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었다. 이토록 시원한 바람이 건물의 사이를 돌아 나의 볼을 건드렸다. 오월의 마지막 바람이었다. 길거리 곳곳에는 선거에 총력을 기울이는 소음이 흩날리고 있었고 소음은 바람을 타고 주위를 맴돌았다. 주차장까지 걸어가면서 읽던 책을 펼쳐 읽으며 걸었다. 아직 ‘고탄다’는 죽지 않았지만 이제 곧 자신의 마세라티를 몰고 바다에 빠져 죽을 거리는 걸 안다. 고탄다는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떠들썩하게 지내지만 그 속에서 몹시 외로웠다. 그 외로움이 고탄다 내면의 어떤 무엇을 건드려서 키키를 목졸라 죽였을지도 모른다. 고탄다 역시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는 걸 안다. 죽음이라는 건 그렇게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가까이 둘 수도 없는 것이다. 고탄다는 그걸 알게 되었다. 이 책을 벌써 여러 번 읽었다. 여러 번 읽어도 질리지 않는 소설이 있다. 나도 그런 소설을 쓰고 싶다. 5월의 마지막이라고 해서 딱히 극적이거나 슬프거나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아니다. 단지 매년 5월의 마지막이 되면 6월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는데 덜 되었다는 아쉬움이 있다. 준비라고 해봐야 딱히 벌게 있는 건 아니다. 일 년 중 6월부터는 여름의 시작이니까 나도 여름에 맞게 나의 몸과 마음을 준비를 하는 것뿐이다. 올해는 때 이른 5월의 더위 덕분에 해변에서 홀라당 벗고 잠시 책을 좀 읽었을 뿐인데 피부가 캐러멜 색으로 변했다. 6월부터는 세상이 소설처럼 바뀐다. 물론 실제로 그렇다는 건 아니고 내가 보는 세상이 그렇게 보인다. 그 절정이 7월에 다다랐다가 8월에 정점을 찍고 조금씩 하강하여 9월이 되면 서서히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뜨거운 여름의 세상이 소설화가 되는 건 몹시 흥분되는 일이다. 집 앞의 해변의 모래가 아주 보드랍고 부드러운 모래로 변하며 태양이 기분 나쁠 정도로 뜨겁고 밝아서 세상의 모든 축축함을 바짝 말려 버릴 것 같다. 이 여름의 소설화가 좋아서 여름만 지속되는 하와이 같은 곳에서 일 년 열두 달 내내 소설적으로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치 영화 ‘마지막 액션 히어로’에서 영화 속의 잭 슬레이터의 세계처럼 말이다. 영화 속에는 메가데스의 Angry Again이 흘러나온다. 멋지다. 뿐만 아니라 AC DC, 데프 레파드, 테슬라, 에어로스미스의 음악이 심장을 두드린다. 그야말로 소설적인 영화다. 비현실이며 초현실이고 비규정적인, 그런 날들이 6월부터 이어진다. 5월의 마지막이 되면 좀 더 마지막이고 싶다. 5월의 그린 향기, 짙어지기 전의 녹음과 오월의 바람, 그리고 5월 내내 간직했던 추억을 마지막까지 향유하고 싶다.

5월의 색감. 노랗고 노란 기분 좋은 노랑


노랑이다


평온하고 평화로운 5월


전혜린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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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린이 때 이맘때가 지나면 아버지가 퇴근하고 집에 오시면 마당에서 저녁을 먹는 일일 종종 있었다. 마당에는 평상이 있어 밥상을 들고 와서 평상에 앉아서 저녁밥을 먹었다. 특히 고기를 구워 먹을 때면 꼭 어딘가에 야영을 온 기분이 들어서 신났다. 고작 집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가며 저녁을 먹을 뿐인데 나도 신났고 동생도 신났고 마당의 깜순이도 신났다. 기껏해야 집 안에서 마당으로 저녁 식사를 옮겨왔을 뿐인데 준비를 많이 해야 했다.  


날이 점점 더워지면 마당에 있는 화단에서 벌레들이 일고 날파리들과 모기들이 출몰하기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마당의 불도 좀 더 환한 것으로 더 비춰야 했고 고기를 구워 먹는 불판도(전기로 구워 먹는)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전기선을 길게 연결해야 했다. 그러다 보면 고기를 굽는 냄새가 솔솔, 바람을 타고 옆집 뒷집으로 날아간다. 그러면 친하게 지내던 옆집 아줌마 아저씨가 아이들과 함께 온다. 마당이 시끌시끌해진다. 우리는 마당을 뛰어놀고 어른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한다. 낭만적인 풍경이다. 아직 본격적인 더위가 몰려오지 않았기에 밤은 좋은 온도와 좋은 분위기를 낼 수 있었다.  


또 어떤 날은 화덕에 고기를 구워 먹었다. 화덕에 숯을 넣고 불을 지피고 그 위에 불판을 올리고 직화로 고기를 구우면 그 향이 연기가 되어 집 주위의 모든 하늘에 머문다. 숯에 닿아 직화로 구워진 고기는 또 얼마나 맛있는지. 친하게 지내는 옆집들에서 호박이니, 쌈장이니, 상추니. 이런 반찬을 들고 와서 하하호호 어울린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즐겁고 어른들은 술잔이 오고 간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깊어진다. 별거 아닌 하찮은 것들이 행복으로 바뀌어 유월의 밤하늘을 수놓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그때 정말 그 시간이 좋았을까 싶다. 지금의 내가 그 당시의 아버지 자리였다면 나는 그 저녁 시간이 그렇게 반갑지 만은 않았을 것 같다. 여름이 오기 전 오뉴월의 저녁에는 종종 그렇게 저녁을 먹었으니까 평일에도 마당에서 저녁식사 시간을 가졌다. 아버지는 새벽에 눈 떠서 멀리 있는 회사까지 가야 했다. 버스를 타는 곳까지 열심히 걸어가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꾸벅꾸벅 졸면서 회사에 출근을 했다. 퇴근을 해서 올 때에도 마찬가지다.  


옆집 가족들과 어울려 저녁식사를 즐겁게 했지만 주로 어머니들끼리만 잘 아는 사이였다. 아버지들은 대체로 회사에서 일을 하는 시간이 많고 가끔 주말에 이발소에서 마주치면 어색하게 아는 척을 했다. 이발소에서 하나의 주제로 아버지들끼리 이야기를 하게 되면 너도나도 한 마디씩 하며 어울렸지 어머니들처럼 매일 나물을 다듬으며,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아이들의 문제로 이야기를 친근하게 하지는 않았다. 아버지들은 가족들끼리 어울리는 자리가 대체로 어색했다. 술이 한 잔 들어가면 말이 많은 사람이 있고, 또 그 말을 대체로 계속 듣는 사람이 있다. 그러다가 술자리가 무르익어 깊어지면 아내에게 끌려 집으로 가곤 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면 어제 너무 마신 탓에 아침에 출근이 힘들었다는 아줌마의 말을 듣는다.  


아버지는 속내를 거의 내보이는 스타일이 아니라 별로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러지 않았을까. 아버지는 눈을 감는 그날까지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고통도 얼굴을 조금 일그러트려가며 참을 뿐이고 말을 아꼈다. 왜 그렇게 말을 아꼈을까. 사람은 아닌 것 같지만 다 하나씩 숨기는 뭔가가 있다. 아무리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라도, 가장 가까이 있기 때문에 숨기는 것이 있을지도 모르는, 그래서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걱정거리를 안겨주지 않으려 애쓰는지도 모른다.


진실은 언제나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상처 입혀요.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을 위해서 늘 거짓말이 필요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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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자주, 늘 가던 곳의 멕시칸 치킨집이 그날 나오지 않았다. 이로써 벌써 두 번째 팽 당했다. 보통 집으로 들어갈 때 전화를 걸어 주문을 하고 포장을 받아서 간다. 10년이 넘게 그러고 있으니 후라이드 치킨은 언제나 우리 동네 멕시칸 치킨집이다. 나의 장점이라면 뭔가를 사러 가거나, 장을 볼 때 원하던 물품이 없을 시에는 항시 차선책을 강구해 놓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최선책이 실패했다고 해서 허망해하지 않는다. 그러나 멕시칸 후라이드 치킨에 대해서는 그게 무너졌다. 오래전이지만 우리 동네 멕시칸 치킨 집이 문이 닫혔을 때 다른 여러 곳의 후라이드를 사 먹어 봤지만 우리의 입맛에는 우리 동네 멕시칸 치킨집 만한 후라이드가 없었다. 그건 순전히 기호에 해당하는 것이며 기호 속에는 튀김가루의 맛이 크게 좌지우지할 것이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체인점마다 염지가 얼마나 잘 되어 있느냐에 따라 치킨의 맛도 다르다. 비슷한 양의 나트륨도 튀김가루에만 염지가 되어 있느냐, 치킨의 겉으로만 염지가 되어 있느냐, 아니면 치킨의 속살까지 염지가 되어 있느냐에 따라 튀김가루의 두께가 달라지고 또 맛도 다르다.


이번에도 팽 당하고 난 다음(보통은 팽 당하면 다음 날 사 먹었는데) 이 허망함을 달래 보려고 동네의 치킨 집을 찾아다녔다. 먹고 싶은 날 후라이드를 먹으리라, 하는 간절한 마음 때문에 다음 날로 미루지 못했다. 무릇 치킨이란 먹고 싶은 그날, 바로 먹어야 한다. 후라이드에는 그런 마력이 숨어 있다. 그래서 미친 척 동네의 치킨집을 검색해서 그 앞을 지나다녀봤다. 근방 400미터 안에 치킨 집이 열 군데가 있었다. 비에이치씨, 비비큐, 교촌, 굽네, 멕시칸, 가마치 통닭, 케이에프씨, 다가치 통닭, 처갓집, 페리카나가 있었다. 게다가 닭갈비 집까지. 실로 대단했다. 우리 동네는 선박회사가 바로 코 앞에 있어서 회사원들이 퇴근 후 우르르 흘러나오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치킨 집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깃집, 족발집, 선술집, 국밥부터 중국집, 칼국수를 파는 곳까지. 카페와 등등등. 확실하게 재보지는 않았지만 400미터도 아닌 것 같다. 양 사방으로 200미터 정도? 그래야 걸어서 들어가기 쉽기 때문이다. 400 미터면 너무 멀다. 회사원들이 퇴근하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400미터를 걸어서 가기란 너무 고된 일이다.

 

일단 치킨 집만 놓고 보면 매장에 제일 사람이 많은 곳은 비비큐였다. 그곳은 최근에 생긴 집으로 실내가 가장 카페에 가까웠다. 그래서 여자들도 많이 있고 노래도 흘러나왔다. 그 외 보통의 치킨 집은 배달 위주가 되고 매장 내 홀은 테이블이 두서너 개 정도 있을 뿐이었다. 일단 후라이드를 먹기로 했으니 한 마리 튀겨 가기로 했다. 후라이드는 삼계탕처럼 어디든 다 엇비슷하니 맛있다. 매장에 사람이 별로 없고 빨리 될 만한 곳을 찾다가 비에이치씨에서 후라이드를 튀겼다.

 

보통 일을 하고 들어오면서 전화를 동네 멕시칸 치킨 집에 전화를 한다. 한 30분쯤 걸리기 때문에 가서 픽업해서 집으로 들어가면 되는데, 전화를 건 날이 쉬는 날이면 일하는 근처의 멕시칸 치킨 집에서 후라이드를 해가는 날도 있다. 이게 이상하지만 동네의 멕시칸만큼 맛이 없다. 같은 멕시칸이라고 해도 기름의 상태나 뭐 튀김가루에 들어가는 미묘한 양의 조절이라든가, 그런 것에 따라 맛이 달라질 텐데 맛이 없다고 느꼈다. 그런 이유를 제외하고 생각해보면 일하는 근처의 멕시칸 치킨집은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있어서 인지 종류가 한 서른 가지가 넘게 있었다. 치킨에 관한 요리가 아주 많았다. 그리고 동네 멕시칸에 비해서 치즈볼도 주고 껍질 튀김도 주며, 무엇보다 포장을 하면 2천 원을 깎아준다. 그래서 한 마리를 만 오천 원에 먹을 수 있다. 그렇지만 동네의 멕시칸 보다 맛이 많이 떨어졌다. 동네의 멕시칸에는 치킨의 종류가 그렇게 많지 않다. 우리가 아는 후라이드, 양념, 반반, 마늘, 그 정도뿐이다. 아마도 치킨에만 집중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포장을 한 비에이치씨의 후라이드도 맛있었다. 그러나 튀김옷의 맛이 동네의 멕시칸(모든 멕시칸이 아닌) 후라이드를 따라오지 못했다. 맛은 있으나 더 맛있는 후라이드의 맛에 매료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동네 멕시칸 집에서는 사장님이 직접 만든 간장 양념을 주는데 이게 정말 맛있다. 분명 꿀을 넣은 것 같은데 후라이드와 너무 잘 어울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 양념을 추가하면 얼마냐고 하니까 사장님은 그런 것 없다며 하나 더 넣어주기도 한다. 그 맛을 보고 집에서 엇비슷하게 만들어서 두부를 푹 찍어 먹기도 했다. 하지만 그 맛은 나오지 않았다. 엇비슷하긴 하나 간장의 맛에 과하지 않은 달달한 맛이 섞인 양념은 따라 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다른 치킨집의 후라이드가 그런 것이다. 엇비슷하긴 하나 그 맛은 아닌 맛.

 

그나저나 동네에 이렇게 많은 치킨 집이 있었다니. 치킨을 싫어하는 한국 사람은 없고, 일인일 닭인 요즘 치킨 집을 하면 모두가 장사가 잘 될 것 같은데 내막은 또 그런 게 아니니, 모두가 다 잘살기보다 모두 못살지 않게 되는 그런 날은 오지 않는 것일까. 그나마 아직까지는 둘둘, 네네, 호식이, 60계는 보이지 않고 있다. 곧 들어오겠지.


밑의 사진에는 멕시칸과 비에이치씨가 있다. 어느 후라이드가 멕시칸일까. 그리고 간장을 따라 만들어서 두부를 푹 찍어 먹어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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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차를 타기 위해서 버스 정류장까지 미친 듯이 뛰었다. 이런 날이었다. 봄의 중간, 한창 대학의 시작을 알리는 꽃이 캠퍼스에 피고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대학의 정취에 취해갔다. 학교 앞 거리의 술집에는 학생들로 바글바글했다. 그러다가 막차가 올 시간이면 술집에서 마시던 학생들이 우르르 나와서 막차를 타기 위해 전투를 벌인다. 막차를 타지 못하면 버스를 타고 꼬박 1시간 넘게 가야 하는 거리를 걸어서 가거나 자취하는 친구 방에서 신세를 지거나 해야 한다. 그래서 술을 마시다가 막차가 다가올 시간이면 그 간극에서 갈등을 한다. 친구의 자취방에서 불편하게 잠을 자는 것을 선택하면 마음 놓고 계속 술을 마실 수 있지만 편안하게 집에서 잠이 들려면 지금 일어나서 가방을 들고 미친 듯이 달려야 한다. 하지만 친구 놈이 고향에 내려갔다는 걸 잊고 있었다. 일어나서 술집을 나와 버스정류장까지 뛰었다. 술 때문에, 가방 때문에 숨이 찼다. 비까지 내렸다. 비가 얼굴에 부딪히는 걸 느끼며 정류장에 도착했다. 이미 많은 아이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가 버스가 정차하니 왕창 몰려들어 아수라장이었다. 하지만 버스를 타지 못하면 그 뒷일은 생각도 하기 싫다. 악착같이 사람들 틈으로 파고들어 버스에 올랐다. 가방은 다 구겨지고 도면은 엉망이 되었다. 비를 맞아서 몸은 축축한데 계절이 춥지도 덥지도 않았지만 땀이 계속 흘렀다. 비 때문에 창문을 닫아놔서 비 비린내와 사람들의 숨 냄새가 뒤섞여 역겨웠다. 땀 때문에 비 맞은 몸이 계속 축축했고 내 몸에서 제일 더러운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땀이 등으로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얼굴의 옆으로 땀이 흘렀다. 앉아있는 사람들의 정수리에서 비 비린내와 머리 냄새가 올라왔다. 학생들은 막차를 탄 기쁨을 입을 벌려 언어로 표현했다. 마신 술과 피운 담배, 각종 안주의 냄새가 입을 벌릴 때마다 버스 안에 가득가득 쌓였다. 누군가 버스 창을 조금 열었는데 앉아 있는 사람이 비가 들어온다며 문을 닫았다. 역겨운 사람들의 숨 냄새가 대량살상 무기처럼 버스 안에 살포되었다. 나는 반도 오지 않았지만 중간에서 내리고 말았다. 버스 문이 열리고 버스에서 땅으로 한 발 디뎠을 때 상쾌함을 잊을 수 없다. 집에 걸어가려면 3시간은 걸어야 하지만 상관없었다. 자유로웠다. 기분이 무척 상쾌했다. 덥고 축축하던 등이 시원해지면서 발가벗고 물속으로 들어간 기분이었다.  사람들과 만남이 좋아서 막차가 끊기기 전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셨는데 버스 속에서 사람들이 이야기를 할 때 흘리는 숨 냄새가 싫어서 버스에서 내리고 말았다. 사람이 좋지만 사람이 싫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살 수는 없지만 사람이 드문 곳에서 살고 싶다. 인간은 어째서 이런 모순에서 늘 방황을 하는 것일까. 조금 걷다 보니 등에서 흐른 땀은 말랐고 가늘게 내리는 비는 시원했다. 택시도 없고 차비도 없지만 영혼은 단단하게 가지고 있었다. 밤하늘이 보였다. 밤하늘을 올려다본 적이 언제였을까. 하늘을 올려다본다는 건 고개를 뒤로 꺾어야 한다. 뒤로 고개를 꺾는 건 시원한 일이다. 목을 주무를 때 고개를 뒤로 꺾는다. 밤하늘을 올려다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시원하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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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2-05-30 2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41번 버스가 기억나 버렸네요.

교관 2022-05-31 11:14   좋아요 0 | URL
추억 속의 버스인가 봅니다

잉크냄새 2022-06-01 14:55   좋아요 0 | URL
대학 후문에서 집 근처까지 가던 버스였어요.
술에 취해 허둥지둥 막차로 올라타던 그 버스 풍경이 다들 비슷했나 봅니다.
 


라디오를 들으며


라디오 광고에 공익광고가 나오는데 자동차 운전을 할 때 우회전에 관한 것이다. 2022년 1월 1일부터 우선 멈춤을 하지 않으면 과태료가 붙는다. 우회전 멈춤 광고를 그때부터 지금까지 라디오서 한다. 라디오를 매일 듣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드는데, 늘 할 때마다 '오늘부터' 지키지 않으면 과태료가 붙는다고 한다. 오늘은 5월 27일이라고.




Necessary Evil


광고의 미학은 영화를 뛰어넘었다. 15초의 광고 속에는 15시간이 가지는 마력이 숨어 있다. 그래서 광고에 현혹이 되어 지갑을 열고 안 돌렸던 쪽으로 고개를 돌리기도 한다. 광고를 만드는 이들은 광고 한 편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경우도 있다. 뮤직비디오 보다, 영화보다, 다큐보다 더 멋지고 혼을 빼놓는 영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광고다.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스며들어 마케팅의 본질을 일깨워준다. 이런 멋지고 아름다운 광고가 우리는 싫다. 프로그램과 프로그램 사이에는 늘 광고가 있다. 광고가 붙지 않으면 프로그램은 망하고 만다. 오죽하면 유튜브 영상에는 영상이 돌아가는 중에도 광고가 나온다. 유료로 전환하면 이런 보기 싫은 광고를 보지 않게 해준다고 한다. 지들도 사람들이 광고를 싫어한다는 걸 안다. 누구보다 잘 안다. 광고는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이건 절대적이다. 어떤 노력을 해도 광고는 없어지는 일은 없다. 그런 광고를 보기 싫어 광고가 길어지면 채널을 돌리고 만다. 광고의 홍수 속에서 광고는 쓰레기가 되었다. 그 안에서 우리가 왜 수고롭게 미학적인 광고를 찾아야 할까. 프로그램의 수장들은 광고를 따내기 위해, 광고를 받기 위해 광고주들에게 굽신 굽신이다. 광고는 거대 빅브라더이며 몹들은 그 안에서 조밀하게 움직일 뿐이다. 그런 광고를 우리는 거부한다. 그러나 나에게 광고가 들어온다면 지금까지의 얼굴을 지우고 호의적으로 바뀐다. 광고란 그런 것이다. 어쨌거나 마릴린 맨슨의 뮤직비디오를 죽 보는데 광고가 튀어나오는 건 어떻게든 싫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며칠 전 검색을 하다가 네이버 한 페이지에 동시에 뜬 두 기사를 보게 되었다. 하나는 코로나가 풀려 해외에 여행을 가는 행복한 기사였고, 또 하나는 죽음을 일주일 남긴 이십 대 유튜버의 작별 인사에 관한 기사였다. 한 페이지에 이렇게 동시에 뜬 두 기사를 보니 인간의 삶이라는 게 이렇게나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다른 삶을 한 시간대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불안하면서 두렵기도 하지만 신기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두 기사는 상반된 내용이었는데 의미도 달랐다. 해외에 여행을 가는 가족의 기사에는 코로나 때문에 여행경비가 너무 들어서 행복하지 않다는 내용이었고, 이제 죽음을 앞둔 23살의 유튜버는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을 받고 눈을 감을 수 있어서 불행하지 않다고 했다. 도대체 인간의 행복이란 뭘까. 어떤 삶을 살아야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일까. 행복이라는 건 멋진 몸매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날씬하고 근육이 좋은 멋진 몸매는 그걸 유지하기 위해 매일 몇 시간식 운동을 한다.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면 이 신기루는 도망가고 만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행복을 유지하기란 행복에 도달하는 것보다 훨씬 노력을 많이 해야 하고 에너지 소모가 많고 어렵다. 행복은 측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지난 행복보다 이번 행복이 훨씬 크고 넓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어제 기사에 난소암 4기 판정을 받았던 23세 그 유튜버가 세상을 떠난 기사가 났다. 그녀는 자신에게 관심을 준 모든 이들 덕분에 행복하다고 하며 눈을 감았다. 행복이란 뭘까. 23살에,, 너무하지 않은가.




기쿠지로의 여름을 보면서


마음의 한구석이 아직 아이로 남아있으려는 어른들과 이미 어른이 되어 버린 9살의 점잖은 소년의 우정을 그렸다.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 다시 보니 예전만큼 감흥은 없다. 철없는 어른과 철이 들어버린 소년의 이유는 비슷했다. 왜 철이 없는지, 왜 철들어 버렸는지, 그 이유는 같았다. 두 사람은 마사오의 엄마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나며 아직 아이로 남으려는 마음이 많은 어른들과 함께 어울린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 만났는데 마음이 통하고 노는 게 재미있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건 기적이다. 요즘 공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를 하는 취준생을 보면 공부는 너무 힘들지만 친구들을 만나면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나의 어려움을 알아준다. 작은 선물에 크게 기뻐하고 아프면 챙겨주는 친구들. 이런 친구들 때문에 공부를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막막한 취업 문턱 때문에 늘 불안하다. 그러나 인고의 노력 끝에 시험에 합격해서 취업이 되면 그런 불안은 사라진다. 그렇지만 반나절 이상 마음이 맞지 않고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매일 부딪히며 살아야 한다. 불안이 있던 공백의 자리에 다른 것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게 된다. 운이 나빠 성적인 희롱을 당하고 나면 더 이상 여기는 내가 바라던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 되고 만다. 기적은 그렇게 현실에서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마사오는 과묵하고 어른 같은 9살이지만 생판 모르는 형들을 만나서 실컷 웃는다. 어른들이지만 말도 잘 통하고 노는 것도 비슷한 사람과 어울리는 건 기적에 가깝다. 그러나 때가 되면 각자의 길을 가야 할 시간이 온다. 그때는 과감하게 사요나라 할 수밖에 없다.




마릴린 맨슨


위에서 잠깐 마릴린 맨슨을 언급해서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는 마릴린 맨슨의 노래를 좋아한다. 특히 이런 목소리, 목을 긁어서 내는 이런 소리를 아주 좋아한다. 록에 미치도록 딱 맞게 장착되는 강렬한 소리다. 그러니까 인간의 목에서 이런 소리가 난다는 건 너무나 멋진 일인 것이다. 이렇게 목을 긁는 소리를 낼 수 있는 시기는 한정적이다. 20 초반에서 중반 그 언저리다. 그리고 연습과 피나는 노력을 하면 30대까지 이어지지만 더 이상 하게 되면 본인에게는 물론이고 밴드에게도 타격이 오게 될 수도 있다. 엑스제팬의 히데가 이런 목소리였다. 굉장했다. 특히 다우트 리믹스 록 버전에서 첫 인트로 부분은 마릴린 맨슨의 더 돕쇼에서도 들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서태지도 울트라맨이야 앨범을 들고 나왔을 때 이런 목소리였다. 강력했다. 서태지가 강력하게 목소리를 긁어서 노래를 부르다니! 우리는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드래곤 역시 목소리를 긁어서 노래를 부른다. 역시 멋지다. 지디의 무대를 보면 록적이다. 록 스피릿이 외국의 록밴드만큼 강렬하다. 지디를 뒷받침하는 밴드들 역시 드럼과 일렉 기타로 록 사운드를 뿜어낸다. 마이클 잭슨의 음악적 뿌리가 록인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여하튼 지드래곤은 음악도 스타일도 멋지다. 잘 다듬어진 화초 같은 아이돌이 쏟아지는 한국에서 나올 수 없는 드문 케이스다.  아무튼 마릴린 맨슨의 맨 얼굴은 아마도 텍사스 주 어디 시골에서 아버지 차에 올라서 멍하게 노을을 바라보는 미국 소년의 얼굴 같을지도 모른다. 이런 마릴린 맨슨이 성폭행 범죄에 휘말렸다. 마릴린 맨슨을 고소한 사람은 ‘왕좌의 게임’에서 조프리에게 벽에 과녁처럼 화살이 몸 여기저기에 꽂혀 죽은 시녀 역이었던 에스미 비앤코. 2월에 성범죄 고소가 이루어졌고 그 내용만을 보자면 마를린 맨슨은, 본명이 브라이언 워너는 그녀를 10대 때부터 그루밍하고 몇 년씩이나 끔찍하게 학대를 했다고 했다. 지금 현재 마릴린 맨슨은 자신의 개인비서, 예술가 등 여섯 명이나 그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며 sns에 그런 사실을 공유했다. 재판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지만 브라이언의 변호사는 터무니없는 비앙코의 재정적 요구가 있었다고 한다. 비앙코 측의 변호사는 브라이언 워너가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 잠도 재우지 않고 술과 마약만 주었다고 했다. 그리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마릴린 맨슨 하면 예전에 괴기하고 강렬한 록을 하지만 모친에게는 아주 잘하는 효자라는 말이 있었다. 또 비앙코를 만나기 전에는 지구에서 가장 예쁘다는 디타 본 티즈와 2006년에 결혼을 했었다. 헤어질만해서 헤어졌겠지만 아니 왜. 디타 본 티즈는 패션계가 가장 사랑하는 인물 중 한 명인데 스타일이 끊임없이 아주 확고하다. 무대 위나 일상이나 거의 변화가 없는 스타일이다. 또 너무 늙지 않아서 오히려 더 무섭기까지 하다는 그녀가 마릴린 맨슨의 어떤 점을 봤을까. 하지만 그건 두 사람만 아는 사실이고 이 사실이라는 것도 시간이 지나서 진실에 다가가려고 하면 진실이란 사실과 점점 멀어지는 경우가 짙다. 마릴린 맨슨은 뮤직 비디오 보는 재미가 있다. 그의 뮤비는 광고보다 영화보다 더 재미있고, 충격적이고, 시사하는 바가 크다.




눈치 보지 말고 글을 쓰자


여기서 말하는 눈치는 타인에게서 느끼는 눈치 보다 자기 자신의 눈치를 말한다. 자신이 자기에게 보는 눈치, 자기만의 눈치, 자신이 검열을 통해 눈치는 보는 것을 말한다. 6월 1일까지 공모전 마감인데 두 달 전에 와서 아직 처음을 시작하지 못했다고 하는 녀석의 말을 들었는데 아직도 몇 줄 적지 못하고 고민만 한다고 했다. 속으로 때려치워라. 쓰기 전에 왜 생각만 많이 하는지 모르겠다. 일단 적고 보면 글이라는 건 어떻게든 써지기를 원하기 때문에 내가 바라는 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글은 알아서 써진다. 다 쓰고 난 뒤에는 공모전 마지막 날까지 고쳐 쓰고, 또 고쳐 쓰면 된다. 머릿속에 써야지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싶을 때 바로 적지 않으면 어느새 다른 생각이 그 생각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들어온다. 그것의 반복적 순환이 계속된다. 왜 자꾸 잘 쓰려고 할까. 물론 잘 써야 하겠지만 잘 쓴 글은 이미 다 출판되어서 세상에 나와있다. 사람들은 이름도 없는 무명의 잘 쓴 글보다 유명한 작가들의 글을 읽을 뿐이다. 그러니 미리 그런 생각을 하지 말고 자신의 이야기를 쓰면 된다. 누가 보던 말든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쓰면 된다. 타인이 보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고, 자신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볼 수 있게 되면, 자신과 마주하면 꼭 타인이 나의 창작물에 크게 관심이 없더라도 나 자신이 나의 글을 통해서 기쁨에 도달할 수 있다. 하루에도 인터넷에는 수천 개의 글이 올라온다. 아니다, 수만 건의 글은 올라올 것이다. 그중에 중앙매체의 기고 란에 제대로 편집이 되어 제대로 실린 제대로의 칼럼도 수두룩하다. 그런 좋은 글도, 잘 쓴 글도 사람들은 대부분 읽지 않는다. 끊임없이 쓰고 버티면서 조금씩 나아가는 글을 발견하는 자신만의 기쁨을 느껴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일상의 한계를 느꼈을 때 글쓰기를 함으로 나의 일부가 모든 것으로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굉장한 일이다.


문학은 태생적으로 개인주의적이며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느끼는 것도 모두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세계입니다. [중략] 잘 느끼자. 감성 근육을 키우자. 그리하여 함부로 침범당하지 않는 견고한 내면을 가진 고독한 개인들로서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가자. 이것이 제가 오늘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 김영하 [말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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