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라면이라고 들어봤나. 굴라면이 아니다. 굴라면은 라면에 굴을 넣어서 끓인 라면이 굴라면이다. 그렇다면 귤라면은? 그렇다 귤을 라면에 넣고 끓인 라면이 귤라면이다.


도대체 왜 귤을 라면에 넣고 그러지? 같은 말을 하는 사람도 한 번 먹어보면 오 하게 된다. 라면에 아이스크림을 넣어서 먹어도 맛있는 것처럼, 닭갈비에 아이스크림을 넣어서 먹으면 정말 맛있는 것처럼 말이다.

제주도에서 귤이 한 박스가 왔는데 집에 있는 귤과 함께 흘러넘치는 것이다. 이렇게 묶음으로 해서 사람들에게 나눠줬는데도 불구하고 많이 남았다. 한 두 개씩 까먹어도 남은 귤이 점점 물컹해지면서 상해가려고 해서 라면을 끓일 때 두세 개씩 넣었다.


뜨거워진 귤이 이렇게 맛있다니. 매콤한 라면의 국물을 잔뜩 빨아들인 귤이 이렇게 맛있다니. 나 같은 맵찔이가 조금씩 매콤함에 매료되어 가는 과정이다. 매운 라면에 땡초를 넣었어도 귤 덕분에 너무 맵지 않게 먹을 수 있다.

그래, 라면에 넣어서 먹는 귤이 맛있다면 볶음에도 귤을 넣어보자. 그래서 정체불명의 요리지만 뭔가 잔뜩 넣고 달달달 볶을 때 역시 귤을 넣어서 볶았다. 역시 뜨거워진 귤은 맛있었다.


예전 파인애플 볶음밥을 먹으러 갔을 때 뭐야? 파인애플을 볶음밥으로 먹는다고? 했지만 파인애플은 뜨거워야 맛있다는 일행의 말이 떠올랐다. 아마 그때가 10년 전이다. 파인애플 볶음밥을 먹으러 가면 파인애플을 잘라서 그 안에 볶음밥이 있다. 맛있었다.

요 며칠 아주 추워졌다. 이렇게 추울 때 끓여 먹는 라면만큼 맛있는 음식도 없다. 2016년까지만 해도 라면 끓여 먹으면 세 개를 끓여서 먹어도 거뜬했다. 그런데 두 개는 물론이고 이제는 한 개를 끓여서 밥을 말아먹으면 엄청난 포만감이 든다. 그래서 밥은 포기해야 한다. 위가 상당히 작아졌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살이 찌니 먹는 걸 줄이는 습관으로 생활을 하다 보니 위가 작아진 모양이다.


이제는 배가 너무 불러 포만감이 빵빵 들면 기분이 아주 안 좋다. 살이 찌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생각이 드는데, 아쿠아 맨 2편을 볼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면 메리도, 아쿠아맨도 동생인 옴도 1편에 비해 전부 살이 붙었다. 할리우드에서는 입금되면 확 바뀐다는 룰이 있는데도 생각만큼 날씬하지 않았다. 나이가 드련 살이 붙는다. 철저하다는 외국 배우들도 예외는 아니다.


록스타들도 마찬가지다. 절대 살이 찌지 않을 것 같았던 머틀리 크루의 닐 형도, 건즈 앤 로지즈의 엑슬 로즈도 나이가 들면 살이 붙는 것에서 피해 갈 수 없다. 빅슨 누님들도 그렇게 서로 고소하니 마니 하면서 해체하고 난 후 바로 살이 찌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 살이 찐다고 해서 젊었을 때처럼 매일 극한의 다이어트를 할 수도 없다. 르세라핌의 사쿠라는 그 호리호리한 몸에도 식단조절이 잘 안 되어서 조금이라도 살이 붙었다고 느끼면 울고불고다. 살이 찌는 건 일반인에게도, 유명인에게도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나의 숙제 같은 것이 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병헌이나 이정재, 정우성, 전도연, 이영애 같은 우리나라 배우들은 도대체 얼마나 처절한 노력을 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든다. 입금전후가 그렇게 완전 다른 디카프리오도 이번 영화에서는 그렇게 많이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영화에 임했다.


라면 하나 끓일 때 귤도 넣고, 방울토마토도 넣고, 양파도 넣고, 대파도 넣고 이것저것 넣으면 양이 꽤 많다. 먹다가 포만감이 들 때 그때 딱 젓가락을 놓으면 되는데 라면은 그게 참 어렵다. 귤은 간식 개념이었다. 예전 같으면 라면을 끓여서 먹고 난 후 귤을 까먹었다. 배부르지만 귤은 또 술술 들어갔다. 그렇게 먹다 보면 살이 붙는다.


이렇게 추운 날에도 매일 한 시간 반정도 조깅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거의 매일 조깅을 해야 비슷한 몸을 유지할 수 있다. 나의 경우가 그렇다는 것이다. 나의 체질은 조깅하는 거 하루 빼먹고 맛있게 하루 많이 먹으면 일 년을, 이년을 매일 같이 달린 것들이 아무런 소용이 없는 몸뚱이다.


하고 싶은 말은 귤라면은 맛있다는 말이다. 맛도 좋고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렇다고 굉장한 포만감은 들지 않아서 괜찮은 라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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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에 무릎을 접고 푹 파묻혀 앉아서 아이패드를 무릎에 대고 글을 쓰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열약한 환경에서 글을 쓰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생각하는 것처럼 불편하거나 글이 잘 안 써진다거나 하는 건 없다. 이렇게 글을 쓴 지 오래되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일하는 곳에서는 책상이 있지만 집에서는 책상이 없어서 불편한 자세로 글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른 말로 하면 열약한 환경에서도 얼마든지 글을 쓸 수 있는 요즘이다. 예전에는 책상과 불빛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었다. 불빛만 있어도 곤란하고 책상만 있어도 불가능했다. 책상과 불빛 모두가 있어야 글을 쓸 수 있었다. 오래된 영화를 보면 촛불에 의지하며 글을 쓰는 장면을 봤을 것이다. 그 당시의 글을 쓰는 사람들은 기를 쓰고 쓸 수 있을 때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글을 적었다.


그 이후 노트북이 나왔을 때는 불빛은 이제 필요하지 않았지만 책상은 있어야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런 시기가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요즘은 책상도 필요 없고 불빛이 없어도 글을 쓸 수 있다. 그런 시대가 되었다. 반드시 책상이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지금은 누워서, 걸으면서, 엎드려서(이건 좀 아닌가, 엎드려서 글을 써 본 적은 없어서) 글을 쓸 수 있는 시대가 지금 시대다.


요즘은 AI도 소설이나 에세이에 뛰어든 시대다. 챗봇에게 [노인과 바다]를 닮은 짤막한 소설을 써달라고 했더니 30초 만에 뚝딱 쓰는 시대다.

나 같은 경우는 각 잡고 글을 쓸 수 있는 곳도 없고, 시간도 없기 때문에 어떻든 시간을 벌리고, 시간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서 글을 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열약한 환경이라도 글을 쓸 수 있다면 [감사합니다]하며 되는대로 매일 조금씩 글을 쓰고 있다.


그러다 보니 대체로 술 약속은 전부 하지 않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너는 무슨 대단한 글을 쓴다고 그러냐] 같은 말을 듣기도 했다. 대단한 글을 쓰려고 하기보다 매일 글을 쓰려고 하기 때문이다. 술 마시고 놀 때는 좋은데 지나고 나서 보면 너무나 그 시간이 아쉽고 쓸모없다. 그 기간이 오래되어서 지금은 술 마시자고 하는 약속은 없다.


나는 거의 매일 하는 것이 있다. 밥 먹고 자고 대소변 보는 것 이외에 일정 양의 글을 쓰는 것이 그렇고, 조깅을 하는 것이 그렇다. 하루이틀 정도는 쓰지 않고 달리지 않을 수 있지만 거의 매일 그렇게 하고 있다. 그게 습관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어떠한 하루를 맞이해도 글을 조금은 적는다. 그럴 수 있는 것이 열약한 환경에서도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챗봇은 환경 운운하지 않고 따지지 않는다. 나 정도의 글을 적는데 노트북이나 책상이 있는 곳이 아니어도 된다. 그저 글을 쓸 수 있다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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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날이 흐리고 그렇게 춥지 않으며 따뜻한 난로 앞에서 영화를 한 편 보고 있으면 기시감이 확 든다. 기시감보다 어쩌면 기억이 가까울 지도 모른다. 예전에도 이런 겨울날에 지금처럼 컴퓨터로 영화를 보는 것과는 다르게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갔다. 극장에 가는 건 정말 일탈이었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영화를 보러 한 시간 일찍 극장에 들어갔다. 중앙극장은 2층에 있었는데 들어가면 로비가 좋았다. 로비도 극장의 의자가 일렬로 몇 줄이나 있었고 앞에 대형 브라운관이 있었다. 거기에는 철 지난 영화가 나오고 있었는데 그 영화가 본 상영관의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경우가 있었다.


로비의 한편에는 매점이 있었다. 이상하게도 같은 사이다 지만 극장 로비에서 마시는 사이다는 더 맛있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극장은 시내에 몰려 있었다. 다섯 군데의 극장이 전부 몰려 있어서 극장마다 고객유치에 나름대로의 방안을 모색해서 영화를 보로 들어가기 전까지도 재미가 좋았다. 이 다섯 군데의 극장에서 흥행하는 영화를 상영하려고 엄청난 경쟁을 해야 했다. 다섯 군데의 극장에서 오분 거리에는 동시상영을 하는 작은 극장이 세 군데나 있었다.


동시상영 극장에는 액션영화와 성인영화가 했다. 동시상영 극장은 사람이 늘 없고 매점이 없는 극장도 있었다. 그래도 동시상영 극장을 찾는 사람은 늘 있었고 꾸준하게 상영작을 번갈아가며 영화를 상영했다.


중앙극장은 이층 로비에서 창문으로 시내중심가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러면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주말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저녁 황금시간대에는 떠 밀려서 가야 할 정도였다. 영화가 시작하려면 한 시간이나 남았고 우리는 매점에서 사이다와 과자를 먹으며 창문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러다 보면 꼭 아는 놈들이 지나갔다. 야호 이놈들아,라고 부르면 본인이 아님에도 꼭 고개를 꺾어서 위를 올려다보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니네 어디 가는데?]라고 물으면 [우리 그냥 돌아다니지]라고 하며 저쪽으로 멀어져 갔다.


요즘 조깅을 하는 강변의 조깅코스에 내가 학창 시절에는 밤이면 포장마차가 죽 들어섰다. 그리고 강변의 구석진 곳으로 가면 노는 아이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강변에는 밤이 되면 아이들이 모여서 빙 둘러앉아서 생일빵을 한다고 술을 마시고 강에 빠트리기도 했다. 강변을 계속 돌아다니면 만남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한 번은 친구(이 녀석이 우리 학교에서 킹카였다)와 수업을 째고 강변을 거닐었다. 여자를 꼬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네 저 앞에 여자애들이 가득 모여 있었다. 그렇게 모여 있으면 무서운 아이들이라는 말이다. 친구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그쪽으로 갔다. 거기에 가니 좀 무서운 여자애들 10명 정도가 중간에 다른 여고생 두 명을 두고 작업을 벌이려고 했다. 무서운 일이 일어나는데 친구는 그 안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대충 돈을 빼앗으려고 하고 여고생 두 명은 버티고, 그러다가 폭행을 당하기 일보직전이었다. 살벌한 분위기였다. 기억에 분명 노는 아이들 10명 중에 대장으로 보이는 여자아이는 커터 칼까지 꺼냈다. 두 명이 다른 학교 여고생이라는 건 10명도 전부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두 명의 여고생과 다른 교복이었다. 겁나는 이 분위기를 친구는 어떻게 해결했냐면, 잘생긴 자신의 얼굴로 주말에 5대 5로 미팅을 하자는 분위기로 이끌어냈다. 그리고 두 명의 다른 학교 여고생들은 보내주기로 했다. 가장 대장을 보이는(커터 칼을 빼 든) 여고생이 친구 녀석의 얼굴에 반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가오는 주말에 우리는 5대 5로 미팅을 했다.


교복을 벗은 여자아이들은 한 눈에도 우리 노는 아이들, 내놓은 아이들이니까 건들지 마. 가 역력한 복장이었다. 화장에 머리에는 1인당 스프레이 한 통을 다 썼을 법했다. 우리는 교복을 벗으니 순둥순둥한 복장이었다. 겁을 잔뜩 먹고 미팅을 했는데, 여자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순진하고 순수했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뭔가 잘 몰라서 수줍어하는 모습이 묘하지만 매력적이었다. 여자아이들은 아지트는 없고 우리가 자주 가는 아지트 같은 카페에서 이야기를 했다. 여자애들 중에 조안 제트 같은 얼굴과 화장을 한 여자애가 있었는데 당연하지만 그 애는 조안 제트를 알지는 못했다.

 

조안 제트는 런어웨이즈 멤버고 남자들에게 밀려 집안 청소나 하던 70년 대 중반에 기타 들고 세상을 놀라게 한 로커라고 알려 주었다. 2010년 영화로도 있는 런어웨이즈에서 조안 제트는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맡았다. 런어웨이즈 밴드는 세상에 전부를 던져 버릴 열정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조안 제트를 닮은 그 애는 런어웨이즈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 여자애는 나의 파트너가 되어 음악감상실에 데리고 갔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만든 영화를 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그때는 영화가 나오기 전이니까 음악감상실에서 런어웨이즈의 음악을 들어가면서 설명을 해 주었다.

순종적이고 조용한 여자이어야만 했던 70년대, 이 억압과 답답함이 가득한 세상에 돌멩이를 던지듯 뛰쳐나온 체리 커리와 조안 제트. 이 미친 누님들이 만든 밴드 ‘더 런어웨이즈’의 이야기다.


로큰롤을 하고 싶은 조안 제트. 기타를 배우러 가지만 여자는 전기기타는 치면 안 된다는 말만 듣는다. 찌발 딥퍼플의 연주를 하고 싶었던 조안 제트. 모든 것을 쏟아내고 싶다!


데이빗 보위를 좋아하는 체리 커리는 학교 무대에서 데이빗 보위처럼 노래를 부르다 학생들의 야유를 받는다. 여자는 그런 거 하면 안 된다고. 찌발 이 답답함을 전부 던져 버리고 싶다!


그러다가 약과 술과 자유가 가득한 클럽에서 둘은 역사적 만남을 가진다. 이 만남이 이루어진 건 미친 프로듀서 - 조드 장군 역의 마이클 섀넌의 킴 파울리 때문이었다. 킴 파울리가 체리 커리의 거친 면을 보게 된다.


너, 조안 제트와 밴드 한 번 해볼래? 런어웨이즈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인 것이다. 그 당시 체리 커리의 나이 15살. 킴 포리는 섹시한 미성년자! 대박을 칠 거야!


이렇게 해서 여성으로 이루어진 미친 록 밴드가 최초로 탄생이 된다.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정말 조안 제트 같고, 다코다 패닝은 얼굴까지 체러 커리와 흡사하다.


런어웨이즈의 명곡 [체리 밤]이 탄생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주 흥미롭다. 세상에 드러내고 싶은 건 우리 음악이지 허벅지가 아니잖아!


런어웨이즈는 음반사와 계약 후 엄청난 밴드가 되고 인기를 얻는다. 보이 밴드를 능가하는 여성 최초 밴드. 신문과 잡지의 1면을 장식하고 그녀들은 최고였다.


멤버에는 또 한 명의 엄청난 누님 리타 포드가 있는데 영화에서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영화는 체리 커리의 자서전에서 시작했고 조안 제트가 영화에 참여해서 만들어졌다. 3년간 짧은 활동의 이야기를 다룬 최초 여성밴드 런어웨이즈였다.      

https://youtu.be/VeAWwxDUHoo?si=SKviQbHoF0fdErJL <=예고편


영화 속 체리 커리와 실제 체리 커리


이 멋진 영상이 이렇게 깨끗하다. 마치 얼마 전에 촬영을 한 것 같다. 체리 커리가 이렇게 멋지게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건 약 때문이었다. 영화에도 나오지면 체리 밤으로 온 세상의 소녀들, 그리고 사람들을 후려갈겼다. 런어웨이즈를 보고 한국에서도 당시에 여성밴드가 나타났다고 했다. 70년대인데 어떤 밴드일까.

https://youtu.be/_EBvXpjudf8?si=QVUax3eaeX0yT0jI <= 체리 밤 라이브


런어웨이즈의 미모와 보컬을 담당하던 체리 커리가 약물에 쩔어 힘들다며 나가고 난 후 조안 제트는 도망가는 멘탈을 부여잡는다. 체리 커리는 영영 무대를 떠나지만 조안 제트 이 누님은 좌절하지 않고 더 강력한 로큰롤을 한다.

https://youtu.be/t5ecqUhec-s?si=r-bLCFt34p-WONJt <= 조안 제트의 아이 러브 락 앤 롤


시커먼 이 누님의 색을 살려 블랙하츠를 만들어 하나의 음악을 세상에 내놓는다. 이 노래로 조안 제트는 평생 놀고먹어도 될 정도의 돈을 번다. 지구인이라면 다 들어봤을 그 쩌는 노래 아이 러브 락 엔 롤이 세상을 강타해 버린 것이다 와우.


https://youtu.be/kIt3OGra3Lo?si=qrMkWo9qr0vpVpiJ <= 리타 포드

리타 포드 이 누님을 수식하는 말이 메탈계의 여자 괴물 내지는 거물 뭐 이렇게 불린다. 런어웨이즈의 멤버로 영화를 보면 미모와 보컬을 맡은 체리 커리에게 날을 세워 덤벼들었던 누님이다.


영화에는 존재감이 너무 없이 나왔지만 리타 포드는 조안 제트보다 기타를 잘 쳤다. 이 누님이 오지 오스본과 사귄다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는데 둘이 같이 부른 노래 역시 대박이었다.


홀로 떨어져 나와서는 미모가 빛을 발하게 되지만 런어웨이즈에서 있을 때에는 가장 덩치가 컸다고 해야 할까. 이 누님이 기타를 들고 공연을 얼마나 하고 싶었는지, 코로나에 5개 공연이 전부 취소가 되었다


그리고 코로나가 끝나고 작년에 공연을 하게 되었을 때 그 나이에도 12줄짜리 기타를 들고 화려하게 퍼포머를 하며 공연을 했다. 붉은 가죽바지와 조끼를 입고 정말 멋졌다구.


https://youtu.be/aN2LehZ_KdQ?si=ZUTchiPmEYccYD7E <= 체리 커리가 빠진 런어웨이즈

이때가 체리 커리가 나가고 보컬이 붕 떠 있던 때 조안 제트와 리타 포드 두 명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리타 포드는 아직 살이 오른 소녀 같은 모습이지만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를 때는 와일드하다. 이 누님들이 애초에 와일드했다. 와일드한 로큰롤이 하고 싶었으니까. 체리 커리가 나가고 조안 제트가 노래를 부르는데 음색이 좋다. 이때가 아직 77년이다. 역시 우왕 굿이었다요.


그 애에게 대충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 애도 무척 재미있어 했다. 그 애의 얼굴은 저렇게 조안 제트 같은 모습이라 사진으로 많이 담았다. 그리고 어딘가에 출품을 하기도 했다. 물론 다 떨어졌지만. 여기에 그 사진을 올려도 될까. 지금은 학부형이 되어 있겠지. 그나저나 이야기가 왜 이리로 빠진 걸까. 이건 영화 이야기일까, 음악 이야기일까, 그저 일상 이야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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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오징어인지 낙지인지 잘 모르겠다. 낙지라고 하던데 아무리 봐도 오징어 같다. 어머니 친구분 중에 횟집을 경영하셨던 분이 나 먹으라고 낙지를 이렇게 회를 떠 주셨는데 아무리 봐도 오징어 같다.


오징어 회를 이렇게 떠 주었을 뿐인데 평소 먹던 오징어 회 맛에서 벗어난 맛있는 오징어 회 맛이었다. 어머니 친구 분은 이렇게 썰어서 먹으면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하셨다. 그 말이 정말이었다. 어떻게 써는 가에 따라서 횟감은 맛이 달라진다고 했다.


예전에는 오징어 회를 자주 먹으러 가는 가게가 있었다. 우리 집은 바닷가 근처인데 자주 갔던 오징어 회 가게는 도심지 중심부에 있는, 바닷가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가게였다. 그 집은 소주를 돌 멍게 껍질에 부어서 마셨는데 바다를 그대로 입 안으로 들이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술이 술술 들어가서 나올 때는 전부 꽐라가 되어 있었다. 횟집인데 크지 않아서 사람들이 늘 미어터지는 집이었다. 전부 좌식이고 먹다가 뒤에 앉은 테이블의 사람들과 눈이 맞아서 같이 합석하는 경우가 많은 가게였다.


그럴 수 있는 이유가 그 근처가 나이트클럽이 여러 곳이 있었고, 룸도 많은 곳이었다. 새벽에 흘러나온 남녀들로 북적이는 곳이라 새벽이 화려한 곳이었다. 술집이 가득한 곳 중간에 오징어 횟집이 있어서 전부 술에 취해 2차, 3차로 오징어 회를 먹으며 술에 잠식되어 같이 한 잔? 해서 합석을 많이 했다. 룸에서 나오는 아가씨들과 나이트클럽에서 나오는 여자들이 바로 집으로 가지 않아서 더욱 화려한 곳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었다. 그 오징어 집이 후배의 부모님이 하시는 가게라 까불지 않고 얌전하게 오징어 회에 소주를 몇 잔 마시고 나올 뿐이었다. 그 집에서 먹는 오징어 회는 기름장에 찍어 먹는다. 초장이 없다. 달라고 하면 초장을 주지만 대부분 얇게 쓴 오징어 회를 기름장에 찍어 먹었다. 오징어 회는 그렇게 먹는 게 정말 맛있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초장을 먹지 않는다. 회를 먹을 때에도 된장에 찍어 먹거나, 과메기 같은 경우는 그냥 과메기만 먹었다. 과메기를 먹을 때 초장을 듬뿍 찍어서 김에, 미역에, 파에 이렇게 쌈 해서 먹지 않았다. 과메기의 그 비린 맛을 그대로 느꼈다. 이번에 어머니 친구분이 초장을 만들어서 주셨는데 식초 맛이 많이 나고 매운, 그래서 먹다 보면 코에 땀이 맺힐 정도의 초장이었다. 판매하는 초장 맛이 아니었다.


학창 시절에 초장이 없으면 고추장에 사이다를 넣고 식초를 부어서 초장처럼 해 먹었다. 판매하는 초장만큼 맛은 없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이번에 먹는 초장은 단맛이 없고 매워서 싫은데 좋았다. 오징어 회에 잘 어울렸다.



오징어는 흔해서 잘 먹지 않았다가 언젠가부터 서민음식에서 멀어졌다. 저녁 밥상 위에 오징어볶음이나 오징어무침이 자주 올라왔었는데 이제 오징어도 맘먹고 사 먹어야 한다. 오징어는 어떻든 바다에 나가서 잡아와야 육지 사람들이 먹을 수 있으니 잡아오지 못하면 먹을 수 없다. 어획량이 적으면 가격은 올라간다. 그러나 또 오징어 풍년이면 가격이 떨어진다. 비싸면 잘 안 팔리고 저렴해도 어부들에게 돌아가는 비용은 적다.


내가 있는 바닷가에도 어선들이 많은데 선장 빼고 오징어를 잡는 선원들은 전부 외국인노동자들이다. 한국인은 한 명도 없다. 일이 너무 힘들고, 너무 고되고, 너무 어려운데 돈은 일한 만큼 벌어들이지 못한다. 생각해 보면 오징어횟집이 많았는데 점점 없어지더니 이제 오징어횟집이라는 간판으로 장사를 하는 횟집은 잘 볼 수 없다.


여름에 횟집거리를 걸으면 여기저기서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고, 그 앞의 수족관에는 오징어가 가득 들어있다. 대야에 있는 오징어를 손으로 들면 먹물을 죽 뿌리기도 했다. 예전 아버지들은 맥주를 마실 때 마른오징어를 안주 삼아 마셨고,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에도 오징어를 씹으며 봤다. 먹물 파스타도 만들어 먹을 수 있고, 오징어 국을 잘 조리하면 얼큰하니 아주 맛있다.


후배 부모님이 오징어횟집을 해서 그런지 예전에는 친구들이 한 잔 할 때 오징어회 먹으러 갈까,라고 했다. 삼겹살에 소주나 맥주나 한 잔 하자 같은 말은 했지만 오징어회에 한잔하자고 잘하지 않는데 우리는 오징어 회를 찾아서 먹으러 갔다.


아무튼 오징어가 바다에서 점점 사라진다면 바다에게 좋은 일이 아니며 인간에게도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오징어와 문어는 비슷한 것 같은데 아주 다르다. 둘 다 연체류에 속하는 두족류인데 오징어는 날 것으로, 회로 먹을 수 있다. 낙지도 이에 속해서 낙지 탕탕이로, 회로 먹는다. 그런데 문어는 생으로 먹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문어는 데쳐서 먹거나 삶아서 먹지 바로 회를 떠서 먹지 않는다.


문어가 오징어, 낙지와 다른 점은 문어는 몸통이 거의 없다. 대가리와 대부분의 다리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보통 문어는 삶아서 다리 부분을 많이 먹는다. 오래전에는 문어를 낙지처럼 다리를 탕탕 쳐서 그대로 회로 먹기도 했는데 그렇게 먹고 나면 사람들이 배탈이 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이유가 문어는 낙지나 오징어와는 달리 진액이 엄청 나오는데 그 진액에 독소가 있다. 다리라고 불리는 것이 다리의 개념보다는 촉수의 개념이다. 그래서 문어는 촉수로 먹이를 잡아먹거나 자신을 보호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이 진액에는 세균이 가득하다고 한다. 너무나 많아. 균이 너무 많아서 바다에서 잡아서 회로 다리를 먹고 나면 심각하게 배탈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꼭 문어를 회로 먹을 테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방법이 있다. 문어는 죽고 나면 진액이 엄청나게 나오는데 진액을 전부 제거하고 문어를 그대로 회로 먹어도 된다고 ‘는’ 한다. 그렇게 먹으려면 전문점이나 전문가의 손을 거쳐야 한다. 왜 전문가의 손을 거쳐야 하냐면 이 진액을 제거하는데 과정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문어는 삶아서 먹자.


그럼 주꾸미는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주꾸미도 생각해 보면 회로 거의 먹지 않는다. 다른 이유보다는 질겨서 그렇다고 한다. 주꾸미는 생으로 먹으면 아주 질겨서 먹을 수 없을 지경이라고 한다. 회로 굳이 먹지 않아도 되는 것들은 조리를 해서 맛있게 먹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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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매일이 새로운 날들인 것만 같다. 잠에서 깨어나서 어떤 화면이든 켜면 새로운 사건들이 연일 일어나고 있다. 처음 만나는 세상이다. 이전에 없었던 일들이 2년 동안, 그리고 올해, 고작 한 달도 안 됐는데 매일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정말 내가 부자라면 3년만 다른 나라에 가서 살다가 오고 싶다. 신당이 속속 나오는데 [조졌당]이나 [내로남불당], [조땐거같당], [반성보다는변명당], [책한권본사람이제일무섭당] 같은 새로운 정당이 나와야 할 때다.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본다.


요 며칠 동안 인스타 스토리에 추억팔이하다 보니 반응이 꽤 있어서 신나고 막 그러네. 여기 [하찮은 음악 이야기]에 자매 밴드 [하트]와 암여우 [빅슨]에 대해서 글을 올리고 난 후 미드 리처 시리즈 7화(시즌이 끝이 났다. 시즌 1보다 시즌 2가 이렇게 재미있다니. 떡밥만 잔뜩 던져준 고지라 이야기 모나크보다 훨씬 재미있다)를 보는데 스완이 기타를 치며 리처의 꼴통 특수부대원들이 [크레이지 온 유]를 부르는 것이다.


크레이지 온 유는 자매밴드 [하트]의 명곡으로 [하찮은 음악 이야기]에 올렸다. 인스타 스토리에 [하트]의 이야기를 짤막하게 계속 올리다 보니 자매밴드가 세계를 휘어잡을 때 나타난 암여우 네 명 – 빅슨에 관한 노래와 이야기를 또 짤막하게 올리게 되었다. 빅슨 이야기도 하찮은 음악 이야기에 올려놨으니.  https://brunch.co.kr/@drillmasteer/4364

https://brunch.co.kr/@drillmasteer/4377


그러면서 라우드니스의 이야기도 짤막하게 스토리에 올렸다. 그 영상은 라우드니스가 한국에 왔을 때 마왕 신해철과 김세황과 신나게 노래를 부를 때다. 라우드니스는 엑스제팬 이전의 메탈밴드로 이 형님들, 일본이 좁다며 미국으로 뛰쳐나가서는 그 텃세 심한 곳에서 인정을 받고 상도 받고 막 그랬다.

기타의 디카사키 아키라는 미국의 메탈씬에서도 인정을 받는데 끝내줬다. 지금도 끝내준다. 앞으로 끝내줄걸. 그럴 예정이다. 이 영상을 보면 이 끝내주는 아키라 형님과 맞먹는 기타 연주를 김세황 이 형님이 또 보여준다. https://youtu.be/Jwm6V-VFF-k?si=eJZbb1NnjC0NXR3Q EBS 공감 loudness like hell live


80년대 그 당시에 주다스 프리스트와 견줄만한 밴드가 라우드니스 이 형님들이 아닐까. 만고 나만의 생각이다. 미국에서 떡상하면서 미국 레이블과 정식 계약한 최초의 일본 밴드다. 아마 아시아에서도 최초겠지.


이 라우드니스 형님들은 우리나라에도 자주 왔었다. 88년에도 와서 미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욱일기 뭐 이런 게 있는데, 이 형님들 지금까지 활동 중이다. 이 영상 속, 이때 마왕과 같이 노래를 불렀다. 리발 마왕 봐봐 노래 부르면서 존나 행복한 모습이다. 다시 봐도 존나 신나면서 울컥한 게, 이게 바로 록 음악이 가지는 상징이다.


스트라이퍼 이 형님들이 지금의 김경호를 있게 해 준 원본 같은 형님들이다. 김경호가 무명에서 스트라이퍼의 창법과 스타일을 벤치마킹 하면서 수면 위로 부앙 떠올랐다.

스트라이퍼 이 형님들, 80년대 당시 세계 유명 록밴드들이 일본만 찾았다. 일본에서의 활동만으로도 뮤직비디오를 만들 만큼 일본에만 갔다. 이번 하와이 촌놈에서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된 브루노(야? 부르노야) 마스는 일본에서 9일인가? 7일 동안인가 그만큼 공연을 한다. 게다가 팬 서비스도 우리와는 좀 다르다. 훨씬 좋다는 말이지. 일본 아이돌 노래도 같이 부르고. 브루노 마스 이번 일본 공연할 때 의상이나 모습을 보니까 뭐랄까 저짝 오키나와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아무튼 그래.


7, 80년대에도 세계적인 록 스타들은 일본만 찾았는데 유일하게 스트라이퍼 이 형님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공연을 했다. 89년에 이런 엄청난 일이 있었다. 저 드럼 세트를 보라. 굉장하고 대단하고 엄청나다.  https://youtu.be/TfIChQCmIvA?si=3482mdKzuKxiFHDU Stryper - To Hell With The Devil Live in Korea 1989


록 음악 불모지인 한국이지만 이때 모여든 사람들 뭔가에 억압된 무엇인가를 뱉어내려고 소리를 질렀다. 어쩐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비슷하다. 이 영상은 KBS [젊음의 행진]에서 방송을 했다. 그리고 거의 10년 뒤 김경호가 이 명곡을 무대에서 부른다.


김경호 이 형님의 악마가 스트라이퍼 악마를 이겨 버리는 무대. 정말 이때의 김경호는 그야말로 오직 깡과 악, 샤우트 그리고 체력 밖에 없는 것만 같다. 그야말로 샤우트 오브 더 샤우트다. 대적할 만한 샤우트가 없을 정도로 넘사벽이었다. https://youtu.be/VrAKpnO9Mb4?si=fBkBqE-_BClo8W8I 김경호 - To hell with the devil (라이브)


록 음악은 우리나라에서는 어떻든 인기가 별로 없다. 하지만 록 음악이 우리 나라라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갑갑하고 답답하다. 그걸 어떻든 폭발시켜 버리고 싶다. 그것을 록 음악이 보통 대신 해준다. 우리나라의 여성 밴드 중에 [롤링 쿼츠]가 있다. https://youtu.be/7TG3xSQ2ZPM?si=j9s37qqNmJ3RIhQO Rock and roll Paradise & Drum solo by Rolling Quartz 롤링쿼츠


유튜브 구독자가 38만 명이나 된다. 비록 외국인들이 더 많지만 롤링쿼츠의 진가를 외국의 메탈씬에서 더 알아준다. 보통 보컬이나 기타가 인기가 많은데 롤링쿼츠는 압도적으로 드러머가 인기가 최고다. 아기아기한 얼굴인데 드럼은 또 폭발적으로 두드린다. 거기서 희열이 보는 이들에게까지 전해진다. 사운드 세례는 감동이며 완전한 기쁨을 맛보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사망한 지금 이 시대, 남은 3년을 열받지 않고 보내려면 추억팔이가 최고다. 추억 속으로 쓱 기어들어가면 힘겹고 이 흉흉함이 새롭게 펼쳐지는 매일을 좀 수월하게 견딜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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