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통

 

두통이 심하다. 두통이 올 땐 서서히 다가와서는 한순간에 대검이 되어 뇌의 여러 곳을 찔렀다. 그리고 두통은 썩은 호수의 검은 밑바닥에 깔린 사구처럼 머물러 있으면서 조여 왔다. 두통의 고통이 이토록 심할 줄은 몰랐다. 처음 두통이 시작될 때는 주기적으로 왔지만 지금은 산발적이다.

 

일을 하다가, 밥을 먹다가, 잠을 자다가 심지어는 운전 중에 오는 두통은 눈앞을 검은 커튼으로 가렸다. 두통이 시작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머리가 조여 오는 느낌은 복통이 말려오는 것보다 심했고 치조골을 건드리는 고통을 넘어섰다. 두통의 전조가 보이면 이미 두려웠다. 두통이 시작되면 내 몸은 외부의 모든 자극에 대한 방호막을 치고 돌처럼 굳어 버리는 것이다.

 

이곳에는 모든 약이 다 있네. 키를 크게 하는 약, 꿈을 꾸게 하는 약, 심지어는 모든 걸 볼 수 있게 해주는 약도 있다네. 자네가 모르는 약이 더 있지. 세상에 나와 있는 약의 종류는 음식의 종류보다 더 많네. 하지만 말이네 자네의 그 두통을 없앨 수 있는 약은 없다네.

 

고개를 들어보니 앞에는 불행한 얼굴을 한 노인이 불행하게도 등이 굽어서 불행하게 앉아있었다. 머리는 새 하얗고 머리카락은 몇 가닥 없었으며 길게 흘러 내려와 있었다. 말을 하는데 입에서 고약한 냄새가 났다. 덕분에 두통이 더 심해졌다. 얼굴에는 손톱만한 검은 사마귀가 3개나 나 있었는데 한 개당 4가닥 이상의 세기의 원흉 같은 긴 털이 불행하게 달려 있었다.

 

노인은 약병을 꼼지락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물굽이에 드리운 세계의 다사로움이라고 누가 한 말인지 아나?

나는 머리를 감싸고 모른다고 했다.

카뮈가 저녁을 가리켜 그렇게 표현했네. 아주 아름답고 고즈넉한 풍경의 모습이지. 그렇지 않나. 그렇지만 모든 이에게 저녁이 고즈넉하고 다사롭게 와 닿지는 않을 걸세. 그렇지 않나?

나는 모른다. 모른다고 했다.

나는 지금 두통으로 인해 고통이 너무 심하다.

5분 전보다 두통이 심했다.

 

저녁은 한꺼번에 모든 이에게 다가오지만 받아들이는 이들에 따라 저녁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지. 누군가의 저녁은 행복으로, 어떤 이의 저녁은 아픔으로, 또 다른 이의 저녁은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이네. 발자크는 불면으로 보내는 밤을 고통에 비유했지. 하긴 하루에 블랙커피를 60잔씩 마셨지. 50잔인가. 발자크는 이렇게 외쳤지. 나는 사는 게 아니다. 끔찍하게 나 자신을 갉아먹고 있다. 하지만 일을 하다 죽든 다른 짓을 하다 죽든 나에게는 다를 바 없다. 어떤가?

 

지금 이 노인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나는 머리가 너무 아프니 약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노인은 내말을 무시했다.

자네가 신혼여행 중에 저녁을 맞이했다고 해보게. 그것은 행복이자 ‘사실’이라고 믿지. 정말 그것이 ‘진실’일까. 그것이 진실이라고 누가 단정 짓겠는가.

나는 무슨 말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알아 들을 수 가 없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자네의 두통을 낫게 할 수 있는 약은 없네. 헌데 말이네 고통스러워하는 자네처럼 사람들에게 똑같은 두통을 겪게 할 수는 있다네. 어떤가, 다른 이들에게도 자네와 같이 두통을 겪게 해보는데 동의 하겠나?

늙수그레한 그는 논두렁의 색과 같은 이를 드러내고 나의 얼굴 앞으로 와서는 하고 싶은 말을 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그런 악행을 저지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나는 두통이 심했지만 그럴 수는 없다고 노인에게 말을 했다.

 

이봐, 그건 악이 아니야. 자네는 아직 선과 악의 명확한 구분을 할 수는 없어. 나 역시도 마찬가지겠지만 무엇이 선이고 어떤 것이 악이겠는가. 자네의 두통은 병원에서는 도저히 알아낼 수가 없잖은가. 자네는 검사를 아무리 받아봤지만 그저 이상이 없을 뿐이야. 병원에서는 원인규명도 모를뿐더러 자네의 두통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도 않지. 그것은 그저 두통일 뿐이니까 말이네. 병원에서는 두통보다 더 하고 고통스럽고 무서운 병마의 원인을 찾아내는데 혈안이 되어있다네. 자네 같은 두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많아진다면 자네의 두통을 낫게 하기 위해서 병원의 움직임을 바꿀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뭐가 선이고 어떤 게 악이란 말인가. 타인에게 두통을 안겨주는 일이 과연 악이란 말인가. 곧 자네와 같은 두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아질 것이네. 그때가 되면 이미 걷잡을 수 없지. 동기가 선하다면 악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지 않겠나. 어떻게 생각하나?

 

생각이고 뭐고 할 것도 없이 머리가 너무 아팠다. 조금씩 강도가 강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이렇게 머리를 철사로 묶어서 조여 오는 두통이 있으리라고는 그동안 살면서 경험해 보지 못했다.

 

우리는 하나의 획일화에 그 몸을 맞춰 가야하는 거라네. 이 사회에서는 결국 옷에 몸을 맞춰가는 이들이 살아남는 것이야. 자네가 획일화의 구심점이 된다면 사회는, 그러니까 병원이나 그 동안 자네의 두통에 상당히 관대했던 곳에서 달려들 걸세. 이 사회는 그런 곳이야.

 

나는 노인이 하는 말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좋아요. 좋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두통이 지금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그건 걱정할 것 없네. 자네는 이미 이틀 전에 죽었으니까 말이네. 싸늘하게 죽은 채로 발견되었네. 지금의 두통은 그저 자네가 만들어낸 환상 같은 것이야. 두통의 잔존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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