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OJVXS0_pdDY



폭력은 공포 최상위에 있다. 폭력의 질이라는 것은 눈으로 볼 수 없고 드러나지 않으며 시간과 공간에 의해서 서서히 하나의 굳건한 체제를 완성해 간다. 그리하여 폭력은 최고의 공포다. 하루키의 ‘어둠의 저편’은 그런 폭력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책 속에는 ‘알파빌’이라는 모텔에서 떡이 되도록 구타를 당한 중국 여자를 돌봐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알파빌’이라는 곳에서 폭력이 이루어진다. 하루키가 따온 알파빌은 장 뤽 고다르의 65년작 ‘알파빌’을 말한다. 안나 카리나가 주연으로 미래 세계에서 범인을 찾는 레미라는 탐정의 이야기다. 

그 영화 속 미래도시 ‘알파빌’에서는 감정을 가지는 일은 용납되지 않는다. 폭력만이 가득한 도시가 알파빌이다. 눈물을 흘리거나 우는 사람은 체포되어 공개처형이 된다. 그래서 알파빌에서 감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랬다간 폭력의 지배를 받는다. 사립탐정 레미는 실종된 과학자들을 찾기 위해 기자로 위장하고 미래도시 ‘알파빌’로 간다. 65년도 작이라 어떤 특수촬영이나 그래픽적인 요소는 없다. 하지만 장 뤽 고다르의 고다르식 영화를 좋아하면 빠지게 되는 영화다. 

하루키의 '어둠의 저편- 애프터 다크'를 이해하는데 영화 ‘알파빌’을 보면 크게 도움이 된다. 바로 그 이야기의 축소판이 어둠의 저편에 나오는 모텔 알파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폭력, 언어의 폭력으로 인해 티브 저편의 세계 속에 갇혀 잠만 자는 아사히 에리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어른들의 칭찬에 잘못된 자아가 만들어져 간다. 아사히 에리는 칭찬을 받기 위해 자아를 말살시키며 가면을 쓰는 법을 알았다. 그리하여 어른들이 원하는 대로 보이는 페르소나를 가지게 된다. 영화 ‘소리도 없이’에서 가장 무서웠던 캐릭터 초희가 그렇다. 인질로 잡혔지만 아무렇지 않게 잘 놀고 잘 먹고 잘 지낸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원래 자신의 집에서도 삼대독자만 좋아하는 부모님의 마음에 들기 위해 부모의 언어폭력으로 인해 가면을 쓰며 지내야 했기 때문이다.


소설 속 마리는 다카하시가 왜 음악을 관두고 법에 대해서 공부를 하는지에 대해서 듣는다. 다카하시는 법학도로 법원에 공개방청을 하러 갔다가 기묘한 느낌을 받는다. 그것은 법원에서 옳고 그른 것을 심판받고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나하고는 다른 종류의 인간들이라고. 나와는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재소자들이다,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무엇보다 다카하시 자신은 흉악범죄를 일으킬 가능성 같은 건 없고, 평화주의자였고, 성격도 온화하고, 너그럽고, 어렸을 때부터 누구에게도 손을 대지 않는 그런, 그런 종류의 사람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폭력은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주인공 다카하시는 재판소에 다시면서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 우리 자신 내부에 ‘저쪽 세계’가 아마 몰레 숨어 들어와 있지만 그런 것을 우리는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겉으로 봐서 누가 나쁜 사람인지, 범죄자인지, 살인자인지 분간을 할 수 없다. 모텔 알파빌에서 중국 여자를 불러서 사정없이 구타를 한 남자 역시 아주 평범하고 아내에게 다정한 이웃집 사람이었다. '악의 평범성'은 겉으로 절대 드러나지 않는다. 


사람을 네거티브하게 변화시키는 것은 ‘폭력’이다. 그런 폭력은 영화 ‘캐빈에 대하여’에서 나오는 것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어둠의 저편’에서 나오는 알파빌이라는 모텔은 '댄스 댄스 댄스'의 돌고래 호텔처럼 상징이 대단하다. 장 뤽 고다르의 영화 ‘알파빌’을 고스란히 하나의 모텔로 함축해놨다. 그 속에서 일어나는 폭력으로 인해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리하여 영화 속 ‘알파빌’과 소설 속 ‘알파빌’에서는 섹스는 가능하지만 사랑하는 감정을 소유해서는 안 되는 곳이다. 


읽고 나면 그 속에 깔린 폭력성에 대해서 부르르 떨리는 소설이지만 하루키는 어둡기만 할 것 같은 이야기를 자신만의 유머를 통해서 가림막을 쳐놨다. 다카하시가 마리를 알파빌로 데려다줄 때 문 앞에서의 두 사람의 대화라든가. 마리와 새벽에 이야기를 하고 알파빌로 데려다줄 때, 문 앞에서 진지한 표정을 한 다카하시는 마리에게, 한 가지 고백해 줄 일이 있어.라고 말한다.

 뭔데?라고 마리가 말하니, 지금 내 생각은 마리하고 같다는 거야.라고 다카하시는 말한다.

 하지만 오늘은 안 되겠어. 깨끗한 속옷을 입지 않았거든.라고 말하니 마리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농담은 그만두라는 말을 한다.


하루키는 세상에 자행되는 모든 폭력, 타격이 있는 폭력이던 언어폭력이던, 이전의 소설에서처럼 둘로 쪼개 놓고 그걸 독자들이 찾아가는 방식으로 잘 풀어냈다. 진실이라는 것을 입으로 정직하게 말하려고 하지만 늘 그것은 어긋나고 제대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재미있는 점은 ‘1973년의 핀볼’에 나온 쥐가 한 대사를 그대로 다카하시가 한다. 그것이 무엇일까. 그걸 찾는 재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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