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살아남은 것들은 그 나름의 살아남은 이유가 있단다.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하루살이 같은 미물조차도, 감탄할 만큼 놀라운 장기나 비결을 갖고 있지.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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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보다 Vol. 1 얼음 SF 보다 1
곽재식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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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틈틈이 읽었는데) 한 편 한 편을 읽을 때마다 사무실을 벗어나 짧은 여행을 다녀오는 기분이 들었다. 현실에 발붙인 소설과 완전히 현실을 벗어난 세계를 그리는 소설이 골고루 든 앤솔로지라서 좋았다. 가제본에는 문지혁 소설가와 심완선 평론가의 글이 없는데, 정식 출간본을 사서 해설과 기획의도를 마저 읽고 싶어졌다!

💙 내 픽은 <얼음을 씹다>, <차가운 파수꾼> !

🧊#곽재식 #얼어붙은이야기
상당히 설명적인데도 동시에 박진감 있는 이야기다. 무언가에 쫓기며 급하게 차를 몰고 가다가 트럭에 치여 죽을 뻔한 ‘나’에게 ‘생사귀’가 찾아오고 시간이 얼어붙는다. 생사귀는 이참에 시간을 돌리면 ‘나’를 살릴 수 있지만, 그 대가로 무려 은하계 10개 정도의 우주가 파괴되므로 여태까지의 삶을 돌아보며 신중히 결정하라고 당부한다. 도입부가 흥미로웠고 ‘역시 곽재식’이라고 생각했다.

🧊#구병모 #채빙
얼음 속에 갇힌 어떤 존재가 신으로 추앙받는다. 그는 움직일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지만 얼음 바깥의 소리를 듣고 광경을 볼 수 있다. 그를 ‘사한’이라고 부르는 사람들과 ‘현명’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대립하는 과정을 지켜본다. 시간이 더 흘러 그를 ‘생존자’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이 모든 일은 그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나고 “진절머리” 나지만 ‘얼음새꽃’을 통해 그의 마음을 가늠해볼 수 있다.

🧊#남유하 #얼음을씹다
빙하기가 시작되고 120여 년이 지났다. 불모지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제 인육 먹기를 당연시하게 되었다. ‘유리아’는 작년에 남편을 잃고 올해는 딸을 잃었다. 시체는 남은 가족들이 먹는 것이 원칙이지만 유리아는 차마 딸의 몸을 먹을 수 없어서 도망친다. 척박하고 강압적인 사회에서 저항하는 인간의 이야기(라고 요약하면 좀 납작한가…) 자체가 흥미로웠다. 단편소설 분량 내에서 주변 인물들의 인생사를 깊이 들여다보지 못한 게 아쉬워서 레일라, 알렉, 틸다의 이야기를 장편소설 버전으로 더 읽고 싶어졌다.
+작중 직접 등장하지 않는 ‘틸다’는 외지인이고 온실에서 커피를 재배한다. <지구 끝의 온실> 오마주인가?

🧊#박문영 #귓속의세입자
2034년 제25회 월드컵. 한국은 프랑스를 꺾고 4강에 올랐다. ‘해빈’은 해외 출장을 나왔다가 월드컵의 열기에 휩쓸린 상황을 불쾌하게 여긴다. 귓속의 세입자 역시 열기가 넘치는 상황을 좋아하지 않는다. “온기 때문에 행성 문명의 일부가 파괴”된 곳에서 온 외계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관중석에 앉은 해빈의 스트레스가 절정에 다다른 순간, 세입자는 잠시 시간을 얼려 버린다. 해빈은 그 틈에 축구 선수들과 관중들의 엉망진창인 얼굴을 관찰한다. 그리고 문득 인간을 혐오했던 마음을 고쳐먹기로 한다.
사실 해빈의 내적 갈등이 해소되는 순간이 잘 이해되지는 않았다. 귓속의 세입자가 12분 31초만큼 시간을 얼렸을 때, 해빈의 변화는 (지면상)단 6줄 사이에 일어난다. 뭔가 많이 생략된 느낌이라 아쉬웠지만, 군중 속에서 피로해하는 해빈의 성향에 내내 공감하며 읽었다.

🧊#연여름 #차가운파수꾼
‘선샤인’은 냉기를 내뿜는 존재이다. ‘노이’는 한 번도 그를 대면한 적 없지만 이모의 유언에 따라 선샤인을 챙기며 삶의 터전을 유지한다. 노이는 삭막한 세계에서 모든 관계가 ‘거래’라고 믿는 인물이다. ‘이제트’는 거래뿐만 아니라 호의를 베푸는 친구로서 노이와 관계를 이어나가는 인물이다. 노이가 이제트에게 마음을 여는 과정, 노이와 이제트가 선샤인을 대하는 태도에 주목하며 읽었다. 캐릭터가 분명한 소설이라 이 앤솔러지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다.

🧊#천선란 #운조를위한
‘운조’는 동물을 죽이거나 살리는 데 크게 동요하지 않는 수의사이다. “어쨌든 나는 그저 직장인으로서 할 일을 다 한다.” 정도의 마음가짐으로 대변할 수 있겠다. 운조가 어릴 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귀 한쪽이 짧고 눈이 붉은 토끼 ‘로타’를 키우다가 죽였을 때부터 마음의 짐이 쌓이기 시작한 듯하다. 그런데 어느날 우연한 사고로 인해 먼 미래로 떨어지고, 그곳에서 ‘로타’라고 이름붙인 생명체 덕분에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다. 운조는 또 다시 시간 여행을 하고 다시는 갈 수 없는 유토피아를 그리워한다.
이게 SF가 맞나? 그냥 판타지 같은데…라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한 소설이다. 장르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읽으면 아련하고 따뜻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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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의 시대 - 찬란하고 어두웠던 물리학의 시대 1900~1945
토비아스 휘터 지음, 배명자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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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특장점은 물리학자들을 소설적으로 묘사하며 그들의 업적을 들여다보는 데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30.
1903년 6월 어느 여름밤, 파리 13지구 켈러만 거리의 한 정원. 창밖으로 쏟아지는 불빝이 잔디밭은 환히 비춘다. 문이 열리고, 왁자지껄 쾌활한 목소리들이 먼저 들려오고 그다음, 사람들이 삼삼오오 무리지어 자갈길로 몰려나온다. 파티에 참석했던 사람들 한복판에 검정 원피스를 입은 한 여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마리 퀴리. 서른아홉 살의 물리학자다. (…) 마리 퀴리는 지금 생애 최전성기를 구가 중이다. 이날 마리 퀴리는 여성으로서는 프랑스 최초로 자연과학 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물리학 이론보다도 먼저 물리학자를 앞에 내거는 구성이기에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독자라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샘플북에는 여섯 꼭지가 수록되어 있다. 첫 번째 꼭지는 막스 플랑크, 두 번째는 마리 퀴리, 세 번째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네 번째는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기념비적인 발견을 다룬다. 다섯 번째(리허설)와 여섯 번째 꼭지(대논쟁)는 그 유명한 ‘제5회 솔베이회의’에서 아인슈타인과 보어 등의 격돌을 다룬다.

1️⃣1900년 베를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

2️⃣1903년 파리, 균열의 시작

3️⃣1905년 베른, 특허청 직원

4️⃣1925년 헬골란트, 넓은 바다와 작은 원자

5️⃣1927년 코모, 리허설

6️⃣1927년 브뤼셀, 대논쟁

내가 특히 밑줄을 치며 읽은 것은 네 번째와 여섯 번째 꼭지였다. 하이젠베르크의 이야기는 예전에 <부분과 전체>에서 읽은 기억이 있어서 다시 들춰보았는데, 이 책 <불확실성의 시대>가 1925년의 행렬역학 개발과정을 더 자세하고 생생하게 설명한 것 같다. 1927년의 솔베이회의에서 물리학자들은 대립 구도를 보이는데, 대략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305.
아인슈타인, 슈뢰딩거, 플랑크, 로렌츠 같은 나이 많은 물리학자들은 이미 확립된 고전 물리학 질서를 방어한다. 파동이 부드럽게 흐르고 입자들이 연속 궤도 위에서 움직인다. 그들은 ‘현실주의자’이고, 실재하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자 한다.

하이젠베르크, 파울리, 디랙으로 대표되는 젊은 ‘도구주의자’들은 양자역학의 발전을 열망한다. 이들은 원자와 방사선에 대한 풀리지 않은 질문들에 양자역학을 적용한다. 이들은 철학이나 의미론 또는 쓸데없이 꼬치꼬치 따지는 데는 인내심이 없다.

보어는 이들 진영에 소속되기를 거부한다. 그는 이 젊은 반항자들의 스승이지만, 아인슈타인의 이의 제기를 그냥 무시할 수가 없다. 오랜 친구에 대한 존중 때문에, 그리고 그 자신이 철학적 사유자이기 때문이다.

-
사실 여섯 번째 꼭지는 너무 많은 물리학자들이 등장하고, 양자역학에 대한 합의(?)가 아직 도출되지 않은 “아이디어의 혼란” 시대이기 때문에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다만 아인슈타인과 보어가 대립하여 유명한 말을 남겼다는 정도만 밑줄을 짙게 긋고 넘어갔다.

🔖315. 고전이론에는 관찰자가 관찰 대상에 미치는 영향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은 계속해서 그렇게 여기고자 한다. 그러나 보어가 그것을 무너뜨렸다. 원자 세계에서는 관찰자와 관찰 대상이 상호작용한다고 주장한다.

🔖321. (아인슈타인이 말한다.)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아요.” 보어가 대꾸한다. “우리는 신에게 세상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지시할 수 없어요.”

-
샘플북만으로는 아인슈타인, 보어,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 등이 주장하는 물리학 이론의 계보를 파악하기가 어려웠지만(당연함 대격돌 시대임😂), 정식 출간본에는 괴팅겐과 코펜하겐에서 물리학자들이 나눈 대화들이 수록되어 있기에 천천히 그 흐름을 따라갈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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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적성에 맞는 일을 해야 행복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적성이란 있다고도 할 수 있고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과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고 적성에도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장래희망에 종교인은 단 한 번도 고려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제가 과학자가 아닌 종교인으로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번민과 갈등이 있었겠어요?
(...)
‘내 적성은 과학에 맞으니까 나는 반드시 과학에 관련된 일을 해야 한다.‘
이런 생각은 고정관념일 뿐입니다.
내 적성이 어떤 직업에만 딱 맞는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무슨 일을 하며 살든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 최선을 다하다보면 그 일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적성을 발휘하게 됩니다. - P31

부모를 원망하는 것이 수행이 아니듯이 이미 지나간 나의 어리석음을 움켜쥐고 ‘나는 왜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하고 끊임없이 자책하는 것도 수행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 P39

불교에서는 보통 ‘욕심을 내려놓아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잘못 이해해서 현실의 괴로움을 회피하는 것을 내려놓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려놓는 것과 현실회피는 어떻게 다를까요? 가장 큰 차이점은 결과가 다르다는 겁니다. 내려놓으면 같은 문제가 재발하지 않지만, 현실회피는 재발합니다. - P51

배고플 때 밥 먹는 걸 욕심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피곤할 때 잠자는 걸 욕심이라고 하지 않지요. 추울 때 옷 입고 따뜻한 곳을 찾는 것을 욕심이라고 하지 않아요. 배가 부른데도 식탐 때문에 꾸역꾸역 먹는 것, 다른 사람이 굶어 죽는데도 나누어 먹지 않는 것, 이런 것을 욕심이라 합니다.
‘대통령이 되겠다‘ ‘부자가 되겠다‘ 하는 마음 자체가 욕심은 아닙니다. 욕심이라는 것은 원하는 것이 크냐 작냐의 문제가 아니에요. 하나의 사실을 두고 모순된 태도를 보일 때 그걸 욕심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돈을 빌려놓고 갚기는 싫고, 저축은 안 해놓고 목돈은 찾고 싶고, 공부는 안 하고 좋은 대학에 가고 싶은 게 바로 욕심입니다. 이치로는 맞지 않는데 내가 바라면 바라는 대로 이루고 싶은 헛된 생각을 욕심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자기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괴로워합니다. 그 괴로움의 밑바닥에는 욕심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욕심을 내려놓고 대신에 원을 세우라고 합니다. - P54

어떤 일을 시작할 때는 ‘공덕을 쌓겠다‘고 생각하기보다 ‘빚을 갚는다‘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그러면 살다가 온갖 어려움이 닥쳐도 ‘내가 빚을 많이 졌구나‘ ‘내가 지금 빚을 열심히 갚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어려움을 쉽게 넘어갈 수 있어요. - P61

된장찌개는 구수하고, 카레 냄새는 역겹다는 느낌은 나의 업식의 반응일 뿐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뒤집어서 바깥에 있는 대상에 좋고 나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된장찌개는 좋고, 카레 냄새는 싫다고 규정하는 것이지요.
결국 똑같은 빛깔인데 내가 어떤 색안경을 끼고 보느냐에 따라서 내 눈에 다른 색깔로 보이는 것뿐이에요. 그래서 좋고 싫음이 나로부터 비롯된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 느낌이 나로부터 온 것임을 정확히 안다면 좋다 싫다 시비할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그 감정에 빠지지는 않게 됩니다. - P70

지나간 잘못을 후회하며 자책하는 것은 어리석은 겁니다. 후회한다는 건 실수를 저지른 자기를 미워하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스스로를 미워하는 마음이에오. 후회는 자기에 대한 또다른 학대입니다. ‘나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아야 할 훌륭한 인간인데, 내가 그런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가 없는 거예요. 이렇게 ‘잘난 나‘라는 게 마음속에 있기 때문에 후회를 하는 겁니다. - P96

열등의식이 허상임을 알아야 열등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 존재는 다만 다를 뿐이라는 것을 알아서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열등감과 우월감을 넘어 행복으로 가는 첫걸음이에요.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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