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앙마님의 서재 (앙마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5963145</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ue, 21 Jul 2026 20:20:06 +0900</lastBuildDate><image><title>앙마</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35963145392038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5963145</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앙마</description></image><item><author>앙마</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보이지 않는 공기의 세계 - [공기의 세계 - 보이지 않는 숨, 질병, 그리고 생명의 역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5963145/17388216</link><pubDate>Sun, 12 Jul 2026 22: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5963145/1738821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72130176&TPaperId=1738821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40/68/coveroff/k27213017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72130176&TPaperId=1738821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공기의 세계 - 보이지 않는 숨, 질병, 그리고 생명의 역사</a><br/>칼 짐머 지음, 이상훈 옮김 / 다산초당 / 2026년 06월<br/></td></tr></table><br/><br><br><br><br>***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직접 작성한 서평입니다.<br><br>칼 짐머의 『공기의 세계』는 인간이 발견한 보이지 않는 숨, 질병, 그리고 그 과정에서 걸어온 생명의 역사를 따라가는 과학 논픽션이다.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에 이어 코로나19를 현재에도 겪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공기란 타인의 학문으로만 치부하기 힘든 생활형 과학에 속한다. 그 어떤 생물보다 공기에 민감한 인류이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보다 그 메커니즘을 더 모르고 있다. 이런 점에 착안하여 퓰리처상을 수상한 칼 짐머는 가장 쉬운 언어로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을 전하고 있다.<br><br>칼 짐머 작가 소개<br><br>예일대학교 분자 생물 물리학 및 생화학 겸임 교수이자, 미국을 대표하는 과학 저술가이다. 분자생물학부터 진화, 감염병까지 폭넓은 분야를 다루며 과학 저술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꼽히는 내셔널 아카데미 과학 커뮤니케이션 상을 비롯해 미국 과학진흥협회 과학 저널리즘 상(3회), 과학 대중화에 기여한 개인에게 수여하는 스티븐 제이 굴드 상, 전미과학 작가협회 사회 저널리즘 과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뉴욕타임스》 탐사 보도팀 일원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심층 보도하여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웃음이 닮았다』, 『생명의 경계』, 『바이러스 행성』, 『진화』, 『기생충 제국』 등이 있다.<br>줄거리<br>칼 짐머의 『공기의 세계』는 인간이 공기 속 생명을 발견하고, 질병의 전파 방식을 이해하기까지 거쳐 온 긴 시행착오를 따라가는 과학 논픽션이다. 높은 하늘의 미생물을 좇은 과학자들과 공기 전염을 주장했던 연구자들, 전쟁 속에서 활용된 생물학 연구,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까지 시대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책은 공기가 단순히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수많은 생명과 입자가 이동하는 하나의 세계임을 보여주고, 인간이 왜 그 사실을 오랫동안 받아들이지 못했는지를 추적한다.<br><br>나의 생각<br><br>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심층 보도하여 퓰리처상을 수상한 칼 짐머는 『공기의 세계』에서 그간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 지식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2020년 코로나19는 국경을 닫고 도시를 멈추게 했다. 각국은 WHO의 권고에 따라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움직였지만, 정작 인간은 그것이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두고 오랫동안 헤맸다.&nbsp;<br><br>질병과 공기에 대한 인간의 고민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이어졌다. 중세 사람들은 나쁜 공기인 미아즈마를 의심했고, 병의 원인을 알지 못하면서도 사람과 물건을 격리했다. 심지어 현대에 우리가 경험한 입국 전, 후 격리 또한 중세 시대에 이미 시행하고 있었다. 즉, 코로나19 당시 전에 없던 통제라고 여겼던 격리는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사용된 방어 방식이었다.<br><br>이후 과학자들은 공기가 비어 있지 않다는 증거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프레드 마이어는 높은 하늘에서 생명을 채집했고, 웰스 부부는 작은 입자가 공기 중에 머물며 질병을 옮길 가능성을 연구했다. 그러나 이들의 발견은 중세 시대의 미아즈마에 관한 기존의 믿음을 쉽게 바꾸지 못했다. 오히려 배척당했다. 심지어 코로나19가 등장했을 때조차 공기 전파 가능성은 WHO의 초기 지침에서 중심적인 설명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도그마를 넘어서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br>​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오랫동안 배척당한 공기 전염 이론은 인간을 보호할 때보다 죽이기 위한 연구에서 적극적으로 이용되었다. 전쟁 속에서 각국은 병원체가 어떤 크기일 때 폐 깊숙이 도달하고 공기를 따라 이동하는지를 연구했다. 인간을 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믿지 않았던 이론을, 인간을 죽이는 무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믿은 셈이다. 인간을 살리기 위해 연구한 이 이론의 밑바탕을 만든 웰스 부부는 죽는 그날까지 배척당했지만 타인을 죽이기 위해서 사용되었다.<br>​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 사스와 신종플루, 메르스가 차례로 우리를 지나갔다. 수많은 감염과 죽음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공기 전파 이론은 좀처럼 중심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그러다가 우리가 잘 아는 코로나19가 등장했다. 사람들은 WHO나 국가의 권고에 따라 손을 씻고 문 손잡이와 택배 상자를 소독했으며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반면 공기 중 작은 입자를 통한 감염 가능성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미 수십 년 동안 증거는 쌓이고 있었지만 인류는 다시 같은 질문 앞에 섰다.<br>​책의 말미에는 조금 더 근본적인 역사가 등장한다. 인간의 감염병 가운데 상당수는 동물과 인간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가축을 기르고 한곳에 정착한 농업혁명, 수많은 사람을 도시로 끌어모은 산업혁명, 공장형 축산과 항생제의 사용까지 인간이 생존과 번영을 위해 선택한 방식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감염병이 나타나고 퍼질 조건도 함께 만들었다. 인간은 질병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환경을 바꾸었지만, 미생물 역시 그 변화 속에서 함께 적응하고 진화했다.<br><br>『공기의 세계』는 인간이 공기를 전혀 몰랐던 역사가 아니라, 발견하고도 외면했던 시간을 따라가는 책이다. 또한 앞으로 우리가 공기를 어떻게 바라보고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과제를 남긴다. 책의 글자를 따라가다 보면 공기 속을 떠다니는 생명보다 더 오래 남은 것은 어쩌면 인간의 확신이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 과연 우리는 코로나19 이후 다시 찾아올 공기 전파 감염병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의문을 품게 된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40/68/cover150/k27213017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406841</link></image></item><item><author>앙마</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어른의 허기를 채우는 방법 - [서른의 친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5963145/17357992</link><pubDate>Sat, 27 Jun 2026 12: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5963145/1735799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02138167&TPaperId=1735799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71/91/coveroff/k20213816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02138167&TPaperId=1735799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서른의 친구</a><br/>김가지(김예지)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04월<br/></td></tr></table><br/><br><br><br>***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br><br>김가지의 『서른의 친구』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 어른의 허기를 다룬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관계 속에 놓이는 듯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을 나눌 사람은 점점 줄어든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고, 각자의 삶이 바빠지는 동안 친구는 자연스럽게 뒤로 밀려난다. 문제는 그 빈자리가 생각보다 늦게, 그리고 크게 찾아온다는 점이다. 곁에 사람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닌데 마음 한쪽이 비어 있는 듯한 감각. 『서른의 친구』는 바로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br>​김가지의 『서른의 친구』 속 은아는 회사에서 대리로 일한다. 사회적 자리는 조금씩 올라갔지만, 관계는 점점 납작해졌고 마음에는 허기만 남았다. 어린 시절의 친구들은 대학과 취업, 결혼이라는 통과의례 속에서 멀어졌고, 대학 친구와 회사 동료와의 관계도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그렇게 은아는 외로우면서도 선뜻 누군가를 마음에 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그래도 은아는 그 허기 앞에 그대로 주저앉지 않는다. 아주 서툴고 조심스럽게, 다시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쪽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다.<br><br>김가지의 『서른의 친구』는 친구가 없어서 외로운 사람이 오히려 친구를 만들기 어려운 이유를 보여준다. 외로움을 해결해 줄 사람을 찾는 마음은 관계를 더 무겁게 만들기 때문이다. 반대로 혼자도 괜찮은 사람은 상대에게 부담을 덜 주고, 그래서 관계가 자연스럽게 깊어질 가능성도 커진다. 여기에는 원하는 마음이 클수록 오히려 원하는 대상에서 멀어지는 심리학의 역설이 깔려 있다. 여기서 말하는 심리학의 역설이란, 원하는 마음이 클수록 오히려 원하는 대상에서 멀어지는 현상을 뜻한다.<br>​이런 현상은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운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일이다. 작품 속 은아는 그래서 너무나 쉽게 독자가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게 만든다. 이유도 없이 멀어진 어린 시절의 친구, 대학과 사회인 사이에서 만난 이의 이후 상황에 따른 관계의 위계 형성, 직장 내에서의 공적인 상하 관계 및 경쟁 관계에 놓인 눈치 게임 속에서 친구라는 단어는 가장 먼저 힘을 잃어버리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심히 앞을 향해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옆을 돌아봤을 때 느끼는 공허함은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br>​그제야 우리는 친구가 단순히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아니라, 한 시절의 나를 함께 살아낸 존재였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한때 당연했던 관계 역시 쉽게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이미 스스로 관계를 되돌리는 방법조차 잊어버린 뒤라는 점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병원을 찾고, 누군가는 의도적인 행동을 시도하며, 또 누군가는 체념에 가까운 받아들임을 선택한다. 『서른의 친구』 속 은아의 선택도 그 갈림길 위에 놓여 있다.<br>​은아의 행동에서 우리가 더욱 공감하게 되는 이유는 가장 먼저 체념하기 때문이다. 혼자는 무섭지만, 무엇인가를 시도하는 행위는 더 무섭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아는 나이이기에.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런 시기에 그녀가 가장 쉬운 길을 버리고 무엇인가를 시도하기 위하여 조언을 구하는 장면이다. 과거와 달리 그녀의 조언자는 바로 AI였다. AI는 일반적인 내용을 안내해 주지만 그 내용은 생각보다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AI의 조언을 기계적으로 넘기지 않고 마음에 새기고 하나씩 시도하기 시작한다.<br>​아마 이후 은아가 AI의 조언에 따라 행동하자마자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이 책은 그저 그런 자기 계발서 같은 만화로 전락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부분을 매우 사실적으로 다룬다. 첫 시도부터 은아의 기대를 무참히 어긋나게 만든다.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와는 가치관의 차이가 너무 컸고, 취미 모임조차 첫 시도만으로는 다음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처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외로움에 사무친 그녀는 다음 시도를 한다. 행동은 적극적이지만,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소극적인 자세로.<br><br>이번에는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독서와 관련된 취미 모임에 참여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또 다른 복병을 만나 모임 참여를 고민한다. 그러나 이 시기 모임원들에게 혼자만의 여행을 추천받고, 그녀는 복잡한 마음을 이끈 채 그야말로 계획도 없이 나 홀로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의 문제점, 곧 심리학에서 말하는 역설을 깨닫고 조심스럽게 다음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 이 부분은 이론적으로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은아가 체험을 통해 다음 첫걸음을 떼어낸다는 점에서 흔하면서도 식상하지 않게 마음을 흔든다.<br>​여기까지 읽고 나면, 이 책이 말하는 마음의 허기를 달래는 방법이 단순히 관계를 만드는 데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더 근본적인 것은 자기 안의 기준점이다. 자기 안에 설자리가 없는 상태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형성하더라도 결국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작품은 은아의 심리적 갈등을 통해 보여준다. 관계가 끝난 이유를 악인 하나로 돌리지 않으면서, 앞에서 말한 심리학의 역설은 이 지점에서 완성된다. 스무 살의 우정은 시간이 많아서 만들어지고, 서른의 우정은 혼자 설 수 있는 사람끼리 만들어진다는 듯이.​<br>평범한 내용으로 식상해질 수 있는 이 만화가 자기 계발서식의 일반화로 전락하지 않는 이유는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과장하지 않고 끝까지 현실적으로 끌고 가는 데 있다. 극적인 친구 만들기나 ‘이런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는 식의 쉬운 탈출구를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친구를 만드는 방법론적 만화라기보다, 관계를 잃어버린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에게 건네는 작은 제안처럼 다가온다. 마음의 허기는 하루아침에 채워지지 않지만, 적어도 다시 사람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딜 수는 있다는 제안 말이다.<br><br>김가지의 『서른의 친구』는 특별한 사건보다 익숙한 마음을 따라가는 작품이다. 그래서 아주 새롭지는 않지만, 서른 이후의 관계 앞에서 한 번쯤 멈칫했던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은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어른의 허기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 책은 그 허기를 외면하지 않고, 아주 작은 시도부터 다시 시작해 볼 수 있다고 조용히 말해준다. 관계의 고통에서 물러나 고독 속에 오래 머물러본 사람이라면, 오히려 이런 일상적인 만화에서 작은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71/91/cover150/k20213816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719178</link></image></item><item><author>앙마</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당신은 혼자라고 생각하는가 - [랠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5963145/17350046</link><pubDate>Tue, 23 Jun 2026 00: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5963145/1735004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72139199&TPaperId=1735004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12/96/coveroff/k67213919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72139199&TPaperId=1735004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랠리</a><br/>박민경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05월<br/></td></tr></table><br/><br><br>***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쓴 서평입니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박민경의 『랠리』는 관계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관계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 방향에서 보여주는 소설집에 가깝다. 가족과 연인, 이웃과 타인,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까지 작품 속 인물들은 끊임없이 누군가와 연결된다. 그리고 그 연결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삶에 흔적을 남긴다. 다정한 돌봄도, 상실도, 불안도, 원치 않는 응답도 모두 관계의 한 형태로 되돌아온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묻는다. 당신은 온전히 혼자라고 생각하는가.<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박민경의 『랠리』는 아홉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다. 「괴력 문정과 다마고치」에서는 아버지와 딸이 돌봄의 관계를 주고받고, 「스위트 홈」에서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병든 어머니를 돌보는 문영의 삶이 흔들린다. 「별개의 문제」에서는 피자집을 운영하는 부부가 악성 리뷰와 임신, 비 오는 밤의 사건 속으로 밀려가고, 「살아 있는 당신의 밤」에서는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난 연인의 흔적이 현재의 삶으로 되돌아온다. 각각의 이야기는 다른 사건을 다루지만, 모두 누군가와 이어지고 다시 반응을 받는 순간을 향해 간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단어는 단절이다. 불편한 관계보다는 생산적인 혼자가 낫다는 말은 이미 자기 계발 관련 매체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박민경은 『랠리』의 아홉 편의 단편에서 정반대의 말을 한다. 혼자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시대에 그녀는 삶이란 애초에 혼자 치를 수 없는 경기라고 말한다. 인간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누군가에게 공을 보내고, 또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날아온 공을 받아내며 살아간다. 이를 위해 그녀는 ‘랠리’라는 단어를 여러 방향과 언어로 반복해 보여준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그녀가 말하는 랠리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탁구나 테니스처럼 서로 주고받는 운동에서 나온 단어인 랠리는 누군가와 무언가를 주고받는 행위를 뜻한다. 그러나 삶에서의 랠리는 스포츠 경기와 목적도 결론도 다르다. 경기에서는 점수와 승패를 향해 가지만, 인생에 랠리는 살아 있는 한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계속된다. 이때 돌아오는 응답은 반드시 다정하거나 올바른 형태만은 아니다. 돌봄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상실이나 불안, 책임, 공포의 형태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그 목적은 더 나은 삶이고, 끝은 승리가 아니라 죽음이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하지만 모든 것이 짧고 날카로워진 현대에서 제대로 된 타인과의 주고받음은 과연 가능할까. 박민경은 이에 대한 답을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아홉 편의 단편 속 인물들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어서, 어렵게만 느껴지던 관계의 주고받음도 조금 더 가까운 문제로 다가온다. 그들은 특별한 영웅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흔들리고 버티며 하루를 통과하는 사람들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 소설집은 어떤 방식으로 관계의 랠리를 보여주고 있을까.<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이 소설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두 작품은 「괴력 문정과 다마고치」와 「스위트 홈」이었다. 두 작품은 모두 가족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 관계를 바라보는 방향은 전혀 다르다. 「괴력 문정과 다마고치」가 돌봄과 애정을 통해 이어지는 가족의 랠리를 보여준다면, 「스위트 홈」은 쉽게 끊어낼 수 없는 가족이라는 연결의 무게와 공포를 보여준다. 같은 가족을 말하면서도 한쪽은 살아가게 만드는 힘을, 다른 한쪽은 버티게 만드는 무게를 드러낸다. 먼저 「괴력 문정과 다마고치」를 살펴보자.<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괴력문정 다마고치」에서 문정은 사회에 녹아들기 위해 어린 시절 자신의 자랑이었던 검은 띠와 힘을 스스로 봉인한다. 이후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그녀는 꾸준히 무언가를 포기하며 사회에 자신을 맞춘다. 작품은 외부와 연결되기 위해 우리는 대체 무엇을 잃어야 하는가라는 씁쓸한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그 질문이 무겁게 내려앉을 무렵, 문정의 아버지가 등장한다. 그는 특별히 잘난 사람도, 삶을 그럴듯하게 꾸려낸 사람도 아니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관계 속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무엇을 주고받는지를 일상 속에서 보여준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문정과 아버지 장원의 관계는 얼핏 보면 집을 나갔던 아버지가 돌아오며 이루어지는 가족의 화해로 읽히기 쉽다. 그러나 작가는 이들을 눈물겨운 재회의 장면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대신 문정의 검은 띠와 장원의 기라는 서로 다른 힘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서로를 관찰하고 견디는 일상을 보여준다. 그들은 서로를 먹이고, 감시하고, 귀찮아하면서도 결국 상대의 삶이 조금 더 윤택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든다. 그래서 이 관계는 강해진다는 것이 혼자 버티는 일인지, 아니면 누군가를 돌볼 수 있게 되는 일인지 묻게 만든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이처럼 가족이 서로의 삶을 조금 더 윤택하게 만드는 관계로 그려지는 작품이 있는 반면, 철저히 마이너스적인 가족 관계를 보여주는 작품도 있다. 바로 제목과는 지독할 만큼 동떨어진 작품, 「스위트홈」이다. 「스위트홈」에서 주원은 알코올중독자인 엄마와 일찍 성에 눈뜬 여동생과 함께 지옥 같은 집에서 살다 어느 날 몰래 집을 나와 호텔 베이커리에 취업한다. 그곳에서 담백한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그녀는 언제나 집안의 어둠이 끈적이는 손이 자신의 머리채를 끌고 갈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린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어느 날 동생이 찾아오면서 그녀의 가족은 다시 주원의 삶에 침입한다. 이미 집을 떠났음에도 주원은 가족으로부터 해방된 것이 아니라, 잠시 거리를 확보했을 뿐이었다. 「스위트홈」의 가족은 서로를 윤택하게 만드는 관계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계속 끌어내리는 부채의 형태로 작동한다. 주원의 마지막 선택은 그래서 단순한 결정이 아니라, 더는 빼앗기지 않으려는 마지막 발버둥에 가깝다. 「괴력문정 다마고치」의 가족이 서로를 회복시키는 긍정의 관계라면, 「스위트홈」의 가족은 한 사람의 삶을 끝없이 갉아먹는 부정의 관계이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박민경의 『랠리』 아홉 편에서 중요한 것은 관계의 유무가 아니라 응답의 방식이다. 누군가에게 건넨 말과 행동은 언제나 예상한 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 돌봄은 부담이 되고, 사랑은 기억으로 남으며, 사소한 반응 하나가 누군가의 삶을 흔들기도 한다. 이 어긋난 응답들 속에서 인물들은 서로를 밀어내고 붙잡고, 외면하면서도 끝내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러므로 『랠리』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당신은 온전히 혼자라고 생각하는가. 이 책은 그 질문 앞에서 인간이 관계 밖으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조용히 보여준다.<br style="box-sizing: border-box; margin: 0px; padding: 0px; color: rgb(34, 34, 34); font-size: 15px; white-space: pre-wra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12/96/cover150/k67213919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129667</link></image></item><item><author>앙마</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당신은 혼자라고 생각하는가 - [랠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5963145/17350032</link><pubDate>Tue, 23 Jun 2026 00: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5963145/1735003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72139199&TPaperId=1735003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12/96/coveroff/k67213919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72139199&TPaperId=1735003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랠리</a><br/>박민경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05월<br/></td></tr></table><br/><br><br><br>***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쓴 서평입니다.<br><br>박민경의 『랠리』는 관계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관계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 방향에서 보여주는 소설집에 가깝다. 가족과 연인, 이웃과 타인,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까지 작품 속 인물들은 끊임없이 누군가와 연결된다. 그리고 그 연결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삶에 흔적을 남긴다. 다정한 돌봄도, 상실도, 불안도, 원치 않는 응답도 모두 관계의 한 형태로 되돌아온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묻는다. 당신은 온전히 혼자라고 생각하는가.<br>박민경의 『랠리』는 아홉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다. 「괴력 문정과 다마고치」에서는 아버지와 딸이 돌봄의 관계를 주고받고, 「스위트 홈」에서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병든 어머니를 돌보는 문영의 삶이 흔들린다. 「별개의 문제」에서는 피자집을 운영하는 부부가 악성 리뷰와 임신, 비 오는 밤의 사건 속으로 밀려가고, 「살아 있는 당신의 밤」에서는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난 연인의 흔적이 현재의 삶으로 되돌아온다. 각각의 이야기는 다른 사건을 다루지만, 모두 누군가와 이어지고 다시 반응을 받는 순간을 향해 간다.<br>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단어는 단절이다. 불편한 관계보다는 생산적인 혼자가 낫다는 말은 이미 자기 계발 관련 매체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박민경은 『랠리』의 아홉 편의 단편에서 정반대의 말을 한다. 혼자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시대에 그녀는 삶이란 애초에 혼자 치를 수 없는 경기라고 말한다. 인간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누군가에게 공을 보내고, 또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날아온 공을 받아내며 살아간다. 이를 위해 그녀는 ‘랠리’라는 단어를 여러 방향과 언어로 반복해 보여준다.<br>그녀가 말하는 랠리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탁구나 테니스처럼 서로 주고받는 운동에서 나온 단어인 랠리는 누군가와 무언가를 주고받는 행위를 뜻한다. 그러나 삶에서의 랠리는 스포츠 경기와 목적도 결론도 다르다. 경기에서는 점수와 승패를 향해 가지만, 인생에 랠리는 살아 있는 한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계속된다. 이때 돌아오는 응답은 반드시 다정하거나 올바른 형태만은 아니다. 돌봄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상실이나 불안, 책임, 공포의 형태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그 목적은 더 나은 삶이고, 끝은 승리가 아니라 죽음이다.<br>하지만 모든 것이 짧고 날카로워진 현대에서 제대로 된 타인과의 주고받음은 과연 가능할까. 박민경은 이에 대한 답을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아홉 편의 단편 속 인물들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어서, 어렵게만 느껴지던 관계의 주고받음도 조금 더 가까운 문제로 다가온다. 그들은 특별한 영웅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흔들리고 버티며 하루를 통과하는 사람들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 소설집은 어떤 방식으로 관계의 랠리를 보여주고 있을까.<br>이 소설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두 작품은 「괴력 문정과 다마고치」와 「스위트 홈」이었다. 두 작품은 모두 가족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 관계를 바라보는 방향은 전혀 다르다. 「괴력 문정과 다마고치」가 돌봄과 애정을 통해 이어지는 가족의 랠리를 보여준다면, 「스위트 홈」은 쉽게 끊어낼 수 없는 가족이라는 연결의 무게와 공포를 보여준다. 같은 가족을 말하면서도 한쪽은 살아가게 만드는 힘을, 다른 한쪽은 버티게 만드는 무게를 드러낸다. 먼저 「괴력 문정과 다마고치」를 살펴보자.<br>「괴력문정 다마고치」에서 문정은 사회에 녹아들기 위해 어린 시절 자신의 자랑이었던 검은 띠와 힘을 스스로 봉인한다. 이후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그녀는 꾸준히 무언가를 포기하며 사회에 자신을 맞춘다. 작품은 외부와 연결되기 위해 우리는 대체 무엇을 잃어야 하는가라는 씁쓸한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그 질문이 무겁게 내려앉을 무렵, 문정의 아버지가 등장한다. 그는 특별히 잘난 사람도, 삶을 그럴듯하게 꾸려낸 사람도 아니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관계 속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무엇을 주고받는지를 일상 속에서 보여준다.<br>문정과 아버지 장원의 관계는 얼핏 보면 집을 나갔던 아버지가 돌아오며 이루어지는 가족의 화해로 읽히기 쉽다. 그러나 작가는 이들을 눈물겨운 재회의 장면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대신 문정의 검은 띠와 장원의 기라는 서로 다른 힘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서로를 관찰하고 견디는 일상을 보여준다. 그들은 서로를 먹이고, 감시하고, 귀찮아하면서도 결국 상대의 삶이 조금 더 윤택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든다. 그래서 이 관계는 강해진다는 것이 혼자 버티는 일인지, 아니면 누군가를 돌볼 수 있게 되는 일인지 묻게 만든다.<br>이처럼 가족이 서로의 삶을 조금 더 윤택하게 만드는 관계로 그려지는 작품이 있는 반면, 철저히 마이너스적인 가족 관계를 보여주는 작품도 있다. 바로 제목과는 지독할 만큼 동떨어진 작품, 「스위트홈」이다. 「스위트홈」에서 주원은 알코올중독자인 엄마와 일찍 성에 눈뜬 여동생과 함께 지옥 같은 집에서 살다 어느 날 몰래 집을 나와 호텔 베이커리에 취업한다. 그곳에서 담백한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그녀는 언제나 집안의 어둠이 끈적이는 손이 자신의 머리채를 끌고 갈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린다.<br>어느 날 동생이 찾아오면서 그녀의 가족은 다시 주원의 삶에 침입한다. 이미 집을 떠났음에도 주원은 가족으로부터 해방된 것이 아니라, 잠시 거리를 확보했을 뿐이었다. 「스위트홈」의 가족은 서로를 윤택하게 만드는 관계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계속 끌어내리는 부채의 형태로 작동한다. 주원의 마지막 선택은 그래서 단순한 결정이 아니라, 더는 빼앗기지 않으려는 마지막 발버둥에 가깝다. 「괴력문정 다마고치」의 가족이 서로를 회복시키는 긍정의 관계라면, 「스위트홈」의 가족은 한 사람의 삶을 끝없이 갉아먹는 부정의 관계이다.<br>박민경의 『랠리』 아홉 편에서 중요한 것은 관계의 유무가 아니라 응답의 방식이다. 누군가에게 건넨 말과 행동은 언제나 예상한 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 돌봄은 부담이 되고, 사랑은 기억으로 남으며, 사소한 반응 하나가 누군가의 삶을 흔들기도 한다. 이 어긋난 응답들 속에서 인물들은 서로를 밀어내고 붙잡고, 외면하면서도 끝내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러므로 『랠리』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당신은 온전히 혼자라고 생각하는가. 이 책은 그 질문 앞에서 인간이 관계 밖으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조용히 보여준다.<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12/96/cover150/k67213919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129667</link></image></item><item><author>앙마</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가장 위험하고도 흥미로운 고전 - [게르마니아 : 유럽의 뿌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5963145/17312201</link><pubDate>Mon, 01 Jun 2026 23: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5963145/1731220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22138336&TPaperId=1731220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32/49/coveroff/k72213833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22138336&TPaperId=1731220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게르마니아 : 유럽의 뿌리</a><br/>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타키투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6년 05월<br/></td></tr></table><br/><br><br><br><br>***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br><br>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 유럽의 뿌리』는 가장 흥미롭고도 위험한 고전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역사가였던 타키투스는 로마 제국이 끝내 완전히 정복하지 못한 북방 세계를 기록하면서, 동시에 로마의 타락과 냉랭함, 약해진 시민 정신을 비추려 했다. 그러나 이 책은 후대에 독일 민족주의자들, 특히 나치에 의해 게르만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근거로 오용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고대 로마인의 눈에 비친 게르마니아는 과연 어떤 땅이었고, 어떤 사람들의 세계였을까?<br><br>『게르마니아: 유럽의 뿌리』는 고대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가 남긴 북방 세계의 기록이다. 그는 게르만족의 기원과 거주지, 정치와 종교, 전쟁 방식, 혼인과 가족, 음식과 장례 풍습을 차례로 살핀다. 이어 라인강과 다뉴브강 너머에 흩어진 여러 부족들을 따라가며, 로마가 알고 있던 게르마니아의 경계를 넓혀 간다. 이 책은 한 민족의 단순한 기원담이 아니라, 로마인의 눈에 비친 낯선 세계의 지도이자 후대 유럽이 자신을 상상하게 만든 위험한 고전이다.&nbsp;<br><br>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 유럽의 뿌리』는 역사서로 분류되지만, 시대적 배경과 기록의 한계 때문에 모든 내용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오히려 이 책은 고대 로마인의 시선에 잡힌 게르마니아인들의 기록이며, 진실 그 자체라기보다 로마인의 눈에 비친 북방 세계의 거울에 가깝다. 따라서 책을 읽을 때는 그 모든 서술이 철저히 로마인의 사고와 감각을 거쳐 그려졌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이를 의식하듯 이 책은 프롤로그에서 지도와 명화를 통해 게르마니아를 먼저 보여준다.<br><br>이는 지도 속 바깥 땅에서 시작해 로마의 패배 기억, 아름다운 전사, 순수한 가족과 풍속, 자유로운 민회, 독일이라는 여성 상징, 그리고 근대 의회로 이어진다. 이 순서로 명화를 나열한 판본은 처음부터 말하고 있다.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는 게르만족의 설명서가 아니라, 게르마니아라는 이미지가 유럽 역사 속에서 어떻게 다시 만들어졌는지를 보는 책이라고. 따라서 이 명화들은 본문 해석의 지도로 작용하는 중요한 나열이며, 로마인의 눈에 비친 게르만족과 후대 민족주의자들이 오용한 지점을 함께 엿보게 하는 자료가 된다.<br><br>이 책의 시작은 “그들은 누구인가”가 아니라 “그들은 로마와 어디에서 끊어지는가”에 가깝다. 그래서 『게르마니아』는 표면 정보만 따라가면 금방 마른 기록처럼 보인다. 게르만족이 어떤 옷을 입고, 어떻게 회의하고, 어떤 방식으로 결혼했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타키투스가 그 장면을 왜 골랐는가이다. 로마와의 비교, 정치적 의도, 후대 민족주의가 가져가기 쉬운 지점을 함께 짚을 때 비로소 이 책의 위험함이 보인다. 특히 이 책의 게르마니아는 현대 독일이 아니라, 로마가 북쪽에서 마주한 낯선 변경 세계에 가깝다.<br><br>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혼인 풍습이다. 타키투스는 게르만족의 결혼을 사치 없는 결속으로 그리며, 재산과 욕망에 흔들리는 로마의 결혼 문화를 거꾸로 비춘다. 그러나 이 장면을 순수한 가정 윤리로만 읽으면 곤란하다. 그 안에는 여성의 몸을 공동체 명예의 담보로 삼는 시선도 함께 놓여 있다. 이 책에서 칭찬처럼 보이는 대목은 대부분 로마 비판이면서 동시에 또 다른 폭력의 기록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장면은 게르만족의 미덕이면서 동시에 로마인의 불안이 투사된 장면으로 읽힌다.<br><br>1부는 게르만족의 생활 전체를 훑는다. 민회, 전쟁, 가족, 술, 도박, 노예, 농사, 장례까지 이어지는 기록 속에서 그들은 단순하고 강한 사람들처럼 보인다. 도시의 사치와 법의 복잡함에 물든 로마와 달리, 게르만족은 자연과 공동체에 가까운 사람들처럼 제시된다. 그러나 술과 도박, 여성 통제, 폭력, 인간 제의도 함께 등장한다.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는 이상향이 아니라, 로마가 잃은 것과 두려워한 것이 함께 비친 거울이다. 그 단순함은 아름답지만, 결코 순진하지 않다.<br><br>2부로 넘어가면 책은 부족들의 지도로 바뀐다. 라인강과 다뉴브강 주변의 친로마 부족, 숲속의 전사 부족, 바다 끝의 낯선 부족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우비이족은 강을 건너고, 바타비족은 로마에 병력을 제공하며, 어떤 부족은 로마의 시장과 군사 질서 안으로 들어온다. 중요한 것은 이름을 외우는 일이 아니다. 로마의 시선이 어디까지는 행정과 전쟁의 언어로 붙잡고, 어디서부터는 소문과 상상으로 흐려지는지를 보는 일이다. 이때 게르마니아는 하나의 민족 이름이 아니라, 강과 숲과 바다를 따라 흔들리는 여러 경계의 이름이 된다.<br><br>가장 인상 깊은 부족은 케루스키족과 킴브리족이었다. 케루스키족은 바루스의 군단을 무너뜨린 기억과 이어지고, 킴브리족은 로마 공화정 말기에 한니발급 공포를 불러온 이름이다. 타키투스는 이들을 긴 영웅담으로 풀지 않는다. 오히려 건조하게 이름을 지나가듯 놓는다. 그러나 그 짧은 이름 뒤에는 로마가 북방을 두려워해온 오랜 시간이 숨어 있다. 이 책에서 공포는 비명보다 목록의 형태로 남는다. 타키투스의 짧은 기록은 그래서 오히려 더 차갑게 오래 남는다.<br><br>그러나 이 공포의 기록도 결국 로마인의 눈에 비친 모습이다. 게르만족은 때로 강한 전사로, 때로 순수한 가족으로, 때로 숲속의 제의와 바다 끝의 소문으로 나타난다. 수에비족의 머리, 네르투스 여신의 수레, 바다에서 밀려오는 호박, 여자가 지배한다는 시토네스족까지 이어지면 기록은 점점 낯설어진다. 책의 마지막으로 갈수록 분류는 흐려지고, 인간과 전설의 경계까지 무너진다. 이 용두사미가 오히려 이 책의 정직한 결말처럼 보인다.&nbsp;<br><br>『게르마니아: 유럽의 뿌리』는 게르만족을 선명하게 설명한 책이 아니다. 처음에는 야만과 순수함을 통해 로마를 비추는 듯하지만, 끝까지 읽으면 로마조차 다 알지 못한 북방 세계의 흐릿한 지도가 남는다. 그래서 이 책은 유럽의 뿌리를 단정하는 기록이라기보다, 그 뿌리를 바라보고 상상하고 이용해온 시선까지 함께 보여준다. 위험한 것은 게르만족 자체가 아니라, 불완전한 기록을 완전한 기원으로 바꾸려는 후대의 욕망이다. 그 점에서 이 책은 얇지만, 읽고 난 뒤의 그림자는 꽤 길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32/49/cover150/k72213833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3324986</link></image></item><item><author>앙마</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독과 약의 차이 - [의약품 살인사건 - 약이 독이 되는 위험한 화학의 역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5963145/17309759</link><pubDate>Sun, 31 May 2026 23: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5963145/1730975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138139&TPaperId=1730975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15/81/coveroff/k44213813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138139&TPaperId=1730975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의약품 살인사건 - 약이 독이 되는 위험한 화학의 역사</a><br/>백승만 지음 / 해나무 / 2026년 05월<br/></td></tr></table><br/><br><br><br>***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br><br>백승만의 『의약품 살인사건: 약이 독이 되는 위험한 화학의 역사』는 약병 속에서 벌어진 죽음의 기록처럼 보인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살인사건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각각의 약이 걸어온 이상한 이력이다. 당근주스를 마시다 죽음에 이른 남자, 직접 만든 약 때문에 파킨슨병 증상을 얻은 사람, 우리가 흔히 쓰는 눈약을 살인 도구로 바꾼 범죄자, 그리고 신경작용제의 공포 앞에서 다시 해독제로 불려 나오는 약품까지. 화학이나 약을 잘 모르는 사람도 눈을 반짝이며 따라갈 만한 이야기들이 이 책 안에 가득하다.<br><br>이 책은 사람을 재우고, 몸을 멈추고, 기억을 흐리며, 몸의 조절계를 건드리는 물질들이 어떻게 치료제와 살해 도구 사이를 오가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수술실의 도구였던 약은 범죄의 그림자를 얻고, 몸에 좋다고 믿었던 성분은 과잉과 맹신을 만나 독이 된다. 독소는 치료제와 미용 상품으로 얼굴을 바꾸고, 복제약과 불법 제조약의 이야기로 넘어가면 약은 더 이상 몸속 화학물질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돈과 제도, 욕망과 지식의 유통 문제로 확장된다.<br><br>『의약품 살인사건: 약이 독이 되는 위험한 화학의 역사』에서 흥미로운 점은 사건의 잔혹함보다 약의 위치가 계속 바뀐다는 데 있다. 어떤 약은 수술실에서는 생명을 붙잡는 도구가 되지만, 다른 손에 들어가면 죽음을 숨기는 장치가 된다. 어떤 성분은 건강의 상징처럼 여겨지지만, 지나친 믿음과 만나면 몸을 해치는 원인이 된다. 저자 백승만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약과 독은 서로 멀리 떨어진 말이 아니라, 같은 물질이 얻는 서로 다른 이름처럼 보인다.<br><br>이 변화는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약은 몸 안에서 작용하지만, 그 약을 둘러싼 조건은 몸 밖에서 만들어진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어느 정도의 양을, 얼마나 정확히 알고 쓰는지, 그리고 어떤 제도와 시장 안에 놓이는지에 따라 같은 물질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그래서 이 책의 사건들은 단순한 범죄담이 아니라, 약이 약으로 남기 위해 얼마나 많은 조건이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 모음집처럼 읽힌다. 약의 위험성은 물질 자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물질을 둘러싼 인간의 선택과 관리 방식 안에서 커진다.<br><br>각 장은 익숙한 약의 쓰임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약은 하나의 이름으로 머물지 않는다. 치료제였다가 독이 되고, 상품이 되었다가 범죄의 도구가 되며, 다시 새로운 치료 가능성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이 책은 약으로 벌어진 죽음을 나열하기보다, 하나의 의약품이 시대와 조건에 따라 이름을 바꿔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화학의 역사에 가깝다. 그 변화의 순간마다 약은 인간이 바라는 것과 두려워하는 것을 동시에 드러낸다.<br><br>이 점에서 제목의 ‘살인사건’은 자극적인 장식이라기보다 독자를 화학의 역사 안으로 끌어들이는 입구에 가깝다. 죽음의 사례들은 충격적이지만, 저자는 그 사건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사건을 통해 하나의 약이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고, 왜 그런 작용을 하며, 그 작용이 어떤 시대적 필요와 만나 새로운 쓰임을 얻게 되었는지를 따라간다. 그래서 이 책의 중심은 범죄의 잔혹함보다 약이 지나온 길에 놓인다. 살인은 질문을 열고, 화학은 그 질문을 끝까지 밀고 간다.<br><br>약은 처음부터 완성된 얼굴로 태어나지 않는다. 어떤 약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이후 전혀 다른 질병이나 증상에 쓰이게 된다. 어떤 물질은 실패한 연구나 뜻밖의 부작용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얻는다. 이 책은 약의 역사가 계획대로 진행된 직선의 기록이 아니라, 실험과 실수, 관찰과 전환이 뒤섞인 우회로의 역사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에서 약의 역사는 우연한 변신의 기록이라기보다, 실패를 관찰하고 부작용을 다시 읽어내며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온 인간의 시행착오에 가깝다.<br><br>그 우회로가 늘 치료의 방향으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약은 몸을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방향이 조금만 비틀려도 위험해진다. 사람을 재우는 힘, 몸의 움직임을 멈추는 힘, 기억을 흐리게 하는 힘, 몸의 조절계를 건드리는 힘은 치료의 조건 안에서는 유용하지만, 악의나 무지와 만나면 살인의 도구가 된다. 약이 무서운 이유는 낯설어서가 아니라, 본래부터 몸을 바꿀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힘을 정확히 이해한 사람은 치료의 길을 열 수 있지만, 그 힘을 비틀어 쓰는 사람은 가장 조용한 폭력을 만들 수 있다.<br><br>동시에 이 책은 독이 다시 약으로 돌아오는 역설도 보여준다. 독이라고만 생각했던 물질도 매우 적은 양과 정확한 위치, 분명한 목적을 만나면 치료제가 되기도 한다. 독소는 병을 고치는 약이 되고, 위험한 작용은 몸의 과잉 반응을 잠깐 멈추는 기술이 된다. 결국 약과 독은 서로 다른 물질이 아니라, 같은 물질이 어떤 조건 안에 놓이느냐에 따라 얻는 이름에 가깝다. 독을 약으로 바꾸는 일은 위험을 지우는 일이 아니라, 위험이 움직일 자리와 양을 인간이 간신히 통제하는 일이다.<br><br>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약의 역사가 실험실 안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쟁은 더 빠르고 강한 약을 요구하고, 시장은 약을 상품으로 바꾸며, 사람들의 욕망은 치료와 미용, 건강과 광기의 경계를 흐린다. 약값과 특허, 복제약과 불법 제조의 문제로 넘어가면 약은 더 이상 몸속 화학물질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누가 치료받을 수 있고, 누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를 가르는 사회적 장치가 된다. 이때 약은 병을 고치는 기술을 넘어, 누가 생명에 접근할 수 있는지를 가르는 싸움의 언어로 바뀐다.<br><br>그래서 백승만의 『의약품 살인사건: 약이 독이 되는 위험한 화학의 역사』는 약을 무조건 두려워하라고 말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약을 너무 쉽게 믿는 태도를 경계하게 만든다. 약은 작은 병이나 알약 안에 담겨 있지만, 그 안에는 화학뿐 아니라 인간의 욕망, 제도, 돈, 실수, 지식의 유통 방식이 함께 들어 있다. 약을 안다는 것은 성분 이름을 외우는 일이 아니다. 그 물질이 어떤 조건에서 약이 되고, 어떤 순간에 독이 되는지를 함께 보는 일이다. 이 책을 덮고 나면 약병은 더 이상 선한 물건으로만 보이지 않는다.<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15/81/cover150/k44213813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3158175</link></image></item><item><author>앙마</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인간은 왜 끝내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가 - [우리동네 도서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5963145/17292050</link><pubDate>Fri, 22 May 2026 21: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5963145/1729205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82138031&TPaperId=1729205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08/40/coveroff/k58213803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82138031&TPaperId=1729205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우리동네 도서관</a><br/>차인표 지음 / 사유와공감 / 2026년 05월<br/></td></tr></table><br/><br><br><br><br>***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br><br>차인표의 『우리동네 도서관』은 용을 앞세우지만, 용을 설명하는 소설은 아니다. 이 작품에서 용은 잡히지 않고, 보이지 않고, 끝내 하나의 뜻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대신 그 보이지 않는 존재는 사람들을 움직이게 한다. 소설은 동네 도서관에서 글을 쓰는 작가의 이야기와 고구려 시대 화공 번각의 이야기를 오가며, 쓰는 사람과 그리는 사람의 막막함을 겹쳐 놓는다. 누군가는 쓰고, 누군가는 읽고, 누군가는 기억한다. 이 소설이 묻는 것은 결국 하나다. 인간은 왜 끝내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가.&nbsp;<br>​차인표의 『우리동네 도서관』 줄거리는 낭떠러지를 향해 달리는 사람들이 용의 등장으로 목숨을 구하는 꿈을 꾼 작가가 동네 도서관에서 용에 관한 소설을 쓰며 시작된다. 그가 쓰는 소설 속 고구려 화공 번각은 권력자의 명령으로 보지 못한 용을 그려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한편 도서관에서는 죽음에 관한 책을 읽는 노신사, 소설가를 꿈꾸는 여성,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소년이 작가의 주변에 머문다. 작가는 그들과 마주치며 자신이 쓰는 이야기의 방향을 조금씩 바꾸고, 여러 이야기는 용을 둘러싸고 맞물리기 시작한다.​<br>차인표의 『우리동네 도서관』은 여러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다가 어느 순간 두 세계가 섞이며 전개되는 메타픽션이다. 고구려 시대에는 기우제를 앞둔 왕을 구하기 위해 비를 내리는 용이 필요해지고, 훗날 화공 번각은 당시 인물들이 남긴 글을 읽으며 보지도 못한 용을 그려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현재의 작가는 꿈을 계기로 용에 관한 장편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과거의 용은 소문과 기록으로만 남고, 현재의 용은 오히려 실물처럼 나타난다. 이 대비는 작품 속 소설과 현실의 경계를 흐리며, 창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br>작품 속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용의 실체가 계속 흔들린다는 점이다. 고구려 시대의 기록 속 용은 신성한 존재로도, 인간에게 위해를 가하는 악마적 존재로도 묘사된다. 그러나 그 모든 모습은 확실한 목격이 아니라 소문과 증언을 통해서만 전해진다. 현대의 작가 앞에 나타나는 용 역시 우리가 미디어에서 익숙하게 보아온 형상에 가까우면서도, 등장할 때마다 다른 얼굴을 가진다. 결국 용은 말하는 사람마다, 듣는 이마다, 믿는 자마다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왜 작품 속 용은 하나의 모습으로 고정되지 않는가.<br><br>그 이유를 저자는 단계적으로 확장시킨다. 처음에는 왕의 회피 수단으로, 용사들의 충성심으로, 욕심 많은 자의 욕망으로, 마지막에는 작품 속 작가의 잘 쓰고 싶은 욕망으로. 그러나 페이지가 넘어감에 따라 번각의 창작 윤리와 현대의 작가가 도서관에서 만난 미래의 독자들에 대한 인식 변화로 용에 대한 시선은 단순한 욕망을 넘어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확장된다. 이때 용은 더 이상 찾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인물들이 자기 안의 결핍과 질문을 비춰보는 거울에 가까워진다.<br><br>저자는 이를 크게 세 파트로 나누어 말한다. 목차에 적힌 것처럼 쓰는 이, 읽는 이, 기억하는 이로. 이는 단순한 제목에 그치지 않는다. 창작자가 자기 안에서 이야기를 길어 올리다가, 그것을 읽을 독자를 의식하고, 다시 그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과정까지 그려낸다. 즉 이 목차는 이야기가 태어나고, 전달되고, 남겨지는 과정을 압축한 설계도처럼 보인다. 이 과정에서 자기 안에 갇혀 쓰기만 하던 작가는 자신의 팬이자 독자인 인물들을 만나고, 더 나아가 작품이 타인의 삶과 연결될 수 있음을 깨닫는 쪽으로 나아간다.<br><br>그중 첫 번째 자리인 ‘쓰는 이’에서 이 질문을 가장 선명하게 떠안는 인물이 번각이다. 그는 본 것만 그리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에게 주어진 명령은 아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용을 그리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번각의 갈등은 단순한 생존 문제가 아니라 창작자의 윤리로 바뀐다. 보지 못한 것을 본 척 그릴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확인한 것만으로 다른 답을 찾아낼 것인가. 그래서 번각이 마주한 용은 그림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거짓과 진실 사이에서 예술가가 어디까지 상상할 수 있는지를 묻는 시험처럼 보인다.​<br>두 번째 자리인 ‘읽는 이’에서 작품은 시선을 독자에게로 옮긴다. 고구려 시대의 번각은 용사들이 남긴 글을 읽으며 용의 흔적을 좇고, 현대의 작가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을 만난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노신사와 학교폭력에서 몸을 숨기듯 도서관에 머무는 출렁이는 작가에게 이야기가 누구에게 가닿아야 하는지를 묻는 독자들이다. 특히 출렁이가 소설을 썼다고 해서 해석까지 작가의 몫은 아니라고 말하는 순간,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난 이야기의 운명을 드러낸다. 읽는 이는 작가도 몰랐던 의미를 다시 발견하는 사람이다.<br><br>마지막 장인 ‘기억하는 이’에서 작가는 쓰기와 읽기를 지나, 이야기가 무엇으로 남는가를 바라본다. 그는 소설 속 인물이 스스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살아갈 이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이유가 결국 누군가를 향한 마음에서 생겨난다는 데 도달한다. 이 과정에서 노신사와의 대화는 용의 의미를 한층 더 넓힌다. 아무도 확실히 본 적 없지만 누구나 알고 있다고 믿는 존재, 그리고 끝내 피해 갈 수 없는 것, 그것은 죽음처럼 인간이 마주해야 하는 질문과 닮아 있다.<br><br>결국 『우리동네 도서관』이 말하는 글쓰기는 혼자만의 생각을 펼치는 일이 아니다. 생각은 나 혼자 만든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흔적 속에서 생겨난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쓰는 이와 읽는 이, 기억하는 이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누군가는 쓰고, 누군가는 읽고, 누군가는 기억하며 이야기는 계속 살아남는다. 그 과정에서 작가도, 독자도, 인물도 서로의 자리를 조금씩 바꾸어 가진다. 차인표는 용이라는 환상을 통해 결국 우리가 왜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지 묻는다.​<br>차인표의 『우리동네 도서관』은 따뜻한 도서관 이야기라기보다, 제목처럼 인간은 왜 끝내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가를 끝까지 붙드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그 질문을 쓰는 이, 읽는 이, 기억하는이라는 세 개의 자리에서 되묻는다. 용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사람마다 자기 안의 모르는 것을 비추는 거울로 작동하며, 이야기가 어떻게 태어나고 살아남아 누군가에게 옮겨가는가를 보여준다. 즉, 이 소설은 작가가 쓰는 이와 읽는 이에게 건네는 창작론에 가깝다. 따라서 읽고, 쓰고, 기억하려는 자라면 누구나 긴 여운에 머물게 된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08/40/cover150/k58213803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3084069</link></image></item><item><author>앙마</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나오시마 프로젝트의 탄생과 성장 - [나오시마 예술의 탄생 - 인구 소멸의 섬에서 피어난 현대미술의 도전과 기록]</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5963145/17236286</link><pubDate>Fri, 24 Apr 2026 16: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5963145/1723628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69485&TPaperId=1723628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020/8/coveroff/892556948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69485&TPaperId=1723628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오시마 예술의 탄생 - 인구 소멸의 섬에서 피어난 현대미술의 도전과 기록</a><br/>아키모토 유지 지음, 지소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04월<br/></td></tr></table><br/><br><br><br><br>***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br><br>『나오시마 예술의 탄생』은 예술의 섬 나오시마를 단순히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아키모토 유지가 나오시마 프로젝트의 탄생과 성장을 직접 따라가며 남긴 기록에 가깝다. 이 책은 예술이 어떻게 한 장소의 운명을 바꾸고, 그 장소와 함께 자신의 형체를 얻어 가는지를 보여준다. 완성된 풍경 뒤에 숨어 있던 긴 시간을 마주하고 나면 나오시마는 더 이상 관광지의 이름으로만 남지 않는다. 그곳은 예술이 놓인 장소가 아니라 사람과 기업과 지역의 시간 속에서 끝내 예술이 현실이 되어간 하나의 공간으로 남는다.<br>​아키모토 유지의 『나오시마 예술의 탄생』은 나오시마 프로젝트의 탄생과 성장 과정을 담은 기록이다. 숫자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기업 안에서, 예술가에서 아트 디렉터로 변신한 저자는 15년에 걸쳐 실패와 갈등, 그리고 성취의 시간을 통과한다. 공해와 쓰레기로 오염되고, 개발 실패에 지친 주민들마저 떠나가던 섬. 이 책은 그곳을 단순히 예술품을 전시하는 섬이 아니라 예술 그 자체가 되는 섬으로 바꾸어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그 안에서 이들이 무엇을 했고, 어떤 변화를 만들어냈는지를 차근차근 펼쳐 보인다.<br>​『나오시마 예술의 탄생』의 저자 아키모토 유지는 나오시마 프로젝트를 이끈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전형적인 실무자라기보다, 예술을 믿는 감각으로 움직인 사람에 가까웠다. 그는 기업 안에서도 주변부에 가까운 부서에 속해 있었고, 수익을 우선하는 조직 안에서 늘 자신의 자리와 프로젝트의 필요를 증명해야 했다. 불안정한 위치에 놓인 한 사람이 끝까지 예술을 현실의 언어로 번역해나가는 과정은 커다란 벽들의 연속이었다. 그의 15년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다.<br><br>안으로는 수익을 따지는 회사와 주주들을 설득해야 했고, 밖으로는 재개발에 지친 채 외부의 손길을 경계하는 주민들의 마음을 얻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작가들에게 작품을 의뢰하고 승인받는 일 역시 쉽지 않았다. 그러나 저자가 끝까지 밀고 나간 기준은 외부에서 이미 가치를 인정받은 작품이 아니라, 나오시마라는 장소에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여기에 가장 먼저 힘을 보탠 사람이 바로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였다.<br>​안도 다다오와 함께 첫 전시를 위한 공간을 만든 뒤, 나오시마에는 구사마 야요이, 미야지마 다쓰오, 제임스 터렐, 월터 드 마리아, 야니스 쿠넬리스 등의 작품이 차례로 들어왔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현대미술을 나오시마 위에 올려놓는 일이 아니라, 나오시마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일이었다. 세상이 이미 높은 가치를 부여한 작품이 아니라, 이 장소와 가장 잘 맞는 작품을 선택하는 것. 그 결과 나오시마는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을 넘어, 장소 자체가 예술이 되는 효과를 만들어냈다.​<br>특히 이 작가들의 작업은 그 의미가 남달랐다. 각각의 성향은 모두 달랐지만, 나오시마 안에 놓이면서 이들은 따로 흩어진 작품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처럼 이어졌다. 그 차이는 오히려 장소의 층위를 더 풍부하게 만들었다. 어떤 작품은 바다를 향해 공간을 열었고, 어떤 작품은 실내를 무겁게 닫았으며, 또 어떤 작품은 시간과 빛, 보이지 않는 감각을 끌어들였다. 그렇게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작품들은 나오시마라는 장소 안에서 하나의 큰 서사를 이루었다.<br>​구사마 야요이의 〈호박〉은 바다와 하늘을 끌어들여 공간을 바깥으로 연다. 선명한 색과 반복되는 점은 멀리서도 눈에 띄지만, 중요한 것은 그 작품이 놓인 자리다. 호박은 단독으로 존재하기보다 부두와 바다, 수평선까지 함께 끌어안으며 나오시마의 첫인상처럼 작동한다. 반대로 야니스 쿠넬리스의 〈무제〉는 물질의 무게로 실내를 봉인한다. 그 대비가 나오시마의 공간감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납과 사물의 묵직함은 공간을 닫고, 섬의 밝은 풍경과는 다른 밀도를 만든다.<br>​미야지마 다쓰오의 〈시간의 바다〉는 숫자와 물로 시간을 흐르게 만든다. 깜빡이는 숫자들은 각기 다른 속도로 움직이며, 오래된 집 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떠오르게 한다. 제임스 터렐의 〈달의 뒤편〉은 어둠 속에서 보는 행위 자체를 흔들고, 월터 드 마리아의 〈보이는/보이지 않는, 아는/알 수 없는〉은 제목 그대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아는 것과 알 수 없는 것 사이에서 공간을 하나의 사유 장치로 바꾼다. 이 작품들을 따라가다 보면 나오시마는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라, 예술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장소가 된다.<br>​저자가 단순히 작가와 작품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외부의 자본과 기획이 지역을 일방적으로 덮어쓰지 않도록 한 과정을 보여준 점도 인상 깊었다. 나오시마는 외지인이 들어와 일방적으로 바꿔 놓은 섬이라기보다, 지역민과 함께 호흡하는 방식 속에서 조금씩 예술의 공간으로 바뀌어 갔다. 그렇기에 이 책은 단순한 문화 프로젝트의 성공담이 아니라, 사람이 사라져 가는 지방이 어떤 방식으로 다시 자신만의 얼굴을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으로도 읽힌다.<br>​15년 동안 프로젝트에 심혈을 기울인 그에게 회사의 회장은 다른 섬에서도 같은 성과를 만들 수 있는지 묻는다. 저자는 이때 보편성의 차이를 말한다. 공산품의 보편성이 어디서나 재현될 수 있다는 데 있다면, 예술의 보편성은 유일성에서 나온다고. 여기서 나오시마가 복제 가능한 성공 모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고령화와 빈집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오시마를 그대로 따라 해도 같은 효과는 생기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지역의 시간과 기억, 사람과 풍경을 바탕으로 유일성을 만들어내는 일이다.<br>​『나오시마 예술의 탄생』을 통해 아키모토 유지가 이끈 나오시마 프로젝트의 탄생과 성장 과정을 끝까지 따라가고 나면, 세계적 관광지는 더 이상 완성된 풍경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누군가의 선택과 설득,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시간들이 겹쳐 만들어진 공간이다. 그래서 이 섬은 예술이 놓인 장소가 아니라 예술이 현실이 되어버린 하나의 구조로 남는다. 책에 충분히 담기지 못한 작품 이미지와 공간의 모습은 베네세 아트 사이트 나오시마 홈페이지에서 함께 확인할 수 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020/8/cover150/892556948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0200889</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