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서 방문을 열고 화장실 문을 열고 변기에 앉았다가 현관문을 열고 나와서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 타서 1층의 아파트 현관문을 지나 자동차 문을 열고 닫아서 아침에 들리는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가 커피를 마시고 하루를 보내면서 열고 닫아야 하는 문에 도대체 몇 개인지, 비슷비슷한 문을 열었다 닿으며 매일 수십 번 공간이동을 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는 아주 많은 문이 존재해있다. 매일 몇 개의 문을 통과하며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간다. 저 문을 통과하면 오늘은 어떤 변화된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하며 지나치는 사람들은 없지만 나는 엉뚱하게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저 문을 통과하면 작은 설렘과 조바심이 내 마음 옅은 부분에 자리 잡고 있다

 

거실과 복도 사이에 있는 둔탁한, 유리가 없는 아파트 복도 문을 지나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유리로 되어있는 아파트 현관문을 거쳐, 썩 내키지 않는 색의 자동차문을 열고 닫으며 건물의 두꺼운(1센티미터가 넘는) 2중 유리 문을 두 개나 지나 통과하여 사무실의 철제 플라스틱 문을 열고 들어와 책상에서 일을 하기까지 매일매일 온도와 환경이 다른 두 공간을 지나친가는 알 수 없는 작은 기대가 인간의 삶의 조그마한 부분을 차지한다

 

문이라는 건 특수성을 띠고 있다. 내가 뇌 생리학을 전공한 건 아니지만 뇌 생리학적으로 문이 없다고 가정을 하면 분명 인간은 불안함에 몸이 떨릴 것이다. 심장이 뛰고 잘 걷지도 못할 것이다. 문은 그런 특수성을 지닌다. 우리는 보통 문이라는 특수성을 지닌 물체에 대해서 조금은 성의 있게 다가갈 필요가 있다

 

어쩌면 인간은 좀 더 튼튼하고 안전한 문이라는 관념 속에 갇혀서 상주하기를 늘 원하고 있다. 만약 자동차의 문이 없다고 가정을 한다면 끔찍하다. 문이 없는 자동차 안에서 그렇게 마음 놓고 담배를 피워 대며 운전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가 은행 밖으로 나올 때 이 문으로 나갈까 저 문으로 나갈까 하며 고민하는 부분은 한가한 일요일에 마트에서 녹차가루를 고르는데 이 물품을 고를까, 저 물품을 고를까 하는 식의 고민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띠는 것이다. 어떤 문으로 통과할까? 하는 고민은 마트에서의 고민처럼 혼란스럽지가 않다는 것이다. 그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이 문이라는 것이 통과를 하면 마음이 놓이는 문과 기이하지만 그렇지 못한 문이 있다. 그래서 문이라고 하는 것은 이상하리만치 밋밋한 그 무엇인가가 확실하게 존재해있다

 

어떨 땐 열었다가 닫히는 문을, 그러니까 반드시 닫아야 하는 문을 열어놓고 그냥 지나친 것에 작은 희열과 묘한 뿌듯함마저 들기까지 한 경우도 있었다. 지금도 문을 만드는 여러 공장에서는 좀 더 튼튼하고 안전한, 그리고 눈을 사로잡아 끌만한 문형으로 만들어진 문을 만들어내느라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을 것이다. 모르는 이들이지만 새삼 그들에게 감사합니다 꾸뻑, 말하고 싶다

 

우리가 다니는 지극히 평범한 문은 앞으로는 좀 더 특수성을 지녀야 한다는 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지 지금부터 내가 통과하려는 문은 지금까지 내가 말한 문과는 전혀 다른 문이다. 안과 밖의 개념적인 문이 아니다

 

지금 통과하려는 문은 상상의 범위를 넘어서는 문이다. 저 문을 통과하고서 아, 여기가 아니군, 하며 다시 돌아 나올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문이 아니다. 은행의 문도 아니고 마트의 문도 아니다. 내가 지금 통과하려는 문은 의식적으로 하나의 완전한 체재를 이루고 있는 문이다

 

마치 살아있는 고래의 입처럼 꿈틀거리는 문이다. 저 문으로 들어가고 나면 문은 자의식이 강해서 입을 다물어 버리고 또 다른 통로의 문을 만들어 버릴 것이다. 실제로 문이라고 말하기에도 어색한 그런 곳을 지금 나는 통과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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