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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이혼주례를 했습니다 - 가정법원 부장판사의 이혼법정 이야기
정현숙 지음 / 푸른향기 / 2024년 7월
평점 :
이혼이라는 삶의 파도
푸른향기 신간도서 '오늘도 이혼주례를 했습니다.' 이 책은 국문과 출신의 현직 가정법원 부장판사가 이혼주례를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 그 자녀들, 이혼 이후에 일어나는 수많은 사례를 다루고 사건을 처리하면서 가졌던 판사의 솔직한 마음을 담아낸 책입니다.
협의이혼 및 이혼조정사건에서 판사는 남편과 아내의 이혼의사를 확인한 뒤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종국적으로 이혼을 선언하는데 가정법원 판사들 사이에서 이것을 '이혼주례'라고 지칭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살고 싶어 이혼하고 싶다는 아내, 남편의 지독한 술버릇을 고치기 위해 이혼법정에 온 아내.
책을 통해 이혼재판 중에 자살을 한 남편, 첫사랑 여자와 주고받은 휴대폰 메시지가 들통나 이혼당한 남편, 불륜남과 만나는 아내를 포기할 수 없는 남편, 어린아이 손을 잡고 이혼법정에 온 부부 등 가사전문법관이 이혼법정에서 만난 풍경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결혼 행진이 모든 이들의 축복과 환호 속에 걷는 꽃길이라면, 이혼을 위한 행진은 매순간 상처 입는 지리한 전투입니다. 그러나 죽을 만큼 힘든 순간을 가까스로 지나 이혼을 위한 행진을 마치고 너덜너덜하게 찢겨진 상처투성이로 그 끝에 도달할 지라도, 그 긴 터널을 마치고 나온 순간부터 그 상처는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_저자의 말 중에서
상상이상의 지난한 과정
책을 읽으며 작가가 되고 싶었던 저자가 왜 가정법원에서 글을 쓰지 않고서는 견뎌낼 수 없었는지 그 마음에 공감이 되었습니다. 깨어져 가는 가정들, 회복될 수 있다면 그렇게 되도록 도와주고 싶고 헤어져야 한다면 잘 헤어지게 마무리 지어주고 싶은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무책임한 어른들의 싸움에 아무런 대비 없이 내 팽겨진 아이들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이 찢어질듯 아팠을까요.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보호해주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혼신의 힘을 다하여 이혼주례를 했다는 문장을 읽으면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p.236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일기장을 펼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머릿속이 너무나 복잡하여, 가슴이 무언가에 꽉 막혀있는 듯하여, 일기장에 뭐라도 끼적이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 여러 날이었습니다. 가정법원은 그런 곳이었습니다. 내게 다시금 글을 쓸 수 있는 열정을 품게 해준 고마운 곳. 늘 가슴 시린 곳. 애잔한 곳.
힘들고 아프고 분노한 시간들
저자의 말처럼 결혼식을 할 때는 그렇게 오랜 기간 준비하면서 많은 계획을 세우고 그 하루를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행복한 모습으로 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이혼은 그 시간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속전속결인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 그 누구보다 서로를 아끼면서 사랑했을 남녀가 형언하기 힘들 정도의 비참한 모습으로 서로를 헐뜯으며 헤어지려 하는, 싸늘한 눈빛조차 교환하지 않은 채 생기 없이 돌아가는 어느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요. 책을 읽으며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어린 아이들이었습니다.
엄마 아빠의 처절한 싸움에 무방비 상태로 온몸과 영혼으로 맞닥뜨려 상처받으며 아파하는 어린 자녀들의 모습이 상상이 되어 마음이 많이 무거웠습니다. 아이들이 학대당하는 모습, 슬퍼하는 모습에 저자처럼 가슴이 무언가에 꽉 막혀있는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p.7
인생이란 그런게 아닐까요. 뭔가 특별할 것 같은 사람도, 시간도, 사건도 전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렇게 특별할 것도, 자랑할 것도 없는 뭐 그런, 그저 함께 살아가는 삶. 그러니 너무 애쓰지도 말고 너무 비장해지지도 말며 그저 내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조금만 더 다정해지는 삶. 그런 삶이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매순간 상처 입는 지리한 전투
4장에는 '이혼주례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사전문법관인 저자와 이혼전문변호사인 남편의 이야기를 통해 보통사람과 다를 바 없는 부부의 일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혼전문판사의 가정사는 뭐가 달라도 다르겠지 했던 저의 예상이 빗나가던 순간이였습니다.
이혼법률 전문가들도 다들 저렇게 극복하면서 사는구나. 이혼전문가도 별수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너무 애쓰지도 말고 너무 비장해지지도 말며 그저 내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조금 더 다정해지는 삶. 그런 삶이면 충분하지 않겠냐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되었습니다.
나는 큰 문제가 없고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또 매일이 전쟁 같고 왜 나에게 이토록 어렵고 힘든 문제가 생기는걸까 고민되시는 분들이 꼭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전문 상담사의 상담을 한번 받아보실것을 추천하는 저자의 말처럼 서로가 힘들때는 상담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P.197
지금도 어디선가 이혼가방을 싸고 있을 필부필부에게 갈등의 불씨를 식힐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다만 그것이 다른 여성의 희생하에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기를, 이 사회가 아이들을 키우기 좋은, 힘든 엄마 아빠에게 실직적인 도움이 되는 그런 사회로 변화되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위로와 감동
이 책은 차가운 판결문이 아닌 원만한 조정으로 깨어진 가정에게 마지막 위로를 주며 그 끝을 함께 하려는 판사의 애씀과 판결문에는 글로 담아낼 수 없는 판사의 마음이 진솔하게 담긴 책입니다. 이혼이라는 삶의 파도에 휩쓸려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위로가 감동적이고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가사 전문 법관으로서 오랜 기간 이혼 소송을 진행하면서 이혼에 이르는 과정 또한 담겨 있습니다. 저자가 실제 처리했던 사건들을 바탕으로 쓰여진 책이라 기존의 어떤 이혼 관련 서적보다 전문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이혼소송 및 가사 노동과 그 절차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이혼으로 고민하는 부부뿐만 아니라 더 행복한 부부생활을 원하는 이 땅의 모든 부부, 그리고 언젠가 부부가 될 청춘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합니다. 사건들을 바라보는 판사님의 애정과 철학이 담긴 이 책으로 큰 울림과 감동, 위로와 응원을 받을 수 있을거에요.
이 지구별 봄날의 향기로운 햇살과
한여름날의 아리따운 파도와 가을날의
갈색빛 바람과 겨울날의 포근한 첫 눈을
절대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_저자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