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더기 점프하다
권소정.권희돈 지음 / 작가와비평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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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점점 아날로그 추억들을 먼지 속에 묻어 버린다. 빛 바랜 졸업 앨범을 들춰보면 그리운 얼굴과 함께 그 시절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찢어진 우산을 쓰고 집으로 가는데 뒤따라오며 우산을 받쳐주던 마음씨 고운 순이, 감을 따겠다고 용감하게 나무위에 올랐다가 떨어져 팔을 부러뜨린 돌이, 이웃 동네와 투석전을 벌일 때 맨앞에 나섰다가 눈에 피멍이 들었던 짱구도 모두 생각이 난다.

 

초등학교 시절 연필에 침 발라가며 꾹꾹 눌러썼던 '부모님전상서', 크리스마스 씰을 붙여 국군아저씨에게 보내던 '위문편지', 사진만 보고 사귀던 펜팔친구에게 보내던 '연애편지', 군에 입대해서 처음 부모님에게 보내던 '안부편지' 등은 아날로그 시대의 소중한 추억들이다.

 

우리에게 소중한 아날로그 감성을 일깨워주는 책이 있다. 아버지와 딸이 서로의 글을 통해 세대간의 차이를 발견하고, 이해하며, 그리고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또한, 미국에 유학 다녀온 딸은 전공인 미술을 살려 책 곳곳에 예쁜 그림들을 싣고 있어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진다.

 

책을 펴내며

 

아버지와 딸이 함께

이 책을 펴내기로 한 순간부터

아버지는 딸을 다시 발견하고

딸은 아버지를 다시 발견하였습니다.

 

 

 

도서 제목이 독특하다. 구더기 점프하다. 난 구더기가 점프 하는 걸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구더기는 여름철 시골 화장실에서 많이 보는 흉물스러운 애벌레다. 연노란 색갈을 띠고 고물고물 기어다니는 모양이 하도 징그러워 신발에 밟힐까 봐 피해다니던 그런 벌레다.

 

파리는 알에서 애벌레, 번데기를 거쳐 파리로 변태한다. 즉 네 번의 탈바꿈을 해야 한다. 이런 고통을 겪으면서 자손을 보존하려는 그들의 지혜는 놀라울 따름이다. 파리는 호박꽃에 알을 낳는다. 꽃이 수정하여 열매를 맺으면 알은 자연히 열매의 중심부에서 애벌레로 변태한다. 구더기가 열매 속에 살면 그 부분은 썩게 마련이다. 썩어서 약한 부분을 뚫고 나와 번데기가 되고, 이후 파리가 되어 날아오르게 된다.

 

택배가 왔다. (중략) 아내는 호박죽을 한다며 곧바로 단호박을 쪼개기 시작하였다. (중략) 첫번째 호박을 갈랐다. 그런데 때깔 좋은 황토 빛 속살에 호박씨는 한 개도 보이지 않고 구더기가 바글바글 슬었다. (중략) 갑자기 열린 세상에 눈이 부시었을까. 잠시 후 그중 한 마리가 힘껏 점프를 하며 호박 속에서 나왔다. 나머지 구더기들도 덩달아 점프를 하였다.  

 

 

외롭고 빛바랜 플라스틱 빗과 컵

 

가족 .. 아빠의 일회용, 사실은 수십회용 ... 면도기

30년은 된 싸구려 녹색 플라스틱 빗.

그리고

솔이 부스스해져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칫솔들 ...

 

 

아빠는 청주대 현대문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정년 퇴임했다. 아마도 어느 유명 백화점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듯한 그 컵 안에는 가족들의 시간이 들어있다. 전기 면도기에 좀처럼 익숙해지지 못하고 계속 사용하는 1회용 면도기는 안쓰럽기만 하다. 이젠 버릴 때도 되었건만 솔이 부스스한 치솔도 마치 가족인 듯 쉽게 버리질 못한다. 아니다, 버리면 안 될 물건들이다.

 

2년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들을 정리할 때, 나는 욕실에서 펑펑 운 적이 있다. 피부병으로 고생하던 아버지를 모시고 일본으로 온천여행을 갔을 때 가정에서 사용하는 온천입욕제를 선물로 주었다. 그런데, 개봉도 않고 이를 욕실정리대에 모셔두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이를 사용하고 나면 없어질 추억이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추억은 함부로 버리는 것이 아니다.    

 

 

가난한 불빛이 아름답다

 

이사를 왔다. 짐을 푼 곳은 좁고 꼬불따란 골목들이

사람과 숲의 경계를 이루는

언덕꼭대기 집이다.

마치 하늘 아래 첫 지붕 밑에서 사는 것만 같다.

 

요즈음 우리들이 사는 동네는 대개 아파트다. 옆 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하물며 누가 이사를 드는지 나가는지 관심이 있으랴. 소위 부촌은 더 할 것이다. 그런데, 좁고 길다란 골목이 꼬불꼬불한 동네는 일반주택이다. 비록 가난할 지언정 정이 있는 곳이다. 노인들의 기침소리, 아이들의 투정소리, 부부가 다투는 소리 등 사람 냄새가 넘친다. 인기척이 스칠 때마다 뿌연 빛을 내뿜는 전봇대조차 정겹다. 가난한 불빛이 더 아름답다.

 

 

내 인생의 양념들

 

요리할 때 달콤한 설탕만이 쓰이는 것은 아니다.

쓴맛, 짠맛, 단맛, 신맛, 매운맛,떫은 맛.

부엌에 있는 갖은 양념들을 보다가 엉뚱하게도

내 인생에 쓰디 쓴 맛을 보게 해준 사람들이 생각날 때가 있다.

 

살다 보면 인생에 단맛을 준 사람보다 쓴 맛을 보여준 사람이 생각난다. 더구나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속담처럼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면 속이 더욱 쓰리다. 회사의 자금업무를 맡겼더니 믿었던 책임자가 돈을 횡령하고 해외로 도주해버렸다. 가정 방문을 했더니 남편은 가출 중이고 별거한지 이미 오래 되었다는 아내의 말이 돌아서는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다양한 양념처럼 내 인생에도 골고루 맛이 베여야 할 것 같다.

 

 

비교적 허물없는 부녀지간이었지만 출간 작업을 하면서 자주 대화하고 서로의 작품에 대해 비판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딸의 그림은 아버지의 감각이라는 필터를 통과해야 했고, 아버지의 글은 딸의 감각이라는 필터를 통과해야만 했다. 포탈사이트 마이클럽에 딸 권소정씨의 글과 그림이 연재되면서 독자들과의 소통과 공감이 인기를 끌면서 결국 이 출간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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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스 스토리 - 착한 아이디어가 이루어낸 특별한 성공 이야기
블레이크 마이코스키 지음, 노진선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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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내가 살았음으로 인해

단 한 명의 삶이라도 더 편안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성공

 

2006년 스물아홉 살이었던 저자는 아르헨티나로 휴가 여행을 떠났다. 당시 그는 인터넷으로 중고생들에게 운전을 가르치는 온라인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다. 그의 두 번째 아르헨티나 방문의 목적은 이 나라의 문화에 흠뻑 빠져드는 것이었다. 그는 탱고를 배우고, 폴로 운동을 하고, 국민 와인 말벡을 마시며, 국민 신발 알파르가타를 신고 다녔다.

 

여행이 끝날 무렵, 그는 한 미국인 여성이 사람들에게 신발을 나눠주는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비교적 잘사는 나라임에도 아르헨티나엔 신발을 못 신는 아이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맨발이라면 각종 질병에 노출될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불편하기 그지없다. 또한, 이 단체는 전적으로 기부에 의존하다보니 신발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는 아이들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었다. 그는 자신의 폴로 선생이자 친구인 알레호에게 신발 사업을 제안했다. 즉 새로운 종류의 알파르가타를 만들어 한 켤레를 팔 때마다 신발 없는 아이에게 새 신발 한 켤레를 무상으로 지급하는 신발 사업이었다. 아르헨티나 친구인 알레호는 흔쾌히 동참했다. 알레호 가족 소유의 헛간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신발'

'내일의 신발(Tomorrow's Shoes)'

'탐스(TOMS)'

 

대부분의 현지 제화공들이 함께 일하려 하지 않았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덤비는 바보라는 이유 때문이다. 마침내 탐스를 믿어주는 제화공을 찾았다. 다른 제화공들고 한 둘씩 참여하기 시작했다. 제화공들의 작업으로 250켤레의 신발을 완성해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신발 사업에는 까막눈이었다. 그는 친한 이성 친구들을 불러모아 함께 저녁을 먹으며 신발 이야기를 했다. 친구들이 한 켤레씩 사서 신고 귀가했다. 느낌이 좋았다.

 

친구들이 신발을 팔아줄 만한 가게들의 목록을 주었기에 그는 이중 아메리칸 래그라는 가게에 들러 탐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바이어는 탐스를 매우 맘에 들어했다. 곧이어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로스엔젤레스 타임스'의 패션 담당 기자가 탐스 얘기를 듣고 인터뷰를 요청해왔던 것이다. 

 

이 기사가 도화선이 되어 <보그>에서 관심을 가지면서 탐스 운동화가 이 잡지에 실렸다. 이후 여러 잡지에도 탐스 기사가 실리면서 노드스트롬, 홀푸드 등 전국 체인망을 가진 대형 매장에서도 연락이 왔다. 스칼릿 요핸슨, 토비 맥과이어 등 유면명 연예인들이 탐스를 신고 다니는 모습이 도심 곳곳에서 목격되었다. 탐스는 전국으로 팔려나갔고, 더불어 이야기도 퍼져나갔다.

 

애초에 1만 켤레의 판매 목표가 달성되면 약속대로 아르헨티나 아이들에게 신발을 나눠주기로 했다. 이 약속을 이행하기로 결심하고, 그는 인턴, 스포터즈, 알레호, 제화공 등과 함께 대형버스를 빌려 아르헨티나 북동쪽의 이 마을 저 마을을 돌며 1만 켤레의 신발을 신겨주었다.

 

어느 마을은 모든 게 허물어져 마치 쓰레기 매립장을 보는 기분이었다. 집은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고, 거리는 깨진 유리와 쓰레기로 넘쳐났다. 그러나, 아이들은 웃고 까불며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아이들의 부모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는 만감이 교차했다.

 

아이들의 웃는 얼굴은 앞으로 내 삶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 저자의 일기(2006년 10월 16일) 중에서

 

흥미로운 아이디어로 시작한 탐스가 불과 5년 만에 100만 켤레 이상의 신발을 나눠줄 정도로 성장한 탐스의 역발상을 살펴보도록 하자. 앞으로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여섯 가지 지침을 배워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나만의 사업을 창조하는 데 필요한 6가지 법칙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라

두려움은 유용한 자원이다

돈은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다

단순함이 성공으로 이끄는 핵심이다

신뢰가 사내 문화에서 가장 중요하다

기부가 오히려 최고의 투자이다

 

 

간단한 일부터 시작하라, 크게 키우기 위해 걱정하지 마라, 현재의 대기업들도 한 때는 다 작은 기업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거창한 사업이나 자선 단체를 설립하겠다고 생각한 사람도 없다. 그저 뭔가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했을 뿐이다.

 

돈이 없어도, 복잡한 사업 계획이 없어도, 화려한 경력이 없어도 뭔가를 시작할 수 있다. 작게 시작하라. 작은 기업으로 남을지라도 괜찮다. 나중에 규모가 커질 수도 있는 것이다. 세상을 구하겠다는 거창한 신념으로 굳이 시작할 필요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시작하라.

 

나를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타인을 돕는 봉사 활동 속에서 자신을 잊는 것이다

 - 마하트마 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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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도시기행 - 역사, 건축, 예술, 음악이 있는 상쾌한 이탈리아 문화산책
정태남 글.사진 / 21세기북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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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문명은 지중해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지중해를 품고 있는 나라들은 그리스, 터키,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그리고 이집트와 알제리 등 아프리카 북부지역 등이다. 또한, 레바논, 시리아, 이스라엘 등 일부 중동 아시아국들도 지중해를 마주하고 있다. 이중 지중해 한가운데 위치한 나라가 바로 이탈리아이며, 서양문화의 뿌리를 제공했다.

 

이 책의 저자는 7개 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며 유럽 구석구석을 자유롭게 누비면서 주요 매체에 글을 기고하던 건축사다. 그는 '넥타이를 맨 보헤미안'으로서 자신이 직접 경험한 유럽의 다양한 지식과 경험들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건축 분야 외에도 역사, 미술, 음악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그의 열정은 2007년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수상하게 했다.

 

이 책은 북부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볼로냐, 베로나, 제노바, 밀라노, 토리노 등 6개 도시와 중부 이탈리아의 피렌체, 피사, 아렛쪼, 시에나, 로마 등 5개 도시 그리고 남부 이탈리아의 나폴리, 폼페이, 소렌토, 아말피 등 4개 도시를 소개하고 있다. 또한, 시칠리아 섬의 타오르미나, 카타니아, 시라쿠자 등 3개 도시로 그의 여행은 끝을 맺는다.

 

비록 여행 전문 가이드북이 아닐지라도 이 책은 이탈리아를 여행코자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매매우 유용한 실용서임에 틀림없다. 저자가 건축가라고 해서 건축에 관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 등 이탈리아의 전체 모습을 폭 넓게 조망하고 있다. 자, 그를 따라 여행에 나서보자.

 

 

 

 

베네치아

 

머나먼 옛날 이탈리아 반도에는 여러 종족이 살고 있었다. 북동쪽 지역엔 베네티라는 종족이 거주하고 있었다. 현재의 베네토주州이며, 주도가 바로 베네치아이다. 영어식 표기는 베니스다. 베네치아의 뜻은 '베네티의 땅'이다.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온 사람에게 베네치아를 다녀왔냐고 물었더니 베니스는 가보고 베네치아는 바빠서 못갔다는 대답을 듣고 크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이곳은 육지에서 약 4km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물의 도시라고 불리기도 한다. 19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이곳에 가려면 배편을 이용해야 했다. 지금은 두 개의 다리가 있다. 하나는 철도용 다리로 1846년 오스트리아가 세웠고, 다른 하나는 1933년 파시스트 정권이 세웠는데 지동차용 다리이다.

 

다리를 통과한 기차는 산타 루치아역에 도착한다. 산타 루치아는 '빛의 성녀聖女'다. 이곳 산타 루치아 성당에 성녀의 유골이 보관되고 있다. 역을 건립하면서 이 성당은 헐렸고, 유골은 인근 산 제레미아 성당으로 옮겼다. 유골은 유리상자에 보존되어 있는데, 체구가 작은 가냘픈 소녀의 모습이다.

 

산타 루치아역 앞 광장에서 산 마르코 광장으로 향하는 버스(바포렛토)에 승차했다. 이 버스는 증기선으로 수상버스를 일컫는다. 대운하 카날 그란데를 따라 물살을 가르며 나아간다. 대운하 양편의 우아한 건물들은 밝게 채색되어 물위에 둥둥 떠 있는 듯하다. 특히, 명문가 콘타리니 가문이 소유했던 1400년대의 카 도로는 화려함과 세련됨이 가히 환상적이다.

 

대운하는 삐딱한 'ㄹ'자 모양으로 베네치아 심장부를 휘감으며 관통한다. 그 폭은 약 30 ~ 90미터이다. 수심은 약 5미터, 총길이는 약 3.8km이다. 베네치아는 약 120개의 작은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약 180개의 작은 운하와 약 410개의 크고 작은 다리들이 놓여있다. 베네치아는 자연스런 물의 흐름을 그대로 수용한 친환경 도시 건설의 모범 사례이다.

 

바포렛토리알토 다리 아래를 지나간다. 베네치아의 역사는 바로 이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서로마제국의 국운이 기울어 훈족의 말발굽 소리가 커지자 베네토 주민들은 공포를 피해 배를 타고 이곳으로 피난왔던 것이다. 이후 6세기 후반 게르만족 계의 롬바르드족이 이탈리아를 침공하자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 육지로 피신해왔다. 697년 지도자('도제'라고 불렀음)를 선출하여 공화정체제의 도시국가 기틀을 다졌다.

 

섬하면 고립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역발상을 한다면 섬은 사방으로 펼쳐지는 곳이기도 하다. 이들은 생존을 위해 밖으로 눈을 돌렸다. 육지와의 교역에 눈을 뜨고, 이를 위해 항해술과 선박 건조술에 관한 노하우를 차근차근 쌓기 시작했다. 이후 베네치아는 바다로 진출하면서 국력을 키워나갔다. 십자군 전쟁 때부터 급성장하여 14세기엔 라이벌인 제노바를 굴복시키고, 15세기엔 지중해 동부를 장악하는 황금시대를 열었다. 이처럼 섬은 더 이상>

 

리알토 지역은 세계 각지의 상품이 모이던 곳이며, 셰익스피어<베니스 상인>에 나오듯 금융의 중심지였다. 리알토 다리는 대운하 위에 건립된 최초의 돌다리인데, 다리 양편에 우아하게 디자인된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본디 이 다리는 목조였지만 자주 무너지자 베네치아공화국 정부가 돌다리로 대체했다. 당시 공모전에 미켈란젤로 등 쟁쟁한 인물이 응모했지만 당선작은 무명의 안토니오 다 폰테의 안이 채택되었다. 1592년에 아치 구조로 완공되었다. 관강객들을 태운 곤돌라가 다리 밑을 지난다. '산타 루치아'노래가 들려온다.

 

산타 루치아역을 출발한 바포렛토가 남쪽을 향해 약 40분쯤 지날 때 오른편 앞에 커다란 돔이 솟아오른다. 바로크 양식의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이다. 델라 살루테는 '건강의'란 뜻이다. 1629년 초여름 베네치아에 흑사병이 창궐하여 2년간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1630년 10월 베네치아 원로원은 성모 마리아에게 직접 바치는 성당을 지어 이 재앙을 퇴치코자 했다. 디자인 공모를 거쳐 1631년 공사에 착공하자 놀랍게도 흑사병이 수그러들었다. 1681년에 완공되었는데, 베네치아 도시의 유명 건축물 중 하나이다. 이 성당을 짓기 위해 115만 개 이상의 말뚝을 땅 속에 박아 넣었다니 대단한 건축술이다.

 

드디어 산 마르코 광장에 도착했다. 고딕 양식이지만 이슬람 풍이 가미된 팔랏쪼 두칼레('도제의 궁전')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궁전은 베네치아공화국의 정부종합청사였다. 리듬감 있게 반복되는 기둥과 창틀이 윗부분을 받치고 있다. 1340년에 착공되어,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증개축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이는 이슬람 문화와의 교류를 말해준다.

 

발걸음이 자연히 산 마르코 광장으로 향한다. 먼저 대성당에 눈길이 간다. 산 마르코는 마가복음의 저자 성 마가의 이탈리아식 표기다. 마치 동화 속의 건물처럼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양파 모양의 5개 쿠폴라(돔)는 축제 분위기를 만든다. 베네치아의 중요 행사는 이곳에서 열렸다.

 

대성당 정면 입구 위에 네 마리의 청동말과 그 아래 5개 아치에 장식된 화려한 모자이크에 시선이 모아진다. 모자이크 중 베네치아의 상인이 산 마르코의 유물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몰래 빼돌려 오는 장면이 흥미롭다. 828년 두 명의 베네치아 상인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했다. 당시 이집트는 그리스도교를 탄압하고 있었다. 산 마르코의 유물이 보관된 수도원에서 두 상인은 유골을 구입하여 출항시 이를 빵 바구니 밑에 숨기고 그 위에 이슬람 신자들이 싫어하는 돼지고기를 덮었다. 가져온 유물을 보존하려고 과수원 옆에 성당을 세웠는데, 976년 이 성당이 화재로 잿더미가 되자 1063년에 베네치아공화국 정부가 착공하여 30년이 지난 1094년에 완공했다. 과수원 자리가 바로 산 마르코 광장이 되었다. 

 

네 마리의 청동말은 복사본이고 원본은 성당 안에 보관되어 있다. 원본은 콘스탄티노플에서 약탈해온 것이다. 비잔틴 제국의 황태자 알렉시우스가 황제 자리에 앉도록 도와주면 엄청난 보상과 동지중해 무역 독점권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여 황위에 앉도록 했지만 약속을 어기자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여 약탈을 감행했다. 이때 가져온 약탈품인 것이다. 베네치아는 황금시대를 맞이했다.

 

흥하면 망하는 것이 역사의 이치다. 아드리아 해의 여왕으로 군림하던 베네치아도 해상권의 중심이 대서양으로 넘어가면서 서서히 부귀영화의 빛이 바래기 시작했다. 음악, 미술, 연극, 출판 등 문화의 전성기를 거치다가 1797년 나폴레옹에 의해 정벌되면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일개 도시로 전락하고 말았다. 

 

산 마르코 광장의 남쪽에 카페 플로리안이 있다. 이 카페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다. 1720년 12월 29일에 개업했는데, 원래 상호는 카페 알라 베네치아 트리온콴테, 즉 '개선하는 베네치아 카페'였다. 상호가 너무 길어 주인의 이름을 따 '카페 플로리안'으로 부르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카페는 나폴레옹, 바이런 등 저명 인사들이 즐겨 찾았다. 특히, 이 카페는 베네치아에서 유일하게 여성의 출입이 가능했다. 그래서 바람둥이의 대명사 격인 카사노바도 이 카페를 즐겨 이용했다고 한다. 

 

 

시라쿠자

 

시라쿠자는 이탈리아에서 소득수준이 가장 낮은 도시 중 하나이다. 하지만 고도고도의 분위기가 도시 곳곳에 자리잡고 있어 역사와 품위가 느껴지는 곳이다. 고대 최고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의 고향이며, 사도 바울이 전도를 위해 로마로 가기 전에 들렀던 곳이다. 신약성경에는 '수라구사'로 표기되어 있다.

 

시라쿠자의 역사가 시작된 오르티지아 섬에 들어간다. 이 섬의 초입에는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아폴론 신전의 유적이 화석처럼 굳어져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새로운 땅을 찾아 바다 건너 이탈리아반도 남단의 남서해안과 시칠리아섬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했다.         

 

기원전 8세기너온 사람들이 '쉬라쿠사이'라는 도시국가를 건설했다. 이것이 현재의 시라쿠자이다. 당시로 거슬러가면 그리스의 문화가 이탈리아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따라서, 시라쿠자는 로마에 비해 문화가 매우 앞서 있었다.

 

기원전 5세기에 시칠리아 최대강국으로 시라쿠자가 부상하면서 문화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지중해 연안의 문화 중심지로 각광받으며 이곳으로 유명 인사들이 몰려들었다. 여류 시인 사포가 망명 생활을 했고, 아이스킬로스는 자신의 비극을 초연했으며, 플라톤은 이상국가의 건설에 대해 설파했다. 

 

17세기에 발생한 지진으로 시라쿠자는 크게 훼손되었다. 이후 바로크 풍으로 재건되었는데, 이곳의 두오모도 자세히 보면 고대 그리스 신전의 유적 위에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 사이 곳곳에 고대 그리스의 흔적을 찾는 재미가 솔솔하다.

 

고대 그리스의 신화도 곳곳에 있다. 해안 가까이에 있는 아레투사의 샘은 신기하게도 파피루스가 자라고 있다. 파피루스는 민물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이 샘은 민물이라는 의미가 된다. 이런 전설이 있다. 대양의 신 오케아누스의 아들 알페이우스는 요정 아레투사를 보고 반하고 만다. 하지만 그녀는 오르티지아 섬으로 피신해 샘으로 변한다. 그러자 알페이우스도 강으로 변해 그리스 펠로폰네소스에서 바다 밑으로 흘러 오르티지아 섬까지 와 이레투사 샘과 합류한다. 이 신화도 따지고 보면 지질학적 구조 때문이다. 시칠리아 본토에서 흘러온 차네강이 바다 밑 지하로 이곳까지 연결된다.

 

아르키메데스 광장에 들어섰다. 요정 아레투사의 전설을 묘사한 분수 조각이 눈길을 끈다. 그 오랜 옛날에 발가벗은 채로 질주하던 아르키메데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의 얼굴은 온통 기쁨으로 충만하여 "헤우레카! 헤우레카!"를 외치며 백주에 달린다. 이말은 고대 그리스어로 '나는 알아냈다'라는 뜻이다. '유레카'는 영어권 사람들의 잘못된 발음이다.

 

아르키메데스는 당시 학문의 중심지인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유학하고 귀국해서 이곳에서 활동했다. 그의 업적 중 가장 위대한 것은 바로 부력의 발견이다. 시라쿠자의 왕 히에론 2세가 순금 왕관에 싸구려 금속이 섞였는지 알아보라고 명했던 것이다.

 

303년 로마제국이 기독교 박해에 기승을 부릴 때 이곳 귀족 집안의 처녀 루치아가 갑자기 약혼을 파기하고 지하 동굴에 숨은 기독교 신자들을 찾아가곤 했다. 어두운 동굴이라 그녀는 머리에 나뭇가지 관을 쓰고 그 위에 촛불을 얹어 앞을 밝혔다. 그런데, 배신감을 느낀 약혼자의 밀고로 그녀는 두 눈이 뽑히고 참수형을 당했다. 후세에 성인으로 추대되어 '빛의 성녀'가 되었다.

 

루치아의 유골은 400년 동안 시라쿠자에 보존되어 있다가 이탈리아 동부 아브룻쪼 지방의 한 성당으로 옮겨졌고, 10세기 후반 프랑스로 옮겨갔다. 하지만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기록이 없다가 1204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산타 루치아의 것으로 믿어지는 유골이 발견되자, 베네치아의 도제 엔리코 단돌로가 이를 보존코자 산타 루치아 성당을 건립했다. 이후 기차역이 세워지면서 이 성당이 없어지고 유골은 인근 산 제레미아 성당으로 옮겼던 것이다. 

 

 

이 밖에도 바다를 정복했던 구두쇠들의 고향 제노바, 아르노 강변에 핀 르네상스의 꽃 피렌체, 중세의 역사가 숨쉬는 토스카노 언덕의 소도시 시에나, 매력이 넘치는 로마, 산타 루치아 노래가 흐르는 곳 나폴리, 파도치는 저력 아래에 숨겨진 지상낙원 아말피, 영원히 시간이 멈춘 도시 폼페이 등 18개 도시를 함께 거닐 수 있다. 이탈리아 여행을 꿈꾼다면 이 책을 소지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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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차림 - 행복한 삶을 원하는 당신에게 주는 선물
안광호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당신은 행복해지고 싶은가요?

 

이 질문에 "아니요"라고 답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테마는 바로 행복이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행복을 먼 곳에 있는 보물 쯤으로 여기고 마치 초등학교 시절 소풍가서 하던 보물찾기 처럼 온 산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닌다.

 

무슨 일이니? 왜 이렇게 힘이 없어?

엄마! 형제 돼지 한 마리가 없어졌어요!

뭐라고! 형제 돼지 한 마리가 없어졌다고?

 

어린 돼지 소풍 이야기다. 엄마 돼지는 형제 돼지를 일렬로 정렬시키고 한 마리씩 세기 시작한다. 하나, 둘, 셋, ...., 아홉, 열. 그제사 엄미 돼지는 사태를 파악한 듯 빙그레 웃는다. 그리고는 아기 돼지들을 안심시킨다. 아기 돼지들은 모두 자신을 제외하고 열심히 숫자를 센 것이었다.

 

우리의 행복도 그렇다. 늘 내 곁에 있어온 것인데, 찾아보겠다고 헤매고 다니는 것이다. 잃어버린 행복이 결코 아니다. 자신에게 늘 있었던 것을 알아채지 못했을 뿐, 갖고 있어도 음미하지 못했을 뿐이다. 돈이 있어야, 지위가 높아야 행복한 줄 알고 우리는 늘 아우성 속에 살고 있다.

 

 

 

 

 

벗기

 

행복의 첫 걸음은 '벗고 비우기'이다. 욕심으로 가득 찬 우리의 마음은 더럽고 냄새나는 시궁창 같을지도 모른다. 그 안에는 수치심, 죄의식, 무기력, 두려움, 분노, 자존심 등의 오물들이 가득하다. 어느 누구도 이런 걸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이를 만든 것은 나 자신임을 부정할 수 없다.

 

아침 햇살이 창으로 들어온다. 이 경이로운 빛이 매일 내 온 몸을 가득 비춰줌에도 우리는 이 신비로움을 맞이할 줄 몰랐다. 이 행복의 빛을 맞이 하려면 우리 자신의 마음을 씻어야 한다. 씻고, 벗고, 또 비워 찬란한 그 빛과 하나가 되라.

 

많은 사람들은 '조건부 행복'을 추구하는 것 같다. 조건부란 뭘 의미할까? 돈, 명예, 지위, 권력 등의 조건이 갖춰져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을 말한다. 과연 그럴까? 큰 집을 가져도, 멋진 외제차를 가져도, 국회의원이 되어도, 성형수술로 예쁜 모습으로 바뀌어도, 또 다른 부족함으로 결코 그 조건은 채워지지 않는다. 현재라는 선물을 소중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다가올 미래는 허망하기 그지 없을 것이다.

 

하늘의 연이 바람에 두둥실 떠있다. 맞바람이 없다면 연은 절대로 날 수 없다. 맞바람이란 바로 자기 앞의 시련이요, 생각을 달리 하면 성장을 도와주는 맞바람인 셈이다. 자신에게 불어오는 그 바람을 피하지 말고 가슴 활짝 펴고 당당하게 맞이해보자. 시련에서 배우지 못하면 그 시련은 또 반복된다.

 

법정 스님이 입적하자, 그의 저서 <무소유>를 웃돈을 얹어 사겠다고 아우성이었다. 소유란 자신의 마음 속에 내 것을 만들려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무소유란 무집착이다. 무소유의 가르침을 얻으려는 사람이 책에 집착을 한다니 얼마나 아이로니한가?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본질은 '허상虛像'의 타파다. 불교에서는 이를 '공空'으로 표현한다. 본디 내가 없는데, 내 이름, 내 지위, 내 재산, 내 명예에 집착하는 순간 고통이 시작하는 법이다. 참된 나를 아는 것, 그리고 '참나'의 본질이 사랑임을 깨닫게 되면 이 세상 모두가 부처임을 알게 된다고 설파한다.

 

 

설렘

 

행복의 둘째 걸음은 설렘이다. 이는 기분 좋은 바람이다. 첫사랑을 기억하는가? 만남의 약속이 성립된 이후 온종일 거울 앞에서 거울 속의 나를 만나고 대화를 나눈다. 이 옷이 좋은지, 아니면 저 스타일이 좋은지, 어떤 표정이 귀여운지, 어떤 말투가 매력적인지 등 정말 기분 좋은 날이다.

 

이 세상은 다르기 때문에 아름답다. 너와 내가 같을 수 없는 법이다. 자기만 옳고 타인은 모두 틀렸다고 고집부리는 사람들이 있다. 신념을 넘어 아집으로 중무장하여 세상을 산다. 특히, 자수성가한 사람의 갑옷은 더 두껍다. 다양성을 인정 않고 자기가 바라보는 세계만이 진실이라고 굳게 믿을 뿐만 아니라 남에게 이를 강요까지 한다. 내 지인 중 한 사람이 이런 관점으로 주식투자에 나섰다가 거지가 된 인물이 있다. 지금도 자신의 문제점을 모르고 살고 있어 맘 아프다.

 

사내에는 기회주의자들이 있다. 그들은 다름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견지한다. 갈등이 발생하면 이 상황을 모면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 편도 들고, 저 편도 든다. 한마디로 무색무취의 꽃이다. 이런 사람을 리더로 모신다면 그야말로 멘붕이 될 것이다. 홀로 우뚝 설 수 있는 사람이 진정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자기만의 향기를 갖되, 타인의 향기도 그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내 색깔과 향기는 뭘까?

 

나는 누구인가?

지금 느낌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나는 '최선'과 '최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는 의도적으로 홀로 침묵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침묵 속에 홀로 존재해보라. 어느 순간 평온함을 느낀다. 얼굴에는 미소와 함께 삶에 대한 감사와 긍정이 절로 생긴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세상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자기 존재와 대화하면서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보자.

 

 

관계하기 

 

산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다. 우리는 '성공한 인생'에 대한 정의부터 다시 내려야 한다. 성공이란 부와 지위로만 정의 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과 기쁜 웃음 속에도 있기 마련이다. 진정 중요한 것은 '성적올리기'가 아니다.

 

소통의 기본은 사랑과 감사로 하나가 되는 마음으로 시작해야 한다. 이러기 위해선 먼저 '나'를 내려놓아야 한다. 소중한 손님을 맞으려면 온 집안을 깨끗이 청소해야 하듯이, 순수한 마음으로 성심껏 대화를 나눈다면 그 소통은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될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다 보면 갈등이 생긴다. 내 마음도 하루에 수백 번 바뀌는데, 남이야 오죽하겠는가. 남을 이해한다는 것은 진정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 갈등을 피하는 것보단 오히려 즐겨라. 때론 대화보다 냉전이 필요할 때도 있다. 갈등이 무서워 안전한 관계만 추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태도이다. 인생에서 가장 안전한 관계는 바로 죽음이다.

 

 

깊어지기

 

최고의 칼은 수천 번 이상의 달아오름과 망치질, 그리고 차가운 담금질 속에서 탄생한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다. 닥쳐오는 비바람을 담대히 받아들이고 스스로 담금질 하다보면 어느새 깊어져 있는 나를 바라보게 된다. 이런 사람들에겐 난초처럼 은은하고 깊은 향이 난다.

 

나의 지인이 나에게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냐고 물어왔다. 자신의 몸에서 향기가 나도록 만들라고 주문했다. 물론 이 향기가 향수의 내음이 결코 아니다. 남에게 봉사하고 베푸는 삶은 향기가 난다. 잘 베푸는 사람들이 있다. 아낌없이 퍼주기만 한다. 결코 대가를 바라지도 않는다. 더구나 기념 촬영은 절대로 안한다. 가진 게 많아서 베푸는 게 아니다.

 

부처는 도와주어도 내가 도와주었다는 상像을 가지지 말고 도와주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너를 도와준다는 상에 갇히면 받는 사람도 불편해한다. 도와주는 사람도 그 상에 갇혀 있으면 자만하게 되고, 또 도와준 대가로 뭔가를 바라게 된다.

 

아이가 빨리 걷게 하려고 일찍 보행기를 태우는 젊은 엄마가 있다. 이는 아이의 성장에 치명적이다. 이럴 때는 기다려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필요한 것을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 주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고치를 열고 나비가 되려면 애벌레의 발버둥이 안타까워 누에를 풀어버리면 이 애벌레는 영원히 나비가 될 수 없다.

 

회사 구내식당의 풍경이다. 휴대전화를 받으면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많다. 밥을 먹을 때는 온전히 그 밥에 몰입하자. 사람을 만날 때는 온전히 그 사람만 느끼자. 마찬가지로 일할 때는 온전히 그 일과 하나가 될 때, 그 끝에서 돈도, 명예도, 권력도 나온다.

 

 

어린 돼지의 무지함처럼 우리도 무지한 삶을 살고 있다. 스스로 만든 생각의 장막 때문에 실재를 보지 못한다. 그 안에 늘 존재하고 있던 행복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뭔가 더 하려고 애쓰지 말고 조용히 눈을 감자. 아주 길고 평안한 호흡을 느껴보자. 그 속에도 행복의 작은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지금이 가장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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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된다고 하지 말고 아니라고 하지 말고 - 임윤택 에세이
임윤택 지음 / 해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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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불가능한 건 절대 없어!

 

음악전문 방송 Mnet이 전국민을 대상으로 신인가수를 발굴하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2011년 8월부터 11월까지 장장 3개월 동안에 이뤄진 서바이벌은 출연자들의 화려한 공연과 뛰어난 가창력으로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4명으로 구성된 울랄라세션은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펼치면서 출연자 중 소위 갑甲이었다.

 

특히, 울랄라세션의 리더인 임윤택이 위암 말기로 항암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 팀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사실 이 팀은 아마추어가 아니었다. 이미 미사리 카페촌에서 그 실력이 출중하다고 널리 회자되고 있던 공연 팀이었다. 이들은 버스커 버스커와의 결승에서 당당히 우승하여 상금 5억원을 거머 쥐었다.

 

이 책은 임윤택이 이 땅의 청춘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전하는 따스한 에세이다. 때론 그와 함께 비정상적인 처결에 울분을 느끼고, 때론 당당하게 현실에 맞서는 그의 행동에 박수를 보내고, 때론 꿈을 찾아 열정을 쏟는 그의 용기가 나에게 전염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춤추는 것을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그는 그 시절 최고의 이벤트가 유치원 재롱잔치였다. 사람들 앞에 나서길 꺼려했지만 재롱잔치에서 추는 춤은 한번도 싫어한 적이 없었다. 춤을 잘 추면 대개는 활달한 성격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초등학교 때의 그의 모습은 내성적인 성격에다 뚱뚱한 '비만 아동'이었다. 초등학교 졸업여행 때 장기자랑에서 구경한 급우들의 춤 솜씨에 반해 이후 그는 그룹 '듀스'의 춤과 노래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비만은 춤을 추는 사람에겐 공공의 적이다. 그는 춤 연습을 위해 다이어트를 실행했다. 한편, 댄서 가수들의 모습을 비디오로 녹화하여 이를 학습 교재로 활용했다. 미국 방송 AFKN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주말에 방송하던 <소울 트레인>에는 흑인 가수들의 다양한 춤들이 소개되어 많은 춤 동작을 배울 수 있었다.

 

춤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자연히 모여들었다. 현재 울랄라세션의 스케줄 관리를 담당하는 우진과의 인연도 이때 생겨났다. 중학에 진학해서도 춤 연습은 계속 되었다. 수업이 파하면 다들 모여서 연습에 몰두했다. 장소는 주로 집 근처 초등학교 뒤편 공터였다. 동네 꼬마들 사이에서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춤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일이 생겼다. 2학년 체육대회 때 학급 대항 댄스 대회가 생겼던 것이다. 그는 춤 동아리 급우들과 함께 출전하여 전 학년을 통틀어 우승하는 실력을 뽐냈다. 학교 내에서 영웅이 되었다. 3학년 졸업여행 때는 학생회장의 요청으로 한 시간짜리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이 무렵 그와 동아리의 부모님들이 연습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공식적인 연습실은 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되었다. 팀의 기량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갔다. '루트 H', 정식 팀 명칭도 생겼다. 이들의 꿈도 덩달아 커졌다. 크고 작은 대회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었지만 이들은 더욱 큰 물을 원했다. 댄스 대회에서 이미 인사를 드린 적 있었던 구의원을 찾아가 단독 콘서트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지원을 약속받았다. 콘서트는 대박이었다. 천 명이 넘는 관중이 구민회관을 가득 메웠다. 관중들의 환호성은 그들의 미래에 큰 힘이 되었다.

 

비만한 몸집과 소심한 성격 때문에 그는 초등학생 때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었다. 그런데, 이런 친구들이 같은 중학교을 다니게 되자 또 다시 그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이번엔 그냥 당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실컷 패주었다. 그 때의 그가 아니었다. 한번은 자신을 괴롭히던 축구부원이 경남 진해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로부터 사과를 받고자 진해까지 내려가는 집요함을 보였다.

 

머리에 노란 물을 들이고 나타난 그에게 한 선생님이 핀잔을 주자, 그는 당당하게 자신의 소신을 피력했다. 운이 좋게도 이러한 그의 당당함을 선생님이 무시하지 않고 수용해주었다. 비록 칭찬은 아니라해도 그를 인정했다는 것이 오늘날의 그를 탄생시킨 원동력인 듯하다.

 

"아이들과 외모가 좀 다르다고 해서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머리 노랗고 귀걸이를 하는 천상 착한 사람과, 깔끔한 옷을 입고 평범해 보이지만 사기 치는사람이 있다면 어느 쪽이 옳은 건가요? (중략) 외모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건 너무 바보 같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교칙 원리주의를 고집하는 선생 때문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댄스 팀 활동에 더욱 주력했다. 그가 결성한 루트 H가 엄청난 유명세를 떨치자 연예기획사는 춤에 특별한 자질을 보이는 3~4명에게만 유혹의 손길을 내밀었다. 이를 막지 못하고 실력 좋은 친구 3명이 떠나면서 연습실도 폐쇄했다. 그는 당구장에서 빈둥대는 방황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후 재결성하여 그는 엔터테이너로서 미사리 카페촌에서 색다른 공연을 시작했다. 기존의 미사리는 발라드 위주의 조용한 공연이 주였다. 2000년을 기점으로 가수 춘자가 무대에 서면서 서서히 분위기가 바뀌는 중이었다. 발라드 외에 디스코, 알앤비 등 다양한 노래들이 공연되었다. 그는 이제까지 미사리에서 선보인 적이 없었던 엄청난 규모의 퍼포먼스를 펼치면서 관객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리더 임윤택, 춤 솜씨가 날로 발전하는 박광선, 노래를 제일 잘하는 김명훈, 스타일링이 돋보이는 군조, 눈빛으로도 대화가 가능한 박승일 등 5명이 울랄라세션의 멤버이다. 20년 지기 친구 우진은 이들의 매니저이다. 군조를 제외한 4명은 <슈퍼스타 K>에 도전하면서 기존의 가수 못지 않는 인기를 한 몸에 받았었다.

 

 

얼마전 그는 자신의 꿈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울랄라컴퍼니'라는 기획사를 설립했다. <슈퍼스타 K> 우승 후 매력적인 조건의 영입 제안들이 쇄도했지만 자신만의 색깔을 위해 내린 과감한 결단이었다. 이 책은 그의 멘토인 이외수 작가의 권유로 이루어졌다.

 

"진정성만큼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도 없지.

임 단장이 겪은 일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거야"

 - 이외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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