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바닥에는 내 몸에서 나왔다고는 할 수 없을 만큼의 피가 고여 있고 그 핏빛은 끈적끈적한 망각의 골수처럼 보였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 꿈은 더 적극적이고 숙명처럼 내가 잠이 들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나는 이것이 병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아직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기를 꺼려하고 있다.

 

 

사실 그것이 진실이라면 더더욱 마주 대하기가 겁이 난다. 진실이란 늘 그렇다. 하지만 앞으로도 총을 맞는 꿈 때문에 정신과에서 상담을 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어느 날은 꿈속에서 한 아이가 내 집 마당의 무화과나무 밑에 앉아서 나무 밑의 흙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꿈에 아이가 나타나기는 처음이었다. 총에 맞아서 죽을 것이 뻔한 꿈에 아이가 나타나니 의식의 표면에 붙어있던 불안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얘야, 넌 거기서 뭘 하고 있니?라고 물었더니, 태양의 냄새가 좋아서요.라고 대답한 아이는 흙에 그림을 그리고 있던 무엇인가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을 받아들고 보니 권총이었다. 아이는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 총만 한 게 없어요. 짧은 거리에서 실패할 확률이 제일 적어요. 순간에 평온해질 수 있는 게 아저씨가 들고 있는 총이라구요.라고 했다.

 

 

칼이라면 쉽지 않다고 했다. 그렇다고 총열이 긴 총도 생각만큼 만만치 않다고 했다. 권총을 들고 자신의 관자놀이에 대고 그저 검지를 당기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넌 꼬마가 이런 것을 어떻게 다 알고 있는 거니?라고 묻고 보니 아이는 온데간데없고 그림을 그리던 흙구덩이, 거기서 구울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세상은 구울들이 점령했고 다행히 그들은 총 같은 것은 들고 있지 않았다. 구울 들을 피해서 달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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