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렛 버크 화이트


그동안 사진에 관한 이야기를 너무 못했다. 그래, 마가렛 버크 화이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마가렛 버크 화이트는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있고 이 괄괄한 여성 사진 기자 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줄무늬 잠옷의 소년’과 ‘나의 마지막 수트’가 떠오른다. 이 두 영화는 내가 봤기 때문이고 마가렛 버크 화이트는 라이프 지의 여성 종군기자를 하면서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을 전 세계에 알렸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아주 많이 봤을 사진을 촬영한 마가렛 버크 화이트에 의해 어쩌면 최초로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의 실태가 만 천하에 드러났다. 학창 시절 사진부 선배가 마가렛 버크 화이트의 사진집을 빌려줬는데 굉장한 충격이었다. 마가렛 버크 화이트의 사진집은 서점에도 없었고 전시회도 하지 않아서 생소했는데 선배의 삼촌이 미국에서 오면서 마가렛 버크 화이트의 사진집을 사들고 왔다. 요즘은 이렇게나 유명한 사진작가의 사진을 클릭 한 번으로 전부 볼 수 있기 때문에 정말 좋다. 우국원의 그림도 클릭 한 번이면 주르륵 볼 수 있어서 굉장한 일이군, 하게 된다.


마가렛이 사진을 촬영한 당시는 1930년대에서 50년대쯤으로 이 시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변화가 있었다. 1차 대전이 끝난 후 밀려들어 온 경제공황과 공산국가의 탄생, 나치즘의 대두와 그리고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까지 지구는 그야말로 혼돈과 카오스, 폭격의 도가니였다.


마가렛의 사진 속에는 이러한 참상과 국제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사진을 통해서 머나먼 과로의 아픈 여행을 갈 수 있다. 마가렛은 당시 남성들도 하기 어려운 힘든 일을 개척자의 정신으로 밀고 나갔다.


마가렛의 사진은 전부 유명한 사진이 되었다. 히틀러를 피해 크렘린 궁으로 숨어 들어간 스탈린의 초상화를 남아서 라이프지의 표지로 사용해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마가렛의 사진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은 물레를 돌리는 간디를 담은 사진이다. 마가렛은 무정부주의자였던 간디와 함께 물레를 돌리는 방법을 배우고 그토록 존경하던 간디와 친해진다. 그리고 간디의 모습을 담을 수 있었다. 좋은 사진은, 좋은 사진이라는 건 피사체에 다가가기 위해 사진 그 밖의 노력과 방식, 또는 태도까지 사진에 표현이 되는 것이다. 물레 돌리는 간디의 사진이 유명하게 된 데는 마가렛이 사진을 촬영한 후 불과 몇 시간 뒤에 간디가 암살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51년 위태위태한 경제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 위해 비행기 위에 올라타서 곡예사와 같은 모습으로 경제공황에 시달리는 미국의 모습을 담기도 했다.

하지만 마가렛 버크 화이트 하면 세계대전 속에서 피지도 못하고 그저 시체 1이나 시체 2로 전락해버린 나치 수용소에서 무참히 죽은 유태인들의 참상을 담은 사진들이다.


스탈린을 사진에 담았을 때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1942년 6월 히틀러가 모스크바로 진격작전을 개시한 때, 모스크바는 당시 독일군에 의해 완전히 개박살이 났다. 그 공습 하에 마가렛은 소설가인 남편 콜드웰과 모스크바에 있었다. 마가렛이 그 혼돈 속에 있었던 이유가 미로 속과 같은 크렘린 궁 깊숙이 들어앉아있는 스탈린을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그 당시는 모스크바 거리를 촬영한다는 것은 동네 뒷산이나 오르던 초보 등산객이 히말라야의 로체를 등반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마가렛은 호화스러운 지하철로 파고들어 그곳에 피난하고 있는 모스크바 시민의 모습을 담기도 했고 옥상에서 불타는 거리의 정경을 촬영하기도 했다. 마가렛은 전쟁이 비정하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스탈린을 카메라에 담는다는 것은 절망적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루스벨트 대통령 특사 홉킨스가 스탈린을 회견하기 위해 모스크바에 왔던 것이다. 마가렛은 이 기회를 이용했다. 홉킨스 특사를 수행하여 크렘린 궁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크렘린 궁은 마치 에셔의 그림 속과 같았다. 몇 개의 방을 거치고 미로와 같은 복도를 돌아 지나갈 때 우연히 스탈린을 만나게 되었다.


이때 스탈린의 표정은 갖은 상념이 뒤섞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마가렛은 조립 카메라를 재빠르게 조작하면서 어떻게 이 표정을 잡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스탈린의 모습을 담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마가렛의 모습을 보고 스탈린은 웃음을 보인다. 그때 마가렛은 그렇게 유명한 스탈린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는다.

마가렛은 한국전쟁의 참상을 담기 위해 한국에도 왔다. 한국전쟁의 처참한 모습 역시 사진으로 담았다. 종군기자들이 대체로 전쟁에서 많은 피해와 부작용을 겪는데 마가렛도 그러했다. 한국전쟁 중 뇌염에 걸리게 되었다. 이는 후유증으로 파킨슨 병으로 뇌 수술도 받았다. 그녀는 투병 중에도 촬영을 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72년에 62세의 나이로 죽고 만다.


전쟁은 지금도 지구의 어딘가에서 계속 진행 중이며 제2의 마가렛 버크 화이트가 나서서 그 참상을 알리고 있다. 전쟁이라는 건 정말 이상하다. 왜냐하면 전쟁을 하는 이유가 평화를 위해서 한다. 그러니까 평화를 위해 전쟁을 일으켜 서로의 몸에 총알로 구멍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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