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파 - 2018년 제3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박해울 지음 / 허블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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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의 눈빛은 지금까지와 달랐다. 마치 타오르는 듯했다. 기계에게서 느껴본 적 없는 느낌이었다. 충담은 두려웠다. 로봇은 충담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그 너머, 결코 닿을 수 없는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제야 충담은 깨달았다. 이 로봇은 단순히 인간을 닮은 게 아니다. 인간 이상의 무언가다. (p.188)

 

얼마 전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알게 된 후 한국과학문학상의 존재와 재미있는 SF 소설책을 만드는 허블도 알게 됐습니다. 이어서 이번에는 허블을 통해 재미있는 SF 소설 한 편을 만나게 됐습니다. 박해울 작가의 <기파>입니다.

 

주인공 충담은 딸의 수술비를 모으기 위해 우주에서 택배를 배달합니다. 그러다 지구에서 영웅으로 알려진 의사 기파를 찾는 재단의 어마어마한 사례금을 알게 되고, 난파된 우주선 오르카호에 찾아 오릅니다. 난파된 오르카호는 충담의 예상과는 달랐습니다. 어느새 충담은 오르카호 안에서 만난 아누타와 의사 기파를 수색하며 난파된 오르카호의 진실을 쫓게 됩니다.

 

<기파>가 재미있었던 점은 미스터리의 소재도 사용하고, SF배경의 이야기지만 쉽게 읽히고 이해할 수 있었던 점입니다. 이야기는 현재 시점에서 난파된 우주선에서의 일을 기억하며 시작합니다. 단순한 우주선 난파사고가 아닌 듯한 분위기를 띄우며 사건의 진상을 거스르는 내용은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저로써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중간중간 단편소재처럼 소설 속 기파의 평전을 심은 것도 센스있고 재미있는 소재였다고 생각합니다. 여느 과학소설처럼 단순히 과학적 소재만 부각시킨 이야기가 아닌 인간의 삶과 모호성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고민하도록 만드는 소설이었습니다. 우리가 알던 영웅이라는 존재를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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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피쉬
대니얼 월리스 지음, 장영희 옮김 / 동아시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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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 나는 그것이 내 운명이라고 생각했어. 큰 연못에서 노는 큰 물고기, 그게 바로 내가 원했던 거란다.

 

아들은 아버지를 어떻게 정의할까, 그런 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을까? 대니얼 윌리스의 <빅 피쉬>는 주인공 윌리엄이 평범한 사람이면서 위대한 신화적 영웅이기도 한 그의 아버지인 에드워드의 일생을 이야기한다. 단편적으로 구성된 에드워드의 삶은 마치 판타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머리 둘 달린 여자를 만나고, 아름다운 여자를 쟁취하고, 마음에 드는 마을을 만나더니 그 마을을 통째로 살 수 있는, 홍수로 난리가 난 마을을 구하는 아버지는 마치 신화에 나오는 영웅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스운 농담으로 아들의 걱정을 지우려는 아버지의 모습도 위대한 영웅처럼 보이는 건 왜일까? 신처럼 보이고 싶었던 아버지, 아들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아버지. 에드워드는 윌리엄에게 영웅처럼 보이고 싶었던 영웅이었다.

 

내가 자라남에 따라 아버지는 줄어들었다. 이런 논리라면 언젠가 나는 거인이 될 것이고 에드워드 블룸은 너무나 작아져서 이 세상에서 보이진 않는 존재가 될 것이었다.

 

점점 너무나도 작아지는 아버지를 어떻게 보내야하고 어떻게 기억해야할까. 신화 속 영웅이기도 한, 큰 물고기처럼 보이는 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 본문 중 제일 아름답다고 느꼈던 문장

그는 자기 딸이 하늘에 달을 걸어놨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때때로 실제로 그렇다고 믿었다. 딸이 하늘에 달을 걸지 않았더라면 하늘에는 아예 달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별들은 무수한 소원들이며, 그리고 언젠가는 그 소원들 모두가 이루어 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녀, 자신의 딸을 위해서 말이다. 그는 딸이 어렸을 때 딸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이 이야기를 해줬다. 그리고 지금은 그가 늙었기 때문에, 그 생각을 하면 행복해지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믿었다.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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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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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동아시아출판사 계열의 허블을 알게되고 좋은 공상과학소설을 몇 권 접해봤는데 운좋게 서평단 서포터즈로 활동하게 되었다. 내가 활동하는 책 중 한 권은 올해 정말 많은 관심이 갔던 김초엽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평소 독서편식이 심한 나는 SF 소재를 안 읽은지 꽤 오래된 탓에 김초엽이라는 작가분도 눈에 익지 않았고, 한국과학문학상에서 한 작품은 대상을 한 작품은 가작, 놀랍게도 두 작품의 수상경력이 있단 사실도 이번에 알았다.

SF는 끊은지(?) 오래라 서평단에 뽑히고 얼떨떨했다. “다 읽을 수는 있을까?”,

“서평에 뭘 적어야 하는거지?” 등. 결론부터 말하면 괜한 걱정이었고 나는

김초엽 작가한테 사랑에 빠졌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는 총 7편의 단편들이 실려 있는데 모든

작품들이 재미는 기본, 문장력이 좋아서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다 빛나고 있었다.

가장 좋았던 작품은 「관내분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이다. (세 작품 중 두 작품은 수상작 출신인데, 내가 좋다고 느낀 만큼 다른 사람들도 좋은 느낌을 받아 수상을 받았나보다!)

"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어.’

먼 곳의 별들은 마치 정지한 것처럼 보였다. 그 사이에서 작고 오래된 셔틀 하나만이 멈춘 공간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그녀는 언젠가 정말로 슬렌포니아에 도착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끝에.

남자는 노인이 마지막 여정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187‧188p

이 일곱 가지의 단편집의 매력은 전부 다 SF의 과학기술을 배경과 소재로 사용했지만 정작 인류가 그러한 발전을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모습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외부에 의해 위험에 처한 상황, 타인과의 관계, 나를 통해 깨닫는 나의 생각 등. 여성, 노인 등 사회적 약자가 이야기의 주인이 되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단번에 알 수 있는 매력적인 단편집이다.

"

재경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래, 굳이 거기까지 가서 볼 필요는 없다니까. 재경의 말이 맞았다. 솔직히 목숨을 걸고 올 만큼 대단한 광경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윤은 이 우주에 와야만 했다. 이 우주를 보고 싶었다.

가윤은 조망대에 서서 시간이 허락하는 한까지 천천히 우주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언젠가 자신의 우주 영웅을 다시 만난다면, 그에게 우주 저편의 풍경이 꽤 멋졌다고 말해줄 것이다.

-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318‧319p

누가 나에게 재미있는 소설을 추천해달라고하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추천할 것이다. 앞으로의 길이 기대되는 젊은 작가를 알아 정말 다행이다. 빛나는 글을 발견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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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작은 아씨들 - 누구보다 자유롭고 다채롭게, 삶의 주인공을 꿈꾸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서메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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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 ‘작은 아씨들’을 일상생활의 필요한 순간들에 적절히 대입하는 <나와 작은 아씨들>입니다. 작가는 작은 아씨들의 주인공 메그, 조, 베스, 에이미의 이야기를 본인의 성향이나 일화에 덧붙여 다채롭게 이야기합니다. 더불어 표지 디자인과 내부에 그려진 따뜻한 일러스트도 작은 아씨들을 연상하게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덕분에 작은 아씨들을 읽어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을 같이 읽은 것 같은 기분입니다.

ㅡ 다정한 동생의 따뜻한 위로는 메그가(그리고 우리들이) 잠시 잊고 있었던 소박하면서도 소중한 행복을 새삼 일깨운다. “그랬지, 베스. 난 정말 우리가 더 행복하다고 생각해. 비록 일을 해야 하긴 하지만 우리끼리 재미있게 놀 수 있잖아. 조의 말을 빌리자면, 우린 죽여주게 즐거운 네 자매야!” p33

작가의 에세이와 출간된 지 150년이나 지났음에도 작은 아씨들에서는 현재의 필요한 마음가짐과 생각들이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내가 만들고 싶은 행복을 끝까지 지킨 메그,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지키고 실현해내는 조, 삶의 마지막까지 현명함과 희망을 지켜낸 베스, 늘 현실적인 시각을 지닌 채 목표를 지켜나간 에이미. 거기다 작은 아씨들의 이야기를 적절히 사용해 멋진 깨달음을 이야기한 서메리 작가까지. 다섯 사람의 공통점은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내가 이루고 싶은 것들을 끝까지 지켰다는 점입니다. 너무나도 개성 있게, 그렇지만 끝까지 소신을 잃지 않았다는 점에서 닮은 다섯은 누가 봐도 사랑스럽지 않나 생각합니다. 누구보다 작은 아씨들을 응원하고 사랑하는 작가의 생각처럼.

ㅡ 하지만 그녀들의 빈틈 있는 삶은 어쩐지 아름답다. 실수를 저지르고 당황하는 모습은 인간적이고, 타고난 결점을 고치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사랑스럽고, 완벽하진 못해도 조금씩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은 대견하기 그지없다. 무엇보다도, 서로를 다독이고 지탱하며 불완전함 속에서도 행복을 찾아가는 그녀들의 모습에서는 밝고 따사로운 빛이 스며 나온다.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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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도 좋아 - 성덕의 자족충만 생활기
조영주 지음 / Lik-it(라이킷)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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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의 첫 브랜드 ‘Lik-it 라이킷’의 시작 책으로, 조영주 작가님의 ‘덕후 생활기’를 볼 수 있었다. 여러 가지를 덕질하는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분홍색 표지+흑색으로 슥슥 그린 일러스트가 있는 표지를 보자마자 아, 이건 읽어야 한다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꽂히는 건 시간문제! (적당한 두께, 한 손에 착 감기는 그립감이 앞으로의 라이킷 책들이 시리즈가 된다는 점이 기대된다.) 


한 사람의 덕질연대기와 남 일 같지 않은 불운한 순간들을 버텨낸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정말 좋았다.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면, 덕후끼리의 공감을 읽고싶어서 읽었더니 작가님의 다른 덕질 대상에 영업 당했다는 점? 예를 들면 하루키라던지, 하루키라던지.. 하루키..

지금의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평범한 하루에서 비롯된다. 평범하게 아침에 일어나 평범하게 밥을 먹고, 평범하게 산책을 즐기고, 평범하게 친구들을 만나고, 평범하게 글을 쓰고, 평범하게 웃고 떠들다 하루를 모두 보내고 마는 당연한 일상. 이런 일상의 소소함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이 내 행복이 됐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예전의 그런 소녀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는 거라고, 미래의 나는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할 것이라고. 그렇게 미래의 내가 사랑할 나는 조금 더 성숙한 여인의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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