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이 한 장의 사진을 담기 위해 같은 곳을 매일, 두 달 동안 비슷한 시간에 고양이 먹이를 들고 찾아갔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나도 부지런하여 카메라를 들고 영차영차 열심히 사진을 담고 있었다.


내가 들고 다니는 카메라는 렌즈 찰탁식이 아니고 망원렌즈도 아니기 때문에 피사체를 자세히 담으려면 피사체 가까이 가야 한다. 움직이는 피사체라면 그 피사체와 어떻게든 친밀해져야 하고 친근해지면 움직이는 피사체를 담을 수 있다. 좋은 카메라로, 좋은 망원 랜즈를 달고 뒷 배경의 보케가 몽글몽글 날아가는 사진은 쳐다보지도 않았던 때였다. 자존심이 강했던 때였다.


고양이는 수천 년 동안 인간의 곁에서 인간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지지만 인간과 늘 이만큼의 거리를 두는 요물단지 존재다. 강아지처럼 헤실헤실 오로지 주인의 눈만 보며 24시간이 모자라는 것도 아니며, 포기했다 싶으면 어느새 손을 내밀어 친밀함을 표현하는 기묘한 존재가 고양이다.


그래서 길고양이는 더더욱 가까이 다가가기가 어렵다. 조깅을 그동안 하면서 만난 길고양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올린 적이 있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1269


고양이는 다가가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한 번 친밀해지면 그들 나름대로 그 친밀함을 표현하는 것에 인간의 마음은 또 녹아버리고 만다.


길고양이와 최고의 인연?이라고 해야 할까, 나와 길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는 차에 치어서 이제 막 죽음으로 간, 그래서 몸이 아직 뜨근 뜨근했던 어미 고양이를 수건에 돌돌 말아서 저수지 근처에 묻어준 일이었다. 이 이야기도 어디선가 풀어놨는데 어딘지 기억이 없다. 그런 것을 보면 나는 머리가 나쁘다,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어미 고양이라는 걸 알 수 있었던 건 죽은 어미 고양이 주위에 이제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을 것만 같은 새끼 고양이들이 앙앙 거리고 있었다. 눈망울이 만화에 나오는 그, 그런 눈망울을 한 채 4마리인가 도로에 죽은 어미 고양이 주위에 모여 앉아 있었다. 그 시각이 새벽이었다. 새벽 2시나 3시쯤.


그때 나는 술을 마시고 대리운전을 해서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대리기사님이 도로에 뭐가 있는데요?라고 하기에 잠깐 내려서 보니 그런 모습이었다. 도로는 아파트 밑의 4차선으로 저녁이 되면 차선 양옆으로 자동차들이 죽 주차를 해서 2 차선 되어버리는 도로였다. 그리고 그 아파트에 내가 산다. 집에 거의 다 와서 그 모습을 발견했다. 그래서 근처에 주차를 시켜달라 하고 대리기사는 가버리고, 나는 술이 좀 취한 상태로 어미 고양이를 들었다. 그때 고양이의 몸이 뜨근뜨근 해서 놀랐다.


아마 맨 정신이었으면 나는 그대로 집으로 갔을 것이다. 순전히 술 때문이다. 술 때문에 새끼 고양이들이 새벽에 다니는 차에 치일까 봐 어미 고양이를 묻어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단지 그랬을 뿐이다. 조깅을 하니까 수건이 있었고, 그때는 도시락을 싸 다녔다. 숟가락을 주머니에 꽂고 수건으로 고양이를 말아서 아파트 단지 뒤의 저수지 쪽으로 갔다. 만약 비가 왔다면 나는 영화 사이코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비를 추적추적 맞고 주머니에 숟가락을 꽂고(이건 좀 웃기지만) 힘든 발걸음으로(술 때문에) 고양이를 수건으로 감싼 채 저수지로 오르는 모습.


그리고 숟가락으로 적당한 곳을 찾아서(비교적 사람이 다니지 않을 것 같은, 그리고 나무 뒤에, 그리고 비가 와도 괜찮을 정도의 땅의 굳기 등) 열심히 숟가락으로 땅을 팠다. 정말 미친 듯이 팠다. 술 때문이었다. 술 때문에 그런 약간은 초인적인 땅파기를 할 수 있었다. 수건에 싼 채 고양이를 묻고 흙을 덮고 잘 밟아 주었다. 누가 봐도 원래 땅인 것처럼.


이제 흩어졌던 새끼 고양이들이 이 험한 세상에서 잘 헤쳐 나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하루키의 일큐팔사 2권에 고양이 마을이 나온다. 꼭 저 사진 속의 고양이들을 따라가면 고양이 마을로 들어갈 것 같다. 고양이 마을로 들어가면 상실이 가득한 고양이 마을보다는 고양이의 보은에 나오는 그런 기분 좋은 마을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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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2-09-28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가 은혜 갚을 겁니다.

교관 2022-09-29 11:51   좋아요 0 | URL
ㅎㅎㅎ 은혜까지는 바라지 않고요, 고양이와 사람이 잘 섞여 살아갔으면 합니다
 


선지를 먹는 나라는 우리나라 말고 또 있을까. 어딘가 있겠지. 유튜브를 보니 어느 나라 시장에서는 박쥐도 먹고, 보아뱀도 먹고, 도무지 외관상으로는 먹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물고기도 국으로 끓여서 먹더라. 대만은 취두부를 먹고 천조국 놈들도 별 이상하고 거지 같은 것들도 먹는다. 선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날개 잘라 내고 입을 에, 이렇게 벌린 채 그대로 까맣게 구워진 박쥐보다는 낫잖아.


그러나 영화나 해외 드라마 같은 것을 봐도 선지를 먹는 다른 나라의 모습은 본 적은 없다. 생각해보니 독일이 소시지를 먹는데, 소시지도 순대와 비슷하니까 순대에 선지가 들어가는 것처럼 선지가 들어가는 소시지가 있을 것만 같다.


고독한 미식가를 보면 고로 상이 먹는 음식 중에 돼지 간이 들어가는 음식들이 있었다. 우리는 간을 순대의 옵서버 정도로 먹을 뿐인데 고독한 미식가 여러 시즌 중에서 간볶음이나 커다란 간으로 만든 카레라이스 같은 걸 먹는 모습이 있었다. 아마 마지막 시리즈 중에 한 편인 거 같은데 고로 상이 들어와서 자리가 없어서 나가려고 하는데 아주머니 혼자서 앉아 있는 테이블에 합석하게 되고 그 맞은편에 앉은 수다스러운 아주머니가 커다란 간이 들어간 카레라이스 같은 음식을 먹는다.


그리고 고로 상에게 막 자랑을 한다. 이만큼이나 큰 간이 들어가서 아주 맛있다며 고로 상 눈앞에서 자랑을 막 한다. 고로 상이 그 음식을 주문했는데 아뿔싸 아주머니가 마지막 주문이었다. 간이 다 떨어진 것이다. 그래서 고로 상은 그다음 날에 또다시 그 식당에 가서 그 음식을 주문했는데 바이트가 헷갈려서 간볶음으로 주문을 받고 만다. 음식을 받아 들고 놀라는 고로 상의 표정은 큭큭.


나는 간을 좋아해서 순대를 먹을 때 간을 먼저 먹는다. 간은 거의 아무도 먹지 않기 때문에 간을 좋아하는 나는 아주 좋다. 간은 뻑뻑한데 그 뻑뻑한 맛이 뭔가 나쁘지 않다. 우리는 간을 다른 음식으로 먹어본 적이 없다. 그저 순대를 먹을 때 간도 주세요, 해서 먹을 뿐이다. 순대국밥에도 내장이나 순대는 들어가는데 간은 들어가지 않는다. 그것이 나의 불만이지만 이런 불만은 0.3초 만에 잊어버린다.


우리나라만 먹는 음식? 이 있다. 그게 참외다. 참외는 채소니까 우리나라 사람들만 먹는 채소가 참외다. 참외는 과일 같은데 채소다. 나는 참외를 껍질 째 먹는다. 그게 훨씬 맛있다. 여름에 시원하게 해서 노란 껍질 째 우걱우걱 씹어 먹는 맛이 너무 좋다. 다른 나라에서는 참외는 먹지 않는다고 한다. 참외보다는 먹기도 수월하고 더 맛있는데 멜론을 먹는다고 한다. 참외는 멜론보다 단맛이 덜 나기 때문에 굳이 참외를 먹을 필요가 없다고 한다. 늘 하는 말이지만 요즘 나오는 과일은 당도가 좋아도 너무 좋다. 그래서 맛이 '너무' 난다. 참외 정도는 중간 씨 부분을 다 빼 버린 후 껍질 째 시원한 맛으로 먹는 게 좋은데 참외마저 요즘은 달다 달어.


아무튼 소 피를 굳혀서 먹는 선짓국 같은 음식은 우리나라만 먹지 않을까 한다. 선지는 이런이런 점에서 몸에 좋음, 같은 문구도 선짓국 전문점에 가면 붙어 있다. 철분이 어쩌고 하는 걸 보면 드라큘라도 인간의 피를 빨아먹는 게 납득이 간다. 철분이 있어야 밤새도록 돌아다니지.


예전에 선짓국을 꽤 자주 먹었을 때가 있었다. 그때는 여기 다운타운에 밤 10시가 넘어가면 포장마차가 죽 들어서는데 선짓국 포장마차다. 서서 후루룩 먹는다. 술을 한 잔 하고 집으로 귀가하는 젊은 사람들이(다운타운이니까 주로 젊은 층이 술을 마신다) 선짓국을 후루룩 먹는다. 그게 아주 맛있다. 여자고 남자고 할 것 없이 새벽에는 일렬로 죽 서서 선짓국을 먹는다. 여름이면 그 앞에 테이블에 차려져서 또 술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포장마차 단속하에 모든 포장마차가 사라졌다.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에 새벽이든 새벽이 아니든 선짓국 포장마차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덕분인지 거리도 아주 깨끗해졌다.


선짓국은 소주를 한 잔 꺾으며 먹는 게 맛있다고들 하는데 나는 선짓국을 먹을 때 술과 함께 먹은 적은 없다. 술을 마시고 귀가할 때 위의 포장마차에서 선짓국을 빠르게 후루룩 먹을 뿐이었다. 근래에는 선짓국을 먹지 않고 있는데 이유는 딱히 없다. 이제 국물 있는 음식을 먹지 않는 이유도 있고 자주 가던 선짓국 전문점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와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사진 속의 선짓국은 옆집에서 만들어서 한 냄비를 주었다. 옆집 아주머니는 못하는 음식이 없을 정도로 요리가 취미인데 얼마 전에는 한식 조리사 자격증까지 땄다. 요리사 자격증이 여러 개 있는 걸로 아는데 아무튼 부지런하다. 요리를 한다는 건 부지런하지 않으면 하지 못한다. 요리 자체도 그렇지만 요리를 해야 하는 재료를 구입하고 손질하는 자체가 부지런 떨지 않으면 못하는 일이다. 옆집 아주머니는 아들을 서울에 있는 대학에 보내 놓고 남편마저 외국에서 일을 하러 가버리고 홀로 외롭게 지내다 보니 요리에 목을 매게 되었다. 그리고 엄청난 요리를 해서 혼자 먹을 수 없기 때문에 늘 나에게 한 냄비씩 준다. 이봐, 오늘은 아귀찜을 했는데 이건 덜어 먹을 수가 없네, 같이 먹을까, 라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고.


포장마차의 선짓국 말고 선짓국 전문점에서 선짓국을 자주 먹을 때가 있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먹었다. 대중목욕탕의 발길을 끊기 전이었다. 여자 친구와 서로 찢어져 목욕을 하고 나와서 항상 그 선짓국을 먹었다. 목욕탕도 항상 거기에 있는 목욕탕에 갔다. 점점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어도 계속 같던 곳으로 갔다. 회귀성이 강한 연어처럼 계속 가는 것이다. 목욕을 하고 난 뒤에 먹는 선짓국은 정말 맛있었다.


일을 마치고, 조깅도 같이 하고 난 다음 목욕을 느긋하게 하고 난 다음에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간에 사람이 드문 선짓국 전문점에서 후루룩 먹는 선짓국은 그야말로 행복이었다. 행복을 숟가락으로 떠먹는데 즐거운 시간이었다. 늘 가는 선짓국 전문점은 24시간 하는 식당이었고 그곳은 이곳, 이 도시 사람들에게는 너무 유명한 곳으로 근처 술집에서 술을 먹고 꼭 들러서 해장을 하는 곳이었다.


어제 문득 생각나서 검색을 해보니 굳건하던 그곳이 없어졌다. 그래서 여기 지역 사람들이 커뮤니티에서 그곳의 안부를 묻고 추억담을 올리고 있었다. 사라진 오래된 식당 한 곳이 모르는 이들이 서로 모여 연대를 끌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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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처럼 칼로 자르듯이 난마돌이 지나간 뒤 백만 마리의 매미가 우는 소리가 싹 없어졌다. 난마돌이 오기 직전까지 매미들이 꺼질세라 서럽고 웅장하게 울어댔는데 태풍이 지나간 뒤 모든 매미의 울음소리가 사라졌다. 매미는 매년 여름이면 나타나지만 울음소리는 매년 점점 작아지는 것 같다.


역시 거짓말처럼 하늘도 구름도 모두 형형색색의 가을의 옷을 입고 컬러를 마음껏 뽐내고 있다. 그 모습이 요즘 말로 킹 받는다. 아침에 일어나면 눈이 빠질 것 같고, 드디어 코 끝이 간질간질 거리며 손바닥에 다한증이 생기는 것을 보면 계절 때문에 호르몬의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인간에게 에너지를 조금씩 야금야금 뺐어가서 자연은 가시광선으로 모든 컬러를 아름답게 보이는지도 모른다. 그런 가을의 맑고 투명하고 형형색색의 컬러를 보고 있으면 열이 받는다.


그럴 땐 아무 말 없이 역시 달리는 것이다. 조깅을 하는 것이다. 나는 보통 한 6킬로미터 정도를 달린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그 중간에 근력 운동을 한 2, 30분 정도 이를 악 물고 하니까, 그 정도의 조깅에 그 정도의 근력 운동이면 나와 타협을 봤다고 생각한다. ios16으로 업그레이드하고 나니까 난데없이 생긴 어플로 거리를 재어보니 내가 매일 달리는 거리가 거의 10킬로미터 정도 되었다. 그날그날 다르지만, 그 코스 안에 계단도 있고, 오르막길도 있고, 종합 운동장의 트랙도 있다. 4계절에 상관없이 조깅을 하는 동안에는 당연하지만 호르몬의 변화 같은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조깅을 주로 해가 퇴근하고 난 뒤 달에게 하루를 반납하는 밤에 한다. 요즘은 말 그대로 가을밤인 것이다. 은행이 온 거리에 떨어져 자칫 잘못 밟아서 종아리에라도 튀면 낭패다. 가을밤이다. 예전 유열의 노래 중에 ‘가을비’라는 노래가 있다.


그리움에 관한 노래다. 나를 떠난 그대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그리워한다. 가을에 슬피 울며 떠난 그대가 그립다. 노래는 죽 이어지다 클라이맥스에 도달하기 전에 마음을 적시는 가사와 노래가 이어진다.

‘그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난 모든 것을 단념하고 돌아섰지만’

그리고 클라이맥스 부분이 흐른다.

‘수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도 나는 그대를 이토록 못 잊어

 빗줄기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흐느껴 우네’


https://youtu.be/GcGYk3isfUg


만약 그대와 헤어지지 않고 죽 만나서 결혼을 했더라면 과연 더 나은 삶이었을까. 그때 그대가 슬프게 울며 나를 떠났기에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그대를 이토록 그리워하고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움이 나을까. 그리움보다 지지고 볶고 해도 매일 얼굴을 보며 지내는 게 나을까. 답은 모른다. 이 답을 알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기나 할까. 소설과 비슷하다. 어떤 이들은 소설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하지만 소설이란 문제를 제기하는 역할을 하지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는다. 고로 책이 최고야,라고 말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닌 것이다.


책은 주류일까, 비주류일까. 이 가을의 초입에 한 번 생각해보자. 나는 주류일까 비주류일까.


‘헝가리 무곡’으로 유명한 브람스가 있다.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도 있고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의 이전작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도 있을 정도로 브람스는 유명하다. 브람스의 음악을 모르더라도 ‘헝가리 무곡’은 들어보면 누구나 아 하며 고개를 끄덕할 것이다. 헝가리 무곡은 집시 곡이라고 불린다. 집시는 이집트에서 온 놈들 아니야?라고 하는데서 ‘이’ 짜가 빠지고 ‘집’ ‘짖시’라고 불리다가 ‘집시’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은 바이올린 선율이 좋은 곡으로 마치 브람스가 늘 입고 있던 갑갑한 양복을 벗어던지고 캐주얼한 옷을 입고 연주한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말로 하면 깽깽이라고 보면 되겠다. 헝가리 무곡을 검색해서 보면 온통 바이올린이다. 바이올린 수십대가 헝가리 무곡을 연주한다. 그래서 정말 멋진 선율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이 헝가리 무곡은 브람스의 대표작인데 브람스가 작곡한 곡이 아니다. 19세에 연주여행을 떠난 브람스의 여행을 레메니가 주선을 했는데 레메니가 브람스에게 집시음악을 소개해줬다. 좀 더 파고들면 레메니가 자신의 곡을 브람스가 훔쳤다고 고소를 했다.


악보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레메니는 헝가리 무곡이 브람스가 뻔뻔하게 뺏겼다고 주장을 했다. ‘바르파를 기리며’는 헝가리 무곡과 아주 흡사하다. 거의 일치되는 연주를 볼 수 있다. 브람스도 헝가리 무곡을 편곡으로 발표했다. 어떻든 이를 발굴한 브람스가 있었기에 비로소 헝가리 무곡이 탄생이 된 것이다. 레메니가 화낼만하겠지만 말이다.


여기서 창작이냐 도용이냐, 사람들은 말하기 시작했다. 헝가리 무곡이 다른 작곡가의 곡인 줄 몰랐다. 깐깐하고 고지식하지만 사려 깊은 사람이 브람스였다. 악보가 팔릴 줄은 또 몰랐던 것이다. 헝가리 무곡이 팔리면서 베토벤의 후계자라고 불릴 정도였다. 브람스는 소심하고 겁쟁이에 콤플렉스가 심했다. 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어찌 보면 브람스는 천재에 가깝다.


13세에 바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 15세부터는 아예 음악교육은 받지 못했다. 싱코페이션. 건너뛰고 꾸밈으로 가득 들어차 있는데 이 곡은 독일식의 음악으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으로 이 곡은 재즈로도 연결이 된다. 시장적 정서가 발하는 헝가리 무곡의 바이올린은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면서 연주를 할 수 있는 곡이라고 한다.


https://youtu.be/vOUCb167iho


브람스가 왜 천재로 통하냐면 창작과 도용을 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헝가리 무곡이 중요하다. 민속음악의 체계화가 된 곡이 되어 버렸다. 당시에는 피아노 보급이 잘 된 시기였다. 전문 연주가들이 아닌 일반인들이 잘 연주하게끔 만들어진 곡이었다. 두 손이 아닌 네 손이 연주하기 편하게 만들어진 곡이었다.


비주류 음악을 주류 음악인 클래식 곡에 집어넣은 곡이 바로 헝가리 무곡이었다. 이후 체코의 드로르자크 같은 민속 음악가들이 나오게 된다. 오늘 같은 날 기도를 한 번 한 다음 눈을 감고(꼭 그럴 필요는 없지만) 헝가리 무곡을 들어보자. 그러면 확실히 헝가리 무곡에 깔린 세계가 상상 속에 나타난다. 주류 속에 살고 있는 비주류를 생각하게 된다. 바야흐로 가을인 것이다.


난마돌이 오기 직전 몇 시간 전


북서쪽 하늘이 온통 붉은색이었다


태풍을 취재하기 위해 나온 KBS팀


동쪽 하늘인데 나와서 조깅한 지 30분 만에 비바람이 엄청나서 돌아옴


마그리트가 그렸나


온통 마그리트 마그리트


트랙을 조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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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영화의 공통점 중에 하나는 아포칼립스가 도래한 세상에서 대형 마트에 가서 실컷 장을 보는 장면이 있다는 것이다. 담고 싶은 식료품을 마음껏 담는 장면이 있고 그 장면 속 주인공들은 아주 행복한 얼굴이다. 왜 이런 장면이 좀비 영화에 공통적으로 있을까. 그건 세상이 망해서, 그래서, 비로소 주인공들은 즐거운 여행을 한다는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것이다.

사진출처: 네이버 블로그 studio JUN  https://blog.naver.com/wsj1060/60209866095


그러니까 영화 행오버 1편을 보면 세상 범생이 스타일인 스튜가 제일 병맛으로 맛이 갈 때까지 가서 그날 밤 바로 댄서와 결혼도 해버리고 이빨도 하나 부러진다. 일탈이라고는 전혀 하지 못할 것 같았던 스튜가 한 번 일탈의 맛을 알아버리니 완전한 자유한 몸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 이런 액스터시 같은 일탈을 꿈꾼다. 영화는 그런 만족을 준다. 좀비 영화 속 마트 속을 터는 장면은 그런 대리 만족을 가지게 한다.


좀비 영화 속 주인공 각자는 평소에 하찮고 쓸모없는 인간일지라도 다양하기 때문에 그 다양함으로 나중에는 좀비들을 물리치거나 좀비들 사이를 뚫고 탈출한다. 좀비 영화를 보면 그렇다. 기묘하지만 어느 나라든 좀비 영화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서민들이다. 부유층이 없고 평소에 마음껏 쇼핑 같은 쇼핑도 하지 못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주인공들이다. 실제로도 이 좀비라는 카테고리에 좀비를 빼버리고 바이러스, 즉 코로나를 집어넣어도 궁지에 몰리는 사람들은 서민들이다. 그 카테고리에 홍수나 천재지변을 넣어도 똑같다. 우리는 이런 경우를 얼마 전까지 당했다.


좀비 영화 속 재미있는 현상 중 하나는, 인간들이 좀비가 되어서 텅 빈 마트를 쓸어버리면서 술을 담는 주인공도 꼭 한 명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평소에 마셔보지 못한 술을 따서 마시며 망한 세상에서 행복함을 느낀다. 좀비 영화의 명작이라는 ‘28일 후’에서도, ‘좀비랜드’에서도, 새벽의 저주는 아예 마트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마트란 그런 곳이다. 마트는 재미있는 곳이다. 마트에 가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다. 마트에 가면 뭐든 다 있으니까. 눈으로 보도 즐기도 만지고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있으니까 즐겁다.


코로나 전에는 명절이 다가오는 연휴기간에 대형 마트에 가는 재미가 좋았다.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재미있었다. 사람들이 많으면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좋다. 딱히 살 것도 없지만 쇼핑 커트를 드르륵 끌며 싸구려 와인 몇 병을 담고, 치킨이나 시간 임박한 연어초밥만 담아서 넣고 액자와 그릇들을 둘러보고 어항 코너에 가서 물고기를 실컷 구경하고 일행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냠냠 먹으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는 재미가 있었다.


여름에 가면 시원해서 좋고, 겨울에는 사람들이 많아서 재미있고 밤에는 이상하지만 과일코너에 시원한 연기가 더 많은 것 같아서 좋고. 아무튼 마트에서 그로서리 쇼핑을 하는 건 재미있는 일이었다. 대형마트나 극장은 전국 어디를 가나 비슷하니까 다른 지역에 가서도 마트 쇼핑을 하는 동안에는 여행 중이라는 걸 잊어버리고 있다가 마트를 나오면 낯선 풍경에 아, 맞다 우리는 지금 여행 중에 마트에 들렀지, 하게 된다.


마트에 가면 마트 밖에서는 볼 수 없는 켜켜이 쌓인 물건들을 볼 수 있다. 특히 라면이 쌓여 있는 모습은 가히 경이롭다. 가만히 서서 영화에서 처럼 저 쌓여있는 물품을 한 번에 쓰러트렸으면 얼마나 마음이 뻥 뚫릴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자동차를 확 몰고 와서 쾅! 하고 물건을 쓰러트리거나, 빌런을 잡으면서 획 같이 몸을 굴려 물건을 쾅! 하며 쓰러트리거나. 그런 생각만으로도 묘한 쾌감이 들었다.


도미노의 재미도 어렵게 어렵게 쌓아 놓고 한 번에 다 무너트리는 그 재미로 하는 것이다. 볼링도 비슷하다. 핀이 넘어지는 소리가 더 클수록 기묘하게도 쾌감이 더 든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마트에 가면 서적 코너가 있어서 스쳐 지나가는 곳이 아니라 잠시라도 머물 수 있는 곳이었는데, 이제는 마트에 거의 가지 않게 되었다. 필요한 물품은 인터넷으로 주문을 해버리니까 마트에 갔다 오는 시간이 절약이 된다. 내가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다니. 참 놀라운 세상에 살고 있다.


좀 엉뚱한 소리를 하면 좀비물이라도 좀비에게 물려서 죽고 난 뒤에 좀비가 되는 영화가 있고 - 요컨대 월드 워 z가 있고, 대니 보일 감독의 ‘28일 후’처럼 좀비에게 물려서 좀비가 되는 게 아니라 바이러스에 의해 인간인 자체로 좀비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어떤 좀비가 더 무섭고 더 치명적일까. 그리고 물려서 환지통을 앓다가 죽고 나서 좀비가 되는 게 덜 불행한 일일까. 서서히 극렬한 고통에 시달리면서 점점 인간인 자체로 좀비가 되는 게 덜 불행한 일일까. 좀비 영화들을 보다 보면 그런 게 눈에 보인다.


요컨대 요즘은 좀비에게 세계를 내준 흡혈귀, 드라큘라와 뱀파이어도 그렇다. 생각해 보면 드라큘라와 뱀파이어는 인간의 피를 빨아먹고 불멸한다는 것은 같지만 어쩐지 드라큘라와 뱀파이어는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다. 드라큘라와 뱀파이어가 영화가 만들어낸 허구의 존재라는 걸 소거하고 한 번 보자. 그렇게 놓고 생각을 해 보는 것이다. 뭐 정말 엉뚱한 소리였다.


대형마트와 대형마트의 사이가 꽤 먼 거리다. 그러니까 대형마트에 오는 지역주민들의 수만 놓고 보면 유동인구가 많다는 말이다. 이 많은 유동인구가 전부 대형마트에 오는 것은 근래에는 어려운 일이 되었다. 아파트 단지에는 중형마트(홈마트, 현대마트 같은)가 있고, 골목 사이사이에는 또 편의점이 있다. 무엇보다 인터넷 쇼핑몰의 발전으로 오전에 주문하면 저녁에 배달을 해 주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 배송이 가능해져서 대형마트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거의 모든 마트와 편의점에는 매달 신상품이 쏟아지고 전문 유튜버가 리뷰를 하고 있고, 행사도 매주 하고 있다. 그래서 대형마트도 현재 뭔가를 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대형마트에서는 분기별이나 한 달에 한 번 정도 마트 앞의 조그만 광장이나 1층 실내의 한 공간을 리뉴얼을 해서 무대 공간으로 만들어 지역주민들의 참여를 끌어내는 것이다. 분기별이나 한 달에 한 번 정도 길거리 노래방 같은 것을 연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노래하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고 또 좋아하는 노래 한 곡 정도는 잘 부른다.


그저 길거리 노래방을 할 때마다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상품을 걸고 등수를 매겨서 등수에 오른 사람들을 다시 연말에 모아서 크게 판을 벌이는 것이다. 그래서 3등까지 오른 주민은 마트가 속해 있는 계열 차원에서 전문적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밀어주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온라인 속에서 모든 것이 가능한 사람들을 오프라인으로 끌어내는 것이다. 실컷 떠들고 나니 역시 엉뚱한 소리였다.


마트는 나의 문화권 안에서, 내가 움직이는 활동반경 내에서 아주 즐거운 곳이었는데 한 번 꺾여 버린 재미는 다시 들지 않는다. 요즘은 급하게 구입할 것이 있어서 정말 급하게 들러 급하게 구입해서 나오는 곳이 되었다 [사실 이 부분도 급하게 무엇을 구입해야 하는 물건은 대형마트보다는 다이소에 가면 다 있어서]. 모든 것은 그렇게 변하는가 싶다. 하지만 변함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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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국밥은, 특히 전통시장 안에 있는 오래된 국밥집의 돼지국밥은 혼자 먹어야 맛있다. 입구의 가마솥이 이른 오전부터 펄펄 끓기 시작하고 꼬릿 한 돼지국밥의 냄새가 오전의 공기를 물들이는데 그 냄새를 맡는 게 아주 좋다. 좀 이상한데 맡으면 기분 좋은 냄새가 있다. 전통 시장 돼지국밥집의 꼬릿한 냄새가 그렇고, 동네 세탁소에서 나는 냄새가 그렇다. 겨울에 세탁소 앞을 지나가면 밖으로 비죽 비어져 나온 호스에 빨래를 다리고 말리는 그런 냄새가 나는데 좋다.


전통시장 돼지국밥집에는 대체로 어르신들이 늘 앉아서 자리를 채우고 있다. 오전부터 벌써 막걸리로 간과 위를 촉촉하게 적셔서 코끝이 발갛게 된 어르신들도 보인다. 점심이면 본격적으로 시장통의 장사꾼들이 배를 채우기 위해 국밥집에 들러 후루룩 빨리 한 그릇 먹고 간다. 저녁이 되면 평소보다 늦게 일을 마친 아버지들이 홀로 국밥집에 앉아서 머리를 숙여 소주와 함께 국밥을 먹는다.


그들은 전부 먹는 방법이 다르다. 시장 통의 국밥집은 대부분 토렴을 해서 나오기 때문에 따로 밥을 먹으려면 따로국밥을 주문해야 하는데 모두가 그냥 국밥을 주문해서 먹는다. 후추를 많이 뿌리는 사람, 부추를 아주 많이 넣는 사람, 깍두기 국물을 같이 넣는 사람, 깍두기까지 국밥에 넣어서 먹는 사람, 밥 말고 면 사리만 넣어서 만든 국밥을 주문하는 사람 등 내장을 많이 넣는 사람, 머릿고기를 많이 넣는 사람 각양각색이다.


프랜차이즈 국밥집이나 24시간 국밥집에는 여자 혼자서도 국밥을 먹기도 하지만 시장통의 국밥집에는 보통 남자들뿐이다. 요즘 들어 혼술 하는 여자 유튜버들이 엄청 늘어나서 전통시장을 다니며 국밥을 홀로 먹으며 소주를 같이 마시는 여성유튜버들이 많지만 보통은 전통 시장의 국밥집에는 남자들, 그것도 아버님들이 손님들이다. 주인장도 보통 할머니들이다. 음식을 다듬고 나르고 하는 일이 보통 노동이 아니라서 음식점을 오랫동안 하는 사람은 남자들이 많은데 우리나라 전통시장의 돼지국밥집은 할머니들이 주인이다. 사장님인 것이다. 그들은 오랫동안 해 온 세월의 흔적을 손가락 끝에 훈장처럼 달고 있는 여성들이다.


전통시장의 돼지국밥집의 국물은 돼지머리로 국물을 우려내는 경우가 많다. 가격이 뼈나, 살코기보다 저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맛에서 밀리냐 하면은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 꼬릿한 특유의 잡내가 좀 나는 것이 마음에 들고, 토렴이 마음에 들고, 무엇보다 맛이 마음에 든다. 허름한 분위기, 정돈되지 않은 테이블, 일관성 없는 티브이 소리와 맞은편 과일가게에서 틀어 놓은 라디오의 소리가 뒤섞여서 소음처럼 들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정겹기 때문이다. 30년이 넘은 솥이 아직도 매일 육수를 우려낸다는 것이 놀랍다.


정구지를 잔뜩 넣고 후후 불어먹다 보면 깔끔한 맛에서는 벗어났지만 오랜 시간을 이겨낸 맛은 분명하게 있다. 묵직하고 진한 맛이 있다. 고기는 부들부들 야들야들하며 소주 한 잔은 어제까지의 시름을 잊게 만든다. 긴 흐름을 견딘 단단한 맛이 존재한다. 돼지국밥은 삼계탕처럼 어디나 비슷한 모습이지만 나만의 색이 있다고 자신하는 맛이 있다. 시장 상인들의 고단과 허기를 달래주는 맛. 남자의 무게를 이겨내는 맛이다.


‘야성’이라는 말과 가장 어울리는 음식이 돼지국밥이 아닐까. 야성이 넘치는 사람들이 돼지국밥을 먹는다. 그리하여 돼지국밥에는 야성이 넘쳐야 한다. 혼자 앉아 등을 구부리고 후루룩 돼지국밥을 먹다 보면 먹는 이의 등에도 야성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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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2-09-23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돼지 국밥은 깔끔한 프렌차이즈 형태의 식당보다는 어수선하고 꼬릿꼬릿한 냄새가 베어있을 것 같은 나무 탁자에서 먹어야 제 맛이 날 듯 합니다.

교관 2022-09-24 11:51   좋아요 0 | URL
그래서 혼자가야해요 ㅋㅋ 여친이나 아내와 함께는 못 가죠ㅋ 취향이니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