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에 대처하는 자세 - 혼란의 늪에서 벗어나기
린다 로세티 지음, 윤효원 옮김 / 싱긋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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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교유서포터즈에 선정되어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다들 어느 콘텐츠에서든 "세상의 주인공은 나다"라는 말을 들어 볼 수 있었을 거다.

이 문장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남과 비교하지 말고, 본인 나름대로 행복한 삶을 가꿔나가길 바란다는 거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만의 행복을 만들어가야 할지, 나만의 길이 무엇인지, 타인과 나를 다르게 보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사는 게 무엇인지, 나에게 주어진 시련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지 알려주는 곳은 없었다.

이 문장이 긍정적인 힘을 가진 건 변함없지만, 추상적인 성격이 강한 편이라 온전히 와닿지는 않았다.

같은 맥락에서 해당 도서는 '자기감'을 지금껏 생각지 못했던 여러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감정을 느끼는 심리적인 원리와 본질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

이는 지금껏 만나 보지 못했던 신선함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살면서 필수적으로 겪게 되는 환경 변화와 예기치 못한 슬픔과 고난을 겪었을 때 들이닥치게 되는 '혼란'이라는 내면 변화를 그동안 어떻게 받아들였나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감정에 지배되었든, 어느 순간 극복하게 되었든 나는 그 당시 어떤 행동을 했었고, 어떤 판단으로 그 행동을 실행하게 되었는지 단번에 생각해 내기 어렵다.

이는 혼란을 희미하게 한 행동으로 인해 나는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인지하고, 어떤 것에 큰 가치를 두는지, 나에게 들이닥친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한 번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수학 문제나 퀴즈를 푸는 것처럼 각 챕터마다 엉켜있던 내면을 밖으로 꺼내고, 스스로의 질문에 답을 매겨보는 과정이 물론 유익하기도 했지만, 너무 재미있었다.

직접적인 타인과의 대화 없이, 스스로 나의 강점을 발견해 새로움을 느끼고, 이를 나의 문장을 통해 끌어올리는 과정은 처음이다.

책은 정말 제목대로 무언가를 익숙함을 벗어나 새롭게 시작하거나 준비할 때, 소중한 존재를 잃었을 때 맞닥뜨리게 되는 '불안'에 대처할 수 있는 든든한 나의 가이드가 되어줄 거다.


내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고 가기


빠르게 변화해 가는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나 스스로를 되돌아볼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본다.

익숙함에서 멀어지면 어느 누구든 혼란에 빠지게 되고, 감정에 지배되는 순간 자존감이 하락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는 어떤 사람인지조차 알기 힘든 지경까지 올 수 있다.

책은 우선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확실히 인식하는 것을 강조한다.

이 부분부터 강하게 짚고 넘어가야 나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게 가질 수 있다는 걸 설득력 있게 말해준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이 질문은 나를 구성하는 내면 속 수만 가지의 요소를 알아가기 위한 첫 번째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차분한 사람,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해 요리를 하는 사람.

이 질문을 시작으로 내가 가장 귀중히 여기는 가치를 인지할 수 있게 되고, 생각지도 못한 나의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 이와 관련해서 락슈미의 사례가 흥미롭다.

p122-125

락슈미 본인이 가지고 있던 특징인 "부정적인 자기 대화, 수치심, 완벽주의"가 잠재되어 있던 새로운 능력을 일깨워 주었고, 새로운 길에 시야를 밝혀주어 무한한 가능성을 선물해 주었다.

대학생을 기준으로 교내활동이나 대외활동, 스펙을 위해 하는 다양한 활동들을 알아볼 때 시야를 넓히라는 말의 큰 뜻을 이 대목을 통해 알게 되었다.

막막해 보이는 자신의 한계도, 거대하게 보였던 상실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정체성의 힘은 어디서나 존재한다.

부디 많은 이들이 이 챕터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고, 한계에 주저하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나의 정체성을 문장으로 만들어 보았다.

나는 상대방과 마주 보며 입을 통해 대화하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타인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고 내면의 목소리가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소설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생각을 정리한 뒤, 나의 목소리를 차분히 꺼낼 수 있는 수단 중 하나인 활자를 좋아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나는 책과 함께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다.

이런 정체성을 가진 내가 앞으로 어떤 길들을 개척해 나갈지 참 기대된다.

질문은 변해가는 나의 자기감을 정확히 인지할 수 있고, 잠재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싶다.

가장 원초적인 질문에서부터 시작해 나 자신조차도 생각하지 못한 질문에까지 다다랐을 때, 자기개념이 확실히 내면에 자리 잡아 '혁신적 성장'에 가까워지진다는 것을 책은 다양한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의 사례를 보여주며 강조한다.

책에 소개된 불안에 대처하는 여러 방법들에서 질문은 체크 스탭 파트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구체적이고 섬세하게 다루지 못한 감정을 활자로 형태화하며 답해보자.

몰입하여 오직 진실에 의지하며 답변을 매기다 보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 장담한다.

그로부터 생겨나는 경이로움은 차마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거다.

보다 더 많이, 다양하게 내가 느끼는 감정에 접근해 보자.

책 속의 많은 질문은 혼란의 본질을 천천히 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당신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있는 힘껏 협력하고 있다.

살아가면서 필수적으로 찾아오게 되는 크고 작은 고난을 아직도 받아들이기 거부감이 든다.

다만 더 이상 어린 시절처럼 내게 들이닥친 부정적인 감정들에 마냥 지배되진 않을 거라 확신한다.

단순 혼란을 포용하고 이겨내 여기보단,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으로 스스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발휘하기 위해 뚫어져라 바라보고 질문할 거다.

해당 도서에게 혼란은 누구에게나 살아가면서 필수적으로 찾아오는 것인 만큼, 혼란의 늪을 이용해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으니말이다.

나에겐 사랑하는 것이 있고, 그 존재가 나를 살게 한다.

나는 확고한 나의 정체성을 믿는다.

본인의 정체성이 혼란스러운 이들, 불안에서 스스로 해방되지 못하는 이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 이유 없이 가끔 우울함에 빠지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을 강력 추천해 드리고 싶다.

마치 든든한 수호신 같은, 상냥한 심리상담 선생님 같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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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말한다 - 세계를 바꾼 여성의 연설
이베트 쿠퍼 지음, 홍정인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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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 권력자들과 맞서 싸운 여성들의 용기에 감탄하면서도 읽는 내내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우리나라에서 너무나 자주 일어나는 성별 갈등과 여성 범죄들이 눈앞에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SNS나 각종 플랫폼만 봐도 여성혐오와 약자혐오, 그리고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협하고 적대적인 시선들은 이제 흔하게 볼 수 있다.

어디든 흔히 널려 있어서 그런지,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젠더적 혐오 발언을 하며, 고정관념의 틀에 갇힌 채 사람을 보는 무례한 이들도 종종 보이곤 한다.

이들은 자신이 한 발언이 혐오 발언인지도 모르는 듯하다.

나 또한 이러한 현실이 불편하고 불쾌해도 당시 분위기를 망치기 싫어서, 감정 소모를 하며 누군가와 다투기 싫어서 입을 다물고 넘어갔다.

책에선 나의 사회생활과 일상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익숙함으로 무감각해졌던 마음을 자극하는 문장들이 굉장히 많았다.

그렇기에 더욱 충격적이었고, 깊은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일상에서나 뉴스에서 볼 수 있었던 여성혐오와 범죄는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오래전부터 여성과 약자들 그리고 특정 인종과 소수자들이 차별과 혐오로 고통받았다.

그것도 최강의 권력자들로부터 시작된 혐오는 더욱 이들을 부당한 대우에도 침묵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어째서 혐오와 차별이 지금 세대에도 계승되고 있는가.

어째서 평등 사회를 실현시킨 활동가들의 업적이 증명되었음에도 특정 성별과 약자들을 배척하는 시선이 아직까지 존재하는가.

어째서 특정 성별의 자유를 억압하고 본인의 밑으로 지배하고자 하는 폭력적인 욕망이 있는가.

결국 이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이는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다.

비록 오랫동안 열외로 취급된 여성들의 목소리지만, 그 안에 담긴 맹렬히 타오르는 불씨와도 같은 힘은 누가 됐든 간에 막지 못한다.

결국 전 세계 여성 활동가들과 정치인들은 호소력 담긴 목소리로 세상을 바꿨다.

남성과 동등한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권리, 남성과 같이 참정권을 얻을 수 있는 권리, 남성과 동등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 약자를 포용할 수 있는 제도 설립…… 외에도 다양한 업적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처럼 변화를 원한다면 침묵해선 안 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

목소리를 내야만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그게 아주 자그마한 변화일지라도, 침묵하는 건 악화를 초래한다.

책에 실린 마흔 명의 여성들은 책을 펼친 자들에게 거대한 용기를 선사하며, 등을 떠밀어준다.

훼손되지 않을 진실


아무리 육체적으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자나 최강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여성들의 입을 막더라도 진실만은 훼손할 수 없다.

진실은 어디서나 자리를 지키며,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더라도 반드시 힘을 발하게 되어있다.

여성들은 그것을 증명해 준다.

확신에 찬 여성들의 목소리와 실행력이 힘을 내뿜으며 말이다.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서 성별과 계층, 그리고 자기들이 정해놓은 분야로 누군가를 배척하고 멸시하며 폭력을 행사하는 게 말이 되는가.

범죄를 당해도 그 탓은 오로지 피해자인 여성에게 돌아오는 건 어느 나라에서든 다를 바 없나 보다.

오래전부터 늘 차별받고 인권 보장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여성들은 가장 기본적이고 당연한 권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

시간 제약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외출할 수 있는 권리.

여성이라고 차별받지 않고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권리.

능력과 잠재력을 인정받은 여성이 유엔에서 연설할 수 있는 권리.

존재 자체로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배려 받을 수 있는 권리.

어째서 이 당연하고 기본적인 걸 지켜주지 못하는가.

안 그래도 편협한 시야로 특정 대상과 성별을 바라보고 평하는 이를 정말 혐오했는데, 이러한 시선들이 예부터 계승되어 온 폭력으로부터 이어진 거라는 것을 안 이상 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더 해질 것 같다.

나아가 더 이상 침묵해야 할 문제 또한 아님을 직시했다.

작은 부분일지라도 진실을 입 밖으로 뱉는 걸 두려워 말아야 한다.

순종과 순응에 저항하기


대부분의 여성들은 우리가 요즘 흔히들 말하는 '가스라이팅'을 받으며 자란다.

몸을 가려라. 조신하게 행동해라.

남성은 자신의 본능을 잘 통제하기 어려우니 집에서부터 벗어나면 벌어질 수 있는 모든 나쁜 일들은 너의 책임도 있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남성들에겐 야망을 크게 가져라. 남자답게 자신감 있게 행동해라.를 가르치면서 말이다.

이게 논리적으로 성립되는 말인가.

요즘 세대에 들어서도 일부 남성들은 자신의 말에 무조건적으로 순종적인 여성을 원하고, 위 세대들은 여성에게 일어난 모든 범죄는 여성이 조신하게 행동하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단정 짓는다.

우리는 미약하게나마 남아있는 가부장적인 제도에 끊임없이 저항해야 한다.

깨어 있는 여성이라면 자신의 뚜렷한 주관을 갖고, 야망을 갖고, 실현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이전에 수많은 여성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온 권리를 우리는 이어받아 지켜내야 한다.

왜곡된 페미니즘의 진짜 정의


해리포터 주연으로 출현한 에마 왓슨 배우는 자신의 신념을 담은 목소리를 내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즘의 본질은 너무나 변질되고 왜곡되었다.

혐오의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하며, 일부는 페미니즘의 이름을 걸고 어떠한 상황에서 악용하기도 한다.

정말 여성 인권 운동에 힘쓰고 싶다면 더더욱 이 책을 읽어야 하지 않나 싶다.

무지함은 부끄러운 것에서 그치지 않고 또 다른 혐오와 불평등을 낳는다.

페미니즘이 정말 이기적인 신념에서 나온 혐오의 수단일까.

우리는 조금 더 성숙해져야 하고, 감정보다 이성이 먼저가 되어 행동해야 한다.

두꺼운 책에 수록된 마흔 명의 여성들의 연설문은 뒤 세대 여성들에게 세상을 향해 당차게 나아갈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당연하게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되찾아주었다.

우리는 이를 뒤따라야 한다.

무엇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을 위해서.

현재에도 계승된 가부장적인 법과 제도, 혐오와 차별을 없애는 건 우리의 몫이다.

이는 여성과 사회적 약자로 분리되는 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디에 가게 될 때나 어느 한 가지에서든 충분히 부당한 대우를 받는 약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들의 연설문은 우리에게 진정한 '인간다움'을 가르쳐 준다.

문화가 사람들을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문화를 만드는 것임을 똑바로 직시해야 한다.

『여성이 말한다』 p.247 l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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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여자, 작희 - 교유서가 소설
고은규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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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적인 감상부터 말하자면 흡입력이 정말 강한 소설이었다. 이중 서사 구조인 플롯을 파악하고 그 안의 인물들이 머릿속에 그려지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소설 속 세계관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도 그럴 게 이 소설에는 처음부터 흥미로운 소재가 등장한다.

화자인 은섬과 작업실을 같이 쓰는 드라마 대본 작가 경은과 시나리오 작가 윤희는 자신들의 글쓰기를 방해하는 귀신이 있다며 '작가 전문 퇴마사'를 부르며 소설은 시작한다.

메인 플롯과 서브플롯을 이어주는 장치가 되는, 어쩌면 중심적 장치가 될 수 있는 퇴마 소재는 해당 소설의 맥락상 흔하게 등장하는 타이밍도 아닐뿐더러 그렇기에 흥미를 끌기에도 아주 적합했다.

띠지에 실린 문장이 눈에 밟혀 본격적으로 독서에 들어가기 앞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생각했다.

나는 소설 속 주요 인물인 은섬과 작희처럼 이야기 쓰기를 좋아하고, 말로는 전하기 어려운 내 진심이나 의미 있는 경험으로 인해 받은 감각을 글로 적어내리는 시간을 매우 귀하게 여긴다.

현재 나의 강한 열망도 보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자 책과 함께 일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기에, 소설 속 '쓰는 여자'들에게 정말 많은 격려와 용기를 받았다.

홀로 방에 앉아 글을 쓰는 건 외로운 일이라 생각될 때도, 내 문장이 과연 힘이 있나 하는 의구심에 좌절할 때도 있다.

하지만, 여성이 교육을 받으며 글을 쓰고 목소리를 내는 게 어려웠던 시대에 살았던 중숙과 작희의 추진력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시대가 변했음에도 작희의 글을 되찾아준 은섬의 기적적인 결과가 나의 쓰기 의욕을 한껏 더 불어넣어 주었다.

이는 나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닐 테다.

행복과 사랑만으로 하고 있는 일이 있는 사람이라면 해당 소설이 깊게 스며들 거라 확신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표지에 대해 말을 안 할 수가 없다.

꺾인 나뭇가지에 피어난 두 송이의 꽃과 두 개의 꽃봉오리가 무엇을 의미하나 싶었지만, 독서를 마치고 다시 표지 디자인을 찬찬히 살펴보며 해석하자니, 진하게 남은 여운이 더욱 깊게 스며들 수밖에 없었다.

누구라도 좌절할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상황을 오직 쓰기의 열망으로 기적을 일으킨 두 여성의 연대를 꺾인 나뭇가지에 피어난 꽃으로 표현했다는 게... 경이롭다는 감상이 절로 나왔다.

꺾인 나뭇가지를 들고 있는 손은 이 책을 쥐고 있는 수많은 독자들을 표현한 것 같아서 감동받기도 했다.

시공간을 넘어 건네는 여성들의 따뜻한 연대의 손길은 소설 속에서만 한정된 게 아니다.


무엇보다 이 책이 가장 강력하게 가지고 있는 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게 만드는 것인 것 같다.

끊임없이 고뇌하고, 많은 시간을 투자해 무언가에 열중하게 만드는 힘.

사랑하는 일이 있고 현재 나의 위치에서 이룰 수 있는 목표를 확실하게 세워둔 나에게 이 책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준 동력이었다.

각자의 이유로 괴로운 시간을 보내는 인물들을 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발효하는 순간에 집중했다.

그 순간이 결과로 나올 수 있도록,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이 책을 통해 많은 이들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 사랑을 하며, 행복을 느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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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와 빵칼
청예 지음 / 허블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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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설 속 공간은 우리가 사는 일상의 풍경과 별다를 바 없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 어딘가 있을 법한 사람 같은 화자를 포함한 인물들.

그렇기에 본격적인 서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소설 속으로 빠르게 몰입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 수많은 타인과 보내며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은 모두 제 욕구를 억압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혹은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이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그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비치기 위해, 사회가 정해놓은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틀에 맞춰 살기 위해.

소설 속 화자 영아는 그렇게 점점 고유성을 잃어간다.

그렇지만 영아는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있다. 나아가 바뀌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오랜 친구 은주로부터 흔히들 말하는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는 현실로부터, 사랑하지도 않은 연인 수원에게 절대적인 애정을 연기하고 있는 자신으로부터 그리고 늘 문제아 타이틀을 달고 영아를 포함한 여러 교사들 및 원생들을 괴롭히는 은우로부터, 이 모든 걸 감내하고 있는 자신으로부터 말이다.

이 책은 해방의 욕구를 억압하고, 선한 사람으로 비치고자 하는 강박을 가진 한 사람의 내면을 적나라하고 세밀하게 보여준다.

영아의 내면 상태에서 비롯된 다양한 표현과 비유들이 가미된 문장들은 이 책을 더욱 신비롭고 오묘한 매력을 자아내게 만든다.

제목에서도 등장할 만큼 이 책의 중요한 소재를 맡고 있는 "오렌지" 빛이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영아의 고유성을 극대화해 빛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2


소설 군데군데 모순적인 인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 모습들은 마치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의 단면을 텍스트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의 범위는 큰 범위는 물론, 아주 작은 개인과 개인의 범위도 포함된다.

먼저 집단에 소속될 수밖에 없는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게 암묵적으로 존재한다.

이를테면 학부모 항의를 막기 위해 은우의 문제 행동을 담당 교사 영아가 모두 감당해야 하는 것들.

저도 모르게 거부감이 표면으로 드러날 만큼 싫어하는 은우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은우의 어머니가 소개해 준 실험 덕에 영아는 스스로 해방하는 법을 알게 된다.

이러한 구도가 매우 흥미로웠다. 다른 인물 관계도도 아니고 하필 '은우' 어머니를 통해서 영아가 해방의 해결책을 얻어 간다는 것이 완성본에선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을지 기대된다.

센터에서 스칼렛을 만나고 나서 영아는 처음으로 해방의 쾌락을 경험한다.

우리 사회에서 속된 말로 "캣맘"이라고 불리는 진상 아파트 주민에게 당해왔던 것을 갚아주고, 수동적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은주에게 묵혀왔던 말을 모두 쏟아붓고, 사랑하지 않는 연인 수원에게 진심을 모두 고백한다.

이런 영아의 모습에서 가제본 뒤표지에 실린 문장을 떠올리게 만든다.

"빵칼은 오렌지를 썰 수 없지만 쑤실 수는 있다."

해방된 영아의 자유분방한 모습에는 작가가 우리 사회에게 전하고 싶은 목소리가 깊게 박혀 있다.

불만과 불평을 가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 순응하는 게 정말 '평범'이 맞는지 말이다.

3


하지만 해방의 자유를 맛본 영아의 모습이 마냥 통쾌하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타인의 불행을 모아둔 비극적 사고를 보며 웃음을 터트리거나 점차 '정상적'인 사고에서 벗어나기도 하면서 본인도 인지할 만큼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마침내 그리 갈망하던 해방의 자유를 얻었는데 (비록 약물의 힘을 빌려서지만) 영아는 왜 만족하지 못할까.

이에 대한 힌트는 다소 독특할 수도 있는 방식으로 소설은 보여준다.


강렬한 사건과 장면들, 영아를 즁심으로 생동한 인물들의 묘사까지 마치 영화를 보는 것만 같았다.

청예 작가의 문체에 완전히 매혹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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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해킹 - 사교육의 기술자들
문호진.단요 지음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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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해당 도서 마케팅이 지금껏 보지 못한 형식이라 흥미를 자극했다. 가제본이긴 하지만 표지도 너무 독특했고, 서평단 미션 방식도 책 목적성에 맞춰 콘셉트가 있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얼마 만에 써보는 OMR, 필적 확인란인지 반갑기도 했고 감회가 새로웠다.

솔직히 수능을 본 게 거의 4년 전이기도 하고, 지원하려는 학과 입시 방식상 수능이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아서 수능 준비 사교육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수능에 대한 기억이 그렇게 많지 않다.

그래도 함께 온 작가님들의 편지에서 개인의 특별한 경험이 담긴 방향으로 서평을 부탁한다는 말씀에 최대한 기억을 되살려봤다.

수능을 거쳐온 이들의 직접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수능과 입시 제도의 문제점을 정확히 짚고, 잃어버린 본래의 목적을 되살려야 한다는 책의 주제의식을 더욱 부각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서평을 작성해야 할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게 평가원도 교육부도 외부의 동력이 발생해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국민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이 책이 이를 자극하는 큰 역할을 할 것이란 걸 확신한다.


본래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취지는 사고력을 중심으로 한 학력을 평가하는 시험이었다. 학벌을 중시하는 사회가 된 이상 해가 바뀔수록 본래의 취지가 희미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수능은 어떨까. 사고력 평가 시험으로서 기능이 완전히 보존된 것도 아니고, 지식 암기형 시험도 아니라고 한다.

책은 '루빅스 큐브' 게임을 빗대어 수능 해킹을 풀이한다. 핵심은 사고력이나 논리력 자체는 암기가 아닐지라도 논리 흐름과 접근법을 외우는 것은 가능하다는 말이다.

수능은 이렇게 퍼즐을 풀 듯 반복되는 공식을 머리에 익혀 그 공식을 모두 마스터한 자만이 고득점을 받을 수 있다.

수능 시험을 치러온 자들은 물론이고, 앞으로 수능을 치를 자들, 그들의 학부모들도 모두 이를 인지하고 있음에도 묵인하고 있다.

사교육 업계가 해온 일이 진정한 교육이 아니라 수능 해킹이어도 말이다.


이러한 문제에 평가원의 개입이 없었던 건 아니다. 다만 해킹을 막으려는 목적으로 개입한 건 아니다. 그저 표현만을 손보는 수준에서 멈춘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을 아예 못하는 건 아니다. 그들도 공무원 조직이므로 지금껏 해왔던 방식을 유지하며,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어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측 가능한 문항, 정형화된 문항을 안정적으로 파고드니 패턴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과목에서 문제풀이 테크닉이 강조된다.

하지만 이는 도리어 학생들의 부담을 늘리고 사교육 유인을 증가시킨다. 여기서 퍼즐 풀이 난이도가 더욱 어려워질 뿐이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이러한 방식을 선호한다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2014년 이전처럼 원리와 개념 위주로 출제한다는 선택지가 배제된 상황 속에서 결론적으론 사교육 의존도가 점점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학문과 전혀 관계없는 것을 가르치는 사교육에 오로지 의존한다는 말이다.

덧붙여 본문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말 그대로 공교육이 문제풀이 테크닉과 찍는 방식을 가르치진 않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어쩔 수 없다고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본문에서도 나왔듯, 수능을 응시하는 학생들도 현재 수능 입시 제도에 위화감을 느낀다.

다만 이러한 제도에 따라야 할 수밖에 없는 건, 좀 더 넓은 범위에서 학벌 중심 사회가 돼버렸기 때문이라고 조심스레 예측해 본다.

좋은 대학교에 가는 것에만 치중돼 있어 정작 본질적인 알맹이는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수능 하나로 수험생들의 12년 학교생활이 그저 허무한 과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한 개인이 발전 가능성을 막아버릴 수도 있는 장애물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학교 공부와 수능 공부가 따로 노는 이 상황이 웃을 수 없는 블랙 코미디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수능 입시 제도가 각성하기 위해선 우리가 문제의식을 갖고, 퍼즐식 문제가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 상황을 인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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