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다. 지독한 공허. 트래비스는 전쟁 참전 후 공허가 몸속으로, 머릿속으로 들어와 허무를 채우고 불면을 쌓아 놓는다. 이 공허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크고 깊어져 몇 날 며칠을 잠들지 못한다.

영화는 트래비스가 잠을 못 자는 걸 보여주지 않지만 기가 막히게 불면으로 트래비스가 점점 변해가는 걸 보여준다.

트래비스는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 깊고 큰 공허는 저기 보이는 밤의 쓰레기 인간들도 있을 텐데 왜 나만 이렇게 힘이 들까.

공허는 많은 것들을 불러온다. 용기를 불러오기도 하고, 사랑을 불러오기도 하고, 망상을, 객기를 그리고 광기와 정의를 불러온다.

공허는 외로움을 불러온다. 상실과 결락이 동시에 비가 되어 택시 차창에 부딪힌다. 그럴 때 흐르는 재즈만이 트래비스의 씁쓸한 친구가 되어 준다.

공허가 불러온 사회에 대한 울분은 아이리스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 것으로 집중된다. 트래비스는 이제 공허가 전해주는 이 광기가 혈관을 타고 도는 게 느껴진다. 아이리스를 위해 방아쇠를 당긴다.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다가온 베시를 무시하는 트래비스를 보면서 쓸쓸하고 고독한 소외된 자들을 떠올렸다. 76년작이고 트래비스는 영화 속에서 26살이다.

열패와 낙오 그리고 외로움과 세상 그 너머 무엇인가에 대한 원망과, 생각과 현실의 괴리로 힘들어하는 트래비스가 이해된다면 내 처지가 트래비스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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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괴괴한데 아름답고, 딱해 보이는데 자유로워 보인다. 상상 속의 동물, 인터넷 세계에서나 가능한 개닭, 개돼지, 개오리를 탄생시킨 가여운 것들이여.

프랑켄슈타인의 여성 버전. 이 영화의 장르를 말하라면 엠마 스톤이라 하겠다. 엠마 스톤이 엠마 스톤한 영화. 벨라가 벨라가 되는 이야기.

만삭의 몸으로 죽어버린 벨라는 벨라의 아이의 뇌를 벨라에게 이식시킴으로 다시 태어난 벨라가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 벨라식 사랑은 직설적이고 노골적이며 우아하지 않고 추잡하고 드러내는 사랑이지만 벨라의 사랑에는 거짓은 없다.

벨라가 가여운 것일까 벨라를 둘러싼 사람들이 가여운 것들일까.

사랑을 찾아 그렇게 벨라의 모험이 시작되는데, 빠져드는 색감과 황홀한 미장센. 초현실의 감각으로 그려 놓은 미술품을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모험은 예측이 불가능하고 사람들을 알아가면서 벨라는 벨라만의 특별한 성장을 한다. 인간을 알아간다. 벨라는 벨라 자신을 알아간다. 흑백에서 서서히 컬러를 찾아간다.

벨라의 눈을 통해서 보는 세상을 우리도 같이 느낀다. 이상주의는 무너지기 쉽지만 현실주의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벨라는 알아간다. 그게 세상이다. 종교의 거짓에 넘어가지 마라. 세상은 치욕과 공포, 슬픔이 있는 곳이다.

유아기처럼 의성어 의태어나 뱉어내던 벨라가 후반에는 성장하여 대사가 몹시 철학적이 된다. 몹시 야하며 아주 잔인한 장면이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도발로 다가온 ‘가여운 것들’을 너무 재미있게 봤다. 랍스터를 볼 때보다 더 홀딱 빠져서 보게 된 영화.

근래에 인간을 이토록 잘 드러낸 영화가 있었나 할 정도로 재미있게 본 ‘가여운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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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함께 하고픈데 친구의 마음이 내 마음과 다르면 이상하지만 질투와 미움, 원망이 먼저 든다. 그러다 보면 미묘한 감정이 서로 어긋나서 감정을 다르게 표현하고 서로 자기 힘든 것을 알아달라고 다투다 격하게 된다.

왜 다른 사람하고 있을 때는 신나고 즐거우면서 어째서 나와 있을 땐 늘 힘들어 보이는지. 그런 모습조차 너무 싫어. 그게 네가 너무 좋아서 너무 싫은 거야. 조금만 좋아하면 되는데 너무 좋아하니까 다른 아이와 있을 때 더 즐거우면 나는 짜증이 난단 말이야.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은 너를 향해 있는데 너는 왜 다른 사람과 있을 때 그렇게 행복해 보이냐고.

세미에게 하연은 친구 그 이상의 관계이자 설명이 불가능한 관계다. 아니 서로에게 그랬다. 여고생들은 친구가 세상에서 나보다 더 지켜주고픈 존재니까. 그런 친구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고 돌아오지 못했다. 나의 모든 날들이 오늘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되었다.

뿌연 봄날의 솜사탕 같은 햇살은 눈으로는 잘 보이는데 만지려고 하면 만질 수 없는 것처럼 친구는 그런 햇살이 되었다. 너무 부드러워 닿으면 부서지는.

한 발 떨어져 생각하면 너무 아무 일도 아닌데 그때는 왜 그렇게 그 티끌 같은 일에 안간힘을 쓰고 덤비고 달려들고 울고불고했을까. 꿈까지 같이 꿀 수 있는 나의 사랑 나의 친구. 어쩌다가 그런 친구에게 나만 알아달라고 그랬던 걸까.

누군가는 마치 원래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기도 한다. 그 누군가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게 시간이 지나도 흉터로 남아 있는 거지.

우리가 같이 놀던 너의 방, 우리 아지트 카페, 동네 놀이터 이 모든 게 그대로인데 네가 없으니 그저 부드러운 카스텔라 같아서 건드리면 그대로 부드럽게 녹아 없어질 것 같아.

하나와 엘리스가 떠오르는 영상미, 사실은 은유와 메타포로 곳곳에 숨겨 놨고, 연기도 잘 하지만 감독으로도 손색이 없는 조현철 감독의 작품으로 [다음 소희]의 김시은과 박혜수는 정말 여고생 같다. 찐따로 카메오 출연한 박정민은 정말 찐따 같았던, 보고 나면 눈앞이 영화 영상 같아 보이는 영화 ‘너와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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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사 마녀 배달부 키키 누가 그렇게 깠어? ㅋㅋ 나는 재미있게 봤구만. 영화는 원작과는 내용이 좀 다르다. 각색을 해서 원작과 다른 재미가 있다. 원작은 이렇게 흘러가지만 영화는 저렇게 흘러간다. 감독도 원작을 그대로 따라 하면 끝이라는 걸 알기에 원작과는 다른 내용 전개다.

사람들은 빗자루 타고 하늘만 나는 마법을 할 줄 모르는 마녀인 키키를 우리와 다른, 저주를 퍼붓는 마녀로 몰이를 한다. 키키는 그렇지 않은데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는다. 사람들은 전부 키키를 의심하고 멀리하고 따돌리려고 한다.

인간 사회가 그렇다는 걸 키키는 뼈저리게 느낀다. 키키가 배달한 모든 물건이 저주에 걸렸다며 빵집 앞에 다시 돌아온다. 그때 키키는 상처를 크게 받아 마법이 사라진다. 빗자루도 뽀사지고. 어렵게 배달을 했지만 배달비를 건네주는 게 아니라 땅바닥에 내팽개치듯 버리는 것에 키키는 자존감 상실.

하필 마법이 없을 때 톰보가 비행 자전거로 하늘을 나는데 바람이 역풍으로 불어서 위험하다. 키키는 날아갈 수 없어서 추락한 곳으로 달려간다. 톰보는 상처를 입고 쓰러져있을 때 키키는 엄마의 마법 약을 발라주고 가버린다.

마법도 잃어버리고 사람들에게 마녀사냥을 당한 키키는 어떻게 될까. 영화에는 우리가 잘 아는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미야자와 리에, 요시다 요, 오노 마치코 등.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 성장하는 이야기다. 애착 인형과 대화를 하던 아이가 어느 날 애착 인형을 두고 친구와 사귀게 된다. 우리는 그렇게 성장을 한다. 그 과정이 누군가에게 혹독할지도 모른다.

키키 역시 지지와 대화를 하지 못하게 되지만 대신 소중한 친구를 얻는다. 대화 상대가 지지에서 친구로 바뀐다. 그리고 사랑을 알아간다. 우리 모두 그런 과정을 거쳐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 그러나 지금이 끝은 아니기에 보이지 않는 앞을 더 달려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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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조금이라도 위로하는 척, 날 아는 척하면 곧바로 날이 서고, 그런 자신을 미워하지만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고 표출해야 하는지 어렵기만 하다. 남편이 남긴 부재는 무형태로 남아서 그 존재를 더욱 드러내고 리는 그럴 때마다 사람들을 피하고 싶어서 더 파티를 열고 자신을 다그친다.

동생 쥴스는 깊은 알콜 중독으로 낙오자 같은 생활을 하다가 재활을 통해 겨우 엄마의 집으로 들어와 엄마의 짐에서 운동 강사로 일을 한다. 사람들을 너무 쉽게 믿고 친해지는 게 엄마에게 못마땅하지만 쥴스는 그게 쥴스니까. 그러나 잘하려고 하면 할수록 알콜중독자였던 과거가 자신을 옭아매고 실수만 저지른다. 술을 끊으면 엉망진창인 모든 게 다 제자리로 돌아올 줄 알았지만 여전히 형편없는 자신의 모습에 허망하기만 하다.

엄마는 이혼 후 홀로 편하게 지내는 것 같은데 사위를 잃은 큰 딸과 알콜중독 치료가 끝날 둘째가 집으로 들어와서 제대로 된 가족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인간관계라는 건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이 늘 따라다닌다.

엄마는 어느 날 심장이 아프고 한쪽 팔에 감각이 없어서 병원에 갔는데 심장에는 문제가 없지만 자신도 모르게 딸들을 신경 쓰느라 공황장애가 온 것이다. 이 드라마는 남편이 사고로 죽은 후 사회를 원망하며 지내는 리가 남편이 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후 겪게 되는 인간관계, 그리고 자신과 자신의 부딪힘, 가족과 타인의 경계 같은 것들이 무너지는 것에 대해서 위태롭게 버티는 이야기다.

그 중심에는 우울증이 있다. 우울증을 앓던 남편이 죽음으로 해서 극복하려는 리의 감정이 아주 섬세하게 연출되었다. 처음에는 미스터리 드라마인 줄 알았다. 그저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나 혼자 잘 지내고 싶은데 사람들과 같이 지내야 할 때가 있다. 혼자서 돈을 벌 수 없고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정해 놓은 틀 안에서 시선을 돌리고 싶은데, 안전한 틀에서 거기서 벗어나는 일들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계속 일어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면 리는 촉을 세우고 달려 들려고 한다. 그러나 상대방이 그런 의도가 아니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쉽게 되지 않는다. 인간관계는 너무나 어렵다. 남편은 깊고 깊은 우울을 벗어나기 위해 의사에게 약을 처방받지만 점점 내성이 생겨 강한 약으로 처방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사랑하는 사람을 벗어나는 일. 위배가 하는 일이 모순이 대신하는 이 감정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드라마는 페이스북에서 제작했다. 기대 없이 봤지만 인간관계는 거기나 여기나 북한도 어려울 것이라 아주 공감하면서 봤다.

이 설명할 수 없는 공허, 이 텅 빈 동공을 매일 느끼며 살아야 하는데 그 방법을 모를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쉽지 않은 인생이다.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리는 사람들을 불러 파티를 열지만 후회한다. 그리고 친구와 싸우고. 파티가 끝난 후 설거지를 하는데 그릇마저 깨진다. 왜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을까. 울고 있을 때 엄마가 와서 그릇을 건네준다. 리는 그걸 깬다. 또 하나 건네준다. 확 깨버린다. 그 장면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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