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카페의 노래 열림원 세계문학 6
카슨 매컬러스 지음, 장영희 옮김 / 열림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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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사랑은 이성적인 부분으로 설명할 수 없는 블랙홀과 같은 영역이다. 게다가 이 늪에 한번 빠진 후에는 자신만의 힘으로 빠져나오기 힘든 경우도 많다. 그야말로 에로스가 인간을 시기해서 파놓은 늪과 같은 존재. 열림원 세계문학 카슨 매컬러스의 슬픈 카페의 노래는 이런 인간의 원초적인 면을 적나라하게 마주할 수 있는 작품이다. 사람에게서 교육, 체면, 사회적 시선, 예의 등등 세월이 지나면서 짐승과 달라 보이기 위하여 만든 모든 것을 걷어낸 모습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카슨 매컬러스 작가 소개

1917년 미국 남동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16세부터 단편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19세에 자전적 소설인 『천재』로 문단에 데뷔하였다. 이듬해 결혼하였으나 서로의 양성애적 성향으로 바람을 피우며 삼각관계까지 가면서 결혼 4년 만에 이혼한다. 저서로는 1940년에 집필한 장편 소설 『마음의 외로운 사냥꾼』, 『황금에 비친 모습』 등이 있으며 두 작품 모두 영화화되었다. 1967년 50세의 나이로 뇌졸중으로 인한 투병 중 하늘의 별이 되었다. 오늘 소개하는 작품인 『슬픈 카페의 노래』 또한 1991년에 영화화되었다.





영화 포스터 (출처 : 네이버 영화)

줄거리

성별을 알 수 없는 창백한 얼굴에

회색빛 사팔눈은 너무 심하게

가운데로 쏠려 있어서

두 눈이 남몰래 간직한 슬픔을 나누며

서로 은밀히 마주 보고 있는 듯하다.

p.10

황량한 마을에 사는 미스 어밀리어는 과거에 딱 열흘 동안 결혼생활을 유지했던 전남편 마빈이 있다. 마빈의 일방적인 사랑으로 결혼을 했으며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하여 돈을 좋아하는 그녀에게 전 재산을 양도하지만 어밀리어는 견디지 못하고 쫓아낸 것. 이후 별다른 일 없이 조용하게 흘러가던 마음에 그녀의 사촌임을 자처하는 꼽추 등을 가진 라이먼이 등장한다. 타인에게 개인적인 마음을 나누어주지 않기로 유명해한 그녀지만 라이먼을 사랑하게 된다. 이때 카페도 열고 황량한 그곳은 점차 사람들의 휴식처로 바뀌게 된다.

카페에 앉아 있는 동안만은

단 몇 시간이라도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이 세상에

자신이 가치 없는 존재라는

쓰라린 생각을 조금은

떨쳐버릴 수 있었다.

p.106

처음 그녀 앞에 등장할 때만 하여도 사람의 몰골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였고 자존감이라고는 전혀 없었지만 그녀의 사랑과 관심으로 점차 달라진다. 며칠 사이에 교활한 라이먼은 어밀리어 위에 군림하다시피 하며 그곳에 지내게 되며 온갖 마을 사람들에게 이간질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감옥에 간 전 남편인 마빈이 출소하여 이곳에 오게 되고 그를 처음 본 라이먼은 첫눈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라이먼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던 마빈. 마빈의 관심을 얻기 위해 라이먼은 별짓을 다 한다.

신 외에는 그 누구도 이 같은 사랑

아니 다른 그 어떤 사랑에 대해서도

최종적인 판결을 내릴 수는 없다

p.66

그러던 어느 날 서로에게 원수 같은 사람인 어밀리어와 마빈은 말 그대로 몸으로 싸움을 하게 된다. 그녀의 키는 180이었고 마빈은 그녀보다 4센티 작았으며 둘 다 70킬로그램 정도 나가는 비등비등한 몸의 소유자였기에 팽팽한 싸움이 진행된다. 그러나 갑자기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되고 이후 이 마을은 예전의 황량함을 다시 되찾게 된다. 과연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어밀리어, 마빈, 라이먼의 결말은 어떻게 끝났을까? 영화로도 나온 이 영화는 꽤 성공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나의 생각

우선 사랑이란 두 사람의 공동 경험이다.

그러나 여기서 공동 경험이라 함은

두 사람이 같은 경험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랑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있지만

두 사람은 완전히 별개의 세계에 속한다.

p.50

열림원 세계문학 카슨 매컬러스의 슬픈 카페의 노래에는 작가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가 무려 세 페이지에 걸쳐 길게 나와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딘가 조금은 비틀린 관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서로가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만 열렬하게 상대를 품는 것. 이는 작가 자신의 삶과 작품 속 어밀리어의 삶이 오버랩되면서 애정 문제에 상처를 많이 받았음을 느끼게 된다. 작중에 어밀리어는 철저하게 이 정의에 따라 움직이는데 독자가 보기에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의아함도 느끼게 된다.

그녀는 가게에 맥주를 사러 들른

손님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신랑을 대했다.

p.;59

개인적으로 느낀 부분인데 작품 속 마을은 우리의 마음과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라이먼을 만나기 전 그녀는 오로지 돈과 일 그리고 소송만을 즐기던 여자였다. 하지만 보잘것없는 그의 등장으로 한낱 가게에서 마을의 많은 사람이 모여 쉴 수 있는 카페로 변모하게 된다. 덕분에 마을은 사람들이 서로 마음을 나누고 소통을 하며 지내는 공간이 된다. 그래서 배경 자체는 에로스의 화살을 맞은 우리들의 확장된 마음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꼽추는 그가 밟고 있는

마룻바닥의 널빤지 하나하나까지도

다 자기 소유인 양 거만하게,

그리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p.36

다음으로 일방적인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부정적인 새싹을 키우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마빈의 애초 행실은 양아치에 가까웠지만 어밀리어한테는 온 마음을 다하여 자신을 희생한다. 그 결과는 매일 얻어맞다가 모든 것을 빼앗기고 쫓겨나는 것. 그런데 세월이 흘러 어밀리어는 라이먼을 만나 마빈의 위치로 들어가게 된다. 물론 라이먼이 그녀에게 물리적 폭력을 휘두르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더 심각하고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돌려주었다. 단지 그녀의 마음을 얻었다는 이유만으로 군림한 것이다.

인생은 단지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얻기 위한

하나의 길고 어두운

싸움일 뿐이었다.

p.105

등장인물 중에 생김새부터 마음씨까지 정상적인 사람은 하나도 없는 카슨 매컬러스의 슬픈 카페의 노래는 제목처럼 결말이 행복하지는 않다. 그러나 과연 이것을 행복과 불행 이분법으로만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작게는 개인의 사랑 이야기이지만 크게 보면 인간 종족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문명의 모든 것을 걷어낸 본능적인 인간의 사랑이 어떤지 궁금하신 분이라면 윌리엄 포크너와 함께 미국 남부를 대표하는 작가가 쓴 이 책을 추천한다.



*** 출판사에서 도서 협찬을 받아 읽은 후

개인의 주관적 견해로 작성했습니다.

#슬픈카페의노래 #카슨매컬러스 #고전문학 #열림원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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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극단에 서는가 - 우리와 그들을 갈라놓는 양극화의 기묘한 작동 방식
바르트 브란트스마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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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상에 너무나도 익숙한 단어가 양극화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용어의 기본 개념과 그것의 생성 원리, 작동 방식, 해결 방안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다고 할 정도로 무지하다. 갈등과 갈라 치기에 휘둘리지 말자고 하면서도 누가 이런 상황을 만드는지, 그 책임자가 누구인지조차 가늠하지 못하여 그 늪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오늘 소개할 바르트 브란트스마의 우리는 왜 극단에 서는가는 책은 얇지만 우리 사회의 문제로 떠오른 것의 실체를 파헤쳐놓았기에 소개해 본다.



바르트 브란트스마 작가 소개

지역과 국가 문제에 대하여 유럽 전역에서 활동하는 네덜란드의 컨설턴트이자 실용 철학자로서 경·검, 경영진, 언론인, 정치인, NGO 활동가 및 다양한 전문가들을 가르치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일하면서 그는 우리 사회에 항상 존재하는 역학을 탐구하기로 결정했다. 분쟁 지역에서 양극화 전략을 테스트했으며 유럽 각지에서 연구를 계속하며 양극화 사고 프레임워크를 개발했다. 기업을 설립하고 책을 집필하여 전문가들에게 양극화의 역동성과 그러한 역동성 내에서 전문가의 역할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고자 했다. 프로젝트는 성공적이었고 미디어 시대에 증가하는 양극화에 대한 깊이와 품질에 답변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책 속으로

1장에서는 양극화의 세 가지 기본 법칙부터 논한다. 그 내용은 사고 구조, 연료, 직감의 역학이다. 쉽게 말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기 위하여 상대의 정체성을 만들어 구분하는 사고 구조에서 시작된다. 나쁜 점은 오늘의 주제이며 좋은 점은 사고의 구성하는 개념과 프레임을 살펴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즉 현재 사회의 문제에 무력하게 손을 놓고 있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연료 공급이 필요하며 이때의 연료는 의도의 좋고 나쁨을 논하지 않고 이용되는 특징이 있다.

개인적으로 기본 원칙 중 세 번째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바로 이런 현상은 이성의 영역이 아닌 직감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양극화가 증가함에 따라 합리성은 감소한다는 것. 심지어 명확하게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근거가 나와서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인지해야 하는 순간에도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의 음모론을 들고나온다고 한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말하는 자신은 스스로의 발언에 대하여 무조건 논리적인 진실만 말한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양극화 작동 방식에는 다섯 가지 역할이 있는데 순서대로 주동자, 동조자, 방관자, 중재자, 희생자가 있다. 이 부분이 생각보다 중요한데 바로 자신이 정치나 미디어에 휘둘리지 않기 위한 기본 개념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주동자는 사고에 연료를 공급하는 임무를 띠고 있으며 동조자는 주동자의 견해를 완벽하게 찬성하거나 반대하지는 않지만 결정적일 때는 지지자의 진영에 들어간다. 방관자는 말 그대로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 중간자이며 중재자는 양쪽의 대화를 주선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위치이다.

희생자는 정확히 중간 지대에서 찾으며 중간 지대의 허용 범위에 따라 양극화 압력을 측정할 수 있다. 웃긴 것은 이 희생자의 역할에 가장 알맞은 후보군이 중재자라는 것이다. 주동자는 자신의 편을 만들 때 동조자가 아닌 중간에 위치한 방관자나 중재자를 타깃으로 잡는다. 어느 쪽이든 이미 내 편을 더 내 편으로 만드는 노력보다는 세력을 넓히는 쪽을 택하기 때문이다. 3부에 가면 이런 현상을 바로잡는 방식이 나와 있다. 흔히 말하는 서로를 알기 위한 대화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하게 제시한 후 제시하는 방법이기에 꽤 몰입도가 높았다.

나의 생각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이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이다. 좋은 의미로 이름을 불러주면 나에게 의미가 생긴다는 말이지만 바르트 브란트스마는 상대에게 정체성이라는 이름을 붙여줌과 동시에 양극화는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성향은 인간의 본성에서 나온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은 서로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한정된 자원 내에서 같은 것에 대하여 욕구를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과정을 전문적이지 않은 용어와 많은 예시로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설명하였다.

주동자, 동조자, 방관자 이야기를 우리의 현실로 잠시 접목하면 TV에서 방영하는 정치인의 토론은 결코 상대에게 자신을 이해시키거나 상대를 이해할 목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조자이지만 아직 정확하게 내 편에 서지 않은 국민과 중간 지대에 있는 방관자들을 좀 더 확실하게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하여 하는 행위. 눈은 상대를 바라보고 있지만 말은 TV를 보고 있는 국민에게 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구조를 파악하면서 미디어를 마주한다면 조금은 덜 휩쓸리지 않을까 한다.

바르트 브란트스마의 우리는 왜 극단에 서는가는 기존의 관련 도서들과는 결이 조금 다른 도서이다. 현재와 같은 사회에서 이런 식으로 사고방식을 정립하고 판단력을 키워 그 파도에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이 아니라 이런 현상이 생기게 된 원인을 인간 본성에서 찾으며 철저히 구조적으로 분석하려고 노력한 책이다. 그래서 독자가 자신의 편협함으로 인하여 사회의 파도에 맹목적으로 휩쓸렸다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책 속에 빠질 수 있다.

점점 더 심각해져 가는 양극화 현상을 우리는 누구나 느끼고 있다. 남과 여,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 노인과 청년, 부자와 빈자, 고학력과 저학력, 도시와 농촌 등등 이름을 붙이기만 하면 일단 시작되는 갈라치기 현상. 이에 대하여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개탄하기는 하지만 명확한 대책이 없어 위기감만 느끼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조금이라도 스스로의 자존감과 자신감 그리고 이성적인 판단력을 유지하면서 이런 위기를 잘 넘겨보고 싶은 분이라면 누구나 몰입하여 읽을 수 있는 책이다.

*** 출판사에서 도서 협찬을 받아 읽은 후

개인의 주관적 견해로 작성했습니다.

#우리는왜극단에서는가 #바르트브란트스마 #양극화분석 #한스미디어 #안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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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리미티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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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단순히 죽으려고 하는 자와 이를 막으려고 하는 자가 아닌 자신이 살면서 대조되는 모든 것을 넣고 생각하다가 보면 천재적인 작가의 생각을 더 깊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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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리미티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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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를 처음 만났던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처절했던 디스토피아 소설인 더 로드를 통해서였다. 서점가에 블록버스터 영화를 개봉하는 것처럼 광고를 하던 책이었기에 속는 셈 치고 한번 읽어보자는 마음으로 집어 들었다가 몇 년을 책의 그림자에 갇혀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이후 이 작가의 책은 심력 소모가 심하다는 것을 깨닫고 멀리했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어 미리 밝히지만 그만큼 잘 쓰인 작품이라는 뜻이다. 그러던 나였지만 죽을 듯이 더운 더위를 넘기고 나니 그의 그림자가 그리워져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코맥 매카시의 선셋 리미티드를 손에 잡았다.


코맥 매카시 작가 소개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1933년 미국 태어난 매카시는 1951년 테네시 대학교에 입학해 인문학을 공부했다. 1965년 첫 소설 『과수원 지기』로 문단에 데뷔한 이래 1985년 작 『핏빛 자오선』으로 명성을 얻었다. 2007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로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등을 출간하며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출간작으로는 『모두 다 예쁜 말들』, 『국경을 넘어』, 『평원의 도시들』, 『바깥의 어둠』 『신의 아들』 『서트리』 등이 있다.


줄거리

내 이유의 핵심은 점차

환상을 믿는 척하지 않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뿐이에요.

현실의 본질을

점차 깨닫게 된 거지요.

세계의 본질을.

p.116



이 작품은 꽤 단조로운 희곡 형식으로 전개된다. 최소한의 움직임과 오로지 두 남자의 대화로만. 한 남자는 백인이며 교수이다. 문명에 대하여 더 알아가면서 어느 순간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고 선셋 리미티드(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달리는 급행열차)에 몸을 던진다. 다른 남자는 흑인이며 살인으로 교도소를 다녀온 목사이다. 그는 자신의 생일날 달리는 열차에 몸을 던지는 백인을 구해 자신의 집 탁자에 앉혀 놓았다. 서로 자신의 의견이 맞는다며 토론의 장을 벌인다.


모든 걸 포기해버렸어.

그런데 문득 그 말을 해버렸어.

이렇게 말한 거야.

날 좀 살려주세요.

그러니까 살려주시더라구.

p.103

백인은 흑인의 도움에 감사함을 느끼지만 여전히 그 장소를 벗어나 자신의 고집대로 길을 가겠다는 입장이며 흑인은 그를 어떻게든 길게 그를 잡아 두고 신의 존재를 피력하면서 백인이 열차에 몸을 던지는 일을 막아보려고 한다. 교수가 생을 마감하려는 이유를 이해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고 아닌 독자도 있을 정도로 모호하다. 목사는 교수가 더는 스스로 선셋 리미티드에 몸을 던지지 않으려는 의지를 심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의 생각

완전히 바닥까지 떨어져서

어떻게든 크게 한 걸음을

떼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을

하느님이 눈여겨보는 것

같다는 거야.

p.51

이 작품에서 선셋 리미티드는 열차라는 구체적인 사물을 의미한다.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책 속에서는 현실에서는 절망에 빠져 그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넓게 본다면 인류의 운명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sunset은 해 질 녘이라는 뜻이지만 마지막(끝나가는)이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한정된 마지막. 이것이 느껴지는 순간 그의 작품 더 로드의 이미지가 이 도서와 겹치기 시작했다.


만약 사람들이 슬픔 때문에

자살을 하는 거라면,

그렇게 죽은 사람들을

해가 지기 전에 죄다 땅속에

묻는 것만 종일 해야 할 거야.


p.125

사실 현실적인 삶만 보자면 교수의 삶이 빈민가 목사의 삶보다 훨씬 나아 보인다. 게다가 교수가 느끼는 절망은 한 개인으로서 사적인 의미의 감정이 아니기에 한편으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기도 한다. 절망적인 삶에서 희망과 생명을 보고 이를 전하는 흑인과 죽음을 말하는 백인. 시니컬한 마음을 가지고 읽으면 백인의 사고에 빠지게 되고, 긍정의 마음을 가지고 읽으면 흑인의 설득에 빠지면서 그의 안타까움을 심장 끝에서 끓어오듯이 느낄 수 있다.


중요한 건, 교수 선생.

인생에 괴로움이 없다면

자신이 진짜로 행복하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는 거 아니겠소?

뭐에 비교할 건데?

이 책을 읽다가 보면 자동으로 니체의 고통에 관한 부분과 연결이 된다. 인간이 고통을 싫어하고 저주하는 이유는 고통 자체가 아니라 고통의 무의미 때문이라고. 그러니 고통으로부터 멀어지지 말고 용기를 내어 그 심연을 들여다보며 고통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말이다. 사실 이 책을 읽는 도중에는 흑인의 주장으로는 어느 누구도 설득시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백인의 의견에 매료되었다. 아마 홀로 삶의 피곤함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일수록 교수의 주장에 빠져들 것이다.

빛이 선생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다.

다만 선생이 어둠밖에

보지 못할 뿐이다.

그 어둠은 바로 선생이다.

선생이 그 어둠을 만드는 것이다.

p.114

그러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면서 오히려 단면만 바라보며 그렇게 될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스스로의 생명을 끊으려는 교수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신을 내세우며 타인을 설득하려는 목사가 편협한 것일까? 아니면 발생하지도 않은 미래를 자신의 생각으로 재단하고 생명을 끝내려는 고집을 꺾지 않는 교수가 편협한 것일까? 마지막 흑인 목사가 하나님을 향해 울면서 하는 기도를 보면서 삶과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건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글쎄. 사람들은 가끔 어떤 걸

손에 쥐고 나서야 그걸 자기가

쭉 원했다는 걸 알게 되기도 하던데.

p.84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삶과 죽음을 말하는 코맥 매카시의 선셋 리미티드는 형식이 보여주는 것처럼 연극 무대로 올랐으며 2011년도에 토미 리 존슨과 사무엘 잭슨 주연으로 영화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삶과 죽음의 대비를 백과 흑으로 나눈다면 흑인이 삶인 백쪽에 있고 백인이 그 반대쪽에 있는 부분도 인상 깊었다. 책을 읽으면서 단순히 죽으려고 하는 자와 이를 막으려고 하는 자가 아닌 자신이 살면서 대조되는 모든 것을 넣고 생각하다가 보면 천재적인 작가의 생각을 더 깊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선셋리미티드 #코맥매카시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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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구원
에단 호크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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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펼치기 전 에단 호크라고 하면 작가라기보다는 어릴 때 보았던 죽은 시인의 사회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배우였다. 배우가 쓴 작품. 이 단서 때문에 이 책에 대한 허들이 내겐 높았다. 자신의 유명세만 믿고 쓴 글에 온갖 미디어의 찬사만 붙은 껍데기만 있는 활자 무더기가 아닌가 하는 의심.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 잘생기고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가 아닌 책상 앞에서 백스페이스를 미친 듯이 누르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작가의 모습만이 남아 있었다. 



몸은 세포 분열로 인하여 커졌지만 마음은 여전히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던 한 어른의 성장통을 연극 무대와 연계하여 쓴 작품이 에단 호크의 완전한 구원이다. 이 책은 그의 자전적 소설로 알려져 있다. 작중 인물은 너무나 어린 시절 겪었던 부모의 이혼에서부터 자라지 못한 마음과 너무 어린 시절에 시작한 배우 생활로 마음의 성장이 멈춰버린 모습, 유명인으로서 겪는 사생활에 대한 관심과 그에 따른 비난 등은 그의 현실적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연극 속에 빠지다 보면 불륜, 애정 없는 부모, 거짓말, 아버지로서의 실패작이라는 말로만 정의되는 존재가 아닌 것 같다. 나를 정의하는 다른 말이 있을 것 같다.

-p.47


주인공 윌리엄 하딩은 서른두 살의 유명한 배우이며 록스타 가수와 결혼하여 딸과 아들을 두고 6년째 결혼생활 중이지만 그다지 순탄치 않다. 누구나 인생의 어느 순간에 느끼듯이 하딩도 자신의 존재와 그 이유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에 대한 충동으로 아프리카로 촬영을 간 때 그곳의 젊은 여자와 하룻밤 관계를 맺게 되고 이것이 각종 일간지에 대서특필이 되면서 완벽하게 이들의 결혼은 끝이 난다. 그러나 그에게는 헨리 4세의 무대가 기다리고 있다.


"계획을 다 포기할 필요는 없어요. 그냥 반짝거리고 섹시하고 차갑고 거만한 공주님과 결혼한 부분만 포기하면 돼요. 당신은 항상 똑똑했잖아요."

-p.108


이혼이 하고 싶지 않았던 하딩은 모든 정신을 무대에 쏟아붓지만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다. 세상 모든 사람이 그의 문제를 알고 있지만 본인만 모르는 상태랄까? 하지만 세상은 한 인간이 가장 바닥에 떨어졌을 때 한줄기 빛을 내려준다고 했던가. 연극 무대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 그에게 어떤 방식으로든지 힘을 주려고 한다. 무뚝뚝한 이는 그 나름대로, 상냥한 이는 상냥한 대로, 스스로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이는 그만의 방식으로. 그러나 하딩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내가 말하는 게 그거야.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야. 그런 건 중요하지 않지. 우리가 원하는 건 특정한 일을 위한 자유다."

-p.300



여전히 아내가 자신을 용서하고 다시 가정을 이룰 수 있으리라는 혼자만의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 게다가 그는 영화배우였기에 연극 무대에서도 많은 문제점이 있다. 스스로만 돋보이면 되는 주인공에서 모두가 함께 합을 맞춰야 하는 상황. 그리고 주인공은 또 따로 있다. 6주의 연습 후 드디어 공연 시연을 하게 되었는데 일간지에서는 주인공과 다른 사람들에게는 찬사를 보내지만 하딩의 연기에는 혹평만이 가득하다. 점점 일에서도 무너지는 느낌을 받고 있는 상황. 과연 그는 어떻게 이를 극복하고 성장할 것인가?



"만약 우리가 그 공허함을 받아들이고 그 안을 들여다본다면, 한없이 깊은 그 어두운 우물 안에 평화가 있다는 걸 알게 될지도 몰라."

-p.75


어른의 성장통을 다룬 에단 호크의 완전한 구원 속 하딩을 보면  누구나 자신이 가장 힘들게 망가졌던 시기를 떠올리게 된다. 그것이 지나간 사람도 있을 테지만 현재 진행형이라면 꽤 빠져들게 된다. 이유는 그 과정이 드라마처럼 극적이라든가 아름답지 않고 냉정한 현실 속에서 절절하게 아파하는 모습으로 인하여 특별한 사람의 고통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변인의 위로와 방법이 그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 그들만의 방식으로 전달되는 것도 상당히 현실적이다.



'사느냐 죽느냐'는 자살할까 말까 자문하는 말이 아닐세. 깨어 있는 정신으로 자신의 인생에 집중하겠는가를 묻는 거지."

-p.313



본인이 하고 싶고, 원하는 것은 가져야만 했던 철부지 남자는 절망도 하고, 화도 내고, 스스로 망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어떤 사건으로 인하여 결국은 깨닫는다. 자신이 얕잡아 본 대역도, 명성만으로 주인공을 꿰찼다고 여긴 원수 같은 배우도, 관객의 박수는 한 개인의 배우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그리고 지금 자신의 곁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 무작정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러면서 빛줄기 하나 없이 어두워 언제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하여 한껏 움츠리고 있던 어린아이가 드디어 고개를 들고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우리는 '만약'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선택이라는 개념과 맞닥뜨렸음을 압니다."

-p.323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과정이 헨리 4세 연습하는 것에서부터 마지막 무대까지 그 안의 연기와 함께 한다는 점이다. 셰익스피어의 대사와 함께 하는 소설이기에 자칫 가벼울 수 있는 내용이지만 상당히 고급스러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심지어 작품의 챕터 또한 막과 장 그리고 인터미션으로 구성되어 있어 책을 다 읽고 나면 연극 속의 또 다른 연극을 본 느낌이다. 이 연극은 단순한 서사가 아니라 하딩의 심리 상태와 꽤 잘 어우러져 독자로 하여금 어느 것이 연극이고 어느 것이 현실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만든다.



"바람은 그냥 불어올 뿐입니다. 그게 바람이에요. 비도 그냥 내릴 뿐입니다. 비니까."

-p.160



연극이 시작되면서부터 하딩의 대기실에는 매번 그가 어려움을 견딜 수 있도록 유명인의 어록이 쓰인 쪽지가 붙어 있다. 마지막 공연까지. 중간에 그는 자신에게 이렇게 힘을 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찾으려고 노력을 하지만 공연이 끝난 직후까지 찾지 못한다. 마지막에 그 존재가 밝혀지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어서 놀라웠다. 마지막에 그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그것을 타면 안 될 것 같다며 강아지와 함께 계단을 통해 올라가는 모습에서 그가 문제를 대하는 마음가짐의 변화를 독자는 느낄 수 있다.


*** 출판사에서 도서 협찬을 받아 읽은 후 개인의 주관적 견해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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