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란 무엇인가? 손에 잡힐 듯 견고하게 보이지만, 실상은 안개처럼 모호하고 제멋대로 움직이는 고양이와 같다. 푸틴이 고양이 미샤를 쓰다듬는 사진을 본 적이 있는가? 권력자의 손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도도하게 눈을 감은 고양이의 모습은, 마치 권력의 본질을 보여주는 듯하다. 고양이는 부르면 오지 않고, 오히려 부르지 않았을 때 나타나는 경우가 많듯, 권력 또한 통제하려 할수록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고, 예상치 못한 순간 삶을 뒤흔드는 존재임을 시사한다.
고양이는 자유로운 영혼처럼 보이지만, 흥미롭게도 새 상자를 발견하면 주저 없이 뛰어들어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세상을 단절한다. 푸틴의 고양이 미샤처럼, 권력자들도 허물어져가는 세계 속에서 스스로 만든 권력이라는 상자에 갇혀 세상을 바라본다. 권력을 손에 쥐었다고 믿는 순간, 그는 이미 그 권력이라는 상자의 포로가 되어 버린다. 이는 권력이 가진 아이러니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머스크의 고양이 이름이 '슈뢰딩거'라는 이야기가 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불확실성의 상징인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권력 또한 모순된 가능성을 품고 있다. 권력은 살아있는 듯하면서도 죽어 있는 듯하며, 손에 쥐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라져버릴 수 있다. 권력자는 스스로 상자 밖에 있다고 믿지만, 실상은 그 권력이라는 상자 안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다고 볼 수 있다.
고양이는 상자 안에서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자신만의 공간에서 안식을 찾고,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고양이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맞는 상자를 찾아 안식을 얻지만, 인간은 어떨까? 우리 모두는 각자의 상자에 갇혀 살아간다. 권력, 가정, 혹은 스스로 만든 틀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갈망한다. 하지만 인간은 모순적인 존재이다. 상자 밖의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동시에 상자 안에서 느끼는 안정감에 기대기도 한다. 때로는 이 상자 안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어 하지만, 또 다른 때에는 익숙한 이 상자 안에 머물며 안정감을 느끼고 싶어 한다. 마치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우리는 살아있는 동시에 죽어 있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상자 밖으로 나
가면 새로운 가능성을 만날 수 있지만, 동시에 알 수 없는 위험에 직면할 수도 있다. 상자 안에 머무르면 안정감을 느낄 수 있지만, 동시에 잠재된 가능성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일까? 어쩌면 정답은 없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가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하지만, 가끔 우리는 갇힌 상자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낀다. 토니 모리슨은 "대개 형편없는 지도자가 있으면 많은 사람이 수치심을 느낍니다." (P. 200)라고 말했다. 우리는 때때로 지도자, 혹은 우리를 둘러싼 시스템의 부조리함에 수치심을 느낀다. 그 수치심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지금 어떤 상자에 갇혀 있는가?" 그리고 "나는 이 상자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가 그 상자의 의미를 정의하고 선택하는 것이다. 떠나야 할 상자인지, 머물러야 할 상자인지.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