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스캔들 창비청소년문학 1
이현 지음 / 창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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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반듯한 신도시 아파트 단지 사이에 자리 잡은 신설학교인 우리 새빛중학교. 하지만 '새롭다'라는 것은 단지 이름과 시설뿐이다. 군내 나는 교칙들과 꽉 막힌 선생님들, 더불어 칙칙함의 절정을 보여주는 교복까지. 그야말로 고리타분의 결정판이다. (p.8) 

학교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없었던 사물함과, 정수시설, 깨끗한 도서관, 아이들 체격에 맞춰 제작된 좀 더 크고 넓은 책상과 의자, 교실마다 갖춰진 컴퓨터와 TV... 그래서 어쩌다 아이들 학교에 가면 외관과 시설을 보고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학교다.  학생 인권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긴 하지만 일제시대와 군부정치 시대를 거치며 만들어진 군대식 학교문화가 아직도 군림하고 있는 듯한.

우리집 근처 자사고에서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집에서는 잠만 재워서 보내주시면 됩니다.'라고 했단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내가 섬뜩했던 건 그 말 속에는 학교와 학부모간의 모의가 담겨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의견은 쏙 빠진 채, 부모는 잠만 재워서 학교에 보내면 학교는 잘 짜여진 프로그램대로 아이들을 공부시키겠다는 뜻이니까 일종의 거래라고 해야하나.  요즘 듣는 인문학 강의에서 푸코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학교의 훈육권력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그 자사고의 이야기와 이 책에서 훈육권력의 실상을 확실하게 본 것 같은 느낌이다.  

나도 학교가 싫고, 공부가 지겹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학교 밖이라고 해서 더 나은 것도 아닌 것 같으니까. 아니, 학교 밖으로 튕겨져 나간 아이들의 처지가 어떤지는 들리는 소문만으로도 암담하다. 대안학교니 홈스쿨링이니 유학이니, 그럴듯한 이야기들은 멀게만 느껴진다.
외고에 가고, 그럴싸한 대학에 가고...... 그 후에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내 목표가 가장 선명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p.24)

고리타분의 결정판이라고 하면서도 학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들의 허우적거림을 작가는 이렇게 정리했다. 학교를 벗어나 다른 길로 들어서자니 너무 막막한 뜬구름이라 아이들은 자기가 가는 길이 그저 최선이라고 믿을 뿐이다. 그리고 부모들도.  

고리타분의 결정판 학교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인물인 진숙경. 새빛중학교 2학년 5반에  온 서른 살 늦깎이 교생이자 미혼모이며 일주일에 두 번 클럽 무대에 서는 무명가수다.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마약이나 도박을 한 것도 아니니 사실 교생으로서의 결격사유가 된다고 볼 수는 없지만 학부모의 거센 항의와 함께 학교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된다.  

고리타분의 결정판 학교에 가장 나쁜 예가 되어주는 두 인물, 2학년 5반 담임교사와 학생주임. 이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일제강점기의 일본 순사를 보고 있는 기분이 든다. 선량한 사람들을 끌어다가 말도 안되는 자백을 강요하고 고문을 일삼고 온갖 비열한 짓을 서슴지 않는.  

이쯤되면 고리타분의 결정판 학교의 울타리 안에서 교생 진숙경과 담임교사와 학생주임 사이에 있는 아이들이 걱정스럽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톡톡 튀는 아이들은 인터넷에 비밀카페를 만들어 익명으로 즐길 수 있는 자기들만의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지만 이 카페를 통해 교생 진숙경의 낱낱이 공개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던 것. 게다가 담임과 학생주임의 모략과 폭력에 저항하지 못하고 같은 반 친구의 증명할 수 없는 잘못에 대한 내부고발에 말려들고 만다. 그 결과 '스톰'이라는 정체불명의 조직에 연루되었다는 죄로 송은하라는 아이가 지목당하고 결국 가출과 무기정학이라는 극단의 상황을 맞게 된다.  

그래도 돌아버릴 것 같다. 화가 나서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다. 그런데도 내가 대체 누구에게 화가 난 것인지 모르겠다. 뭔가를 향해 돌팔매질이라도 하고 싶은데 대체 무엇을 겨냥해야 할지도 알 수 없다. (p.141) 

 고리타분의 결정판인 학교, 비뚤어진 교사,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안에서 뒤틀릴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있다. 그러나 비혼모 늦깎이 무명의 클럽가수 교생 진숙경은 이 부당한 현실과 싸우기로 결심한다.  

"싫어. 그렇게는 못 해. 두고 봐. 내가 가만있나. 뒤에서 애들 패고, 애들 협박해서 고자질이나 시키고....... 그래놓고 내가 교육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임용고시 본다며? 그럼 졸업을 해야 할  거 아냐."
"됐어. 이따위 학교, 오래도 안 와. 이게 학교냐? 이게 교육이야?"
"그럼 대체 어쩌겠다는 건데?"
(중략)
"너한테도 죽어도 할 수 없는 일이 있잖아. 나한테는 이게 그런 일이야. 이런 상황에서 알았다고 무릎 꿇는 일, 그냥 도망치는 일..... 그럴 순 없어. 그러니까 이해해줘." (p.115)

진숙경이 교생으로 온 2학년 5반에 다니는 이보라와의 대화다. 사실 이 책은 진숙경의 조카인 보라가 화자가 되어 서술되고 있다. 보라는 저항하겠다는 이모 진숙경의 모습을 보며 '튀지 않는다. 밟히지도 않는다'(p.6)던 자기만의 학교생활백서 1조를 포기하고 진숙경이 자기 이모라는 것을 밝히고 저항에 가담하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누군가 인터넷에 올린 담임이 같은 반 친구를 패는 동영상을 검색 순위창에 뜨게 하기 위해 조회수를 올리기 위한 소심한 클릭질에서  바들바들 떨면서도 시선을 피하지 않고 담임의 협박에 맞서는 용기까지, 중학생 2학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저항을 보여준다.  

이모 덕분에 3학년들에게도 나는 제법 유명 인사가 되었다. 우리 반 아이들도 나를 여간이 아닌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저 그런 범생이었던 이보라의 처지가 이렇게 달라질 줄이야.
그런 시선들이 따갑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나 자신의 시선에 대해서라면 당당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요즘 새롭게 배워가는 중이다. (p.210) 

오래 전에 읽었던 <초콜릿 전쟁>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그 책에서도 학교 안의 권력이 등장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처절하게 진다.  이 책에서는 담임이 사표를 쓰고 학교를 떠난다. 진숙경과 이보라, 아이들의 저항은 성공한 걸까? 고리타분의 결정판인 학교를 바꿔놓았을까? 그 견고하고 완강한 틀의 한 쪽 귀퉁이라도 찌그려트린 걸까? 절반의 절반의 절반의 절반의 성공에도 미치지 못하겠지만 난 아이들이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배웠다면 그것도 큰 성과라고 믿는다.  

그래도 난 믿고 싶다. 나쁜 선생님들보다 훌륭한 선생님들이 훨씬 더 많다고. 그리고 아이 셋을 키우는 동안 (셋째는 이제 겨우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지만) 그렇게 파렴치하고 못된 선생님을 만난 적이 없다. 오히려 좋은 선생님이 더 많았다. 운이 좋았던 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환경의 틀 안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선생님의 자질을 갖춘 분이라도 그 자질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고 아이들도 더욱 힘겨워질 게 뻔하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이현 작가의 책을 읽어가는 동안 글의 얼개를 참 잘 엮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신음소리를 잘 듣고 그런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려는 작가의 마음도 느껴진다. 이제 <영두의 우연한 현실>을 읽는다.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하게 만든다. 고맙다. 이현이라는 작가가 어른들을 위한 소설가나 시인이 되지 않고 우리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을 위한 작가가 되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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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05-12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에서는 잠만 재워서 보내주시면 됩니다,라니.. 정말 섬뜩합니다.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학교 이야기라니 대체.. 어이구. 무슨 말을 못하겠네요.

님의 말씀처럼, 문제는 선생님이 아니라 시스템이니, 우선 시스템을 확 쳐부술 방법부터 모색해야..?? -.-;;

섬사이 2011-05-13 19:50   좋아요 0 | URL
가끔요, 그 단단한 벽을 한 번에 확 부숴버리긴 불가능할 것 같으니까
야금야금 살살 금이 가게 만들면 언젠가 와그르르르 허물어져 버리지 않을까, 상상하곤 해요.
상상만으로도 유쾌 상쾌 통쾌해서 혼자 씨익 웃곤 하지요.^^

무스탕 2011-05-13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말로 뭣하러 집엔 보낸답니까? 잠자러 갔다 올 시간 아까워서 어떻게 집엔 보낸답니까?
뭐가 중요하고 뭐가 앞서야 하는지 제대로된 판단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게 정말 섬찟하도록 무서워요. 아이들이 배운대로 행할텐데 지금같은 미래가 이어진다는게 무서워요.

정성이가 이제 내년엔 중학생이 되는데 전 그게 무지 슬퍼요. 이제 이 녀석도 본격적인 전쟁에 들어서야 하는구나.. 하고요.
우리 애들이 좋은, 바람직한 선생님과 체계 아래서 공부할수 있는 날이 언제나 올까요?

섬사이 2011-05-13 19:56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처음 유치원에 보낼 땐 그저 대견했고,
초등학교에 입학시킬 땐 좀 불안한 정도였지요.
그런데 중학교에 입학할 땐 무지 심난하고 한숨나고 그러더라구요.
둘째 녀석 일반 인문계 남고에 보내면서 무척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요,
힘들어하면서도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들이 즐거운가봐요.
성적과 경쟁, 강요된 타의에 의한 공부, 그런 것만 아니라면
더 즐겁게 다닐 것 같아요. ^^

마녀고양이 2011-05-14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들 저랑 비슷한 느낌이셨나봐요.
저두 페이퍼의 '잠만 재워서 보내주시면 됩니다'에서 섬찟했거든요. ㅠ

제 친구가요, 대안 학교에 보낼 계획을 세우더라구요.
그런데 몇천인가를 미리 내야하고, 대신 기숙사제이고 1년인가는 외국에서 지내고
머 이런 시스템이더라구요. 음, 대안 학교를 저는 자연주의적 학교라고 생각했었는데
제가 틀렸나봐요. 무엇을 위한 대안인지 궁금했어요, 대안도 여러 대안이 있겠죠?

섬사이 2011-05-14 09:40   좋아요 0 | URL
둘째녀석 때문에 저도 대안학교를 알아봤었는데요,
대안학교도 천차만별이더라구요.
저는 강화도에 있는 산마을학교를 보내려고 했었는데
그곳도 생각보다 경쟁률이 너무 높았어요.
워낙 신입생을 적게 뽑아서요. (남학생은 겨우 9명...)
가장 좋은 건 공교육이 제대로 바람직하게 정상화되어서
평범한 많은 아이들, 그리고 상처가 있는 아이들까지
되도록 많은 아이들이 즐겁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자칫 대안학교도 귀족학교의 하나가 될 위험이 있기도 하구요.

네꼬 2011-05-18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현샘, 참 잘 쓰시죠! 저는 <짜장면 불어요!>도 <로봇의 별>도 다 좋아요. 이 책도 좋아요. 섬사이님도 좋아요. 보고 싶었어요. (느끼.)

섬사이 2011-05-19 11:37   좋아요 0 | URL
오마나~!!! 네꼬님~!!!!
저야말로 얼마나 보고싶었는지!!
네꼬님에게 보고싶었다는 말을 들으니 온몸이 짜릿해요.
제 입꼬리가 귀랑 만나려고 마구 달려가요.
정말정말 반가워요, 반가워요, 반가워요, 반가워요, 반가워요 곱하기 천만번쯤이예요. 그리고 고마워요, 이렇게 무사하다는 생사확인(?)을 해줘서.
오늘 하루종일 싱글벙글하고 다닐 거예요.
사람들이 뭐 좋은 일 있냐고 하면 비밀이라고 해야지. ^^
<로봇의 별>은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지금은 <오늘의 날씨는>을 읽고 있는데요,
그거 다 읽고 나면 <로봇의 별>을 읽으려구요.
요즘 이현이라는 작가에게 홀딱 반해있어요.
그리고 저도 네꼬님이 좋아요. (말하고 나니까 쑥쓰럽다~~*^^*)
 
길 위의 인문학 - 현장의 인문학, 생활 속의 인문학 캠페인
구효서 외 지음 / 경향미디어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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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상궁이 된 기분이었다. 잘 차려진 수라상에 오른 음식들을 충분히 음미하며 천천히 씹어 삼키지 못하고 음식에 독이 들어있지는 않은지, 혹시 상한 음식이 오르진 않았는지를 알기 위해 살짝 살짝 먹어만 보는 기미상궁. 이 책에 실린 12편의 글들은 12첩 반상이라는 수라상 못지 않게 탐식하고 싶은 글들이다. 사람의 자취를 담은 퇴계와 남명 조식,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과 김이재, 허균과 허난설헌, 그리고 역사의 흔적을 담은 서울 성곽, 강화도, 남한산성, 대관령과 강릉, 금강, 양동마을과 향단.... 하나하나 깊이 되집고 음미하고 싶은 사람들과 장소들이다.  

하긴 이 책에서 자취와 흔적을 기록한 인물과 장소들이 그 삶과 역사의 의미가 크고도 깊으니, 이 짤막한 열두편의 글로 꼼꼼히 설명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갈증이 나고, 감질난다. 제대로 맛보고 싶은 마음이 연기처럼 솟는다.  

편의상 사람의 자취를 담은 글과 역사의 흔적을 담은 글로 나누었지만 사람과 그 사람이 살아간 터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으랴. 정약용에 대한 글에서는 강진의 다산초당과 백운동계곡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남명 조식에 대한 글에서는 지리산을 그냥 넘어갈 수 없고 퇴계 이황은 그 유명한 도산서원을 빼놓고는 말하기 어려울 테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반가웠던 글은 허균에 대한 글이었다.  2008년 겨울에 강릉에 들러  허균 허난설헌 생가를 찾은 적이 있었다. 녹은 눈 때문에 질퍽했던 흙마당과 지키는 사람 하나 없고 유난히 쓸쓸해 보이는 풍경들에 마음이 시려왔었다. 오죽헌이나 선교장에 비해 얼마나 볼품이 없었던가. 그런 기억 때문에 '남존여비 사회의 세 여성과 불우한 사람들의 벗, 허균'이란 제목의 글은 더더욱 마음에 와 닿았다.   


허균 허난설헌 생가

'길 위의 인문학'이라는 제목처럼 어쩌면 그 '길'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감을 잡기 좋은 책이 아닌가 싶다. 내가 가 본적이 있는 허균, 허난설헌 생가, 다산초당, 강화도, 대관령, 지리산, 서울성곽에 대한 글은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는데 비해서 남한산성(여긴 멀지도 않은데 왜 지금까지 가볼 생각을 안했을까), 금강, 양동마을에 관한 글은 좀 감정이입이 힘들었다. 자료사진이 많이 실렸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컸다.  

사람의 무늬를 탐구하는 학문이 인문학이라고 들었다. 그런 의미라면 이 책은 사람의 무늬를 이해하기 쉽도록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이 책 서문에 인문학은 '재미와 유익', '감동과 느낌', '여유와 관조'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점에 대해서도 비교적 성공적이라고 평하고 싶다. 하지만 처음 이야기했듯이 기미상궁처럼 스을쩍 맛만 보고 지나간 것 같은 이 미진한 기분을 어떻게 해소해야 하나. 

다산초당, 백운동계곡, 소쇄원, 지리산과 섬진강... 그 곳에 갈 수 있다면 미진한 기분 따위 훨훨 씻어낼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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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5-12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읽었는데, 그러니까 별점이 님보다 훨씬 박해서 페이퍼로 갈아탔었죠.
다들 빼어난데, 한데 어울릴 수는 없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전 한승원이 참 좋았어요~^^

섬사이 2011-05-12 10:01   좋아요 0 | URL
맞아요, 한데 어울릴 수는 없는 느낌!
한 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저도 모르게 쩝쩝 입맛을 다셨어요.

순오기 2011-05-13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쇄원은 2012년에 광주이벤트에 참여하시면 구경시켜 드릴게요.^^
다산초당, 지리산, 섬진강은 가 봤는데, 난설헌 생가가 보고 싶네요.
오죽헌은 수학여행으로 갔었고, 남한산성은 수년내 가게 될 거 같고...
양동마을은 중전님 사진 때문에 꼭 가고 싶은 곳이고요.

섬사이 2011-05-13 19:49   좋아요 0 | URL
2012년이라... 고3 큰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테니,
좀 가뿐한 마음으로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소쇄원에 대한 페이퍼를 순오기님 서재에서 보았던 것 같아요.
그 때,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도 살짝 언급이 되더라구요.
오늘은 날씨가 오랜만에 화창했어요.
어딘가 공기 맑은 초록 그늘 아래 서 있고 싶었어요. ^^

세실 2011-05-15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맞아요. 이런 단편적인 글은 맛보기로 끝나는 아쉬움이 있죠.
나두 여행가고 싶어라....당분간은 어려울꺼 같아요. ㅠㅠ

섬사이 2011-05-19 11:3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왜 그런 기분 있잖아요.
너무 감질나게 조금만 먹어서 아쉬움에 입맛을 쩝쩝 다시게 되는,,
딱 그런 느낌이더라구요.
여행은... 저도 쉽지가 않네요. ㅠ.ㅠ
 
불량한 자전거 여행 창비아동문고 250
김남중 지음, 허태준 그림 / 창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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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이현 작가 책과 함께 이 책을 빌려왔는데 남편이 꺼내 읽기 시작하더니 아주 푹 빠져서 읽는다.  다 읽기를 기다렸다가 '책 어때?"하고 물었더니 "뭐, 그냥..."  워낙 세심한 표현을 안 하는 사람이고 칭찬에도 인색한 사람이라 '뭐, 그냥' 정도의 대답이면 '흠 잡을 데 없다' 거나 '아주 괜찮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무관하다는 걸 안다.  

그날 저녁식사를 마친 후 갑자기 남편이 아들에게 대뜸 "이번 여름에 아빠랑 자전거 여행 해볼까? 한 일주일이나 열흘 쯤."하고 묻는다. 아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와 남편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본다. 그러다가 뭔가 미심쩍다는 투로 마지못해 '네..."하고 대답한다. 정말 가려는 걸까?  아니면 자전거 여행에 대한 책을 읽고 충동적으로 나온 일종의 감상일까?  어느 쪽이든 저 책이 '뭐, 그냥..'정도가 아니라 남편의 마음에 지지직!하고 통했구나 싶었다. 사실 남편은 대학1학년 여름에 선배들과 정말로 자전거로 전국일주를 했었으니까 아마 책을 읽는 동안 그 때의 기억들이 떠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자전거로 전국일주를 해본 사람이라 저 책에 지나친 뻥이 들어가 있다거나 사실적이지 않다면 오히려 몰입이 더 어려웠을 수도 있었을 텐데, 저런 반응이 나오는 걸 보니 책이 정말 괜찮은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처 읽기로 했던 이현 작가의 책들을 잠시 미루고 이 책을 집었던 것이다.    

거친 세상과 몸을 부비며 살다보면 사람이 모질어지기도 한다. 특히 부모라는 사람들은 때로 투사가 된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아이의 속내를 미처 헤아리지 못할 때도 많고 밖에서 받은 상처의 아픔을 아이에게 풀 때도 있다. 이 책의 주인공 호진이의 부모도 그랬을 거다.  아빠가 엄마를 '교통사고 난 자동차를 보는 것'(p.10)처럼 바라보고 그 사이를 호진이는 '고장 난 신호등'(p.17)처럼 서서 '길거리에 나뒹구는 쓰레기가 되어 버린'(p.17) 기분으로 어쩔 줄 몰라 하며 서있어야 했다. 부모가 이혼하려 한다는 걸 알게 된 호진이는 그 답답한 현실에서 도망치듯 집을 나와 삼촌을 찾아간다.  

삼촌 신석기는 호진이의 부모에게 '사회부적응자'로 낙인찍힌 인물이다. 그러나 '베짱이처럼 빈둥빈둥 인생을 낭비'(p.21)하는 '정신 나간 놈'(p.21) 취급을 받는 삼촌은 실제로 보니 자기가 좋아하는 자전거 여행을 하며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호진이의 아픔을 알고 나서는 자전거를 꺼내주며 고민을 멀리 두고 즐겁게 땀을 흘리는 법을 가르쳐주기까지 한다. '인생의 황금기를 도둑맞았다'며 슬퍼하는 아빠나 삶이 지긋지긋하고 외롭다는 엄마보다 훨씬 더 건강한 삶을 꾸리고 있었던 것이다.   

가고 싶은 곳에 가는 동안은, 가려고 하는 곳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할 일이 있다. 꼼짝하지 않고 고민만 하는 건 고통이다. 빨리 아침이 오면 좋겠다. 자전거를 타는 동안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p.123)

호진이는 삼촌의 자전거 여행을 함께 하면서 높다란 가지산과 미시령을 넘고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하고 '봄바람에 벚꽃이 날릴 때 와 보면 눈물 날'(p.72)정도로 아름답다는 섬진강변을 달리며 자기를 발견하고 성장한다. '사람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 없다'는 엄마의 말이 100%의 진실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삶도 자전거 타기처럼 남의 속도를 쫓아가려 하지 말고 나만의 속도를 유지하며 그저 멈추지 않고 페달을 굴리면 된다는 것, 넘기 힘든 높은 산을 만났을 때엔 산을 이기려들지 말고 나와 싸워 이겨나가면 된다는 것, 그렇게 자전거 여행에 모인 사람들 하나하나가 자기만의 아픔과 의미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자전거 여행 중간중간 호진이는 엄마 아빠와 통화를 시도한다. 아빠한테 맞은 곳이 아직도 아프다고 자기를 드러내기도 하고, 아빠의 인생의 황금기를 훔쳐간 사람이 나와 엄마냐고 묻기도 하고, 엄마와 아빠가 함께 삼겹살을 구워먹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러나  '떠나기 전과 똑같은 집이라면 돌아가기 싫다.'(p.106)는 호진이의 말처럼 '돌아가고 싶을 만큼 그리운 것 하나도 없'(p.106)는 그 장소에서 엄마 아빠가 변화하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그래서 난 호진이가 결심한 마지막 계획에 박수를 보낸다. 그 계획의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지라도 적어도 호진이네 가족이 좀 더 '가족'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가까워질 수 있지는 않을까. 적어도 서로 미워하며 헤어지는 최악의 결말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호진이도 동화처럼 행복한 결말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좀 더 성숙하게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산 하나를 넘었다고 해서 다른 산이 고개를 숙이지는 않는다. (p.186) 

호진이는 자전거 여행을 통해서 이런 진실까지도 알아버린 아이니까 말이다.   

요즘 이현 작가의 책들을 읽고 이 책까지 읽었더니 아이들의 속내를 표현해주는 글들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들이 동화를 읽어야 하는 이유 중에 하나도 이것 아닐까. 아이들의 책을 읽으면 아이들의 마음을 더 잘 알 수 있다는 것, 어른들이 아이를 아프게 하는 것들이 어떤 것인지 알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정말 남편은 아들과 자전거 여행을 떠날까? 무뚝뚝한 남편과 아직 참 많이 어린 아들. 여행에 나섰다가 부자지간이 원수지간이 되어 오는 건 아닐지 난 성급한 걱정으로 앞서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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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5-07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고 나면 자전거 여행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던가요?
부자간의 자전거 여행은 아주 많은 것들을 가져다 줄테니 걱정은 접으세요.^^

섬사이 2011-05-09 08:19   좋아요 0 | URL
일단 남편이 아들 데리고 단둘이 떠날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흐뭇해하고 있어요.
정말 떠나겠다면 말릴 생각도 없구요. ^^

하늘바람 2011-05-08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책은 꼭 읽고 싶었던 책이지요. 님 덕분에 제 기억잉 수첩에 적은 메모한줄을 발견한 것처럼 되살아납니다

섬사이 2011-05-09 08:18   좋아요 0 | URL
괜찮은 어린이책들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이런 책을 만나면 너무 반가워요.
김남중 작가의 책중에 <주먹곰을 지켜라>를 예전에 읽었었는데
그 때도 좋았거든요.
근데 저는 이 책이 더 좋았어요.

마녀고양이 2011-05-09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럭셔리한 여행보다
뚜벅이 여행, 대중 교통 여행 등의 쉬엄쉬엄 여행을 더 좋아하는 저로서는
자전거 여행, 특히 제주도 자전거 여행은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아이템이예요.

힘들지만 천천히 흘러갈 수 있겠죠.
신랑이 자전거 타기를 워낙 좋아하니 언젠가는 가보려구요.
주인공 아이가 여행을 통해 성숙해지는 만큼, 저도 그럴 수 있을까 기대해봅니다.

섬사이 2011-05-09 19:45   좋아요 0 | URL
자전거 여행은 저는 좀 엄두가 나질 않거든요..
근데 아무래도 남편은 경험이 있다보니 책을 읽고 아들과 같이 가볼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가끔 자전거로 출퇴근하기도 하고, 주말이면 자전거를 타고 나가거든요.
저도 출발지와 도착지 사이의 과정이 살아있는 좀 불편한 여행이 더 좋은 것 같긴 해요. ^^

희망으로 2011-05-09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남중 작가의 책이군요. 카트에 담아 둔지가 언젠데 아직이네요.
울 남편도 그냥이라고 하면 괜찮은가보다 그럼니다^^
자전거든 도보든 기차든 어디든 떠날 수 있다면 좋은거지요~

섬사이 2011-05-11 08:07   좋아요 0 | URL
요즘 <길 위의 인문학>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 중인데요,
그 책을 읽다보니 다산초당, 백운동계곡, 소쇄원, 섬진강, 대관령...
그런 곳들이 자꾸 보고싶어져요. ^^
떠나고 싶은데 큰애들이 고딩이 되고 나니까
훌쩍 떠나는 일도 쉽지 않네요. ㅠ.ㅠ

양철나무꾼 2011-05-10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전에 순오기님의 서재에서도 봤었는데...
전 '내 파란 세이버'란 만화와 겉표지가 비슷해서 호기심이 생기지 않았었어요.
내용은 어떨지 궁금해서...한번 읽어봐야 겠어요~

섬사이 2011-05-11 08:09   좋아요 0 | URL
전 개인적으로 이 책이 마음에 들었어요.
'내 파란 세이버'라는 만화를 한 번 찾아봐야겠네요.
표지가 어떻게 비슷한지 호기심이 생겨요.
반갑습니다. 양철댁님.
 
장수 만세! 힘찬문고 47
이현 지음, 오승민 그림 / 우리교육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깜짝 놀랐다. 이야기에서 화자역할을 담당하는 박혜수라는 5학년 짜리 여자아이가 자기 가족을 소개하는 도입부를 지나자마자 곧장 필리핀 영어연수를 두고 엄마와 티격태격하는 부분이 나오더니 곧장 아파트 17층 자기 집 베란다에서 떨어져 죽고 마는 것이다. 너무 충격적인 시작이라 가슴이 덜컹했다. 시작부터 이렇게 강하게 터뜨려놓고 이야기를 어떻게 수습할지 작가의 계획이 궁금해서 서둘러 읽기 시작했다.  

혜수에겐 '장수'라는 고1짜리 오빠가 있다. 한 번도 1등을 놓치지 않는 수재에다가 모범생이다. 부모들에겐 이상적인 아들일지 몰라도 좀 갑갑한 캐릭터가 상상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제목이 '장수 만세!'니까 이 책은 일찍부터 추락사한 비운의 소녀 혜수의 이야기라기보다 오빠 '장수'에 대한 글이라는 건 쉽게 눈치챌 수 있다. 혜수는 염라국 입국 심사과의 지밀 과장 앞으로 끌려간다. 그 곳에서 혜수는 자기가 아니라 오빠 장수가 자살로 생을 마감할 날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게다가 자살이 아니었다면 100살 가까이 오래도록 장수할 수명을 타고났는데 말이다. 혜수가 보기엔 아무 문제 없이, 모두가 부러워할만한 생을 누리고 있는 오빠가 자살한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마침 한국전쟁때 죽어 떠돌던 '연화'라는 아이의 혼령의 도움을 받아 일주일의 시간을 얻게 된다. 일주일 안에 오빠가 자살하지 않도록 막아야 하는데 혜수는 생령으로 떠돌고 연화의 혼령이 혜수의 몸에 들어가 생활하게 된다.  

눈치챘겠지만 장수는 모든 부모들이 부러워할만한 모범생이지만 늘 쫓기듯 불안감에 젖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장수가 자기 속을 토해놓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가슴이 먹먹해오고 콧등이 시큰해졌다.  

"아빠, 아빠 아들 박장수, 나도 잘난 놈이잖아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쭉 그랬잖아. 잘나고 잘난 놈이었잖아요. 언제나, 계속, 잘난 놈이 되기 위해 발버둥쳐야 하잖아요. 하지만 끝나지 않잖아요. 대학에 간다고 끝날까요? 취직을 한다고 끝날까요? 돈을 많이 번다고 끝날까요? 난 싫어요. 너무 무서워요. 친구들이 친구로 보이지 않아요. 나는 뒤쫓는 괴물 같아요. 이런 기분, 더 이상은 못 견디겠어요." 

언젠가 큰아이가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다. 그 선생님이 교육열이 뜨거운 다른 학교에 있을 때의 일이라고 했다. 의대를 목표로 하는 공부를 잘 하는 (사실 이 표현은 바른 표현이 아니다. 난 요즘 우리 아이들이 하는 게 공부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공부를 잘 하는'이 아니라 '성적을 잘 받는'이 더 맞는 표현인지도 모른다.) 아이가 있었는데 윤리였다나, 한자였다나.... 이른바 주요과목이 아닌 한 과목에서 시험을 망쳤단다. 애가 너무 충격을 받고 침울해있어서 선생님들이 너무 걱정하지 마라, 이건 너 의대가는데 반영되지 않는 과목이니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오히려 위로했단다. 그런데 며칠 후 그 한 과목 성적을 비관해서 아이가 자살을 했다고. 그 선생님은 그 학교에서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을 많이 만났지만 자살을 하거나 정신질환에 걸리는 아이들도 많이 봤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 아이는 일류대 많이 보내는 좋은 학교 말고 평범한 학교를 보내기로 결심했다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가 자꾸 생각났다.    

가끔 밤에 볼일이 있어 나갔다가 학원차량들을 보곤 한다. 차 안에서도 공부를 하라는 건지 차 안에 환하게 불을 켜놓았는데, 어느 날 밤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서있다가 학원 버스에 타고 있는 한 아이의 얼굴을 본 적이 있다.  어깨에 닿을락 말락한 단정한 머리를 한 여자 아이였는데 창 밖을 내다 보고 있는 무심한 눈빛은 너무 지치고 고단해 보였다. 저래서 공부를 할 수 있을까, 지켜보고 있는 내가 더 걱정이 됐다. 아무 것도 담고 있지 않은 듯한 눈빛에 지친 표정, 창백한 얼굴이 마치 유령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OECD국가중 청소년 자살률이 1위인 나라에서 살면서, 수재들이 모이는 카이스트의 학생들과 교수가 자살하는 걸 '그럴 수도 있다'는 듯 이야기하는 나라에서 살면서, 아이들의 행복을 지켜주고 싶다는 엄마들의 희망은 참 덧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들과 가장 가까이 있는 엄마라서 아이들에게 공부를 못 해도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해줄 수 있는 것 아닐까. 또 학교 공부가 꼭 공부의 전부는 아니니까, 세상엔 아이들이 도전할 수 있는 다른 공부들이 얼마든지 많으니까 말이다. 엄마들이 변하면 어쩌면 세상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꿈을 꿔본다.  

장수의 친구 정태는 장수가 자살하려한다는 낌새를 알아채고 말한다.  

"내가 그 사건을 겪으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어."
정태 오빠가 말했다. 오빠는 자꾸 발로 현관 계단을 픽픽 걷어 찼다.
"아무도 날 지켜 주지 않는다는 거야. 엄마도, 아빠도, 세상도. 엄마 아빠도 그저 불쌍한 사람들이지. 다들 속으로는 힘들고 나약하면서도 겉으로는 아닌 척..... 그러니까 박장수." 
정태 오빠가 우리 오빠의 양어깨를 두 손으로 꽉 붙잡았다. 그래도 오빠가 고개를 들지 않자 얼굴을 잡고 들어 올려 눈을 맞추었다.
"박장수, 너 스스로 지켜. 무언가가 널 잡아먹지 못하도록 너 스스로 지켜. 알아들었어?" 

그래, 어쩌면 아이들이 부모를 믿고 의지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지키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기성세대의 한 사람이지만 어른의 세계엔 너무 많은 모순이 존재하고 무엇보다 변화를 일으킬만큼의 힘도 용기도 부족하다. 하지만 이것 또한 비겁한 변명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나는 순간이나마 죽고 싶다며 17층 아래를 내려다보았고, 오빠는 자살을 꿈꾸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성적표를 숨겨 놓고 영어 단어 시험에 백지를 내고 있다. 아빠는 가끔 차를 몰고 한강에 뛰어들고 싶다고 했고, 엄마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면 우리는 대체 왜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몹시 울고 싶었다.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아무런 꿈도 없이 오로지 남들보다 높이 오르기 위해 다른 애벌레들을 짓밟고 짓밟혀가며 꿈틀거리는 애벌레들의 이야기 말이다. 맨 위에 오르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어리석은 애벌레들과 우리가 다른 점이 뭐란 말인가.  

혜수는 자기 몸을 되찾게 된 후 그 지겹고 싫은 영어를 놓고 인도어를 공부하기 시작한다. 인도어를 배우면서 하는 생각들이 신선하다.   

물론 인도어는 대학을 가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인도 인구는 무려 10억 명이 넘는다고 한다. 미국과 영국의 인구를 합친 다음 2를 곱하고도 남는 숫자다.
나마스떼.
피르밀렝게.
단야밧.
메라 남 혜수 헤.
압 쎄 바후뜨 밀까르 쿠씨 후이.
이런 것들이 내가 이미 익힌 말들이다. 뭔가 신비스러운 느낌을 주는 발음에다..... 글자의 모습도 멋스럽다. 인도 문자는 한 마디로..... 섹시하다.  

그래, 얼마 전 티벳문자로 쓰인 책을 봤는데, 티벳글자들에선 바람이 불더라. 그러니까 난 인도 문자가 섹시하다는 거 믿는다. 인도어가 대학을 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대학가는데 필요한 공부들이 살아가는 데 꼭 도움이 된다고 볼 수도 없다. 어쩌면 아이들은 자기 삶에 꼭 필요하지도 않는 것들을 공부하느라 불필요하게 진을 빼고 있는 건지도.  그러니까 적어도 자기가 알고 싶은 걸 스스로 알아가려는 혜수가 더 현명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난 이 책을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 오늘 아침 막내와 어린이집 버스를 기다리며 서있는데, 할머니 한 분이 "큰애가 고3이라 고생이 많겠네.."하신다. "고생은요, 뭐..."했더니 "대학 보내야 되니까 고생이지.."하신다. "대학이야 가면 가는 거고, 못가면 못가는 거고, 그런거죠, 뭐... 꼭 갈 필요있나요?"했더니 '얘 뭐야?'하는 눈빛으로 놀라서 쳐다보신다.  막상 닥치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겠지만 대학을 가지 않고도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많을 거라고 믿고 있다.  세상은 저마다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거니까 모두의 길이 똑같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내가 너무 낙관적이고 낭만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아무튼 아이들이 몸도 마음도 아프지 않고 오래오래 장수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그걸 빌어주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그래, 장수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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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5-06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수만세'가 이런 거였군요~
정말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교육에 죽어라 올인하는 우리도 참 딱한 일입니다.ㅡㅡ

섬사이 2011-05-07 10:55   좋아요 0 | URL
정말 그래요.
그리고 누가 올인하라고 시키는 것도 아닌데 우리 스스로 뛰어들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러니 더 딱하죠.. ㅠ.ㅠ

hnine 2011-05-09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현 작가 팬이 참 많아요. 그런데 저는 아직 한권도 못 읽었어요 ㅠㅠ 일단 한권 읽으면 다른 작품들도 줄줄이 읽게 될 것 같아 맘 먹고 읽어야지 하면서 미루고 있네요.
대학 진학, 공부...저도 섬사이님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다만 저는 제 생각에 그다지 자신이 없어요. 현실을 무시하고 제가 너무 이상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닌지 해서요. 좋은 인간을 만들고, 나름대로의 성공의 기준을 가지도록 하는 것 등, 좋은 대학 보내는 것보다 제가 감히 더 어려운 목표로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고요.
제 친구 중에도 고3 엄마들이 있는데 전화 하다보면 저도 모르게 고3 엄마 하느라 힘들지 않겠냐는 말을 인사처럼 하게 되더라고요 ^^

섬사이 2011-05-09 17:58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 인사 많이 들어요.
고3 엄마라 힘들겠다고. 하지만 전 전혀 힘들지 않거든요.
애가 그리 예민하게 구는 편이 아니라서 그런가봐요.
하지만 이제 변해야 할 때가 오지 않았나 싶어요.
적어도 모든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강요하는 일은 없어야하지 않을까요.
학교 공부만 공부로 인정하고 다른 일의 가치를 무시하는 횡포는 없어져야 할 것 같아요.

희망으로 2011-05-09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우리들의 스캔들을 통해 완전 좋아진 작가예요.
성적때문에 자살을 하는 우리사회 분명 잘못가고 있는데 죽어가는 아이들을 보고도 변하지 않으니 어째요. 왜 공부로만 평가하고 왜 공부가 아닌 다른 길은 열어 주지 않는지....공부 안 하는 자식을 둔 에미는 이렇게 불만만 늘어가는가 봅니다-.-;;

섬사이 2011-05-11 08:21   좋아요 0 | URL
<우리들의 스캔들>은 아직 읽지 못했어요.
희망으로님이 그 작품을 통해 이현 작가가 좋아졌다고 하니 기대됩니다.
우리집 둘째도 공부에 재능이 없는 아이라.. ^^
그래도 다른 재주가 있겠거니, 하고 있어요.
다행히 요리학원을 다니며 열심히 요리공부를 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해줄지 모르겠어요.
어제는 아들이 저녁반찬으로 오징어볶음을 만들어줘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웬 자랑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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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찾은 할아버지
한태희 글.그림 / 한림출판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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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가득 홍매화가 활짝피었습니다. 활짝 꽃이 핀 매화나무 아래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할아버지와 코를 들이밀고 매화꽃 은은한 향기를 음미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옵니다. 봄이 빨리 올 수 있도록 찾아오는 방법이 있다면, 나도 그 재주를 전수받고 싶은 심정으로 그림책을 펼쳤습니다.  

깊은 산 속 외딴 집에서 살고 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춥고 긴 겨울을 보내자니 지루하기만 합니다. 그림에서는 백자 화병에 매화가지를 꽂고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아 아마도 할머니가 무척 꽃을 좋아하는 분이고, 그래서 더 봄을 기다리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방문 오른쪽에 걸려 있는 꽃과 나비가 그려진 그림 한 점에서도 봄을 기다리는 두 분의 마음이 느껴지고요.   

'빨리 봄이 와서 환하게 핀 꽃을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할머니가 무심코 던진 얘기에 할아버지가 결심을 하고 봄을 찾아오겠다며 길을 나섭니다.  우리 옛그림 중에는 봄을 찾아 나서는 선비를 그린 탐매도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신잠, 김명국의 그림이 대표적이지요. 옛그림 탐매도 속에서 봄을 찾아 길을 떠나는 사람은 주로 선비들인데 나귀를 타거나 하인을 데리고 아직 눈이 녹지 않은 길을 나서는 모습이 그려 있습니다. 혹은 봉오리 맺힌 매화가지를 바라보고 있는 그림도 있지요. 그림책 속 할아버지야 선비나 양반의 풍채는 아니지만 꽤 정겹고 다정해서 보는 사람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게 합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할아버지가 주인공인 또 하나의 탐매도라 해도 좋지 않을까요.

하지만 이야기 속 할아버지 입장에서 본다면 본격적인 고생길로 접어든 셈입니다. 할아버지는 개구리와 뱀이 겨울잠을 자고 있는 개울로, 뒷산 언덕을 지나 산봉우리로, 겨울잠을 자고 있는 곰에게로, 갈대밭 사이 꿩에게로, 꽁꽁 얼어붙은 강 밑에 사는 이무기에게로 차디찬 겨울바람을 맞으며 봄을 찾아다니다가 지쳐 쓰러지고 맙니다. 쓰러진 할아버지 위로 눈꽃이 떨어져 내립니다. 할아버지의 눈은 점점 감겨지고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는 가운데 달콤한 꽃향기가 할아버지를 깨웁니다.  

그렇게 붉은 매화를 머리에 두른 귀여운 아이를 만나게 되지요. 물론 꽃향기는 아이에게서 풍겨나오는 것이었고요. 아이는 할아버지의 손을 끌며 앞서 나아갑니다. 아이를 따라간 그 곳에 홍매화가 바위에 붙은 따개비들 마냥 잔설이 남은 나뭇가지를 덮고 한가득 피어있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곳은 바로 할아버지 할머니의 깊은 산속 외딴 집 마당이었죠.  

그림책의 처음은 추운 겨울이지만 마지막 장은 화사한 봄입니다. 책 앞쪽 속표지와 뒷쪽 속표지를 보면 겨울과 봄 풍경이 대비를 이룹니다. 저도 겨울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 편이라 봄을 찾는 이 그림책이 공연히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공연히 앞뒤를 번갈아 펼쳐보며 '역시 봄이 더 좋아'하고 이 봄을 더욱 만족했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의 열그루 매화길에도 홍매화는 아니지만 그윽한 향기를 풍기며 매화가 피었더랬습니다. 겨울눈이 쌀알만큼 커졌을 때부터 두근거리며 꽃봉오리가 터지기를 기다리게 됩니다. 매화가 피고 나면 바람아 불지마라, 비야 살살 내려라 하며 꽃이 후두둑 떨어질까 전전긍긍하기도 합니다. 매화는 벚꽃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갈하고 도도한 품위가 느껴집니다. 물론 향기도 아주 일품이지요.  우리 옛선비들이 매화를 가까이 한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림책 앞부분에 할머니가 백자화병에 꽂은 매화가지에서도 매화가 꽃핀 걸 보여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점입니다. 제 욕심이겠지만 꽃이 피고 봄볕이 들어 환해진 할머니 할아버지의 방안도 구경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이 그림책이 '설중매 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책이라는데, 그렇다면 설중매 설화에 대한 소개가 간략하게라도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느 지역의 어떤 각편이나 이본을 바탕으로 했는지, 그 출처를 밝혀준다면 더욱 좋겠지요.  <옛이야기와 어린이책>의 저자 김환희 씨는 "구전설화, 무속신화, 고전소설에는 수없이 많은 각편과 이본이 존재하기 때문에 작가들이 자신이 참조한 자료와 출처를 밝히지 않는 이상 다시쓰기나 고쳐쓰기의 성공 여부를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합니다. 제 짐작으로는 이 책이 '설중매 설화'를 바탕으로 새롭게 창작한 것이 아닐까 싶지만 아무 설명이 없으니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만약 제 짐작이 맞다면 자칫 이 책의 내용이 '설중매 설화'로 오해될 소지가 있는 것입니다.

한지에 먹으로 그린 듯한 그림도 참 정감있습니다. 어찌보면 이억배 선생님의 화풍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네 집 안팎의 아기자기한 물건들도, 겨울잠을 자고 있는 동물들과 꿩의 모습들도 정겹기만 합니다.

매화는 짧게 피고 나풀거리며 지고 말았는데 그림책 속 홍매화를 보며 벌써부터 내년 봄에 필 매화를 기다리고 있는 성급한 저를 깨닫고 웃었습니다.  매해 겨울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마다 이 그림책을 찾아 꺼내보게 될 것만 같습니다.  재촉한다고 봄이 빨리 오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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