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지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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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몹시 부는 바다를 보면 불꽃놀이가 꺼지듯 여름은 그렇게 불쑥 끝났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바람은 먼지와 바다의 미립자를 몰고 와서 사람들의 폐를 더럽히려고 합니다. 강하고 습한 바람 때문에 추억까지 바래지려고 합니다. 부예진 추억에는 깨진 유리에 베인 상처의 흔적이 남아 있어서 저는, 냉철하게 변해버린 가슴을 손으로 한 번 만져보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은 손으로 만져지는 상처가 너무 고통스러워 나도 모르게 울고 말았습니다. 당신에게 이런 말을 하기에는 창피합니다. 계절을 여러 번 지나 마주한 당신의 눈동자를 봤을 때, 그때를 잊지 못합니다. 그때 끊겨버린 시간을 그대로 둬야 하는 순간을 동시에 알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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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의 오늘은 정말 계절의 경계가 보이는 날입니다. 바닷가에는 바람이 있어 일반적이지 않는 바다가 됩니다. 특수한 바다가 되는 것입니다. 멀리서 보면 멋지지만 막상 가까이 다가가면 위험한, 그렇습니다.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니 당신이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상대방에게 준 상처보다 자신이 받은 상처의 총량이 훨씬 크고, 많다고 느끼기에 나는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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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떤 일을 당했을 때 내 내부의 자동 잠금장치는 스위치를 내려 방호벽을 만들어 버려 그 안쪽으로는 안전하게 됩니다. 어떤 의미로는 진공관의 형태로 만들어 놓고 인큐베이터 속의 아기처럼 저는 그 안으로 들어가 몸을 말고 외부의 모든 것을 차단합니다. 방호벽 밖에서는 불꽃놀이처럼 만개와 무화가 반복되지만 나는 진공에 몸을 감싸인 채, 그저 일별할 뿐입니다. 잊고 싶은 일이 있을 때 그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간다고 믿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일이라는 건 이미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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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사실이고 진실이지만 진실을 마주한다는 건 겁이 나기 때문에 내 내부의 어떤 장치는 작동하는 빈도가 더 늘어나고 방호벽은 더 거대해집니다. 적이라는 건 다름 아닌 내 내부의 방호벽을 만들어버린 나였던 것입니다. 언젠가 당신에게 제대로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생각처럼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신선한 채소와 과일 많이 드시고 잘 지내십시오. 또 편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