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장을 보고 버스를 탔다. 대형마트는 늘 사람으로 넘쳐나고, 그래서 늘 버스정류장도 복잡하다. 내가 타는 마을버스는 대형마트로 들어서는 길에서 오고가는 버스노선이 겹친다.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면 큰길에서 좀 들어간 곳에 대형마트가 있는데 대형마트 가는 손님을 놓치지 않으려고 서로 반대방향으로 가는 같은 번호의 버스가 다 들렀다가 가려다보니, 대형마트로 들어서는 도로에서는 다른 방향의 같은 번호 버스가 서야 하는 정류장이 똑같아 지는 것이다.  그래서 버스를 타기 전에 어느 방향으로 가는 버스인지 잘 확인하고 타지 않으면 버스가 반대방향으로 달려가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오늘도 버스가 도착하자 사람들이 우르르르 몰려들었다. 앞문으로도 타고 뒷문으로도 탄다. 타야할 사람이 너무 많다보니 버스기사들도 마트 앞 정류장에서만큼은 뒷문으로 타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버스가 유턴을 해서 다시 큰길로 빠져나가는 도로 중간에서 어떤 아줌마 같은 할머니, 또는 할머니가 되려는 아줌마(?) - 편의상 젊은 할머니라고 부르자 - 로 보이는 분이 버스를 세웠다. 거긴 버스정류장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버스기사가 앞문을 열자 막 소리를 지르신다.  

"왜 버스정류장에서 사람도 안태우고 그냥 가!"
버스기사가 타서 말씀하시라고 하면서 일단 올라타기를 독촉하니까 화가 나서 얼굴이 붉어진 젊은 할머니께서 올라타신다. 그러고는 막 소리를 지르시는 거다.  
"버스가 정류장에서 사람을 태우고 가야지! 사람도 안태우고 그냥 내빼면 어떡해!"
그러니까 버스기사가
"어디 계셨는데요? 정류장마다 다 섰는데, 어디서 제가 안 태워요?"
"내가 저-기서 계속 기다렸는데, 사람도 안태우고 앞에 차 앞질러서 그냥 갔잖어!"  

아마 젊은 할머니는  내가 탄 정류장 바로 전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셨던 것 같았다. 그 정류장은 버스 방향에 따라 한 3미터 간격을 두고 두 개의 정류장이 있는데, 사람들이 많이 헷갈려 하는 정류장이다. 그러니까 이 젊은 할머니께서는 아래쪽 정류장에서 기다려야 했는데, 잘못해서 3미터 위쪽에 있는, 반대방향으로 가는 버스가 서는 정류장에서 서서 기다리고 계셨던 거다. 당연히 버스기사는 앞쪽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사람들만 태운 거고.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중에 몇 분이
"저 그 정류장에서 탔어요. 이 버스 거기서 섰었는데.."하고 기사를 변호했지만 아주 작은 목소리라서 그 젊은 할머니에게는 잘 들리지 않았을 것 같았다.
할머니가 노여움을 잔뜩 안고 버스 뒷편으로 갔는데, 버스기사가 그 할머니에게 큰 소리로 얘기했다.  

"거기는요, 정류장이 두 개예요. 이쪽 방향 버스를 타시려면 아래쪽 정류장에서 기다리셔야 하는데, 할머니가 잘못하시고는 저한테 화를 내시면 어떡해요. 다음엔 정류장 확인하시고 기다리세요. 아셨어요?" 
할머니가 무안하셨는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다른 사람들이
"그래, 그 정류장이 많이 헷갈려. 왜 그렇게 해놨는지 몰라."하면서 수근댔다.  
할머니가 아무 대답도 없자 버스기사가 다시 큰소리로 말했다.  
"대답하세요!" 

난 그 때 좀 조마조마했다. 버스기사의 말투는 따지는 듯한 말투가 아니라 공손하지만 당당한, 그런 말투였다. 난 그 점이 참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할머니가 무척 노여워하고 계셨고, 그래서 버스기사의 "대답하세요!"라는 재촉에 "젊은 사람 운운, 버릇없이 운운.. " 뭐 그럴까봐, 그래서 싸움이 될까봐 두근두근했다. 버스 안엔 정말 바늘 끝같은 긴장이 감돌았다.  

"알았어!" 아직 노여움이 가시지 않은 퉁명스러운 할머니의 대답. 일단 할머니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신 셈이었다. 그런 할머니를 향해 버스기사가 마무리짓는 결정적 멘트를 날렸다.  
"왜 운전하는 사람 스트레스 받게 그러세요. 미안하다는 말씀도 안하시고.." 

와, 저 버스기사 대단하다고 감탄했다. 내가 지금 저 버스기사였다면 할머니를 따라 나도 화를 냈을 것이고, 할머니가 심술궂은 목소리로 "알았어!"하신 걸로 나도 감정이 풀어지지 않았지만 그냥 덮어버렸을 것 같았다. 그리고는 하루종일 내내 짜증을 내며 구시렁댔을 것 같았다. 그런데 버스기사는 은근슬쩍 할머니의 사과를 요구한 것이다.  내 뒤에 앉아계시던 할머니가
"그러게.. 운전하는 게 얼마나 고된 일인데 그러면 안되지.."하고 버스 기사 편을 들었다.  

젊은 할머니가 버스기사 곁으로 가더니 "알았어!"했을 때의 심술궂음, 노여움, 퉁명스러움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목소리로
"거기 버스 정류장이 어떻게 돼있다구?" 하고 물으셨다.
"거기는요, 버스정류장이 두 개라구요. 청계천 방향으로 가는 버스는 위쪽 정류장에서 타셔야 하구요, 이쪽 방향 버스는 아래쪽에서 타셔야 해요."
버스기사가 자분자분 다시 설명을 해드렸다. 버스기사도 원망같은 게 전혀 없는 말투다.
"그래.. 내가 잘 몰랐어. 미안하네.." 

와~~ 할머니가 버스기사에게 사과를 하셨다. 버스기사는 할머니에게 사과를 받았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이런 싸움이 벌어지면 같이 타고 가는 사람들이 모두 피곤해진다. 그런데 난 오늘 버스기사와 할머니의 이 갈등과 해소과정이 기승전결이 잘 짜여진 완벽한 드라마처럼 여겨졌다. 너무 멋졌다. 버스기사가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공손하면서 당당하게 자기 말을 다 전달하는 것도 대단했고, 젊은 사람에게 다가가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그 어르신도 멋있었다.  (게다가 버스기사는 젊은 할머니와 입씨름을 하는 동안에도 버스에 타는 사람들에게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했다!!!) 

난 살짝 버스기사의 얼굴을 보았다. 나이는 30대 초반? 까무잡잡한 피부에 약간 마른 듯하지만 단단한 몸집이다. 앉아 있어서 잘 모르겠지만 키도 작아보이지 않는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눈빛을 보지 못한 게 좀 아쉽다. 다음에 버스를 탔을 때 이 버스기사가 운전석에 앉아 있으면 꼭 웃으며 인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난 착한 사람이 좋다. 그리고 착하면서 당당한 사람들은 더 좋다. 
사람들이 다투는 건 싫지만 기승전결이 있고 해피엔딩으로 깔끔하게 끝나는 싸움이라면 그것도 좋다.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녀고양이 2011-04-13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심으로, 정말 진심으로 기사처럼 성정을 가질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단 발끈하고 속으로 움츠리고 두고두고 게워내고,
할 수 있는 지저분한 일은 다 하니까요. 참..... 멋지네요.
기사나 할머니나 이렇게 전달해주시는 섬사이님 두요.

평생, 이 성질머리 고쳐지지 않을까봐 요즘은 걱정스럽답니다, 전.

섬사이 2011-04-13 21:10   좋아요 0 | URL
그 버스기사는 젊은 사람이었는데 어떻게 그런 경지에 이르렀는지 모르겠어요. 화가 나고 짜증나는 일이 생길 때마다 그 버스기사 생각이 날 것 같아요.
저도 바람직하지 못한 성질이라서.. ^^;;

희망으로 2011-04-13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들면 저절로 아량이란게 생기는 줄 알았는데 제 경우를 보면 고집과 아집이 더 단단해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나이드신 분들이 사과하는 경우가 드문게 아닌가 해요. 정말 할머니도 멋지고 기사님도 멋지십니다. 싸우는 일이 많아지길 바라는 것은 그렇지만 싸우고 화해하는 과정이 바람직하게 이뤄지는 모습을 더 많이 볼 수 있기를 바라는 건....괜찮은거죠^^

섬사이 2011-04-13 21:16   좋아요 0 | URL
나이 많은 사람이 자기 보다 어린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불필요한 기싸움을 벌이는 경우가 더 많죠.
필요하다면 싸워야겠지만 싸움 뒤에 화해가 온다면 더 좋겠지요.

순오기 2011-04-14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기 드문 풍경이네요~~ ^^
그 버스기사님 아니어도 같이 인사하면 좋아요~~~~헤헤!^^

섬사이 2011-04-14 10:38   좋아요 0 | URL
인사를 하더라도 버스기사님 얼굴도 안보고 카드 찍으면서 대~충 했거든요.
이제 버스기사님 얼굴을 확인하고, 인사하게 됐어요.
거기다 살짝 웃어줄 거예요. ^^

무스탕 2011-04-14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달에 영화보러 가려고 제가 탔던 버스기사 아저씨랑은 참 비교되네요.
울동네 아저씨는 목적지에 가는 내내 옆차선, 반대차선, 하여간 주변에 지나가는 버스의 기사 아저씨들을 모두 참견하고 심지어는 이어폰을 사용했지만 핸드폰 통화까지 하고 아주 번잡스러워서 불안했는데 말이에요. (글쎄, 이 아저씨가 운전하는 버스를 극장에 갈때 집에 올때 모두 탔다는거 아닙니까?!)
당당하게 사과를 요구하는 젊은이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어른이나 모두 멋지네요!

섬사이 2011-04-14 10:43   좋아요 0 | URL
그런 버스기사를 만나면('님'자가 저절로 탈락하네요!) 정말 불안해요.
제가 만난 그 버스기사님은 '전문가'다웠어요.
화난 승객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았거든요.
무조건 참거나 양보하거나 눈감아주는 게 '착함'이 아니라는 걸 느꼈어요. 그건 잘못하면 '위선'이나 '비겁'에 더 가까워지게 되니까요. 기꺼이 다가가 미안하다고 하신 어르신의 용기도 감동이었구요.

Mephistopheles 2011-04-14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마주치는 노인네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 할머니시군요. 젊은 사람에게 사과를 하는 할머니 역시 멋지십니다..^^

섬사이 2011-04-15 13:38   좋아요 0 | URL
지하철에서 몇 번 사건이 있었죠? 그 때마다 잘 늙어야지, 생각했어요.
잘못했다면 상대가 나보다 젊건 어리건 사과할 줄 아는 것,
그것도 잘 늙는 비법 중 하나인 것 같아요.
반갑습니다. 메피님.^^

Arch 2011-04-15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한편의 드라마 같아요.

섬사이 2011-04-15 13:40   좋아요 0 | URL
버스에서 내리면서 무척 기분이 좋았어요.
그러고보니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는 드라마같은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 것 같아요. 때론 좀 추잡스러운 경우도 있지만, 사람의 면면들을 다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영화제작에 손대야 하나....^^;;)
반가워요, 아치님.

감은빛 2011-04-15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대단한 기사님이시네요. 잘못을 인정하신 할머니도 대단하구요.
저도 잘못된 상황을 못 참는 성격인데,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다보면 결국 싸움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몇번 그러고나면 또 비슷한 상황이 생겨도,
그냥 귀찮아서 참아버리고 말지 하고나서(똥이 무서워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나중에 속으로 혼자 속상해하게 되더라구요.

저 기사님의 현명한 태도가 참 부럽네요!

섬사이 2011-04-18 13:14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거든요. 겉으론 참고 넘어가는 것 같지만 속은 하루종일 부글부글하죠. 버스기사님이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현명하게 자기전달을 잘 한 것 같아요. 또 버스기사님이 그렇게 했다고 해도 할머니가 고깝게 여겨 더 화를 냈다면 일은 또 안좋게 흘러갔을 텐데, 할머니도 자기 잘못을 빨리 인정하시더라구요. 두 분 다 정말 멋졌어요. 싸움구경하고 이렇게 산뜻하기는 정말 흔치 않을 거 같아요.
 

방사능 비가 내리던 어제, 흙살림에서 꾸러미가 왔다. 일주일에 한 번씩 목요일마다 채소와 과일, 계란이나 간식거리들이 택배로 배송되어 온다. 내가 주문한 물품이 오는 게 아니라, 그 쪽에서 알아서 보내주는 것을 받는건데 덕분에 지난 가을엔 아욱국을 자주 끓여먹었고, 유황훈증을 하지 않고 곶감 덕장에서 자연건조시킨 곶감을 맛보기도 했다.  어제는 유정란과 두부, 딸기, 시금치, 쪽파, 깐마늘, 무가 왔다.  

현관문을 열고 꾸러미 상자를 받으며 택배기사분에게 죄송했다. 모두 맞기 꺼려하는 저 비를 우비도 입지 않고 생계때문에, 아이 교육비때문에, 자기일에 대한 책임 때문에 우리집까지 왔을 거라 생각하니, 늘 목요일이면 받던 꾸러미 상자가 더 크고 무거워 보인다.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말로만 했었는데, 어제는 고개까지 꾸벅 저절로 숙여졌다.

목요일 오전은 우리 아파트 재활용품을 내놓는 날이다. 청소아줌마들과 경비아저씨들이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간 재활용품을 정리하느라 비를 맞고 서 있었다. 저 비는 저 비가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팔자좋은 높은 사람들이 맞아야 하는데, 하는 생각에 가슴이 쓰렸다.   

꾸러미에서 온 쪽파를 까는데 꼬맹이가 도와주겠다며 나선다. 눈 맵다고, 손 더러워진다고 말려도 극구 곁에와 쪽파를 잡는다. 조금 까다가 관두겠지 했는데, 웬걸, 눈이 맵다면서도 끝까지 앉아서 도와주었다. 많이 컸다는 걸 새삼 다시 느꼈다.   

지난 주에 꾸러미로 온 열무와 얼갈이가 그대로 있어서 꼬맹이딸이 까준 쪽파를 넣어서 얼른 열무물김치를 담갔다. 남은 쪽파로는 냉동실에 있던 홍합살과 굴, 오징어를 넣고 파전을 부쳤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돌아온 아들녀석이 막내와 같이 앉아 맛있게 먹어주었다. 세상이 어수선하고 불길할수록 이런 저녁식탁을 더욱 지켜주고 싶어진다.   

이보다 더한 징후가 나타나도 우리는 우리의 일상중에 좋은 쪽만 골라서 살아갈 수는 없을지 모른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던 것처럼 뭔가 석연치않고 찝찝하더라도 옆지기는 일을 하러 나가고, 택배기사는 상자를 들고 뛰어다니고, 우리동네 야쿠르트 아줌마는 집집마다 야쿠르트를 넣은 후 아파트 입구에서 남은 야쿠르트를 팔기 위해 서있고,  환경미화원들은 도로를 비질하고, 버스는 새벽부터 밤까지 정류장을 빼놓지 않고 정해진 노선대로 운행하겠지.  

그래서 나는 사람들의 일상이 깨지지 않도록, 아주 작은 실금도 가지 않게 지켜주려는 노력을 더 더 보고싶다.  '아, 저 사람들이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우리의 이 사소한 일상들을 소중하게 여겨주고 있구나. 지켜주려고 저렇게 애를 쓰고 있구나.'하는 걸 느꼈으면 좋겠다. 그러면 좀 위로가 될텐데. 아직도 바라는 것이 있다는 게 나도 참 신기하긴 하지만.

카이스트 학생의 자살 소식이 또 들려온다. 그 지점까지 가기 위해 얼마나 고생하며 공부했을텐데, 어쩌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지경까지 몰렸을까. 어쩌다가 우리는 이 지경이 됐을까.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노아 2011-04-08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택배 받으면서 상자에 묻은 빗방울도 꺼림칙한데 이걸 온종일 들고 나르신 분은 얼마나 비를 많이 맞았을까 싶어 미안하고 한숨이 나왔어요. 하루하루의 소중한 일상을 열심히 사시는 분들은 늘 이토록 위험에 내몰리고, 그런 상황을 연출하거나 방조하는 사람들은 가장 안전한 곳에서 고개만 까딱하고 있네요. 정말, 우리는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요.

섬사이 2011-04-08 15:40   좋아요 0 | URL
장바구니에 담아놓은 책 3권을 주문을 하는 게 좋을까, 안하는 게 좋을까, 하고 있어요. 어제 그 택배기사분에게 미안했던 마음이 책 주문을 미루게 만드네요. 급하게 읽어야 할 책도 아니고, 안하고 지나가면 허전한 이벤트를 치루듯 책을 습관처럼 사는 면도 없지 않아서, 굳이 지금 주문하지 않아도 괜찮거든요.

꿈꾸는섬 2011-04-08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비 맞으며 일하시던 분들이 꽤 되시더라구요. 정말 안전할까 의심은 드는데...참, 안타깝네요.

섬사이 2011-04-08 16:34   좋아요 0 | URL
자꾸 약이 올라요.
약이 오르다가 화도 나구요.
언제쯤 끝날까요. ㅠ.ㅠ

무스탕 2011-04-08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병원에 가려고 차를 몰고 나가는데 맞은편에서 청소차가 오더라구요. 보니까 아저씨가 차 위에 우산 없이 그냥 서서 이동하던데 저도 아이고, 이 비를 그냥 맞고 계시네.. 하긴, 쓰레기통을 비우려면 몇 번을 내려섰다 올라갔다 해야 하는데 일일이 어떻게 우산을 쓰겠나.. 싶더라구요.
참, 고생이 많으시네, 가족이 걱정 많이 하겠네.. 싶더라구요.

섬사이 2011-04-08 16:55   좋아요 0 | URL
정말 그래요. 어제 그 택배기사님한테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 분의 부모님과 아내, 자녀들에게도 내가 못할 짓을 한 것처럼 느꼈어요.
어제같은 비가 내리는 날, 누가 - 그 사람에게 신세진 게 많고 친한 사이라고 할지라도 - 우리 옆지기에게 밖에서 우산없이 해야 할 일을 도와달라고 한다면 저는 그 사람을 무지무지 원망하고 미워했을 것 같거든요. ㅠ.ㅠ 무스탕님과 옆지기님은 좀 나아지셨나요? 지성이는 괜찮구요?

알맹이 2011-04-09 0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와 닿는 글이네요. 요즘 정말 인류의 미래가 걱정되어요. 우리 아이들이 살아야 할 세상이라 더더욱.. 부모가 되고 보니 그렇네요.

섬사이 2011-04-11 13:20   좋아요 0 | URL
가끔 더이상 문명이 발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원자력발전소 같은 경우는 아예 없어졌으면 좋겠으니까
문명이 조금 뒷걸음질 쳐도 괜찮을 거 같아요.
조금 불편하면 불편한대로 사람들은 살아지지 않을까요?

세실 2011-04-09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한 방울도 안맞으려 애쓰다가 비 맞고 묵묵히 일하는 분들 보면서 부끄러웠습니다. 모두 행복해야죠.

섬사이 2011-04-11 13:22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모두 행복할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말이예요.
오늘은 햇볕과 바람이 둘 다 맑아요.
이 햇볕과 바람 속에 우리에게 나쁜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믿을 수 없을만큼요.
 

오늘 아이들을 보내놓고 한가득 쌓인 설거지거리를 보다가 언젠가는, 그래 언젠가는 조용한 아침이 올거야,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마신 커피 잔 하나, 내가 먹은 빵 접시 하나, 커피를 저었던 예쁜 티스푼 하나, 그것만 설거지해도 되는, 그런 조용한 아침.  아이들이 벗어 놓고 간 옷가지들을 주워담으며 언젠가는 일주일동안 빨래를 하지 않아도 빨래통이 다 차지 않는 그런 날도 올거야, 했다.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쓸쓸한 아침. 그 때에는 아침에 한 청소가 다음 날 아침에도 유효할 거다. 나는 지금보다 훨씬 늙어 있겠지만 어쩐지 그런 아침이 기다려진다.   

어제부터 다시 요가를 시작했다. 근처 초등학교에서 한달에 만원만 받고 일주일에 두 번씩 요가 수업이 있다. 춥고 귀찮다고 겨우내 푹 쉬다가 오랜만에 운동이랍시고 했더니 어깨, 팔, 옆구리, 다리 뒤쪽이 땡기고 뻐근하다. 묵묵히 숨어 일하던 근육들이 난데없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나서는 것 같다. 근육이 그려진 인체의 그림을 앞에 놓는다면 내가 움직일 때마다 어느 근육이 움직였는지 다 짚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해서라도 살이 조금이라도 빠진다면 이 고통이야 얼마든지 참아줄 수 있다. 그런데 오랜만에 뵌 요가 선생님은 나와는 대조적으로 겨우내 더 말랐다. 사람이 그럴 수도 있구나, 겨울은 당연히 살이 찌는 계절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렇게 마를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요가를 마치고 아파트 친구랑 같이 한살림에 들러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올봄 첫 민들레를 만났다. 보통 3월 15일 전후로 해서 그 해 첫 민들레를 만나는데,(작년엔 3월 17일, 재작년엔 3월 14일에 만났다) 올해는 정말 늦게 만난 셈이다. 그것도 보도블럭 틈새에서 푸른 이파리 하나 제대로 펼치지도 못하고서는 땅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로 노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그제 길상사 다녀오는 길에서도 그렇게 두리번대며 찾았는데도 보이지 않더니.  그래, 민들레 너는 그냥 일상의 늘 다니던 길에서 문득 만나야 더 반갑지.  

아파트 단지 앞산에는 개나리도 만개했다. 해마다 개나리 축제가 벌어지는 산인데, 이상하게도 한 번도 개나리 축제 때는 정작 산을 올라가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올해만큼은 꼭! 개나리 만개한 산에 아이 손 붙잡고 오르리라고 겨울부터 작심을 했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쌀알처럼 붙어 있던 매화꽃눈들도 하나씩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이제 열그루 매화길을 지날 때마다 코를 들고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매화향을 흡입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계절이다.  

그런데 오늘, 며칠 전 부터 예고했던 비가 내린다. 일찍 집을 나서는 큰애들에게 우산을 챙겨주면서 절대로 비맞지 않게 조심하라고 이르고, 어린이집에 가는 막내에게 비옷을 입히고 우산을 씌우고 마스크까지 해줬다.  

꽃은 여기저기서 피고 볕은 따스한데, 자꾸만 이 봄이 불길하다.  

봄날의 조용하고 평화로운 아침을 바랐는데, 문득 불길하지만 않아도 좋겠다는 마음이 드는 거,
좀 슬프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노아 2011-04-07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마다 민들레와 함께 맞닥뜨리는 봄이라니, 참으로 근사해요.
이 불길함이 안심으로 어서 바뀌어야 될 텐데요.

섬사이 2011-04-08 12:49   좋아요 0 | URL
봄이다, 싶으며 민들레가 기다려져요.
민들레를 봐야 정말 봄이 온 것 같구요.
그런데 올해 봄은 정말 심난하고 불길해서 속상해요.

세실 2011-04-07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딸내미가 벗어 놓은 옷가지, 어제 신던 스타킹 날리는거 보면서 우울하더라구요.
책상도 엉망이고요. 왜그리 정리를 못하고 사는지...원.
도서관 주변에 어느새 노오란 개나리가 활짝 피었어요!!


섬사이 2011-04-08 12:50   좋아요 0 | URL
우리애들도 그래요.
정말 정리정돈과는 담을 쌓았나봐요.
그런데요,
저도 그땐 그랬던 것 같아요.
뭐, 지금도 깔끔하게 사는 편은 아니예요.

순오기 2011-04-08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이건만.... 잔인한 봄이 되고 있어요.
아침에 노인복지관으로 한문공부하러 갔더니,
비 때문인지 지렁이들이 떼죽음을 이루고 있더라는 말을 듣고 불길하고 불안했어요.ㅜㅜ

섬사이 2011-04-08 12:51   좋아요 0 | URL
아, 지렁이들이..
정말 무서워요.
정부에서는 엑스레이 한 번, CT 한 번 찍는 정도의 방사능도 안된다고
안심하라는데, 지렁이는 엑스레이 찍으면 100% 죽는 건지 궁금해지네요. -.-;

꿈꾸는섬 2011-04-08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요가 다시 시작하신 건 정말 잘 하신 것 같아요. 저도 요가 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안 맞아 못했거든요. 그래도 몸을 움직여주니 정말 좋더라구요.^^

섬사이 2011-04-08 16:29   좋아요 0 | URL
제가 생각해도 잘 한 것 같아요. ^^
아마 더 나이가 들면 하고 싶어도 못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가기 싫다가도 막상 다녀오면 잘 갔다왔다, 하거든요.
 

막내랑 같이 다니는 어린이 도서관에서는 아이들에게 책통장이라는 걸 만들어 준다. 그리고 도서관에 와서 책을 읽고 책통장에 기록을 한 다음 사서 선생님의 싸인을 받는다. 그 싸인이 다섯 개 모이면 개구리 도장을 찍어주고, 그 개구리 도장을 또 다섯 개 모으면 아이가 원하는 책을 선물로 준다. (그 책 선물을 '개구리상'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두 달에 한 번씩 나오는 도서관 소식지에 개구리 상을 받은 아이들의 명단이 올라온다.   

우리 막내로 말하자면, 26개월 무렵부터 그 도서관을 들락날락거렸다. 그래서 재작년 도서관 총회때에는 도서관을 가장 많이 들락날락 거린 아이에게 주는 '도서관 생쥐상'을 받기도 했다. (막내가 받은 생애 첫 상장이었으니 의미가 컸다) 그런 막내이니 개구리 상을 많이 받았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천만에 말씀 만만에 콩떡이다.  

그 이유는 일단 막내에게 책을 읽어주고도 책통장에 읽은 책들을 기록해 주지 않은 내 탓도 있다. 한 달에 5천원 후원하는 사람이(새해부터는 한 구좌를 더 늘려 만원씩 후원하고 있지만) 개구리 상을 받아가면 도서관 쪽에서는 어쨌든 손해니까, 하는 생각때문이기도 했고 단순히 '귀찮아서'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막내가 도서관에 책을 읽으러 가는 게 아니라 '놀러' 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린이집에 다니기 전에는 엄마 모임이 있는 날 따라 와서 모임이 끝날 때까지 놀았고, 어린이집에 다니고부터는 '색깔아이'라는 미술품앗이 모임에 들어가 작품활동(?)한 후 놀다가만 왔기 때문이다.  내 책임이 크다. 어린이 도서관이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라고는 하지만 커피 한 잔 하고 올 여유는 부렸으면서 아이에게 책 읽어줄 생각을 안 했다니 반성한다. 사실 잘 놀고 있는 아이를 불러다 앉히고 책을 읽힌다는 것이 썩 내키지도 않았고,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놀면서 배운 것도 많다. (초등학생 언니가 종이접기를 가르쳐주기도 하고 한자를 많이 아는 오빠와 친구 덕분에 한자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하지만 어쨌든 도서관은 책을 읽는 장소니까 선생님들께 죄송하기도 해서 어느 날 도서관 가는 길에 막내에게 슬며시 말을 꺼냈다. 

"도서관에 가면 책을 읽어야 하는데 우린 만날 놀기만 하니까 엄마가 선생님한테 좀 미안하거든. 도서관에 가면 적어도 책 두 권정도라도 읽으면 좋겠는데, 어때?" 
"......."
"있잖아, ㅅ오빠랑 ㅇ이는 소식지 나올 때마다 개구리 상 받았다고 이름이 나오더라~
우리도 책 읽고 열심히 책통장에 써서 오랜만에 개구리 상 좀 받아볼까?"
"...... 알았어, 엄마. 그럴게..." 
"정말? 그래, 도서관은 책을 읽는 곳이니까, 우리 많이는 말고 두 권 정도 읽고 그 다음에 너 하고 싶은 거 해도 되잖아." 
"응" 

아, 그래도 컸다고 말귀를 알아듣는구나, 하고 감격하며 가벼워진 마음으로 길을 계속 갔는데, 한동안 말없이 걷던 막내가 불쑥 혼잣말 하듯 내뱉은 말. 

"엄마.. 그래도 나는 노는 게 더 중요해.." 
"......"
잠시 할 말을 잃고 막내 표정을 보았다. 꽤 심각한 표정이다.
"그래... 노는 게 중요하긴 하지..." 

내가 너무 노는 데 집중해서 아이를 키운 걸까? 덕분에 '에너지가 많은 아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아이 얼굴을 흘끔흘끔 바라보며 걷다가 결국 내가 KO패를 인정했다. 적어도 잠 자기 전엔 책을 읽어야 한다고 조르니까, 친구들과 뛰어놀며 밝고 건강하게 크는 게 중요하긴 하니까... 

"그래, 우리 열심히 놀자!"로 그 날의 대화를 마쳤다. 그래도 요즘 막내가 그 때 엄마가 한 말을 기억하는지 2권 정도는 읽으려고 노력(이게 중요하다, 노력이라는 게!)하는 것 같다. 지난 목요일 색깔아이 때문에 도서관에 갔을 때에도 <앗, 따끔!>이라는 책과 브라이언 와일드 스미스의 <서커스>란 책, 두 권을 읽었다.  

<앗, 따끔>도 짧은 그림책이었지만 <서커스>는 맨 앞과 맨 뒤에 한 줄씩 단 두 줄의 글이 있는 책이었다. 하지만 그림을 열심히 읽었으니까, 그림책에선 그림을 읽는 것도 무지무지 중요하니까, <서커스>란 책을 읽을 때 우리딸 말고도 서너명의 아이들이 모여들만큼 아이들의 관심을 꽤 끌었으니까. 이렇게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는데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놓으면 좀 위안이 되냐, 싶긴 하지만..   

그 이후로 아직도 개구리 상은 멀고도 멀다. 개구리 상은 포기하고 내가 따로 우리 막내에게 적당한 좀 더 쉬운 규정을 만들어 작은 선물을 주는 게 더 빠를 것 같다. 그래, 그게 더 좋을 것 같다.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녀고양이 2011-04-02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저는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막내가 이쁜데요. 큭큭.
책이야 읽히고 싶고, 저도 딸아이에게 잔소리를 해대지만
제 맘 같지 않더라구요. 그래도 도서관에서 내내 놀다니, 너무 좋아요.
읽고 싶으면, 언제라도 가서 책을 쏙 고를 수 있는 위치잖아요. ^^

섬사이 2011-04-04 10:44   좋아요 0 | URL
엄마가 하도 놀자고만 해서 그런게 아닌가 싶어요.
셋째 아이라서 그런지 제가 뭘 챙겨서 해주고 그러질 않아서 그런가 봐요.

마노아 2011-04-02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개-과정-결말이 모두 아름다운 걸요. 노는 게 더 좋다고 하지 않고 노는 게 중요하다고 다부지게 말하는 아이가 믿음직스러워요.^^

섬사이 2011-04-04 10:45   좋아요 0 | URL
저도 놀랐어요.
너무 진지하게 "노는 게 더 중요해"라고 말해서요.
아직은 그런 나이지 싶기도 하구요.

순오기 2011-04-02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요렇게 야무진 유빈이는 개구리상 안 받아도 훌륭해요.
역시 <도서관이 키운 아이> 답다는 생각에 추천 꾹!!^^

섬사이 2011-04-04 10:46   좋아요 0 | URL
개구리상을 미끼 삼아 던졌던 건데 요 꼬맹이 딸이 덥석 물어주질 않네요.
<도서관이 키운 아이>라기 보다 <놀이터가 키운 아이>에 더 가까워요. ^^

무스탕 2011-04-02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는거 정말 중요하지요. 중요한게 뭔지 잘 아는 총명한 막둥이에요 ^^
울 동네엔 '어린이 도서관' 이라고 이름 붙인 도서관이 따로 있는데 (그러니까 도서관 한 켠이 어린이 코너가 아니고 도서관 자체가 어린이 도서관이에요) 가본적이 없어서 뭐가 틀린지는 모르겠어요;;;
거기엔 도대체 뭐가 있을까요? +_+

섬사이 2011-04-04 10:48   좋아요 0 | URL
제가 가는 도서관엔 엄마들과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도 많아요.
무엇보다 사서선생님들과 무척 가깝게 지낼 수 있다는 것도 좋구요.
몇 년 전에는 초등 고학년 아이들이 도서관 프로그램으로 백두산에 다녀온 적도 있어요. 그리고 올해는 '평화'를 주제로 뭔가를 한다는 것 같던데..
한 번 가 보세요. 아무래도 '어린이'에 더 집중된 도서관이라 다른 일반도서관과 또 다를 거예요.

프레이야 2011-04-03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엽고 당당한 막내네요^^
섬사이님이 챙겨주시는 선물도 좋을 거 같아요.
제가 자주 가는 도서관에도 어린이도서관이 별채에 따로 있는데
아기자기 아주 예뻐요. 아이 어릴 적엔 그런 곳이 많이는 없었는데..

섬사이 2011-04-04 10:50   좋아요 0 | URL
저도 막내랑 도서관에 다니면서 큰애들 때 생각을 해요.
그 때에도 주변에 이런 어린이도서관이 있었으면 큰애들의 어린시절이 더 풍요로울 수 있었을 텐데, 하고 아쉬워하죠.
동네마다 어린이 도서관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세실 2011-04-03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개구리상 아이디어도 좋고,
선물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 주관 뚜렷한 막내도 귀여워요~~~
"도서관=놀이터"라는 생각도 좋잖아요^*^

섬사이 2011-04-04 10:52   좋아요 0 | URL
그렇지 않아도 동네 사람들이 막내더러
"너는 도서관에 자주 가서 책 많이 읽겠구나"하면요,
"그냥 책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놀다 오는 거예요." 해요.
사람들이 막내가 책을 무지무지 많이 읽는 줄 착각하고 있거든요.

하늘바람 2011-04-03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태은이를 도서관에 자주 데리고 가고 싶었는데 버스를 타고가야하다보니 자주 안가게 되네요 막내가 참 똘똘하고 귀여워요

섬사이 2011-04-04 10:53   좋아요 0 | URL
저도 버스타고 걷고 해서 가요.
버스정류장으로 네다섯 정거장 쯤 되요.
그리고 내려서 또 좀 걸어야 하구요.
그런데 재미있어서 가요.
나들이 삼아서요.^^

꿈꾸는섬 2011-04-04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내가 너무 사랑스러워요.^^
저흰 큰애가 도서관 가는 걸 무척 좋아했었는데 작은애가 도서관에만 가면 여기저리 돌아다니고 책 읽는 애들 훼방놓아서 그 이후로 도서관 가는 걸 자제했는데 그게 벌써 한참 되었네요.ㅜㅜ 저만 혼자가서 책 빌려와서 집에서 읽히고 있어요. 아이들도 데려가야하는데 말이죠.

섬사이 2011-04-04 14:13   좋아요 0 | URL
저도 책은 빌려와서 자기 전에 집에서 읽어줘요.
아이도 도서관에서 읽는 것보다 그걸 더 좋아하더라구요.

pjy 2011-04-04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집 막내동생도 집에 책이 너무 많다고 질린다고 안읽고 그랬었는데요~
학교가니 책읽고 막 잘난척하는 친구가 생겼을때 급 도전하게 되던데요~ 막내들이 욕심은 진짜 많잖아요~ 얼마나 영악한데요ㅋㅋㅋ 분명히 노는거보다 중요한게 많이 생길꺼예요^^;

섬사이 2011-04-04 14:14   좋아요 0 | URL
반가워요. pjy님.
정말 그럴까요?
노는 것보다 중요한 게 많아질 그 날이 올까요?
오겠죠?
희망을 줘서 고마워요. ^^
 

아이들 졸업하고 봄방학하고 시어머님 생신, 도서관 정기총회... 이래저래 정신이 없기도 했다. 아들녀석은 산마을학교에 낙방(?)한 후 근처 인문계고등학교로 진학이 결정되었다. 여전히 요리학원을 열심히 다니고 있고, 필기시험에는 붙었지만 한식실기는 아직이다. 지난 번에 한 번 시험봤다가 화양적의 꼬치가 부러지는 바람에 탈락.. 4월에 다시 도전할 예정이다.  

막내가 어린이집 봄방학에 들어서자 신났다고 동네 엄마들이랑 나들이를 다녔다. 길상사에 갔다가 고대 캠퍼스에서 놀고, 그 다음엔 어린이 대공원으로, 그 다음엔 키즈카페로.. 그 중간에 막내 동네 친구의 생일 파티가 두 번 있었으니 2월 말엔 노느라고 정신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 책은?  <지금이 아니면 언제?>와 겨울이 가기 전에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안나 카레니나>는 달랑 1권만 읽었다.  그리고 아직도 지지부진. 2권 중간쯤 읽고 있는 중. 아이들 새학년이 시작되고 마음이 어수선했다고는 하지만 이건 순전히 책에 대한 애정이 식은 게 아닐까, 염려되는 상황. 권태기에 들어선걸까?  이 페이퍼를 쓰는 동안에도 안나 카레니나의 레빈이 자꾸 말을 거는 것만 같다. "이봐, 내가 궁금하지 않아?"  이제 3월도 거의 끝나가니 책읽기에 박차를 가해야지. 아이들 학교생활도 어느 정도 틀을 잡았으니.  

아, 지난 해엔 지원을 받아 신동호 시인과 <마음을 여는 책읽기>를 진행했는데, 올해엔 엄마들을 위한 인문학 학교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구청에 500만원 지원 신청을 했는데 300만원만 받게 되었다.  그래서 역사, 영화, 문학 강좌를 열고 각 강좌당 10회의 강의를 계획했던 걸 좀 수정해야 했다. 강의를 강좌당 5~6회로 줄이고 나중에 자료집을 만들기로.  영화강의는 독립영화감독이자 평론가인 황혜림 님이 맡아주시기로 했고, 문학 강의는 작년에 이어 신동호 선생님이, 역사는 아직 확정이 되질 않았다.  어쩐지 올해는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잘 마무리 하는 것만으로도 꽉 찰 것 같다.  

영화는 2월 한 달동안 <시>, <라푼젤>, <환상의 그대>, <상하이>, <만추>, 총 5편을 봤다.  

<시>는 극장에 가서가 아니라 설 연휴 끝머리에 TV를 통해 봤지만, 다섯 편의 영화 중 가장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영화다. 페이퍼에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올렸지만 그 다음에도 내내 머리 속을 맴돌았던. 페이퍼에 글을 쓰고 나서 "본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극 중에서 미자가 정말 보았던 건, 꽃이나 새가 아니라는 사실이 새삼 마음에 걸렸다. 꽃이나 새를 보는 중에도 미자는 마음으로 죽은 여학생을 보고 있었던 것일게다. 극중에서 김용택 시인이 나와서 "잘 봐야된다"고 했던 말에 대한 적절한 예시였다고나 할까.  

<만추>는 막내 어린이집 수료하던 날, 그러니까 봄방학이 시작되기 바로 전 날 부랴부랴 가서 보고 왔다. 탕웨이가 참 돋보였고, 현빈과 탕웨이가 둘이 짜고 나를 울렸다. 하나는 폐쇄된 놀이 동산에서 두 연인을 바라보며 립싱크하는 장면이었고, 또 하나는 현빈의 포크 발언으로 탕웨이가 속에 담아둔 서러움이 폭발하는 장면이었다. 두 사람의 쓸쓸함이 어찌나 잘 어울어지던지... 스크린에 손을 뻗으면 축축하게 물기가 베어나올 것만 같은 장면들은 또 어떻고.. 이 영화를 보고 온 날 남편이 "가서 현빈 잘 보고 왔어?"하고 묻기에 "나, 현빈 보러 간 게 아니라 영화보러 간거거든!"하며 따졌는데, 엄밀하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난 현빈과 영화, 둘 다 보러 갔던 거라는 걸 인정한다.  

<환상의 그대>는 삶이 씁쓸해지는 영화. 코미디스러운데 좀스러운 삶에 대한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고 할까.
<상하이>는 좀 더 치밀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던 영화다. 뭔가 화려하긴 한데 영화의 진행이 많이 허술하다는 느낌.  

<란푼젤>은 물론 우리 막내 때문에 본 영화. 영화보다 CG의 발달을 더 실감나게 느꼈다.  

부실했던 나의 2011년 2월이다. 아무리 바빴어도 책을 좀 더 읽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부실한 2월에 대한 페이퍼를 쓰고 있는 3월도 여전히 부실하다는 게 더 아쉽다.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1-03-23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아 저 갑자기 섬사이님 이 페이퍼 보니까 이메일 보내고 싶어졌어요. 제가 이 댓글 다 쓰면 이메일 보낼게요. 히히.
아니 그리고 어떻게(!)안나 카레니나를 읽다가 멈추실 수 있죠? 네? 궁금해요 다 읽고난 후의 섬사이님의 감상이요. 그러니 다 읽으시면 어땠는지 감상 들려주세요. 아셨죠?

섬사이 2011-03-23 15:30   좋아요 0 | URL
앗, 방금 이메일 확인하고 냉큼 들어왔더니 다락방님이 다녀가셨네요.
이 페이퍼 쓰고는 막내 어린이집에서 올 시간이 되어서 나갔다가 왔거든요.
안나 카레니나는 멈추진 않았어요. 너무 느리게, 아주 천천히, 꾸준하게 읽고는 있어요. 머리 속에서 레빈이 자꾸 말을 시키고 있어서...
톨스토이가 대문호라는 점을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며 확인하고 있어요. 인물의 마음과 미묘한 심리를 어떻게 그렇게 잘 그려낼 수 있는지!
암튼, 반가워요. 다락방님. 그리고 고마워요.

마녀고양이 2011-03-23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양적 꼬치가 부러지는 바람에 낙방하고, 다시 시험본다는 아드님...
너무 멋지고, 그런 아드님을 둔 섬사이님이 부럽고,
그런 아드님을 키운 어머니를 둔 아드님이 다시 부러워요.

페이퍼 읽으면서 그 문구를 읽고 나서는 필이 확 꽂혀버렸어요. ^^
봄인데 너무 추워요. 봄이 너무 기다려져요~

섬사이 2011-03-24 14:23   좋아요 0 | URL
첫 시험은 경험 삼아 보는 거죠.
몇 번은 더 떨어질 거라고 예상하고 있어서
4월에 보는 시험도 붙을 거라고 기대하진 않아요.

너무 추운 봄이죠? 3월의 날씨는 너무 변덕스럽고
올 봄 첫 민들레를 아직도 만나지 못했어요. ㅠ.ㅠ

세실 2011-03-23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엄마를 위한 인문학 학교 프로그램이라니. 게다가 역사, 영화, 문학을 다룬다니 멋져요. 자세한 소스좀 주세용^*^ 계획서 등등.
청주엔 강사풀이 약해서 고민스럽긴 하지만 굿 아이디어 세요.
1일 2시간 기준으로 역사 20시간, 영화 20시간, 문학 20시간 하면 괜찮을까요? 아니면 1일 3시간씩 할까?
학부모 대상 프로그램 6개 추진해야 하는데 벌써 3개는 해결된거잖아요. 와 좋아요~~~
감사. ㅎㅎ

섬사이 2011-03-24 14:28   좋아요 0 | URL
구청에 사업계획서 낼 때는 10강으로 하고, 커리큘럼도 임의대로 써서 냈어요. 물론 강사도 예상으로.. ^^
지원이 결정되고 예산이 확정된 후 강사 섭외하고 커리큘럼을 짜는 중이에요.
구청에 냈던 사업계획서가 필요하신 건지,
아니면 실제 강의할 커리큘럼이 필요하신 건지..???
이메일 알려주시면 보내드릴게요. ^^

2011-03-26 08: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28 16: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1-03-23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기에는 굉장히 충실하고 알차게 2월을 보내신 것 같은데요.
굉장히 다양하고 많은 일들을 하시는 것 같아요!
요리를 배우는 아드님께서 종종 맛난것 해주나요?

그 인문학 프로그램에 관심이 가네요. 혹시 남자가 들으면 안되나요?

섬사이 2011-03-24 14:33   좋아요 0 | URL
책을 많이 읽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워서요.
아들은 가끔 집에서 요리를 합니다.
김치낙지칼국수, 매작과, 오징어볶음, 돼지갈비 등등...을 했네요.
주방에 서있는 아들의 뒷모습은 무척 감동적이에요.
가끔은 남편이 서 있어도 좋을 것 같은데.. 쩝~!^^

순오기 2011-03-25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이 늦었어요~~~~~ 바쁜 2월을 보내셨군요.
아드님의 한식 실기에 응원을 보내고,
공감할 수 있는 건 '만추'뿐이네요.^^

섬사이 2011-03-28 16:01   좋아요 0 | URL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에 자격증을 4~5개는 따놓을 거라고 그러는데
그게 말처럼 쉽겠어요... ^^
만추, 참 촉촉하게 젖어들게 만드는 영화였어요. 그렇죠?

꿈꾸는섬 2011-03-30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차게 매일을 살고 계신 것 같아요.^^
전 요새 책도 안 읽고 인터넷도 안 하고 대체 뭘하는데 하루가 후딱 지나가는지 모르겠어요.ㅜㅜ
요리하는 아드님 너무 멋져요.^^
제 사촌동생은 고등학교때부터 요리 시작했던 것 같아요. 작은아버지가 엄청 반대하셨지만 지금은 엄청 잘 해내고 있더라구요. 가끔 맛난 것 얻어 먹는 재미가 솔솔해요.ㅎㅎ

섬사이 2011-04-01 14:27   좋아요 0 | URL
알차기는요.. 에휴, 늘 모자라고 모자라요.
왜 그럴까요?
저도 처음에 아들이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그리 썩 반기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참 다행이다 싶어요. 어쨌든 아들이 즐겁고 재미있어 하니까요.
가끔 제가 아들한테 그래요, 이담에 엄마랑 작은 까페라도 하나 하자고..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