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 수상작품집 : 2023 제17회
박소해 / 나비클럽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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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좋아했던 작가님이나 기대되는 작가님들의 추리 단편집은 설렘으로 다가온다. 이미 비슷한 분류의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독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려면 문장력이 뛰어나거나 트릭이 신선하거나 해야 할 텐데 그 미묘한 차이에서 입맛에 맞냐 안 맞냐가 판가름 나니 글을 쓴다는 직업, 자칫 식상할 수도 있을 추리라는 분야에서 독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기란 상상보다 어렵겠구나 싶다.

작년 황금펜상 수상작은 기대에 비해 아쉬움이 많이 남았었는데 2023년도 작품은 기대 이상이라 작품마다 읽는 즐거움이 있었다.

먼저 등장하는 박소해 작가님의 <해녀의 아들>은 오래전 4.3 사건의 기억을 현재와 연결해 가족을 잃은 슬픔을 담은 소설이라 이런 시도의 소설들이 더 많이 등장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고 그래서 더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4.3사건의 실제 잔인한 내용들은 소설 속에 자세히 담겨 있지 않지만 표현된 문장만 봐도 그때의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고 잔인했는지 유추할 수 있어 소설을 통해 4.3사건의 진상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었던 작품마다 역시..라는 수식어가 붙게 만들었던 서미애 작가님의 <죽일 생각은 없었어>는 역시란 수식어에 맞게 한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작품이었는데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는 사이코패스로 등장하는 대부분의 남성 주인공을 여성으로 바꿔 낯선 섬뜩함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김영민 작가님의 <40피트 건물 괴사건>은 '가와이 간지' 작가의 트릭이 떠오를 정도여서 내심 반가움이 더했던 작품이었는데 평소 이런 트릭을 즐겨 하지 않음에도 일본 소설에서나 주로 등장하던 트릭을 앞으로 한국 소설에서도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들게 했던 작품이다.

여실지 작가님의 <꽃은 알고 있다>는 어떤 전개로 이어질지 알만한 이야기지만 몽환적인 느낌이 잘 살아있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소름이 끼칠만한 파리떼의 묘사에 저절로 몸이 떨리는 증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

홍선주 작가님의 <연모>는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의 밀당을 담고 있는 내용인데 읽으면서 '설마 그런 건가?' 싶었던 내용이 그대로 이어지지만 이 또한 신선한 느낌이 있어 즐겁게 읽은 작품이다.

홍정기 작가님의 <팔각관의 비밀>은 굳이 추리 소설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어딘가에서 들어봤음직한 일본 소설의 제목이 연상되는 작품이라 궁금했는데 작가님이 밝혔듯 일본 소설의 <십각관의 살인>을 오마주한 작품이다. 한국에선 흔하지 않은 시도라 기분 좋게 읽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송시우 작가님의 <알렉산드리아의 겨울>은 <선녀를 위한 변론> 단편집에 실려 있었던 작품이라 내용을 알고 있었는데 역시나 다시 읽어도 가슴을 짓누르는 무게감 때문에 답답함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드라마나 비슷한 소설의 작품들이 있을 만큼 충격적인 한 사건을 떠오르게 하는 내용이라 다시 읽어도 숨이 쉬어지지 않을 정도의 짓누름을 경험하게 되는 소설이다.

2023년 황금펜상 수상작은 실린 작품 모두 기대 이상이었고 지금껏 읽었던 황금펜상 중에서도 제일 기억에 남는데 자주 보지 못했던 시도들이 독보였던 작품들이라 내년 수상작이 어느 때보다 더 기대가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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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교토를 사랑하는 이유 -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교토 골목 여행
송은정 지음 / 꿈의지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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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자부심 또한 대단한 도시 교토, 가보지 못한 곳이었기에 한국의 경주를 떠올릴 법한 고즈넉함에 매료되었던 곳이다. 워낙 소리에 예민한 것도 있겠지만 사람 많고 붐비는 곳을 극도로 싫어하기에 한낮의 햇살을 쬐는듯한 나른함이 느껴지는 곳에 대한 동경이 항상 있었는데 그런 느낌으로 연상되는 곳이 바로 교토였었다.

그리고 한 달 전 그런 동경 속에 이뤄졌던 교토 여행은 짧은 일정에 단풍철이라 붐비는 인파로 제대로 즐기지 못했지만 아마 그랬기에 더 큰 아쉬움으로 남아 다음을 간절하게 기약하게 됐던 듯싶다. 아쉬움이 컸기에 수박 겉만 핥고 온 교토의 이모저모가 더 궁금해지는 <우리가 교토를 사랑하는 이유>가 더 반갑게 다가왔던 것 같다.

정갈하고 유행에 휘둘리지 않으며 자신만의 개성과 올곧은 고집을 옴팡지게 담아내고 있는 듯한 분위기는 건물 입구에서부터 느껴질 정도로 포근하면서도 강렬하게 다가온다. 음식과 인테리어도 유행에 따라 일 년을 버티지 못하고 자주 바뀌는 초스피드 한 세상에서 몇십 년, 몇백 년 동안 그 자리에서 대를 이으며 가게 본연의 것을 이어간다는 것은 어쩌면 기적과도 일일지 모르겠다. 좋았던 기억에 찾았던 가게가 없어졌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고 최근 불황으로 수시로 가게가 바뀌는 안타까운 상황을 자주 마주하다 보니 오래되었지만 정갈함만으로 아우라를 풍기는 일본 건물의 독특함은 요즘 트렌드인 세련되고 미니멀한 인테리어에 비할 바가 못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쉽게도 교토 여행 시 많은 곳을 가보지 못했었다. 어디나 사람들이 붐비고 길게 줄을 서 있어 먹으러 들어가기도, 구경하려고 들어갈 수도 없는 곤란함에 밖에서 기웃거리며 제대로 들어가 보지 못한 곳들이 많았었는데 그런 아쉬움들이 이 책을 통해 해소되었다. 일정대로 바삐 움직이지 않는 여유로움이 글 속에서 그대로 배어 나와 저자와 함께 빵집과 킷사텐, 서점을 둘러보는 아바타가 된 기분이라 직접 눈으로 보고 겪었던 교토 여행보다 더 기분 좋게 둘러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무료함이 느껴질 정도의 나른함을 느끼며 교토의 골목골목을 여유 있게 걷는 기분,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글에서 느껴지는 감각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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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꼬리의 전설
배상민 지음 / 북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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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은 어지럽고 왜구의 잦은 침입과 지방 세력의 수탈로 백성들은 살길이 더 힘들어졌고 거기에 더해 고을에서 잔인하게 훼손된 시신이 나오기까지 하니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기괴한 이야기가 전해지기 시작했고 그런 이야기에 유독 관심을 보이는 이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 정덕문,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나 성균관 유생까지 하였으나 아버지가 모진 고신을 당한 후 죽은 듯이 고향에 머무는 것을 본지라 어릴 때부터 출세에 관심을 두지 않는 대신 기괴한 소문이 있는 곳이라면 마다않고 기웃거렸기에 집안이나 마을에서 그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사람들 눈을 개의치 않고 이야기를 따라다니던 덕문은 고향에서 일어나는 시신 훼손 사건이 꼬리 아홉 달린 구미호가 출몰하여 벌인다는 이야기와 관아에 처녀 귀신이 나타나 감무가 비명횡사한다는 소문에 고향으로 향한다. 그 과정에서 왜구를 물리치며 나라에 공을 세웠지만 뾰족한 뒷배가 없어 감무직을 맡은 금행과 친구가 되어 처녀 귀신이 나타나 감무가 비명횡사한다는 소문의 실체와 꼬리 아홉 달린 구미호의 정체가 고을의 오랜 지주인 호장가에서 나왔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오랫동안 고을의 대소사를 관할하고 나라에서 파견된 감무를 아랫사람 대하듯 하여 사사건건 금행의 일을 방해하는 호장가의 맏아들 최정과 대립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게 되었고 고을에서 벌어지는 괴이한 사건의 배후가 호장가임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이렇다 할 증거가 없어 덕문과 금행은 도사의 딸 수선의 도움을 받아 사건의 중심으로 뛰어들게 된다.

<아홉 꼬리의 전설>의 배경 시대는 바야흐로 고려 말,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고려 조정을 장악했다고는 하나 아직 개혁이 된 게 아니고 이미 썩을 대로 썩어버린 세족들의 조세 걷어들이기는 가뜩이나 굶주린 백성들의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는 형국이었으나 이것을 피해 산속으로 도망쳐 화전을 일구었던 백성들이 하나 둘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되는 일이 발생하면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흉흉한 이야기들의 근원이 힘없고 불쌍한 백성들의 울분으로부터 시작된 것임을 담고 있다.

어느 시대나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자들이 억울할게 많은 세상이라 시대를 거슬러 올라감에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인데 세상 물정 모르는듯하지만 의리가 있는 덕문과 뒷배는 없지만 우직한 금행이란 캐릭터가 다음 이야기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지며 전에 읽었던 <복수를 합시다>가 인상적이어서 고민 없이 펼쳐들었던 이 책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흠뻑 빠져들게 되는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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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 챔프 아서왕
염기원 지음 / 문학세계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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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을 시작하기 전까지 서아는 학교에서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하는 아이였다. 160cm에 65kg인 체격에 살 좀 빼라며 은근히 압력을 주던 친구들과 선생님의 말에도 상처를 받지 않던 서아였지만 생리불순에 복싱이 효과가 있다는 애슬이의 말을 듣고 중2가 되던 해 서아는 복싱을 시작하게 된다. 체력이 많이 소모되는지라 자연스럽게 다이어트가 되었고 이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외모로 아이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서아가 태어났기 때문에 아버지가 있어야 했지만 아버지의 존재를 알려주지 않는 엄마로 인해 아버지는 없는 사람으로 알고 자란 서아는 여러 직장을 전전하다 지금의 비닐하우스에서 채소를 뽑는 노동자들에게 밥을 해주는 일을 맡게 되었고 그렇게 그곳이 두 모녀의 보금자리가 된다. 멀지 않은 곳에 환갑을 넘은 할배 관장에게 복싱을 배우며 서아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의지할 곳 없고 먹고살기 힘든 경제력에 몸이 약한 엄마를 보는 것이 매번 마음이 아파 더 열심히 복싱을 한다.

적지 않은 나이에 서아를 낳았던 엄마는 힘든 일로 매번 골골거렸고 최근 부쩍 병원을 찾는 날이 잦아지는 상황에서 심장 이식을 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병원에 있는 사이 서아를 찾아온 중년 남성이 엄마의 수술비를 대줄 테니 폭행 사건의 가해자가 되어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대학생 언니와 시비가 붙어 때리는 장면이 CCTV에 찍혔고 가해자가 바로 자신의 딸인데 가진 것이 많은 자신들이 가해자로 수면 위로 오르면 곤란하니 체격과 인상이 비슷한 자신의 딸 대신 서아가 가해자라고 자수만 한다면 엄마의 심장 이식 수술을 기꺼이 해주겠다는 제안이었고 폭행 사건이라 구치소에 들어가도 오래 있지 않고 바로 나올 수 있다는 말에 서아는 제안을 수락한다.

그렇게 폭행 사건의 가해자로 자수한 서아, 며칠만 견디면 석방될 거라는 말과 달리 폭행 당한 후 피해자가 죽었기 때문에 징역이 결정되었고 그렇게 교도소로 향하게 된다. 어린 나이에 언니들 틈바구니에서 험한 꼴을 보기도 하지만 진정으로 자신을 위해주는 사람들을 만나 다시 복싱도 시작하며 마음을 추스르지만 엄마가 병원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는 소식에 서아는 이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엄마의 수술을 위해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죄의 무게를 감당했지만 결국 엄마가 심장 이식을 받지도 못하고 죽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복수의 칼날을 갈게 되는데....

<여고생 챔프 아서왕>은 가진 것 없고 빽도 없는 열일 곱 왕서아란 소녀가 억울하게 사건에 휘말려 감옥에 가게 되고 복수를 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통쾌한 복수의 결말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결말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쓴웃음을 짓게 되는 소설이라 늘 그래왔던 권선징악을 기대했다면 다소 김이 빠질 수도 있겠지만 뻔한 결말로 가지 않아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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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하 인간 - 노력하고 성장해서 성공해도 불행한
제이미 배런 지음, 박다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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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을 자주 듣던 때가 있었다. 학교라는 울타리를 나와 나 자신을 책임져야 하는 사회라는 거대한 곳에서 이리저리 부딪히며 겪게 되는 시행착오들을 위로하는 말로 씁쓸하지만 이처럼 알맞은 말이 또 있을까 싶어서 공감을 했었던 문장이었다. 그 후 왜 청춘에게 아픔을 강요하는 사회를 용인하냐는 듯한 반박의 글들을 보게 되었고 나는 그 말에 또 한 번 공감을 했더랬다.

정답이 있을까 싶다. 내가 노력해서 어느 정도의 성취감을 얻는 것은 좋지만 더 높은 곳을 향해 자신을 채찍질만 하다가는 금방 넉다운 돼버리는 상황을 보았고 겪었기에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인지, 환경에, 상황에 몰려서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원한다고 착각하며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실 중년이 된 지금도 이런 생각으로 수많은 고민을 거듭하는 중이니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하는 분들이 누누이 얘기하는 나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라는 말 외에 정답은 없는 것 같다.

<과부하 인간>은 제목만으로도 너무 많은 것을 강요하는 현시대를 잘 표현하고 있다. 항상 밝고 긍정적이며 예의도 바르고 빠릿한 행동력은 물론 타인에 대한 배려심과 명석한 두뇌, 그로 인한 주변의 인기와 훈훈한 외모까지, 미디어의 노출로 너무 많은 것들을 강요당하는 세상에 내몰린 현재, 바쁜 일상에서 숨돌릴 틈 없이 우리는 SNS로 내 행복과 타인의 행복을 비교하며 더 많은 것들을 보여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타인보다 더 많이 가지고 더 예뻐 보이고 인생을 즐겁게 살고 있다는 자기최면에 걸려 좋은 음식, 좋은 집, 좋은 여행지에 가서도 그것을 눈에 담고 마음에 담기보다 타인에게 보여주기에 급급해져 버린 세상, 나 또한 그런 면이 있었기에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타인이 배우니까 따라 배우고 타인이 하는 게 좋아 보이니까 따라 하는 좀비 같은 생활이 언젠가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익숙해진 행복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내용으로 충격을 받거나 할 정도의 내용은 아니지만 과거를 되돌아보고 현재의 내 모습과 앞으로의 나를 위해 할 것들을 찬찬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연말이라 생각이 많아지는 시기에 노력하며 사는 삶에서 체력과 힘겨운 줄다리기를 하는 사람이라면 외면했던 내면의 목소리를 책을 통해 깨닫게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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