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 저녁 먹는 고양이 시드 - 좋은책어린이그림책, 세계창작 03
잉가 무어 글.그림, 김난령 옮김 / 좋은책어린이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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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절판된 책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건, 그것도 별을 다섯 개나 찍어놓고 리뷰를 써내려가는 건, 어쩌면 잔인한 짓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얘기하지 않고 넘어가기는 좀 서운하다. 책을 빌려 읽고는 그 책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지는 책이 있다.  나에겐 이 책이 그런 책 중에 하나였는데, 책을 주문하려고 했다가 빨갛게 쓰여진 '절판'이라는 글자 앞에 좌절했었다.  

며칠 전 도서관에서 빽빽하게 꽂혀있는 그림책들 사이에서 다시 이 책과 조우하고는  "너 아무래도 안되겠다. 나 따라와라."하고 한 번 더 대출했다. 사진과 리뷰로 남겨둬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이 리뷰를 쓰기 전에 상품검색을 했더니 중고책으로 나와있었다. 얼른 장바구니에 담았다. 이제 내 것이 된 이 책,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이럴 때도 통하는 말일까?  

처음엔 '여섯 번 저녁 먹는 고양이'라는 제목에 호기심이 동했었다.  특이함은 때로 신선함을 느끼게 하니까. 표지 속의 저 새카만 고양이가 저녁을 여섯 번 먹는다는 최고의 먹성 고양이 시드다.     

 

 

 

 

 

 

 

시드는 아리스토 거리에 산다. 1번지, 2번지, 3번지, 4번지, 5번지, 6번지에. 집이 여섯 군데라 저녁도 여섯 번 먹을 수 있고, 주인이 여섯 명이라 이름도 여섯 개, 잠 잘 곳도 여섯 군데인데다가 여섯 명의 주인이 저마다 다른 곳을 골고루 긁어주어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삶'을 보낸다.   

 

 

 

 

 

 

 

 하지만 그 행복이 깨지는 사건이 벌어지고 만다. 시드가 지독한 감기에 걸리자 여섯 명의 주인들이 저마다 각자 시드를 동물병원에 데리고 간 것이다. 여섯 가지 다른 방법으로 여섯 명의 주인에게 이끌려 동물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시드는 물약을 여섯 번 먹어야 했던 것이다. 일이 이쯤에서 마무리되었다면 그나마 다행이었을 텐데, 수의사가 예약수첩을 확인하다가 감기에 걸린 여섯 마리 고양이가 모두 아리스토 거리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는 여섯 명의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 그러자 여섯 명의 주인들은 시드더러 '하는 일도 없이 저녁을 여섯 번이나 먹었다'며 '얌체고양이'라고 화를 낸다. 그리고는 '앞으로 시드한테 하루에 저녁을 딱 한 번만 주자고' 결의한다.   

만약 이 책이 고전적인 도덕관념을 따른다면 시드가 저녁을 한 번밖에 먹지 못하고 배고파하거나, 더 심하게라면 아리스토 거리에서 쫓겨나는 걸로 마무리를 짓지 않았을까 싶다. 사람들을 속이고 제 욕심을 채운 시드가 인과응보에 따른 처벌을 받는 걸로 끝난다면 그야말로 가장 단순한 교훈을 심어주는 따분한 그림책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매력은 지금부터 더 빛을 발한다.    

누가 뭐래도 시드는 저녁을 여섯 번 먹어야 하는 고양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속았다'라고 느끼는 건 순전히 사람들 입장에서 하는 이야기다. 시드는 여섯 주인이 불러주는 이름에 걸맞게 행동하느라고 노력해야만 했고, 부지런을 떨지 않으면 안됐다. '우쭐이'이기도 하고 '돌쇠'이기도 하고, '익살이'였다가 '촐랑이'가 되어야 했고, '살랑이'이면서 '흑기사'이어야 한다는 건 내가 생각해도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그런 시드를 통해서 즐거움을 얻고 나름 시드를 보면서 행복해 했을 테니까, 시드더러 '하는 일도 없이 저녁을 여섯 번'이나 먹는 '얌체'라고 하는 건 시드 입장에선 자존심 상하고 억울한 일이다. 오히려 '이웃끼리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지내는 아리스토 거리 사람들이 더 문제다. 이웃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정답게 살았다면 시드가 이 집 저 집 다니며 저녁을 여섯 번 먹어야 하는 특이한 고양이라는 건 금세 알 수 있었을 것이고, 그러면 시드도 여섯 가지 이름에 걸맞게 사느라고 힘들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시드는 미련없이 아리스토 거리를 떠난다. 그러고는 피타고라스 광장의 1번지, 2번지, 3번지, 4번지, 5번지, 6번지에서 살기 시작한다. 시드가 새롭게 정착한 이 동네 사람들은 '광장'에 사는 사람들답게 이웃끼리 사이가 좋았다. 그래서 시드가 저녁을 여섯 번이나 먹는 고양이라는 걸 처음부터 모두 알았고, '시드가 저녁을 여섯 번 먹는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을 아무도 없었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가 떠오른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아리스토 거리의 사람들은 시드를 '소유'해야 했다. 내가 이 책을 '내 것'으로 삼아 행복한 것처럼 아리스토 거리의 사람들에게는 시드를 '나만의 것'이라고 생각했을 때에만 행복할 수 있고, 시드 또한 한 사람의 것이어야 마땅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래서 시드가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 순간 화를 내며 시드를 배척해야 했던 것 아닐까. 대조적으로 피타고라스 광장에 사는 사람들은 시드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림을 보면 내 것도 아니고 우리 것도 아니고 시드까지 전부 다 함께 '우리'라는 것에 행복해하는 따스한 느낌이다.   

 

그렇게 이 책을 손 닿는 곳에 두고 몇 번을 뒤적이다 보니 또 한 가지가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아리스토 거리에는 아이들이 없다는 점. 그리고 피타고라스 광장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 중에는 어느 집 창문 안으로 들어가려는 시드를 모여서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그 그림을 비교해서 가만히 보고 있자니 우리집 꼬맹이딸 생각이 났다. 놀이터에 데리고 나가면 처음 보는 아이와도 금세 친구가 되어 논다. 나중에 "오늘 놀이터에서 만나서 재미있게 논 친구는 이름이 뭐래?"하고 물으면 "몰라"한다. "이름도 안 물어보고 그냥 놀았어?"하면 노는 데 이름이 뭐가 중요하냐는 듯이, 오히려 이름을 묻는 나를 이상하게 바라본다. 아이들의 세계는 그렇다. 어른들은 친해지기 위해서는 이름과 나이는 기본이고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취향인지, 결혼은 했는지 안했는지, 고향이 어딘지, 심지어는 학벌이 어떻게 되고 재산 정도는 어느 정도인지 시시콜콜 다 알아야 한다. 아니, 그런 걸 다 알고 나서도 친해지기는 어렵다.  

아이들 사이의 관계는 어른들 사이의 관계보다 훨씬 더 건강하게 열려있다. 아마 시드가 저녁을 여섯 번 먹는 고양이이고 그래서 저녁 때마다 여섯 집에 들러 식사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도 아이들이 가장 먼저 알아냈을 것이다.

이 그림책은 나에게 관계를 열라고 말한다. 이 책을 중고책으로 주문하고 배송을 기다리는 지금, 누군가 이 책을 빌려달라고 하면 난 끽 소리도 못하고 기꺼이 빌려줄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이 절판이라는 사실이 안타깝다. 사람들에게 기꺼이 추천해주고 싶은 책인데 말이다.   

그나저나 이 책에서 시드가 살던 거리와 광장의 이름이 왜 '아리스토'와 '피타고라스'인 걸까? 모르긴 해도 '아리스토'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따온 게 아닐까 싶은데... 왜지? 왜일까? 끙... 

사족 하나,
이 책 맨 뒤에는 '어린이 친구들에게'라는 글이 있다. 이 글에는 이웃끼리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지내면 동네에 무슨 일이 생겨도 알 수 없다고 쓰여있다. 그리고 아리스토 거리와 피타고라스 광장 사람들을 비교하면서 '시드 같은 고양이가 아니라 고약한 침입자가 들어온다면 어떤 동네 사람들이 먼저 알게 될까요?'하고 묻고 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아, 이 그림책이 이렇게도 풀이가 될 수 있구나.'했다. 갑자기 이 그림책이 무지 교훈적인 책으로 바뀌는 경험을 했다고 해야 하나...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는 목적이 '더 빨리 힘을 모아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하는 건, 뭔가 개운하지 않은 면이 있다. 차라리 이 글이 없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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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4-23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드에게 속은(?) 사람들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어나가다가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말씀하시는 부분에서 가슴이 쿵 했습니다.
아, 그렇네요. 아이들은 틀림없이 시드가 여섯끼를 먹는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발견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였겠지요. 그것은 욕심만 가득한
제 행동을 다시 한번 바라보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즐거운 주말되셔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섬사이 2011-04-25 14:39   좋아요 0 | URL
재미있고 가슴 '쿵'하게 읽어줘서 제가 오히려 고마워요.
가만 보면, 아이들에게 배울 것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아이를 키우면서도 내가 아이보다 못하구나, 할 때가 종종 있거든요.^^

 
우리 동네 미자 씨 낮은산 작은숲 12
유은실 지음, 장경혜 그림 / 낮은산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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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유은실 작가의 새 책 <나도 편식할거야>를 읽게 되었다. 일곱살 막내랑 얼마나 재미있게 읽었는지 모른다.  군더더기 없이 입에 착착 달라붙는 글도 좋았고 먹성좋은 1학년 정이의 깜찍한 이야기도 정감있었다.  그렇게 "역시 유은실이야!"하며 읽고 나니 문득 아, 내가 아직 <우리동네 미자씨>를 안 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우리 동네 미자 씨>뿐 아니라 <마지막 이벤트>도..  그래서 도서관에 가서 - 한 번은 대출중이라 실패하고 두 번째 시도에 성공했다 - 빌렸다.  

돈도 잃고 사랑도 잃어 몸도 마음도 가난하고 외로운 미자 씨의 이야기는 어둡게 흘러가게 놔둔다면 끝도 없이 춥고 음울한 곳으로 흐를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가난한 사람들의 억척스럽고 궁상맞은 모습을 그리다가 난데없는 희망으로 끝을 맺는 잔인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은 대책없이 밝고 슬프다.  

미자 씨는 '찢어진 모기장도 바꾸지 못하고 햬진 구두를 그냥 신고' 다녀야 할 정도로 가난하다. 그리고 잔치음식은 갖다주기 전에 찾아가 잔뜩 먹고 하다못해 아이들 아이스크림이랑 과자도 뺏어 먹을 정도로 식탐이 강하다. 가난해서 배고픈 사람들의 억척스러움이라고 여기면 간단하겠지만 작가는 이 씩씩하고 밝은 미자 씨 이면의 슬픔을 슬쩍 보여준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소용이 없죠. 미자 씨는 먹고 싶은 걸 참지 못하게 되었거든요. 사랑하는 사람이랑 돈을 몽땅 잃어버린 다음부터 말이에요.
"오늘도 눈치 없이 먹고 다녔나 보다."
밤이 되면 미자 씨는 하루를 돌아보며 슬픔에 잠기곤 했어요. 어떤 날은 훌쩍훌쩍 울기도 했죠.

 미자 씨의 억척스러운 식탐 뒤엔 잃어버린 것들이 남겨놓은 텅 빈 자리들이 훵하게 남아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이런 식으로 슬픈 것을 슬프지 않게 보여주고 웃고난 다음에 아프게 한다.  

<동태 두 마리>에서 미자 씨는 수요일과 토요일 아침마다 반찬거리를 트럭에 싣고 팔러 오는 부식차 장사가 선물로 준 동태 두 마리를 가지고 '얼큰 시원 동태찌개'를 만든다. 이혼한 부모때문에 큰아빠네 얹혀서 혼자 사는 5학년짜리 성지가 마을회관 컴퓨터로 검색해서 알아다준 레시피를 참고로 해서. 그런데 레시피대로 찌개를 끓일 수가 없다. 레시피에 있는 재료를 다 갖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초대받은 손님 성지는 그 점이 못마땅하다. 도무지 제대로 된 찌개가 될 것 같지가 않아 불만이다.  

"정말 그것만 넣을 거야?" 
"음, 걱정하지 마. 이렇게 해도 돼." 
"맛없잖아."
"아니야. 맛이 있긴 있어. 많지 않아서 그렇지 보통은 돼."
"아, 아줌마 보통은 보통이 아니라니까."
"........"
미자 씨는 마늘을 다지다 말고 성지를 물끄러미 바라봤어요.
"있잖아 성지야, 내 보통이 보통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되게?"
"몰라."
"그렇게 생각하면..... 불행해져."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가 보통이라고 우기면서 살아야 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기를 쓰고 우기면서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살아야 불행해지지 않는다. 우리를 보통으로 느끼게 할 수 있는 것까지만 봐야 한다. 유명한 블로그에서 찾아냈다는 '얼큰 시원 동태찌개 만드는 법'같은 건 아예 눈을 질끈 감고 보지 않아야 한다. 보고도 못 본척 해야 한다. 갖가지 재료가 들어가야 하는'얼큰 시원 동태찌개 만드는 법'을 '보통'이라고 할 수 없듯이 억소리도 모자라게 비싼 집, 차, 옷, 가방, 구두 그리고 기죽이게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 늘씬하고 예쁜 사람들이 절대로 보통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런 화려한 것들은 물론이고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이 가려진 다음에야 보통인 우리들이 비로소 아름답게 반짝 드러날지도 모른다.   

"칫, 어떤 미친 도둑이 아줌마네 집을 털어" 
성지가 피식 웃었어요.
"너 모르는구나. 캄캄한 데서 언뜻 보면 우리 집도 부잣집으로 보일지 몰라. 옛날에 니네 큰엄마가 그랬거든. 캄캄한 데서 언뜻 보면 나도 되게 예뻐 보인다고." 

모든 것을 밝게 드러내는 곳에서는 우리의 추레함도 적나라하게 드러날 터, 외롭고 가난한 사람들이 그늘 속에 있는 것은 양지의 그러한 횡포를 잘 알기 때문이다. 외로운 성지는 외로운 미자 씨에게 올 때 똑똑하고 영리한 아이가 된다. 치약의 다양한 사용법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 동태찌개를 맛있게 끓이는 법을 아는 사람, 동물학대에 대해서 자신있게 주장을 펼치고 여우목도리가 잘 어울리는 옷을 찾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외로움은 외로움을 만나서 조금은 따뜻해지고 행복해지는 걸까.   

"성지야." 
"왜 그러는데."
"나 한 번만 안아 줄래?"
"그러면 들어갈 거야?"
"음."
"여우 목도리 풀어. 그럼 안아 줄게."
미자 씨는 목도리를 풀었어요. 그리고 성지를 꼭 안았지요.
"아, 숨 막혀. 팔에 힘 좀 빼."
성지는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어요. 사람 품에 안겨 본 게 아주아주 오랜만이었거든요. 

그래, 외로움은 꽉 안아줘야 한다. 자꾸 억지로 쫓아내려하면 더 질기게 붙잡고 늘어질 위험이 있다. 누군가의 품에 안겨서 (그 사람이 외로움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면 더 좋겠다), 하다못해 베개를 끌어안고서라도 외로움은 풀어내야 한다. 자기가 '보통'이라고 믿는 외로운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   

작가는 '내 안에 미자 씨가 있다.'고 했다.  내 안에도 미자 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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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4-14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안에도 미자씨가 있어요~~~~~~ 라고 고백하고 싶은 리뷰!

섬사이 2011-04-14 10:37   좋아요 0 | URL
그럼 우리 숨막히게 꽉 안아줘야 하는데.. ^^

다락방 2011-04-14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여동생 읽으라고 줬더니 "미자씨 읽으니까 언니 생각난다" 하더라구요. 제 안에도 미자씨는 있어요.

섬사이 2011-04-14 10:36   좋아요 0 | URL
우린 거의 모두 '보통'으로 외로운가 봐요. ^^

마녀고양이 2011-04-14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그래서 오늘 잘 때도, 딸아이의 곰돌이를 꼭 껴안고 잤나 봐요. ^^

섬사이 2011-04-15 13:35   좋아요 0 | URL
저는 아직 꼬맹이딸을 꼭 안고 자요.
꼬맹이딸이 자라서 제 품을 떠나면...그 땐 저도 곰돌이를.. ^^
 
똥자루 굴러간다 우리 그림책 4
김윤정 글.그림 / 국민서관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아이랑 같이 책을 읽어가다보면 어떤 이유로든 깊은 인상을 남기는 책들이 있다. 그 내용이 너무 감동적이거나 웃겨서인 경우도 있지만 때론 너무 엽기적인데 그게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져서 그런 경우도 종종 있다.  

이 책은 아마 <똥벼락> 이후 가장 엽기적인 똥이야기가 아닌가 싶은데, 도서관에서 빌려온 날 이 책을 읽고는 나도 막내도, 그리고 큰애들까지도 낄낄낄 웃어댔다.  

표지를 보면 한 장군이 양손을 입가에 갖다대고는 뭐라 외치고 있는데, 분명 "똥자루 굴러간다~~"하고 제목을 외치고 있는 게 틀림없을 테고, 장군 양쪽에 있는 포졸들은 뭐가 그리 웃기는지 장군을 바라보며 웃느라 정신이 없다. 그런데 이 장군, 뭔가 이상하다. 손이 너무 곱상하고 가슴께까지 곱게 드리운 댕기머리는 또 뭔가.    

 

 

 

 

 

 

 

 
책을 펼치면 속표지에 강아지 한 마리가 등장한다. 눈을 감고 코를 킁킁대며 어딘가로 향하는데오른쪽 끝에 노랗게 번져나오는 냄새가 수상하다. 다시 한 장을 더 들추면 냄새는 더 진해지고 못가에 서 있는 동물들의 표정은 그리 좋아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다람쥐 한 마리는 코까지 틀어막고 있는데 아까 보았던 그 개 한 마리만 여전히 좋다며 냄새를 좇고 있다.    

 

드디어 본이야기로 들어간 첫장부터 거대 똥이 떡 하니 등장한다. 똥을 자세히 보면 콩나물이며 거뭇거뭇한 수박씨가... '아이고, 정말 적나라하게 더럽다' 하면서도 묵직하고 거대한 똥의 존재감을 무시하지 못하고 아이랑 같이 똥에 박힌 콩나물이 하나, 둘, 셋, 넷, 다섯개라며 세고 있다. 그림책이 엽기인 건지, 아니면 내가 더 엽기인 건지 헷갈리는 순간이다.  아무튼 '똥 한 번 누면 뒷간이 막히고 똥 두 번 누면 앞길이 막힌다'는 똥자루 굵은 똥자루 장군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군사들이 우연히 시댓가를 찾았다가 이 어마어마한 똥자루를 발견하고는 나름 논리적인 사고 전개과정을 통해서 '똥자루가 굵으니, 덩치가 클 것이요. 똥자루 색을 보니, 속도 튼튼하겠구나. 나라의 든든한 장군감이 분명하니, 여봐라, 똥임자를 찾아라!'며 똥자루 임자를 찾기 시작한다. 지금같으면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체포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당시의 우리 조상들은 배포가 남달랐던 모양이다.     

 

  구석구석 똥임자를 찾아다니다가 드디어 찾아내긴 했는데, 이런 그 어마어마한 똥의 주인이 가슴 봉긋한 처녀였던 것이다. 대장이 아연실색하고 있는데, 이 처녀 어마어마한 똥 주인답게 야무지게 말한다.  "여자인 게 뭐 어떻습니까? 나라만 잘 지키면 되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이리도 멋질까. 이만하면 똥자루 굵은 것쯤, 여자인 것쯤, 뒷간이 막히고 앞길이 막히는 것쯤 용서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대장도 이 당당하고도 야무진 처녀에게 반했는지 부장군에 명하는데 정작 부하들은 데굴데굴 구르다 못해 눈물까지 질질 짜가며 웃느라 정신이 없다. 괘씸한지고!!  이 버르장머리 없는 부하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줘야 하는데!!! (근데, 좀 웃기긴 웃기겠다.)    

 

 

 

 

 

 

 

 

  

바람을 타고 구름을 타고 적군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돌 때, 부장군 처녀는 마을 여기저기에 박을 심고 동글동글하게 박이 열리자 그 박을 이용해서 마을에 쳐들어오는 적군을 도망가게 만든다. 적군들이 겨우겨우 아무도 없는 산 중턱까지 도망가서 숨을 돌리려 할 때, 저 산 끝에 다소곳이 앉아 있던 처녀가 산을 흔드는 소리, '끄-응-'  저 산 꼭대기에 앉아 있는 똥장군 처녀의 익살스런 표정을 보고 어떻게 따라 웃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똥자루 굴러간다!"  

시퍼렇게 질린 왜군 병사들이 혼비백산 달아나는 그림은 생각보다 카타르시스 효과가 크다. 이 그림책을 읽을 즈음이 일본에 거대 쓰나미가 덮쳤을 바로 그 때였는데도 불구하고 '좀 미안하다'하면서도 피식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막을 도리는 없었다. 꼬맹이는 옆에서 "엄마 이 사람은 똥에 깔렸어." "엄마엄마, 이 사람은 똥에 박혔어" "엄마, 이 사람은 머리에 똥 맞았어" 하는데 그림에 아주 푹 빠진 것 같았다.     

 

처녀는 적을 무찌른 공으로 장군이 되었고, 그 후로 적들이 쳐들어오는 일은 없었다나.  장군이 되어 밝게 웃고 있는 처녀의 얼굴이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기왕이면 데굴데굴 구르고 눈물까지 흘려가며 처녀를 조롱하던 그 괘씸한 부하들이 장군이 된 처녀를 인정하고 존경하게 된 모습들을 함께 그려줬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너무 교훈적이라든가 아니면 너무 뻔한 결말이라든가 하는 위험에 빠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작가는 나보다 한 수 위였다. 뻔하고 교훈적인 결말 대신에 예상하지 못했던 산뜻하고 매력적인 뒷이야기를 그림으로 남겨 놓았던 것이다.  뒷쪽 속표지에 이 똥자루 장군과 대장 사이의 스캔들을(저 새침떨며 도도하게 튕기며 돌아서는 처녀의 모습이 어쩌면 이렇게도 내마음에 쏙 드는 건지!!) 그리고 뒷표지에선 적군의 장군이 왕에게 보고하고 있는 창호지 그림자를 그려 놓았다.  "하늘에서 거대한 똥자루가!" 하고 왕에게 보고 하는 적군의 장군이 어쩐지 측은하다. 분명 왕에게 "어디서 그런 말도 안되는 변명을 늘어놓는 것이므니까!"하며 야단을 맞을 것 같은데... 

'이완 장군과 똥자루 큰 처녀'라는 강원도 설화와 '무쇠바가지'라는 설화를 한데 섞어서 새로 쓰고 그린 그림책이라고 한다.  가져다 쓴 옛이야기 자체만으로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거기다가 맛깔나는 글과 유머스럽고 정감가는 그림을 더해서 아이들이 즐겁게 읽을 그림책으로 탄생시켰다는 사실이 난 무척 반갑고 신난다. 뒤숭숭한 요즈음 나와 아이들에게 웃음을 안겨다 준, 엽기적인 면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것 같은 그런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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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1-04-08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너무 웃겨요. 아이들이 정말 좋아할 것 같아요. 한편 엽기적이긴 하지만요.ㅎㅎㅎ

섬사이 2011-04-11 13:18   좋아요 0 | URL
저도 한참을 웃었어요.
막내에게 읽어주는데 큰녀석들까지 곁에 와 붙었다니까요.
책읽는 즐거움을 확실하게 가르쳐주는 책이죠.^^

하늘바람 2011-05-17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들어도 웃기네요

섬사이 2011-05-19 11:40   좋아요 0 | URL
예, 무척 웃기고 재미있어요.
태은이랑 읽어보세요. ^^
 
지금이 아니면 언제? - 투신자살한 아우슈비츠 생존작가 프리모 레비의 자전적 장편소설
프리모 레비 지음, 김종돈 옮김 / 노마드북스 / 2010년 8월
구판절판


게달레 대장이 책을 다시 펼치며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지. 늘 슬픈 것들만 떠올리면 독이 되고,강한 빨치산이 되기 어렵네. 그리고 난 세 가지만 믿네. 총알,보드카,여자...예전엔 이론을 믿어 한때 경도되었지만, 이제 아니네."
"왜요?"
"그건 삶이 아니니까."
"그럼 삶은 뭐죠?"
"앞으로는 살아야 하고 뒤로는 수긍해야 하는, 뭐 그런 것쯤 되지 않을까? 그리고 자네가 나한테 이렇게 꼬치꼬치 묻지 않는 것. 하하."
"...."
"난 가끔 이런 생각들을 해. 총알이 날아가다가 방향을 바꿔버렸으면 좋겠다고."
"어디로요?"
"나에게로."
"아니, 왜요?"
"그래야 진실한 세상으로 바뀔 테니까."
"..."-233쪽

하늘 아래 변하지 않는 게 없고 두 번 깥은 강물에 들어갈 수 없는 게 세상의 이치인데, 하물며 사랑이라고 해서 어찌 변하지 않겠는가. (중략) 그렇지만 그는 사랑이란 관계가 모든 걸 떠나 그냥 계절과 비슷한 거라도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추운 겨울엔 서로 꼭 붙어있고, 더운 여름엔 멀찌감치 떨어져 있고, 선선한 봄가을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 서로 마주보며 노래를 부르는 그런 관계 말이다. -261쪽

이같은 썩은 소비에트 현실이 과연 그게 누구의 책임인가, 하는 문제네. 맑스?엥겔스?플레히노프?레닌?트로츠키?스탈린?예수?여호와?무하마드...?
아무도 아니네! 나, 바로 나라는 존재일세. 나를 비롯한 그런 수많은 존재들이 책을 덮지 않고 책속에서 바로 길을 찾았기 때문에 이 같은 결과가 빚어졌다고 생각하네. 앞서 책을 읽고 반드시 덮으라는 것도 바로 그런 뜻이었네. 물론 좋은 세상이 지금의 세상이 아니라는 것도 그런 뜻이었고...독서의 완성은 책을 덮는 거네. 책을 다 읽는다는 게 아니라 덮어야 할 때를 알고 덮을 줄 아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말이네. 거기서부터 길이 시작되지.-268쪽

물론 난 개인적으로도 스탈린이라는 한 인간을 불신한지 오래 되었네. 그가 히틀러와의 협정서에 서명을 해서가 아니라 한 번도 인간을 사랑해보지 않았기 때문이지. 사랑을 모르는 자가 통치자가 된다는 건 강도한테 칼을 쥐어주는 거나 똑같다고 보네. -339쪽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그만큼 기억의 고집을 남기고 간다. 그 기억의 고집을 그는 꺾을 수가 없었다. 멘델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털어버리려고 애썼지만, 그럴수록 최근의 기억들마저도 희미해져버렸다. 그림을 그리다가 절반쯤 지우고 절반쯤 다시 그리는 것처럼 모든 게 흐릿한 형체로 중첩되었다. 기억이란 게 과일바구니와도 같은 것이어서 정적량 이상을 담으면 과일 몇 개가 아니라 전부 다 상처받게 된다.-369쪽

"여자들 거의가 나보다 더 많이 먹으면서 스스로에게 체념하고 굴복하더니 마침내 죽어갔어요. 자포자기는 자살 이상의 죄악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어쨌든 난 이를 악물고 버텨냈어요.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몰라요. 글쎄요, 내가 그들보다 특별히 삶을 더 사랑했다거나, 더 집착했을까요? 아마 그건 아닐 거예요."-391쪽

그런데 간사한 게 또 사람의 마음이다. 충족되고 만족되어도 또 더 원한다. 물론 원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도 없다. 동시에 원하는 것처럼 추한 것도 없다.-434쪽

평화라는 이름으로 복수가 복수를 불렀고, 자유라는 이름으로 탐욕이 탐욕을 부른 것이었다. 과연 이런 역사는 언제까지 되풀이될 것인가? 멘델은 현기증이 일어나 도통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말인가?-436쪽

내가 나를 위해 살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나를 위해 대신 살아줄 것인가?
내가 또한 나 자신만을 위해 산다면
과연 나의 존재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 길이 아니면 어쩌란 말인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란 말인가?-4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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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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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 힘으로 계곡으로 돌아왔다. 무슨 일이 있었나, 우리의 얼빠진 얼굴을 쳐다보며 낄낄거리는 여관 주인의 물음에 멋진 소풍을 갔다왔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계산을 했다. 그러고는 위엄을 갖춘 채 그곳을 떠났다. 이것이 바로 곰고기 맛이었다.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 그것을 더 많이 먹어보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삶이 내게 선사한 모든 좋은 것들 가운데 그 어떤 것도, 까마득한 옛날 일이긴 해도 그 고기 맛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고기 맛이란 강인함과 자유의 맛, 실수도 할 수 있는,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자유의 맛이다. 그래서 나는 산드로가 의식적으로 나를 고생과 여행 속으로, 겉보기만 어리석어 보이는 여러 모험 속으로 인도해준 데 대해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74쪽

내가 어떤 모험을 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지만 실수를 할 수 있는 자격 조건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엄격해진다는 것을, 그러므로 그 열매를 누리고 싶은 사람은 너무 오래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편으로 그게 실수였다는 것을 알아차리기까지도 너무 시간을 끌면 안 되었다. -273쪽

하지만 나는 그가 부러웠다. 나는 상담직원의 그물망에 얽혀 있고, 사회와 회사에 대한 의무, 또 그와 유사한 의무의 망에 갇혀 있다. 하지만 그는 장벽을 허물고 과거의 주인이 되어 그것을 자기 마음에 맞게 세워놓고 그 주위에서 영웅의 옷을 꿰매고 수퍼맨처럼 과거를, 자오선을, 위도선을 넘나들 수 있는 사람의 자유, 무한한 창작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 나는 그런 그가 부러웠다. -2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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