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햇살에서 겨울의 기운은 도저히 찾아볼 수 없었다. 흠 하고 숨을 크게 마시고 싶은 날이다. 날은 따뜻하고 부 얘서 햇살의 한가운데 서 있으면 몸이 조금씩 공중으로 부유하는 기분이 드는 날이다. 예전에 좋아 죽어서 몇 번을 다시 봤던 만화 ‘허니와 클로버’가 생각난다.


눈을 제대로 뜰 수 없는

조금은 부옇고

햇살의 냄새가 나는,

그래서

눈을 아무리 비벼도 보이지 않는 세계

바다와 하늘이 살아가는 의미

내가 살아가는 의미


허니와 클로버에서 이런 비슷한 대사를 한 것 같다. 겨울의 끝에서 다가온 봄은 ‘안녕, 오랜만이야, 그 옷 잘 어울리네’ 이 한 마디가 듣고 싶어서 머리를 만지고 늘 입던 바지도 다시 한번 보고, 익숙하지 않은 신발을 신고 두근두근 하는 마음으로 다른 누구도 아닌 너의 그 한 마디를 위해 소원을 담아서 수줍게 나온 봄 같다.


봄이 오면 풍광이 가장 많이 바뀌는 곳이 골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도시의 빌딩과 건물은 봄여름 가을 겨울 언제나 새것 같고 반짝이는데 반해 골목은 겨울에는 혹독하게 보이고 봄이면 따뜻해서 고양이의 발바닥처럼 변모한다. 이제 곧 딱딱한 시멘트 바닥 사이에서 생명이 몽골몽골 얼굴을 내밀 것이다.


휙 왔다가 어어? 하는 순간 가버리는 짧은 봄날의 시기의 골목이 좋다. 옥상에 올려둔 화분에서 꽃들이 올라오고 주인집 아주머니는 거기에 물을 촉촉하게 뿌려준다. 골목을 돌아다니는 것은 재미있지만 사진을 찍다가 햇살의 따가움과 오랜만에 보는 하늘 사이에 무방비로 드러난 해가 뜨거워 골목의 그늘에 잠시 앉아서 쉬기도 한다.


앉아서 쉴 때에는 아이팟의 볼륨은 좀 높인다. 미카의 ‘위 아 골든’이 나온다.


누가 네 가족에 대해서 모욕을 주었니?

네가 젊고 원하는 게 있을 때 절대 꿈을 포기하지 마


난 네가 말한 것들로부터 도망치고 있어

우리는 네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라

우린 소중해, 우린 소중해


미카는 이런 신파가 담긴 가사의 노래를 부르는데 밉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미카를 좋아하는 이유가 같기 때문이다. 미카는 순탄치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따돌림과 소외로 일관한 어린 시절이었다. 포비아로 가득한 삶을 뚫고 나온 미카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왜 그런지 으샤 으샤 하게 된다.


모두 소녀, 소년일 때가 있었지

그땐 누구나 소중한 존재였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소중함에 대해서 무뎌지게 되었어

우리 모두는 네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지

왜냐하면 우린 소중하니까

우린 소중하다고

우린, 위 아 골든이거든


일상을 보내면서 몸의 저 구석, 어딘가에 심지처럼 단단하게 선인장처럼 피어난 피로를 보이지 않는 손으로 그걸 확인할 수 있다. 만지면 끝이 뾰족해서 까딱 잘못하면 손이 베여서 피가 멈추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위험한 존재를 나는 내가 내 안에서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나의 몸속 저 어딘가에서 점점 자라면서 동시에 별처럼 보이지 않는 그곳에도 있다. 


내 몸속에도 골목이 있다. 그 골목은 늘 어둠에 휩싸여 있어서 섬뜩하다. 손을 휘휘 저어도 어둠에 손이 잠식될 뿐이다. 골목 어딘가에 발을 내 밀면 발이 쑥 빠져서 어둠의 온도가 순간 냉동고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섬뜩한 골목을 나는 내부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골목에서 피로는 이끼처럼 축축하게 점점 자라고 있다. 


그늘에서 몸이 식으면 일어나서 다시 골목을 순회한다. 예전에는 카메라를 메고 사진을 찍었지만 언젠가부터는 폰으로 찍고, 또 언젠가부터는 눈으로만 쫓게 되었다. 골목을 한 바퀴 돌고 나면 거의 반나절이 지나가 버린다. 평소에 바빠서 보지 못한 것들, 제대로 인사를 나누지 못한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랜드스케이프와 함께 내밀한 기억 속 풍경을 겹쳐본다. 어디 하나 뾰족한 곳이 없어서 더 슬프게 보이는 골목은 이제 대부분, 몽땅, 서서히 없어지고 있다.



골목을 벗어나 방파제에 나오면 바다는 하늘과 동시에 거침없이 반짝거려 실루엣을 만들어낸다. 눈으로만 쫓을 수 없어 카메라를 들어본다. 백 년 후에도 아마 하늘과 바다는 이 모습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때 우리 모두는 존재하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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