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고디바 1898


1800년대 이런 고급망토를 두른 말을 탈 수 있는 신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녀는 고디바 백작 부인이었다. 그녀는 당시 농민 착취에 맛을 들인 남편 레오프릭 3세에게 농민의 신음에 귀 기울여 달라고 부탁했고, 농민의 세금을 깎아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남편은 콧방귀 하나 끼지 않았다. 고디바는 그렇게 해 준다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했다. 남편은 그제야 그러면 알몸으로 말을 타고 영지를 한 바퀴 돌라고 했다.


고개 숙인 그녀의 얼굴과 머리카락으로 가린 가슴, 그녀는 천천히 말을 타고 마을의 모든 곳을 천천히 돌았다. 그녀의 사연을 전해 들은 마을 사람들은 집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창문을 닫았다. 그녀의 말은 천천히 마을의 상점가를 또각또각 돌았다. 딱 한 사람, 마을의 재단사가 고디바를 훔쳐봤지만 눈이 멀고 말았다. 고디바에 감동한 레오프릭 3세는 농민들의 세금을 크게 깎아 주었다. 초콜릿 고디바의 영감이 바로 이 아름다운 백작 부인에게서 얻은 것이리라.


존 콜리어의 ‘육지의 아이’ 역시 너무나 아름다운 여성, 여성의 모습을 한 세이렌의 모습이 있다.

존 콜리어는 당시 동시대에서 여성을 가장 아름답게 그린 화가였다. 그러나 아름다움 그 뒤에는 사연, 섬뜩함, 관계 같은 관념이 가득 스며있다. 다른 화가들에 비해 너무나 아름다운 그림 속 주인공 여성은 바로 그림밖으로 뛰쳐나올 것만 같지만 어쩐지 서늘하고 섬뜩하다. 존 콜리어에 대한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쓴 기사가 있다.

https://n.news.naver.com/mnews/ranking/article/016/0002223216?ntype=RANKING&sid=001


기사에서도 나오지만 존 콜리어의 ‘육지의 아이’는 몹시 기기괴괴하다. 세이렌의 뒷모습이 몹시 섬뜩하다. 아이를 부르는 세이렌은 곧 아이를 어떻게 할지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세이렌은 아름다운 선율로 선원을 홀려서 뜯어먹는다. 세이렌이 나오는 영화는 너무나 많다. 캐리비안 해적에도 세이렌을 잡았을 때 세이렌은 괴물 같은 얼굴로 변하기도 했다. 여러 세이렌이 나오는 영화가 많지만 2018년에 미드로 ‘세이렌’이 개인적으로는 최고였다.

세이렌의 특징은 노래를 불러 인간을 꼬드긴다. 그런데 그 노래가 기존의 영화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다. 마치 돌고래가 음파를 쏘아내듯 공명으로 노래를 사람에게 전달해서 뇌의 어떤 부분을 건드린다. 그래서 그 노래를 듣는 사람은 무기력하고 공상에 젖어있고 잠이 들면 머메이드의 공명이 계속 맴돌며 떠나지 않는다. 그러다 시름시름 앓게 된다. 기묘하지만 시즌1을 보는 동안 그 묘한 음악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돈다. 세이렌이 부르는 구슬픈 음악은 로드 멕퀸의 '유'의 리듬과 닮았다.


세이렌은 물 밖으로 나오게 되면 탈피를 한다. 변태를 하고 껍질을 버리고 육지로 올라오게 되는데 처음보다 두 번, 세 번 물 밖으로 나올수록 육지에 적응이 더 잘 된다. 보기에는 40킬로그램 밖에 안 되어 보이는데 실제는 80킬로그램이 나가고 심장박동이 굉장히 빠르다.


힘이 엄청나고 민물이나 수돗물에 빠져도 머메이드로 변신을 하지 않는다. 바닷물이어야만 변신을 한다. 그리고 바닷물에 닿아서 세이렌으로 변신할 때 엄청난 고통을 겪는다. 무엇보다 육지화되어 있을 때는 인간처럼 생각을 하지만 머메이드가 되면 포식자의 본능만 가진다. 그래서 머메이드보다 상위 포식자, 즉 상어 같은 절대 포식자를 제외하고는 모든 바닷속 생명체를 공격한다. 그러니까 날 때부터 그들은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다.

세이렌은 기존의 미드에서 보여주는 답답함이 덜하다. 시즌1이 물 흐르듯 흘러간다. 미국 영화의 특징인,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마주하고, 우리가 어릴 때 그랬지, 너는 내게 모든 걸 털어놓기로 했지, 같은 대화를 세이렌을 사이에 두고, 급박하게 흘러가야 하는 가운데 답답하게 보내지 않는다. 받아들이고 주인공들을 믿어주고 같이 해결하려는 모습들이 잘 나타난다. 무엇보다 바닷속 세이렌의 변신모습과 탈피하는 모습이나 공격성 등이 이전의 머메이드 영화보다 표현의 질감이 대단하다.  

https://youtu.be/QlZoXG0BJm4?si=u8lR_z1B_OdgBxVi


무적소녀


우리는 그 자경단을 무적소녀라 불렀다. 당연하지만 여성이며 단독으로 움직였고 소녀라는 것을 알고 있다. 무적소녀는 데이트폭력으로 시달리는 여성을 구출하고 폭행을 일삼는 남자의 성기를 떼어 내 남성의 입 속에 틀어 박은 후 사지를 전부 분질러 놓고 밧줄로 묶어 놓고 경찰에 연락을 했다. 무적소녀의 움직임을 본 사람은 없었다. 무적소녀는 어둠을 타고 움직였다. 무법천지가 된 밤길의 골목에서 강도들이 한 사람을 에워싸고 난도질을 하려고 할 때 무적소녀가 어둠을 타고 나타나 강도들의 팔다리를 전부 못 쓰게 만들었다. 마치 불도저가 지나간 것처럼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영화에서 처럼 강도들이 헉헉 거리며 도망을 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팔다리가 종이처럼 짓눌러져 이동이 전혀 불가능했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범죄자들은 무적소녀를 두려워하면서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범죄 집단끼리의 난투국도 멈춘 채 휴전을 선언했다. 그렇게 된 것에는 무적소녀가 개개인의 범죄자 처단을 넘어 조직들에게 경고 메시지를 남겼기 때문이다. 무적소녀에게는 여러 무기가 있지만 아직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오로지 맨주먹과 발차기로 범죄자를 응징했다. 어둠 속에서 마치 난 다 알아 하는 것처럼 휙휙 움직여 강도들의 팔다리를 짓눌러 놓았다. 무적소녀가 조직에 선전포고를 한 것은 조직에서 마약관리와 유통을 드러내놓고 하기 때문이다. 성형외과 의사들과 피부과 의사들 그리고 정신과 의사들과 약사들을 포섭해서 합성마약 진통제를 유통시키고 있었다. 합성 약물은 가격이 저렴하여 누구나 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 무적소녀가 혼자서 여러 조직을 상대할 수 있었던 것은 무적소녀가 어둠과 육지에 적응한 세이렌이었다는 것이다. 원래는 인간이었던 무적소녀는 12살에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매일 폭행을 당하다가 겨우 빠져나가 바닷가에서 쓰러져 죽음으로 가고 있을 때 세이렌의 능력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무적소녀는 낮에는 평범한 18세 소녀였지만 밤이 도래하면 무적소녀의 모습으로 어둠을 타고 자경단이 되어 범죄를 일삼는 곳으로 가서 그들을 처단한다. 자비라는 것이 없다. 세이렌에게 자비는 쓸모없는 관념이기 때문이다. 무적소녀는 달빛을 받아 노래를 부르면 입술 밖으로 흘러나오는 선율은 범죄자들의 귀로 들어가 뇌의 여러 부분을 건드리고 도파민을 평소보다 몇 배나 쏟아지게 만들었다. 이리 오세요, 내가 안아 줄게요. 그리고 무적소녀는 어둠에 몸을 숨긴 채 사지를 전부 종이처럼 분질러 버린다. 무적소녀는 노래를 자주 부를 수 없다. 노래를 부르고 나면 몸이 갈라지는 것처럼 아프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래를 들은 인간은 그 노래가 생각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노래를 계속 듣고 싶어 한다. 노래를 원하고, 노래를 듣지 않으면 점점 미쳐간다. 주위 사람들에게 공격적이 되고 조금씩 이성을 잃고 사랑하는 가족에게도 공격을 하게 된다. 결국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서 자기 자신을 공격하여 몸을 전부 뜯어 버리며 생명을 잃는다. - 세이렌을 소설화한다면 이렇게 만들고 싶다.


나에게는 스벅 1호점의 텀블러도 있다. 스벅 1호점의 텀블러의 세이렌은 정말 세이렌 같은 모습이다.


아름다운 여성은 위험하다. 존 콜리어의 그림 속 여인들을 보면 드러난다. 아름다운 여성에게 빠지면 속수무책이다. 헤어 나올 수 없다. 빠져나오는 것이 죽기보다 더 힘든 것이다. 여인의 아름다운 성질 속에는 호러블 한 관념이 가득하다. 나의 아내가 너무 아름다우면 불안한 기분이 드는 것과 비슷하다. 제임스 건의 코믹호러 슬리더를 보면 그랜트를 보면 절대 그럴 수 없지만 너무나 예쁜 아내 스타라를 가지고 있다. 결국 엄청나게 징그러운 개불이 되었을 때 그랜트는 자신의 불안했던 마음을 드러낸다. 너무나 아름다운 아내인 스타라를 죽이려 든다. 아름다운 여성은 동전의 양면에 전부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존 콜리어는 여성만 그린 건 아니다. 저 기사를 따라가면 찰스 다윈이나 아우구스투스 이글필드 같은 사람의 초상화도 그렸다. 아 평생 진화를 연구한 다윈이 이렇게 생겼구나 하게 된다.


그래서 오늘의 선곡은 로드 맥퀸의 유 https://youtu.be/MamL9CI-gHo?si=ZMpSRT51xiWG-Uk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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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고 맑은 날이 이어진다. 온 세상이 황금빛의 물결을 이루고 모든 풍경이 생명을 가득 채우는 듯 보이는 날들의 연속이다. R.ef의 이별 공식에 햇빛 눈이 부신 날에 이별해 봤니 비 오는 날 보다 더 심해,라는 가사처럼 이렇게 밝고 맑고 청조한 가을의 깨끗한 날에 더 우울하다. 사랑을 잃어버린, 사랑하는 킬리를 잃어버린 타우리엘의 마음처럼 깨끗하지만 우울하다. 우울한 날에는 키리코다. 키리코의 그림 속에는 불길하고 깊은 우울이 가득하기 때문에 나의 어울 따위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키리코의 그림을 보고 난 후 시원한 칼스버그를 마신다.


여자는 화가 나는 일이 있어서 화내는 것이 아니라 화내고 싶어서 화를 내는 거야. 여자의 속은 도무지 알 수 없지. 깊고 깊은 바닷속을 인류가 알 수 있나. 그건 알 수 없는 거야. 인류가 바다를 정복하려 하지만 그게 마음처럼 될까. 여자의 마음은 바다와 같아. 칼스버그나 마시자.


어느 날 뷔페를 갔다. 그곳의 뷔페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닮았다. 무라카미 류를 닮지 않았다. 예전에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가 만나 이런 대화를 했다. 나는 열 명 중에 한두 명이 나의 글을 좋아해 준다면 족하다고 하루키가 말했다. 하루키 씨는 대단하네요. 나 같으면 열 명이면 열 명이 다 좋다고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기분이 나쁠 텐데.라고 무라카미 류가 감탄하며 말했다. 그래서 칼스버그나 마시자.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어느 곳에선가 이렇게 썼다. 진정한 남자가 되기 위해서는 네 가지를 이루어야 한다. 나무를 심는다, 투우를 한다, 책을 쓴다, 아들을 낳는다.라고. 나는 도대체 뭔가. 헤밍웨이의 글에 따르면 나는 진정한 남자가 아니다. 나는 그저 진정 한 남자일 뿐이다. 그렇게 말한 헤밍웨이는 자신의 글로 구원받지 못했다며 총구멍을 입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세상은 뭔가 불공정한 공평함이 있다. 그러니까 칼스버그나 마시자.


사람들의 등에서 권태가 빠져나간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은 장례식장이다. 장례식장에서 사람들은 어깨 위에 단단하게 박혀 힘들어했던 권태를 그리워했다. 고요한 장례식장은 꽤나 이질적이다. 적막과 고요가 장례식장을 가득 메우고 있고 그 틈을 벌리는 것은 냉장고가 우웅 돌아가는 소리뿐이었다. 거슬리는 소음이 소리를 잡아먹고 있었다. 그 사이에 빌리 조엘의 피아노맨이 나왔다. 피아노맨은 모두가 즐거운데 듣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 이상한 노래다. 칼스버그를 마시는 것 그게 우리가 지금 할 일이다.


잠이란 길이의 문제가 아니라 깊이의 문제다. 잠을 깊이 들지 못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깊은 꿈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일어난다. 비슷한 꿈을 자주 꾼다. 비탈길 위의 자동차가 핸드브레이크가 풀려 슬슬 내려가더니 속력을 내며 어딘가에 가서 쾅하며 박힌다. 꿈속에서 자주 몸이 가렵다. 몸을 긁으면 피가 나고 그 자리에 수선화가 핀다. 나는 수선화를 꺾어서 그녀에게 내민다. 수선화를 받는 순간 그녀는 별이 되어 하늘로 가버린다. 잠에서 깨어나면 아침이 힘겹다. 칼스버그나 마셔야지. 시원하게.


덴마크식 바다가 보이는 퍼브에 앉아 칼스버그 한 잔을 마시며 시저 샐러드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행복이 있다. 이 집의 샐러드가 좋다. 싱싱한 채소에 짜지 않는 베이컨과 로메인과 달걀노른자, 크루통은 바삭하고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가 듬뿍 들어있다. 그걸 먹으며 시원한 칼스버그 한 잔을 마시면 괜찮은 하루다. 하루키 말을 빌리면 맥주를 마시며 적당한 변명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데 이래도 괜찮은 건가 하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뭐 괜찮겠지.



Billy Joel - Piano Man https://youtu.be/gxEPV4kolz0?si=xO4fH_8bhSGIQwV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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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소주는 저렇게 소주병보다 작은 병인데 거의 칠천 원 정도 한다. 안동소주는 독한데 그 맛이 좋다. 사실 소주보다 훨씬 좋다. 이렇게 기름에 두른 생선구이를 먹을 때 독한 술이 꼴까닥 목으로 넘어가면 목이 화악 씻기는 느낌이다.


중국집에서 탕수육이나 유린기를 먹고 고량주를 한 잔 꼴까닥 넘기는 맛을 아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니 나는 아직까지 고량주를 한 번도 마셔보지 못했다. 뭐 그렇다고 마시고 싶은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독한 안동소주도 어쩌다가 마실 뿐이라서 자주 찾아서 먹지는 않는다.


이렇게 술맛이 강한 안동소주를 마시다가 소주를 마시면 물 같은 맛이다. 소주로는 몇 병을 마셔야 할 것 같은 기분을 안동소주는 한 병으로 끝낼 수 있는 것 같다. 소주는 도수가 점점 약해져서 소주를 마시고 취하려면 술값이 많이 든다. 전부 상술처럼 느껴지는 요즘이다.


조깅을 할 때 반환점을 찍고 돌아오는 길은 다운타운을 지나서 온다. 다운타운은 밤의 화려함으로 옷을 갈아입고 나면 수많은 식당과 술집에 사람들이 행복하게 웃으며 한 잔을 즐긴다. 그걸 구경하면서 오는 재미가 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술집의 테이블 위에 소주병이 한 두 병이 아니라 주로 여섯, 일곱 병씩 올려져 있는 모습을 자주 본다. 술은 취하려고 대부분 마시니까 소주를 마시고 취하고 싶은데 도수가 약해빠져서 몇 병씩 마시게 되는 것 같다. 오래전에는 소주도 독해서 마시다가 킵해 놓고 다시 꺼내서 마시기도 했고, 더 오래전에는 잔술로 소주를 팔기도 했다. 영화 ‘바보들의 행진’을 보면 병태가 영자를 기다리며 포장마차에서 잔술 한잔에 오뎅을 먹는다.


바보들의 행진은 참 재미있다. 여러 번 봤는데도 계속 재미있다. 거기서 영철은 동해바다의 고래를 잡고 싶어 한다. 그 갈망은 10년 후 배창호 감독의 '고래사냥'으로 탄생하기도 한다. 바보들의 행진 속에 등장하는 바보들은 돈도 없고 여자만 좋아하지만 찾고 싶은 것이 있었다. 거대 기성세대의 압박과 기대를 동시에 받고 있는 희망세대의 바보들은 고래를 잡고 싶었다. 유신시대를 살아가는 핍박받는 청춘들의 아픔과 답답함을 그려내는 영화다. 참 웃긴데, 재미있는 장면들이 많은데 슬픈 영화다. 참 이상한 영화다.


 영화 속 재미있는 장면이 많지만 병태와 영자가 같이 샤워를 하는데 유리막 하나를 사이에 두고 따로 샤워를 하며 이야기를 한다. 병태는 영자에게 같이 살자고 하지만 영자는 야야 치워라, 너 군대 갔다 오면 나는 얘, 호호 할머니다 얘, 같은 대사를 한다. 그리고 병태는 입대를 하면서 끝난다. 그때 열차가 떠나가는데 창문으로 얼굴을 내민 병태를 영자가 따라가면서 키스를 하려고 하지만 닿지 않을 때 뒤에서 헌병이 와서 영자를 올려서 키스를 하게 해주는 장면은 압권이다.  


바보들의 행진 2- ‘병태와 영자’에서는 군대에 간 병태를 영자가 면회를 가는데 1편에서 병태 역을 했던 윤문섭은 아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1편과 2편의 병태 역을 맡았던 주인공들은 영화배우의 필모로는 이 영화가 전부다. 1편에서 병태 역을 병태보다 더 병태처럼 한 윤문섭은 이 영화 이후로는 출연작이 없다. 성대출신으로, 이때 영자 역의 이영옥만 빼고 전부 실제 대학생들을 캐스팅했다. 병태 역의 윤문섭은 병태 이후 엄청난 인기로 2편의 제의도 받았지만 학업에 충실하기로 부모님과 약속한 터라 연기와는 멀어져 영화는 한편이 고작이다.


감독이 하길종 감독으로 대부의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과 동기다. 당시 UCLA 대학원에서 영화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감독의 힘이었는지 쟁쟁한 배우들이 조연으로 나온다. 감독의 동생이자 배우인 하명중, 김희라, 윤일봉 등 그리고 당시 꼬꼬마였던 얄개의 주인공 이승현과 코미디언 땅딸이 이기동까지, 소설가 최인호도 나온다. 재미있는 이유가 감독의 재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하길종 감독은 그렇게 오래 살지 못했다. 40년 정도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하길종 감독의 영화가 7편 정도밖에 안 되는데 한국 고전영화를 좋아하면 한 번 찾아보는 것도 좋다. 유튜브에서 몇 편은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무슨 얘기를 하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그래 소주, 영화 속 시대에서는 소주를 그렇게, 잔술로도 포장마차에서 마셨다. 이제 잔술이라는 낭만은 바이러스, 세균 같은 시대적으로 드러난 관념에 이길 수 없다. 포장마차나 안주와 술은 어떻게 예전처럼 만들어 볼 수 있다고 해도 모든 걸 추억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어제는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국밥 집의 한 테이블에 아버님 두 분이서 국밥과 소주를 마시는데 소주병이 불어나서 옆의 빈 테이블 위에까지 몇 병이 올라가 있었다. 도대체 몇 병을 드시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주병이 많았다. 도수를 약하게 만들어서 소주 자체가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을지는 몰라도, 그리하여 딱 한 병만 마시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그래서 오늘의 선곡은 바보들의 행진 ost나 한 번 https://youtu.be/clVePPcIy4Y?si=SgCb-BrAYYxtuwd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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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희와 전청조 사건이 하루가 멀다 하고 기사가 나오고 있다. 사람들에게 피로감과 더불어 재미를 주고 있다. 가장 활발한 댓글이 이 두 사람의 기사에 모여있는 것 같다. 사실 전청조에 관해서는 대중의 대부분이 다 안다. 이제 더 이상 나올 것도 없고, 전청조는 입벌구지만 일단 모든 것들을 자신의 입으로 떠벌떠벌 말을 했고 구속이 되어서는 변호사를 통해서 전달이 되었지만 새로울 것이 없다. 모든 사람들이 전부 다 알게 되었다. 초반에 전청조에게 쏠렸던 관심은 이제 남현희로 쏠렸다. 아직 피고인은 아니지만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되어서 10시간 조사까지 받았다.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나는 당했다’라는 눈빛을 기자들에게 보이며 조사를 받으러 들어갔다.


지금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사기전문 검사출신 변호사들의 반응은 남현희가 당했을 것이다,라는 반응이고 그에 따른 대중의 댓글이 재미있고, 기자나 사기전문 변호사가 아닌 변호사들의 반응은 가담까지는 아니지만 공모는 했을 것이라는 반응이다. 아니지, 공모는 아니지만 가담 했을 것이다, 인가?. 여하튼 사기전문 변호사들은 자신도 전청조에게 깜빡 속아 넘어갔을 거라며 남현희가 당했다는 반응인데 이에 사람들의 댓글은 그 정도로 전문가라 할 수 있나, 누가 봐도 뻔한 거짓말에 전문가까지 속는다면 전문가라는 말을 빼야지 같은 반응이 재미있다.


그러나 지금 하려고 하는 말은 이런 말이 아니라 한 사람, 즉 남현희가 단제 즉 펜싱협회를 완전히 망가트릴 뻔했던 이야기를 하고 싶다. 거대한 단체, 시간과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단체나 협회가 그동안 굳건하게 유지하고 있었어도 한 사람 때문에, 아차 하는 순간이 한 번에 무너질 수 있다.


남현희의 기사에는 전청조와 만남을 가지고 있을 때 펜싱협회에 출처를 밝히지 말고 30억을 투자한다고 했다. 그런데 투명하지 않은 돈을 받으면 펜싱협회가 곤란해질 수 있으며 협회 통장이 못 쓰게 될 수 있다며 거절했다. 생각해 보면 이 30억이라는 돈을 거절하기는 쉽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마어마한 돈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돈은 실제로 존재하지도, 절대 투자받을 수도 없는 돈이지만. 아무튼 거절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액수의 돈이다. 30억이면 펜싱 협회에서 이런이런 곳에 얼마를 사용할 수 있고, 또 이만큼의 돈은 여기에, 하면서 협회가 발전하는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투명하게 출처를 밝혀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그 돈이 30억이라는 큰돈이라도 받을 수 없다는 관계자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펜싱협회는 남현희 한 사람 때문에 나락으로 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대중에 한 번 미움을 받으면 이런 협회는 또 힘들다. 안 그래도 클래식계와 체육계 쪽은 비리가 심하다는 인식이 강한데 남현희와 전청조 사기꾼의 돈을, 그것도 출처를 모르는, 피해자들에게 나왔을 돈을 투자받기로 했다는 소문이 돌면 협회는 망가질 수 있다.


그렇게 투명하게 운영하는 게 당연한 방식이지만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 그 관계자가 정말 대단하게 보인다. 이상하지만 그런 대한민국이라서 씁쓸하다. 잠들 때 잠옷으로 갈아입고 잠이 드는 것처럼 당연한 것을 했을 뿐인데 그 당연한 것이 대단하게 보이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라니. 적어도 펜싱협회는 투명하고 정의롭게 운영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또 협회 관계자는 남현희는 전청조를 데리고 펜싱협회 관계자가 아니면 들어가지 못하는 곳도 자신의 투자자라며 전청조를 데리고 들어가려고 한 것도 막았다고 하던데, 남현희 하나 때문에 펜싱협회가 추락하는 것을 잘 막아냈다고 본다.


더불어 전청조는 남현희의 제자를 폭행한 것을 자백했다. 훈육 차원에서 폭행을 했다고 했고, 그 학생은 기절까지 했다. 남현희는 지도교육자 자격까지 있으면서도 성폭행을 당한 학생을 분리조치 하는 것도 없이 학생 어머니에게 대학의 누군가를 알고 있어서 들어갈 수 있게 해 준다는 뉘앙스로 문자를 보낸 것까지. 남현희가 사기 공모를 했니 마니 보다 이제 이런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지적을 하고 조사를 해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남현희는 현재 마치 기분이 태도가 된 것 같은 모습이다. 자신을 비판하는 대중을 향해 나는 결백하다고!라는 것에만 꽂혀서 가는, 오로지 하나의 의지만 가지고 있는 좀비의 모습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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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미스터 빅의 노래를 듣다가 건스 앤 로지스, 메탈리카, 본 조비까지 거의 두 시간을 멍하게 음악만 들었다. 오늘 이전에는 어떤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냐면, 도대체 학창 시절에 음악을 몇 시간이나 듣고 있었다니, 어떻게 반나절을 음악만 듣고 있을 수 있었을까, 같은 생각을 했다. 학창 시절에 용돈이 생기면 레코드 가게로 달려가는 인간이 나였다. 음반구경하는 게 재미있었고 음악을 듣는 것이 좋아서 일요일에는 레코드 판을 몇 시간이나 들었다.


물론 판테라, 바쏘리 같은 음악이라 출력을 크게 하고 들으려면 헤드셋을 끼고 들어야 했다. 그때 친구들에게 비친 나는 몇 시간이나 음악만 듣는 그런 녀석이었다. 시간이 생기면 어김없이 음악감상실로 달려가서 음악을 신청해서 봤다. 봤다는 말은 학창 시절에 한창 미국의 엠티비가 유행이었고 모든 가수들이 뮤직비디오를 만들었기에 그걸 보는 재미가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재미를 능가했다. 하지만 유튜브가 나오고, 뭐 인터넷이 잘 되어 있는 어느 순간부터는 음악만 듣기에는 시간을 너무 낭비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렇다고 뭐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멍하게 음악만 듣기에는 아까웠다.


음악은 서브에 가까웠다. 조깅할 때 들을 수 있는 음악, 책을 읽을 때 모르는 음악을 틀어놓거나, 일할 때 라디오를 듣거나, 소설을 쓸 때 음악을 틀어 놓는다. 그래서 음악은 서브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 아무 생각 없이 미스터 빅을 멍하게 듣다 보니 오래전 학창 시절에 음악에 완전히 몰두했던 그때가 떠올랐다. 두 시간을 온전히 음악만 듣는다는 거, 이건 정말 행복이었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음악을 듣는다는 건 이런 기분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에어로 스미스의 크레이지의 뮤직비디오에서 일탈을 하여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알라시아 실버스톤과 리브 타일러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따지고 보면 나는 잠드는 시간을 제외하고 늘 음악이 틀어져 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에도, 운전해서 이동을 할 때에도, 일을 할 때에도 다행인지 늘 음악을 듣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음악에 대해서 잘 안다는 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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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화면은 아이패드나 휴대폰과는 다르게 네이버 뉴스란을 먼저 보게 된다. 아이패드나 휴대폰은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먼저 보는 반면에 컴퓨터 화면은 네이버를 제일 먼저 본다.


오늘 한 화면에 눈에 들어오는 두 기사가 있었다. 김하성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한국인 최초로 골드글러브 수상했다는 소식과 아양이 심장을 달고 생명을 얻은 기사다. 한 하면에 이 두 기사가 눈에 딱 들어왔다. 둘 다 기쁜 소식이다. 아영이는 신생아에서 갓 벗어났을 뿐인데 나쁜 간호사에게 학대를 받아서 생명을 잃게 되었고 그 심장이 새로운 아이를 살렸다. 기쁜데 슬프다. 기쁜 소식이지만 슬픈 소식이다.


한쪽에서는 기쁜 소식이, 한쪽에는 슬픈 소식이 동시존재하는 곳이 우리의 일상이다. 이런 사실이 특별하거나 새롭지는 않다. 아침에 눈을 뜨면 소변을 보고 물을 한 잔 마시듯 아주 자연스럽지만 오늘은 새삼스럽다. 이미 알고 있지만 이런 사실을 대하는 오늘은 어쩐지 어제와 다르다. 오늘 유별나게 서번트 물질이 뇌에서 많이 흘러나와서 그럴까. 그럴지도 모른다. 뇌를 쩍 갈라서 볼 수 없지만 이런 기시감 같은 기묘한 기분이 강하게 드는 건 뇌의 여러 구간 중 6구간(이라고 하자)에서 서번트가 평소보다 더 흘러나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코로나 시기에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늘 종합병원 응급실 쪽으로 왔는데 응급실로 실려가는 모습을 일주일에 서너 번은 보았다. 심지어 앰뷸런스에서 응급실로 환자를 옮기는데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지경의 모습까지 보았다. 종합병원 바로 옆으로는 식당가가 죽 있다. 사람들이 행복하게 앉아서 식사를 하며 술을 곁들이고 있다. 인간의 삶이라는 게,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코로나가 터지고 나라가 복잡했을 때 기록한 글을 읽어보니 가관이었다. 죽는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속출했고, 마스크대란에, 약국의 약사들의 고통과 음압실의 간호사들의 처절한 노력 같은 것들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었다. 그때에도 행복과 슬픔이 공존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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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아침에 쏟아졌다.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나왔는데 차도 많고, 비는 엄청 내렸다. 분명 내가 출근하고 나면 비가 그칠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어김없이 그렇다. 비라는 것은 왜, 늘, 항상 내가 도로에 나왔을 때 이토록 하염없이 내리는 걸까. 가뜩이나 차도 오래되어서 비가 내리면 몹시 안절부절인데 차가 밀려도 너무 밀리는 것이다. 한 차선을 경찰들이 통제하고 있다. 저 앞에서 사고가 난 모양이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오는데 멀쩡하면 그게 이상하지. 밝아오지 않는 밤이 없고 끝나지 않는 교통체증이 없다지만 그 몇 분은 정말 길고 길다. 특히 나는 수동기어라 섰다 가다 섰다 가다 하는 건, 에이 말을 말자. 저 앞으로 가니 트럭의 앞부분이 오나전 박살이 났고 그 옆을 보니 자동차의 앞부분도 박살이 났다. 빗길에 미끄러지면 이렇게 큰일이 난다. 항상 조심히 운전하자, 같은 말이 있는데 사실 운전을 하게 되면 죽어야지 하면서, 어디 올 테면 와 봐라,라는 식으로 운전을 하는 사람은 없다. 사고가 나면 그 후 처리가 지랄맞고 시간이 걸린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대체로 운전을 조심해서 한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지만 죽어봐라는 식으로 운전을 하지는 않는다.


몇 해전까지는 전국을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거제도 구석구석으로, 순천의 골목으로, 내가 사랑하는 7번 국도를 타고 올라가면서 마음에 드는 곳이 나오면 그곳에서 일박을 하고 동네를 어슬렁 돌아다녔다. 운전하는 것도 지치지 않았다. 수동기어라서 더 재미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비가 조금이라도 많이 내리면 겁부터 나고, 도로에서 80킬로 이상 밟으면 무섭기까지 하다. 정신을 놓은 사람들도 많아져서 비가 겁나게 오면 불안 불안하다. 불안이 일상을 잠식한 것 같다.


딱히 사고가 난 적도 없고 딱지를 떼본적도 없어서 늘 방어운전을 하지만 한 해 지날수록 빗물이 고일정도로 비가 오거나(언젠가부터 비가 오면 물을 확 붓듯이 내린다) 하면 겁이 난다.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겁이 많아지는 것 같다. 아니 ‘인간은’ 이라기보다 ‘나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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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하는 건물에 12살짜리 녀석이 있는데 나에게 가끔 놀러 온다. 오는 이유는 내가 만화를 좋아해서 나에게 오면 만화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둘의 공통점은 둘 다 ‘귀멸의 칼날’과 ‘원펀맨’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특히 내가 일하는 곳에는 내가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하나뿐인 귀멸의 칼날 디오라마가 있어서 구경을 하면서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원펀맨 피규어도 있다. 사이타마 녀석이 응가하는 큭큭큭. 그리고 컴퓨터로 그림을 그려 놓은 게 있어서 그 녀석도 만화 그리는 걸 좋아해서 놀러 와서는 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논다. 그러다가 그 녀석의 할머니가 왔을 때 그 녀석이 만화를 그리고 있으면 나무라면서 만화 같은 거 그리지 말라고 한다. 커서 뭐가 되냐면서 혼을 낸다. 그리고 끌려간다. 할머니들은 도대체 왜 그래 흥!

나도 어릴 때 만화 그리는 걸 무척 좋아했는데 엎드려서 만화를 그리고 있으면 엄마에게 혼이 나곤 했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안 하는데 꼭 엄마는 커서 뭐가 될래,라고 혼을 냈다. 아마 일본에서도 아이들이 만화를 그리고 있으면 어른들이 그랬겠지. 그러나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인구도 많고 혼나면서도 살아남아서 끝까지 만화를 손 놓지 않고 그린 사람들이 현재 원피스와 플루토 같은 애니메이션을 탄생시켰을 것이다. 혼나면서도 게임을 놓지 않았던 아이들이 현재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오는 세상이 되었다.

열심히 데생을 하더라고

중학생 치고 이 정도면


나의 조카도 삼촌을 닮아서(나는 그렇게 믿는다) 초등학생 때부터 만화를 그리고 그림을 내내 같이 그리며 놓았다. 그러다가 6학년 때 데생을 열심히 하더니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그림의 세계를 알아 버렸다. 무엇보다 조카 녀석이 그림을 그리는 것을 너무나 좋아한다는 것이다. 반에서 그림으로 1등을 먹는 모양이다.


공부로 1등 먹는 것보다 그림으로, 미술로 1등 먹는 게 뭔가 있어 보인다. 만고 나만의 생각이지만. 나도 군대에서 뭔가를 잘 만들어서 겨울 내내 카드 병으로 차출이 되어서 카드만 만들었던 적이 있었다. 똑같은 카트를 백장 이상씩 만들어야 했다. 전부 손으로 일일이 똑같이 큭. 그러나 나는 해냈다. 왜냐하면 카드병은 무시무시한 점오에서 열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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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에 찬 초시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좋다. 마치 심장이 팔딱팔딱 뛰는 것 같은 느낌이다. 덥고 맑았던 가을 하늘이 갑자기 심술 난 시어머니처럼 흐려졌다. 그러다가 우산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우산을 펼쳐지는 않았지만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곧 비가 올 모양이다. 비가 내리고 나면 길고 긴 혹독하게 추운 날들이 이어질 것이다. 코끝을 발갛게 만드는 아주 시리고 차가운 날. 몹시 추운 겨울날이 되면 시간의 틈을 벌리고 추억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집 안에서도 따뜻하게 입고 있어야 할 정도였는데 집을 떠올리면 늘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구질구질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그런 기억은 없다.


[밤이 되었다]

밖에는 바람이 많이 분다. 비가 온다. 가을비다. 가을비가 내리고 나면 날은 쌀쌀해질 것이다. 바람이 오랜만에 베란다의 창문을 들썩이게 한다. 조금 열어 놓은 창틈으로 바람이 비집고 들어와 찬 기운이 다리에 닿는다. 가을은 늘 이렇다. 여름을 밀어내는 바람의 기운이 있다. 얘들아 이제 내가 들어갈 자리야 비켜줄래 라며 가을은 바람을 대동하고 이정재처럼 서서히 다가온다.   


생각하자 누군가의 뒷모습을 생각하고 누군가의 쓸쓸함을 생각하자. 생각하자 누군가의, 누군가의, 누군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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