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오기 전 어느 봄날, 축구와 농구 경기를 쫓아다니며 보는데 우리는 참 이상한 경기에 빠져 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축구는 골대가 굉장히 큰데 점수가 쉽게 나지 않는다. 농구골대는 아주 작은데 점수가 많이 난다.


우리 인간의 몸에 달린 손과 발의 차이가 이런 경기를 만들어 냈다. 만약 발이 손처럼 진화를 하여 같아진다면 어떤 경기가 나올까. 그렇게 되는 세상에서는 인간의 생활은 또 어떻게 변할까. 진화가 된 발은 손처럼 더 이상 신발 속에 들어가 있기를 거부할까. 이런 쓸데없는 생각으로 하루를 보냈던 예전 어느 날이 있었다.


영화를 보다 보면 결정적인 한 장면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구구는 고양이다 1’에서도 눈에 들어오는 한 장면이 있었다. 우미네코가 되고픈 꼬마 아이는 손과 발의 경계를 허물었다. 아마도 꼬마 녀석은 바다고양이가 되어 인간에게서 자유로워져서 날아가고 싶은 것이 아닐까.


구구는 고양이다, 에는 손과 발의 경계가 모호한 고양이가 잔뜩 나오고 그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도 가득 나온다. 코지마를 비롯한 주인공들의 모습은 어쩐지 고양이를 닮았고, 이 세상 어디에서 진흙투성이가 되더라도 마음껏 세상을 즐겨도 괜찮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생활이 시간을 타고 흘러간다.


구구는 코지마에게 두 번째의 고양이다. 두 번째는 첫 번째보다 사랑받는다. 첫 번째에게 성실하지 못한 자신을 떠올리며 두 번째에게는 더 많은 사랑을 붓는다. 그래서 어쩌면 인간이란 실패한 사랑을 만회하려고 다시 시작하는 사랑에서는 앞서 못한 사랑을 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불혹을 넘겨 더 나이가 들어 불륜에서 가장 타오르는 무서운 사랑을 하는 것일까.


손과 발의 경계가 모호한 고양이는 앞발과 뒷발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우리고 손과 발이 두 번째가 되면 더 사랑을 받을까. 손이 중요할까 발이 더 중요할까. 닭이 먼저일까 알아 먼저일까. 하지만 우리는 손과 발의 중요성을 까맣게 잊고 살아가고 있다.


봄날의 날처럼 부옇고 코가 간질거리는 날이다. 고양이 털 속에 숨어 들어가 고양이를 괴롭히며 졸음에 겨워 하루를 비비는 벼룩이 되고픈 날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옥희가 옥희한 영화다. 몇 가지의 버전을 봤지만 전영선의 옥희가 가장 재미있다. 이 영화는 아마도 누구나 한 번 보면 두세 번은 더 보지 싶다. 옥희는 요즘으로 치면 메신저다. 메신저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이 영화는 묘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주인공인 사랑방 손님인 아저씨 김진규와 어머니인 최은희, 두 사람은 참 재미가 없다. 몹시 평면적이고 스테레오 타입으로 보인다. 전형적이고 배경에 묻어 있는 것 같은 주인공들인데 기묘하게도 옥희를 통해 두 사람은 아주 입체적이 된다.


옥희뿐 아니라 식모 아줌마인 도금봉, 그리고 계란 장수인 김희갑 덕분에 영화가 지루하지 않고 복선에 사건에, 그렇게 흘러간다. 무엇보다 옥희 덕분에 영화는 반짝인다.


옥희는 아저씨의 등장으로 인해 그저 신나기만 하다. 끊임없이 엄마와 아저씨에게 서로의 이야기(속마음과는 다른 묘한)를 전달하며 종알종알 재미를 알아간다. 옥희는 아저씨의 사랑방에 자주 놀러 간다.


아저씨의 밥상 앞에서 “찬이 없어서”라고 하면 김진규가 흐흣하며 기막힌 웃음을 짓고 대화를 하다가 옥희가 좋아하는 삶은 달걀을 아저씨도 좋아한다고 하니 “어머나”라는 옥희표 추임새는 정겹기만 하다.


옥희는 몸이 불덩이가 되는 와중에도 아저씨 방에 놀러 가고 싶어 하고, 아저씨만 찾는다. 의사까지 찾아오고 옥희는 어떻게 될까. 영화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말하지만 열린 결말이다. 61년도의 실 풍경이 그러했겠지만 당시의 영화나 문학 등 예술은 봉건 제도나 과부에 대한 편견을 깨려고 노력을 한다.


무엇보다 좋은 건 영화 내내 쇼팽의 녹턴이 배경 음악으로 나온다. 아주 묘하게 어울린다. 6살 옥희의 시선을 따라 영화는 엄마와 아저씨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는 순수하고 맑다. 외국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있다면 한국에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가 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영화다. 오래전 최은희가 메릴린 먼로의 옆에서도 반짝반짝 빛났던 것처럼.

https://youtu.be/c_bWx5n0n8Y 



##



이번에는 '서울의 지붕 밑'이다. 61년에 나온 '서울의 지붕 밑'은 동네를 주름잡고 있는 한의사 김학규의 한약방 맞은편에 최두열이라는 젊은 양의가 들어와 버린다. 그런데 그놈이 또 자신의 딸, 인두질을 하는 최신식 미용실을 하는 현옥과 눈이 맞아서 열불 터진다. 이 동네에서 가장 사람들의 선망을 얻고 있는데 이 놈의 딸이 자꾸 맞은편의 양의와 눈을 맞춘다. 법이 마음에 안 들었던 김학규는 친구들의 권유로 시의원에 나가게 되지만 낙선하게 되고 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딸을 위해 결국 두 사람의 사랑을 인정해 준다는 내용이다.


허준호의 아버지인 허장강, 코믹의 대부 김희갑, 그 당시 영화를 보면 거의 다 나오는 김승호부터 도금봉, 황정순까지 싹 다 나온다. 구봉서의 젊은 모습도 볼 수 있고 무엇보다 최은희의 아름다운 모습도 볼 수 있다. 최은희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로 알려져서 그렇지 당시 다른 여배우들과는 달리 서구적인 미모를 자랑했다. 이광수의 '무정'을 영화화한 것에도 출연을 했고 '해녀'나 다른 영화를 봐도 최은희 만의 독보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서울 지붕 밑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서민이지만 그래도 꽤 중산층이고 그중에서도 '상'이다. 레어먼드 카버가 쓴 소설들의 주인공들처럼 중산층으로 그 자식들은 죽으라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된다. 영화는 내내 유쾌하지만 아직 61년이라 전쟁의 여파에 시달린다. 극 중에서 전시에 남편을 잃어버린 최은희도 그렇고, 한국의 생활 전반에 거의 최빈국에 가깝다.


첫 장면은 동네 주모(황정순)의 딸인 점례가 몸이 이상해서 한약방을 찾고 진맥을 짚어보는 김학규가 혼전임신,라고 하며 술집 주인은 주모라서 자신을 무시한다며 펄떡 뛰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진맥 보는 과정에서 딸의 윗도리를 벗게 하고 문방 너머에서는 김희갑과 허장강이 구멍을 뚫어 그 모습을 훔쳐보려고 하고, 그 과정에서 딸은 울면서 뛰쳐나가고, 요즘에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 60년도에는 일어나고 있었다. 점례를 임신시킨 사람은 김학규의 백수 아들 현구(신영균)다.


그 당시에 젊은 양의 최두열(김진규)과 남편을 잃은 현옥(최은희)의 사랑은 말도 안 되는 것이지만 두 사람은 봉건 제도를 무시했던 소설 '무정'의 영채와 선형처럼 부모 세대라는 엄청난 벽을 깨고 시랑을 쟁취한다. 70년대 티브이 속 서민들의 애환과 사랑을 다룬 드라마 시초가 '서울의 지붕 밑'이다.


김진규는 김승호의 바통을 이어받아 이후 모든 영화의 주연을 차지했다. 내가 본 김진규의 마지막 영화가 '삼포 가는 길'이었다. 황석영의 소설이 영화가 되었는데 젊은 백일섭의 "지랄로"라는 대사가 착착 달라붙고 백화로 나온 문숙이 너무나 예뻤던 영화였다. 마지막 헤어질 때 정류장에서 먹던 삶은 계란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슬픈 계란이 아닌가 싶다.


서울의 지붕 밑을 보고 있으면 꿈을 꾸는 것 같다. 아주 선명한 꿈. 하지만 선명한 꿈도 결국 선명하지 못한 현실 속으로 들어가 소멸하고 만다. 그리고 그런 꿈이 존재했다는 것조차 언젠가는 다 잊어버리게 된다. 신영균을 제외한 영화 속 모든 주인공들이 꿈처럼 사라졌으니까.


https://youtu.be/XxMG1IhCLZY



###

한국의 고전영화에 관해서는 모친과 이야기를 하면 잘 통한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전영선이 어떻게 캐스팅이 되었는지부터, 아버지는 누구이며 같은 이야기를 줄줄 한다. 어머니는 오래전 못 말리는 영화 소녀로 촌구석에서 동생(작은 이모)과 사촌 동생들과 함께 극장이 있는 시내까지 가서 하루 종일 영화를 봤다. 로버트 레드포드, 비비안 리, 그레이스 켈리 같은, 어머니가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영화가 하는 날이면 원주 시청에서 일을 하는 외삼촌을 졸라 영화 티켓을 구입해서 첫 상영할 때 들어가서 끝나면 보고 또 보고, 하루 종일 영화를 관람했다. 아름다운 배우들의 연기에 마음을 다 빼앗겼다고 했다. 마치 우유에 젖은 카스텔라처럼 부푼 마음으로 영화를 본 이후에는 헤어 나오지를 못했다.


그런 오래된 영화들을 지금 내가 보고 있다. 그리고 그 영화들을 지난 세대와 영화적인 언어로 이야기한다. 그건 뭐랄까 영화의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가 봤던 영화를 자식이 커서 다시 보고 그 영화에 대해서 공감대를 형성한다. 나는 한국 고전영화를 꽤나 좋아한다. 그래서 ‘자유부인’이나 ‘서울의 휴일’처럼 50년대 영화부터 ‘오발탄’, ‘아빠의 청춘’, ‘언니는 말괄량이’, ‘서울의 지붕 밑’처럼 60년대의 영화도 많이 봤다. 우리나라는 60년대가 영화의 르네상스였다. 엄청난 영화가 지치지 않고 우는 옆집의 100일 된 사내아이처럼 끊임없이 극장가에 걸려 사람들의 여가를 채웠다. 하지만 대부분 수도 서울의 극장에만 걸려서 지방과 서울의 사람들은 문화 형성의 차이가 아주 심했다. 60년대에는 엄앵란과 신성일이 학생 정도의 나이인데 그때부터 영화에 나오기 시작했다. 주로 김승호, 김진규 세대 다음으로 신성일과 엄앵란이었다. 


전영록의 부모인 황해와 백설희도 배우이며, 쌍칼로 유명한 박준규의 아버지 박노식(박준규는 어린 시절에 집이 2층짜리에 마당도 넓은 저택에서 살아서 친구들의 부러움을 잔뜩 받았다), 허준호의 아버지 허장강, 최민수의 아버지인 최무룡 등 그 시대에 가장 잘 나가는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들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지금 봐도 꽤나 재미가 있다. 그리고 여배우들로는 한은진, 최은희, 도금봉 등 여배우들은 거의 1세대 내지는 1.5세대인데 나이가 다 비슷해서 누군가는 시어머니, 누구는 식모, 누구는 딸이나 며느리로 나온다. 서울 지붕 밑을 봐도 비슷한 배역으로 나온다. 


일본으로 치면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이나 ‘산 자의 기록’, ‘7인의 사무라이’이 나오는 배우들이 다 비슷하다. 영화를 좋아한다면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이나 7인의 사무라이를 보기를 권장한다. 7인의 사무라이는 3시간 정도 되고 흑백시대의 영화인데 전혀 지루하지 않다. 7인의 사무라이는 몇 해 전에 이병헌이 나오는 ‘매그니피센트 7’로 리메이크되었다.

우리나라 고전 영화는 크게 보면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서양의 영화(로마의 휴일이나 가스등 같은 영화)나 일본 영화를(맨발의 청춘) 따라 만든 영화들이 있고, 우리나라 문학 소설을 영화로 만든 문예영화가 있다. 가장 유명한 영화는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영화로 만든 ‘안개’가 있고 ‘김약국의 딸들’ ‘오발탄’ 등 아주 많다. 그리고 참 재미있다. 왜냐하면 소설이 무척 재미있게 때문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한국 고전 영화를 보려면 EBS에서나 하면 보거나 지역의 작은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소극장 같은 곳에서 상영을 하면 볼 수밖에 없었다. 다른 지역은 모르겠지만 내가 있는 도시에는 한 군데가 있었는데 상업영화보다 두 배 정도 비쌌다. 그런데 요즘은 유튜브로 많은 한국 고전 영화를 볼 수 있다. 컴퓨터 모니터만 크다면 정말 극장에서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5, 60년대를 지나면 서서히 컬러가 입힌 영화들이 나온다. 얄개시대부터 병태가 나오는 바보들의 행진, 병태와 영자 등으로 이어진다. 또 정윤희, 금보라, 김창숙 같은 배우들의 스무 살 시절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21-02-08 1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교관 2021-02-09 11:37   좋아요 1 | URL
맞아요 ㅎㅎ 외국도 그런 거 같아요. 얼마 전에 죽은 커크 더글라스의 아들도 마이클 더글라스이고 그의 부인은 캐서린 제타존스에 아마도 그들의 아들, 딸들도 전부 이쪽으로 활동하지 않을까 싶어요. 자연스럽게 ㅎㅎ. 골디 혼도 그녀의 남편은 커트 러셀 ㅎㅎ 그들의 딸은 케이트 허드슨, 아들은 올리버 허드슨, 전부 영화배우들인게
 


https://youtu.be/tHgzM5RM-JY

예고편


영화를 보다 보면 그만 영화의 인물에 이입이 되어 그 속에서 나 자신을 보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때는 눈물이 대책 없이 흐르기도 한다. 나는 어쩌면 그러려고 영화를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주수인을 보면서, 주수인의 성장을 보면서 밑바닥이 보이지도 않는 우물 밑으로 한없이 빨려 들어갔다. 


영화 '소리도 없이'가 보색 대비의 재미였다면, '야구소녀'는 주수인의 컬러에 매료되는 재미에 빠지는 영화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주수인을 계속 응원하게 된다. 주수인에게서 나를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주수인 파이팅, 야! 파이팅!!! 하게 된다. 마치 마법처럼, 무엇에 이끌린 것처럼 파이팅을 외치게 된다.


겉으로는 야구를 표방하고 있지만 영화는 주수인의, 주수인과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주수인은 99년 대통령 배 4강전에서 덕수정보산업고와 배성고의 시합에서 나온 '안향미' 선수를 기반으로 탄생된 캐릭터이다. 안향미는 구속이 130이 되지 않았는데 영화 속 주수인의 130 구속을 보면, 실제 구속이 136이었던-미국 야구 국가대표 출신으로 한국에서 뛰고 싶어 한국으로 와서 독립야구단 연천 미라클 소속 내야수를 맡고 있는 재미교포 '제인 어' 선수와, 너클볼을 던지는 걸 보면 일본 출신으로 미국으로 진출한 너클 프린세스라고 불린 '요시다 에리' 선수를 오마주한 것 같다.

주수인은 그냥 제멋대로 탄생된 캐릭터가 아니라 실제 구단에서 남녀의 벽을 깨고 선수생활을 했던 실존인물을 말하고 있다. 안향미 선수는 우리나라 1호 여성 투수였다.

주수인은 자신의 입으로 나는 이제 힘들어서 못하니 포기하렵니다,라고 한 번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주위 사람들이 너는 못 할 것이니 포기하라고 한다. 욕과 괴롭힘과 힐난조의 시선에서 살아남으려고 노력에 노력에 노력을 할 뿐이다. 주수인은 좌절이 와도 그것이 좌절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렇기에 발악을 계속할 수 있다. 그 발악 속에는 영화를 보는 이들의 가슴에 탁 와서 부딪히는 어떤 지점들이 있다. 그 지점을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새 코를 훌쩍거릴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초딩때부터 같이 야구를 한 정호가 코치에게, 수인이는 감독에게 재수 없다는 소리를 들어가며 힘들어서 나가떨어지겠지 하며 훈련을 시켰는데 지금까지 낙오하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대사를 한다.

이는 실제로 안향미 선수가 유니폼을 벗을 뻔 한 사건이 있었다. 덕수정보산업고 하득갑 감독은 안향미 선수가 여자라 ‘재수 없다’는 이유로 야구부 전용버스를 타지 못하게 하고, 안향미 선수만 따돌리고 연습경기나 시합을 나가고, 심지어는 선수들에게 안향미 선수가 여자라 합숙생활이 힘들다고 적어내라고 조장하기도 했다. 부당한 처사에 격분한 안향미 선수 아버지가 교육부에 진정서를 제출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이런 부당함은 지금도 여전하다. 고 최숙현 선수가 있었던 트라이애슬론을 보면 된다. 엄청난 따돌림을 당하고 괴롭힘을 당했다. 

감독은 원래 페미니스트를 주제로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 여자라서 받는 몹쓸 대우에 대해서. 그런데 영화를 촬영하면서 감독 자신이 시간이 지날수록 주수인에게 동화가 되었다. 야구란, 특히 프로 입단이라는 건 여자건 남자건 모두에게 엄청나게 힘든 벽이라는 걸. 그래서 주수인이 점점 해내는 것을 보고 여자가 아닌 주수인의 성장을 그리게 되었다.


서러운 단어 '가난'은 주수인의 꿈을 가로막는 큰 벽이 된다. 가난한 부모는 주수인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너무 없어서 엄마는 모질게만 대한다. 아무것도 없고 능력도 없는 아버지는 주수인의 편에서 어떻게든 뭔가를 해주려는 모습에서는 '빌리 엘리엇'의 아버지가 스치고 지나간다. 엘리엇의 발레를 위해 자존심을 버렸던 그 아버지가 쓱 지나간다. 


주수인은 쓰러지고 넘어지고 넘어져도 주저앉지는 않는다. 그래서 전국의 모든 주수인에게 파이팅을 외치고 싶은 영화다. 주수인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도 좋을 영화 '야구소녀'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영화 ‘소리도 없이’는 올해 내가 본 영화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다. 아니, 제일 좋았다고 해야 맞을까. 암튼 개인적으로 최고였다. 이 영화는 클리셰를 온통 박살 낸다.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이 다 허물어진다. 영화는 보는 내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휙 스친다. 그의 영화들이 스친다기보다 고 감독이 떠오른다. 고 감독이 고민하는 버려진 가족, 새로운 가족, 바뀐 가족, 헤어진 가족이 이 영화 속에는 라면 위의 치즈처럼 녹아있다.

예상을 박살 내는 장면으로 영화는 가득한데, 초희가 잡혀 온 태인의 집에 있는 거지 같은 아이 문주는 태인의 진짜 동생이며, 초반에 일을 떼주던 실장이 그 꼴을 당하고, 술 취한 자전거 아저씨는 진짜 경찰이고 심지어는 아이를 찾으라고 명령까지 내린다. 여경을 묻는 장면에서 경찰모를 덮어 줄 때에도 어? 했는데 나중에는 아니 이런, 하게 된다.

무엇보다 예상을 전부 깨트리는 인물은 초희다. 순수한 태인은 초희와 지내면서 자신의 동생, 문주와도 잘 지내고 빨래도 해주는 초희에게 점점 태인의 방식으로 마음을 연다. 그리고 태인은 자기도 모르는 새 그만 초희에게 기대게 된다. 초희가 자신의 가족이 되었다고,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초희는 태인의 집에서 마치 식구처럼 잘 지낸다. 도대체 잡혀 온 인질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하지만 초희가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은 초희 자신의 집에서도 3대 독자만 사랑하는 부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자신을 속이고 가면을 쓴 모습이었다. 그것의 그저 연장이었을 뿐이다. 마지막에 초희가 선생님에게 태인은 착하고 나에게 잘해준 오빠라 하지 않고 나를 인질로 삼은 나쁜 유괴범이다, 그동안 나는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고 선생님에게 말한다. 


가끔 어른들은 딸아이의 재능을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고 싶어 한다. 우리 애는 물건을 제자리에 곧잘 갖다 놓고, 정리정돈을 무척 잘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아이에게 주위 어른들은 칭찬을 하고 예쁘다 하고 올바르다고 한다. 대체로 보면 멋대로 하려는 경향이 짙은 남자아이보다 여자아이들이 칭찬을 많이 듣는다. 강신주 박사는 이런 여자아이들은 똑똑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것은 눈치가 빨라서 그런 것이라 말한다. 눈치가 남자아이보다 빠르기 때문에 어떻게 행동하면 엄마의 마음에 든다는 것을 알아채는 것이다. 어른들의 강요는 아이에게 눈치라는 또 다른 자아를 생성시킨다. 초희에게는 이미 그런 페르소나가 생긴 것이다. 어른들에게 잘 맞는 아이로 생활하는 방법을 깨우쳤다. 영화 속 인물 중에서 가장 불행하고 착하면서 나쁜 인물이 초희다. 

이 영화는 철저하게 계산해서 클리셰를 전부 비틀어 버림으로 보는 이들을 갈팡질팡하게 만들지만 결국 인간은 페르소나를 안고 자기도 모르는 새 자신도 속이고 남도 속이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온통 어둡고 아픈 과거를 안고 행복한 구석이 없어 보이지만 모두가 밝기만 하다. 

초희를 팔러 간 닭집에는 인질의 아이들이 이미 여럿 있다. 그 아이들의 목숨이 마당을 왔다 갔다 하는 닭보다 못하지만 영화는 너무나 순수하고 재미있게 보여준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가장 악랄하고 끔찍한 범죄가 그들에게는 그저 일상인 것이다. 그걸 너무 유쾌하게 뒤집어서 보여준다.

영화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인물들의 상황과 심리에 맞지 않게 색감이 정말 예쁘다. 그간 영화 속에서 본 색감들 중에서 가장 예쁘고 아름답게 나온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상반된 컬러 같기도 하다. 마치 초현실 풍경화, 쉬르 리얼리즘 수채화를 보는 착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컬러 속의 인물들은 온통 흑백이고 단색으로 얼룩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 

초희는 집으로 돌아가서 여전히 가면을 쓰고 지낼 것이다. 전혀 행복해하지도 않은데 행복한 척, 착한 척하며 지낼 것이다. 그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초희는 하루키의 ‘어둠의 저편’에 나오는 부모가 바라는 삶을 살아가는 언니 아사히 에리처럼 될지도 모른다.

마지막에 전부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며 끝이 나는데 그 장면이 아주 잔인하다.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전혀 행복하지 않다. 사람을 묻고, 유괴를 하고, 부당한 돈으로 불안하게 지금까지 삶을 살았고, 인질범들과 함께 있어서 겁이 나서 언제나 도망칠 궁리만 하고, 이제 친해진 언니가 또 도망갈까 봐 불안한 사람들이 불안하지 않은 채 행복한 모습으로 끝이 난다. 그게 바로 인간의 모습이다. 

오랜만에 생각과 고민과 사고를 하게 만든, 개인적으로 아주 재미있게 본 영화 ‘소리도 없이’였다. 



https://youtu.be/y0tpQAbx0jA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여기 못 배우고 껄렁하고 고리대금업자의 뒷일을 하면서도 불쌍해서 돈도 제대로 못  받고 두목이 때려주라는 것도 잘 못하는, 좋아하는 여자에게 농담이나 내뱉는 뒷골목의 쓸쓸함과 페치카의 따뜻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남자 록키 발보아가 있다. 록키는 감성적이다

록키는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이탈리아에서 온 종마다. 돈을 걸어 내기를 하는 3류 복서장에서 몸을 혹사시킨다. 70년대 미국은 기회의 나라였다. 그런 나라의  필라델피아는 미국 독립의 성지이며 그 해가 독립 200년이 되는 해였다. 사람들이 열광할 수 있는 이벤트가 필요한 슈퍼스타 크리드는 화젯거리를 찾아서 록키 발보아를 지목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신과 인간의, 슈퍼 복서와 삼류 복서의 시합이 시작된다

록키는 삼류 복서로 내기를 위해 시합을 하기 때문에 여기저기 몸이 성할 날이 없다. 아직 나이도 젊은데 벌써 60전을 뛰었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된 권투의 포즈도 없고 아무렇게나 주먹을 휘두르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복서다

록키의 말투는 배운 것 없고 배우기  싫고 나 몸으로 되는대로 먹고살아,라는 말투다. 그런데 그런 말투가 영화가 진행될수록 아주 친밀해진다. 그리고 마지막 눈두덩이 다 터져 에이드리안을 부르짖을 땐 그 말투가 사랑스러워진다

록키는 동물용품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애이드리안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장면에서 우리는 록키에게 점점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녀에게 농담을 하기 위해 쓸쓸한 집에 도착했을 때 자신을 반기는 거북이와 금붕어에게 농담 연습을 한다

어둡기만 한 필라델피아 골목은 록키의 앞날과도 같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세계. 그것이 록키의 미래였다. 하지만 록키는 자신도 힘들고 앞이 캄캄하지만 친구의 여동생을 악의 소굴에서 데리고 집으로 바래다준다던가, 주위를 돌아보고 사람들을 챙긴다. 그리하여 시합을 위해 새벽마다 조깅을 할 때 먹고살기 힘든 시장 상인들이 록키에게 사과 같은 것을 던져준다

애이드리안과 처음으로 데이트를 할 때 그 둘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인다. 아이스링크를 두 사람이 타는 장면에서 낭만이라고는 1도 없다. 하지만 그 장면에서 두 사람은 함께 있는 것이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시작을 알린다. 그리고 두 사람은 사랑하게 된다

마지막 장면은 정말 멋지다. 판정승을 한 크리드. 사람들은 록키에게 재시합을 할 거냐고 묻는다. 록키는 뭐라고 했을까. 록키의 얼굴이 찰흙을 벽에 던져 흘러내리는 것처럼 될 때 애이드리안의 마음은 깨진다. 애이드리안 얼굴을 비추는 그 장면이 압권이며 마지막 에이드리안만을 부르며 그녀가 달려와 안겼을 때는 박수가 절로 나오는 영화

몇 번을 봐도 좋은 영화다. 지치고 쓰러질 때 록키의 주제가를 들으면 어김없이 저 필라델피아 광장의 계단으로 뛰어 올라가 양손을 높이 들고 싶다. 그러면 보이지 않던 앞도 보이게 될 것만 같다

#영화 #이야기 #록키1 #발보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