫도그는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핫도그 전문점에서 핫도그를 고를라치면 선택 장애가 온다. 세상은 편리해지고 다양해진 대신 선택 장애 역시 늘어난다. 서브웨이처럼 너무 다양한 핫도그가 생겨났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핫도그는 오래전 기본적인 핫도그가 다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삼겹살도 그렇다. 삼겹살이 세상에 도래하고 난 후 삼겹살 시장은 아주 커졌다. 그러다 보니 삼겹살 집들은 살아남기 위해 변화를 꾀하기 시작했다. 와인 삼겹살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된장 삼겹살, 카레 삼겹살, 금을 입힌 삼겹살 등 여러 가지 삼겹살이 나타났었다. 사람들은 맛과 재미를 느끼며 삼겹살을 불판 위에서 구워 먹었다. 그게 한 2000년도에 유행을 탔다. 그러다가 유행이 시들해지더니 싹 다 없어지고 지금은 대부분 기본의 맛, 삼겹살 본연의 맛을 찾아서 먹고 있다. 나처럼 쌈도 안 싸 먹는 인간에게 여러 가지 첨가물이 들어간 삼겹살 구이가 그냥 삼겹살보다 맛이 더 있을 리 없다.


짜장면도 종류가 많다. 유니 짜장, 사천짜장, 간짜장, 백짜장 등 여러 짜장면이 있지만 가장 많이 먹는 짜장면은 그냥 기본적인 짜장면이다. 기본이 가장 맛있고 기본이 맛있는 집은 늘 손님이 많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기본을 찾게 된다. 그건 어떤 음식이나 마찬가지다. 그러고 보니 짜장면을 안 먹은 지도, 코로나 전에 먹어보고는 아직이다. 일 년, 일 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


소 이에바, 핫도그도 그렇게 해서 다시 회귀를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핫도그는 들고 먹는 맛도 맛이지만 핫도그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어릴 때에는 눈이 빠지도록 바라봤다. 나무젓가락에 분홍 소시지가 끼워지고 밀가루 반죽에 몇 번 돌려서 옷을 입힌 다음 튀김가루를 묻혀 젓가락을 꼽을 수 있게 제작된 기름통에 하나씩 넣어서 튀긴다. 들어가는 순간 촤르르 하며 경쾌한 소리를 내며 핫도그가 익어간다. 다 익으면 주인이 꺼내서 설탕과 케쳡을 발라준다. 핫도그에 뿌린 설탕은 왜 더 맛있을까. 뜨거울 때 바로 먹는 그 맛. 특히 겨울에 포장마차에 서서 뜨거운 핫도그를 먹으며 어묵 국물을 홀짝이는 맛은 행복이었다. 어릴 때 동네 친구들과 핫도그를 먹으면 먹는 방법도 천차만별이었다. 게 중에는 꼭 소시지는 마지막까지 사수한 다음 한 번에 먹는 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먹어봐야 맛있을 리도 없을 텐데 꼭 그렇게 먹었다. 그리고 그렇게 먹는 방법은 전염이 된다. 너도 나도 소시지 이외의 부분을 먼저 먹고 마지막에 한 번에 소시지를 먹었다.


핫도그는 편의점에서도 팔고 편의점 핫도그 역시 맛있지만 튀김기에서 바로 꺼낸 핫도그만 못하다. 일전에 옛날 핫도그를 먹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편의점에서 튀김기를 갖다 놓고 핫도그를 팔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전자레인지에서 전기로 데운 것보다 훨씬 맛있는 핫도그를 먹을 수 있을 텐데. 새벽에도 말이다. 튀김옷이 붙은 핫도그는 하나씩 포장이 되어 있고 핫도그가 하나씩만 들어갈 수 있도록 제작된 튀김기 위에 핫도그를 넣으면 기름이 튀지 않게 뚜껑이 닫히고 5분 정도 있다가 꺼내면 우리가 알고 있는 핫도그가 튀겨져 나오는 것이다. 맛도 기존의 핫도그와 똑같다. 아니 그보다 더 맛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새벽에 작업을 하다가 아 출출하군, 하며 집을 나와 근처의 편의점에 쓱 들어가 핫도그를 그 자리에서 튀겨서 냠냠 먹기 때문이다. 새벽의 흐릿한 하늘을 보며 핫도그를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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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에 노른자를 풀었을 때, 바로 그때 떠먹는 노른자의 맛은 좋다. 아주 잠깐 그 노른자를 맛볼 수 있다. 고소하고 기분이 편안해지는 맛을 내는 노른자는 마치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잠시 나와 조우하고 가버린다.


라면의 바닷속에서 풀어헤쳐져서 없어질 뻔했던 노른자는 그대로 숟가락으로 떠서 잠깐의 존재를 확인하고 나면 그 뒤의 젓가락질은 경쾌하다. 후루룩 면발을 잡아당기면 미미하나마 노른자의 고소한 맛이 면발에 달려 입 안으로 들어와 도파민의 신호를 보낸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찰나로 사라지는 노른자의 그 맛 때문에 머리를 굴려 계란을 두 개를 넣었다. 아직 하나가 채 다 익지 않은 채 면발 밑에 꿈꾸고 있다. 면발에 같이 말아서 재빠르게 올려 후루룩. 오전에 느긋하게 라면에 넣은 계란 노른자를 먹고 있다는 건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는 위로가 된다.


문득 가을방학의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 의 가사가 떠오른다. 너 같은 사람은 너 밖에 없다고, 넌 날 아프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노래를 부른다. 추억이라는 게 가슴 저 안쪽으로부터 칼로 도려내는 것처럼 아프기도 하지만 마음 저 깊은 곳에서부터는 따뜻하게도 한다. 너라는 사람이 찰나의 기억이 아니라 여운이 깃든 추억이 된다.


라면 속 계란 노른자 같은 맛은 라면 속 노른자 밖에 없다고, 국물까지 호로록 다 마셔 버리고 나면 나는 부른 배를 부여잡고 그 추억을 떠올려본다. 그 속에서 우리는 아름답고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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