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4월의 어느 일요일이었다. 친구와 나는 친구의 부탁으로 친구 동생을 만나러 가는 길에 같이 가기로 했다. 4월은 봄의 중간에 있어서 언제나 꿈을 꾸게 한다. 미래의 꿈이 아니라 잠이 들면 꾸는 꿈을 말한다. 부옇고 희미하고 코가 간질간질 거리는 계절에 까무룩 잠이 들면 꼭 꿈을 꾸게 된다. 전혀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을 상상하게 만든다. 친구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나는 부옇고 코끝을 간질이는 공기를 맡으며 봄날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봄의 중간에 있으면 언제나 공중으로 부양할 것 같은 기분이다. 이런 기분은 4월에만 느낄 수 있다. 가만히 앉아서 흐음 하고 봄기운을 들이마시면 꿈을 꾸는 것 같다. 주위가 온통 4월의 냄새로 가득하다. 일요일 오전이라 아직은 광장에 사람들이 별로 없지만 곧 약속장소로 유명한 이곳은 사람들도 가득 찰 것이다. 약속을 하고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그들의 표정이 부드럽게 빠져나와 나의 가슴에 꽂혔다. 기분 나쁘지 않은 통증을 느낄 수 있었다.     

  

친구는 가방을 두 개 들고 왔다. 동생에게 가져다 줄 물품이 들어있는 가방이었다. 하나는 무거웠다. 그 가방은 친구가 들고 비교적 무겁지 않은 가방은 내가 들었다. 그러나 등에 맸을 때 다리에 힘을 줘야 했다. 뭐가 이렇게도 많이 들었을까. 나는 늘 그런 생각을 했다. 친구의 동생은 생활하는데 필요한 것들은 전부 생활하는 곳에 다 있다. 음식도 집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잘 나오고 맛있다고 했다. 음식을 가져가지도 않고 옷도 필요 없는데 늘 가방은 항상 무거웠다. 친구와 나는 광장에서 만나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시외버스 터미널로 갔다. 시내버스를 탔는데 자리가 없어서 일어서서 갔다. 우리는 평일에도 학교에 갈 때 버스에서 늘 일어서서 갔다.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 속에서 앉아서 가는 건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친구는 동생에게 물품을 한 달에 한 번씩 동생이 있는 곳에 갖다 주었다. 별일이 없는 한 나는 친구와 동행을 했다. 나에게 별일이라는 건 여자 친구를 말한다. 일요일에 같이 보내기를 바라는데 여자 친구가 교회에 가게 되면, 그리고 그 일요일에 친구가 동생에게 가자고 하면 나는 친구를 따라나섰다. 그렇게 친구와 친구의 동생에게 갔다 오면 대체로 저녁이었다.      


친구의 이름은 명수다. 명수는 친구들이 많은 녀석이다. 인기가 좋다. 운동을 잘하고 공부도 잘한다. 특히 수학을 잘해서 커닝이지만 우리의 수학 점수를 책임지고 있어서 주위에 친구들도 많다. 그러나 동생에게 갈 때면 다른 친구들보다 내가 동행을 했다. 오직 나만이 동생의 사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동생을 만나러 가는 것에 혼자서 가기보다 내가 따라와 주기를 바랐다.    

  

[동생이 그렇게 된 건 나 때문이야]     


명수와 나는 가끔 가는 이 길을 좋아한다. 평소에 다니지 않는 생소한 도로로 달리는 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길거리 풍경을 말이다. 도로변의 가게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뒤로 달려갔다. 한두 달에 한 번씩 가는 길이라 바뀐 가게나 없어진 점포가 눈에 띄기도 했다. 명수와 나는 시외버스 터미널에 가는 동안 버스에서 보는 풍경을 일일이 외우기라도 하듯이 바라보았다. 사춘기 또래처럼 우리는 평소에는 말이 많았지만 동생을 만나러 가는 길에는 말수가 줄어들었다. 대신 신기한 것을 훔쳐보는 단단한 시골의 토마토처럼 지나치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명수는 반에서도 가장 활기찬 녀석이다. 일단 축구를 잘해서 우리 반뿐만이 아니라 학년에서 제일 인기가 좋은 축에 속했다. 3학년 선배들하고 축구를 해도 명수가 해트트릭을 성공하기도 했다. 그런 명수도 동생을 보러 가는 날에는 평소의 명수 같지 않았다.     

 

[동생을 그렇게 혼자 둬서는 안 되는 거였어]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겨울의 오후에 시내에 나왔다가 집으로 들어가는 그 풍경이 좋았다. 중학생시절이었다. 날은 맑지만 해가 숨어서 냉기가 흐르는 늦은 오후. 쓸쓸해야 해야 할 것 같지만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있어서 시내 중심가는 활기차고 떠들썩했다. 거리에 캐럴이 흐르고 가게마다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가득 차 있어서 밖에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신났다.


나는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친구는 중학교에서 만났다. 집이 달라서 약속을 정하고 약속장소로 나왔다. 애리나 백화점 앞은 만남의 장소였다. 모두가 거기서 약속을 정하고 만났다. 흐린 날은 아니지만 해는 뜨지 않았지만 애리나 백화점 앞은 활기차고 북적였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에리나 백화점이 있는 시내 중심가에는 주말에 흘러나온 사람들로 걷기가 힘들 정도였다. 곳곳에서 크리스마스 카드와 장식을 팔고 있었고 극장 앞 작은 광장에는 쥐포와 오징어를 구워서 팔고 있었다.


나는 애리나 백화점 맞은편 제일 레코드사 앞에서 친구를 기다렸다. 1차선 도로를 하나 건넜을 뿐인데 백화점 앞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모두가 얼굴에 행복한 표정이 붙어 있었다. 레코드 앞 스피커에서는 빙 크로스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흘러나왔다. 이런 분위기에 몸을 맡기고 그 흐름에 딸려 가는 것이 좋았다. 사람들의 얼굴에서 근심이나 걱정을 볼 수 없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시내에 나왔지만 목적지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모두가 평일에 만나지 못한 친구나 애인을 만나러 나온 것이다.


나 역시 친구와 만나기로 했다. 나는 목적이 있었다. 목적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아니다. 친구와 같이 있으면 재미있었다. 낄낄 거리며 시내를 거닐다가 백화점에 들어가서 크리스마스 카드도 골라보고, 피규어 파는 곳을 구경하고, 백화점 꼭대기에 올라가서 오락도 하고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뭐니 뭐니 해도 사람들을 구경하는 게 재미있었다. 구경을 하는 것은 돈이 없어도 가장 재미를 추구할 수 있는 놀이다. 그렇게 시내를 돌아다니다 시간을 보고 우리는 학생들이 많이 가는 유명한 분식집으로 갔다. 거기서 김밥과 쫄면을 먹기로 했다. 이 분식집의 김밥이 아주 맛있다. 분식집은 크고 넓다. 다운타운에서 가장 유명하다.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지만 직장인들도 먹는다. 단지 술을 팔지 않기 때문에 성인들은 주로 여자들이 많다.


타원형의 거대한 바 테이블이 있는데 그 안에서 김밥을 말고, 라면을 끓이는 아주머니들이 네 명이나 있었다. 네 명의 아주머니들은 분업화가 되어서 한 아주머니가 밥솥에서 밥을 꺼내서 큰 대야에서 식히고 나면 다음 사람이 양념을 하고 다음 사람이 김밥을 말았다. 그 움직임이 마치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교한 움직임이었다. 바 테이블에 앉아서 그걸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우리는 빈자리에 앉아서 김밥과 쫄면을 주문했다. 쫄면은 친구가 무척 좋아했다. 분식집 쫄면의 맛은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다. 집에서는 어림도 없고 다른 분식집에서도 이런 맛이 나지 않는다고 친구가 말했다. 김밥도 맛있었다. 김밥은 밑간을 했는데 그 안에 무슨 양념으로 밥을 밑간 했는지 김밥 속에 들어가는 재료가 많지 않음에도 김밥은 정말 맛있었다. 딸려 나오는 계란 국도 맛있었다. 분식집 안에도 캐럴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천장과 구석진 부분에도 크리스마스 장식이 보였다. 우리가 토요일 이 시간에 시내에 있는 학생들에게 유명한 분식집에 온 이유는 그녀를 보기 위해서이다.


그녀는 한 살 많은 고등학생이었다. 그녀는 친구와 함께 토요일 이 시간에는 늘 이 분식집에서 김밥을 먹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들은 신성여고 문예부로 학교 축제 때 나의 시선을 잡아 끈 시를 쓴 주인공이 둘 중에 있었다. 나는 그 시를 보기 위해 축제 3일 내내 신성여고에 갔었다. 마지막 날에는 그 시 밑에 나의 소감을 길게 써서 붙여 놨다. 그 뒤로 그녀가 내가 쓴 글을 보고 누구인지 궁금해한다고 친구에게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 앞에 선뜻 나설 수 없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고 나는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녀가 나를 찾는다는 소리에 그녀 앞에 한 번 나서려고 했는데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 남자친구를 싫어한다. 그 남자친구는 나의 형이기 때문이다. 형은 키가 크고 운동을 잘하고 얼굴이 잘생겨서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여자 친구도 자주 바꾼다. 그런 형이 나는 싫다. 제대로 된 사랑을 하지 않는다.


그녀들이 대각선 맞은편 테이블 바에 앉아서 김밥을 먹고 있다. 그 주위만 환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중학생 주제에 사랑에 눈을 뜬 것이다. 친구는 이 정보를 나에게 알려줬다는 이유로 무척 뿌듯해하며 쫄면을 호로록 먹었다. 여기까지 왔다고 해도 그녀에게 가서 말을 걸 용기는 나지 않았다. 이렇게 바라볼 수만 있다는 것으로도 기분이 이렇게 좋을 수 있을까. 그녀는 김밥을 먹으면서 잘 웃었다. 내가 그 글을 적은 사람이야,라고 말한다면 분명 나의 모습에 실망할지도 모른다. 형에 비해 나의 외모는 형편없다. 나는 작고 초라하고 운동도 잘하지 못하는 그런 중학생이었으니까.


그녀 역시 비록 작고 연약해 보였지만 그녀가 쓴 시의 세계는 크고 넓고 강했다. 나는 그걸 알 수 있었다. 모든 걸 바꿔버릴 수 있고 뭐든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그녀의 시는 어딘가로 뻗어가고 싶어 했다. 단어와 단어 사이에서 그걸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시에는 굳건한 진실보다는 흔들림이 많은 가능성이 있었다. 가능성이 하늘을 날기 위해 손을 뻗었는데 그 손을 내가 잡았다. 그녀가 나를 한 번 쳐다보았다. 그리고 웃었다. 나는 이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그녀가 뻗은 손을 잡고 우리는 뭐든 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었다.


너 왜 안 먹냐?라고 친구가 말했다. 내가 다 먹는다며 친구는 김밥까지 야무지게 먹었다. 비록 그녀와 나란히 앉아서 김밥을 먹지는 않았지만 같은 공간에서 그녀와 나는 같은 김밥을 서로 먹었다. 그녀는 그녀의 친구와 이야기를 하며, 나는 나의 친구와 함께. 그날 집으로 오는 겨울의 거리는 몹시 겨울다웠다. 흐리지는 않았지만 해는 구름 저 편으로 숨었다. 거리의 모든 곳에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면 나는 지금 쓰는 이 소설을 완성한다. 지금 이대로라면 분명 일 년 뒤에 끝맺을 할 수 있다. 그녀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된다. 우리는 같은 고등학생이 된다. 그때 그녀에게 정식으로 말할 것이다. 그녀 옆에 누군가 있다고 해도 상관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


그를 안 건 꽤 오래전의 일이다. 하지만 연락도 끊기고 서로 만나지 않게 된 건 15년도 훨씬 넘었다. 아니 17년은 더 되었을 것이다. 그는 나보다 두세 살 많았다. 하지만 정확한 나이는 알지 못한다. 영화나 소설에서처럼 만나면 악수를 하며 이름을 밝히고 나이를 물어보거나 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알게 되거나 설령 나이나 더 나아가 이름을 알지 못해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이름을 모르면 그저 별명을 부르면 되니까. 그는 나보다 두세 살 많았으니 형이라 부르면 된다.


그는 꽤 묘한 사람이다. 외로워 보이는 등을 지니고 있었다. 등은 볼품없을 만큼 초라했고 그 작은 등에는 외로움이 기분 좋게 올라타 있었다. 그의 등에 올라탄 외로움은 주위 사람들에게서 조금씩 나눠 받은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시절에는 모두가 외로워했고 그 외로움에 하루를 겨우 견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두에 나와 그가 속해 있었다. 물론 아닌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모여서 술을 마시게 되면 외로움에 몸부림을 쳤던 시기였다.


그는 학원에서 알게 되었다. 학원은 단과 학원으로 영어, 수학 그리고 다른 과목도 수업을 하고 있어서 학생들로 북적이는 학원이었다. 학원은 방학이 되면 미어터질 정도로 교실에 학생들이 바글바글했다. 학원은 쉬는 시간에 피아노 곡을 틀어 줬는데 그 곡이 카펜터스의 리처드 카펜터가 연주하는 피아노 곡이라는 건 후에 알게 되었다. 나는 리처드 카펜터가 개시끼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카렌을 거식증과 몸에 대한 집착으로 이끈 장본인이 리처드가 아닌가 싶다. 어린 시절부터 착한 콤플렉스를 덮어 씌워 카렌은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게 하고 그저 음악적 능력이 탁월한 오빠가 시키는 대로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노래만 불렀다. 카렌은 비상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그와 알게 된 후에 술자리에서 술에 취해서 한 번 했다가 핀잔만 들었다.


그와 나는 성문종합영어를 들었다. 그는 늘 구석진 자리에 홀로 앉아서 수업을 들었다. 수업이 끝나면 대부분 마음 맞는 몇몇이 같이 어울려 밥을 먹거나 당구장을 가거나 술을 마시러 갔지만 그는 늘 혼자였다. 나 역시 어울리는 건 별로라서 혼자서 학원을 나오곤 했다. 학원의 지하에는 식당이 있어서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라면을 먹었다. 분식집 라면만큼 맛있어서 대부분 라면에 밥을 먹었다. 하지만 그는 라면을 먹지 않았다. 그는 항상 얼마간 저렴한 허여멀건한 국수를 먹었다. 그는 김밥이나 다른 건 전혀 먹지 않고 오직 국수만 먹을 뿐이었다. 그와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왜 항상 국수만 먹냐고 물었을 때 그는 단순히 국수가 맛있어서라고 했다.


나는 그의 행색이 늘 초라하고 국수만 먹고 있어서 가난해서 그러는 줄 알았다. 가방도, 옷도, 신발도 심지어 쓰고 있는 안경도 너무나 초라했다. 누가 봐도 나 초라해,라고 알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와 친해진 후 그의 집에 한 번 갔을 때 대문을 열고 드러나는 큰 마당을 지나 나타나는 저택 그리고 현관문을 열자마자 세워져 있는 많은 골프채가 그는 가난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행색을 초라하게 하고 다니는 것일까.


그의 아버지는 당시 3급 공무원이었고 그는 막내였다. 형과 누나들은 그와는 다르게 명품으로 스타일을 내는 사람들이었고 그와는 무척 달랐다. 다르다는 말은 얼굴에서 형과 누나들은 서로 닮았는데 그 혼자만 어디서 주워 온 것처럼 얼굴이 달랐다. 막내인 그의 얼굴이 큰 누나보다 더 나이 들어 보였다. 그 외 모든 면이 그와 형제자매들은 달랐다. 그는 막내였지만 수명이 다해가는 노인의 콩팥처럼 볼품없는 얼굴에 남루한 행색으로 다녔다. 학력 또한 너무 달랐다. 형과 누나들은 전부 SKY 대학을 나왔는데 그는 상고에 진학을 했다. 뜻하는 바가 있어서 상고에 진학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성적이 너무 좋지 않아 겨우 상고에 들어갔고 그때 아버지와 마찰이 심했다고 했다. 그 때문에 성문종합영어를 듣고 전문대 시험을 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성문종합영어 시간에 수업에 집중하지는 않았다. 그저 멍하게 수업시간을 보냈다.


그는 집에서도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밥을 먹을 때 빼고는 방에서 나오지도 않는다고 했다. 아버지와 형과 누나들이 그의 주위에 많은 사람들을 대동해서 다가왔지만, 그의 초라한 행색에 다가온 사람들이 마음을 한 번 돌리고 그의 말투와 형편없는 언변에 남아있는 마음도 돌려 버렸다.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귤은 시원한 귤일수록 맛있다. 시원한 귤은 차가운 날일수록 더 맛있는 것 같다. 귤은 겨울을 알리는 과일이고 겨울에 풍부하게 있어서 겨울이면 어디서나 먹을 수 있다. 창을 사이에 두고 차가운 바람이 불고 스산한 겨울날에 엎드려 귤을 까먹으며 창밖의 스산함에 빠져드는 건 겨울에만 할 수 있다. 겨울이 아니고는 절대 할 수 없다. 겨울은 춥지만 겨울이라 따뜻하다. 차가운 겨울의 집 안은 따뜻하다. 따뜻한 집 안에서 까먹는 귤은 시원해서 맛있다. 누구 집이나 가게에 갈 때 귤 한 봉지 사들고 가면 좋아하며 반길 때가 있었다. 순전히 과거형이다.


 너도나도 귤 먹고 싶어요. 하던 때가 있었다. 누구에게나 귤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그 대부분이 귤을 까먹으며 행복해하던 추억일 것이며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나도 귤에 대한 기억이 있다. 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다. 그는 귤을 팔던 나이가 많은 귤아저씨였다.


그는 파출소 앞 리어카에서 귤을 팔았다. 생각해 보면 리어카 장사라는 게 세금을 내지 않아서 파출소에서 떨어진 곳에서 귤을 팔지 않을까 싶은데 그 아저씨는 늘 파출소 앞, 그 자리에서 귤을 팔았다. 파출소에서도 귤을 자주 사 갔다. 겨울을 가장 먼저 알리는 것이 그 아저씨의 리어카에 귤이 가득 들어찼을 때다. 아, 이제 여기도 겨울이 오는구나.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 아저씨는 365일 그 자리에서 과일을 팔았으니까.


리어카에 주황주황의 귤들이 가득 쌓인 모습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머뭇거리다 보면 아저씨가 한 봉지를 쓱 내밀며 그 안에 귤을 두세 개 더 넣어 주었다. 그러면 안 살 수가 없다. 가격도 오천 원. 오천 원에 귤이 봉지를 빠져나갈 만큼 많다. 여럿이서 먹어도 며칠은 먹게 된다. 아저씨는 어디서 귤을 떼 오는지 사 먹을 때마다 맛있다. 리어카에 가득 쌓인 귤과 귤 사이에 귤이 잔뜩 담긴 검은 봉지에 얼굴이 비어져 나와 보이는 건강한 귤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았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큭큭 하며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아저씨는 항상 털모자와 두툼한 옷과 두툼한 장갑을 끼고 겨울을 났다. 그렇지만 햇빛에 그대로 드러낸 얼굴은 새까맣게 타 있었다. 아저씨는 쉬는 날이 없었다. 태풍이 오는 날만 빼고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더우나 추우나 매일 그 자리에서 과일을 팔았다. 귤의 맛은 보장이 되어 있으니 먹던 귤이 떨어지기 무섭게 가서 귤을 사 와서 먹었다. 아저씨는 자주 귤을 사는 나에게 항상 봉지에 담긴 귤보다 몇 개 더 넣어 주었는데 더 이상 담을 수 없을 때까지 귤을 넣어 주었다. 괜찮다고 해도 계속 주었다.


아저씨는 리어카의 손잡이에 엉덩이를 걸치고 [귤 사가이소]라고 크게 말했다. 아저씨는 왜 쉬는 날이 없어요?라고 그 앞 문방구 직원에게 물었다. 직원은 아주 풍채가 남다른 여성으로 내가 귤을 사서 문방구에 볼펜을 사러 가서 귤을 몇 개씩 나눠 주었다. 그녀는 이 근방의 소식통이다. 이 부근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사정을 꿰뚫고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비둘기들의 먹이를 준다며 문방구 앞 길거리에 나와서 구구구 하며 몇 마리의 비둘기에게 빵가루 같은 던져 주었다. 그러면서 귀와 눈, 그녀의 레이더 촉은 근방 상가의 모든 사람들에게 향해 있었다.


아저씨가 몸이 안 좋잖아요, 다리가 아픈데 쉬지 못하고 매일 장사를 하는 이유가 딸이 아파서 그래요. 무슨 병이라더라? 아무튼 혈액암인가 그런 거래요. 그래서 아저씨는 쉴 수가 없어요. 파출소에서도 아저씨 장사하는 거 건드리지 않잖아요.


아저씨가 리어카 손잡이에 엉덩이를 걸치고 있는 이유는 다리 한쪽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아저씨의 목소리는 항상 쉬어 있다. 그리고 늘 웃고 있어서 표정은 마치 박제해 놓은 것 같을 때가 있었다. 아저씨의 얼굴이 까맣게 탄 건 실은 햇빛에 탄 것이 아니라 간이 망가져서 그렇다. 아저씨는 가끔씩 지쳤는지 멍하게 하늘을 보는 경우가 있었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고 오천 원을 건네면 활짝 웃으며 오늘도 귤이 좋다면서 한가득 담아준다. 아저씨에게 산 귤은 참 맛있었다. 껍질이 잘 까져서 쏙 빠졌다. 주위에 귤을 나눠주면 어디에서 샀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아저씨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다운타운가 파출소 앞 사거리에서 리어카에 엉덩이를 걸치며 겨울을 옆에 끼고 귤과 함께 매일을 같이 했다.


어느 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아저씨는 이문세의 옛사랑을 듣고 있었다. 흰 눈 나리면 들판에 서성이다 옛사랑 생각에 그 길 찾아가지 광화문거리 흰 눈에 덮여가고 하얀 눈 하늘높이 자꾸 올라가네 라는 가사에서 아저씨의 얼굴 표정이 잠깐 변했다. 하얀 눈이 하늘로 하늘로 자꾸 올라가는 모습을 생각하는 듯했다. 아저씨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거리는 그대로인데 도로는 변하기 시작했다. 구청장이 바뀌었고 다운타운가에 몇십 년 동안 시민들의 그늘이 되었던 거대한 느티나무가 잘려 나갔고 소방서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고층빌딩이 들어섰다. 도로는 구획정리에 들어갔고 문방구를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문방구가 있던 4층 짜리 건물이 임대로 나온 채, 몇 년이나 있다가 휴대폰 매장이 들어섰다. 더불어 노점상은 전부 단속의 대상이 되었다. 귤아저씨를 본 건 전통시장 입구에서 잠깐씩 볼 뿐이었다. 귤아저씨는 이를 악 물고 리어카를 옮겨 가면서 귤을 팔았다. 이젠 그 마저도 할 수 없었는지 아예 귤아저씨를 볼 수 없게 되었다.


매일 나와서 귤을 팔면 귤을 사가는 손님을 매일 볼 수 있다면서 하회탈 같은 웃음이 얼굴에 붙은 귤아저씨. 아저씨의 리어카에서 가져온 귤은 금방 꺼낸 군고구마처럼 아주 맛있었다. 껍질이 단번에 까지는 맛있는 귤을 먹을 때면 매일 귤을 팔던 귤아저씨가 생각난다. 나와는 무관한 귤아저씨. 나와는 상관없는 귤아저씨. 그런데 귤을 보면 그런 귤아저씨가 생각난다.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해 하루도 쉬지 않았던 아저씨. 아저씨는 그래도 행복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저씨는 딸의 병을 고칠 수 있을 거라는 꿈이 있었다. 세상에 대한 미련보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비록 그 희망이 손에 잡히지 않을지라도 아침에 눈을 뜨고 벌떡 일어나 리어카를 끌고 귤을 팔았다. 사람들이 귤을 한 봉지씩 사 갈 때마다 꿈이 조금씩 이루어진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문세 - 옛사랑 https://youtu.be/n_dA3T2jWkI?si=gm-nz7qAcM2-LpQI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담배는 정말 몸에 해로운가,라는 이 이야기는 의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아무런 근거가 없는 그저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이렇게 추워지기 전, 아침에 출근하려고 나오다 보면 노인정 앞에서 할아버지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이제 아파트 안에서는 금연이라 흡연자들은 집밖으로 쫓겨나듯이 나와서 담배를 피워야 한다. 그러다 보면 매일 엇비슷한 시간에 엇비슷한 사람들이 나와서 담배를 피우니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주로 들어보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다. 보통 어딘가를 향해 욕을 하며 정치 이야기를 많이 할 것 같은데 몇 년을 지켜본 바 정치 이야기를 하는 건 많이 듣지 못했다.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아주 천천히 걸으면서 할아버지들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본다. 담배를 깊게 빨아 당긴다. 폐 깊숙이 빨아 당겨 맛있게도 뱉어낸다. 쓰으으으 후우.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하는 인간이었다. 저렇게 깊게 빨아 당겨 맛있게 뱉어내고 싶었다. 요즘 가장 맛있게 담배를 피우는 장면을 보는 건 소년시대에서 아산백호가 담배를 피울 때다. 하지만 나는 담배를 피우지 못한다. 담배를 피우면 먹은 것들이 전부 올라온다. 대학교 때 그걸 참고 그냥 피우다가 먹은 것들을 전부 토해내는 바람에 고통이 심했다. 특히 술보다는 밥을 먹고 토하는 건 정말 몸의 내부에 굉장한 통증이 온다. 으허억.


여하튼 매일 오전에 노인정 앞에는 할아버지들이 앉아서 쓰으으으 후우 담배를 태우며 담소를 나눈다. 담배는 전담은 없고 전부 연초다. 쓰으으으 할 때 치이이익하는 소리가 또 듣기 좋다. 담배는 몸에 해롭다. 그렇게 보통 인식되어 있다. 할아버지들이 담배를 저렇게 맛있게 태운다는 건, 아주 젊은 시절부터 담배를 피워왔다는 말이다. 그렇게 몸에 좋지 않다면, 담배가 독이라면 젊은 시절부터 담배를 꾸준하게 피워온 할아버지들은 전부 담배 때문에 일찍 죽거나 담배를 끊고 그저 담소만 나눠야 한다.


담배는 인체에 너무나 해롭다. 세상에서 담배는 가장 해롭다지만 식후 담배 한 대, 과장에게 깨진 후 담배 한 대는 스트레스를 날려준다. 몸에는 분명 해롭지만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면에서는 또 담배 한 대가 이로운 면도 있지 않을까 싶다. 저렇게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들이 담배를 맛있게 피우고 있는 모습을 보면 세상이 말하는 담배가 정말 그렇게 해로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담배 피우는 장면은 티브이에 모자이크가 될 정도로 나쁜 것으로 간주하는데 술을 마시는 장면은 너무나 흘러넘치고 있다. 음주운전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담배를 피우는 건 그렇게 음주운전만큼 타격이 있지 않다.


세상의 모든 것에 과하게 [악]과 [선]이 붙으면 그게 사실이야? 하는 의심을 해봐야 한다. 사람들은 너무나 나약해서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이런저런 전문용어와 사진과 증거 같은 것들로 프로파간다를 하면 순수하게 믿어 버린다.


담배가 그렇게 몸에 해로운가? 만큼 의심이 드는 건 산삼은 그렇게 몸에 이로운가?이다.


산삼을 먹으면 죽어가는 사람도 벌떡 일어난다고 예전부터 우리는 많이 들어왔다. 전설의 고향이나 티브이의 오래된 드라마에서 산삼은 만병통치약으로 비쳤다. 심마니들이 산삼을 캐면 [심봤다!]라고 외치는 것까지 우리는 알고 있다. 산삼은 재배가 안 되니까 캐낼 수밖에 없다. 오래 묵을수록 비싸기 때문에 부르는 게 값이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것 역시 산삼이라고 알고 있다. 산삼이라는 이름과 성분이 들어가면 다 비싸다. 장뇌삼이든 홍삼이든 전부 몸에 좋다면서 전부 비싸다.


그런데 산삼을 먹으면 정말 몸에 좋을까? 의문이 든다. 나쁘지는 않겠지. 나쁘지 않다는 말이 좋다는 말로 바뀌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오리기름이 불포화 지방이라 몸에 좋다고 알고 있는데 포화 지방보다 나쁘지 않은 것이지 불포화 지방이라고 해서 많이 먹으면 좋을 리 없다.


어쩌면 팔아먹기 위한 음모론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산삼은 다금바리와 비슷하다.


다금바리는 음모론의 대표적이라고 생각한다. 바다의 보석 다금바리, 다금바리는 하루에 많이 잡히면 3, 4마리 정도이며 오직 제주도의 바다에서만 잡힌다. 제주도에 가면 무엇이 가장 먹고 싶은지 물어보면 십중팔구 육지의 어른들의 대답은 다금바리다. 무리를 해서 몇 십만 원이나 하는 다금바리를 전투적으로 찾으러 다니기도 한다. 둘 중에 하나가 먹다 죽어도 모를 회 맛이라는 기류가 어른들에게 확실하게 박혀 버렸다. 이렇게 어르신들이 찾는 다금바리는 정말 환상의 맛일까. 우리가 먹는 광어나 우럭, 좀 비싼 돔에 비해 월등히 맛이 좋은 걸까.


사실 다금바리를 먹어본 제주도 사람들의 인터뷰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가히 환상적인 맛이군, 이건 정말 주체할 수 없는 맛이야, 하며 엄지를 척 치켜들 만큼 맛있는지에 대해서 현지인들은 의문을 가진다. 사실 환상적인 맛은 인공적인 맛이 대부분이다. 자연에서 습득한 날 것의 맛으로 환상적인 맛은 나지 않는다. 다금바리를 먹어본 도민은 보통 회보다 졸깃하다 정도라고 한다. 이 졸깃하다는 말은 맛이라기보다 물리적인 표현으로, 환상적인 맛은 나지 않는다고 한다. 다금바리는 정말 드문 물고기다. 하지만 제주도 다금바리 파는 곳에 가면 모두 다금바리가 있다고 한다. 다금바리가 모든 횟집에서 팔아치울 수 있는 횟감이 아님에도 다금바리를 육지 어르신들은 갈 때마다 먹고 온다.


왜 그런고 하면 다금바리에 대해서 뇌는 기억을 조작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다금바리 집에서는 비슷한 횟감을 올리고 다금바리라 하지만 육지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우르르 몰려 마케팅의 세계에 들어가 버리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다. 다금바리, 즉 맛이라는 건 혀 감각의 문제인데 뇌가 그 감각을 조작해 버린다. 다금바리는 사람들의 환상이 만들어낸 맛일지도 모른다.


산삼을 먹으면 죽어가던 몸이 벌떡 일어날까. 비싸게 주고 구입한 산삼이라는 환상이 어쩌면 산삼 속에 스며들어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몸에 너무 좋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몸에 좋으려면 뭐든 꾸준하게 자주 먹어야 한다. 그런데 산삼은 매일 밥처럼 먹을 수 없다. 산삼을 먹을 바에는 도라지를 먹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도라지는 산삼이나 인산보다는 접근성이 쉬우니까.


지금은 그동안 당연한 것들이 전부 다시 한번 뒤집어 봐야 한다. 애플이 아이폰을 들고 등장하자 소니의 아성이 무너졌다. 잡스는 일명 소니빠였다. 그러다가 아이폰이 등장하면서 소니가 물락 하다시피 했다. 그런데 2023년 지금 현재 아이팟은 사라졌는데 소니의 음장기기, 백만 원이 넘는 워크맨 시리즈는 지금 살아남아서 마니아들에게 많이 팔리고 있다. 엠피쓰리의 명가 아이리버 역시 시장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했지만 아스델 앤 컨이라는 고급 음장기기로 살아남아서 계속 롱런하고 있다. 디자인이나 성능면으로 보나 소니의 워커맨 시리즈보다 훨씬 낫다. 이런 기기로 음악을 들으면 섬세한 음 하나하나를 다 들을 수 있다.


누가 요즘 엠피쓰리를 듣나? 폰으로 다 되는데?라고 하겠지만 많은 이들이 고급 음장기기로, 즉 비싼 엠피쓰리로 음악을 듣고 있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좀 더 음악을 제대로 듣고 싶은 어른들이 접근하게 되었다. 절대 그렇지 않을 것 같았던 것들이 지금은 그렇게 되고 있다.


그동안 당연한 것들에 대해서 의문을 가져야 한다. 모든 것들은 마치 물이 흐르는 것처럼 머물지 않고 전부 흘러간다. 담배를 오랫동안 피워도 오랫동안 사는 사람은 오랫동안 산다.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몸이 빨리 망가져서 일찍 죽는 사람은 일찍 죽는다. 아마 잘은 모르지만 유전자의 문제다. 담배를 계속 피워도 건강하게 폐가 팔딱팔딱 뛰는 유전자가 있고, 그렇지 못한 유전자가 많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한국인의 건강 문제에 관한 기사가 떴는데 여지없이 담배가 거기에 한몫한 것 같은 뉘앙스의 제목이다. 담배, 물론 안 좋지만 담배를 이렇게 해로운 것으로 알리는 것의 반이라도 음주운전, 술에 대해서도 다가갔으면 좋겠다. 술광고부터 드라마 속 술 마시는 장면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빠져든다. 어쩌면 술회사들이 담배회사보다 정부에 더 충성을 하는 것일까.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21/0007242503


요즘 여기저기서 인구절벽에 대한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외국의 한 학자는 한국이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고 그 영상은 뉴스나 유튜브에 있다. 세계에서 아기가 제일 적게 태어나는 나라가 되었고 이로 인해 국가 소멸에 대한 이야기들이 여러 매체를 장식하고 있다. 그런데 개인적인 생각으로 자정작용이 아닌가 싶다. 그동안 너무 인구가 많다며 한 집에 하나씩만 낳자고 했었다. 인구가 이대로 늘어나면 큰일 난다면서 인터넷이 없던 시대에는 내내 티브이 광고 같은 곳으로 파고 들어서 사람들에게 프로파간다질을 했다. 지금 이렇게 인구가 줄어들어가는 건 그간 너무 흘러넘쳐 과포화된 것에 대한 자정작용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스스로 자정작용에 들어가는 이 흐름에 맞게 국가와 정부는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들을 해주면 된다.


박태웅 의장의 말을 들어보면 그렇다면 도대체 인구가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말해주는 곳은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늘 인구가 많았다, 인구가 과포화다, 하다가 이제는 인구가 소멸 직전이라고 하면서 적정한 인구는 몇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여기 아주 마음에 드는 기사가 있다. 읽어보면 전부 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만약 적은 수의 인구라면 그 적은 수의 인구로 어떻게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지 궁극적인 방법을 찾아가는 게 국가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16/0002240982


당연한 것들을 뒤집어서 생각해야 살아남을지도 모르는 시대에 들어온 것 같다. 잭 리처의 시리즈 '리처 2'가 시작했다. 잭 리처는 소설도 재미있는데 소설만큼 시리즈가 정말 재미있다. 안 그런 것 같지만 주위를 늘 경계하며 따라다니는 차와 미행하는 사람에 대해서 간파를 하고, 총을 다를 줄 알고, 빌런들의 진행방향을 미리 생각하며, 무엇보다 시즌 1에서처럼 로맨스에도 강하다. 미국 로맨스는 왜 침대를 다 부 쉴 것처럼 뒹굴뒹굴할까. 리처 이 매력적인 거구의 첩보액션은 사람을 잡아 끄는 마력이 있다. 리처는 당연한 것들을 전부 뒤집는다. 그래서 너무 재미있다고나 할까.


https://youtu.be/OCC6fVFKHtY?si=JTanDS4tZhaubvx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