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는 마지막 날 두륜산의 오래된 여관을 찾았다. 벽지는 무명 미술가의 작품처럼 보이고 찢어진 달력은 철 지난 것으로 하나의 오브제 같았다. 형광등은 참 착했고 스쳐가는 것들이 머문 자리에 삶은 많은 것들을 남겼다. 방값 때문에 우리는 주인장과 흥정을 남기고 서로가 만족할 한만 결과에 옅은 미소를 짓고 방으로 올라 남겨진 것들을 만져본다. 늘어진 뱃살의 어매가 꼼짝 안고 누운 자리는 아들을 향한 그리움의 무늬를 남겼다. 큰 소리로 싸움을 하던 부부의 생채기는 통증을 남겼고 가난한 신혼인 남녀는 절구 같은 절박한 향을 남기고 우정 어린 친구의 입대를 같이 한 녀석이 훔친 눈물 자국은 기억으로 머문다. 두륜산의 오래된 여관은 여러 개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다. 잠깐 머문 자리에도 삶의 것들이 머무는데 떠나버린 아내는 머리카락 하나 남기지 않고 희미한 향도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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