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지 어느새 6년이 흘렀네요.  4월, 할아버지가 계신 곳엔 개나리와 민들레가 곱게 웃고 있던데요.

봄햇볕을 받으며 오랜만에 찾은 할아버지 묘소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전 할아버지의 마지막 미소를 또 떠올리게 되네요. 

폐암으로 숨쉬기조차 힘드셨던 할아버지는 제가 병실을 찾았을 때 그냥 제 손을 꼭 잡고 인자한 눈빛으로 웃으셨어요. 

마치 할머니를 잘 부탁한다고 말씀하시는 것만 같았죠. 

할아버지.  

제가 끓여드리는 해물매운탕을 좋아하셨죠.  제가 가면 매운탕을 끓여달라고 말씀하시곤 하셨잖아요. 그렇게 빨리 돌아가실 줄 알았다면 좀더 좋고 맛좋은 재료로 끓여드리는 거였는데 하며 후회를 했었죠.

그랬어요, 할아버지.

그 때 매운탕 재료를 사러가서 왜 우럭이나 대구같이 좀 비싼 생선을 집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요.  왜 모시조개나 대합처럼 좋은 해물을 고르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했어요.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제손으로는  매운탕을 끓여 먹을 수가 없었어요.  어쩐지 할아버지께 죄송해서요.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던 구절판도 명절 때 만들어가도 재미가 없던걸요.  맛있구나, 고맙다 하시며 드셔주시는 할아버지가 안계시니까 만들 때도 신이 나질 않아요.  

할머닌 할아버지 얘기를 하시며 눈물짓곤 하세요.  침대에 누워 계시지만 그래도 건강하세요.  늘 기도하고 계셔서 그런가봐요.  할아버지 돌아가시기 전과 똑같이 할머니는 뽀더러는 우리집안 대장이라고 하시고 지니더러는 미스 코리아라고 하세요. 누워만 계신 할머니께 저희가 힘을 드리고 와야 하는데, 오히려 저희가 할머니의 응원을 받고 온답니다.  내색은 안하시지만 할머닌 할아버지가 보고 싶으신가봐요. 

할아버지가 뽀를 귀여워하시며 보고싶어 하셨다는 얘기도 하시고, 할아버지가 젊으셨을 때 얼마나 명민하셨었는지를 자랑스럽게  얘기하시곤 해요.  

할아버지, 이상하게 들으실 수도 있지만, 지니아범과 저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본받고 싶단 얘기를 종종 나누곤 해요.  생전에도 늘 말씀이 무겁고 일이 깔끔하셨던 할아버지께 존경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말이예요.

돌아가실 날이 다가오자 할아버지는 부활절이 며칠 남았느냐고 물으시곤 병실 벽에서 달력을 떼라고 하셨죠.   그리곤 공책 하나를 달라고 하시곤 돌아가신 다음 남은 저희들이 연락해야 할 분들을 적기 시작하셨어요.  기운이 하나도 없으셔서 말씀하시기도 힘드셨는데 말이예요.  투병하시는 동안 참석하지 못했던 성당 모임의 밀린 회비까지 깨끗한 봉투에 넣어 두셨죠.   

그리고 며칠 후 문병오신 성당 교우분들이 기도를 하시는 중에 조용히 돌아가셨어요.  장례를 마치고 지니아범과 저는 우리도 그렇게 떠나고 싶다고 긴 시간을 들여 얘기를 나눴었죠. 

할아버지.  비니를 보고 계세요?  전 비니가 할아버지를 모르고 자라나는 게 내심 아쉬울 때가 있어요.  지니나 뽀가 갖고 있는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비니는 함께 가질 수 없다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용현동 집에 가면 비니는 2층을 가리키며 "하미니,하미니" 해요.  비니를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가 할머니 방으로 가면 비니는 할머니의 굳은 손을 잡고 악수를 하기도 하고 재롱을 부려요.  할머니는 벌써 여든 아홉이 되셨어요.  비니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지니랑 뽀가 결혼을 할 때까지 더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어요. 

할아버지.  할아버지께서  생전에 직접 고르셨고 이제 할아버지가 육신이 모셔진 가족묘 앞에 섰어요.  언젠간 우리 모두 그 곳에 모일 거란 생각을 하곤 해요.  아직 철없고 촐랑대는 뽀까지도 들어갈 자리가 있다며 농담처럼 웃으며 얘기하지만, 참 이상하죠?  제가 죽어 들어갈 자리 하나 있다는 게 참 편안하게 느껴지니 말이예요.  그것도 가족 모두 다 같이 한 자리에 있을 거라는 생각만으로도 죽음이 덜 차갑게 느껴진답니다.

시집와서 남들은 시할아버지 시할머니까지 있는 집에서 참 힘들겠다며 절 딱하게 여기곤 했지만, 전 정말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저에겐 언제나 인자하고 따뜻한 분이세요.

부활절이예요.  제가 기억하고 있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인자한 미소처럼 따뜻한 햇살이 흐르는 부활절이었어요.  할아버지는 제가 알고 있는 할아버지 중에 정말 최고였어요.  알고 계시죠?

부디 할아버지가 하늘나라에서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언젠간 그곳에서 할아버지의 인자하고 따뜻한 웃음을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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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7-04-09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실때 편안하게 가신다는것 보내는이들에게도 가시는이에게도 참 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움 가득이네요..그 마음 다 지켜 보고 계실거에요..

섬사이 2007-04-10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가끔 할아버지가 옆에서 웃으며 지켜보실 것만 같을 때가 있어요.
 

어제 뽀가 저녁 식사 자리에서 한 말..

"엄마, 과학상상화를 그리라는데 뭘 그리면 좋을까?"

"음... 핵무기때문에 지구가 멸망한 거.. 아니면 무분별한 복제실험과 유전자 조작으로 기형적인 생물이 우글거리는 거... "

난 꼭 이럴 때면 삐딱선을 탄다.  과학문명의 발달이라는 게 늘 좋은 면만 있는 건 아닌데 과학상상화로 아이들에게 억지로 과학에 대한 장미빛 희망만 가지라고 강요아닌 강요를 하는 게 마땅치 않아서 내가 나서서 딴지를 걸어 보는 거다.  아들을 상대로 딴지 걸어서 뭔 소용이 있다구..

우리 아들 킥킥거리며 웃는다.

"엄마, 우리 반에서 미래의 우리학교를 그리는 게 있었거든."

"엉. 근데?"

"근데 어떤 애가 어떻게 그렸는지 알아?"

"어떻게 그렸어?"

"ㅋㅋㅋㅋ  학교가 폐교되서 학교자리에 아파트 들어선 거 그렸다~"

"?"

그 다음에 터져 나오는 웃음..

자기가 한 얘기에 엄마가 크게 웃어버리니까 우리 아들이 보태는 말,

"엄마, 근데 또 다른 애는 학교가 폐교 되서 그 폐교된 학교에서 애들이 재밌게 노는 거 그렸어."

"우하하하하":

선생님이 얼마나 황당해 하셨을까?

그런데 난 왜 이렇게 통쾌한 거야?

19세기 산업사회의 일꾼을 양성하기 위해 세워지기 시작했다는 역사도 길지 않은 이 학교라는 제도를 종종 자주 왕왕 못마땅하게 여기곤 했기 때문인가 보다.  학교라는 제도의 효율성과 필요성에 대해 의심을 품고 그 폭력성과 네모반듯한 규격성을 싫어했기 때문인가 보다.

그래도 그렇지.  어쩌구 저쩌구 궁시렁하면서도 결국엔 별 수 없이 아들 딸 다 학교보내고 살면서 초등학생 아이가 아무생각 없이 그린 무너진 학교 그림에 어찌 이리 즐거워할 수 있단 말인가. 

설거지 하면서 노래한다. 

"비겁하다~~~ 욕하지마~~~"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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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4-06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겁하다... 욕하지마... ㅎㅎ 이 노래 좋아해요^^

섬사이 2007-04-07 0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모르게 저절로 튀어나오곤 하는 노래 중에 하나예요. 적당히 절 대변해주는.. ㅋㅋㅋ
 

3월이 지났건만 아직도 학년이 바뀌고 난 뒤 아이들은 결정할 사항이 남아있고, 결정은 했으나 아직 시작을 하지 못한 관계로 어수선한 부분도 남아 있다. 

지니는 특별활동을 뭘 할까 고민고민하더니 인터넷 검색을 해보고 친구들과도 의논하는 과정을 거쳐서 "순은점토공예부"로 결정을 보았다.  요리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뽀에 비해서 유동적이고 많은 것에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는 지니는 늘 그런 결정들에 시간을 끄는 편이다.

그런데 특별활동비가 72000원.  1회에 9000원 꼴로 재료비가 들어가서 그렇단다.  은행에서 생활비로 찾아온 돈에서 72000원을 털어주고 나니 지갑 속에 남은 돈이 달랑 15000원이다.  이궁.. 은행에 갔다오자마자 다시 또 돈빼러 가게 생겼다. 

학원을 한군데도 안다니게 된 우리 지니는 방과후 활동에도 눈을 돌렸다.  원어민 영어회화반을 신청해서 일주일에 두 번 1회에 90분씩 수업을 듣게 되었다.  비용?  4개월에 달랑 6만원이다.  히히 물론 교육의 질적인 면을 따져봐야 하는 거지만, 아무튼 참 착한 교육비가 맘에 든다. 

얼마전에 서울청소년문화교류센터에서 벌이는 프로그램에 참가하겠다고 하더니만, 신청서에 자기소개서에, 거기다 면접까지 봐야한다는 걸 알고는 번거롭고 귀찮다며 마음을 접어버렸다.  늘 그런 절차면에서 소심해지는 성향이 있다.  문제다... 일단 프로그램에 투입되면 적극적으로 덤비면서 왜 절차가 까다롭다고 그러면 그만둬버리는지 모르겠다.  좋은 기회였는데..

이제 특활이고 방과후 활동이고 다 결정되었으니 나로선 한시름 놓았다. 그러나 둘 다 아직 신청만 받고 제대로 시동도 켜지 않은 것들이라 막상 시작이 되고 나면 지니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다.

게다가 두 녀석 수련회도 남아 있다.  뽀는 이 달에, 지니는 다음 달 중간고사 끝나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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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7-04-09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월이 지나고 나면 조금 느긋하려나 했더니 그것도 아니더라구요..더 바쁜 일정들이 기다리고 있어요..ㅋㅋ
그러나 잘들
따라주고 있는 아이들이 그저 고마울뿐..
지니도 중간고사가 오월인가보네요??둘째도 오월이라고 느긋하고.
소라는 담주라고 끙끙거리고있는 모습이 안스럽답니다.
지니는 정말 자기 할것 잘 찾아 이쁘게 잘하는것 같아요..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지니가 참 대견스러워요..요즘에는 학교에서 순은점토도 하는군요..대학에서나 하는줄 알았는데..와우~대단해요..

섬사이 2007-04-10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제가 학교 다닐 때보다는 많이 다양해졌더라구요. 작년에는 한지공예부에 들어서 몇가지 소품들을 만들어 왔더랬어요. 올해는 천연비누반, 알공예반, 순은점토공예반을 두고 고민고민하더니 순은점토공예반으로 결정하더군요. 소라는 곧 중간고사네요. 이궁.. 힘내라고 전해주세요.
 

지니는 학원 그만둔 뒤로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다.  문제는 비니다.

의자 위로 기어오르고 무릎에 앉아 지가 공부한다고 볼펜 뺏고..

생각다 못해 PMP를 사줬다. 

어차피 학원비가 굳었으니까 그 돈으로 PMP를 장만해 준거다.

코원 A2로 사줬는데 지니는 입이 귀까지 걸렸다.

PMP로 강의를 다운 받아서 자기방에 문닫고 들어가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단다.

그동안 비니 때문에 스트레스 좀 받았나?

치..

지 강의 듣는 동안 비니 막아주느라고 나는 또 얼마나 고생했는데..

할 일 다 미뤄가면서..

암튼 너는 좋겠다. 

3개월 할부는 고스란히 내 몫이고,  자기 방에서 누리는 혼자만의 시간은 네 것이 되었으니..

그래도 지니가 학원에 안가니까  나도 좋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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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7-04-03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지니는 좋겠다..엄마 잘만나서..

섬사이 2007-04-04 0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웬지 뜨끔! 지니와 나사이에 흐르는 감정은 때로 애증이 섞이기도 하는걸요. 배꽃님처럼 늘 따뜻하고 넉넉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엄마라구요. 흐흐흑
 

뽀가 6학년에 올라가서 요리특활부에 들어갔다.  한 반에 2명씩만 갈 수 있는 요리부에 세 명이 몰려서 그 어렵다는 '가위바위보' 를 통해 한 명을 떨어뜨려야 했는데 우리 뽀가 극적으로 겨우겨우 이겨서 요리부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오늘이 요리부 활동 첫날이었다.  학교에서 오자 바나나 쉐이크를 만들었는데 저학년이랑 같이 하는 거라 시시했다는 투다.  다음주엔 샌드위치를 만들거라나? 자기는 차라리 주먹밥을 만드는게 더 좋단다.  주먹밥 안에 볶은 김치도 넣고, 고추참치도 넣어가면서..

조리실이 따로 없는데 요리부를 어떻게 운영하시려고 하나 궁금했는데, 되도록이면 불을 이용하지 않는 간단한 요리로 커리큘럼을 짜시려는 것 같다.   우리 뽀는 그게 아주 불만이다. ㅋㅋ

암튼, 우리 뽀가 처음으로 "요리"라는 이름을 가진 공식적인 과정을 밟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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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7-03-30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 좋아하겠어요..요리부 있는초등 학교 첨이에요..^^&
멋진요리사를 꿈꾸며 즐겁게 하겠네요..학교급식소를 한번씩 이용해도 아이들에겐 좋을텐데요..^^&

섬사이 2007-04-01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급식실을 아이들이 쓰게 하기엔 위생문제라든가, 정리정돈에서 급식담당하는 분들과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안되나봐요. 조리실 없이 실과담당 선생님이 지도해주시니 여러가지로 제한이 많겠지요. 그래도 뽀가 좋아하는 특활을 하게 되어서 즐거워하고 있어요.