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을 들여다본 적은 있지만 손바닥을 집중해서 들여다본 적은 처음이다.

손바닥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는 것은 손톱을 오랜 시간 들여다보는 거와 차이가 있다.

그 차이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난 아마도 따분함과 지겨움의 차이라고 말할 것이다.

한낮에 보는 건물과 밤에 보는 건물은 차이가 있다.


손바닥을 들여다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동안 잘도 손바닥을 외면해 왔다.

그렇다고 손바닥을 오랫동안 쳐다본다고 해서 무엇인가 해결책이 떠오르거나

막혔던 부분이 뚫린다거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냥 손바닥을 조금 유심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발바닥을 유심히 쳐다보는 꼴은 조금 우스우니 말이다.

그저 그렇다는 말이다.


날이 가을의 문턱을 지나 중간으로 들어간다.

가을은 모든 것을 푸석푸석하게 만드는 재주를 짊어진 계절이다.

마법의 계절인 것이다.

시간의 방향성을 잃은, 떨어진 나뭇잎들이 도로의 이곳에서 저곳으로 서풍에 따라 끌려다닐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완전한 세계라는 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완벽한 계절이다.

초등학교 운동장을 뛰어노는 순수함은 매년 바뀐다.

운동장을 메우는 각각의 에너지가 도달하려는 정점은 매년 비슷하다.

매년 그런 광경을 본다.


완벽한 계절이다.

알래스카에 가서 살아도 가을이 다가온다면 이맘때 즘엔 말이지, 하며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을 기억해 낼 테니까.

완벽하다.


바람은 어디에서 불어오는 것일까.

소리만 기생하는 바람.


바람은 알 수 없는 곳,

내가 상상하는 그 계절에서,

눈으로 보이지 않는,

잠에서 갓 깨어난 요정들이 몰려들어와 후 부는.


나는 손바닥을 보는 것을 멈추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은 다른 옥상으로 연결되어 있고,

다른 옥상은 그 어딘가로 연결되어 있다.

바람은 저 계절에서 나타나서 자, 이제 이곳을 한 번 돌아볼까.

바람은 옥상 위를 휘이 하며 몰아쳤다.


가을바람 치고는 꽤 부는 걸,

가을의 문턱을 지나 겨울의 초입 단계에 부는 바람은 그런 거야.


누군가 나에게 속삭여 주었다.

옥상은 아픈 모습을 지닌 채 가을의 바람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픈 옥상에는 빨래들이 힘 잃은 병정들처럼 군무를 추고 있었고

그중 몇몇의 빨랫감은 말라버린 조화 같았고,

몇몇의 빨랫감은 꼬리 밟힌 뱀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고,

빨랫줄의 자리를 잡지 못한 빨래집게는 이 빠진 음표마냥 빨랫줄에 힘겹게 매달려 숨을 쉬고 있었다.


옥상에서 보는 들판은 누렇게 퇴색되어 바람이 살아있는 듯 휘이이잉 하는 소리가 나면 흙먼지를 한껏 피어 올렸다.

아이들 여러 명이 들판 이쪽에서 들판 저쪽으로 흙먼지 속에서 우르르 달려가는 모습이 보이고 그중에 여자아이 하나가 넘어져 큰 소리로 울었지만 아무도 일으켜 세워주지는 않았다.

여자아이는 울면서 그 흙먼지를 기도 속으로 잔뜩 빨아들였고 이내 서럽게 기침을 했다.

그리고 아이의 비논리적인 행동양식에 따라 다시 일어나서 옷을 터는 것도 잊어버린 채 웃으며 그 한 무리를 따라서 달려갔다.


비가 내리지 않아 옥상의 시멘트는 그 뼈대를 드러내며 갈라져 있었다.

긁어주고 싶은 욕망이 들 지경이었다.

티브이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며 그 흔한 노랫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옥상에 올라오면 늘 들렸던, 전축에서 흘러나오던 ‘물의 반영’도 들리지 않았다.

옥상의 난간에 두 팔을 내리 우고 바람에 딸려 들려오던 물의 반영이 있어야 이 푸석한 날이 더욱 무결해지는 것인데 안타까웠다.


감기가 걸려 동네의 조그마한 병원에서 주사를 맞았다.

주사를 맞고 나면 주삿바늘이 엉덩이의 그 살갗을 뚫고 들어갈 때, 따끔하지만 이내 주사기 안의 약물에 엉덩이를 통해 흘러들어오는 느낌은 알싸했다.

곧 주삿바늘이 빠져나가고 솜으로 엉덩이를 문지르며 번지는 그 알 수 없는 아리 한 느낌.

마치 소주잔에 소주를 따르고 얼음을 하나 넣으면 얼음에서 빠져나오는 H2O가 소주에 섞이면서 흘러나오는 흐름처럼, 과학시간에 스포일러로 자줏빛 약물을 비커의 물속에 떨어트리면 물에 살그머니 퍼져나가 듯, 그 아리 한 통증은 묘하게도 내 몸에 퍼져 기분을 푸석하게 만들었다.

엉덩이를 까고 주사를 맞고 나서 다시 주삿바늘이 빠지고 엉덩이의 옷을 올리고 동네병원을 나서면 그 아리 한 통증은 조금은 지속되어 아, 내가 주사를 맞았구나, 하는 생각을 일깨워 주었고 푸석한 기분이 지속되는 것이 좋았다.


바람이 불면 엉덩이를 주무르다가 옷깃을 올렸다.

겨울의 초입에 있었으니까.

플라타너스는 동네의 집 없는 개 마냥 말라비틀어져 있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간신히 붙어있던 나뭇잎은 떨어질 것이다.

바람은 청소부의 쓰레받기에 나뭇잎을 쓸어 넣는 것에 방해를 할지도 모른다.


손바닥은 많은 일을 한다.

주사를 맞은 엉덩이를 주무르는데 손바닥이 없으면 안 된다.

손바닥으로 엉덩이를 주무르고 손바닥을 내려 보았다.

그 손바닥 안에는 외향적인 변함에도 하나의 일관적인 모습으로 꾸준한 세계가 있다.

세계의 곳곳에는 肛門聖愛가 만연했고,

대통령이 여러 번 바뀌었고,

사람들은 언어 대신 욕을 했고,

시간의 방향성은 전진을 지향했다.


그럼에도 손바닥 안에는 그 작은 통증을 느낄 수 있었던 완벽한 세계가 있었다.

영원한 시간도 없고,

영원한 공간도 없었지만

손바닥에는 완벽한 세계가 분명 웅크리고 내 곁에 붙어있었다.


지금은 완벽한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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