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음과모음 2024.겨울 - 63호
자음과모음 편집부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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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 모음』 63호에서는 '동료'라는 큰 틀 안에서 여러 문학인의 '동료'에 대한 다채로운 사유를 보여준다.

특히 지난 10월에는 문학계 종사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한강 작가님의 노벨상 수상에 기뻐하며, 자긍심을 느끼기도 했다.

본지의 '동료'에 대한 사유는 이러한 기쁨의 연결감에서 시작된다.


'한국문학'이라는 항으로 우리를 연결시켜주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머리말 中


본지에선 공동체나 집단적 행위성은 한국문학이 형성되고 발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며 언급한다.

나는 이 대목에 격하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문학은 잊혀선 안 될 사건과 억압된 아픔의 목소리를 증언하고, 모두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시절의 시련에 대해 다루기도 하며, 살면서 필연적으로 느끼게 되는 감정을 어루만지며 잠시 쉬어갈 곳을 기꺼이 내어주기도 한다.

이런 과정 속 문학에서 동료는 창작이나 감상, 비평, 정치적 행위를 함께 수행할 수 있는 존재 혹은 애착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분노를 일으키거나 상처를 주고받고야 마는 실체이기도 하다. (머리말 8p 인용)

하지만 본지는 여기서 더 깊숙이 들어가 문학계 행위자들의 연결됨이 현 문학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대안적 가능성이 나올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던진다.

이와 관련해서 김영찬 외 네 명의 필진이 각기 다른 분석을 통해 흥미로운 사실들을 조명하여 읽는 이들로 하여금 문학 읽기와 말하기 시야를 넓힌다.

외에도 자음과모음 63호에는 한국문학의 흐름을 담은 흥미로운 읽을거리로 가득 찼다.

"네오픽션상" 수상자 발표 소식과 귀한 심사평이 실린 지면, 계간지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시와 소설들, 훌륭한 시와 소설들을 다방면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리뷰 지면.

그리고 작아진 한국문학 시장의 흐름에 변화의 문을 열고,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의 반열에 오르는 데 큰 기여를 한 한강 작가님의 노벨상 수상 관련 특별기고 지면은 앞으로 더 커질 문학의 한국문학의 영향력에 기대를 더하게 만든다.

평소에는 쉽게 접하기 부담스러운 비평도 한 권으로 묶인 계간지로 받아 보면 왠지 모르게 흥미롭게 다가온다.

'인류세 시대'로 자리 잡은 현재 상황에 문학장은 질문을 던지며, '신체 감각'을 주요 키워드로 두고 문학 작품을 분석하는 평론가들의 글은 작품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를 넓히고, 문학이 확장돼 가는 가능성을 더욱 선명하고 섬세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곤 해당 계간지를 읽는,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함께 계속해서 새로운 문학의 장을 열어가자며 손을 내밀어 주는 듯한 기분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계간지 만큼이나 문학의 트렌드를 한눈에 살펴볼 만한 건 없다고 본다.

문학을 사랑하는 것을 넘어, 문학과 삶을 동반하고자 하는 길을 택한 이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다.

함께 있을 수 있는 각각의 이유


자신의 언어로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는 자라면 타인의 글과 상호작용은 필수적이다.

예술가는 물론이고 비평가, 단체에 소속되어 목소리를 내는 자, 교육자 등 모두 타인의 글에 영향을 받는다.

그런 이들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동료'를 사유하고 인식하는 방식이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이 굉장히 흥미롭다.

특히, 공통적으로 '불확실한 형태의 계시'를 받는 자들이 서로 귀속되지 않은 채 함께 있는 상태에서 동료의 양상을 띤다고 한 최가은 평론가의 글이 인상적이다.

실제 하지 않는 무언가의 상태.

어떠한 개인의 속성도, 집단의 속성도 가지지 않은 채 같은 장소에서 자리 잡았다가, 흩어지고 남아있는 무언가(잔여)를 통해 우리가 맞닿았다는 걸 주장할 수 있는 것.

모두가 같은 방향을 향했다는 것만으로 '불확실한 형태'의 징표가 될 수 있는 것.

고백하자면 쉽게 읽히는 글은 아니었지만, 늘 '찬사 받는 문학 작품'의 특유성을 골몰하는 나에게 깊게 와닿은 지면이었다.

'불확실한 형태의 계시'를 내리는 사회에서 문학인들은 자신의 작품에서 어떻게 존재하며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려운, 문학계 종사자라면 평생이 될 수 있는 시간을 들여 골몰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문학이 쉼 없이 변형되고 일방향을 추구하지 않는 만큼 당연한 말이기도 하다.

필자 다섯 명이 펼치는 동료의 사유는 '동료'라는 명사 안에서 문학이 작동하는 방식의 일부분을 비춤과 동시에 현재 한국문학의 흐름에 간접적인 대안이 될 가능성을 충분히 제시하고 있다.


우리를 이어주는 여러 가지 요소들


63호의 큰 틀이 "동료"라 그런지 실린 단편소설을 읽을 때도 해당 인물들의 동료감 의식하면서 읽게 된 것 같다.

각 다섯 편에서 나타나는 인물들의 동료감은 모두 다르다.

단편소설의 첫 번째 장에 실린 권여선 작가의 「일주一周」에서는 신숙과 그녀의 어머니 유재, 그녀의 딸들 혜영과 혜진, 그리고 신숙의 간병사 이들의 묘한 관계가 주는 분위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병원을 배경으로 그 묘한 관계 속에서 떠다니는 원망과 측은지심, 처음 만난 낯선 이에게 느끼는 친밀감.

희망과 절망을 오가면서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연결감에 아이러니를 불러일으키며, 마지막 페이지에 오래 머무르게 만든다.

자신들의 장소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은 이하진 작가의 「발로 發露」는 투쟁하는 자의 목소리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게 매력적인 작품이다.

소설 속 배경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아니지만, 인물들은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는 점이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낯섦과 익숙함의 경계에서 우리가 발굴해야 하는 건 무엇인지, 해당 소설을 읽은 자라면 답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소설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청예, 「여름을 기다렸던 돛들을 위해」

이상주의를 생각하게 되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단편이었다.

속물이 배제된 마음으로 이어진 동료의 형태가 이런 게 아닐까.

순수함의 형태를 보여주는 듯한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동화 같은 이야기였다.

비록 현실감은 부족할지라도 이런 유의 이야기들이 우리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 시켜주는 데에, 혹은 묻혀있던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끌어올려 주는 데 큰 몫을 하게 된다고 믿게 된다.


끊임없이 이어질 문학의 새로운 시도


문학이 계속해서 새로운 가치를 발굴해 내며, 수용하고, 추구하기 전의 분석을 촘촘하게 볼 수 있었던 성현아 평론가의 글도 굉장히 흡입력 있었다.

그녀는 인류세 (인간이 지구의 기후와 생태계를 변화시킴으로써 만들어진 새로운 지대) 세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일차원적으로 인식되었던 비인간적인 것들의 시선을 비틀어 새로운 인식을 제시함과 동시에 "신유물론적 관점"으로 소설들을 분석한 점이 굉장히 흥미롭다.

인간이 모든걸 지배하고 있다고 인지하지만, 그들은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채로 비인간적인 것들에게 흡수되기도 한다.

누가 지배자의 위치를 탐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중 그녀가 이것을 현호정 작가의 『단명 소녀 투쟁기』를 예시로 설명한 대목이 인상 깊다.

근대적 개인이 타자의 의지나 영향으로 자유로운 것으로 인식되었기에 자신의 의지와 내면을 공유하는 '분신'을 적으로 간주한 것과는 다른, '온전한 신체'라고 말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신체의 부분' 또는 '신체의 기관'으로만 축소할 수도 없는 모순적 신체 형상을 제시하는 것. (본문 인용)

신체기관의 독립성을 (외에도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비인간적인 것) 집요하게 파고드는 문학인들의 시도들이 앞으로도 이와 비슷한 소설에서 어떤 개성적인 형태로 나타날지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


오혜진 평론가의 글에서는 노벨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 두 작품을 분석하며, 재현 문학의 의의를 말한다.

앞의 성현아 평론가와 같이 '신체'라는 주요 키워드를 사용했지만, 한강 작가의 글에서 나타는 '신체'는 감각기능으로서의 신체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실제로 한강 작가의 두 작품에서 인물들이 느끼는 신체적 감각 묘사가 매우 생생하다.

한강 작가의 작품에서는 인용해온 본문에서 사용된 단어, 읽는 이들로부터 하여금 "정동"을 불러일으킴으로써 해당 사건과 연루되는 감각을 갖게 만들기 위함일 테다.

신체적 감각은 누구에게나 가장 취약하고 동일하게 적용되는 건 부정 못하는 사실이니 말이다.

나아가 국민들을 서사화하여 "역사의 현재화"의 가능성을 예견하고, 같은 역사를 답습하지 않기 위한 의도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녀의 비평은 한강 작가의 위여한 작품성을 한번 더 몸소 느끼게 하고,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의 기쁨을 만끽하게 한다.

이 글은 꼭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


자음과모음 계간지는 이번 63호로 처음 접해본다.

처음이라서 자음과모음 계간지로 문학계 안에서 마무리하는 2024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크고 작은 이슈들을 다시 되돌아보며 문학인으로서 해야하는 몫에 대해 다시금 머릿속에 새기고, 제 몫을 다할 수 있도록 나를 가꿔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63호에서 다양한 형상의 "동료"를 생각하며, 우리는 어떻게든 영향을 받으면서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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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의 온도 현대문학 핀 시리즈 에세이 4
정다연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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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크든 작든 내면에 고유한 온기가 자리 잡고 있을 거라 단단히 믿고 있다.

'고유한 온기'라고 표기한 이유는 온기를 나누는 방식이나 온기의 힘이 발휘되는 순간은 모두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각박하고 삭막한 개인주의 사회라 할지라도 사람과 사람 간에 오가는 온기가 없다면 지금 세상이 유지 될까, 하는 의문이 문득 들었다.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다 할지라도, 타인으로부터 받은 영향력에 의지하고 서로 연대하며 세상을 가꿔나가는 우리에겐 온기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런 "다정의 온기"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면이 많다.

에세이 속에는 정이 많고 섬세한 눈길을 가진 시인의 다정의 순간들이 촘촘하게 엮여있다.

오직 그녀만이 가지고 있는, 그녀만이 포착한 다정한 마음들.

같은 순간, 같은 장면일지라도 오직 그녀만이 보고 느낄 수 있었던 찰나의 순간들과 사물의 움직임, 풍경들.

이들은 어떤 물성을 띠는지, 어떻게 발휘되어 어떤 기적 같은 결과를 탄생시키는지.

그녀는 그 순간들이 어떻게 혼효돼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고 소중하게 만드는지 공유한다.

50편으로 묶인 글에는 시인이 직접 "다정하고 선한 마음"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가 그녀의 문장들에 따뜻한 마음을 건네받은 듯한 느낌이 든 건, 그녀의 눈길과 간직한 시간으로 빚어져 흘러나온 고유한 온기 덕분일 테다.

타인의 기억을 함께 되돌아보며 새로운 기쁨과 행복을 발굴하는 법을 깨닫게 되고, 아픔을 스스로 어루만지는 문장에 덩달아 위로를 받기도 하고, 불편해도 누군가와 솔직하게 마음을 나누는 방법을 알아가면서 자연스레 내가 지나온 시간들의 물성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의 온기로 피어오른 문장들은 다른 이에게 어떻게 가닿을까.

누군가와 어떤 방식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을까.


계절이 한 알 한 알 살뜰하게 가꾸었을 열매를 떠올리며 나라는 과실도 잘 보살펴볼 생각이다.

어느 날 문득 새잎을 틔울 수 있도록.

『다정의 온도』 29p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분명 어떤 형태로든 뻗어나갈 수 있을 거리라.

그럴 날을 고대하며 나를 잘 보살필 거다.

따뜻한 문장을 피어 올릴 수 있도록 건네받은 그녀만의 다정을 오래오래 간직하며, 많은 이들에게 가닿을 수 있도록 꾹꾹 눌러 담아 기록하고 싶다.


사랑하는 것들을 결연히 지키는 태도


시인들의 작품을 읽을 때면 그들의 방식대로 시를 사랑하고 있다는걸, 온전히는 아니지만 느낄 수 있다.

이외에도 문예지나 시인 인터뷰를 찾아보면 시를 사랑하게 된 일말의 사건이라든가 방식 등을 그들의 언어로 직접 들을 수 있기도 한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시간과 시선, 만남과 손길을 거쳐 시를 만나게 되었고, 어떤 식으로 함께하고 있는지에 대한 누군가의 깊숙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볼 기회는 없었다.

시가 아닌 무엇이 되었든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열정의 목소리는 진득하게 달라붙는다.

남들에겐 소박하고 별 볼 것 없어 보이는 낡고 해진 옷, 밑줄이 잔뜩 그어져 있는 헌 책도 누군가의 결연한 목소리가 붙으면 함부로 폄하할 수 없게 하는 힘이 생긴다.

사랑하는 것에 흔들림 없이 지키는 그녀의 목소리가 아주 인상 깊다.

공간과 시간을 머금은 사물에 목소리를 부여하는 일


귀하게 여기는 오래된 물건 하나둘씩 있는 사람을 종종 만나봤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낡은 물건 안에는 각자만의 사연과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물건들을 소중히 어루만지는 그들의 눈빛이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볼 때면 나도 조금이나마 그 기분을 함께 느껴보고 싶을 때가 있다.

사연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족되지 못하는 그런 기분.

그들의 개인적이고 은밀한 마음에서 탄생한 세상의 공기를 감히 느껴보고 싶은 조금 파렴치할 수도 있는 충동.

그런 욕망을 조금 품고 있어서 그런지 시인의 물건과 관련된 문장들이 내 마음을 강하게 흔들었다.

늘 변함없이 정적인 물건 안에는 지나간 시간이 압축되어 있다.

내 것이 아니어도 지금은 볼 수 없는, 조금 오래된 물건을 보았을 때 특별하게 느껴졌던 것도 분명 이런 묵직한 이유 때문이었을 테다.

지나간 시절을 온전히 머금고 있는 물건이 가진 무게를 여전히 유지한 채 구체화하는 시인의 문장들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마음을 대변하는 자세


마음은 관념의 영역이라 형태로 볼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육체와 마음은 필연적으로 이어져있다.

애정을 공유하는 대상과 체온을 주고받기 좋은 최적의 자세를 취하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고유한 다정을 나눌 수 있게 된다.

유독 매서운 시국의 겨울에 읽어 더욱 낭만적인 문장들이다.

사람들은 각자 어떤 다정의 자세를 갖고 있을까.

마음을 깊숙이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

시인의 눈길에서 탄생된 문장을 따라읽으면서 어쩐지 선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정말 단순 착각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타인의 애정 가득 담긴 사람들과 반려견, 사물들과 시간들을 만나면서 책장을 덮을 때엔 입가에 미소를 띤 내가 있었다.

내 안에 깃들어있던 다정의 일부분이 꺼내어진 것임을 이젠 알 수 있다.

여전히 솔직해지는 건 어렵다.

하지만 한 해를 돌아보는 과정에 선 연말에 나는 다정한 마음이 끌어당기는 방향에 온전히 몸을 맡기려고 한다.

믿음이란 얼마나 많은 계절을 견딘 단어인지,

『다정의 온도』 177p

내가 걸어온 시간을 믿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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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아이
김성중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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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의사소통을 하고 자신보다 약한 이를 돌볼 수 있는 생명이 가진 가장 큰 힘은

다정과 믿음이다.

무자비한 폭력과 상실의 상처를 견딜 수 있는 건

다른 이와 주고받는 애정과 돌봄이다.

소설 속 낯설지만 탄탄한 세계관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인물의 상황과 소설의 배경을 보여주는 첫 문장은 정말이지 강렬했다.

소설은 현재로부터 삼백 년이 지난, 미래의 화성을 무대로 지구로부터 쏘아보내진 비인간적인 존재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지구로부터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비인간적인 존재들의 이야기라니,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인간의 본성'에 관심이 많은 내게 굉장히 흥미로웠다.

더군다나 지금 현재 존재하는 화성이 아닌, 삼백 년 후의 화성 속에서 인간과 멀리 떨어져 있는 미지의 생물들이 펼치는 이야기는 어떤 감각과 전율을 느낄 수 있을지 기대되었다.



책은 실험동물 대상에서 살아남은 '루'의 시점을 시작으로 그녀의 자식 '마야'의 시점으로 이어진다.

마야를 낳는 과정에서 루가 죽고, 마야의 시점에 들어서면서 소설의 이색적인 세계관이 본격으로 선명해진다.

모스크바를 떠돌던 개 '라이카', 화성 탐사로봇 데이모스, 인간들로부터 강제로 눈꺼풀을 제거 당한 소녀 키나, 그리고 마야.

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소설 속에서 비친 지구에 사는 인간들은 매우 폭력적이다.

무려 지구에서 화성 개척을 목적으로 임신한 루를 화성에 내던지는 충격적인 일을 저지를 만큼 말이다.

생물과 무생물, 그리고 그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들까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능으로 서로를 돌보고 보살핀다.

비록 인간의 필요로 인해 만들어진 기능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위해 행동한다.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화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화성의 모습과 전혀 상반된 모습을 띤다.

생명이 살아가기 힘든 공간임을 부정할 수 없지만, 이들은 주고받은 마음 하나만으로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

모두 생명력이 지닌 힘 때문에 가능한 실현이다.

마음에서부터 나온 힘.

소설은 순수한 다정이 일으킨 기적을 보여주며, 유일무이한 그들의 세계에 문을 열어준다.

낯설고 이색적인 온기를 함께 느낄 수 있도록.

정말 애틋하게 와닿아 '붉은 별'을 마음에 남긴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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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왜왜 동아리 창비아동문고 339
진형민 지음, 이윤희 그림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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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과 아이의 관계는 일반적으로 수평관계보단 수직관계를 띤다.

아이는 미숙하고 경험이 없어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경험이 많은 어른의 보호를 받고, 어른의 지시를 따르는 게 당연한 수동적 존재로 여기는 이들이 많을 거라 본다.

특히 높은 위치와 강한 권력을 가진 어른을 대상으로 아이는 더욱 작은 존재가 된다.

아이들을 위해 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고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치인도 마찬가지며, 지역 시장이 내린 결단이 모두 옳은 결과라고 단정할 수 없다.

이는 대부분이 공감할 수 있을 거다.

문제를 해결하겠다, 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는 명분 하에 국민들의 의견을 배제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과 명예를 앞세워 본인의 이득만을 취하는 어른들이 많은 현실이다.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사회 문제에 소설은 제목과 함께 강력한 질문을 날린다.

오늘만 사는 게 아닌 미래를 살아가는 당사자인 아이들의 목소리로 말이다.

아이들은 머리를 모아 질문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주체성을 갖는다.

그러곤 정당하게 피켓을 들고 어른들 앞에 맞선다.

이 과정을 담은 소설은 결코 아이들만을 위한 동화가 아니다.

무책임한 태도를 일관했던 어른들을 일깨워 주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소설이라고 감히 확신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


주인공 록희의 아버지는 록희와 아이들이 살고 있는 마을 '용해시' 시장이다.

자꾸만 발생하는 산불 때문에 여러모로 생활을 위협받고 있는 상황 속에서 용해시 시장인 록희 아버지는 석탄 발전소를 세우겠다는 선언을 한다.

뭐든지 파헤친다는, 록희를 포함한 '왜왜왜 동아리' 학생들은 석탄 발전소가 들어서면 발생되는 문제를 짚고 판단한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삼해시 푸른 바다와 집, 꿈, 가족을 지키기 위하는 목적 하나만으로.

소설은 점점 더 심각해지는 기후 문제를 두고 무엇보다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가치를 상기시킨다.

어른들은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을 앞에 두고, 그저 금전적 이득에 눈이 멀었다.

아이들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아이들의 시선에만 보이는 것이다.

기후 문제에 무감각해진 어른들을 깨우치게 만드는 건 오로지 '왜왜왜 동아리' 아이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소설은 오직 아이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아이들이 해결할 수 있는 사회 문제를 보여준다.

주체적인 아이들


'왜왜왜 동아리'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소중한 게 무엇이고, 어떤 삶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이들에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게 있다.

소중한 마음에 대해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 마음을 단단히 할 수 있었기에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던 것이다.

너무나도 간단하고, 올바른 판단이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소설 속 어른들처럼 대한민국 사회문제에 무기력한 태도를 일관하는 현대인들이 많이 보인다.

그런 무책임한 어른들에게 의문을 갖고,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이 직접 나서서 자신들이 살아갈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내디는 발자국이 담긴 문장들을 보고 정말이지,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을 거다.

점점 더 커지고 강해지는 아이들


아직 사회에 내던져지지 않은 아이들은 어른들에 비해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직관적으로 말할 수 있다.

소설 속 아이들은 자신의 권리와 주장을 정당하고 건강하게 표출한다.

나아가 어른들과 싸우는 과정을 즐긴다.

비록 우리 현대인들의 문제점을 비추고 있지만, 아이들의 주관을 억압하지 않고, 어른이라는 권력을 이용해 아이들의 실천을 막지 않는 환경이 있었기에 아이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데 어느 정도 몫을 했다고 본다.

아이들이 어른들과의 싸움을 즐길 수 있는 건 본인들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걸 몸소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쉽게 포기하지 않고, 힘을 합쳐 우리가 살아갈 세상을 만드는 일.

우리를 위한 일.

이건 누군가 대신해 줄 수 없다.

소설을 읽는 어른들이 한참 어린아이들에게 정말 값진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직접 권력과 명예를 가진 어른들에게 맞서는 이야기는 나는 처음 봤다.

아이들의 시선으로 전개되었기에 나올 수 있는 문장들은 정말 주옥같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이건 아이들만을 위한 동화가 아니다.

이 책은 아이들이 직접 자신의 가능성과 주체성을 찾는 데 도움을 주는 것에는 물론이며, 어른들은 아이들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펀치를 맞은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이 책의 가치를 알아 아이들에게 건네는 것과,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의 실천에 힘을 실어 등을 떠밀어주는 건 어른들의 몫이다.

연령대와 무관하게 주변인들에게 꼭 추천해 주고 싶은 동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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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들, 한국 공포문학의 밤 월요일 : 앨리게이터 중편들, 한국 공포문학의 밤
전건우 지음 / 황금가지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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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황금가지 서평단에 선정되어 작성된 글입니다.


나에게 공포 장르의 가장 큰 묘미는 '긴장감'이다.

<중편들, 한국 공포문학의 밤> 시리즈의 시작을 맡은『앨리게이터』는 읽는 내내 긴박한 마음을 가지고 긴장감을 유발 시키는 문체가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공포 장르에서 많이 느껴볼 수 있는 심리적 긴장감의 묘미를 잘 활용해 암울한 현실을 보여준다.


오토바이 사고로 인해 전신마비가 된 화자는 엄마와 엄마의 새 애인 '봉주'와 함께 살게 된다.

봉주는 폭력적으로 화자와 엄마를 위협하고, 전신마비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화자는 그저 괴로워할 뿐이다.


그들에게 '앨리게이터' 같이 위협적인 존재 봉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 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덩달아 절망을 느끼게 된다.

'앨리게이터'처럼 거대한 폭력과 조롱이 아무리 그들을 억눌러도, 화자를 향한 엄마의 모성애와 하나 뿐인 가족 엄마를 지키겠다는 굳건한 마음이 터질 때 우리는 그들에게 이입할 수밖에 없을 거다.


비록 많은 사람들에게 닿진 못해도, 있는 힘껏 쥐어 짜낸 그들의 외침은 무의미한 게 아니었다.

그것만으로도 그들의 목소리는, 『앨리게이터』는 큰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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