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사슴 - 한강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24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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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 《채식주의자》를 낳을 씨앗을 품은 작품으로 보일 만큼 두 작품의 공통점이 많다. 정신이 이상한 여자를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된다는 점, 그 여자를 둘러싼 주변사람들의 시각으로 주로 전개된다는 점이다. 또한 그 여자와 가장 가까운 관계일 또다른 여자가 주요 화자라는 점도 그렇다. 작가의 첫 장편소설로 초기작이라 그런가 문체가 아직 온전히 다듬어지지 않아 중간중간 덜컥거리는 데가 있으나 나름대로 풋풋하여 읽을 맛이 났고 작가가 어떻게 자기 문체를 완성해갔는지 엿보여 흥미로웠다. 지금의 한강 작가가 있기까지 부단히 노력하고 글 작업을 고민했음을 초기작과 최근작을 이어서 보면서 느꼈다.
《채식주의자》에서는 개인적으로 너무나 싫어하는 인물이 있어 읽는 내내 화가 치밀었는데 이 소설에선 주요 등장인물 중 그만큼 혐오스러운 인간은 보이지 않아 마음이 편했다. 인영, 명윤, 장, 의선 넷 중에 조금이라도 싫은 인물이 있었다면 다 읽고 중고로 팔아넘기려 했으리라. 책 디자인과 장정이 마음에 들어 이 시리즈는 계속 모을 생각이라서 아주 다행스러웠다. 인영은 처음부터 등장하고 일인칭 화자이기도 해서 감정 이입이 유독 잘 됐으나 실제의 나는 명윤에 가깝다고 느꼈다. 그래서일까 처음엔 명윤에게 자기 혐오에 가까운 감정을 느껴 거리를 뒀으나 점차 그에게도 그만의 서사가 덧붙여지면서 이해할 만한 구석이 있음을 알고 마음 한쪽을 내주었다. 인영과 명윤은 유사 가족, 유사 남매라는 느낌을 받았고 그래서 명윤과 의선이 성적인 관계로 나아갈 때도 큰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단지 얼마전 읽은 문예지 《문학3》 4호 20쪽, <더이상 피해자가 아닌 그녀들> 칼럼에 실린 '여성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공동체가 존중해야 할 존재로서 자신의 피해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진실만을 말하는 이성적 주체여야 한다. 일관성 없는 진술, 우울증, 불안정한 정신상태를 겪는 여성, 지적장애가 있는 여성의 위치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로 옮겨진다.' 를 떠올리고 약간 거북살스러워 했다 또한 사진작가 장의 이야기도 따로 떼어놓고 보면 흥미로우나 소설 전체를 놓고 봤을 때는 구성상 과잉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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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반격 - 2017년 제5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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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술술 잘 읽힌다. 요즘 같이 빠름을 중시하는 세상에서 잘 읽힌다는 건 장점이다. 특히 문학이라고 하면 어렵다거나 졸립다고 하는 분들이라면 마음 편히 읽어도 좋다. 연애 소설의 두근거림을 느끼고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밀당을 보고 싶은 분에게도 권한다.
단점이라면 이야기 진행이 빠르다 보니 사건 해결에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부분이 있었다. 여자 주인공인 지혜가 부장에 대해 험담하는 대목에선 요새 그렇게 매너없이 살면 후배에게도 한 소리 듣지 동의하며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남자 주인공인 규옥이 지혜에게 눈살 찌푸려지는 대상이었을 부장에게 한방 먹이겠다고 한 행동이 사이다 같다기 보다는 사내 집단 따돌림의 시작을 떠올리게 했다. 뭐 그렇게 쪽지에 강하게 쓰지 않으면 어지간해서는 말을 안 들을 고집센 나이이기는 하지만 그런 쪽지를 보내는 게 멋있다기 보다는 철없고 생각이 부족해보였다. 전개 또한 예상한 대로 흘러가 맥이 빠졌다. '알고보니 나쁜 사람이 아니였네요. 오해해서 죄송, 데햇.'이란 느낌이었다고 할까. 지혜와 규옥의 일명 '썸'도 다른 장르 소설이라면 흥미롭게 읽었을 것을 여기선 원래 다른 진지한 메시지를 던지려 했을 텐데도 둘의 관계만 유독 도드라져 이야기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아리송했다. 규옥의 정체가 알고 보니 부잣집 귀한 도련님이었다는 것도 역시나였다. 지혜가 다면적이고 어느 정도 공감되는 것과 달리 너무나 평면적인 캐릭터다. 지혜는 일인칭 주인공이니 속내를 독자에게 다 내보여 내가 그렇게 느꼈을지 모르지만 규옥이 그렇게 행동을 하는 이유가 맥락없어 보였다. 의사 아버지에게 반발하여 그렇게 됐다고 하면 너무 드라마 같지 않나. 뭐 이렇게 불평을 늘어놨지만 문체가 간결하고 이야기 전개가 속도감 있는 건 마음에 든다. 좀 더 캐릭터를 연구한다면 더 흥미롭고 재미있는 소설을 장래 쓰실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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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남 오빠에게 (어나더커버 특별판)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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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단어 조합 자체로 보면 '한국'과 '남자'란 상당히 중립적인 조합인데 왜 '한남'이라 부르면 부들댈까. 한국 남자 맞잖아요. 일본 남자 중국 여자가 아닌. 흥미진진.
짐작컨대 대상화되고 타인에게 평가받는 것에 익숙지 않아서인 듯? 또한 남자가 사람의 표준 기준이라 믿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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릿터 Littor 2017.10.11 - 8호 릿터 Littor
릿터 편집부 지음 / 민음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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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만큼은 아니지만 중병에 걸리면 삶의 뿌리가 통째로 흔들리는 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어리면 어린 대로 젊으면 젊은 대로 늙으면 늙은 대로 몸에 대한 걱정을 늘 하고 살아야한다. 릿터 이번 호 칼럼들은 '몸-테크놀로지'란 이번 호 소제목에 맞게 우리 사회에서 개인의 몸과 사회가 어떻게 엮이고 기술 발전은 그런 관계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대한민국에서 삶의 전 단계에 걸쳐 벌어지는 몸의 관리 양상, 여성의 몸과 과학기술 발전의 상호관계, 장애와 기술 발전에 대한 담론 등등 최신 담론들을 쉽게 읽어낼 수 있다. 현대 몸 관리 기술의 변화는 어떻게 나아갈지 어쩌면 올더스 헉슬리 소설 <멋진 신세계>에서 보여주는 세상이 더는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현실 자체이고 그게 당연한 일로 여겨지는 세상이 조만간 닥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금은 비윤리적으로 보이는 일이 당연한 일로 지금은 당연한 일이 비윤리적인 일로 바뀔지 모른다니. 윤이형의 <손바닥>이란 짧은 소설을 읽으며 한때는 부모가 자식을 어떻게 키우든 관여하지 않는 게 당연히 여겨졌고 민간요법을 쓰는 것에 거리낌이 없으며 예방주사 접종 역시 지금과 같이 강제하진 않았던 세상을 떠올렸다. 앞으로 건강 기술 관리가 어떻게 변할지 문외한으로선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밖에 흥미롭게 읽은 에세이는 강지혜 시인의 제주살이 에세이였다. 역시나 <효리네 민박>을 보며 제주살이를 잠시나마 꿈꿔봤던 내게 만만치 않을 거라 엄포를 놓으면서도 마지막에 자연의 반딧불이라는 달콤한 사탕을 한 개 쥐였다.
서경식 선생님의 인문기행 에세이도 한단락 지어진 느낌이다. 양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유럽이란 혼란스러운 세상을 산 예술가들은 저마다 기로에 섰고 각자 자기 길을 걸어갔다. 그들 생의 여정을 그들이 낳은 미술품을 통해 사유하는 것은 일반인인 우리에게도 통찰할 거리를 준다.
인터뷰는 요즘 '핫한' 분들이 함께했다. 사실 영화는 잘 몰라서 김양희 감독의 영화도 아직 본 적 없지만 호감이 생겨 찾아볼까 생각했고 박준 시인 인터뷰에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복수는 누군가를 마음속으로 오래오래 미워하는 것이다'란 그의 말에 위로를 받았다. 기억하는 행위에 대한 그의 존중어린 마음가짐이 좋았다. 요새 가장 뜨거운 두 분인 리베카 솔닛과  조남주 소설가, 조남주 소설가가 리베카 솔닛을 인터뷰했다니 과연 '릿터'는 요새 뜨거운 화제가 뭔지 잘 파악한다. 리베카 솔닛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즐거이 읽을 것이다.
소설은 <오리>를 읽고 처음엔 전원풍경을 배경으로 한 오리와 노부부, 마을 아이들이 보여주는 따뜻하지만 애잔한 동화 같은 이야기리라 예상했는데 왠걸 오리가 심심하면 죽어나자빠져 몰래 다른 오리로 갈아치우는 것도 그렇고 마을 아이들이 알고 보니 순박은커녕 되바라짐의 극치였다는 것에서  이거 혹시 범죄 미스테리로 결말이 나는 거 아니냐 조바심 내며 읽었다. 결국 노부부 아들이자 주인공 화자의 남동생에게 아이가 생기며 갈등은 무난히 해결됐지만 세상에 온전히 믿을 건 없다는 얘긴가 싶어 기분이 묘했다. 김숨의 소설은 여성 노동자의 신산한 삶을 보여주고 있다. 이주란 소설은 주인공이 자신의 삶을 한 친구와의 관계와 엮어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보내는 형식으로 오래 알고 지내는 이가 완전 타인보다 더 상처를 줌을 보여준다.
시는 김혜순 시인의 연작시가 인상깊었다. '아빠'의 죽음에 관한 화자의 느낌들을 적은 듯한데 '엄마'가 아닌 '아빠'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기묘했다. 보통 이런 죽음에 대해 말할 때 특히 성별이 여성인 시인이라고 하면 엄마의 죽음과 엄마의 몸에 대해 얘기하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왜 아빠를 제재로 삼았는지 단순히 '아빠'의 죽음이 더 와닿았다거나 더 최근의 일이었다고 하면 답이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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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보잡 관심 종자에게 먹이를 주지 말자.
하마터면 얕은 수에 넘어갈 뻔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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