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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는 No Surprises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김해경 선생을 라바짜 커피 전문점으로 안내했다. 이곳은 커피가 맛있습니다.라는 말에 김해경 선생은 알았다며 핼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에스프레소에 레몬을 띄우시는 거 맞으시죠?라고 나는 김해경 선생에게 물었다. 그렇다고 김해경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물이 탄 커피를 마시고 김해경 선생은 레몬이 들어간 에스프레소를 단숨에 한잔 마셨다. 라디오 헤드의 노래를 가만히 듣던 김해경 선생은 고개를 미세하게 살짝 움직였다. 김해경 선생은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역시 커피에 대해서 학식이 높다고 생각이 들 때 우리가 앉은 자리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왔다.

내가 먼저 하루키를 알아보고 이쪽으로 안내했다. 멜빵을 하고 체크무늬의 넥타이를 하고 한껏 멋을 냈지만 핼쑥한 김해경 선생에게 하루키는 손을 내밀었다. 전 무라카미 하루키라고 합니다. 잡은 김해경 선생의 손이 유약했고 아주 작았다.

김해경이라 하오. 모두들 나를 ‘이상’이라 부르오.

하루키는 자신의 가방에서 두부를 꺼내서 이상에게 권했다.

커피와 잘 어울릴 겁니다. 우레시노의 두부라서 꽤 부드럽고 입안에서 골고루 퍼집니다. 간장을 찍어 먹을 필요도 없습니다.

이상은 고개를 끄덕하며 두부를 한 젓가락 떠먹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살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하루키 씨가 나를 보자고 했소?라고 쉰 목소리의 이상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어렵게 부탁을 했습니다, 저는 소설을 씁니다, 이제 얼마나 더 쓸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만, 그래서 김해경 선생에게 부탁할 것이 있어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상은 자세를 좀 더 하루키 쪽으로 당겼다. 김해경 선생의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를 제 소설에 좀 쓰고 싶습니다. 음, 하는 쇳소리가 이상의 다문 입에서 새어 나왔다. 전 또스또에쁘스끼를 좋아하오. 그 사람의 글을 아주 많이 읽었다오.라고 이상이 말했다.

저도 악령 정도는 아주 좋아합니다. 도스토옙스키가 사회주의자여서 사형선고까지 받고 시베리아 유형 동안 그 자신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악령의 근본은 니힐리즘에서 시작되었다고 봅니다.라고 하루키가 천천히 말했다.

자멸적 궤변과 괴변이 니꼴라이 쁘레볼로또비치 스따브로낀에 있었는데 말이오. 리자, 리자는?라고 이상이 말했다. 리자가 말했습니다. 있었던 일이 있었지 뭐, 그건 가혹하다, 너무도 가혹하다.라고 하루키가 말했다.

침묵이 흘렀다. 질척이고 무거운 침묵이었다. 그 사이를 라디오 헤드의 ‘노 스프라이즈’가 흘렀다. 하루키 씨? 나는 이미 죽었소,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시오?라고 이상이 물었다. 하루키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턱을 한 번 만진 다음 이상에게 겸손하게 대답했다.

모든 격렬한 싸움은 상상력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싸움터입니다. 우리는 거기서 이기고, 거기서 패배합니다. 물론 우리는 누구나 유한한 존재고 결국은 패배합니다. 하지만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간파한 것처럼 우리의 인생은 어떻게 이기느냐, 하는 이기는 방식보다 어떻게 지느냐 하는 패배하는 방식에 따라 최종적인 가치가 정해집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 못지않게 어떻게 죽느냐에 따라 인생의 가치가 결정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은 하루키의 말을 듣고 마른 몸을 의자의 등받이에 기대고 자신 앞에 앉아있는 일본의 한 소설가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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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게 비빔밥

그로서리 쇼핑을 위해서 오밤중에 자주 마트에 들른다. 나는 카트 기를 밀고 다니지 않는다. 노란 장바구니를 옆에 들고 손으로 필요한 물품이나 식료품을 집어서 쓱 담는다.

요즘은 멍게에 푹 빠져있기 때문에 해산물 코너에서 많이 서성거린다. 멍게가 아주 싱싱하면 좋겠지만 난 아주 싱싱한 멍게와 마트의 진열장에서 절 좀 데려가 주세요, 라며 하루 동안 싱싱함과는 거리가 먼, 널브러져 있는 멍게의 맛의 차이를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멍게가 보이면 따져보지 않고 노란 장바구니 속으로 집어넣는다. 멍게는 두 팩 정도 사는 게 적당하다. 손질이 되어있기 때문에 집으로 가지고 와서 뜯어서 그냥 먹으면 된다. 하지만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먹는다. 그러면 맛이 더 좋다. 싱싱하지 않더라도 멍게를 먹으면 입 안에 가득 감도는 그 멍게 향은 짙고 강하고 참 좋다.

멍게를 씹는 맛은 평소에 잘 느끼지 못하는 식감과 맛이기에 무척 반갑다. 게다가 그렇게 돈이 듬뿍 드는 음식도 아니기에 멍게에 맛을 들인 나 자신이 마음에 든다. 정신이 쏙 나가버린 사람처럼 들리겠지만 말이다.

나는 멍게를 초장에 찍어 먹지 않는다. 초장은 멍게 맛에 방해만 될 뿐이다. 그냥 그대로 입안에 넣어서 오물오물거리면서 씹어 먹는다. 그리고 한 팩은 멍게비빔밥을 해 먹는다. 제철인 채소와 함께 멍게비빔밥을 해 먹는 것이다.

미나리와 부추를 씻어서 양념간장을 부어놓고 현미밥에 부추와 미나리를 잔뜩 얹는다. 밥은 따뜻하면 좋겠지만 식은 밥도 괜찮다. 멍게를 부추와 현미밥에 부은 다음 가위로 조금씩 자른다. 미나리가 있으면 좋다. 당근이나 여타 채소가 있으면 넣어도 무방하다. 참기름이나 양념장은 전혀 필요 없다. 그런 것은 멍게 향과 맛을 헤칠 뿐이다.

그리고 쓱싹쓱싹 비비면 밥과 부추 사이에 멍게의 노오란 향과 맛이 배고 스며들어 입안에 넣어서 먹으면 정말이지 신날 수밖에 없다. 통영의 바다까지는 아니지만 마트의 수족관이 입안에 들어온 기분이다. 그렇게 해서 멍게를 자주 사 먹는 편인데 마트의 해산물 코너를 어슬렁거리다가 비닐 속에서 꼬물대는 개불을 발견한다.

개불.
이름마저도 ‘개불‘스럽다. 눈으로 들어오는 모양은 정말이지 초현실 영화 속의 진액을 흘리며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모습처럼 보인다. 촉수를 잔뜩 숨겨둔 곧 공포로 바뀌는 해저 괴물의 모습 그대로다. 개불이야 말로 지구 상에서 존재하는 생물 중에서 징그럽기는 최고일지도 모른다. 눈도, 손도, 발도, 귀도, 콧구멍도 없다. 정말이지 기이하게 생겨먹은 생물체이다.

 하짐만 멍게만큼이나 맛이 좋은 해산물이다. 인간의 입장에서 봤을 때 엉망진창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런 맛이 난다는 게 더욱 기이하기만 하다. 잘게 썰어서 기름장에 찍어서 입에 넣어서 야무지게 씹어 먹으면 그렇게 고소할 수 없다.

 어느 날 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여느 때처럼 개불이 있는 곳에서 이 개불 저 개불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수조 밖으로 나온 개불이 점점 불어나서 그 몸뚱이가 커져왔다. 개불은 그 덩치가 사람만큼이나 커져 버렸다. 곧 꿈틀꿈틀 거리 더니 지렁이처럼 앞으로 나아갔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옆에서 멍게가 노오란 물을 뿜어내며 진돗개만큼 커져 있다.

맙소사.
지렁이처럼 커져 버린 개불과 강아지만큼 불어난 멍게는 오즈의 마법사 티브이 버전에 나오는 땅을 파며 모든 걸 집어삼키던 그 거대한 왕꿈틀이처럼 보였다. 센과 치히로의 가오나시처럼 마트 안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우걱, 우걱.
거침없었다. 마트 안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먹는 속도가 무섭도록 빨랐다. 개불과 멍게는 서로 다른 색을 지니고 같은 것들을 왕창 먹어 치웠다. 진열되어있는 모든 식품을 먹어 삼켰다. 그리고 사람도 집어 먹었다. 나는 생각했다. 사람들은 저렇게 느릿느릿한 개불과 멍게가 다가오는데도 왜 재빠르게 도망가지 않지? 그러면서 나는 사람들이 개불과 멍게에게 서서히, 머리부터 천천히 개불과 멍게의 입으로 사라지는 광경을 지켜봤다. 폰으로 사진도 찍었다. 사람들은 도망갈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약간 놀란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가 개불과 멍게의 한 지점에 뚫린 큰 입으로 들어가 버렸다.

개불과 멍게는 엉금엉금 천천히 영겁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듯, 그런 느낌으로 이쪽으로 다가왔다. 나를 집어삼키려고 했다. 흥! 어림없지. 하는 생각으로 약간씩 거리를 두면서 개불과 멍게의 사진을 찍으며 대치했다. 찰칵찰칵.

개불의 얼굴은, 얼굴은 설명하기 어렵다.
멍게의 얼굴도 설명하기 애매하다.
그저 부드럽고 폭신하고 축축한 노랗고 붉은 생명체가 다가오는 것이다. 개불과 멍게의 얼굴을 생각하는 동안 문득 개불과 멍게를 먹기만 했지 개불의 몸속에 들어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생각이 들어 버리고 나니 멈출 수가 없었다. 격렬하게 개불과 멍게의 몸속이 궁금했다. 그 속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갈증처럼 타올랐다. 개불의 몸속에 안착되어있는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다. 곧 개불과 멍게가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엉금엉금.
그때 마트에서 앙리꼬 마시아스의 ‘녹슨 총’이 흘러나왔다.

저는 태양이 바다를 불태우는 것을 보았어요.
화산이 땅을 갈라지게 하는 것도요.
사막에서 사라진 거대한 묘지와 물방울이 돌에 구멍을 내는 것도 보았어요.
저는 별들이 하늘을 성당으로 바꾸는 밤들을 겪었어요.
세월이 흐름에 따라 피해를 면한 무너진 돌담에서 자주 간청을 했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래 전이 돌연 생각이 났다. 앙리꼬 마시아스의 녹슨 총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던 오래전. 그때의 그 커피 향과 함께 우리가 앙리꼬마샤스라고 불렀던 앙리꼬 마시아스의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부르는 노래가 나왔다. 아주 좋았다. 좋을 수밖에 없었다.

녹슨 총보다 멋진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어느 날인가 한 병사가 그의 집이 있는 마을로 달려가기 위해
어두운 수풀 속 어디엔가 놔두고 왔던 녹슨 총보다도 말이에요.
녹슨 총보다 멋진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북을 치는 이 세상에서
누가 사랑보다 전쟁을 더 좋아할까요.
녹슨 총보다 멋진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리고 그것은 이젠 결코, 소용이 없을 거예요, 결코 말이에요.

당시에 우리는 노래에 빠져들었다. 후에 그의 얼굴을 본 적이 있다 개그 프로그램의 개그맨을 닮았다. 외국 사람들에게서 받은 인상은 젊었을 적에는 죄다 촌스럽지만 늙으면 너무나 멋지다는 것이다. 앙리꼬 마시아스뿐만 아니라 숀 코네리도, 조지 클루니도 알 파치노도 잭 니콜슨도 늙어 버린 후가 훨씬 더 멋있고 정력도 더 강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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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텔라.     



카스텔라를 처음 맛본 그날. 그날이 확실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대단한 일이었다고 그는 기억했다. 그 촉촉한 감촉이라든가 입천장에 달라붙는 느낌이라든가. 왠지 처음에는 텁텁해서 우유랑 궁합이 잘 맞다, 라든가.     


이전의 빵에서 봐왔던 모양에서 벗어난 사각형의 모양에 어린 그는 마음을 몽땅 빼앗겨버렸다. 아아, 그동안 카스텔라를 모르고 잘도 어린 삶을 헤쳐 왔는지 모를 정도로.     


정확하게 처음 맛봤을 때 루벤스의 그림이 머리 위에 떠오르고 어린 그의 작은 혼이 뭉크의 그림처럼 빠져나갔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지만 그 못지않은 경험이었다.     


카스텔라라는 이름도 그때 처음 들어서 생소했지만 어느샌가 입으로 카스텔라, 카스텔라,라고 되네 이다 보면 어느 순간 친구처럼 가까이 와 있었다. 이후로 집 앞 구멍가게에 가면 카스텔라를 슬쩍 집어 들고 동전을 내밀고 볕이 드는 따뜻한 대문 밑에 앉아서 그것을 제대로 뜯어먹곤 했다.     


카스텔라는 어쩐지 겨울에 많이 먹었다. 따뜻한 곳에 앉아서 뜯어서 먹고 있노라면 추운 겨울이라도 왠지 따뜻했다. 집에서 먹는다면 우유를 따뜻하게 난로 위에 데워서 같이 먹었다. 그러면 카스텔라는 ‘겨울은 말이야, 카스텔라와 함께 보낸다면 따뜻할 거야’ 하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카스텔라는 기억 속에서 점점 멀어지듯이 곁에서 사라졌다. 지금은 손만 뻗으면 카스텔라보다 열 배는 맛있고 백배는 예쁜 빵들이 세계를 점령했다. 이후로 겨울은 그렇게 따뜻하지 않았다. 덥덥 하거나 춥거나. 그래서 겨울은 더 이상 기다리는 계절이 아니게 되었다.     


겨울을 싫어한다고 해서 마음으로 밀어낸다고 해서 뒤늦게 온다든가, 오지 않거나 하지 않는다. 겨울은 낙엽 지고 비가 오고 나면 어김없이 입에서 입김이 후후 나오면서 옆에 와 있다.     


크리스마스가 20여 일 앞으로 다가온 겨울의 밤은 어느 곳이나 반짝반짝 전구와 트리가 빛을 발한다. 언제부터인지 그 반짝거리는 불빛들 앞을 지나칠 때면 빛나는 전구들은 조금은 무서운 얼굴을 하고 ‘넌 행복하냐? 그래서 넌 만족하냐? 네가 있는 곳은 어디냐?’라고 자꾸 물어온다. 그 대면에 껄끄러워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반짝이는 전구를 피해서 거리를 다녔다.   

  

그에게도 카스텔라 같은 여자가 있었다. 부드럽고 가만히 잠을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부서져 없어져버릴 것 같은 여자. 그녀는 느릿한 그를 조금은 달리게 만들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언젠가 그는 그녀의 긴 속눈썹을 본 적이 있다. 달빛이 긴 속눈썹에 내려앉았을 때를 그는 기억한다. 아름다운 모습.     


세계는 묘해서 눈앞에 있는 것을 손을 뻗어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는 어서 빨리 그녀에게서 졸업하고 싶었다. 카스텔라와 같은 그녀는 그의 곁에서 멀리 떠나가 버렸다.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 것이다. 예고도 없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겨울비에 카스텔라가 구멍이 나고 씻겨 비 비린내와 함께 없어졌다.  

   

그녀에게서 졸업을 해버리고 나면 그동안 그녀를 좋아하고 너무 좋아해서 미워했던 그 마음까지 모두 거짓말이 될까 봐 그는 두려웠다. 그는 생각한다. 요즘은 카스텔라가 어디에 있을까. 다시 카스텔라를 손에 움켜쥘 수 있을까. 입으로 다시 카스텔라, 카스텔라라고 한 없이 불러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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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뚫린 공백은 나도 알 수 없다. 길을 잃어버려 뱅뱅 맴도는 느낌일 뿐이다. 이 공허하고 손에 닿을 것 같은데 끝에 도달할 수 없는 이 기분을 어떻게 할까.


나는 10년 동안 무엇을 위해 살아온 것일까.


나는 누구이며 누군가의 엄마였고 어떤 남자의 아내였다.


병신 같은 남편이 듣던 헤드 셋이 아들을 건너 내가 결국 듣고 있다.


앞이 보였던 내 인생을 깡그리 망가트리고 깨버린 내 삶에 들어온 남자들을 증오한다.


나는 그들을 사랑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는다.


그 남자들은 나에게 먼지만큼도 행복을 주지 않았다.


타카시를 가진 것을 알고도 마약에 빠져 있던 남편도, 남편의 모습을 그대로 물려받은 타카시도 어쩌면 내가 원하는 바대로 신이 있다면 신이 데리고 가버렸다.


낡은 티브이처럼 죽은 후에도 하얀빛이 화면 위로 깜빡깜빡 헤매다가, 어느 날 갑자기 뚝 끊어지는 경우처럼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좋은 것만은 아니다.


성실하게 설명하려고 하면 할수록 불성실한 먼지가 안개처럼 가득 껴서 주변을 떠돈다.


남편과 타카시를 떠올리면 그렇다. 불성실한 공기다.


입구는 있지만 출구는 없는 이미 들어와 버린 내 인생의 낙인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내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트린 그 남자들이 듣던 헤드 셋을 끼고 음악을 듣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는 새 그들이 내게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다.


욕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나도 모르는 새.


그리고 눈물이 한 방울 흘렀다.


소리 내어 울고 싶지만 나는, 나는 바보라서...


다리 한쪽이 잘린 일본인 서퍼를 본 순간 나는 내 마음속의 공백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나 자신이 먼 옛날에 죽어 풍화되어 바짝 말라버린 거대한 생물의 미궁과도 같은 체내를 방황하고 있는 듯한 느낌에서 나는 시간의 구멍을 빠져나와 그 한가운데에 쑥 빠져버렸지만 타카시가 듣던 음악을 듣는 동안 나는 다리 한쪽이 없는 서퍼가 타카시라는 확신이 들었다.


타카시는,


내 아들은 10년 동안 나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당신의 소중한 아들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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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발밑으로 패치카의 따뜻한 훈기가 흐르고 로비에 설치해 놓은 트리와 틀어놓은 겨울 음악은 아무런 걱정도 없게 만든다.  

    

안녕하세요, 만두 좀 드세요.   

   

예,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만두 일 인분을 건네받고 일회용 용기뚜껑을 여니 뜨거운 연기가 엑토플라즘처럼 오른다. 연기 속에는 만두피와 만두 속 재료의 냄새가 요만큼의 공기를 잠식한다.      


나는 만두에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 3학년이었던 10살에 겨울방학이 오기 전 학교에서 집으로 오니 어머니가 도투락 만두를 쪄 주었다. 그동안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가면 만두를 쪄 내는 곳에 서서 찜통에서 연기를 피어 올리며 달달하고 맛있는 냄새 앞에서 무너지는 나를 끌고 가며 미안해하는 얼굴을 한 어머니는 어느 날 호기롭게 도투락 만두를 쪄 주었다.      


가장 큰 통으로, 세일을 하는 바람에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가격으로 구입을 한 것이다. 집에 있는 찜통으로 가득 담아 두 번이나 쪘다. 밥상위에 만두가 마치 2단 케이크처럼 쌓여 있었다. 만두가 그동안 먹고 싶었던 나와 만두를 먹이고 싶었던 어머니는 만두를 두 찜이나 쪄 버리는 것으로 그 모든 것을 묵인했다.      


만두는 맛있었다. 밥도 필요 없고 김치도 필요 없었다. 만두를 엷은 간장에 찍어서 먹고 또 먹고 계속 먹었다. 하지만 제대로 씹지 않고 먹었던지 체하고 말았다.   

   

보통 체기가 오면 하루 정도 고생을 하고 다음 날이면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동네를 뛰어 다녔는데 만두를 먹고 토사를 하기 시작해서 일주일동안 머리가 어지럽고 먹기만 하면 토했다.     

 

토하면 만두의 물이 계속 올라오는 것 같았고 코끝에 만두의 냄새가 미미하게 따라다녔다. 이후로 만두는 잘 쳐다보지 않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만두가 앞에 있으면 먹게 되지만 일부러 만두를 찾아서 먹지는 않았다.  

    

안녕하세요, 하며 내민 만두는 시장 통에서 파는 만두로 샤오룽바오를 닮은 만두였다.     

 

만두를 내민 여자는 참 가난하다. 어머니와 함께 리어카에서 떡볶이를 팔고 있다. 대부분의 떡볶이를 파는 곳에서 순대를 같이 팔지만 여자의 집은 떡볶이만 판다.      


밀떡으로 만든 떡볶이로 큼지막한 파를 듬성듬성 썰어 넣고 어묵도 썰어 넣고 멸치를 우려 낸 물을 넣어서 잘 저어주기 때문에 맛은 그런대로 괜찮다.    

  

여자는 여자의 어머니보다 일찍 나온다. 몇 시 부터 시작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몹시 이른 아침에 장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주위 상가가 모두 문을 닫고 컴컴해지는 것을 확인이라도 한 후 집으로 간다.    

  

김승옥 소설 다산성에 나오는 주인공의 여자처럼 그 여자도 천사다. 여자는 화내는 법이 없다. 저 상황이면 분명히 화가 날 텐데 하는 순간에는 여자는 화를 내지 않는다.      


저녁에 술이 취한 남자 둘이 여자에게 떡볶이를 만원어치나 먹고 돈을 내지 못하겠다며 시비를 걸었다.    

  

여자의 어머니는 그날따라 집으로 일찍 들어가고 여자는 혼자 남아서 그 남자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남자 둘은 여자에게 점점 부아가 치미는 모양이었다.      


화가 나야 할 상황에서도 화를 내지 않는 여자에게 남자 둘은 술의 힘을 빌려 해코지를 했다. 보다 못한 나는 내려가서 남자 둘을 세워놓고 경찰을 불렀다.     

 

떡볶이를 이렇게 맛없게 만들어 놓고 돈을 만원이나 받으려고 하잖아요. 남자 둘은 경찰 앞에서 고분고분하게 말했다.      


여자는 그때 고개를 숙이고 실의에 빠진 표정과 절망스러운 어깨의 모습을 했다. 여자는 천사의 모습이었는데 그 작은 어깨에서 새처럼 하얀 날개가 솟아나서 인간들에게 행복을 주는 천사가 아니라 물잠자리 날개처럼 잘못하면 잘려나갈 것 같은 위태로운 날개를 달고 있는 천사였다.      


만두 좀 드세요. 라며 여자가 내면 만두는 천사의 식량이었다.    

  

천사는 다음 날 어머니와 함께 임대라는 딱지를 붙여놓고 위태로운 날갯짓을 하며 사라졌다. 조금 식은 만두는 언제나 소화가 안 된다. 훼스탈을 두 알 먹고 물을 마시고 남은 만두를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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