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음악가와 청중은 베토벤 이전 작곡가들도 영감을 받거나 자신의 감정을 음악 속에 담고자 할 때 곡을 썼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전 작곡가들 대부분이 즉각적인 필요에따라, 혹은 그들의 고용주나 청중을 즐겁게 하기 위해 창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깜짝 놀란다. 베토벤, 특히 베토벤에 대한 비평가들의 반응은 작곡가가 무엇이며 무엇을 하는가라는 사람들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베토벤이 불러일으키는 작곡가의 이미지는 오로지 영감이 일어날 때에만 작곡하며 자기 표현을 추구하는 예술가로서의 작곡가이다. - P47
도서관이 대중에게까지 개방된 것은 17세기의 일이며, 이때에도 책은 여전히 성직자나 지식계층, 귀족 등 특정 집단만을 위한 것이었다.
이후의 기독교 문화에서 사용되는 단권 성서는 13세기에 처음 제작되었다. 단권 성서의 큰 성공은 두 가지 기술 변화에 힘입었다. 첫째, ‘성서 종이’의 직계 선조라고 할 수 있는 매우 얇은 양피지가 나왔다. 둘째, 장엄하고 큼직한 서체가 축약형이 많고 자그마한 도서체로 바뀌어 한 페이지에 더 많은 텍스트를 담을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물은 한 권짜리 두꺼운 코덱스—700장이 넘는 책도 있었다—였다. 하지만 휴대하기에 좋았고 개인적인 용도로 쓰기에도 적합했다.
한국은 모든 동아시아 나라 중에 책을 가장 중요시했으며 심지어 추앙하기까지 했다. 이렇듯 책을 공경하는 한국인들의 태도는 그들이 책 생산을 제한한 이유를 부분적으로나마 설명해준다. 한국에서 책은 가장 고귀한 가치와 불변하는 진리의 전달자로 떠받들어졌다. 책을 연구하는 것은 교양인이 추구할 수 있는 가장 신성한 행위였다.
책의 역사는 단지 종이 코덱스나 인쇄본의 역사에 그치지 않는다. 책의 역사는 세계 여러 다른 지역의 여러 다른 민족이 여러 다른 이유에서 여러 다른 방식으로 여러 아주 다른 결과를 빚으며 지식과 정보를 저장하고 순환시키고 검색하기 위해 노력한 역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