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사람들은 그린란드에서 유럽식의 획일적 사회를 건설해낸 까닭에, 유럽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450년을 꿋꿋하게 생존했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의 사회를 성급하게 실패한 사회라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미국이 북아메리카에서 살아온 시간에 비하면, 그들이 그린란드에서 살아간 시간이 훨씬 길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족장들은 모든 추종자를 잃고 말았다. 그들에게 허락된 마지막 권리는 최후에 굶어죽는 특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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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유럽인이다"라는 집착은 그린란드의 기후에서도 고집스레 소를 키웠고, 건초를 수확해야 할 여름에 사람들을 노르드르세타 사냥터로 보냈으며, 이누이트족의 유용한 처세법을 끝까지 거부하면서 결국 굶어 죽는 비극으로 발전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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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의 환경 문제에 대처하는 법에서 이누이트는 바이킹과 사뭇 달랐다. 이 작은 실험이 5세기 후에 끝났을 때 그린란드에서 바이킹은 자취를 감추었지만 이누이트족은 건재했다.


따라서 노르웨이령 그린란드의 비극은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가혹한 환경에서도 인간 사회의 붕괴는 필연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연환경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고 말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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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터섬의 족장들과 마야의 왕들이 자신들의 사회에 닥친 진정한 문제에 무관심했던 것도 우리의 미래를 불안하게 만드는 공통점 중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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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호경기라는 이유로 쓰레기를 버리고도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집을 가진 사람, 투자자, 정치인, 대학 운영자 등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경제 상황은 언제라도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지낸다. 게다가 언제쯤이나 그런 변화가 닥칠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다.

우리는 지나치게 낭비적인 삶에 길들여져 있는 듯하다.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언젠가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내핍생활을 하거나, 아니면 붕괴의 길을 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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