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깊어갈수록 해가 너무 빨리 넘어가서 유아이야기방이 시작될 즈음엔 날이 벌써 어둑어둑해요.

찬바람 부는 어둑한 길을 걸어서 도서관에 찾아오는 친구들이 고맙고 반가워요.

 

 

 

 

 

 

 

 

 

 

 

 

 

<우리 몸의 구멍>(허은미 글, 이혜리 그림, 돌베개어린이)로 이야기방 문을 열었어요.

우리 몸에 있는 여러 개의 구멍을 통해 신체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는, 잘 알려진 책이지요.

우리 몸의 여러 구멍 중에서 막혀 있는 구멍이 바로 배꼽이에요.

배꼽은 아무 쓸모도 없는데 왜 있는 걸까요?

 

어떤 거인아저씨는 그 아무 쓸모 없는 배꼽이 없다고 슬퍼하고 있대요.

왜 그럴까요?

 

 

 

<거인 아저씨 배꼽은 귤 배꼽이래요>(후카미 하루오 글,그림/한림출판사)를 읽어주는데

거인 아저씨와 귤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에서 우리 친구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즐거워했어요.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까 궁금한 점이 생겼어요.

거인 아저씨는 배꼽만 없는 게 아니에요.

신발도 없고, 바지도 없고, 셔츠도 없고, 머리카락도 없어요.

근데 왜 그 중에서도 배꼽이 없는 게 속상하고 슬펐을까요?

 

그 답은 이 책에 있었어요.

 

 

 

<돌돌돌 내 배꼽> (허은미 글, 김선숙 그림, 웅진주니어)은 배꼽이 왜 생기게 되었는지 알려줘요.

그리고 배꼽이 '사랑의 기념품'이라는 것도 알려주지요.

 

아하, 그러니까 거인 아저씨는 배꼽의 의미를 잘 알고 있는 분이었던 거에요.

사랑의 기념품이 없다고 생각하면 정말 슬픈 일인 거죠.

 

엄마 뱃속에 있는 아기들의 사진도 보고 동물들의 태아(?) 사진도 같이 보았어요.

그리고  엄마와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의 나를 생각하며 만들기를 했어요.

 

 

 

태아의 성장을 6단계로 나누었더니 한 친구가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대요.

"엄마,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여섯달이면 끝나는 거야?"라고.

정말 똑똑하고 예리한 우리 친구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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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의 모든 것 』(마틴 솔즈베리, 모랙 스타일스 지음/서남희 옮김/시공아트)

 

얼마 전부터 그림책 공부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점점 그림책을 읽는 빈도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요즘 출판되는 그림책 수준이 얼마나 높은데, 어른인 내가 읽기에도 벅찬 내용인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냐고 타박한다면 물러날 자리가 없다. 하지만 막내가 취학 전일 때와 비교해보면 전혀 읽지 않는 게 아니라 많이 줄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다보니 나도 덩달아 그림책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뭔가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고 알라딘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니다가 이 책을 발견하고는 덥썩 사버렸다.

 

표지에 새겨진 '그림책의 모든 것'이라는 제목 아래에는 '역사/소재/주제/기법/출판 산업까지 그림책이 만들어지는 과정들'이라는 부제가 따라붙어 있다. 판형이 좀 크긴 하지만 200쪽이 안되는 책 속에 그 많은 것들을 다 담았다고? 책을 펼치기 전부터 조금 의심스러웠지만 서남희 씨의 번역이라는 점이 조금 의심을 흐려지게 했다. 오히려 어떤 묘책으로 그 많은 내용을 이 한 권에 담았는지 기대가 되기도 하고.. 그랬다.

 

그림책의 발달을 인쇄술의 발달과 관련지어서 설명한 것도 좋았고, 그림책 작가들이 대상연령을 미리 생각하고 책을 만들지는 않는다고,  그래서 크로스오버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고 그것이 그림책의 가능성을 더 열어두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새로웠다.  (그러니까 내가 읽기에도 벅찬 그림책들이 많아지는 거였구나!) 시각적 문해력과 드로잉을 통한 사고에 대한 설명, 글과 그림의 상호작용을 '보완'과 '대위법'으로 간단하게 정리해놓은 것도 깔끔했다. 시각적인 것을 이야기하는 텍스트와 그 자체가 그림의 요소인 텍스트 간의 경계가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다는 설명도 마음에 담아둘만 했다. 게다가 시원시원하게 들어가 있는 그림들은 이 딱딱한 이론서를 '읽을만한' 책으로 여기고 쉽게 다가서게 만들만큼 매력적이었다.

 

짐작한 거였지만 200쪽이 안되는 책 속에 많은 내용을 담으려니 개론적 설명이라는 게 아쉽다면 아쉬운 점이다. 그 아쉬움 속에서 이 책이 해낸 큰 역할이 있다면 연이어 그림책 이론서를 줄줄이 사게 만들었다는 것.  책이 책을 부르는 책꼬리잡기 연쇄반응이 일어나서 나는 이 책에 나오는 『그림책을 보는 눈』(마리아 니콜라예바 외 지음, 마루벌)과 『그림 읽는 아이들』(에블린 아리프, 모레그 스타일 공저, 미진사)와 『그림책론』(페리 노들먼 지음, 보림)을 내 책꽂이에 꽂아두게 되었다. 이런 책을 번역해서 출판해 주다니, 정말 고마운 출판사라고 감동하면서 신나서 주문을 했던 거다.

 

 

 

 

 

 

 

 

 

 

 

 

 

 

 

 

 

이 세 권의 책을 다 읽게 된다면 스스로가 너무나 대견하고 기특해서 어쩔 줄 몰라할 것 같은데, 언제쯤 붙잡고 읽을 지는 나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갑자기 저 책들보다 먼저 오래전에 읽었던 마쓰이 다다시의 『어린이와 그림책』(한림출판사)을 다시 읽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마도 딱딱한 이론서를 읽고 나니까 다정한 이론서가 그리워진 모양이다. (그러면서 그렇게 급하게 주문할 게 뭐람.)

 

 

 

 

 

 

 

 

 

 

 

 

 

 

 

그러니까 결론은 그림책이 궁금한데 제법 딱딱한 내용으로 냉철하고 지적인 분위기를 잡고 싶고,,, 하지만 지루하지 않게 금방 휘리릭 정도만 원할 경우애는 이 책을 시작으로 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이야기다.

 

또하나 우리 그림책 연구에 대한 아쉬움이 앙금처럼 남는다.  미국의 경우 벌써 한 30년 쯤 전부터 그림책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물론 우리나라가 그림책의 출발이 좀 늦었다고는 하지만 이제 슬슬 우리 그림책과 작가에 대한 연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아직 대학 학부에도 어린이문학과 그림책에 대한 강의를 찾아보기 힘들고, 그나마도 창작강의가 대부분이라고 하니 말이다.  좀 더 열심히 으쌰으쌰, 응원을 보내야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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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13-12-05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왕, 저도 읽어봐야겠네요!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이라는 책이 있는데, 저도 읽진 못했지만 저자들이 믿음이 가서 찜해두었어요. 섬사이님도 아실지 모르지만 저의 다짐 차원에서(?) 남겨 봅니다.

섬사이 2013-12-07 00:07   좋아요 0 | URL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은 저도 보관함에 쓰윽 넣어 두고 있어요.
아직까지 장바구니로 옮기지 못한 이유는... 음... 현존하고 있는 작가들, 게다가 왕성하게 활동 중인 작가들에 대해 어떤 식으로 소개하고 있을지, 믿어도 될지... 좀 망설여져서요.
하지만 네꼬님이 '저자들이 믿음이 가서'라니까 조만간 장바구니로 옮기게 될 것 같아요. ^^
 

그날 아이들은 두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해는 기울어 이미 어두워진 시간이었고, 낮동안 같이 실컷 놀았는데도, 나도 K의 엄마도 이제 집에 가야 한다고, 니들 왜 이러냐고 다그쳐도, 무슨 생각인지 아이 둘은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여덟 살 두 아이의 마음이 어이없기도 하고 예쁘기도 했다. 결국 나는

"K야, 그럼 우리집에서 저녁 같이 먹고 조금 더 놀래?"하고 K를 초대했다.

 

두 아이는 신이 나서 우리집으로 뛰어 들어갔고, 나는 서둘러 저녁을 준비했다. 뭐가 저리 재미있을까, 뭐가 저 아이들을 저렇게 다정하게 만들까. 저녁을 먹고 나서도 둘은 지칠 줄을 모르고 놀았다. 저 또래에 들어서면 이성친구끼리는 서로 노는 스타일이 달라지는데도 둘은 참 잘 어울려 놀았다. 9시쯤 K의 엄마가 K를 데리러 왔다. K는 작은 방으로 들어가 숨었다. 아직도 더 놀고 싶고, 같이 있고 싶다는 굳은 의지의 표명이었다.  두 손을 꼭 잡고 헤어지지 않겠다고 더 같이 있고 싶다고 몸으로 표현했던 두 아이는 그 날 밤, 우리집에서 함께 잤다.

 

4학년 때였나? 나도 그런 적이 있다. 좋아하는 친구의 집이 우리집과 정반대 방향이었는데 학교가 끝나고 헤어지기가 싫어서 나는 그 아이의 집까지 같이 걸어갔다. 그러면 그 아이는 다시 우리집까지 바래다 주고,  그렇게 그 아이와 우리집을 여러번 왔다갔다를 하다가 하늘에 노을이 번질 무렵에서야 학교 앞에서 손을 흔들며 헤어졌었다.

 

아직 어리고 순수해서 친구를 그렇게 좋아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좋아한다고 몸으로 행동으로 완고하게 표현할 수도 있는 것 같다. 시간이 흐르고 성장하는 동안 사람에게 상처받고 실망하면서 사람에 대해 방어적으로 변해서 좋아해도 맘놓고 좋아한다 표현하지 못하고, 고도의 계산이 필요한 밀당의 기술을 적용하려고 들지만 아이들은 아직 순수함 그 자체로 친구를 좋아하는 거다.

 

아직도 두 아이는 함께 어울려 자주 논다. 어디 갈 일이 생기면 내 아이는 K도 함께 가는지 묻고, K는 또 우리 아이가 함께 가는지를 자기 엄마에게 묻는다. 어디 가는지, 뭘 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함께 가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럴 때 나는 아이들이 부럽다. 이렇게 쓸데없이 나이를 먹은 게 지겨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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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 바다 앞에 섰을 때,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당황하지 않았다. 퍼붓는 눈송이쯤, 뭔가 달콤한 추억거리를 만들기 좋은 근사한 배경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눈이 쌓이기 시작했고, 차가운 바람이 한적한 길을 나란히 걸어가는 우리의 어깨와 등에 눈송이를 실어날랐다. 어두운 겨울 저녁 흩날리는 눈송이들이 나트륨 가로등의 노란빛 속에서 꿈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우리는 뭔가 두서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끔씩 이야기가 끊어지고 잠깐의 침묵이 흐를 때도 있었다. 우리 사이에 이야기가 있든 침묵이 있든 그건 별로 상관이 없었다. 우리는 마지막이, 이별이 멀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다시는, 우리를 우리라고 부르지 못하도록 영원히 갈라놓을 무언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걸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날 춤추듯 내리던 그 많은 눈송이들은 마지막 축제 같은 것이었다.

 

버스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어둡고 한적하고 폭설이 내리는 길을 눈사람이 되어 걸어가는 우리를 안쓰럽게 여기고 버스기사가 정류장도 아닌 곳에서 버스를 세운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버스를 타지 말고 더 걸으며 눈을 맞았어야 했다. 버스기사의 호의와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했어야 했는데, 그러기엔 우리가 너무 어렸다. 어리석게도 버스에 올랐고 우리는 마지막을, 우리가 우리일 수 있는 시간을 더 단축시켜버린 것이다.

 

버스 안에서 우리는 더 이상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 지도 알 수 없었다. 굳어버린 얼굴로, 그저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우리는 우리일 수 없었다. 그 길에서 버스에 올라타던 그 순간, 우리는 더이상 같은 길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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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11-29 0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도 읽고 오늘도 한번 더 읽고 갑니다.
아름답고 또 안타까운 느낌이 들어서요. 안타까워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걸까요?

섬사이 2013-11-29 22:26   좋아요 0 | URL
아주 오래된 제 기억 속 한 장면이에요.
안타깝고 아름답지만
삶은 또 어쩔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니까요.
지금은 이렇게 무덤덤하게 꺼내놓을 수 있어요.
 

요즘 내가 병에 걸렸나보다. 책이 잘 안 읽어지는 병이다. 그 병의 원인을 대충 알 것도 같다.

 

작년 내내  도서관 이름으로 초등학생들을 위한 추천도서목록을 뽑았다.  어린이책을 문학, 수학, 과학, 경제, 법, 역사 등등의 영역으로 나누어 많이 읽었다. '질보다 양'의 책읽기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고나니까 올해는 어린이책을 읽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 책도 잘 읽지 않고 띵까띵까 놀다가 엉뚱하게도 그림그리기로 한동안의 시간을 보냈다.

그림그리기가 마무리되어갈 무렵부터 연이어 ㄷ대학 교양교육원에 다녀야 할 일이 생겼고, 그 교양교육원 강의는 내 관심분야와 90퍼센트 이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걸 들어가서 알게 되었다.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지만 이 교육의 끝이 어딘지 한번 끝까지 가보자 하는 오기로 그 과정도 거의 막바지로 접어들었고 아직도 뚝심있게 버티며 강의실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걸 대견하다고 해야 하는지 미련하다고 해야 하는지.

 

그 결과, 질보다 양의 책읽기는 그나마 내가 갖고 있던 깊이라고까지 말할 것도 없는 그 얕은 책읽기마저도 상실하게 만들었나 보다. 휘리릭 후딱 읽는 책읽기, 깊이 들여다 보지 않고 전체적인 느낌만으로 좋다 별로다 했던 게 내게 악영향을 미친 거다.  어쩌면 성의없이 읽혀진 책들도 상처입었을지도 모르겠다. 책의 따뜻함이 그리워진다. 초겨울 차가운 날씨때문만은 아니다. 핑계지만 그 후로 이런저런 일에 시간과 마음을 뺏기면서 병의 증세를 더 악화시킨 꼴이다.

 

어린이책 세 권을 읽었지만 잘 안 읽어진 책에 대해서 페이퍼를 써야하나 말아야하나 좀 고민을 했다. 나의 경험을 돌이켜보니 안 쓰는 것보다 쓰는 게 더 낫다는 결론을 얻었다. 읽은 책에 대해 몇 줄이라도 적어놓는 편이 나중에 '이렇게라도 써서 남겨두길 잘했어.'라며 다행으로 여기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컴 속 하얀 공간을 보고 있자니 속이 답답해져오지만, 혹시라도 이리저리 고민하며 쓰다보면 책이 잘 안 읽어지는 이 병이 회복의 기미를 보일지도 모르니까 가보자.  

 

  

 

 

 

 

 

 

 

 

 

 

 

 

『왕봉식, 똥파리와 친구야』 김리리 글, 이상권 그림, 우리교육, 2003

 

'왕땅콩 갈비 게으름이 욕심쟁이'라는 긴 별명으로 불리는 우리의 왕봉식 군의 좌충우돌 이야기. 봉식이네 가족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5편의 이야기가 밝고 유쾌하다. 마치 한 편의 시트콤을 본 듯한 느낌이다. 누나와 형, 얄미운 여동생 사이에서 겪는 갈등과 고민, 아이다운(아이답다는 건 또 뭘까?) 생각과 솔직함들이 묻어나는 재미있는 이야기지만 책을 덮고 나서 왜 아쉬움이 남는 걸까.

이 책의 맨 마지막 이야기 <봉식이네 가족 신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봉식이가 학교 숙제로 가족신문을 만드는데 '솔직하게, 사실 그대로' 만들어 오라는 선생님의 당부에 따라 아빠는 '화를 잘 내는 우리 아빠'로. 엄마는 '잔소리를 잘 하는 우리 엄마'로, 누나는 '나한테 가장 잘해 주는 우리 누나', 형은 '나를 무지 잘 괴롭히는 우리 형', 동생 봉순이는 '불여우에 고자질쟁이 봉순이'로 가족소개를 한다. 숙제를 마치고 봉식이가 이불 속에 들어가 눕자 스케치북이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며 가족신문을 그렸던 쪽에서 가족들의 얼굴이 움직이며 말하기 시작한다. 가족신문 속 그림가족들이 봉식이에게 불만을 터뜨리다가 결국 반성하며 함께 '김치'하고 웃으며 이야기가 끝난다. 봉식이가 지나치게 솔직하게 가족신문을 만드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어쩐지 작가가 결말을 너무 작가에게 편리하도록 해결해 버린 게 아닌가 싶다. 주인공의 상상에 이야기가 너무 많이 기댄다는 느낌이랄까. 이런 결말의 이야기는 한마디로 김샌다.

<까미야, 봉식이 소원 좀 들어줘>나 <왕봉식, 똥파리와 친구야>도 상상의 이야기지만 <까미야, 봉식이 소원 좀 들어줘>는 어른들의 가식적이고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나름의 의미가 있었고, <왕봉식, 똥파리와 친구야>도 봉식이의 자아존중감 회복과 상처치유의 과정으로서의 상상의 이야기라 거부감이 덜했다. 작가에게 편리한 사건해결방법으로서의 상상이 아니라 의미있는 판타지 쪽으로 방점을 찍을 수 있었던 거다. 맨 마지막 이야기도 그랬더라면 아쉬움이 덜했을 것이다.

 

 

 

『가오리가 된 민희』 이민혜 글, 유준재 그림, 문학동네, 2009 

 

봉식이와는 딴판인 민희를 만났다. 초등 저학년과 고학년의 차이인지, 아니면 복닥복닥 여섯 식구 사이에서 다복하게 살아가는 봉식이와 (티격태격 갈등을 겪으면서 살아간다고 해도) 생선가게 미혼모의 딸이라는 간극 때문인지 책의 분위기가 확 다르다. 생선가게 미혼모의 딸로 초등 고학년 사춘기 초입의 시간을 버텨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가보다.  민희가 가오리로 변하는 걸 보면서. 왜 하필 가오리일까, 궁금했는데 날개처럼 펼쳐진 가오리의 지느러미로 하늘을 날아간다는 설정이 가능했고, 가오리의 납작한 형태가 공부에 대한 압박감, 비린내가 난다며 선을 긋는 친구들에 대한 서운함과 외로움, 미혼모의 딸이라는 사회의 시선 등에 위축된 민희를 상징하기에 적당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오리로 변한 채 바다로 날아가면서 기억을 하나 하나 잃어버릴 때는 '얘가 어쩌려고 이러나...'하는 심정이었다. 기억이라는 거, 추억이라는 거,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그게 또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면 심각하게 무서워진다. 살아온 날들이 이렇다 할 사건 없이 지극히 평범해도 그렇다. 내가 알고 있는 나의 기억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나에 대한 기억도 분명, 나를 이루고 있는 하나의 조각들이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타인에 대한 기억도 그 사람 하나하나를 이루는 조각들이 될 것이다. 기억 하나 하나를 잃고 점점 완벽한 가오리로 변하는 민희의 모습은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내 본능이 향한 곳은 바다였지만 지금 이 바다는 아니었다. 처음부터 바다는 바로 엄마였다. 포근한 물살, 향긋한 비린내, 내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물을 주는 곳, 내가 아무리 가오리이고, 가오리 서식지는 서해라고 해도 나의 본능이 좇는 바다는 그 바다가 아니었다.' (71쪽)

어쩌면 가오리로 바다를 찾아가는 민희의 여정은 미혼모로 생선가게를 하고 있는 엄마의 인생을 이해할 수 없었던 민희가 엄마와 화해하기 위한 과정이었을 거다. 그 여정 중에 할아버지를 만나고 아이를 만나는 이야기는, 민희의 여정을 풍부하게 만드는 효과는 있었지만 이야기 전체로 봤을 때는 오히려 산만해지는 느낌이었다는 게 좀 아쉽다.

<낙서하는 아이>와 <병아리 죽이기>는 <가오리가 된 민희>보다는 좀 더 쉽게 읽힌다. 이 작가의 책을 처음 읽는 거라 섣불리 얘기하긴 어렵지만 이야기에 많은 의미와 가치를 담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 집 괴물 친구들』, 박효미 글, 조승연 그림, 사계절, 2013

 

이 작가의 『학교 가는 길을 개척할거야』를 읽고 내가 얼마나 즐거워했는지 모른다. 그 책은 아이들의 모습을, 마음을 참 잘 담아내고 있었고, 그 책을 아이에게 읽어준 엄마들은 아이들이 정말 학교가는 길을 개척할까봐 조마조마하다고 했다. 실제로 몇몇 아이는 학교에서 집에 오는 길을 개척하려고 시도했다. (아침에 학교 가는 길은 개척해서는 안된다고, 차라리 학교 끝나고 집에 오는 길을 개척하라고 엄마들이 신신당부를 했다고 한다.)

아무튼 나는 박효미 작가가 쓴 초등 저학년을 위한 책이 나온 걸 보고 무척 반가웠다. 근데 내가 너무 기대를 크게 했나 보다.  2학년 짜리 우리 막내가 재미있게 읽는 걸 보니 그렇게 실망스러운 작품은 아닌데 말이다. 『학교 가는 길을 개척할 거야』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아이들의 세계가, 그 마음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 같았는데, 이 책에서는 뭔가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안상민과 안종민은 형제다. 형제니까 당연히 다투고 싸운다. 특히 종민이에게 형의 세계는 동경의 대상이지만 형 상민이는 종민이가 함부로 자기 세계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선을 긋는 편이다. 어느날 형 상민이는 장롱 속에 숨어있다가 동생 종민이가 몰래 자기방에 들어와 책가방을 뒤지는 현장을 덮친다. 현장에서 붙잡힌 종민이는 형에게 괴물친구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괴물들이 바로 빨간 보자기를 뒤집어 쓰고 장롱 속에서 뛰어나와 방안을 엉망으로 만드는 이비야, 상민이 방 문지방에 살면서 종민이에게 형의 잘못을 고자질하게 만드는 툴툴지아, 형 방에 있는 물건들을 몰래 몰래 가져다가 종민이 침대 밑에 숨겨놓는 누툴피피다.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가게 만드는 인상적인 문장과 장면들이 있다. 괴물들의 캐릭터도 성공적이다. 그런데도 앞에서 말했듯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건, 아마도 괴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어린 종민이의 입을 빌려 작가가 이야기하고 있는 거라고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다. 음... 그게 무슨 뜻이냐면... 책이란 게 결국 작가가 하는 이야기를 담은 것이긴 하지만 "이거 지금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하는 티가 나서는 안되는 거 아니냐.. 뭐, 이런 말이다. 그러니까 이 책에서 괴물들에 대한 이야기도 독자가 종민이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확 믿을 수 있어야 했다. 그래야 이야기 속에 마음 놓고 풍덩, 빠질 수 있으니까. 근데 난 자꾸 이거 종민이가 말하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던 거다.

그런데 정말 그런 괴물들이 있었던 거냐고?  그러고보니 울막내가 그 점을 어떻게 이해했을지 궁금해진다. 괴물들 이름의 독특한 느낌을 재미있어하긴 했다. 하지만 아마도 그 괴물들은 종민의 상상에서 튀어나온 괴물일 확률이 크다. 이 책에서 중요한 건, 형 상민이가 동생 종민이의 괴물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어줬다는 거,  재미있게 잘 들어줬을 뿐 아니라 들으면서 동생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내가 안종민 방에서 나오려는데, 문지방에서 침대 밑으로 뭔가가 휙 지나갔다. 나는 얼른 엎드렸다. 그러고는 치렁치렁 늘어진 침대보를 걷어 올렸다. 쓰레기가 잔뜩 쌓여 있는 구석지에서 뭔가 꾸무럭거리는 것 같았다. 나는 냉큼 일어나 긴 자를 가져왔다. 그러곤 다시 엎드려 잡동사니를 쑤셨다.

아쉽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참을 그러다가 나는 멋쩍게 일어났다.  (93쪽)

이해가 시작되는 자리에서 괴물들은 더이상 설 자리가 없다.

 

 

 

그러고 보면 문학은 어린이문학이나 어른들문학이나 내 가족, 내 친구, 내 이웃, 아니면 전혀 모르는 타인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아닌가 싶다. 오늘 올린 저 세 권의 어린이책도 서로서로 좀 더 잘 이해하고 살아보라고, 알고보면 다 나름의 사정이 있고 상처가 있고 고단함이 있어 그런거라고, 열띠게 말하고 있는 거다.

세 권의 책에 대해 까탈을 부려놓고 이제와 "잘 이해하고 사세요"라니, 뭔가 좀 민망한 마무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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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3-11-28 0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가방가~ 섬사이님!
저는 책에 대해 까탈부린 리뷰나 페이퍼가 좋아요~
사실 그렇게 쓰는 게 작가에 대한 애정이고 좋다고만 쓰는 리뷰보다 어렵다는 것도 아니까요.^^

섬사이 2013-11-28 08:33   좋아요 0 | URL
반가워요, 순오기님.
내가 뭐라고 까탈을 부렸나 싶어 찜찜했는데 그렇게 이해해 주시니 고마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