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토끼정 주인’이라는 에세이를 보면 하루키의 단골집으로 아주 맛있고 주인은 꽤 신비에 가까운 사람이며 토끼정이라는 하루키 단골 집은 작은 곳으로 아기자기한 내부를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정경이 그려진다. 그래서 토끼정의 모습을 유추해보면 백종원의 ‘스트리트 푸드 파이트’에서 일본의 크로켓을 보여주는 방송분이 있었다. 도쿄 중심지에서 살짝 어딘가를 돌아가면 골목이 나오고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에 위치한, 내부는 주방을 바로 둘러싸고 있는 아담한 곳으로 앉아서 주문을 하면 바를 통해 주인이 음식을 내어주는 그런 집이다. 그래서 요리를 하는 과정을 눈으로 즐길 수 있다. 거기서 백종원은 역시나 맛있게 먹는다. 무엇보다 그 집의 크로켓이 아주 맛있어 보인다.

그러면 ‘토끼정 주인’에 관한 부분으로 주인은 삼십 대에 야쿠자에 몸을 담았다가 빠져나와 조용한 곳에서 이렇게 식당을 하는 소문이 있다고 했다. 아주 조용한 스타일로 입소문으로 찾아오는 손님만을 상대로 조용히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추측을 하고 있다. 이 주인장을 잘 보여주는 것은 예전 드라마 ‘연애시대’에서 동진과 은호의 단골 집이었던 ‘숲’이라는 식당의 주인장이 딱 그렇다. 숲이라는 곳은 동진과 은호의 모든 추억이 서려있는 곳이다. 결혼하기 전부터 가기 시작하여 수많은 기념일을 함께 했고 희로애락을 보낸 곳이다. 거기에는 닥터 공, 준표와 지호도 늘 같이 했다. 하지만 은호와 동진은 이혼을 하게 되고 새로운 짝 유경을 만난 동진은 그만 ‘숲’으로 데리고 간다. 거기의 주인장은 말이 없고 늘 음식에 집중을 할 뿐이다. 그러다 지역 깡패들이 들어와 소란을 피우려다 눈이 주인장과 마주친다. 그리고 혀 형님 하는 작은 소리가 깡패들의 입에서 신음처럼 새어 나오고, 주인장은 눈짓만으로 이제 그만 가보라고 한다.

하루키의 ‘토끼정’이라는 곳과 거기의 주인장은 그렇게 영상에서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나에게도 그런 단골 집이 한 군데 있었다. 역시 아주 작은 곳으로 바가 있고 테이블이 고작 네 개뿐인 곳이다. 여름에는 밖에서 테이블을 펴서 마실 수 있지만 보통은 늘 사람들로 꽉 차 버린다. 바에는 5, 6명 정도가 앉으면 끝이다. 주인장은 일본 사람으로 여성이다. 마사에 상으로 우리는 마사에 누나라고 불렀다. 같은 식당을 도쿄에서 언니가 하고 있어서 한국의 내가 있는 도시에서도 열어 봐야겠다고 해서 열게 되었다. 그래서 마사에 누님이 하는 곳은 마치 일본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손님들도 이 도시에서 일하는 일본 사람들이 많다. 일본인들은 사람이 많아도 들어와서 서서 맥주를 마시며 안주를 먹고 이야기를 한다. 늘 북적이는 곳으로 꼬치가 주 상품인데 무척이나 맛있다. 가장 많이 먹었던 건 전갱이 구이다. 보잘것없는 전갱이 구이가 맥주와 만나면 얼마나 맛이 배가 되는지 알 수 있다.

친척 동생이 결혼을 해서 부부가 찾아왔을 때 데리고 갔다. 사촌동생은 포틀랜드에서 살다가 왔는데 남편을 데리고 나에게 놀러 와서 밤새도록 퍼 마신 적이 있었다. 마사에 누나가 있는 곳에 자정에 들어가서 4시에 나왔다. 종류별로 꼬치를 다 먹기도 했다. 참 재미있어했다. 미국 생활은 이렇게 재미있지는 않다고 했다.

마사에 누나는 아주 묘한 사람으로 말하지 않고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옆에서 늘 따라다니는 수행비서 같은 분위기다. 눈을 깜빡이지 않는 그런 신비한 사람처럼 보인다. 마사에 누나는 일본 사람이지만 일본 노래는 잘 모른다. 신승훈의 노래를 좋아하며 하루키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한국말보다 일본말을 더 잘하지만 한국 언어를 농담을 섞어 한국식으로, 게다가 여기 지역 특성상 사투리로 이야기한다. 물론 오에 겐자부로나 다니자키 준이치로 같은 사람이 누군지도 모른다.

보통 마사에 누나는 두 달에 한 번 꼴로 도쿄에 가서 식재료를 공수해서 온다. 그래서 그런지 정말 일본의 정통 꼬치 맛을 느낄 수 있다. 직접 만든 간장 양념에 찍어 먹는 소면 역시 담백하니 정말 맛있다.  가게 이름을 말하지 않는 이유는 어느 날 맛이 변한 것 같았다. 조미료의 맛보다는 불향이나 재료 고유의 맛이 많았는데 어느 날, 뭐랄까 이곳저곳에 있는 보통의 술집에서 파는 안주 같은, 조미료의 맛이 듬뿍 나는, 아무튼 대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그런 맛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손님은 자꾸 많아지고 조금 덜 수고스러움을 택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어쩐지 그 뒤로부터는 잘 가지 않게 되었다. 집에서 가깝지는 않았다. 일하는 곳에서 가까워서 일을 마치면 지나치지 못하고 일주일에 삼사일은 들렸었다. 열심히 다녔었는데 지금은 다니지 않는다. 코로나가 오기 직전까지도 꽤 유명해서 늘 북적였고 늘 많은 사람들로 인기가 좋은 곳이었다. 마사에 상은 나를 프랭키 짱이라고 불렀다. 


https://youtu.be/Xmr1s740IAc

백종원이 찾아 들어간 가게가 꼭 하루키가 말하는 단골 집의 모습과 비슷하다


연애시대에 나오는 '숲'과  조폭 같은 주인장


토끼정 같은 단골 집이었던 가게의 맥주와 꼬치


 프랭키 짱, 어때 맛있어? 오늘은 무슨 노래가 듣고 싶어? 프랭키 짱이 좋아하는 노래 들려줄게, 라르크 엔 씨엘? 주디 앤 마리? 이사토 나카가와? 하마사키의 캐럴을 틀까? 히데는 너무 많이 들었고, 그래도 프랭키 짱이 오면 나는 우리나라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아.

  

 마사에 상, 빌리 코건의 노래를 듣고 싶어요. 빌리 코건의 목소리만큼 매력적인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 빌리 코건이 부르는 노래에는 늘 철학이 있어서. 시인이 한 줄의 시를 적기 위해 여러 권의 책을 읽듯이 빌리 코건 역시 한 줄의 가사를 써내기 위해 엄청난 독서를 해요. 술과 담배도 하지 않고 철학을 노래에 담았어요. 오노 지로가 그 좋아하는 마늘도 명절에만 먹고 외출을 할 때 장갑을 꼈듯이 스시에 철학을 담았잖아요.


 어머 프랭키 짱, 오노 상을 알아?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야. 별일이네. 오노 상의 가게에도 여러 번 갔었지. 물론 예약을 해야 하지만 말이야. 오노 상이 만든 스시를 먹고 있으면 도심 속에서 따뜻함이 느껴지는 거야. 그때 나도 그렇게 장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프랭키 짱이 오노 상을 다 알고 신기해.


 전 다 알아요.


 프랭키 짱 귀엽네, 그런 말도 할 줄 알고.


 뭘요. 빌리 코건의 투나잇 투나잇이 끝나면 더 월드 이즈 어 뱀파이어를 틀어줘요. 오늘따라 맥주가 맛있군요. 마사에 상, 생강 채 썬 거 좀 더 주세요. 와사비도 듬뿍 주세요. 저 와사비를 좋아하거든요.


 프랭키 짱, 파 더 얹어줘?


 예, 마사에 상. 마늘 꼬치도 두 개 구워주세요. 역시 맛있어요.


 이곳도 하루키를 많이 읽는 것 같애. 프랭키 짱은 어떤 글이 좋았어?


 딱히 어떤 게 좋다, 이런 게 전 없어요. 그저 마지막에 읽은 게 가장 좋다면 좋았어요. 그래도 떠오르는 구절은 있어요.


 어떤 구절?


 추억에 관한 글인데, 추억은 마음의 안쪽으로부터 따뜻하게 해주는 동시에 안쪽에서부터 아프게 한다고 하는, 이런 비슷한 말이었는데, 이 말은 늘 떠나지 않고 맴맴 도는 거 같아요. 하루키의 소설 속에 나오는 주인공은 누군가로부터 결락을 맞이해요. 주인공들을 좀 더 빠르게 움직이게 하고, 걷기보다 달리게 만드는 누군가가 있어요. 주인공에게 필요한 건 나의 가슴이 아니라 누군가의 가슴이거든요. 주인공이 기묘함을 찾아가는 동안 독자들도 같이 성장해가는 것 같아요.


 프랭키 짱이랑 얘기하고 있으면 정말 소설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야.


 지금 이 세계가 소설 속의 세계보다 더 한 세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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