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라고 불리는 녀석이 한 명 있다. 이 녀석 융통성과 눈치가 없어서 친구들 틈에도 잘 끼지 못하고 술도 마시지 못해서(한 잔만 마시면 붉은 태양처럼) 수많은 술자리에는 거의 끼지 않았다. 이야기에서 재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직선적이고 공부도 못했다.

공부는 우리도 못했기에 별 무리가 없었지만 그 외에는 다른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어떤 매개가 없었는데 고등학교 때에는 와아 하며 그저 같이 몰려다녔다. 그래도 그 녀석 잘하는 게 있었는데 태권도였다. 선수를 했고 공부는 못했지만 졸업하기 전부터 사범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X사범이라 불렀다.

하지만 운동은 태권도만 잘했다. 축구도 농구도 탁구도, 태권도 이외에는 잘 하는 운동이 아니라 할 줄 아는 운동이 없었다. 잘 나가는 박찬호가 야구 빼고는 운동이 전부 꽝인 것과 비슷했다.

태권도도 뭐랄까 어쩐지 그 녀석이 가르치면 지루해지고 재미가 떨어지는 시간이 된다. 나도 몇 개월 그 녀석 밑에서 태권도를 배웠는데 이렇게 재미없는 운동이 있을 수 있다니 하며 태권도에 편견을 가지게 되었다. 몸을 푸는 데만 3,40분 정도 시키는데 그것이 끝나면 기진맥진해지는 것이다.

내가 입대할 때 먼저 입대를 한 그 녀석이 휴가를 맞춰 나와서 나를 육군 50사까지 배웅해줬다. 모두가 제대를 하고 하나둘씩 장가를 갔다. 어느 날 그 녀석이 만나는 여자가 있는데 같이 만나줬으면 했다. 친구들 모임 할 때 데리고 오라고 했는데 그것은 좀 그렇다는 것이다

그 녀석 그때까지 여자를 만나지 않았다. 만나본 적이 없다. 친구들 몰래 만났다면 모를까 그랬다면 늘 활동 반경이 손바닥이어서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녀석이 여자를 데리고 온 날 술집에서 만나게 되었다. 여자는 우리보다 10살이 많았고 남자아이가 있었고 남자아이는 8살이라고 했다.

친구들에게서 이미 비난 비슷한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건 안 될 일이다며. 녀석은 그 여자와 결혼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 녀석 주위에서는 모두 그 녀석을 걱정하며 그것을 말렸다. 그러다 보니 애처에 눈치가 없고 술을 마시지 못해서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지는 못했는데 그것 때문에 더욱 친구들 자리에는 나오지 못했다.

그 녀석은 어쩐 일인지 여자를 만날 때에는 나를 불렀다. 왜냐하면 나는 여자에 대해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술자리에서 그 여자와 이야기를 해 보면 아주 재미있는 사람이었고 우리보다 삶의 경험이 많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좋았다. 그때에도 습작으로 말도 안 되는 글을 적고 있었기에 내가 접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내게 꽤 소중한 것이었다.

술이 들어가면 그 여자는 그 녀석보다 앞일을 더 걱정했다.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새장 속 새가 불쌍해 새장의 문을 열어 놔도 밖으로 날아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새를 보는 것 같았다. 늦게까지 술을 마시지는 못한다. 아직 어린 아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의 술자리는 편하지만 길게 이어지고 다음 날 꼭 타격을 입힌다.

그 녀석은 일 년이 넘게 여자와의 만남 속에 나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 내가 일하는 곳에도 여자를 데리고 왔고, 나는 두 사람의 사진 작업을 해주기도 했다. 두 사람은 같이 있으면 행복해 보였다. 그러면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위 편견은 무서운 것이고 겁이 나고 공격적이지만 두 사람만 같이 있는 공간에서는 행복한 것이다. 그것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지금 그 녀석은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여 애 둘을 낳아서 다른 사람들처럼 일상에 허덕이며 삶의 고통 속에서 잘 살아가고 있다. 그때 주위의 공격을 이겨내지 못했다. 먼저 부모님의 공격과 형제들의 공격, 그리고 회사 사람들과 친구들의 공격. 융통성이 없는 너라는 공격의 시작은 슬슬 도를 넘기 시작하고 두 사람이 행복한 것에 금을 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결국 그것을 견디지 못했다.

만약 두 사람이 그것을 이겨내고 결혼에 골인했다면 지금이 지금보다 더 행복할 것인가. 그건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할 필요도 없다. 네가 낳은 아들, 네가 낳은 아들 같은 말은 친척이나 가족에게서 떠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근래에 몇 년 만에 그녀석이 한껏 나이든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다. 재미없는 것도 여전하고 융통성 없는 것도 여전해 보였지만 얼굴에 고생을 정통으로 맞은 것 같았다. 아내에게 준다며 내 책을 한 권 받아 갔고 그동안의 이야기보다 앞으로 할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갔다.

우리는 보통 어떤 선택의 앞에서 늘 고민을 하고 그 결과 때문에 좌절을 맛보며 많이 힘들어하고 울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인간의 한 번뿐인 삶, 일생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뭐든 처음 하면 잘 할 수 없다. 누구나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도 없다. 하물며 일생을 살아가는 인생이 늘 행복하게만 잘 지낼 수는 없기 때문에 우리는 평생 우왕좌왕하는 것이다. 여러 번 쓰러지지만 주저앉지는 말자. 그러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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