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업과 취미 그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묘한 무엇인가가 도사리고 있다.


생업을 하는 어부는 오늘 그물에 고기가 걸리지 않으면 이틀이 힘들다. 하루 물고기가 낚이지 않으면 하루가 힘들어야 하지만 이틀이 힘들고, 이틀을 못 낚아 올리면 5일이 힘들 수 있다. 만선을 이루어도, 전혀 낚이지 못해도 그물은 헝클어져 있으니 매일 손질을 해줘야 한다. 고기를 매일 낚아 올리는 일, 그건 어부의 생명을 바다에 매일 조금씩 나눠주는 일이다.


취미로 하는 낚시는 어떤가. 낚시를 하면서 책을 읽거나 폰을 만지작거리며 낚시에 집중하는 것도 애매하다. 고기가 낚이면 고기를 바늘에서 빼고 지렁이를 끼워야 하고 고기를 낚지 못하고 지렁이만 빠져버리면 그것대로 손에 지렁이의 진액을 묻혀가며 낚시에 열을 쏟아야 한다. 비록 취미라 할지라도.


신은 양과 호랑이 모두를 창조했다. 양은 순수의 상징이고 호랑이는 야만의 상징이다. 두 가지 모두 완벽하고 필요한 존재다. 야만의 호랑이가 늘 이기는 삶을 살고 살육을 할 수 없다. 그 세계에서 도태된 호랑이는 무리에서 버림을 받게 된다.


생업과 취미는 분명하게 다르고 대조를 이루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낚시는 어떤 면으로 그 경계가 모호한 지점이 있다. 취미 낚시꾼들을 위해 생업의 낚싯배들은 취미의 낚시꾼들을 실어 나른다. 그런 모호한 지점이 각자 제멋대로인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고 있다. 인간의 삶이란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도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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