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성이 말한다 - 세계를 바꾼 여성의 연설
이베트 쿠퍼 지음, 홍정인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9월
평점 :
최강 권력자들과 맞서 싸운 여성들의 용기에 감탄하면서도 읽는 내내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우리나라에서 너무나 자주 일어나는 성별 갈등과 여성 범죄들이 눈앞에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SNS나 각종 플랫폼만 봐도 여성혐오와 약자혐오, 그리고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협하고 적대적인 시선들은 이제 흔하게 볼 수 있다.
어디든 흔히 널려 있어서 그런지,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젠더적 혐오 발언을 하며, 고정관념의 틀에 갇힌 채 사람을 보는 무례한 이들도 종종 보이곤 한다.
이들은 자신이 한 발언이 혐오 발언인지도 모르는 듯하다.
나 또한 이러한 현실이 불편하고 불쾌해도 당시 분위기를 망치기 싫어서, 감정 소모를 하며 누군가와 다투기 싫어서 입을 다물고 넘어갔다.
책에선 나의 사회생활과 일상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익숙함으로 무감각해졌던 마음을 자극하는 문장들이 굉장히 많았다.
그렇기에 더욱 충격적이었고, 깊은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일상에서나 뉴스에서 볼 수 있었던 여성혐오와 범죄는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오래전부터 여성과 약자들 그리고 특정 인종과 소수자들이 차별과 혐오로 고통받았다.
그것도 최강의 권력자들로부터 시작된 혐오는 더욱 이들을 부당한 대우에도 침묵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어째서 혐오와 차별이 지금 세대에도 계승되고 있는가.
어째서 평등 사회를 실현시킨 활동가들의 업적이 증명되었음에도 특정 성별과 약자들을 배척하는 시선이 아직까지 존재하는가.
어째서 특정 성별의 자유를 억압하고 본인의 밑으로 지배하고자 하는 폭력적인 욕망이 있는가.
결국 이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이는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다.
비록 오랫동안 열외로 취급된 여성들의 목소리지만, 그 안에 담긴 맹렬히 타오르는 불씨와도 같은 힘은 누가 됐든 간에 막지 못한다.
결국 전 세계 여성 활동가들과 정치인들은 호소력 담긴 목소리로 세상을 바꿨다.
남성과 동등한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권리, 남성과 같이 참정권을 얻을 수 있는 권리, 남성과 동등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 약자를 포용할 수 있는 제도 설립…… 외에도 다양한 업적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처럼 변화를 원한다면 침묵해선 안 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
목소리를 내야만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그게 아주 자그마한 변화일지라도, 침묵하는 건 악화를 초래한다.
책에 실린 마흔 명의 여성들은 책을 펼친 자들에게 거대한 용기를 선사하며, 등을 떠밀어준다.
훼손되지 않을 진실
아무리 육체적으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자나 최강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여성들의 입을 막더라도 진실만은 훼손할 수 없다.
진실은 어디서나 자리를 지키며,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더라도 반드시 힘을 발하게 되어있다.
여성들은 그것을 증명해 준다.
확신에 찬 여성들의 목소리와 실행력이 힘을 내뿜으며 말이다.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서 성별과 계층, 그리고 자기들이 정해놓은 분야로 누군가를 배척하고 멸시하며 폭력을 행사하는 게 말이 되는가.
범죄를 당해도 그 탓은 오로지 피해자인 여성에게 돌아오는 건 어느 나라에서든 다를 바 없나 보다.
오래전부터 늘 차별받고 인권 보장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여성들은 가장 기본적이고 당연한 권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
시간 제약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외출할 수 있는 권리.
여성이라고 차별받지 않고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권리.
능력과 잠재력을 인정받은 여성이 유엔에서 연설할 수 있는 권리.
존재 자체로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배려 받을 수 있는 권리.
어째서 이 당연하고 기본적인 걸 지켜주지 못하는가.
안 그래도 편협한 시야로 특정 대상과 성별을 바라보고 평하는 이를 정말 혐오했는데, 이러한 시선들이 예부터 계승되어 온 폭력으로부터 이어진 거라는 것을 안 이상 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더 해질 것 같다.
나아가 더 이상 침묵해야 할 문제 또한 아님을 직시했다.
작은 부분일지라도 진실을 입 밖으로 뱉는 걸 두려워 말아야 한다.
순종과 순응에 저항하기
대부분의 여성들은 우리가 요즘 흔히들 말하는 '가스라이팅'을 받으며 자란다.
몸을 가려라. 조신하게 행동해라.
남성은 자신의 본능을 잘 통제하기 어려우니 집에서부터 벗어나면 벌어질 수 있는 모든 나쁜 일들은 너의 책임도 있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남성들에겐 야망을 크게 가져라. 남자답게 자신감 있게 행동해라.를 가르치면서 말이다.
이게 논리적으로 성립되는 말인가.
요즘 세대에 들어서도 일부 남성들은 자신의 말에 무조건적으로 순종적인 여성을 원하고, 위 세대들은 여성에게 일어난 모든 범죄는 여성이 조신하게 행동하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단정 짓는다.
우리는 미약하게나마 남아있는 가부장적인 제도에 끊임없이 저항해야 한다.
깨어 있는 여성이라면 자신의 뚜렷한 주관을 갖고, 야망을 갖고, 실현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이전에 수많은 여성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온 권리를 우리는 이어받아 지켜내야 한다.
왜곡된 페미니즘의 진짜 정의
해리포터 주연으로 출현한 에마 왓슨 배우는 자신의 신념을 담은 목소리를 내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즘의 본질은 너무나 변질되고 왜곡되었다.
혐오의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하며, 일부는 페미니즘의 이름을 걸고 어떠한 상황에서 악용하기도 한다.
정말 여성 인권 운동에 힘쓰고 싶다면 더더욱 이 책을 읽어야 하지 않나 싶다.
무지함은 부끄러운 것에서 그치지 않고 또 다른 혐오와 불평등을 낳는다.
페미니즘이 정말 이기적인 신념에서 나온 혐오의 수단일까.
우리는 조금 더 성숙해져야 하고, 감정보다 이성이 먼저가 되어 행동해야 한다.
두꺼운 책에 수록된 마흔 명의 여성들의 연설문은 뒤 세대 여성들에게 세상을 향해 당차게 나아갈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당연하게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되찾아주었다.
우리는 이를 뒤따라야 한다.
무엇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을 위해서.
현재에도 계승된 가부장적인 법과 제도, 혐오와 차별을 없애는 건 우리의 몫이다.
이는 여성과 사회적 약자로 분리되는 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디에 가게 될 때나 어느 한 가지에서든 충분히 부당한 대우를 받는 약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들의 연설문은 우리에게 진정한 '인간다움'을 가르쳐 준다.
문화가 사람들을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문화를 만드는 것임을 똑바로 직시해야 한다.
『여성이 말한다』 p.247 l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