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을 찍은 사진을 보면 그 어떤 구름도 같은 구름이 없다. 그래서 구름을 담는 사진작가들은 구름을 사람에 비유하기도 한다. 사람은, 사람의 얼굴은 다 다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쌍둥이도 얼굴은 다르다. 그래서 구름을 담는 사진가들에게 구름은 단지 하늘이 만들어내는 자연현상이 아니라 그 속에서 고찰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 시도를 한 첫 사진가가 아마도 미국의 근대 사진가 스티글리츠다. 그는 이퀴벌런트라는 이름도 요사스러운 연작 시리즈로 구름을 담아서 인간의 마음과 결부시켰다.


스티글리츠의 아내가 누구냐면 바로 조지아 오키프다. 조지아 오키프의 그림은 마력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그녀의 그림 ‘붉은 칸나’를 따라 그려보기도 했다. 스티글리츠의 사진을 검색해서 보면 조지아 오키프가 남편을 위해 발가벗고 기꺼이 모델이 되어 주었다. 하지만 스티글리츠는 희대의 바람둥이였다.


조지아 오키프는 유명하니까 대체로 사람들이 다 안다. 그녀가 그린 꽃에서는 색감에서 강렬한 생명력이 느껴지고 움직일 것 같은 태동도 느껴지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오키프보다 그녀의 남편인 사진가 스티글리츠의 사진을 먼저 접했다.


스티글리츠는 자신의 학생이었던 조지아 오키프의 특출한 능력을 보고 예술에 대해 가르치면서 연인으로 발전을 했다. 스티글리츠는 아내까지 있었지만 오키프는 타오르는 불꽃이었다. 하지만 그는 오키프를 두고 또 바람을 피웠고 그 충격으로 오키프는 두 달간 신경쇠약으로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다. 우울증이 심했고 유방에 생긴 양성종양을 제거하는 동안에도 스티글리츠는 다른 여자와 연애를 즐겼다. 그랬던 오키프가 자기 돌보기로 모든 것을 이겨내고 화가로서 일종의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오키프의 관한 일화(이 이야기는 하루키의 에세이에 소개되었다) 중 하나는 1938년에 석 달 정도 하와이에 체류했다. 파인애플 통조림으로 유명한 돌 사의 초대를 받았다. 비용은 전부 댈 테니 마음껏 하와이에 머물며 광고에 쓸 파인애플 그림 한 장만 그려달라는, 실로 배포 큰 제안이었다.


오키프는 이혼의 상처도 달랠 겸 제안을 받아들였다. 오키프는 하와이 이곳저곳을 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눈에 보이는 모든 신선한 것이 그녀의 창작욕구를 부추겼다. 벨라도나, 하비스쿠스, 플루메리아, 꽃 생강, 연꽃 등 많은 그림을 아름답게, 오키프 식으로 그렸다. 그런데 파인애플 만은 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대로 파인애플의 그림은 한 장도 그리지 않은 채 뉴욕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 뒤로 난감한 돌 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찾아보세요.


하루키도 오키프의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도 한 번쯤은 이렇게 대담해지고 싶지만 천성이 그러질 못한다고 했다. 사진 수업을 듣던 꼬맹이 오키프가 청탁이 들어와도 나는 그리고 싶은 것만 그릴 테야, 그리고 싶지 않은 건 청탁이 들어와도 죽어도 그리지 않을 테야. 라며 그리고 싶은 그림만 잔뜩 그리며 살다 갔다. 일종의 미술의 권력을 쥐고 마음껏 즐겼다.




요즘은 하늘을 보면 구름이 그림을 그리고 있어서 폰으로 담기만 하면 된다. 근래에는 하지 않지만 예전에는 동호회처럼 사진 찍을 인간들을 모아서 구름을 열심히 담으려 다닌 적도 있었다. 인스타그램에서도 구름으로 검색하면 각양각색의 구름성애자들의 사진들이 가득하다. 그걸 보는 재미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재미는 구름 사진뿐 아니라 그 밑에 써 놓은 글과 댓글이 재미있다. 사람들은 구름 사진에서 위트와 유머를 전달한다. 아니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지? 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지?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한 달 전인가, 한 달 반 전인가? 라디오에 사연을 보냈는데 그 사연이 소개가 되었다. 소개가 되었을 때 실시간 댓글로 그런 글들이 올라왔다. 그래서 선물을 보내준다는데 아직 선물이 오지 않았다.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고 당첨이 되어 선물을 받는 기쁨이 있다. 그런 기쁨은 계획이나 생각에 없던 기쁨에 속한다. 배캠을 아주 열심히 들었을 때, 배캠에 사연을 보내서 선물이 왔다. 배캠은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서 유일하게 선물이 없다.


구름이 재미있는 건 멀리서 보면 저 구름이 손으로 만져질 것 같은데 비행기를 타고 구름 속으로 들어가면 여기가 구름 속인지 어떤지 제대로 분간을 할 수 없다. 꼭 역사 속에 있는 것 같다. 지금 이 순간도 역사의 한 페이지고, 우리 모두는 역사에 한 점을 찍으며 발자취를 남긴다. 하지만 시간이 훌쩍 지나야 이런 발자취가 드러날 테지만 지금 현재는 역사 속에 있다는 걸 전혀 느끼지 못한다. 시간 속에 있지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시간 속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하지만 그걸 인지하지 못한다. 구름이 딱 그렇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요, 가까이 서보면 비극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티끌 하나 없는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은 우리가 늘 꿈꾸는 세상이다. 비 오는 날이나 흐린 날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비가 오는 날에 집중이 잘 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역시 이렇게 맑고 깨끗하고 구름이 보이고 쨍하고 더운 날이 좋다.

여름에 이렇게 대기에 가스층이 껴 있지 않아서 맑은 날과 하얀 구름이 보이는 날이 많은 건 아마도 코로나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코로나가 처음 세상을 위협했던 작년에 인류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자동차도, 공장도, 더불어 생활의 움직임도. 그러다 보니 뿜어내야 하는 가스와 이산화탄소 같은 것들이 코로나 이전보다 덜 나와서 동물들이 더 늘어나서 도심지에 나타나고 물이 맑아지고 하늘도 이렇게 깨끗해지지 않았나 싶다. 코로나 이전의 여름의 하늘을 담은 사진을 보면 늘 가스층이 대기에 껴 있어서 습도도 높고 뿌연 하늘이었다. 과학을 벗어나서 이야기하면 지구가 인간들 때문에 너무 아프니까 이렇게라도 균형을 맞추려고 하는 게 아닐까.


구름은 우리를 섣불리 위로하려 들지 않는다. 위로하려 하지 않는 모습에서, 그저 눈에 보이는 곳에 있어 주는 그 모습이 그저 그런 위로가 된다. 그래서 구름은 사람과 비슷하고, 그런 구름 같은 사람이라면 곁에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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