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론을 주장하기 위하여 일부 챕터에서 약간은 짜맞춘 감이 없지 않다. 거기에 결론도 좀 애매하게 맺어서 화장실 다녀왔는데 뒷처리를 하지 않은 느낌도 들었다. 그럼에도 채사장의 어려운 내용을 후려치는 능력은 여전히 발군이다.
21세기 기술문명의 최전선에서 우리는 왜 이토록 오래된 고대의 지혜를 들춰보아야만 하는가? 우리는 왜 일원론의 세계관을 알아야만 하는가? - P541
18세기, 칸트는 초월적 관념론을 제시함으로써 2천 년 동안 이어져오던 자아와 세계의 분리라는 이원론의 전통을 극복했다. 그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통해 인식 주체를 세계의 중심에 세웠고, 세계를 인식 주체의 내면에 드러나는 현상으로 정립했다. 인식 주체는 수동적으로 외부의 대상을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라, 선천적인 인식 능력을 통해 인식 대상에 색을 입히고 정리하여 능동적으로 세계를 그려내는 존재였던 것이다. 칸트 이후 근현대의 서양 철학사는 이원론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 자아와 세계를 통합적으로 고려하는 길로 나아가게 되었다. - P470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는 나의 의지가 아니라 나의 세계관이 답한다. 기독교인은 결국 기독교적 모범으로 자신의 삶을 수렴하고, 불교인은 불교적 모범으로 수렴하며, 과학주의자는 유물론적 결론에, 자본주의자는 경제적 결론에 도달한다. 우리가 고대인의 사상과 종교를 들춰보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은 수많은 낯선 대륙에 상륙하기 위해서다. 다른 세계관에 발을 디딤으로써 나의 작은 세계관의 영토를 가볍게 넘어서기 위해서다. 수많은 세계관의 대륙을 탐험하고 돌아온 사람만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자신의 세계관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따라 결정할 수 있다. - P3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