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위한 행복한 인문학 ‘이야기 학교’  


엄마라는 건 틀림없이 축복이지만 많은 여성들이 가사와 육아에만 전념하면서 자기 자신을 잃고 좁은 시야를 갖게 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직 내 아이, 내 가족만을 바라보며 살아간다는 건 엄마 자신을 위해서도 가족을 위해서도, 또 사회 전체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니까요.
인간에 대한 이해, 사람사는 세상을 바라보는 건강한 시각과 다양한 소통의 방법, 사회가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이상형에 대한 이해를 가진 엄마들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도, 미래의 주체인 아이들도 건강해질 것입니다.
인문학 ‘이야기학교’는 그렇게 엄마들의 성장을 돕고자 합니다.
매주 화요일 10시에 진행되는 ‘이야기학교’에서는 4월~5월은 ‘인문학’, 5월~6월은 ‘영화 속 인문학’에 대한 재미있는 강좌를 준비했습니다.

<인문학 이야기학교>

인간의 땅, 인문학의 미래 / 강사: 박정수(수유너머R 연구원)

대지진으로 수 만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바로 다음날 모 일간지는 이번 대지진이 중장기적으로 일본 경제를 침체의 늪에서 구해낼 것이라는 분석 기사를 실었습니다. 인간의 목숨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는 데 일말의 망설임과 죄책감도 없는 이 비인간적인 시대,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한없이 잔인하면서도 한없이 동정적인 존재, 한없이 연약하면서도 한없이 위대한,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일까요?
전쟁과 착취, 민주주의와 혁명의 역사 속에서 200년 동안 지속해온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인문학적 질문이 지금도 유효하다면, 그 질문은 지금의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 걸까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푸코의 고고학, 카프카의 문학, 맑스의 철학이 인문학의 영토를 파고들어 지하에 구멍을 내고 인간의 지반을 무너뜨리며 찾으려 한 인간-너머의 대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1강. 4월12일 (화) 인문학과 휴머니즘
2강. 4월19일 (화) 프로이트: 인간 속의 불만
3강. 4월26일 (화) 푸코: 인간의 지식, 인간의 권력
4강. 5월3일 (화) 카프카: 법 바깥의 인간
5강. 5월17일 (화) 마르크스: 인간소외와 인간해방

 

드디어 역사 강의의 커리큘럼과 강사가 확정되었다. 처음엔 '전쟁과 평화'라는 주제로 역사강의를 꾸리려 했는데, 애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으리으리하고 무시무시하고 거대묵직한 쪽으로 방향전환이 되어버렸다.  저 커리큘럼을 내 머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강사로 오시는 박정수 선생님은... 그러니까 G20 때 쥐20을 그려서, 따지고 보면 그렇게 요란 떨 일도 아닌데, 아무튼 그 일로 세간에 오르내리셨던, 바로 그 분이다. 강의를 무척 재밌게 하신다고 하니, 커리큘럼 상으로는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아도 강사님의 지도편달만을 믿고 용감무쌍하게 따라가 봐야 할 듯.  

아무리 그래도 내 알량한 지식의 바닥을 적나라하게 마주볼 각오는 해 둬야 할 듯.  끙~ 

박정수 선생님에 대해 알라딘은 이렇게 소개해 놓았다.  

서강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국문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구 공간 수유+너머R 연구원으로 있으며, 코뮨-넷 웹진 ‘위클리 수유너머’(suyunomo.net) 편집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프로이트와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마르크스, 푸코, 들뢰즈의 유물론적 관점에서 다시 읽으면서 ‘욕망의 정치경제학’이라 할 수 있는 영역을 탐색하고 있다. 혼자 쓴 책으로는 《현대소설과 환상》이 있고, 함께 지은 책으로는 《부커진 R2: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한국사회》, 《코뮨주의 선언》 등이 있다. 그리고 정신분석학적 정치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How To Read 라캉》,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 등을 번역했다

 그러니까
 

 

 

 

 

 

 

 

 

 

 

 

 

 

 

 

 

 

   

 

 

 

 

이런 책들이 참고도서가 되는 걸까.. ?? 아이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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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1-04-04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어려워라...ㅎ
아 대단한 분이 오시는군요. ㅎㅎ
저희도 가닥을 잡았습니다.
처음엔 인문학과 친해지기(고전읽기) 7강 - 고미숙샘도 오신다네요.
두번째는 인문학 이해하기(문학읽기) 7강
세번째는 인문학 바로읽기(사상읽기) 7강
제가 막 설레입니다. 담당자로서 꼭 들으려구요^*^

섬사이 2011-04-06 09:53   좋아요 0 | URL
예, 강의 커리큘럼이 너무 무겁고 어려워요.
저 커리큘럼을 보고 선뜻 강의 신청을 할 엄마들이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예요.
세실님 도서관의 인문학 강의가 참 알찰 것 같아요.
우리 쪽 강의보다 세실님 쪽 강의를 더 듣고 싶은, 이 마음은 뭘까요? 에구..
 

[문화마당] 아줌마들의 책읽기/신동호 시인   

2호선 왕십리역에 내리면 소월공원이 자그마하게 있습니다. 소월이 이 부근에서 서울 생활을 하며 사랑의 변주를 울렸기에 기념이 될 만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여기, 왕십리역 9번 출구로 나와 한양대 쪽으로 조금 걷다 보면 큰길 가에 소월공원만큼 조그만 도서관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크레파스로 그려놓은 조각그림들 위편으로 간판이 걸렸네요. 가끔 커다란 플라타너스 그늘에 가려 보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만 자세히 보면 ‘책읽는 엄마 책읽는 아이’라 적혀 있습니다.  

어떤 인연이 닿아 여기, 아이들이 올망졸망 앉아 소란을 피웠을 조그만 의자에 쪼그려 두달 동안 아줌마들과 책을 읽었습니다. 소녀 같고 때론 수다스럽기도 한 아줌마들과 어울리면서 자주 얼굴을 보았는데, 이상하게도 이름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어느 날엔 목욕가방을 들고 와서 ‘목욕탕 엄마’, 생물학과를 나왔다고 해서 ‘생물과 엄마’ 하는 식으로 마구 이름을 붙여 불렀습니다.  왠지 그 소박한 영혼들이 새로운 세상과 만나는 걸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자신과 거리를 두어 보는 것이 독서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다른 세계로 함께 여행하고픈 욕심도 들었습니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로 시작한 책읽기는 ‘닫힌 우물’의 은유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고향집 우물은 어머니의 싱싱한 자궁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막혔다는 건 곧 남성중심 사회의 폭력성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  

그저 평범한 일상과 씨름하던 아줌마들은 영화 ‘카모메 식당’에 가서는 일탈에 대한 대리만족을 발견한 모양이었습니다. 의무감과 관계의 짐을 벗고픈 우리시대의 아줌마들. 그러나 아줌마들은 주인공 ‘사치에’의 반복되는 수련 장면을 통해 진리를 발견합니다. ‘지독한 일상을 견디며 지키는 사람에게 비로소 일탈은 의미 있다.’  

설거지와 빨래, 이 지루한 반복을 견뎌내는 아줌마들의 힘이 변화의 원동력임을 옆에서 가만히 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날 아줌마들이 코치하더군요. “‘오늘 저녁 먹고 들어와?’라는 통화가 무슨 뜻인지 아세요?” “맛있는 거 해놓겠으니 빨리 오라는 뜻?” 그게 아니랍니다. 일찍 들어오지 말라는 뜻이랍니다. 일상을 지키면서 동시에 일상을 살짝 벗어나는 아줌마들의 대화법인 게지요. 
 

며칠 전 여전히 책읽기를 이어가는 아줌마들의 독서 후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책의 겉모양뿐 아니라 책 속까지 좋아지기 시작했다.’네요. 셰퍼와 배로스의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 그리 만만한 책이 아님에도 ‘좀 시시하다.’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교과서적 지식을 벗어나 2차 세계대전에 대한 배경지식의 욕구를 표현한 아줌마도, 더더욱 놀라운 건 ‘세계에 대한 자기 인식과 해석을 목표로 삼았다.’는 그럴싸한 말을 한 아줌마도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오기에 어려운 몇 고비를 넘었습니다. 마이클 폴란의 ‘욕망하는 식물’이 처음의 난관었습니다만, 자연세계만의 질서를 읽으며 막막한 시간의 연결선상에 놓인 자신을 발견한 건 놀라운 깨달음이었습니다. 코엘류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는 조금 쉬어가려는 책이었지만 아줌마들은 거기에서 ‘똑같아지지 않으려는 노력’ 즉, 남들과 같은 건 편리하겠지만 결국 ‘나’를 잃는 것이라는 무거운 진리에 다가섰습니다.  

압권은 다 읽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이었습니다. 괴테가 너무 잘난 체한다는 농담으로 시작된 이야기. 그러나 자기가 느끼는 대로, 자신 있게 떠들기가 괴테의 잘난 척 비법이라는 인문학의 요체로 성큼 다가섰습니다. 

 이불 위에 배를 깔고 책읽기 좋은 계절입니다. 밤도 깊고요. 많이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위해 ‘책읽는 엄마’가 돼 보세요. 세상의 모든 책들이 자신을 제 마음대로 읽어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용기를 가지시고요. 소월의 시를, 읽는 사람의 숫자만큼 다르게 해석하는 시대. 그날 ‘가도 가도 왕십리’ 내리던 비도 그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2010-12-2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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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1-05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독서 모임을 멋지게 소개했네요!
왕십리에 소월공원도 있군요~^^

섬사이 2011-01-07 12:16   좋아요 0 | URL
소월공원은 '소월아트홀'이라고 불리는 공연,문화강좌 등이 열리는 건물의 앞마당 같은 분위기에요.
근처 노인분들이 모여 바둑,장기를 두시거나 어린아이들이 뛰어놀거나
비둘기들이 무리지어 날아다니는 그런 곳이지요..
글쎄요, 소월의 작은 흉상과 시비 하나가 있긴 하지만
'소월'은 각자의 마음 속에서 느껴야 하죠. ^^

세실 2011-01-05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감가는 글이예요. 아줌마들이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이죠^*^
참으로 멋져요!!!

섬사이 2011-01-07 12:18   좋아요 0 | URL
아줌마들이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 그렇죠? ^^
이런 모임들을 통해서 아줌마들이 '행복한 엄마'들, '외롭지 않은 엄마'들로 변화할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아요.
그래야 아이들과 남편도 덩달아 행복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꿈꾸는섬 2011-01-11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이 참여하고 계신 독서모임이군요.^^
너무 멋져요. 아줌마들이 책읽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될까 싶어요. 많이 부러워요.^^

섬사이 2011-01-13 13:09   좋아요 0 | URL
처음 해보는 책읽기 모임인데,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점이 많아요.
올해에는 모임이 조금 더 그 영역을 확장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기대하고 있어요. 신동호 선생님이 신경을 많이 써주시는 것도 책읽기 모임에 큰 힘이 되고 있구요.
애들 학교나 지역 도서관에서 엄마들을 위한 책읽기 모임 같은 걸 만들어서 활성화될 수 있게 지원해준다면 참 좋을 것 같아요.
 

마음이 가벼웠다. 읽어야할 책이나 준비해야할 생각 없이 만남에 대한 기대만 안고 가면 됐으니까. 백창우 선생님은 '노래하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나는 '시인'보다는 '노래' 쪽에서 백창우 선생님의 존재를 더 크게 느끼고 있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시작되고>라는 백창우 선생님의 시집도 있지만 송구스럽게도 우리집 꼬맹이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라는 백창우 선생님의 노래집이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받아보는 <창비어린이> 속에서 손글씨 그대로 인쇄된 백창우 선생님의 글과 악보를 봐왔기 때문인지 '시인'보다는 '노래 만드는 사람'으로 각인되어 있다. 

 '꽃은 참 예쁘다 / 풀꽃도 예쁘다 /
  이 꽃 저 꽃 저 꽃 이 꽃 /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
  이 짧은 노래말은 때때로 내게 마법과 같은 힘을 발휘해서
  놀이터 아이들이 모두 꽃처럼 예뻐 보이게 만들고
  나를 여유롭고 너그럽고 밝은 사람으로 바꿔놓기도 한다.  

이 노래집을 이웃집 일곱살짜리 남자아이에게 선물한 적이 있는데 그 아이는 이 노래집 속에 등장하는 '귀봉이 형'에 대한 동경을 품기도 했다. 

 '귀봉이 형은 좋겠네 / 날마다 낚시하니까
 귀봉이 형은 좋겠네 / 날마다 물가에 나가니까 
 귀봉이 형은 좋겠네 / 귀봉이 형은 좋겠네
 날마다 물가에서 물고기들과 노니까 ' 

아마 노래에서 느껴지는 '귀봉이 형'의 빛나는 놀이의 자유가 부러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노래집 속엔  잊고 있던 아득한 동심의 세계가 재미있고 신 나게 담겨있어서 꼬맹이와 나의 애창곡이 된 노래가 많다.  <맨날맨날 우리만 자래>라는 노래집에도 유치원 아이들의 귀여운 동심을 엿볼 수 있는 노래들이 많은데, 이 책 뒷 부분에 소개된 '카주'라는 악기를 보고 낙원악기상가에 가서 꼬맹이에게 그 악기를 사준 적이 있다. 대여섯살 아이가 쉽게 가락을 연주할 수 있는 참 착한 악기라서 한동안 얼마나 재미있고도 시끄럽게 불고 다녔는지 모른다. 그러니 백창우 선생님이라는 분은 어떻게 생긴 분일까, 목소리는 어떨까, 무슨 이야기를 해주실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궁금하니 설레기도 했고.   

백창우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셔서 준비하시는데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스누피였다. 생각보다 연세가 좀 있어 보였고 (나중에 보니 나보다 8살 위였다), 단발 스타일의 머리, 어쩐지 담배와 커피를 즐기실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자켓을 벗으시자 스누피 티셔츠가, 내려놓는 가방도 스누피 가방, 가방에서 꺼내놓는 파일도 스누피 파일, 볼펜도 스누피 볼펜, 기타에도 스누피가. 선생님의 소지품 여기저기에서 발견할 수 있는 스누피 덕분에 선생님에 대한 낯설고 어려운 감정이 많이 누그러졌다.  

나중에 들어보니 선생님이 어렸을 적 헤럴드 영자신문에 연재되는 스누피를 무척 좋아하셨고, 지금도 스누피는 선생님의 오랜 친구같은 느낌이라 스누피가 들어간 물건과 인형들만 보면 구입해서 식구처럼 데리고 지내신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감성을 잘 간직하며 사는 분인 것 같다. 나도 어릴 적에 '캔디'며 '빨간 머리 앤'에 열광한 적이 있었는데, 언제부터 내가 그들에게서 등을 돌린 건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선생님은 '시'에 대한 이야기부터 꺼내셨다. 엄마들 마음에 '시심'을 깨워보자시면서 '시'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고 하시며 한 줄 짜리 시를 예로 들었다.  

'너무 길다' 

기타 반주를 곁들여서 낭독해주신 단 한 줄의 시, <홍당무>의 작가 쥘 르나르가 쓴 시라고 한다.  '제목이 뭘까요?'하고 물으시는데 다들 어안이 벙벙. 밤, 넥타이, 국수.... 등등의 대답이 나왔는데 모두 '땡!' 정답은 '뱀'이었다. 아이가 태어나 처음 뱀을 보고 즉각적으로 떠오른 생생한 느낌이 담긴 시라고 하셨다.  

그럼 두 줄짜리 시.  

'시계 세 개가
제각기 제 길을 간다' 

백창우 선생님의 시다. 한 번 시계를 사면 건전지를 갈아 끼우거나 시간을 다시 맞춰놓는 일이 없어서 어느 날 무심코 보니까 방 안에 있는 시계 세 개가 모두 시간이 제각각이더란다. 그래서 나온 시라고.  

선생님은 세 줄 짜리 시로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를, 네 줄 짜리 시로 아이들이 지은 '감자꽃'이라는 시를 들려주셨다.   선생님이 들려주는 재미있는 시들을 듣고 있다가 어느새 엄마들은 '시'에 대한 경계심을 슬쩍 풀어놓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살아오면서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잊었던 마음들이 있었다. 그 잊었던 마음들이 노래 속에, 시 속에서 반짝이고 있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스스로 뻑가는 일' 하나쯤 갖고 살라고 하셨다. 그래야 빛나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그리고 '자세히 살피는 눈'을 가지라고 하셨다. 그래야 아이들을, 다른 사람들을 예쁘게 바라볼 수 있다고. 말썽장이 아이일수록 더 자세히 잘 살펴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야 그 아이의 예쁜 점을 찾을 수 있다고.   

많이 아는 아이로 키우기 보다는 많이 느낄 줄 아는 아이로 키우고, 
아이의 미래를 담보를 현재를 차압하는 일은 하지 말라고,
아이에게 '아무 것도 아닌 엄마'가 되지 말라고,
엄마도 자기만의 삶을 따로 가져가야 한다고,
하셨다.

아이들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이 참 많이 비뚤어져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예쁜 마음도 내가 가진 잘못된 거울로 비춰봤기 때문에 일그러져 보였던 적도 많았을 것이다. 엄마인 내가 더 커지고 넓어져야 할 것 같았다.  

선생님에게는 '어린이 음악 박물관'을 만들고 싶은 꿈이 있다고 하셨다. 넓은 잔디밭이 있어서 거기서 가족들이 함께 와서 들을 수 있는 콘서트도 열고, 꼭! 잔디밭에는 '들어가도 됩니다'라는 팻말을 세울 거라고도 하셨다. 그리고 우리도, 우리 아이들도 꼭 '꿈'이 있었으면 좋겠고, 그 '꿈'이 꼭 이루어질 거라 믿으며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정말 마음이 말랑말랑 따끈따끈해지는 시간이었다. 파주출판단지 아시아출판정보센터에서 내년 4월까지 백창우 선생님과 이태수 선생님이 함께 하는 상설전시가 열린다고 한다. 꼭 가볼 것을 약속했다. 전시제목은 '백창우 이태수의 조금 별난 전시회'. 책고르미 엄마들이랑 한 번 뭉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인사동에서 열리고 있는 육잠스님의 '생명불식전'도 소개해주셨다. 그래서 선생님과의 만남이 있고난 바로 그 다음 날, 책고르미 엄마들이 인사동으로 출동했다.  

  

서예작품과 서화가 함께 전시되고 있었는데 단아한 듯 하면서도 힘차고 독특한 서예작품들이 시선을 끌었다. 전시된 서예작품들 중에서 '莫問收穫 但問耕耘 (막문수확단문경운; 수확은 묻지 말고 다만 밭갈고 김매는 일만 묻는다)라는 글귀가 있었는데 읽는 순간 가슴이 뜨끔. 성급히 일을 이루려다가 낭패를 본 경험이 있는지라, 하루하루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차근차근 서둘지말고 해나가라는, 나에게 딱맞는 맞춤형 경구였다. '생명이 있는 것은 쉬지 않는다'라는 뜻의 生命不息이란 말도 참 좋다.  

'생명불식전'을 보고 바로 옆에서 열린 '세계의 책 전시회'였나, 하는 것도 봤는데 처음으로 갑골문자를 실제로 봤다. 가로세로 1mm의 세계에서 가장 작은 책도 보았고, 옛지도며 파피루스, 죽간들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미니어처 박물관'도 찾아가봤는데, '박물관'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기엔 민망하다고 할 정도로 규모가 작은 곳이었다.  음, 작업실 옆 공간에 작품들을 전시해놓고 사람들이 와서 볼 수 있도록 한 작은 전시공간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별 기대하지 않고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정교하고 예뻐서 다들 놀라워했다. 특히 한 엄마는 중학생 딸이 이런 미니어처를 무척 좋아한다면서 나중에 딸과 함께 다시 와봐야겠다고 했다.   

 

 

 

 

  

  

 

 

 

 

 

 

 

 

인사동 국수집에서 점심을 먹고 경인미술관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아이들 올 시간에 맞춰 허겁지겁 돌아왔다.  스스로 뻑 가는 일 하나씩 갖고 사는 '자뻑클럽'을 만들어 볼까, 그럼 '자뻑클럽' 회장은 누가 좋을까, 아이들과 남편을 내려놓고 잠시 나만의 세계에 살짝 들어갔다 나온 느낌에 엄마들 모두 가볍게 즐겁고 행복했다.  

백창우 선생님, 다음에는 꼭 '조금 별난 전시회'에 가서 선생님의 애장품 스누피들과도 꼭 눈맞추고 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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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12-08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시간 가지셨네요.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하셨죠? 하하~ 많이 부럽지는 않아요. 왜냐면, 백창우 선생님은 재작년에 우리지역 행사에 오셔서 노래를 듣고 사인도 받고 사진도 찍었거든요.^^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참 좋아요~ 구입하고 이벤트 당첨돼 두 개여서 하나는 이웃집 와일드 보이에게 선물했더니 아이도 엄마도 너무 좋다고, 또 다른 이웃에게도 선물했더라고요. 좋은 건 아이들도 다 알아요~ ^^

섬사이 2010-12-09 19:49   좋아요 0 | URL
저는 사인도 못 받았어요. 왜 백창우 선생님 책을 챙겨갈 생각을 못 했는지!!!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정말 좋지요?
굴렁쇠 아이들 중 하나가 지난 여름에 도서관에 와서 일주일 동안 6~7살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쳐준 적이 있어요. 중학생인데 얼마나 의젓하던지. 꼬마들이 형이라고 얼마나 잘 따르며 노래를 익혔는지 몰라요.
우리집 꼬맹이는 시간이 맞지 않아서 아쉽게도 함께 하질 못했다는...
백창우 선생님의 꿈이 꼭 빨리 이루어졌으면 정말 좋겠어요. ^^

fallin 2011-01-14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임신했을 때..백창우 선생님 CD를 즐겨 들었어요. 주변사람들에게 선물도 하고 ^^
이뿌고 고운 음악만큼 아이들에 대한 고운 생각을 하시는 분이였군요..
반갑네요 ^^

섬사이 2011-01-19 13:29   좋아요 0 | URL
동심을 간직한 어른이시죠.
아이들에게 그런 어른이 있다는 건 참 다행이지, 싶어요.
백창우 선생님의 cd는 주변에 선물하기 참 좋은 것 같아요.
임신했을 때 태교 음악으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네요.
 

지난 가을 '그림책으로 만나는 가을'이라는 제목으로 도서관 안에다 책전시 코너를 작게 만들었는데 벌써 12월. 가을 책 전시, 문닫을 시간이 된 것이다.  

겨울 그림책들을 모아서 전시를 할까 했는데 12월에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뭐니뭐니해도 크리스마스가 아니던가. 그래서 12월에 크리스마스 그림책 전시를 하고 1월에 겨울 그림책 전시를 하기로 했다.  그래서 외서 빼고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그림책으로 뽑은 목록이 59권이다.  

전시제목을 '그림책으로 만나는'시리즈로 나가자는 다분히 게으른 발상으로 '그림책으로 만나는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1월엔 '그림책으로 만나는 겨울'이 되겠지.)   

 

 

 

 

 

 

 

가을엔 방화동 길꽃 어린이 도서관에서 소개해주신 어르신들을 찾아가 도움을 받아 짚으로 만든 잠자리, 짚공, 계란꾸러미 등등으로 꾸몄었는데, 이번엔 색지를 가지고 눈 결정체를 만들어 낚시줄로 매달았더니 반응들이 꽤 괜찮았다.  내가 봐도 괜찮은 것 같아서 우리집 거실에도 몇 개 만들어서 매달아 놓았다.     

크리스마스 그림책들을 찾아보자면... 

 

 

 

 

 

  

 

 

 

    

 

 

 

 

 

 

 

 

 

 

 

 

 

 

 

 

 

 

 

 

 

 

 

 

  

 

 

 

 

 

 

 

 

 

 

 

 

 

 

 

 

 

더 찾아보자면 더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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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12-08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리스마스 관련 그림책들이 엄~~~~청 많네요.^^
읽은 건 겨우 10권 쯤...

섬사이 2010-12-09 19:52   좋아요 0 | URL
예, 어마어마해요.
개인적으로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가 빠져서 좀 서운해요. 번역본이 <북극으로 가는 기차>던가? 해서 전집으로 묶여있는데 다니는 도서관에선 전집류를 구매하지 않는 편이라...
저도 다 읽지는 못 했어요.
한 자리에 모아 놓은 이 기회에 차근차근 한 권 한 권 읽고 분류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말이에요. ^^
 

 

코엘료의 우리 나라에서 몇 권이나 출간되었는지 찾아보니 대충 20 여 권이 되는 것 같다. 마니아층도 꽤 두터운 듯 한데, 난 <연금술사>랑 <순례자>, 달랑 두 권을 읽었을 뿐이다.  코엘료의 작품들이 싫었던 건 아닌데, 글쎄, 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코엘료의 문장들이 너무 그럴듯한 게 좀 부담스러웠다고나 할까. 마치 종교윤리도서를 읽고 있거나 까마득한 경지에 다다른 은수자 앞에 무릎 꿇고 앉아 말씀 한 마디 놓치지 않게 조심하며 바짝 긴장하고 있는 기분이었으니까. 이 책은 <연금술사>나 <순례자>보다는 그 느낌이 조금 덜 했지만.

이 책을 독서모임에 추천한 분은 도서관 관장님이다. 관장님 말씀으로는 요즘 코엘료의 책을 보면 '코엘료도 이제 좀 기운이 빠졌구나'하는 느낌이 드는데 이 책이랑 <11분>은 엄마들이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욕망하는 식물>로 잠시 현기증을 느꼈던 엄마들이 비교적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상한대로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모두 책을 읽어왔다.  

선생님은 이 책이 엄마들이 인문학에 접근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마련해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시면서 각자 이 책에서 찾아낸 주제를 말해보라고 하셨다. '고정관념 탈피', '틀의 파괴', '자기 존재감 찾기', '죽음에 대한 인식과 삶에 대한 욕구' 등등을 이야기가 나왔다.  

선생님은 이 책이 근대 서양철학에 근거해서 쓰여진 것이라고 생각하신다고 하면서 준비해오신 프린트물을 나눠 주셨다. 그 프린트물에는 인식론과 해석학에 대한 내용이 정리되어 있었다.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사람을 개념으로 일반화시키는 경향이 두드러졌던 서양사상에 대해 쇼펜하우어와 니체가 문제제기를 하면서 서양철학이 자기반성의 시대를 맞게 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다양성과 개별성을 인정하는 해석학이 대두되었는데, 따라서 해석학에서는 '보편적 결론'이라는 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선생님은 현대는 이성과 합리주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세상이고, 따라서 '세상을 해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세상에 대한 '나만의 눈', '나만의 인식'이 중요한 시대라고. 그리고 개별성을 인정한다는 사실은 서양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이기도 하다고 하셨다.  
덧붙여 죽음에 대한 자각은 현대종교의 역할이고 세상은 아직도 사람을 똑같이 재단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개인 하나하나가 모두 똑같아진다면 그 순간 자기의 존재이유는 사라져버리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나는 지금 어느 지점에 있는가"는 질문을 던지셨다.  

너무너무 어려운 질문이었고 다들 어쩔 줄 몰라했다. 지금까지 '특별한 나'를 찾기 보다 '평범한 나'에 만족하며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밀려들었다. 그냥 남들 틈에 눈에 띄지않게 살짝 '묻어가는 인생'이었다는 자괴감. 이런 분위기를 눈치채셨는지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남들에게는 없는 나만의 특별함'에 대해서 편하게 이야기해 보라고 질문을 고쳐주셨는데도 여전히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다들 당황하며 자신만의 개성과 엉뚱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사람들을 만나면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르게 느껴지는 뭔가가 있기는 하다. 그걸 콕 찝어서 설명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선생님은 책 속의 문장들 몇 개를 짚어주셨다.  
'중요한 건 옳은 답이 아니라 남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답이니까.' (p.128) 
그리고 241쪽의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숲에~'부터 '자연의 순리에 역행합니다.'까지다.(내가 문장을 전부 적지 못하는 이유는 지금 내게 이 책이 없기 때문이다. 나중에 다시 보충해 써놔야지!)
128쪽의 문장은 사람을 똑같이 만드려는 세상에 재단되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겠고, 241쪽의 이야기는 개인이 가진 '특별함'에 대한 글인 것 같다.
선생님은 이 문장들을 인용하시면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 세상과 같아지려는 고민과 닿아있는 건 아닌지 조심해서 살피라고 주의를 주셨다. 사람들이 많이 착각하고 오해하는 부분이라면서 '자아'에 대한 현대적 의미를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주부들의 독서모임, 사실 가볍게 가려면 한없이 가볍고 쉽게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살림하고 애들 키우느라 좁아져버린 주부들의 사고의 차원을 끌어올려주려고 매번 애써주시니, 선생님께 너무 감사하다.  

다음엔 노래하는 시인 백창우 선생님과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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