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걸 봤어요. 누구나 여기를 지나가죠. 그러나 자신이 이곳을 지나간다는 의식을 하지 않죠. 그건 아마도 너무 당연해서 일 겁니다. 그것이 너무 당연하면 의식은 그 당연함을 의식에서 배제하죠. 매일 다니는 길을 오늘도 지나쳤죠? 근데 기억이 납니까? 아마 기억이 나지 않을 겁니다. 기억이 안 나는 이유는 너무 당연한 곳을 다녔기 때문에 눈여겨 살펴보지도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늘 다니는 길에 어떠한 이벤트가 일어났다면 그 기억은 꽤 오래갈 겁니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곳에서 당연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너무 깊게 생각지 마세요. 깊게 생각해야 하는 일들이 분명 있거든요. 집중과 선택. 우리는 집중과 선택에 있어서 깊게 생각합시다. 신발을 신을 때 오른쪽 발을 먼저 신을까 깊게 생각하면 몸과 마음은 과부하가 올 겁니다. 아시겠지요.



오늘도 비가 오는데요. 일주일 넘게, 체감상으로는 2주 내내 차가운 비가 오고 날이 흐리고 잿빛 하늘이 지속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술가들은 이런 날을 선호한다는데 저는 맑고 밝은 날이 좋습니다. 비가 오는 날은 그리 반갑지 않습니다. 일단 조깅이 어렵습니다. 비가 와도 일단 강변 조깅 코스로 나가는데 비가 오면 러닝화를 바꿔서 신는데 달리기를 포기하고 비막이가 설치된 곳에서 스쾃이나 팔 굽혀 펴기를 합니다. 실컷 저 먼 곳까지 달리고 싶지만 비가 오면 일단 그게 안 된다. 우산을 쓰는 것도 귀찮고, 비는 차가워서 주위의 기온을 앗아간다. 그래서 2월에 내리는 비는 차갑고 날은 춥다. 그런 날이 2주 동안 계속되고 있어요. 결락감이 깊게 드는 날이 이어집니다. 등에 아이가 올라탄 것 같아요. 어떻게 겨울 장마가 이 시기에 올 수 있죠?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드네요.



어느 영화를 보니 죽음이 임박했을 때 노래를 부르더라구요. 나이 들어 죽음을 맞이하는 게 아니었어요. 데이트 상대를 잘못 만나 구타를 당하고 드럼통에 들어가서 땅에 묻혀 죽음을 맞이하며 벌벌 떨다가 노래를 읊조리듯 불렀어요. 근데요, 그게 가능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요.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죠? 그것을 아는 사람은 지금 이 세상에는 없는 사람일 테니까요. 죽음을 생각하면 일단 겁이 납니다. 죽음이란 태생적으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다면 죽음을 맞이하는 것에 있어서 겁보다는 뭐랄까 받아들이는 쪽으로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꿈을 꾸면 꼭 죽기 직전까지 가는 꿈을 꿉니다. 칼이 배에 푹 찔리기 직전이나 배에 들어오는 그 순간 잠에서 깹니다. 어떤 날은 불구덩이에 빠지는 찰나에 깨어납니다. 정말 겁이 납니다. 왜 이런 꿈을 꾸는 것일까요.


우울이란 어째서 때때로 저를 괴롭히는 걸까요. 우울이란 원래 없었는데 제약회사가 세계 곳곳에 생김으로 해서 사람들이 먹는 음식에 우울을 겪게 하는 묘한 물질을 넣어 둔 게 아닐까요. 그러니까 제약회사에서 이런 모종의 계획을 현실화한 거지요. 그래서 우울증에 좋은 약을 처방받도록 유도했습니다. 우울함은 사람을 괴롭힙니다. 이거다 싶은데 느닷없이 저거다 싶게 만들어요. 멍하게 있으면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내 머릿속에 들어와 나 대신 생각을 하는 것 같아서 무섭습니다. 내가 생각을 하지만 내가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오늘은 이쯤에서 끝내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어릴 때 먹던 컵라면 맛이 있다. 설명은 불가능하지만 만약 그 맛을 본다면 대번에 알 수 있을 거야. 그러나 그 맛이 나는 컵라면을 이때까지 못 봤다. 어릴 때 우리 집은 마당이 있고 마루에 앉아서 엄마와 같이 컵라면을 호로록 먹었다. 후레이크와 함께 국물의 맛, 면발의 맛 역시 아는데 막상 적으려고 하거나 말하려고 하면 이상해진다. 전혀 설명을 할 수 없거나 이상한 방향으로 가버린다. 사실 맛을 설명하는 건 나에게는 무리다. 바다 같은 맛, 봄날의 햇살 같은 맛이라고 표현을 가능하나 진정한 맛에 대한 설명은 못한다.

5학년 때 점심 도시락을 컵라면과 함께 먹었는데 담임선생님이 꼭 라면을 뺐어 먹었다. 깐깐하고 마른 여자 선생님이었는데 컵라면에 물을 붓고 다 익어갈 무렵이면 와서 한 젓가락만 먹자고 하고선 반이나 먹는, 미워죽겠는 담임이었다. 학생의 컵라면을 그렇게도 먹고 싶을까 하는 눈빛으로 쳐다봤지만 담임은 아랑곳하지 않고 컵라면을 먹을 때면 뺏어 먹었다. 그 담임 선생님은 내가 가지고 있는 장난감도 자기 아이 준다며 몇 개나 들고 갔다. 또 교실의 커튼교체도 아버지에게 부탁해서 일요일에 학교에서 그 작업을 해주었다. 아니 자기 남편을 시키면 되는데 왜 우리 아빠야? 담임 이름도 생상하게 기억이 나서 구글링을 해봤는데 나오지 않았다.

담임이 내 장난감을 달라고 하면 엄마는 또 그냥 줘 버렸다. 나의 허락도 받지 않고 말이다. 그때는 엄마도 담임도 미워 죽을 것만 같았다. 5학년 담임을 생각하면 으 하게 된다. 또 공부를 못하는 나를 방과 후 나머지 공부까지 시켰다. 다른 아이들은 전부 집으로 가는데 나만 남아서 나머지 공부를 했다. 몹시 창피했다. 공부 못하는 아이가 당시에는 부끄러운 일이었다. 담임은 교실에 남아서 일 대 일로 공부를 시켰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 6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학급위원이 되었다. 학급위원은 성적순으로 되는 계급 같은 건데, 와 내가 학급위원이 되다니. 그렇게 공부 못하던 내가 공부 잘하는 아이들 틈에 끼어 뭔가를 하고 있다니. 이름표 밑에 학급위원 이름표가 하나 더 붙음으로 해서 아이들의 선망이 대상이 되었다.

준우에게 장난감 주는 거 싫지? 근데 네가 이해해라. 준우가 아빠가 없어. 6학년이 되었어도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에게도 잘하고, 인사도 잘하고.

인간의 삶이라는 게 겉으로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은 알기 쉽게 설명하거나 1 이거나 2라고 자신의 감정을 말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감정을 숨기거나 에둘러 말하거나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을 하는 게 나쁜 거라고 배웠지만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사람들이 전부 올바르고 진실만을 말하면 지옥이 될 것이다.

#

어릴 때 다니던 교회 앞에 작은 분식집이 있었다. 거기에서 우리는 라면을 주로 사 먹었다. 라면이 아주 맛있었다. 맵지 않고 반찬이 단무지라 마음에 들었다. 그릇은 요즘 다시 유행하는 레트로 녹색 멜라딘 그릇이었다. 맛도 맛이지만 무엇보다 또래들과 앉아서 라면을 먹는 맛이 좋았다. 초등학생 저학년이라 같이 어울려 식당에 가는 것이 어려웠다. 라면도 고들고들하니 좋았고 하하 호호 이야기를 하면서 먹었다. 그러나 분식집에는 오후가 되면 늘 아저씨들이 앉아서 막걸리를 마셨다. 그래서 잘 갈 수 없었다.

교회 지하는 공부를 할 수 있게 도서관처럼 만들어 놨다. 책도 읽고 그럴 수 있다. 나는 책 읽은 기억은 없는데 지하 도서관에는 늘 있었던 기억은 있다. 선생님과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선생님은 대학생이었다. 나는 막 중학생이 되었고 학교에서 먼지처럼 지내는데 교회에서는 어릴 때부터 다녀서 그런지 조금은 편했다. 완전히 편하지는 않았는데 내가 기도할 차례가 오면 그날은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아이들과 비교되는 게 싫었다. 이 기도라는 게 나는 왜 자연스럽게 술술 안 되는 것일까. 이유는 나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라는 게 사실 없었다. 그게 이유다. 그냥 어릴 때부터 다니다 보니 때가 되면 교회에 나갔지 밑음이라든가 기도라든가 이건 나와 먼 이야기였다. 중학생이 되어서 보니 누나형들은 전부 교회에서 연애하느라 바빴다. 도서관에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앉아서 공부를 핑계로 연애를 했다. 집에는 교회 도서관에 간다고 하면 방학에도 의심 없이 부모님은 보내주었다.

[선생님 하느님이 옆에 온 걸 어떻게 아나요?]

나의 질문에 선생님도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아니 답을 해주었는데 내가 듣기에는 그렇게 와닿지는 않았다.

[선생님 저 장 보러 갔다 와야 해요.]

그래서 선생님은 나와 같이 시장에 갔다. 나는 시장에서 부식물을 몇 가지 샀다. 그리고 정육점에 들러 돼지고기를 이런이런 부위를 달라고 해서 구입했다. 선생님은 나에게 돼지고기 부위를 어떻게 그렇게 설명을 잘하느냐고 물었다. 그런 질문을 처음 들어봐서 나는 적절한 대답을 속으로 찾았다. 돼지고기는 구이용, 찌개용, 조림용 뭐 다르니까 식육점 주인에게 달라고 하면 알아서 주는데 내가 부위를 아는 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설명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선생님은 시장에서 장 보는 게 재미있었던 모양이었다. 나에게 여기저기 구경을 하자고 했다. 그래봐야 그저 전통시장이다. 요즘처럼 먹거리가 다양한 것도 아니었지만 시장은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그러나 중학생에게는 빨리 장 봐서 가고 싶은 곳이었다. 그날 교회에 돌아와서 선생님하고 컵라면을 먹었다. 육개장사발면을 먹었는데 맛있었다. 그날이 생각나는 게 오후의 어스름 햇살이 교회의 두꺼운 유리에 부딪혀 아스라이 들어오는 장면. 그 빛을 보면서 컵라면을 들고 앉아서 먹었던 기억. 선생님이 교회에 자주 나오는 것도 나는 안다. 좋아하는 오빠가 청년부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오빠는 선생님보다는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있다. 안타까운 마음을 간직한 채 오빠를 보기 위해서 교회에 자주 나오는 것이다. 누구도 교회에 오는 것을 나무라지 않는다. 교회는 그런 곳이니까.

선생님 하느님도 컵라면 맛을 알까요?라고 묻지는 않았지만 아마 위대한 하느님이니까 컵라면 따위는 먹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이 아니니까 컵라면에 행복해하며 맛있게 먹었다.

#

중학교 때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둘이서 매점에서 컵라면을 사 먹었다. 특히 토요일에는 늘 컵라면을 먹고 집으로 갔다. 토요일에 수업이 일찍 끝나면 매점에 달려가서 컵라면과 도넛을 먹었다. 매점표 도넛인데, 그냥 도넛만 먹으면 맛이 별론데 컵라면과 같이 먹으면 이상하게 꿀맛이었다. 매점 옆에 레슬링부가 있었다. 아이들이 별로 없을 때 매점에 가다가 레슬링부에게 걸리면 돈을 빼앗기기도 했다. 우리도 몇 번 걸렸는데 같은 1학년이라 그런지 라면을 먹고 있을 때에는 기다리다가 레슬링부 선배들이 부르면 돈을 결국 빼앗지 못하고 가버렸다. 그때야 레슬링부가 무시무시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중학생인 것이다.

중학교 때 음악 선생님이 생각난다. 무슨 여자 기숙사 사감 같은 모습으로 늘 검은 원피스 같은 옷만 입었다. 한 반의 담임을 맡고 있었는데 치맛바람이 심한 때여서 물욕에 먹혀 버린 음악 선생님이었다. 뭔가를 받아먹은 아이에게는 아주 잘 대해주고 그렇지 않은 아이에게는 가차 없었다. 차별이 심해서 오히려 상대하기 쉬운 음악 선생님. 음악 선생님이 아주 싫어하는 아이 중에 내가 껴있었다. 음악시간에 노래 부르는 시간이 있는데 나는 노래도 시키지 않았다. 그렇게 앉아있다가 음악시간이 지나가 버린 경우가 꽤 있었다.

미술 선생님은 갓 부임해 온 신입이라 그런지 아무것도 받지 않아도 차별 없이 아이들을 대했다. 미술 선생님은 나를 좋아해 주었다. 나는 어쩌다가 미술은 성적이 늘 좋았다. 그림도 곧잘 그렸다. 다른 아이들이 집의 방을 네모로 그렸을 때 나는 타원형으로 그렸다. 그것도 약간 투시도 형식으로 그렸다. 나는 상상력이 그렇게 없는데 미술 선생님은 나의 상상력을 칭찬했다. 신나는 일이었지. 학교 가는 게 좋았다. 그럴 수 없는데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런데 미술숙제로 한 번은 도형을 그리는 걸 내주었는데 친구 누나가 와서 내가 그려줄게 하더니, 설마 했는데 친구 누나의 도형은 수준이 달랐다. 나는 그 유혹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알고 보니 친구 누나는 미대생이었다. 나는 너무 고민을 했다. 친구 누나가 그려준 도형을 내고 싶지만 너무 수준차이가 날 것이다. 미술선생님이 눈치챌 것이다. 내가 새로 그리려고 했지만 시간이 너무 없었다. 결국 유혹에 넘어가서 누나가 그려준 그림을 숙제로 냈는데 그 뒤로 미묘하지만 미술선생님은 나를 대하는 게 달라진 것 같았다.

중학교 때는 먼지 같아서 있으나 마나 한 존재였다. 그래서 친구 한 명과 주로 매점에서 컵라면을 먹거나 혼자서 컵라면을 먹었다. 이름도 기억나는 그 녀석은 나와는 다르게 공부를 아주 잘했다. 학교에서 같이 놀기는 했지만 나에게 미미하게 낙오와 실패가 붙어 있어서 그 녀석과 깊게 같이 놀지는 못했다. 중학생의 나는 공부도 못하고 운동도 못하고 늘 라디오나 듣고 컵라면이나 먹는 먼지 같은 애였다. 어서 빨리 중학교를 벗어나자 그런 생각이 가득했다.

#

고등학교 때 시립도서관에 가끔 갔는데 시립도서관의 매점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시립도서관까지 가서 공부하기 싫었는데 중학교 3학년에 두 명과 친해지게 되었는데 얘네들은 꼭 시립도서관에 가기를 바랐다. 공부를 하다가 매점에 가서 컵라면을 먹었다. 학교 매점과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사람들이 많았다. 다른 학교 학생들, 여고생들, 대학생, 직장인들이 있었다. 다들 컵라면을 먹었다. 컵라면은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의 소울푸드였다. 국수도 팔고, 우동도 말아서 팔았는데 컵라면을 압도적으로 많이 사 먹었다.

시립도서관은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주말에 가곤 했다. 걸어서 가면 대략 한 시간 정도 걸렸다. 가는 길이 재미있었다. 가는 길목에 초등학교가 세 군데나 있어서 문방구가 많았다. 문방구는 앞에 이것저것 유혹하는 것들이 많아서 구경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불량식품도 많았지만 닭발도 팔았다. 애들이 전부 닭발을 입에 물고 다녔다. 하지만 어린이들이 먹기에는 매웠다. 그러나 아이들이 전부 입에 닭발을 물고 문방구에서 놀았다.

가는 도중에 문방구에 가는 기억을 하다 보면 그날 잠에 잠이 들면 꿈에 그런 꿈을 꿨다. 꿈속에서도 그 거리와 문방구들이 나오는 게 신기했다. 고등학교 때 어느 주말에 시립도서관에서 초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다. 이름은 상희. 살이 쪄서 나는 그 애를 알아보지 못했는데 상희가 나를 아는 체했다. 초등학교 때와는 너무나 달리진 모습이었다. 외모도 외모지만 성격이나 말투가 그 어릴 때보다 뭔가 조급하고 전투적으로 바뀌었다. 누군가 시비를 걸면 바로 달려 나갈 그런 모습이었다.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상희는 꽃처럼 조용하고 예쁜 옷을 입는 그런 아이로 기억이 났는데. 사람에 대한 기억이 깨진다는 건 그렇게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상희는 중학교를 거치면서 공부보다는 그 외의 것에 관심을 더 많이 가졌다고 했다. 요컨대 일진이라든가 노는 언니라든가. 그렇게 보였다. 도서관에는 올 것 같지 않았는데 친구를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그냥 들어왔다고 했다. 도서관 매점 앞 야외 벤치가 운치가 있고 쉬기에 괜찮았다. 나는 공부도 하지 않으면서 도서관에 왔으니 상희나 나나 거기서 거기였다. 우리는 앉아서 추억에 젖어 초등학교 때 이야기를 했다. 추억을 나누는 건 왜 그런지 재미있다.

너 예전에 그랬잖아, 하하 호호.

추억은 웃음을 짓게 한다. 우리는 두 시간이나 이야기를 하다가 허기가 져 매점에서 컵라면을 먹었다. 하하 호호.

#

제대 후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밤새도록 했는데 크게 바쁘지는 않았다. 잠이 오면 작은 방에서 잠도 잘 수 있고 새벽에 문 열 때 목욕탕에 제일 처음으로 깨끗한 탕에 몸도 담글 수 있었다. 대학교 앞이라 대학생들이 많이 왔는데 디자인과 학생들이 어쩌다가 꽤 왔다. 그때 친하게 지내던 녀석이 늘 술을 마시고 밤에 정액권으로 게임을 했는데 새벽 한 시 정도 넘으면 주로 앉아서 꾸벅꾸벅 졸았다. 그 녀석은 술이 취해서 오면 컵라면을 먹는데 두 번이나 찬 물을 부어서 앉아서 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는 녀석이었다. 다시 뜨거운 물을 받아서 주고 찬물을 부은 컵라면은 들고 와서 버리려다 아까워서 젓가락으로만 들고 한 입 깨물어 먹었다. 근데 이게 맛이 없어야 할 텐데 또 아작아작 먹다 보니 나름 맛있는 거다. 그래서 찬물에 불은 컵라면을 두 번이나 먹었다. 그 뒤로는 아직 찬물에 컵라면을 부어서 먹을 일은 없지만 컵라면이라는 게 아무튼 묘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어제는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데 방향제 냄새가 골목에서 확 났다. 봄의 향이다. 목련에서 나는 향인가? 방향제 냄새가 난다는 건 봄이 온다는 말이다. 보통은 3월에 골목에 방향제 냄새가 났는데 올해는 거의 한 달 일찍 봄의 향을 맡았다. 이런 방향제 냄새는 꽃에서 나는 향인데 자연적인 냄새다. 대부분 인공적인 냄새가 좋은데 이렇게 자연에서 나는 냄새 중에 좋은 건 꽃에서 나는 냄새 정도다. 그리고 이런 골목의 방향제 냄새는 봄이 오는 골목에서만 난다. 아파트 단지나 도로, 거리에서는 거의 나지 않는다. 맡아보지 못했다.

가을이 짙어지면 도로에서 밤꽃냄새가 나지만 봄을 알리는 방향제 냄새는 골목에 심어 놓은 목련이 계절을 감지하고 꽃을 피워 향을 뿜어낸다. 봄의 향에는 파스텔컬러가 보인다.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곧 녹아 없어질 것 같은. 그래서 봄은 사실 죽음의 계절이다. 만개와 동시에 무화되어 사라지는 모든 봄꽃은 찬란하지만 슬프다. 벚꽃은 팝콘처럼 부풀어 올라 가장 아름다울 때 전부 떨어지고 만다. 그러나 골목의 오래된 주택에 심어 놓은 목련이 골목으로 고개를 내밀고 가지를 뻗어 꽃을 피워 봄을 알린다. 방향제 냄새가 난다. 봄의 향을 맡는다.

기시감이 든다. 언제나 이럴 때는 기시감이, 강한 기시감이 든다. 눈을 감았다가 뜨면 기시감이 드는 그곳에서 눈을 뜰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짙은 기시감에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 힘이 든다. 정신을 차리고 달려서 돌아오자.

집으로 와서 냉장고에 남은 돼지고기로 짜글이를 끓였다. 붉은색 중 음식의 붉은색은 매혹적이다. 저 붉은색을 먹으면 몸의 변화가 있을 것만 같다. 짜글이의 붉은색은 마법의 색이다. 끓어오를수록 맛있는 향이 난다. 붉은 향이 매혹적일수록 짜글이는 더욱 맛이 좋다. 고기는 그렇게 좋은 부위를 쓰지 않아도 된다. 지글지글 짜글이가 봄날에 익어간다. 곧 본격적인 봄이다. 방향제 냄새가 짜글이의 붉은 향으로 바뀌는 마법이 펼쳐진다.

하얀 목련이 필 때면 목련 꽃의 향을 맡고 짜글이의 맛있는 냄새를 맡고, 봄을 기다리는 태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알탕을 먹은 지 십 년은 넘은 것 같다. 어제는 온도가 15도가 넘어서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난 오늘은 느닷없이 차가운 비가 내리고 바람이 심하게 불더니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비가 하루 종일 내리나 싶더니 며칠 동안 비가 그치지 않고 쏟아졌다. 두꺼운 패딩을 이미 넣어 버려서 봄옷을 입고 나왔다가 추위에 머리통이 얼어 버릴 것만 같았다.

봄을 알리는 계절에 덮치는 이런 추위가 한파 때 몰아치는 추위보다 더 혹독하고 생각한다. 한파 때는 온통 뉴스에서 춥다고 하니 각오를 하고 옷도 여러 겹 입으니까 한파가 지금의 추위보다 더 추울지라도 몸으로 느껴지는 추위는 지금이 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추위는 알탕 속에 들어있는 고기 같다. 그 고기는 돼지고기다. 어울리지 않는다. 왜 알탕 속에 돼지고기 같은 게 들어 있을까. 하지만 또 먹다 보면 괜찮다.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곳이 바로 이곳, 이 세상이니까 먹다 보면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알탕도 괜찮다.

예전에도 이런 추위가 있었지. 이런 기묘한 추위가 몸과 마음을 잠식하던 추위가 시기에 맞지 않게 왔던 때가 있었다. 스무 살 적에 친구들과 자주 가던 알탕 집에서 알탕을 먹곤 했다. 그때는 알탕을 자주 먹었다. 좀 춥다 싶으면 알탕이었다. 알탕이 특별히 맛있는 건 아니었다. 알탕 집이라고 하지만 전문점이 아니었고 그 알탕 집의 알탕은 가격이 저렴했다. 푸짐했다. 조미료가 잔뜩 들어갔고 미나리도 별로 들어가 있지 않은, 어딘가 못 미더운 모양이지만 우리의 소울 푸드 같은 음식이었다. 알이 많고 국물이 떨어지면 바로 채워 주었다. 소주 안주에 딱 안성맞춤이었다.

무엇보다 기묘한 추위에 몸을 데울 수 있는 좋은 음식이었다. 친구들과 자주 찾았다. 작은 선술집으로 테이블이 네 테이블이 고작이었고 술집 이름도 그냥 [알탕]이었다. 알탕은 여러 안주 중에 그저 하나였다. 그래도 분위기만큼은 하라주쿠 저 뒷골목 이자카야 못지않았다. 술집은 작고 늘 오던 사람들이 오는 곳이라 그곳에 가면 단골들은 서로 인사를 했다. 알탕이 굉장히 맛있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의 맛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 안에는 돼지고기가 들어 있었다.

처음에는 묘했다. 기묘했지. 돼지고기는 좋은 부위는 아니지만 푸짐해서 이게 알탕인지 뭔지 애매했지만 먹다 보면 그게 어울렸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어울렸다. 그 알탕 집의 알탕이 그랬다. 조금 식으면 가득 들어간 조미료와 소금 때문에 짰지만 그때 육수를 더 붓고 돼지고기를 더 넣어주었다. 재탕해서 먹는 알탕의 맛은 2차전의 맛이다. 처음에 끓였을 때와 다른 맛이다. 밥까지 주문해서 같이 먹곤 했다. 2차전의 알탕 맛은 배를 채우기에 딱이었다. 우리의 입맛은 그다지 고급스럽지 않았다. 그다지 맛이 있지 않아도 먹을 만하면 맛있게 먹었다. 그럴 때였다.

나의 입맛이라는 건 지금까지 그렇게 이어졌다. 못 먹을 정도가 아니면 그냥저냥 맛있게 먹었다. 그래서 어딘가 여행을 가더라도 크게 맛없어서 못 먹는다거나 하는 경우는 없다. 못 먹는 음식 빼고는 그저 다 잘 먹었다. 못 먹는 음식이라면 매운 음식이다. 예전에 친구들과 자주 찾았던 알탕은 매콤하지 않았다. 붉은색을 띠고 있지만 맵지 않았다. 오히려 달큼했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알탕을 먹으러 다닐 때 같이 다니던 친구들은 전부 맛을 많이 따지는 사람들이 되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점심 한 끼에 피로를 풀고 시간을 즐기며 대화를 하는 것이 하루의 낙처럼 되어서 음식이 맛없으면 투덜투덜거렸다. 그 투덜거림이 뭔가 부하직원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져서 이제는 같이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지 않는다.

환경은 그렇게 사람을 변하게 한다. 내가 일하는 곳의 환경과 회사 다니는 친구 주위의 환경은 너무 다르다. 회사 주위는 정말 맛있는 음식점들이 많다. 회사원들에게 음식이 맛없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내가 일하는 근처는 다운타운이라 주로 학생들이 많이 나오고 학생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점들이 많다. 내가 이 근처 음식이 마음에 드는 건 귀찮지 않은 음식들이 대부분이라서 그 점을 좋아한다.

회사원 친구들 근처의 식당은 찌개나 구이처럼 테이블 위에서 굽고, 끓이고, 찌고 뜯는 음식들이 많다. 내가 일하는 다운타운에 있는 식당은 테이블 위에 나오면 바로 먹으면 되는 음식들이다. 햄버거, 돈가스, 파스타, 쌀국수, 떡볶이 같은 음식들이다.

예전의 그 알탕 집의 알탕은 조리가 다 되어서 나오는데 테이블 위의 가스레인지에 올렸다. 그래서 식으면 다시 재탕, 삼탕 해 먹었다. 알탕 집도 예전에 다운타운의 뒷골목에 있었다. 뒷골목에 술집들이 자리 잡고 옹기종기 있었다. 알탕 집, 빈대떡 주점, 선술집들이 꼬불꼬불 골목에 죽 붙어 있었다. 맛은 둘째치고 운치가 있었다. 봄이 다가왔지만 겨울의 끈을 놓지 못한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면 운치가 짙은 골목으로 들어가 알탕을 퍼먹으며 소주 한 잔이 그리워진다.

알탕의 붉은색은 매혹적이다. 그렇지만 맵지 않았다. 맵지 않은 음식의 붉은색은 붉은색이지만 붉은색처럼 보이지 않는다. 알탕에는 알 말고도 곤이도 들어가 있다. 곤이가 물고기 정액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알고도 맛있게 먹지만 몰랐을 때 곤이는 천상의 맛이었다. 정액과 곤이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어울렸다. 어울린다기보다 한 몸인 게지. 정액과 곤이라 한 몸이라니. 큭큭큭. 그런 게 바로 세상이지. 그런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곤이는 입안에서 그대로 녹아 없어지는 음식이 이렇게나 맛있다니. 봄이 되면 그제야 알탕 집에서 미나리를 많이 넣어 주었다.

알탕 집 이모님은 호호 아줌마 같았다.

작고 왜소하고 작은.

그래서 주방에서 알탕이 나오면 우리가 알탕을 테이블로 직접 들고 왔다. 웃으면 영락없는 호호 아줌마였다. 지친 마음을 달래기에 좋은 장소, 좋은 알탕이었다.

얼마 전에 그는 그 알탕 집이 있는 장소에 가봤다. 그곳에는 무인모텔이 들어섰다. 호텔 같은 모텔. 그런 모텔들이 세상을 점령하고 있다. 골목과 모텔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모텔이 들어서고 나니 떠 어울렸다. 이제 알탕 정도는 집에서도 밀키트로 간편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그래서 맛이 없다. 맛있는데 맛없다. 세상에는 그런 음식이 존재한다. 세상은 넓기 때문에. 밀키트로 그저 끓이기만 하면 되는 알탕 역시 귀찮은 음식이다. 귀찮은 음식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지만 어울린다. 알탕은 나에게 그런 음식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이비 종교에 대한 태국 영화를 한 편 봤다. 집을 세 주면서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이 사이비 종교를 믿는 신도들로 공포영화다. 사이비 종교는 시대를 막론하고, 어느 나라든지 사이비 종교는 있고 그것을 다룬 방송이나 영화가 쏟아진다. 우리나라에서 사이비종교의 대표로 JMS의 정명석이 구속 기소되었고, 넷플릭스에서 [나는 신이다]를 제작해서 방송했다. 엄청났다.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방송 관계자들이 공격을 받았다는 소식도 들은 것 같은데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나도 사이비 종교에 관한 단편 소설을 한 편 썼다. 그 단편을 쓰기 위해 그 안에까지 들어가는 과정을 알아야 해서 직접 그들의 모임에 몇 개월 동안 참석을 한 적이 있었다. 몇 개월 잘 다니다가 그곳을 나올 때 소모임의 리더 같은 사람이 나를 엄청 붙잡았다. 그 속에서 만나고 이야기했던 사람들, 즉 신도들은 너무나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누구에게 해코지를 하거나 심지어 나와는 다르게 욕 한 마디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사이비종교라는 걸 어떻게 명확하게 지정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다. 인터넷에서도 신천지를 검색하면 그들이 하는 봉사활동의 소식이 밑으로 주욱 나온다. 실제로 신천지가 사람들을 향해 공격을 하거나 돌을 던지는 행위를 하지는 않는다. 신도들은 다른 종교처럼 선교활동을 하고 말씀을 전하는 행위를 할 뿐이다. 사이비 종교라는 걸 명확하게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코로나 초기 때 내가 있는 곳에 신천지 신도가 와서 최초 전파자가 되었다. 대대적으로 뉴스가 났고 그들이 들어갔던 가게나 음식점은 확진자가 다녀간 집이라고 펜스를 치고 2주 동안 영업정지였다. 그때 [확진자]라는 사건의 중심보다 [신천지]라는 변두리에 사람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결국 이 근방에 시에서 신천지 전수조사를 나왔다는 소문이 돌았고 아케이드가 쳐 있는 400미터 안에 신천지 건물 5곳이 나왔다. 그 건물들의 이름이 하나씩 인터넷에 올라오면서 사람들은 신천지에 대한 불신과 불안 그리고 공격적인 성향을 가지게 되었다. 여기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신천지라는 건물을 몰랐을 때는 고요하게 지금까지 잘 지냈다. 그 사실(400미터 안에 신천지 건물이 5군데가 있다는)을 알았을 때와 몰랐을 때가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신천지는 사이비종교라서 사람들은 대단히 불안해했다.


사이비종교는 하느님을 믿지 않을 것 같고, 신도들은 영화 속처럼 기괴하거나 괴이한 행동을 하고 언어를 사용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타인에게 방해 주지 않으려 조심하며 밖으로 나오지 않고 지내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다면 사이비종교가 아닌 종교, 여러 종교 중에 개신교는 좀 어떨까. 흔히 말하는 교회에 나가고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 말씀을 전하고. 대한예수교, 침례교 등 사이비종교가 아니라고 하는 종교가 있는데, 정통 개신교를 믿는 자들이 신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며 욕설을 하고 일반인들보다 더 욕심에 눈이 멀어 나쁜 짓을 많이 하기도 한다.


가장 최근의 예로, 박수홍 형은 정말 절실한 개신교 신자라고 한다. 법정에서도 검사와 변호사의 주장이 오고 갈 때마다 [하느님아버지]라고 계속 조그맣게 내뱉는다. 사실 이런 소리 정말 듣기 싫다. 이 박수홍 형의 웃긴 점은 그렇게 하느님 말씀을 듣는데 박수홍의 아내를 조사하기 위해 점을 보러 가서 거기서 부적인가, 그런 내용도 법정에 나왔다고 한다.


도대체 사이비종교라는 건 무엇을 근거로 결론을 내야 할까. [사이비종교인]라는 단어가 더 확실한 것 같은데 [아니야, 나 땡땡교회 다녀]라고 하면 사이비종교가 아닌 것처럼 되어 버린다. 교회 내의 이득경쟁도 치열하고 서열이나 다툼도 정치인들 못지않다. 나라에서 인정한다고 해서 그 종교를 사이비라 부르지 않는 것일까.


종교와 신도들에게 사이비라는 호칭을 붙이는 건 누가 정하는 것일까. 법으로 나와 있는 것일까.


많은 나라에서 사이비 종교 때문에 사람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얼마 전에 케냐에서 사이비 종교에 속아서 굶어서 떼죽음 당한 사람들의 뉴스도 있었다. 일부 시신에서는 장기도 적출했다. 불과 일 년도 안 된 사건이다. 미국에서 70년대 짐 존스라는 희대의 사기꾼이 인민사원 교주를 하면서 900명을 집단자살하게 만든 일이 있었다. 이 엄청난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디카프리오가 짐 존스로 분해서 다시 영화를 만든다는 이야기가 2021년도부터 나오고 있다.


정신이 나갈 것 같았던 영화, 어두운 밤보다 환한 대낮의 공포가 얼마나 더 무서운지 잘 보여줬던 영화 [미드 소마] 역시 사이비종교에 관한 이야기다. 여기는 배경이 스웨덴이다. 사이비종교는 분명 존재한다. 사이비 종교는 신도들의 약한 마음에 투침하여 조금씩 시간을 들여 마음을 갉아먹는다. 마음을 다 갉아먹은 자리에 악마를 심어 놓는다.


사이비종교라는 건 순진하고 착한 신도들의 뒤에 숨어서, 마음에 숨어서 본체가 드러나지 않는다. 드러나도 결국 사이비종교야 같은 말을 들을 뿐 사이비종교를 결정짓는 어떤 선도 없어서 오늘이 지나면 다시 사이비종교는 활개를 펼칠 동력을 마련한다. 종교에 믿음이 빠지고 우리 아니면 전부 나쁜 거야,라는 분위기가 강하면 그게 사이비종교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집단생활의 여러 특징 중 눈에 띄는 하나는 아이 때부터 집단생활을 하면 성인이 되어서도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