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인가 한 언론사에서 하루키의 노벨문학상에 대한 기사를 썼다. 읽어보니 너무 이상한 문장이어서 지적을 했다. 다음 날 지적한 대로 문장은 바뀌었고 나의 댓글은 삭제가 되었다. 거대 언론사로서 비판에 대한 수용의 태도가 참 별로였다. 이렇게 싹 지우고 원래 그랬던 것처럼 기사를 내보냈다고 인스타그램에서 기사를 읽는 사람들에게 버젓이 알리고 있었다.


하루키의 단편소설 중에 ‘침묵’이라는 소설이 있다. 이 소설은 공포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하루키식 공포다. 영화 버닝에서도, 아버지에 관한 에세이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공포를 말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작가 문지혁의 유튜브에서도 잘 정리해서 방송을 했다. 참 듣기 편안하고 좋은 영상이었다.


소설 '침묵'은 주인공인 나에게 오자와,라고 하는 회사 동료가 자신의 고등학교 때의 일을 들려주는 이야기다. 오자와는 어렸을 때부터 내성적이고 책을 좋아했다. 아이가 집에만 있는 것이 걱정이 된 부모님이 친척이 운영하는 복싱장에 보내게 된다. 복싱을 배우게 된 오자와는 복싱이라는 운동은 상당히 고독하고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게 하는 운동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복싱을 배우는 사람들은 링 밖에서는 사람을 때려서는 안 된다는 철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복싱을 배우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오자와가 다른 사람을 때리는 일이 발생하고 만다. 바로 동급생인 아오키라는 친구를 때리게 된다. 아오키는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은 아이였다. 하지만 친해지기 전에도 오자와는 아오키에게 느껴지는 거부감 같은 것이 있었다.


그건 아오키가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은 것이 딱 집어낼 수는 없지만 거짓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아오키는 진짜로 하지 않고 허울과 껍데기뿐인 위선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오자와는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중 복싱을 하면서 학교의 어떤 시험이든 일등을 하면 무엇인가를 사주겠다는 부모님의 약속 때문에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영어시험에서 오자와는 일등을 해버린다. 영어 시험은 아오키가 늘 일등을 하던 과목이었다. 일등을 빼앗긴 아오키는 그 뒤로 소문을 퍼트리고 다니기 시작한다.


오자와가 커닝을 한 것이라고 한다. 소문은 돌고 돌아 오자와의 귀에 들어온다. 화가 난 오자와는 사람을 때리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아직 수련이 덜 된 오자와는 아오키와 말다툼을 하던 끝에 때리는 일이 발생하고 만다.


하지만 그 뒤로 생활은 조용하게 흘러간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떨어져 있다가 다시 같은 반이 된 아오키와 오자와. 어느 날 같은 반의 마쓰모토라는 친구가 지하철에 몸을 던져 자살을 하게 된다. 학교의 분위기도 안 좋아진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아오키는 오자와에게 맞았던 그 일을 잊지 않고 지내고 있었다.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아오키는 몇 가지 ‘사실’만을 이야기한다.


첫째, 마쓰모토는 왕따를 당했고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다.
둘째, 오자와는 오랫동안 복싱을 배워왔다.
셋째, 나는(아오키는) 중학교 때 오자와에게 맞은 적이 있다.


이런 몇 가지 사실을 흘리게 된다. 그 뒤로 사실이 진실에서 벗어나게 된다. 마치 복싱을 배운 오자와가 마쓰모토를 때리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차가운 시선과 냉대, 집단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오자와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지만 누구도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


어느 날 오자와는 아오키를 같은 지하철에서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친다. 오자와는 제대로 아오키의 눈빛을 본다. 후에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소설 속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내가 정말 무섭다고 생각하는 건, 아오키 같은 인간이 내세우는 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그대로 믿어버리는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주제에, 입맛에 맞고 받아들이기 쉬운 다른 사람의 의견에 놀아나 집단으로 행동하는 무리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뭔가 잘못된 일을 저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한 무의미한 행동이 누군가에게 결정적인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고는 짐작도 못하는 무리들이지요. 그들은 그런 자신들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정말 무서운 건 그런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얼굴이 없는 불특정 다수가 무섭다는 것이다.
마치 지금 한국을 뒤덮고 있는 사건과 그 사건을 퍼 나르는 언론의 기자들과 그 기사를 그대로 흡수하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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