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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을 때마다 조금씩 내가 된다 - 휘청거리는 삶을 견디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법
캐서린 메이 지음, 이유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2년 11월
평점 :
서른 아홉살이 되어서야 자신이 자폐 스펙트럼 상태임을 알게 된 저자가 영국의 해안길을 걸으며 스스로를 받아들인 여정을 기록한 회고록.
나는 웃으며 "네, 전 괜찮아요. 고마워요"라고 대꾸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소리 지르고 있었다. '제발, 누가 나 좀 도와줘요.'-p.102
1. 저자는 수차례 도움을 청했지만 매번 일정한 유형에 들어맞지 않고, 심하게 괴로워 보이진 않는단 이유로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나름대로 생존책을 강구했다. 남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하고 모방한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세상이 원하는 유형의 인간으로 사느라 고통스러웠다.
2. 다행히도 그녀에겐 '한 사람'이 있었다.
실제 내 모습에 대해 남편에게 뭐라고 말할지 생각한다. 그리고 내 얘기에 남편이 뭐라고 할지 궁금해 한다. 내가 생각하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놀라면서도 수용하는 반응이다. (중략) 최악의 시나리오에서 그는 단지 한숨을 내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p.110
저자의 남편은 최상의 시나리오 이상의 반응을 보였다. 자폐 스펙트럼 상태인 이에겐 서로 간에 접촉이 있을 것이라는 암묵적 합의가 매우 중요하단 걸 염두에 두고 다음을 보면 당신의 가슴도 벅차 오를 것이다.
"내가 알기도 전에 그는 알고 있었다. 나는 평생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름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때로는 우울해지거나 흥분할 때도 있고, 사람들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고, 사람들과 잘 지내기 위해 남들보다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내가 줄곧 스스로를 어떤 사람으로 규정하며 사는 동안, H는 내가 내 규정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임을 알고 있었고, 나를 위해 홀로 조용히 분투하면서도 한 번도 내가 그 사실을 알아차릴 정도로 모질게 굴지 않았다. "오 , 세상에." 나는 말한다. "지금까지 당신이 나를 돌보고 있었던 거야?" 그러자 H가 웃으며 말한다. "아니, 아니야. 그런 건 정말 아니야."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한다. "지금 내가 당신을 안아줘도 될지 모르겠네." 나는 말한다. "좋아."-p.116
아니, 에세이라면서 어지간한 로맨스물은 사뿐히 즈려 밟아주면 어떡하냐고.. 완전 ㅠㅠ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지만 역시 다 필요업쒀!!! 진짜 나를 사랑해주는 '단 한 사람'만 있으면 살 수 있는 거다. 진짜 기가 맥히다, 기가 맥혀!
3. 그런데 여기서 잠깐!
저자는 이 책을 다시 쓴다면 '아스퍼거 증후군'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서문에서 말한다. 자폐증 연구의 선구자로 불리는 의사가 나치 정권에 부역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띠지에는 '서른 아홉에 진단받은 아스퍼거 증후군'이란 문구가 버젓이 써 있다. 그 의사가 자폐 연구에 기여한 공로를 상쇄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도 있고, 널리 쓰이는 용어이기도 하지만 이래서는 과거에 저자를 진료했던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
이 책을 쓸 즈음 나는 ASD (Autism Spectrum Disorder 자폐 스팩트럼 장애)라는 용어에서 장애를 나타내는 'D'가 늘 마음에 걸렸다. 나는 자폐증을 어떤 특정한 상태가 신경학적 차이로 여겼을 뿐, 본질적인 결함으로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는 마지못해 표준 용어를 썼지만, 그 뒤로는 좀 더 중립적인 용어인 ASC (Autism Spectrum Condition 자폐 스펙트럼 상태)를 사용하기로 했다. 여러분에게도 이 용어를 권한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는 정말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려 깊은 용어를 선택할 때 비로소 변화를 앞당길 수 있다.-p.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